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호 | 등급변경  | 조회 128 |추천 0 | 2011.09.08. 01:13 http://cafe.daum.net/rescueourselves/71eI/1652 


안철수
시대

 

2011 늦여름, 경악이다. 안철수 '서울시장 출마를 고려하고 있다' 마디. 볼일 없을 같은 한마디의 말이 금년에 들어본 뉴스중에 가장 충격적인 소식이 줄은 몰랐다. 그가 박원순변호사에게 양보를 해서가 아니다. 여론조사결과, 그것이 비록 인기투표의 성격은 있다 해도, 그리고 새로운 인물에 대한 기대감이 반영된 것이라 해도, 서울시장은 물론 대통령선거에서도 1위를 기록을 것은 충격 자체였다. 아니, 안철수 도대체 뭐길래? 이어지는 글은 이에 대한 나의 고민의 결과이다.

 

  

현자(賢者) 안철수

 

안철수 훌륭함을 여기서 꺼낼 필요는 없겠다. 나에게 안철수 씨이오도 아니고 교수도 아니고 현자(賢者)이다. 무엇보다 그는 현재를 사는 사람이다. 대부분의 사람이 미래를 , 오늘을 있는 사람은 그것만으로 '' 가지게 된다. 하지만, 그런 삶의 '' 바로 정치적인 ''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더군다나 그의 사상은 보수이다. 스스로 시장자유주의자라고 밝혔듯이 그는 굳이 말하자면 건강한 보수라 있다. 지금 한국사회가 워낙 후안무치한 사기꾼들이 판을 치고 있어서, 그가 상대적으로 진보적으로 보일지는 몰라도, 그는 결코 진보의 가치에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다. 그의 역시도 지극히 개인의 삶을 걸어왔을 , 공적인 영역에서 의미있는 행보는 없었다. 정치적으로 아무 의미가 없는 안철수 유력한 대선후보로 부상한 것은 도대체 어떤 이유에서인가?

 

이삼십대의 등대가 되다

 

한나라는 것도 없고민주당도 별반 다를게 없다. 그렇다고 민노당이나 민노당에서 떨어져나온 진보신당은 꽉막혀 보인다. 그나마 참여당이 쿨해보이긴 하나거기도 얘기를 해주지는 않는다. 자기를 대변해줄 정당이 없으므로 당연히 지지할 정당이 없다. 이것이 지금 이십대와 삼십대의 정서다. 이렇게 마음을 곳이 없는 이삼십대에게 안철수 나타났다. 안철수 이삼십대에게 등대의 불빛이 되었다. 이삼십대는 안철수폭발의 진원지이며, 안철수 서울시장출마를 고려할 있는 토대이다.

 

어떻게 안철수 이삼십대의 마음을 얻었을까? 지금의 이삼십대는 윗세대와 다르다. 전쟁의 폐허에서 밥을 굶은 세대도 아니고, 그런 부모밑에서 억압을 당한 세대도 아니다. 어렸을때는 풍요로운 성장기를 거쳤지만, 대학과 사회에 진출해서는 무한경쟁속에 힘들어하고, 88만원세대라는 말처럼 상대적 박탈에 고통받고, 비정규직의 비굴함에 억울해하며, 따라서 충족되지 않는 욕망에 분노한다.

 

안철수 되고 싶어여

 

안철수 삶은 지금 이십대와 삼십대가 꿈꾸는 바로 모습이다. 안철수 유능하고 성공한 사람이다. 그런데, 성공의 모습은 기존의 양태와 다르다. 일단 구질구질하지 않다. 그는 의사였다. 기성세대라면 여기서 끝이다. 그런데, 안철수 재밌는 일을 찾아 컴퓨터전문가가 되었다. 그리고 성공했다. 거기다가 기성세대와는 달리 깔끔하다. 악착같이 돈을 벌려고 하는 것도 아니고, 발악을 하면서 살아온 것도 아니다. 지저분한 빽과 뇌물과도 거리가 멀다. 기성세대의 구태의연한 모습은 하나도 찾아 없다. 오히려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현자로서 다른 사람의 멘토가 되고도 남을 사람이다. 이렇게 자기의 인생을 살고 거기서 성공을 했으니, 지금의 젊은이들에게는 이보다 더한 롤모델이 없다.

