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콘의 추억

소선재에서 2007. 11. 28. 18:34



1.

89년이니 거의 20년이 다 되어간다. 같이 재수하던 녀석 둘이 사진으로 전공을 바꿨다. 이유는 단 하나. 공부해서 대학가기보다 사진으로 가기가 훨씬 쉬웠기 때문이다. 둘 다 삼수끝에 하나는 중앙대 사진학과를 가고 하나는 신구전문대 사진학과를 갔다. 나는, 돈이 없어서 전공을 바꾸지 못했다. 대신 그 둘을 따라 다녔다. 그리고 알아버렸다. '사진'이라는 또 하나의 세계를.

사진은 돈이 많이 드는 놀이이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디카'라는 것이 없었던 시절. 사진하는 사람들은 '매거진'에 필름을 담고, '확대기'를 갖다놓은 '암실'에서 '밀착'으로 사진을 뽑는 그런 때였다. 일반인들은 필름을 사서 찍고 현상인화를 맡겨야 했었다. 모두 돈이 드는 일이다. 나는 함부로 셔터를 누를 수가 없었다.

사실 내 카메라도 없었다. 집에 있던 펜탁스카메라, 아사히 펜탁스의 기술제휴로 만들어진 50미리 표준렌즈가 달린 그 카메라가 가끔 내 장난감이 되어주었다. 어쩌다 흑백필름 한통을 사서 친구들을 찍어주곤 했다. 하지만 역시 필름값, 현상인화료는 만만치 않았다.



2.

제대하고 우선 카메라가방을 샀다. 조만간 니콘 F-801을 넣으리라 다짐을 했지만, 결국 책가방으로만 쓰였다. 그때 가격으로 F-801은 50만원이 안 되었던 것 같다(확실치는 않다). 니콘의 F-801은 셔터속도가 8000분의 1초까지 구현이 된다. 4000분의 1초가 그때까지 최고의 셔터속도였다. 물을 뒤집어쓰고 있는 남자를 8000분의 1초로 찍은 모습이 Nikon F-801 의 광고사진이었다. 그 광고사진을 오랫동안 가지고 다녔었다.

민한이 졸업식날 민한이 누나가 F-801을 들고왔다. 나는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35-70렌즈가 달려있었다. 반셔터를 누르면 렌즈가 오토 포커싱을 위해 앞뒤로 왔다갔다한다. 경이로웠다. 만져보자고 하고 싶었지만, 끝내 참았다. 속쓰린 날이었다.



나의 속을 쓰리게 만들었던 F-801. 니콘은 그래서 갖고 싶기도, 또 안 갖고 싶기도 하다.




3.

어쩌다 보니 집에 Nikon-FM2가 있었다. 아버지의 작품이다. 직장의 비품으로 카메라를 사는데, 모든 직원들의 요구-즉, 자동카메라, 필름도 자동으로 감기는 자동카메라를 사자는 요구-를 물리치고, 손으로 렌즈를 돌려 초점을 맞추는 니콘의 FM2를 산 것이다. 그러니 다른 직원들은 그 카메라를 사용하지 못하고, 아버지의 전유물이 된 그 카메라는 잠도 우리집에서 자게 된 것이다. 그리고 내 눈에 띈 것이다.

그 이후로 FM2는 몇 년간 나의 카메라가 되었다. 사진을 찍을때는 FM2를 들고 나갔다. 나는 그 카메라가 싫었다. 몸통도 구식이다. F-801의 세련된 느낌도 없고, 좀 오래된 거라 그런지, 뷰파인더도 선명하지 않았다. 그리고 니콘렌즈가 그런지 몰라도, 색감이 선명하질 않았다. 무엇보다 50미리 표준렌즈는 확실히 제한적이었다. 그렇다고 없는 돈에 렌즈를 더 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좋건 싫건, 선택의 여지 없이 내 카메라는 Nikon FM2였다.


완전 타의로 내 카메라가 되었던 Nikon FM2.  2년전 집에 도둑이 들어서 이 FM2 카메라를 가져갔다. 이 망할 도둑놈아, 벼룩의 간을 빼먹어라.




4.

카메라는 무기다. 생긴 것도 꼭 총같기도 하거니와, 그 자체가 하나의 '힘'이다. 대학때 수많은 시위현장에서 가장 쎄 보이는 사람들은 최루탄도 화염병도 아니고 '사다리'와 '카메라'였다(기자들은 작은 사다리를 들고 다닌다). 그들은 시위현장에 있으면서도 또한 시위현장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폼도 잡고 싶었다. 길다란 망원렌즈가 달린 카메라도 갖고 싶었다. 대학4학년때 도라산전망대에 갈 일이 있었다. 좀 폼을 잡고 싶었던 나는 꾀를 냈다. 현상소주인에게 말했다.

'이 카메라 하루만 빌리면 안 될까요?' 

