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이다. 노무현의 홈페이지에 올렸다.


닮은 꼴의 노명박?

노무현의 얼굴을 모르는 사람은 없어도 노무현의 속을 아는 사람은 얼마 안 되는 것 같다. 한겨레의 성한용기자는 작년 대선에서 노무현과 이명박의 닮은 꼴을 기사로 썼다. 88만원세대의 저자인 우석훈 박사도 노무현과 이명박은, 전혀 다른 종류의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얼마 전부터 하게 되었다고 했다. 강준만교수역시 최근 칼럼(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276482.html)에서 '노명박'이라는 말까지 들어가며 둘의 닮은 점이 많다는 것을 얘기한다. 이명박을 '진보'로 보고 표를 준 사람들은 5년전 노무현을 찍은 사람들이었다.

 

바보라는 별명에, 지지자를 반대자로 만들어(또는 뺏겨)버린 노무현. 여기서도 욕먹고 저기서도 욕먹은 노무현. 사실 그는 보통의 한국인과는 조금 다르다. 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조금은 다른, 그리고 약간은 특별한 성찰이 필요하다.


뒤로 물러섬으로 인해 앞에 나선다

노무현은 앞에 나서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앞에 나서는 것을 싫어하고 누구에게 잘 보이는 것도 싫어한다. 그는 좋은 말로 꾸미고 얼굴색을 감추는 것을 싫어한다. 청와대 나오면서 그가 제일 좋았던 건 더이상 화장안해도 되는 것이었고, 고향에 와서는 편하게 입고 신고 다닌다. 누구에게 보이려는게 아니라, 스스로 편해서 할 따름이다. 그를 칭송하자는 게 아니다. 그는 그럴 뿐이다. 퇴임후의 그의 모습을 두고 '소탈하고 솔직하다'며 많이들 반기는데, 재임시의 그를 두고 언론은, 사람들은 '막말' 또는 '품위가 없다'고들 했다. 그리고 하나 더 나가자면 그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만남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다(한겨레의 김선주칼럼에도 나왔듯이 그는 스킨쉽이 부족하다). 단지 인간에 대한 '예의'가 있을 뿐이다(홈페이지의 글은 반기나 봉하마을의 관광객들은 반기지 않는다. 단지 예의를 갖추러 인사하러 나간다).

이기고 지는 것에는 관심이 없어


그리고, 노무현은 이기고자 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 역시 오랜시간동안 '선거'라는 승부의 세계에서 살아왔다. 하지만, 그의 '바보'라는 별명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단지 '승리'를 목적으로 행동하는 인간이 아니다. 그는 자신의 원칙과 신념의 관철을 위해서 행동을 하는 인간이다. 여기서 따르는 '승패'는 부수적인 것에 불과하다. '승리'가 눈앞에 다가왔을때라도 그의 원칙에 반하면 그에게 '승리'란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된다. 이 역시도 그가 무슨 성인군자라서가 아니라 단지 그런 인간이기 때문에 그렇다. 이기는 것만이 옳은 것인 한국사회에서는 희귀한 유형이고, 많은 사람들이 노무현을 '오만'과 '독선'으로 오해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그가 이렇게 눈앞의 승부에 초월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을 얻고자 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노무현은 욕심이 없는 사람이다. 무엇을 가지려고 하지도 않고, 무엇을 바라지도 않는다. 단지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할 뿐이다. 물론, 그 역시 보통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기획하고 의도한 대로 이루어졌을때 행복해한다. 그는 그렇게 정리되고 계획대로 이루어지고 순리대로 풀어져나가는 것을 좋아하고, 그리고 그렇게 되는 것을 원한다. 그가 원하는 것은 그것이다.

그것을 위해서 그가 즐기는 방법이 있다. 그것은 생각하고 사람들과 그 생각을 나누는 것이며, 그 나누는 과정인 토론과 또 그것에서 얻어지는 지적인 충만함과 그 결실을 즐긴다. 그러니, 생각없는 사람들은 노무현의 다변을 싫어하겠지만, 노무현의 사색과 연구’, 그리고 그 결과인 강의와 토론이야말로 그의 본 모습이라 할 만하다. 노무현의 '막말'이라 했을때, 그 말의 외양은 발가락양말과 쓰레빠신는 촌부의 것이나, 그 내용은 왠만한 교수보다 뛰어난 사색가의 그것이다. 생각과 내용이 아예없는 이명박의 막말과는 그 수준이 다르다.


