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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레드 기획] 높고 추운 곳에만 있는 영혼을 위로하는 풍경…
단단하게 준비한 '모험' 길에 서서 '완벽한 기쁨'을 얻으리라

콧속으로 들어오는 얼어붙은 대기가 가슴속까지 헹궈버릴 듯 청량한 날. 쌓인 눈으로 길이 지워진 능선에 첫 발자국을 찍어 새 길을 내며 걸었다. 귓전을 스치는 바람 소리와 발자국 소리만이 적막한 산길에 메아리를 만들었다.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 한 걸음 한 걸음 발디딤에 집중할수록 목탁 소리처럼 청아하게 울려퍼지는 뽀드득 뽀드득 눈 밟는 소리, 나는 고행의 수도자처럼 앞으로 나아갔다. 호젓한 겨울산에는 이런 몰입의 즐거움이 더 크다. 무아의 경지로 걷다 문득 고개를 들면 눈앞에는 고사목과 앙상한 겨울나무 빈 가지에 눈부시게 피어 있는 상고대, 저 멀리 차고 투명한 대기 속으로 파도처럼 넘실대는 산줄기의 물결. 일상의 저잣거리에서 지친 영혼을 위로하고도 남는, 높고 추운 곳에서만 만날 수 있는 풍경들. 그래서 산은 겨울산이다. 

목탁 소리 같은 '뽀드득' 소리

장터목산장 따뜻한 침상에서 단잠의 유혹을 뿌리치고 서둘러 어둠 속으로 걸어나간 새벽이었다. 장터목에서 묵은 사람들은 삼대가 적선을 해야 겨우 만날 수 있다는 천왕봉 일출을 보기 위해 새벽길을 나서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나는 전날 백무동에서 출발해 이미 천왕봉을 다녀왔고, 지리산 정상 일출은 여러 번 보았으니 음덕이라면 분에 넘치도록 받은 터였다. 그보다 요즘 지리산은 겨울에도 사람이 많아 호젓하게 걸으려면 잠을 줄이는 수밖에 없었다. 그 멀고 높은 산에서까지 줄지어 걸어가야 한다는 것은 너무 서글프지 않은가. 새벽하늘에서 쏟아져내리는 별빛은 고드름처럼 차가웠다. 별빛에 머리를 두들겨맞으며 걷고 또 걸었다. 연하봉에서 삼신봉을 지나 촛대봉에 다다를 무렵 등 뒤로 천왕봉을 넘어온 해가 산을 붉게 물들였다. 별들이 하나둘 하늘빛에 녹아들 즈음 세석에 도착해 여유 있게 커피를 마셨다.

세석산장에서는 집에 두고 온 딸들에게 엽서를 써 부치기도 했다. 처음 장터목산장에 있던 '하늘 아래 첫 우체통'이라 부르던 빨간 우편함이 이제는 대피소마다 생겨난 것도 반가웠다. 미색 관제엽서에 엄마가 지나온 길을, 산장 처마에 매달린 고드름 녹아내린 물을 손가락 끝에 발라 수묵화처럼 잉크가 번지게 해서 그림으로 그렸다. 겨울 지리산에서 누린 행복을 그렇게라도 산 아래 따뜻한 방구석에 웅크리고 있을 딸들에게 오롯이 전해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게 꿈결 같은 산행을 마치고 백무동으로 내려왔을 때다. 다리에 힘이 풀린 채 터벅터벅 걸어 들어간 하산길 식당에서, 딸애 또래 아이 둘을 데리고 산에 오를 채비를 하는 가족을 만났다. 어른은 등산화라도 갖춰 신었지만 아이들은 운동화 차림이었다. 내 발이 다 꽁꽁 얼어버릴 것처럼 마음이 시렸다.

산악잡지 기자로 일하던 시절, 신발 때문에 고생한 경험이 떠올랐다. 60ℓ 배낭의 헤드가 뒤통수 위로 솟아오를 정도로 등짐을 꾸려 출근하던 날, 며칠 자리를 비우게 될 사무실 책상을 정돈하고 일어서려는데 뭔가 허전했다. 방풍재킷 위에 묵직한 배낭을 덧옷 걸치듯 메고서 허리와 가슴께 버클을 단단히 조이면, 등 뒤에서 누군가 듬직하게 안아주는 듯 편안하다. 나는 겨울산으로 가는 큰 배낭을 멜 때 그 느낌이 좋았다. 그런데 무거운 등짐과 달리 발이 너무 가벼웠다. '비브람' 창을 댄 중등산화를 신고 있어야 마땅한데, 아뿔싸! 구두를 신은 채 출근한 것이었다. 경기도 광주에 있던 집에서 서울까지, 긴 시간 내내 버스와 지하철 안에서 그 큰 배낭을 메고 뭇사람들의 부러운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우스꽝스럽게 부조화한 차림 때문이었다. 대중교통을 타기 전에 갈아 신으려고 운전석 옆에 챙겨둔 중등산화를 깜박 잊고 온 것이다. 하는 수 없이 사무실에 있는 후배가 신고 있던 경등산화를 빌려 신고 산으로 가야 했다.

