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쌍의 도

소선재에서 2012. 3. 6. 18:56

나는 서태지의 음악을 좋아하지 않는다. 취향이다. 서태지의 등장이후로 한국의 음악계는 판이 완전히 뒤바뀌어 버렸다. 나에게는 극히 유감스러운 사태였다. 서태지의 등장 이후로 나는 한국의 주류 대중음악에 전혀 호감을 가질 수가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인디쪽에 락밴드 몇이 있었으나 그들의 음악은 찾기도 쉽지 않고 또 쉽게 접하기도 어려웠다.

서태지의 등장 이후에 이십년이 되어서 내게 다가온 '리쌍'의 음악은, 그래서 더욱 반갑고 고마운 일이다. 리쌍의 두 멤버. 길이와 개리는 그 조화가 완벽하다. 길이가 음이라면 개리는 양이다. 텐아시아의 인터뷰에도 나왔듯이 길이는 어두컴컴한 지하실 습기찬 방구석이라면(길이는 지하실에 살았다), 개리는 땡볕에 찌고 추위에 얼음이 어는 옥탑의 단칸방이다(개리는 옥탑방에 살았다). 개리의 랩이 예리한 칼날로 정신을 번쩍 들게 한다면, 길의 목소리는 슬픔으로 분노를 녹여버린다.

길의 세심한 프로듀싱은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다. 그는 버릴 줄을 안다. 몇개의 단순한, 그러나 강력한 선율은 그 강렬함으로 비어있는 공간을 만들어내고 이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의 음악안으로 들어가게 만든다.

또한 리쌍 그들은 자신을 낮추고 자신들을 뒤로 감출줄 안다. 객원으로 참여하는 개성강한 보컬-정인이나 알리의 화려한 보컬-들을 띄어줌으로서 리쌍은 오히려 삼위일체로 부활한다. 대단한 용기이다. 이는 그들이 이 세상을 얼마나 겸손하게 살고 있는지 보여주는 것이다.

고난과 가난의 젊은 날을 거쳐 이제 그들은 아티스트가 되었다. 그들의 미덕은 소외된 자로 살아오면서도 그것을 인정하고 그 긍정의 바탕위에 '무조건 삽질'로 대들었던 것에 있다. 리쌍, 그들의 음악은 세상에 이렇게도 개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정말로 서태지가 뮤지션들을 죽여버린 이후에 내게 처음으로 찾아온 아름다운 뮤지션들이다. 그들의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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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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