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새해를 맞는다. 바깥에서 보는 한국의 새해맞이 풍경은 조금은 유난스럽다. 해돋이를 보려는 해맞이 인파가 그것이다.

12월 31일 자정이 되기 전 서울의 종로거리나 시드니의 오페라하우스앞이나 똑같이 카운트다운이 시작된다. 1월 1일이 되는 순간 시드니의 하버브릿지에서는 요란한 불꽃놀이가 시작되며 새해를 축하한다. 같은 시간 한국에서는 보신각의 종이 서른 세번 울린다. 이 보신각의 종소리는 결코 새해를 맞는 것이 아니다. 묵은 해를 보내는 제야의 타종이다. 1월1일 0시가 되면 새해를 맞이하지 않고 묵은 해를 보내는 종을 친다. 그렇다면, 새해는 언제 맞이하는 것일까?
 
한국의 새해는 1월 1일 영시가 아니라 아침시간, 즉 일출과 함께 시작한다. 한국의 새해는 해가 떠야 비로소 새해이다. 방송국의 카메라는 말할 것도 없고, 많은 사람들은 뜨는 해를 보러 바다로 산으로 급기야는 교통정체에 도로 위에서 새해를 맞게 된다. 해가 뜨지 않으면 그것은 새해가 아니고, 아침이 아니면 그것은 새날의 시작이 아니다. 자정이 넘어가면 새로운 날이 되고, 12월 31일이 끝나면 바로 새해가 되는 서양과는 다르다. 미묘하나, 분명히 다르다.
 
이렇게 설명하는 역사학자가 있다(출처는 김대근씨이다). 우랄산맥 근처 알타이지역에 태양을 숭배하는 무리가 있었다. 떠오르는 태양을 쫓아 동쪽으로 동쪽으로 이주하여 한반도에 정착했다. 나라 이름을 아침해가 선명하다해서 조선이라 했다. 우리가 고조선이라 부르는 그 조선이다. 한반도에 정착한 사람들 중 일부는 또 동쪽으로 일본열도로 갔다. 해의 근본이라 일본이라 했다. 삼족오는 그들의 상징이었다.
 
대학시절 엠티를 가서는 밤새 술이 떡이 되도록 마시고 다음날 새벽 일출을 보러 꾸역꾸역 기어나가는 이들이 있었음을 기억한다. 산에 올라가도, 나 역시 그랬듯이, 특별한 날이 아님에도 일출을 보러 꼭두새벽부터 천황봉으로 대청봉으로 기어오르는 이들이 아직도 많음을 알고 있다. 한국의 지명, 성산의 일출봉이나 여수의 향일암이나 포항의 영일만이나 하다 못해 이름없는 동해 바다 어디를 가도 아침잠을 줄여 일출을 봐야만 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고 많음을 나는 알고 있다.
 
과문한 탓인지, 한국사람이 아닌 사람들이 이렇게 일출을 집단적으로 즐긴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하였다. 호주의 시드니는 전 세계 사람들이 모여사는 곳이다. 아침잠을 설치며 낚시를 가고 골프장에 가는 사람은 봤어도 일부러 일출을 보러 간다는 사람은 아직 만나 보지 못했다.
 
1월 1일 일출을 보러 어둠속에 길을 나서는 사람들에게 왜 일출을 보러 가는지 묻는다 치자. 여러분들도 한번 자문해보자. 답변은 아마도 옹색할 것이다. 누군가의 답은, '한민족은 태양의 후손이요, 태양의 기상을 타고 났소'가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파라오의 후손인 이집트사람들과 우리는 배다른 형제가 되는 것인가? 그나마 말이 되는 답은 '새해의 첫날이니까'가 될 것이다. 우리는 새해가 되었으니 해맞이를 하러가는 것이다. 자, 그렇다면 또 묻겠다. 왜 새해의 첫날에 해맞이를 해야하는가? 이 질문에는 답이 없다. 답이 있을 수가 없다.

우리가 하는 많은, 거의 모든 행동에는 사실 이유가 없다. 그것이 포유류 영장목에 속하는 호모 사피엔스의 본능에 따르는 것이든, 아니면 집단의 전통과 문화에 의해 무의식에 저장된 채로 행하는 의식이든, 사실은 내가 하는 것이 내가 하는 것이 아니며, 내가 하는 생각이 사실은 내가 하는 생각이 아닌 것이다.

호주를 후진국이라 생각하는 나의 어머니는 호주에 와서 딱 하나 하고 싶은게 있으셨다. 그것은 해돋이를 보러가는 것. 나는 늦잠꾸러기라 한번도 해돋이를 보여드린 적이 없다. 나의 아이들은 1월 1일에 해돋이를 보러 갈 것인가? 한국에서 자라면 그리 될 것이고, 한국이 아닌 곳에서 살면 그리 되지 않을 것이다. 내가 하는 말과 생각과 행위가 사실은 내가 하는 게 아니라는 것. 이것이 붓다의 연기법이고, 제법에 무아가 아닐까. 깨달음이 있다면 이것이 깨달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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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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