노무현은 임기내내 지지율이 형편없었다. 임기 종반즈음에는 겨우 10%를 넘을 정도였다. 노무현은 이쪽에서는 친북좌파로 욕을 먹고, 저쪽에서는 신자유주의자로 욕을 먹었다. 모든게 노무현탓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그리고, 임기를 마친지 1 3개월. 그는 벼랑에서의 투신으로 인생을 마감했다. 나는 이 노무현 최후의 지지자 10%가 어쩌면 이 시대 진정한 소수자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우리 사회의 마이너리티의 전범이라 할 만했다. 가난한 집안에 고졸의 학력, 막노동경력과 사병으로서의 현역 복무. 흔하디 흔한 우리네 서민의 삶이다. 사법연수원 시절 동료 연수생들과는 달리 혼자 잠바를 입고 있는 모습은 마이너리티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듯 하다. 그의 마이너리티는 변호사가 되고 나서도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귀족적인 삶을 살 수 있었음에도 그는 인권변호사로서 거리의 민주투사가 되었고, 정의와 원칙을 위해 싸웠다.

그의 소수성은 정치인생에서 더욱 더 두드러진다. 정치인생에서 그는 대부분 소수파였고 때로는 혼자이기도 했다. 의도된 바도 있었고, 때로는 세상과의 타협을 거부한 결과이기도 했다. YS 3당합당을 했을때 그는 가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그에게는 YS의 회유마저도 없었다. 그는 YS를 따르지 않았다고 경상도에서 버림받았다. 그 후 그의 입지는 언제나 소수정당이거나, 1야당이었다해도 언제나 힘없는 소수였다. 경상도출신이라는 것이 이유였다. 그는 대통령후보가 된 다음에도 마이너리티의 신세를 톡톡히 맛봐야 했다. 지원은 커녕 안팎의 압력에 시달린 것이다. 나중에는 그 정당으로부터 탄핵을 소추받기까지 했다.

대통령이라는 자리에 올라서도 마이너리티의 모습은 사라지지 않았다. 소수파정권에게 주위환경은 적대적이었고, 귀족언론이나 재벌들은 그를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어느 누구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지지를 잃기 시작했다. 부자들에게서는 자신들의 돈을 뺐아간다고 버림받았고, 서민들에게서는 서민들의 말을 쓴다는 이유로 버림받았다. 진보진영에서는 왼쪽 깜박이를 켜고 오른쪽으로 간다고 욕을 먹었고, 보수진영에서는 좌파가 나라망친다고 욕을 먹었다. 귀족언론과 재벌귀족들은 미천한 출신이 대통령이라는 것을 봐줄 수가 없었다.

그는 대통령이 되어서는 아니 되었던 사람이다. 그와 같은 마이너리티가 대통령이 된 순간 이미 그의 비극은 예정됐던 것이다. 마이너리티는 감히 꿈도 꿀 수 없는 대한민국 제1시민*이라는 자리에 올라선 순간, 이 사회의 메인스트림이라 자부하는 파워엘리트들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그를 죽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력해진 그는 다시 또 옛 동지들에게서도 버림받았다. 그리고, 여기에 우리들 모두가 방관자로 팔짱을 끼고 있었다.

놀라운 사실은, 우리들 대부분이 사실은 힘도 없고 별로 가진 것도 없는 노무현과 비슷한 마이너리티라는 것이다. 우리들 마이너리티들은 노무현이라는 소수가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면서도, 그것이 우리 자신의 일임을 알지 못한다. 우리가 마이너리티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싫어서였을까? 아니면 노무현의 그 당당함 - 소수자임에도 언제나 당당하고 강한자에게도 굽힘이 없었던 노무현의 당당함 - 을 가지지 못한 우리들의 비굴함때문이었을까? 노무현 최후의 지지자 10%는 어쩌면 이런 마이너리티의 당당함을 사랑하고 이해한 진정한 마이너리티가 아니었을까.




2002
12 29일 오후 6시에 감격에 울었던 노무현 최후의 지지자가, 동지를 잃은 하루 뒤 비탄에 울며 쓰다.


* 고종석의 표현이다.
Posted by 일호 김태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