그때 눈 덮인 산길을 오르내리면서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른다. 발등까지 덮는 고어텍스 게이터가 있었지만 천으로 된 등산화를 뚫고 들어오는 냉기와 눈 녹은 물을 다 막아내지는 못했다. 폭설을 뚫고서 어둠에 갇힌 대피소에 도착해 신발을 벗고 마룻바닥에 젖은 양말로 발도장을 찍으면서 내 건망증을 얼마나 자책했던지. 눈비에도 끄떡없는 중등산화 속에서 나온 남들의 보송보송한 양말들이 얼마나 부럽던지. 인생도 그러하지만 등산은 이런 실수의 경험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운다. 하지만 산에서는 작은 실수도 자칫 큰 위험을 부를 수 있다.

답례는 뒤나 옆으로 해도 된다

나는 아이젠을 준비하는 그 가족에게 산에 눈이 많다고 일러주었다. 그런데 그들에겐 바짓가랑이와 신발 사이를 보호해줄 게이터도 없는 모양이었다. 비닐로라도 신발을 감싸겠다며 검정 비닐봉지를 여러 장 배낭에 챙겨넣고 있었다. 나는 눈 녹은 물이 묻은 게이터를 벗어 탈탈 털어서 망설임 없이 아이에게 주었다. 어차피 산을 내려가면 새 게이터를 살 작정이었다. 내가 산에서 곤경에 처했을 때 대가 없이 도와주던 선배들에게 조금이나마 빚을 갚는 기분이었다. "답례는 꼭 앞으로 하지 않고 뒤나 옆으로 해도 된다"고 했던 무위당 장일순 선생님 말씀처럼 말이다.

겨울산에서 그 가족이 겪게 될 고난과 위험은 분명 아이에게도 큰 공부가 될 것이다. 하지만 공부시키자고 어린아이들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은 어리석다. 신발이 눈에 젖는 것 말고도 무모하다시피 용감한 그들 앞에 닥쳐올 고통이 빤히 내다보였다. 두툼한 우모복을 입은 아이 옷차림도 마음에 걸렸다. 겨울산에서 우모복을 입은 채 땀을 뻘뻘 흘리며 걷는 초보자를 종종 만난다. 대개 '추우면 껴입는다'는 생각만 할 뿐인데, 산에서는 곤란하다. 오버트라우저나 우모복은 배낭 위쪽 꺼내기 쉬운 곳에 넣어두고 걸을 때는 최대한 가벼운 복장으로 움직여야 한다. 등산을 하는 동안 우리 몸은 자가발전기처럼 열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걷다가 쉬는 동안에는 땀이 식으면서 체온을 빼앗기지 않게 보온의류를 꺼내 입고 열량을 보충할 간식을 챙겨먹어야 한다. 또 반드시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목표한 산장이나 하산 지점에 도착해야 하는데, 그들은 이미 해가 중천을 지나갔는데 산에 들어가려 하고 있었다(상자 기사 참조).

그럼에도 모험에 나선 가족은 보기 좋았다. 사춘기 아이들이 선뜻 부모를 따라 힘든 길을 나선 것만으로도 대견했다. 내가 홀리듯 걸어왔던 산길이 그들에게 얼마나 큰 기쁨이 될까. 산장에서 호호 불며 라면을 먹을 아이의 발그레한 얼굴은 또 얼마나 사랑스러울까. 하지만 한겨울에도 실내에서 반팔 차림으로 지내면서 비닐하우스에서 석유로 길러내는 철 모르는 채소와 과일을 배불리 먹으며 자랐을 요즘 아이들에게 겨울산은 엄혹할 것이다. 

스스로 날씨를 만들어내는 겨울산

"등산에서는 분명 위험과 곤경에 처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이것 때문에 그 어떤 곳에서도 찾을 수 없는 마음의 평온과 정신적 교감을 얻을 것이다." 등산가들의 바이블이라 부르는 < 마운티니어링 > 제1장, 등산의 첫걸음은 이렇게 시작한다. 사실 해발 2천m도 안 되는 우리나라 산에서 만나는 '위험과 곤경'이 뭐 그리 치명적일 게 있단 말인가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모험'을 추구하는 등산의 무대로 우리 산들은 아쉬운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겨울산'에서는 이야기가 다르다. 높은 산은 '스스로' 날씨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1969년 설악산에서 '하늘의 한구석이 뚫어져 내리는 듯한 폭설'로 산악인 10명의 목숨을 앗아간 죽음의 계곡 눈사태나 1971년 11월 초겨울과 1983년 4월 꽃샘추위 속 북한산 인수봉에서 로프에 매달린 채로 각각 7명씩 얼어 죽은 사고는 우리나라 산에도 얼마나 치명적인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를 깨우쳐준다. 인수봉은 고작 해발 810.5m다. 그런데 이런 사고는 모험을 즐기는 전문 산악인들 세계에서만 일어나는 일일까. 등산이 대중화되면서 오히려 사소한 부주의로 목숨을 잃는 초보적인 조난 사례가 늘고 있다. 나는 평소 자기 집처럼 드나들던 도봉산에서 갑작스레 쏟아진 눈보라에 방향감각을 잃고 링반데룽(환상방황)으로 사경을 헤맨 친구도 보았고, 겨울 한라산에서 만난 윗세오름 휴게소 관리인이 눈보라 치는 밤에 화장실에 갔다가 코앞에 있는 숙소를 찾지 못해 결국 그 자리에 주저앉아 밤을 새웠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는 히말라야 8천m 고봉을 오르내린 전문 산악인이었는데도 그랬다.