 

물론, 여기에는 기존의 정치권에서 젊은이들에게 희망과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책임이 있다. 하지만, 단순히 어부지리뿐만은 아니다. 안철수 삶의 모습은 지금의 젊은 세대가 추구하는 이상에 정확히 부합되며 이것이 젊은 세대를 휘어잡는 안철수 힘의 근원이다.

 

안철수 되는 것과 안철수처럼 되는

 

그러나, 나는 안철수에게 표를 주고 싶지 않다. 그것은 내가 윗세대 (386세대나 산업화세대)여서가 아니라, 안철수 내포하는 가치가 사회공동체의 유지에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안철수 표상되는 가치는 ‘개인’과 ‘성공’을 밑바탕에 깔고 있다. 안철수 방식은 젊은이 사람 사람에게는 희망을 몰라도, 사회구성원에게는 전혀 도움이 수가 없다.

 

물론, 집단주의의 억압적인 기능을 생각해본다면, 개인주의의 순기능과 확산은 반길 일이다. 386세대역시 그들이 이룩하고 기여한 많은 일에도 불구하고, 전체주의에서는 자유롭지 못했다.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지금 이삼십대의 개인주의는 분명 사회가 다양화에 기여할 것이고, 결과적으로 개인의 자유나 인권의 확대로 나타날 것이다.

 

하지만, 시장자유주의자인 안철수 지금의 부조리를 열거하면서 앞으로 공정한 게임의 룰을 만든다는 주장은, 언뜻 보면 공명정대하게 생각되지만, 게임자체가 이미 적자생존이고 약육강식의 법칙일 뿐이다. 정치는 게임을 공정하게 진행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보다 중요한 것은 게임에서 있을 밖에 없는 패자도 배려하는 것이다. 누가 이기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지는 사람을 어떻게 대하느냐가 정치의 문제라고 있는데, 안철수 표상되는 가치는 나도 한번 이겨야겠다는 것에 불과하고, 이것은 단지 피아만 바뀌었을 문제는 여전하다고 있는 것이다.

 

386세대의 공만큼 분명히 과도 있다. 하지만, 그들의 학생운동은 공동체로서의 사회를 우선시했고, 결과적으로 민주주의의 확대에 기여했다. 지금 이삼십대의 보수화 경향을 그들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는 일이나, 분명 알아야 것은 안철수 된다고 해서 안철수처럼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에필로그

1.

안철수 부상으로 가장 피해자는 유시민이 되었다. 유시민은 기존의 정치권에 식상한, 반한나라 비민주 그리고 민노당이나 진보신당의 답답함에 등을 돌린 이들이 지지층이었다. 그런데, 이번 안철수 등장으로 유시민으로서는 이상 확장을 없게 되었다. 대안으로서의 가능성은 완전히 안철수에게 빼앗겨버렸다. 안철수 전혀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문재인의 등장에 이어 안철수 부상은 유시민으로 하여금 이상 가망성이 없다는 판단을 하게 만들 것이다.

 

2.

386세대는 이제 서산에 지는 해가 되었다. 한때 역사의 주역이었던 그들의 앞에는 민주주의의 확립과 자유의 신장이 놓여있지만, 그들의 뒤에는 개인의 안위만을 꿈꾸는 ‘늙은 젊은이’들이 있다. 안철수 표상되는 ‘늙은 젊은이’들은 누구의 탓인가? 386 탓에서 자유로울 있을까?

 

3.

문재인 차기대통령이라치고 얘기하자면, 문재인의 가장 고민은 바로 지금의 이삼십대 ‘늙은 젊은이’들이 되어야 것이라 본다. 이들을 움직이는 , 천하를 얻으리라.

 

 

2011. 9. 8. 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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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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