그래서, 나는 책가방으로 쓰던 카메라가방에 FM2와 망원렌즈가 달린 카메라(아마 캐논이었던 것 같은데)를 넣고, 자랑스럽게 도라산전망대가는 버스에 올랐다. 그 날 나는 일행으로부터 '사진사였냐?'는 말을 몇 번 들었다. 다 그 길다란 망원렌즈덕분이었다.


5.

디지털 카메라가 나왔을 때, 저건 분명 나를 위한 카메라라고 생각했다. 이젠 더 이상 필름값, 현상인화료 걱정없이 셔터를 누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너무 늦게 나왔다. 기다림에 지쳐 나는 망부석이 되어버렸다. 카메라에 대한 열망은 디카가 나오기전에 이미 화석이 되어버린 상태였다. 카메라를 가지기에는 나는 너무나도 오랫동안 카메라를 가지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동생이 내 생일 선물로 캐논 파워샷 G5를 보내왔을때도, 나는 그다지 반갑지 않았다. 그리고, 나의 아내가 캐논 익서스 똑딱이를 샀을때도, 그 카메라는 나의 카메라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내가 무슨 핫셀 블러드를, 아니면 니콘 F4나, 캐논 1D를 원한 것도 아니다. 백만원은 커녕 오십만원짜리. 내겐 단지 나의 카메라가 필요했던 것이다.


6.

우울하다. 일은  힘들다. 파타임잡이라고 하지만, 일을 하면 우울해진다. 힘든 몸은 자괴감을 낳는다. 지금 무얼 하는 건가? 이럴려고 여길 왔나? 단지 몸뿐만이 아니라 의욕까지 상실이다. 기말고사가 내일 모레지만 될대로 되라지. 하릴없이 인터넷을 보는데, 한겨례의 SLR 디지털 카메라 기사가 났다. 니콘과 캐논의 DSLR을 비교한 기사였다.

오래된 화석이 다시 살아나는 기분이다. 그래, 나도 카메라같은 카메라를 갖고 싶다 말이다. 2백만원 오백만원짜리는 아니더라도, 그냥 백만원정도만, 그냥 바디 렌즈만 있으면 되겠다 말이다. 내가 뭐 거창한 거 바라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나의 사진에 대한 욕심, 내가 누른 셔터수, 그리고 그 셔터 수에 대한 고민은, 요새 젊은 애들이 아무렇게나 질러버리는 DSLR하고는 그 차원이 다르단 말이다. 누가 뭐래도 나는 카메라를 가질 자격이 있단 말이다.


7.

몇달전 시티의 하이드파크에 갔는데, 여자애 둘이 - 한 스물 두셋쯤 되었으려나?- 목에 SLR 카메라를 걸고 지나갔더랬다. 한국애임을 직감했다. 저렇게 나이도 어린 애들이 저렇게 큰 SLR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애들은 한국애들뿐이다. 몰라서 그렇지, 한국 사람들이 너도 나도 핸드폰을 들이대는 광경은 진풍경이다.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는 게 일상적인 나라는 거의 한국뿐이다. 이렇게 개나 소나 SLR - 싱글 렌즈 리플렉스, 일안 반사라는 말이다 -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나라도 역시 한국뿐이다.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다. 한국은 어디 갈 곳도 없고, 할 거리도 없으니, 싸이질을 하려면 이런 것으로라도 가지고 놀아야 한다.

하지만, 걔네들이 알까? 한번의 셔터에 대한 고민을. 아무렇게나 연사로 찍어도 되고, 맘에 안 들면 바로 삭제해버려도 되는 그런 디지털 카메라로. 전문가라도 다르진 않을 것 같다. 얼마전에 애기 돌 사진을 찍으러 갔는데, 그 찍사녀석은 Eos 카메라로 한 시간 동안 기관총 갈기듯이 찍어댔다. 사진은? 단 하나도 건질 게 없었다. 생각이 없이 갈겨댄다고 좋은 사진이 나오겠나?


8.

한겨레의 디카 기사는 잠자는 내 욕심에 다시 불을 질러 놓았다. 그러나 뭐하랴? 그 불은 더 이상 번지지 못하고 수 초만에 꺼져버렸다. 나는 카메라를 가질 수도 없고, 설사 있어도 찍으러 갈 수도 없는 사내이다. 마치 불능의 사내처럼. 그러니, 한겨레의 DSLR기사는 오히려 나의 우울을 악화시킨 셈이다. 과연 내가 카메라를 가질 수 있는 그 날은 언제일까?

니콘 D80 이다. 내가 뭐 전문가도 아니고, 이 정도면 충분하다. 더 커봤자 무겁기만 하고. D80은 현재 바디만 80만원정도 하나보다. 셔터속도는 4000분의 1초다. 8000분의 1초는 사실 별로 필요없다. 그럼에도 이름이 80인건, 아마 F-801의 후속시리즈이기때문일까?
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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