휴대전화 속까지 들어온 첨단위성항법장치가 '지도의 공백지대'를 하나둘 지우고 있는 세상이다. 하지만 겨울산의 변화무쌍한 날씨는 예사로운 장소도 순식간에 미지의 처녀지로 만들어버린다. 모든 것을 실시간으로 검색하고 정확하게 미래를 예측할 수 있을 것 같은 '스마트'082한 세상, 그러나 우리가 산을 찾아가는 이유는 그런 일상과 다른 무엇을 기대하기 때문 아닐까. 많은 등산가들은 그것을 '불확실성'이라고 말한다. 겨울산으로 가는 배낭이 크고 묵직해지는 것도 바로 '불확실성'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우리 국립공원 대피소들은 지금 과잉된 편의를 제공하는 것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그때 지리산 대피소에서는 온풍기를 틀고 모포를 빌려주고 햇반과 라면과 간식거리까지 팔고 있었다. 이 때문에 침낭도 없이 무턱대고 산을 올라오는 이가 많았다. 그래서일까, 예전과 비교하면 산장에 쌓이는 쓰레기도 너무 많았다. 아무리 대피소에서 화석에너지를 덜 쓰는 친환경에너지로 난방을 한다고 해도, 에너지를 많이 써서 실내온도를 높이는 것은 산을 산답게 지키는 일과 거리가 멀다. 걱정스러운 점은, 이런 과잉 서비스가 사람들로 하여금 산을 얕보게 하고 준비 없이 산에 오르게끔 부추겨 오히려 위험을 가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과잉 서비스가 산을 얕보게 하진 않을까

사람들이 묵묵히 산을 향해 올라가는 것은 저마다 이유가 있다. 하지만 높고 골이 깊은 겨울산으로 가는 일은 누구에게나 극적인 모험의 출발일 것이다. 영국 등산가 조지 맬러리는 "모험의 대가는 완벽한 기쁨"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준비가 철저해야 한다. 아무리 강조해도 과하지 않다.

글·사진 김선미 < 살림의 밥상 > 저자·전 < 마운틴 > 기자

겨울산에서 기억해야 할 것

발이 시리면 모자를 써라

산에서 고도 100m를 올라갈 때마다 대략 기온이 1℃씩 떨어진다. 하지만 이것은 평균적인 수치일 뿐, 만일 산에서 땀이나 물에 젖은 옷을 입은 채로 강한 바람을 맞으면 평소보다 240배나 빠른 속도로 체온을 빼앗기게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때 노련한 등산가들은 "발이 시리면 모자부터 써라"고 충고한다. 머리로 빼앗기는 체열이 전체의 절반이나 된다. 또 지치기 전에 먹어 열량을 보충하라. 겨울 배낭 속에는 산중 노숙을 하고도 살아남을 만큼 철저한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따뜻한 산장에 있는 모포만 믿고 무턱대고 올라갔다가 길을 잃고 날이 어두워진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비상시에는 큰 배낭 속에 하반신이라도 집어넣고 웅크린 채 밤을 새울 각오와 대비가 필요하다. 그런데 초보자들은 정작 생명을 지켜줄 안전장비는 허술하고 무거운 먹을거리만 바리바리 싸들고 올라가다 제풀에 지쳐 정작 먹기도 전에 탈진한다. 그러므로 간식과 물은 꺼내기 쉬운 곳에 두고, 반드시 지치기 전에 보충한다.

겨울의 진경3

감질나는 햇살… 나는 참 많이 가졌구나

애끓는 사랑, 상고대 핀 덕유산길

겨울나무를 뒤흔든 세찬 골바람이 서릿발 그대로 얼어붙게 해 나뭇가지에 눈꽃을 피운 것이 상고대다. 삿갓재대피소에서 하룻밤을 묵고 남덕유산으로 가는 길, 해가 높이 떠오르기 전 아침 나절 잠깐 만날 수 있던 풍경. 하늘은 파랗고 얼음과 눈으로 꽃이 피어난 겨울나무는 눈부시다. 눈꽃터널이 이어지는 서쪽 비탈길과 해가 드는 동쪽 길을 넘나들며 걷는 이 길은 봄과 겨울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 것 같다.

겨우겨우 겨울나기, 오대산 염불암의 너와집

오대산은 동서남북과 중앙의 오방위 높은 자리에 모두 부처를 모시고 있다. 전나무 숲길로 유명한 오대산 들머리의 월정사는 그 다섯 암자에 끼지 못한다. 홀로 푸르러 더욱 고독한 겨울 전나무 숲 그늘 아래 고요히 걸어 들어가고도 헛헛하면, 우퉁수를 끼고 있는 서대 염불암에 올라볼 일이다. 너와집 암자 뒤꼍 가득 쌓아올린 장작더미로 겨우겨우 겨울을 나는 소박한 절집이다. 툇마루에 앉아 감질나는 겨울 햇살을 쬐고 있으면 '나는 참 많이 가졌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드는 곳이다.