견리사의 - 유연한 독선

그의 -한국사회의 기준에서는 지나치리만치- 원칙을 우선시하는 태도는, 반대로 승리와 이익을 위해서 '원칙'과 '정의'를 내팽개치는 사람들에게는 융통성없고 앞 뒤가 꽉막힌 사람이 된다. 이명박은 그 반대이다. 이명박은 반대로 원칙이 없는 사람이다. 그에게는 살아남고 이기는 것이 옳은 것이다. 강준만교수가 노무현을 '승부를 즐기고 승부에 능한 사람'이라고 한 것은 사람을 몰라도 너무 모르고 하는 말이다.

노무현의 '원칙'에 대한 집착을 사람들과 언론들이 '오만과 독선'으로 매겼을때, 노무현은 너무나도 억울하고 답답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노무현 스스로 생각하기에 누구보다도 개방적이고 유연하다고 - 또는 최소한 그러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터인데, '오만'과 '독선'이라니. 강준만은 노무현을 스스로의 오류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한다고 했는데, 노무현은 스스로 언제나 오류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렇기때문에, 노무현 스스로가 수긍하기 어려운, 즉 비합리적인 반박에는 절대로 수긍하지 않지만, 스스로가 납득하게 되면 지금까지의 입장을 순식간에 되돌릴 수도 있는 사람이다.

따라서, 노무현은 '토론'을 중요시한다. 토론의 과정에서 오류가 발견되면 즉시 용인하고 수정한다. 그리고, 정답이 없는 토론에서는 '타협'또한 중시한다. '대연정'같은 경우도, 정책의 결정권자로서 내린 결정이었지, 그것이 반대를 묵살하고 진행된 것이 아니었다(오마이뉴스의 오연호기자인터뷰참조). 문제는 노무현에게 가해지는 반박과 비판이 노무현에게 '납득'이 안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FTA같은 경우는 좀 예외이긴 하나, 대부분의 비판은 어느 면에서는 현실성이 없었고, 또 어느 면에서는 말이 안 되는 것들이었기때문이다.

덧붙여, 강준만은 노무현이 '타협'을 중시하는 여의도 문화를 혐오한다고 했는데, 이 타협이 밀실에서 이뤄지는 타협, 원칙을 저버리는 타협, 예를 들자면, 3당야합 같은 경우라면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 '타협'이 '대화'와 '토론'과 '양보'를 통해 도출되는 '타협'이라면 그것은 노무현이 꿈꾸던 바이다. 노무현의 대연정구상이나, 모든 정치지향은 사실상 민주주의 내용의 완성인 '대화'와 '타협'의 정치문화정착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군자의 길, 무위의 도

생각이 있는 노무현과 생각이 없는 이명박. 생각을 하고 시작하는 노무현과 생각하지 않고 무턱대고 시작부터 하는 이명박. 노무현은 모시기는 쉬운 사람이나, 기쁘게 하기는 어려운 사람이다. 이명박은 모시기는 어려운 사람이나, 기쁘게 하기는 쉬운 사람이다. 앞으로의 이명박5년은 정말로 피곤한 시절이 될 것이다. 생각없이 촐싹대는 사람을 뽑은 탓을 톡톡히 치를 것이다.

사실, 노무현은 대통령될 사람이 아니었다. 누구처럼 어릴적부터 소원도 아니었고, 또 반드시 대통령이 되어야 할 이유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초선때인가 재선때는 의원직도 사퇴하려고 했더랬다. 그가 대통령이 된 것은 어찌하다보니, 그냥 자신의 모습대로 살다보니 그렇게 된 것이었다. 단지 자신이 생각하는 원칙, 상식, 공정, 정의, 기준, 타인에 대한 예의에 따라서 살아왔을 뿐이다(물론, 그가 불의에 분노할 줄 아는 사람이었고, 그리고 그 불의에 맞서는 용기가 있었지만, 이것도 욕심이 없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비겁함은 욕심에서 나온다). 이렇게 그 어느 것에도 욕심내지 않고, 그 어느것에도 앞서지 않음으로서 그는 모든 사람들에게 앞서는 사람이 되었고, 모든 사람들이 가지지 못하는 것을 가지게 되었다.

 

그렇다고 그의 욕심없음이나 남 앞에 나서지 않음이 그의 의도한 바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런 생각이 있었으면, 결코 남앞에 서게 되고 국가를 운영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노무현은 아무것도 원하지 않음으로써 가장 큰 것을 가지게 되었고, 그리고 하지 않음으로써 가장 훌륭한 업적을 남긴 것이다.  노무현, 진정 다시 보기 어려운 우리 시대의 無爲人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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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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