검은 화구벽 덮은 흰 눈, 한라산

한라산 백록담을 둘러싼 화구벽은 검다. 검은 현무암이 흰 눈에 덮여 있고 배경인 하늘은 시리도록 파랗다. 사방이 온통 흰빛뿐인 한라산의 설원을 눈이 어질어질할 정도로 걷다가 산을 내려갈 때면, 발아래 솟아 있는 한라산의 어린 자식 오름들이 올망졸망 펼쳐진다. 요즘 대유행인 올레길 어디에서나 고개만 들면 흰 눈으로 모자를 쓰고 있는 한라산이 보인다. 제주에 여러 번 가봤어도 아직 그 산에 오르지 못했다면 이제는 도전! 한라산과 제주도는 한 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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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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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한국시 왜 이렇게 되었는가

/ 임보(林步)


한국시단의 오늘을 시의 전성기로 보는 사람들도 있는 모양이다. 시인의 수효가 만 명을 헤아리는 데에 이르렀고, 수많은 시집과 시지(詩誌), 그리고 시동인지 들이 매일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으니 그렇게 평가할 만도 할지 모른다. 그러나 시인다운 시인이 얼마나 되고, 시다운 시들이 얼마나 생산되고 있는가를 살펴본다면 긍정적으로만 평가하기는 어렵다.
부끄러운 고백을 하자면 나는 요즈음 별로 시를 읽지 않는다. 게을러서라기보다는 시를 읽는 것이 즐겁지 않아서이다. 아니 즐겁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시를 읽는 일이 오히려 고통스럽고 짜증이 난다. 시가 설령 재미있다손 치더라도, 거의 매일 우송되어 온 적지 않은 시집이나 잡지들을 섭렵한다는 것은 여간한 인내와 노력이 요구되는 일이 아니다. 하물며 재미없는 경우라면 그 작품들을 위해서 소중한 시간을 할애할 마음이 선뜻 생기겠는가. 나는 처음 몇 줄 읽어서 재미가 없으면 읽지 않고 넘어간다. 난해하거나 답답한 것도 외면한다. 그러니 평소 내가 관심을 갖고 있는 소수의 시인들 위주로 작품을 골라 읽게 마련이다.
오늘의 시라는 글이 어떻게 해서 이렇게 난삽하고 골치 아픈 글이 되었는가? 무엇이 시를 이 지경으로 끌어왔는가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첫째, 자유시에 대한 그릇된 인식이 문제인 것 같다.

근대적 이념으로 흔히 내세운 것 중의 하나가 ‘자유’다. 근세에 이르면서 시의 세계에도 자유의 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원래 시는 통제된 글이다. 특히 정형시는 형식적인 틀을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율격과 압운 등의 규제를 받는다. 주지하다시피 정형시가 지닌 고정적인 틀로부터 벗어나고자 해서 생겨난 것이 자유시다. 얼핏 생각하면 자유시야말로 아무런 형식적 통제도 받지 않은 자유분방한 글처럼 생각될지 모른다. 그러나 자유시가 통제된 글이 아니라는 생각은 크게 잘못된 인식이다. 자유시는 정형시가 지닌 정해진 틀로부터 자유로울 뿐이지 형식의 통제로부터 벗어난 글은 아니다. 자유시는 그 내용에 가장 합당한 새로운 형식을 작품마다 창조해내는 시라고 할 수 있다. 자유시가 쓰기 쉬운 시라고 생각하면 이는 큰 오산이다. 작품마다에 가장 이상적인 형식을 창안해 내는 일이 어찌 쉬운 일이겠는가. 만일 어떤 시인이 자유시를 멋대로 써도 좋은 글이라고 착각하고 썼다면 이는 이미 시가 아니라 방종의 글에 불과할 것이다. ‘자유’에 ‘책임’이 따르듯 시인은 자신이 생산한 시에 대하여 준엄한 책임을 져야 한다.
시가 통제된 글이라는 것은 자유시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시어의 선택, 행과 연의 배치 그리고 운율의 설정에 이르기까지 자유시도 최선의 형식에 담기 위해서는 피나는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작품 속에 쏟아 붓는 시인의 정성이 곧 독자들의 가슴속에 감동으로 되살아난다. 쉽게 쓰여진 시가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경우는 황소가 바늘귀를 뚫고 들어가는 일보다 흔치 않을 것이다.

둘째, 분별력 없는 아류들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나는 우리 시단을 이렇게 만든 데 기여한 두 사람의 선배 시인을 지적하라면 김수영과 김춘수를 꼽는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공히 전통적인 시법에 반기를 든 분들이다.
김수영의 작업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자면 우리시의 폭을 넓혔다고 할 수 있다. 시어와 시의 소재들을 개방하여 시의 영토를 확장했다. 속어와 비어(卑語), 외래어 할 것 없이 끌어다 썼고, 일상 속에서 그가 만난 사소한 체험들도 싯거리로 삼았다. 그는 대상과 표현에 구애받지 않고 제멋대로 썼다. 좋게 말하면 무애(無礙)한 자유인이었고, 나쁘게 말하면 건방진 안하무인(眼下無人)이었다. 그는 의도적으로 시의 위의(威儀)를 떨어뜨렸다고 할 수 있다. 원래 시는 귀족문학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런 시의 위상을 서민문학으로 끌어내린 것이다.
김춘수 시의 의의는 소위 ‘무의미의 시’라는 데에 있다. 무의미 시의 특징은 한마디로 현실의 재현이 아니라 비현실의 세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구상(具象)의 세계를 거부한 비구상화가들의 발상과 궤를 같이 한 것이라 보아도 무방하다. 그는 의도적으로 현실적 정황을 파괴하여 낯설게 만든다. 거기에는 어떠한 지상적 논리와 질서도 배제된다. 말하자면 절대무비의 세계를 창조해내는 것이다. 존재하지 않은 세계를 만들어냈다는 데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김춘수 역시 ‘무의미의 시’로 한국시의 영역을 넓히는데 기여했다고 긍정적인 평가를 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김수영과 김춘수의 작품들이 전통적인 시와는 달리 낯설었기 때문에 몇 비평가들과 잡지들의 주목의 대상이 되었던 것인데, 분별력이 흐린 시인들이 이들의 작품을 마치 시의 전범으로 받아들여 그들의 아류가 된 것이다. 그래서 시를 제멋대로 쓰는 것이 마치 멋인 줄 착각하고, 논리를 무시한 괴기스런 표현이 수준 높은 작품인 것처럼 잘못 인식하는 풍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어떤 사람이 이상한 악기를 하나 만들어냈다고 가정하자. 새로운 그 악기는 물론 음악을 다채롭게 하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악기가 모든 음악을 연주하는데 최상의 악기라고 잘못 판단하고 이를 고집하는 무리들이 횡행한다면 이는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시의 경우도 이와 같아서 하나의 새로운 유형의 출현은 그 가치가 인정되지만 그것을 마치 시의 전범인 것처럼 여기고 이를 모방하는 것은 개인이나 문단의 불행이 아닐 수 없다. 효빈(效顰)이라는 말이 있다. 월(越)나라의 미인 서시(西施)가 얼굴 찡그리는 것을 보고 한 추녀(醜女)가 이를 부러워한 나머지 흉내내다 웃음거리가 되었다는 고사인데 이와 다를 바 없다.

누가 뭐라고 해도 시는 정련된 언어예술이어야 하며, 정결한 시정신을 담고 있는 것을 이상으로 삼는다. 시를 하찮은 말장난쯤으로 생각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어떻게 색다른 시를 만들어 주목의 대상이 될 것인가 보다는, 어떻게 감동적인 시를 낳아 긴 생명을 갖게 할 것인가 하는 데로 시단의 관심이 되돌아왔으면 싶다.
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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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술에 대해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침술은 전적으로 동양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서양적인 마음을 가지고 동양의 학문에 접근한다면 많은 것을 놓치게 된다. 접근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대의 모든 접근 방식은 방법론적이고 논리적이며 분석적이다. 그러나 동양의 학문은 과학이라기보다는 예술에 가깝다. 그러므로 모든 것은 그대의 에너지를 지력(知力)보다는 직관(直觀)에 쏟을 수 있는지, 그대가 남성에서 여성으로 변화할 수 있는지, 양에서 음으로 변화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다시 말해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접근 방식에서 수동적인 접근 방식으로 변화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그대는 수동적이고 수용적이 될 수 있는가? 오직 그 때에만 침술을 배우는 것이 가능해진다. 그렇지 않다면 침술에 관한 모든 것을 배울 수는 있지만 그것은 전혀 침술이 아닐 것이다. 그대는 침술에 관한 모든 것을 알 수 있지만 침술 자체는 모를 것이다. 가끔은 침술에 관해서 많이 알지 못하는 사람이 침술을 알기도 한다. 그러나 이때의 침술은 요령이다. 단지 침술에 대한 통찰인 것이다.

동양의 여러 학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서양은 동양의 학문에 관심을 갖는다. 동양의 학문은 심오하기 때문이다. 서양은 동양의 학문에 관심을 갖지만 서양의 마음을 가지고 동양의 학문을 이해하려고 한다. 서양의 마음이 들어오는 순간, 동양의 학문은 기초부터 파괴된다. 그때 단편들만 남게 되며 이런 단편들은 결코 작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침술이 작용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침술은 작용한다. 그러나 오직 동양적인 접근 방식을 지닐 때에만 작용한다.

그러므로 그대가 정말로 침술을 배우고 싶다면 침술에 대해 아는 것은 좋지만 그것이 본질적인 것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라. 가능한 모든 것을 배우라. 그리고 나서 배운 것을 모두 잊고 어둠 속을 더듬어 나아가라. 그대 자신의 무의식에 귀를 기울이라. 그리고 환자와 일체감을 느끼기 시작하라. 그것은 다르다…….

환자가 양의(洋醫)를 방문하면 의사는 추리하고 진단하고 분석하며, 질병이 어디에 있는지, 질병이 무엇인지, 어떻게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지 알아내려고 한다. 그는 마음의 한쪽 부분, 즉 이성적인 부분을 이용한다. 그는 질병을 공격하며, 질병을 정복하기 시작한다. 이제 의사와 질병 사이에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환자는 게임에서 벗어나 있다. 의사는 환자에 대해서 신경쓰지 않는다. 그는 질병과 싸우기 시작하며, 환자는 완전히 무시된다.

그러나 침술사를 찾아가면 질병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환자가 중요해진다. 질병을 만든 것은 환자이기 때문이다. 질병의 원인은 환자에게 있으며, 질병은 단지 증상일 뿐이다. 그대는 증상을 바꿀 수 있으며, 그러면 새로운 증상이 계속 나타날 것이다. 그대는 한 가지 질병을 약으로 제압해서 질병이 생기는 것을 막을 수 있으나 그 질병은 다른 곳에서 좀더 위험하고 좀더 심하게 나타날 것이다. 나중에 생긴 질병은 처음 것보다 치료하기가 더 어려울 것이다. 그대가 두 번째 질병도 약으로 제압한다면 세 번째 질병은 치료하기가 훨씬 더 어려워질 것이다.

역증요법은 이렇게 해서 암을 만들었다. 의사는 계속해서 질병을 한쪽으로 밀어 놓는다. 그때 질병은 다른 쪽에서 나타난다. 그러면 의사는 또 다른 쪽으로 질병을 밀어 놓는다. 이제 질병은 극도로 화를 내기 시작한다. 그러나 의사는 환자를 변화시키지 않는다. 환자는 그대로 남아 있다. 원인이 남아 있으므로 계속해서 결과가 생기는 것이다.

침술은 원인을 다룬다. 결코 결과를 다루지 말라. 항상 원인을 다루라. 어떻게 하면 원인에 다가갈 수 있는가? 이성(理性)은 원인에 다가갈 수 없다. 이성은 그저 결과를 다룰 수 있을 뿐이다. 원인은 이성에 비해 훨씬 크기 때문이다. 오직 명상만이 원인에 다가갈 수 있다. 그래서 침술사는 먼저 환자를 느껴 본다. 그는 자신의 지식을 모두 잊고 단지 환자와 같은 느낌이 되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는 환자와 일체감을 느낄 것이며, 자신과 환자 사이에 다리가 놓였음을 느낄 것이다. 그는 환자의 질병을 자신의 몸 속에서, 자신의 에너지 체계 속에서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이 질병의 원인이 무엇인지 직관적으로 느낄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왜냐하면 원인은 숨어 있기 때문이다. 그는 거울이 되며 자신 속에서 그 반영(反影)을 찾아낸다.

이것이 침술의 모든 과정이다. 침술은 가르쳐지지 않는다. 가르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침술은 몰수해 볼만한 가치가 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제안한다. 먼저 서양에서 2년 동안 침술에 대해 배우라. 그리고 극동의 나라로 가서 최소한 6개월 동안 침술사와 함께 있으라. 그의 현존 속에 있으라. 그가 작업하는 것을 지켜보라. 그의 에너지를 흡수하라. 그러면 그대는 무엇인가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지 않고는 힘들 것이다.

서서히 자신의 에너지를 느끼기 시작하거나 몸 속에 있는 에너지의 작용을 느끼기 시작한다면 침술은 기술에 멈루지 않고 도구가 될 것이다. 침술은 통찰이며―그대는 기술을 배울 수 있지만 그것으로부터는 아무 것도 얻지 못할 것이다―예술이라기보다는 직감에 가깝다. 고대의 기술들이 어려운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고대의 기술들은 과학적인 것이 아니다. 과학적인 견해를 가지고 고대의 기술에 접근한다면 약간의 지식은 얻겠지만 많은 부분을 놓치게 될 것이다. 그대가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은 많지 않을 것이고, 그대는 실망할 것이다.

고대의 접근 방식은 완전히 다르다. 그것은 전혀 논리적이지 않다. 그것은 좀더 여성적이고 좀더 직관적이며 비논리적이다. 그것은 과학적인 마음이 생각하듯이 삼단 논법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존재에 깊이 참여하고 있기에 오히려 꿈이나 몽상에 가까우며, 자연으로 하여금 자신의 비밀과 신비를 드러내도록 한다. 그것은 자연을 공격하지 않는다……. 기껏해야 자연을 설득하는 것이다. 그것은 내면으로부터 접근한다.

그대는 가장 깊은 중심에서부터 자신의 육체로 접근해 들어가야 한다. 7백 군데의 포인트는 객관적으로 알려진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깊은 명상 속에서 알려진 것이다. 그대가 내면으로 깊이 들어가서 내면으로부터 모든 것을 바라볼 때, 마치 별들로 가득 찬 밤하늘을 보듯이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침술의 포인트를 볼 수 있다. 이것은 굉장한 경험이다. 포인트를 보았을 때 비로소 그대는 준비가 된 것이다. 이제 그대는 내면을 이해하게 되어, 다른 사람의 몸을 만져 봄으로써 신체의 어느 부위에서 에너지가 빠졌는지, 어디에 에너지가 흐르고 어디에 흐르지 않는지, 어디가 차갑고 어디가 따뜻한지, 어디가 살아 있고 어디가 죽어 있는지를 느낄 수 있게 된다. 포인트 중에는 감응하는 곳이 있는가 하면 전혀 감응하지 않는 곳도 있다.

그대는 자신을 아는 정도에 비례해서 침술을 알게 될 것이다. 자신을 알고 침술을 알게 될 때 거기 위대한 빛이 있을 것이다. 그 빛 속에서 모든 것을 볼 수 있다. 그대는 자신에 대해서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신체에 대해서도 알게 될 것이다. 마치 제3의 눈이 열린 것처럼 새로운 비전이 보일 것이다.


침술은 과학이 아니라 예술이다. 모든 예술은 깊은 내맡김을 요구한다. 침술은 기술자가 조작할 수 있는 다른 기술과는 다르다. 침술은 가슴을 필요호 한다. 그대는 마치 화가가 그림을 그리거나 시인이 시를 쓰거나 음악가가 연주를 할 때 자신을 잊어버리듯이, 그대 자신을 잊어버려야 한다. 침술은 그런 것이다. 기술자도 침술을 시술할 수 있지만, 결코 꼭 필요한 사람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는 결코 그렇게 될 수 없다. 물론 몇몇 사람을 도울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침술은 위대한 예술이며 위대한 기예다. 그대는 침술을 완전히 이해해야 한다. 그 비밀은 내맡기는 것이다. 그대가 침술 속에 자신을 완전히 내맡길 수 있다면, 그대가 자신을 바쳐 침술에 몰두할 수 있다면, 침술 속으로 뛰어들라. 기쁘게 온 힘을 다해 침술 속으로 뛰어 들라.


그대 자신이 되기 시작하라. 그대 자신만의 비법을 발견해야 한다. 침술은 비법이며 예술이다. 그리고 침술에서는, 누군가를 규칙처럼 따라야 할 필요가 없다. 침술에는 아무 규칙이 없다. 단지 통찰이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그대 스스로 시작해 보라……. 처음에는 다소 확신이 서지 않을 것이다. 그대가 제대로 하고 있는지 아닌지 자꾸 걱정이 될 것이다. 그러나 처음에는 그렇게 헤매며 시작하는 것이다. 조만간 그대는 문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일단 문을 찾아나서게 되면 헤매는 일은 점점 줄어들 것이다. 당장 시작해 보라!


다른 사람의 몸을 만지거나 침을 놓을 때 그대는 신을 대하고 있는 것이다. 그대는 매우 공손해야 하며 신중해야 하다. 그대는 지식이 아니라 사랑으로 시술해야 한다. 지식은 결코 적절하지 않으며 충분하지도 않다. 지식으로 사람을 대하면 항상 부족함을 느끼게 된다. 지식은 한계가 있는 데 반해, 상대방은 하나의 온전한 세계이며, 거의 무한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대를 건드리지만 결코 그대를 건드리지 못한다. 그들은 그저 표면을 건드리지만 그대는 사랑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들어올 수 없는 깊은 중심 속에 있다. 인간은 신비이며, 영원히 신비로 남아 있을 것이다. 인간이 신비인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신비가 바로 그의 존재다.

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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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은 허지웅기자라는 사람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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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사람들은 왜 부자를 위해 투표하나

경제적으로 풍요롭지 못한 사람들이 진보정당에 투표하는 일은 언뜻 상식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현실에서 이 같은 상식은 상식이 아니다. 왜 그럴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난하다. 하지만 그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한다. 얼핏 분열증 같아 보이는 이 현상은 영원히 풀리지 않을 수수께끼처럼 진보진영의 논객들을 괴롭혀왔다. 논객과 진보 정치인들은 사람들이 계급적 정체성에 밝지 못하고, 눈을 뜨지 못하고, 상식적으로 행동하지 못하는 데 분노한다. 그리고 계몽하려 애쓴다. 하지만 이 계몽은 쉽게 작동하지 않는다.

경제학자들은 인간이 결국에 사사로운 이익관계를 좇아 움직일 수 밖에 없다고 이야기한다. 실제 대부분의 인간은 사익에 따라 결정하고 행동한다. 이는 매우 상식적인 이야기로 들린다. 하지만 이 상식은 머릿속의 상식이다. 현실에서 우리는 자신의 주머니 사정에 따라 투표하는 사람들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많은 수의 진보 운동가와 논객, 정치인들은 선택받은 가정에서 온갖 혜택을 받고 자랐다. 그러고도 분배를 논한다. 많은 수의 가난한 사람들은 그와 같은 혜택을 거의 받지 못하고 자랐다. 그러고도 집중을 논한다. 앞서 말한 상식이 통했다면 소수의 집중되고 편향된 자본을 위해 종사하는 보수 정당은 절대 집권할 수 없다.  

그 같은 상식이 현실의 상식이라면 다음과 같은 권유는 정당하다. - 당신의 주머니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정당과 후보에게 투표하라. 당신의 주머니를 지지하라는 말은 요구라기보다 질문이며, 이는 곧 당신의 계급적 정체성을 묻는 것이다. - 하지만 사실 이런 식의 주문은 헛되다. 왜 당신의 계급에 따라 투표하지 않느냐고 지적하고 계몽하는 일은 끔찍할 정도로 소모적이다. 궁극적으로, 이런 식의 주문은 실제 가난한 사람들의 귀에 들어가지 않기 때문이다. 귀에다 대고 소리 질러도, 동의를 구할 수 없다. 실제 들리지 않는다! 가난한 당신이 이명박을 선택했을 때 당하게 될 온갖 종류의 불이익을 도표로 만들어 오른손에 들고, 권영길을 선택했을 때 얻게 될 온갖 종류의 혜택을 도표로 만들어 왼손에 들고 그들에게 외쳐봐라. 당장은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 가난한 사람들의 대다수가 결국 이명박을 선택할 것이라는 걸 알고 있다. 도대체 왜? 

이 나라에서 스스로 중산층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70퍼센트에 달한다. 하지만 실제 한국의 중산층은 40퍼센트가 채 되지 않는다. 이 놀라운 통계의 마술은 한 가지 명징한 진실을 환기시킨다. 사람들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한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이 가상의 필터를 ‘가치관’이라고 부른다. 수많은 장르영화들이 이 같은 소재를 다뤄왔다. 사람들은 자신의 계급적 정체성에 따라 투표하지 않는다. 바로 이 가치관에 따라 투표한다.

요컨대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를 위한 정책 정당을 지지하는 이유는, 그들이 부자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부유함이나 풍요로움 같은 부자의 가치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와 함께 수반돼 연상되는 보수적 언어를 ‘옳은 것’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누가 혹은 어떤 정당이 서민을 대변하고 말고는 고려 대상이 아니다. 사람들은 부자를 보며 박탈감을 느끼지 않는다. 성공신화에 매료될 뿐이다. 부와 이익이라는 (그들이 생각하기에) 긍정적 에너지에 박수를 보낼 뿐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적지 않은 부자들이 적당한 부패와 조작과 위장을 즐긴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지는 않는다. 그저 부자라면 그 정도는 저지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다.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훌륭하게 입신에 성공한 저 부자들은 그만한 권리와 폭력을 응당 행사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거다.  

이것은 단순한 존경이나 예우와 다르다. 겨우 존경심 때문에 사익과 반대되는 선택을 할 정도로 인간의 두뇌가 간단하지는 않다. 그건 우리가 여태 태어나서 자라고 배우고 번식하고 경쟁하고 버티고 버텨 살아온 이 사회가 근본적으로 보수적인 언어의 토대 위에 건설된 탓이다. 사람들은 부자 - 성공 - 상위 3퍼센트 - 대기업 - 수출 - 재벌 - 시장주의 같은 단어들에서 긍정적 에너지를 느낀다. 반대로 복지 - 중소기업 - 88만원 세대 - 분양원가공개 등에선 무언가를 박탈당하는 듯한 상실감 따위의 부정적 에너지를 느낀다. 시장주의에 반대되는 입장을 표현하는데 사용되는 단어가 고작 '반시장주의'다. 세상에, 얼마나 부정적인가. 그 내밀한 사정에 대해선 무관심하다. 사람들은 보수적인 단어와 인식의 틀 위에서 살아왔다. 보수성을 ‘궁극적으로 안전하고 탄탄한‘ 것으로 인식한다. 

간단한 예로 TV와 영화 속 가부장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짚어보자. 철옹성 같은 권위를 가진 아버지는 온갖 폭력과 부정을 저지르면서도, 결국에 가서 아들과의 화해에 이른다. 설명되지 않는 뜨거운 눈빛을 주고받으며 관계의 정상화를 이룬다. 가부장으로 대표되는 보수 이데올로기가 뜨거움과 결합하면서 ‘설명되지 않는 끈끈함’ 따위의 수사로 포장된다. 놀라운 건 대중이 이 같은 광경을 보며 감동한다는 사실이다. 물론 <천하장사 마돈나>같은 예외도 있다. 그건 그 영화를 만든 자들의 진보성과 현실인식의 탁월함을 증명한다. <천하장사 마돈나>는 흥행에 실패했다. 간단하다. 사람들은 소위 진보적인 상식이나 언어들을 ‘머리로’ 인식한다. 반대로 보수적인 상식이나 언어들은 ‘가슴으로’ 인식한다. 따로 학습이나 교육이 필요하지 않다. 

그럼으로써 ‘택시기사 농담’을 설명할 수 있게 된다. 사람들은 고된 노동에 시달리는 택시기사들 가운데 상당수가 보수정권을 옹호하는 현상을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대다수 노동직 근로자들이 그들의 가정에서 가부장적인 권위에 목말라 있으며, 경제가 어려워질수록 실추되는 가정 내 권력에 대해 큰 피해의식을 갖고 있음을 상기해보자. 간단한 이야기다. 택시기사는 바보가 아니다. 그들은 노동자라는 계급성을 갖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행동을 결정하는 가치관과 정체성은 보수주의에 닿아있는 거다. 미국의 고속도로 트러커들 대다수가 공화당을 지지하는 것과 마찬가지 맥락이다.

그렇다면 지난 10년간 자칭 진보 정권이라고 불린 두 정부의 집권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는 보수와 진보 사이의 경쟁이었다기보다, 개혁세력의 안티 담론이 성공적으로 작동한 것에 더 가까웠다. 실제 이 두 정권의 정책은 조금도 진보적이지 않았다. 그저 과거와의 단절과 안티 담론의 연장선상 위에서 지루한 말싸움을 해온 것에 불과하다. 가끔씩 진보진영의 수사만 빌려왔는데, 이건 그저 한나라당과 자리싸움하는데 필요했기 때문이다. 특히 노무현 정권의 집권은 눈여겨볼만 하다. 그는 보수의 언어를 들고 나와 진보의 탈을 쓰고, 이를 뜨거운 개혁의 이미지로 치환하는데 성공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긍정적인 것으로 인식했고, 결국 대선 승리의 드라마로 이어졌다. 욕할 게 아니라 공부해야 할 일이다. 그는 진정 언어의 마술사였던 것이다.

많은 수의 진보주의자들이 노무현 정권에 속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무덤을 판 건 진보진영 스스로다. 정권 내내 진보진영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사람들의 행동에 옳고 그름의 틀을 가져가 비판했다. 어떻게 부정부패 우익 세력을 지지할 수 있냐고 꾸짖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보수적 가치관 안에서 살아왔을 뿐이다. 그 위로 당위성을 겹쳐 놓으면 격렬한 반감이 생길 수밖에 없다. 보이지 않아서 보지 못하는 건데, 그에 대해 욕을 하고 보수반동꼴통 소리를 서슴치 않았다. 보수진영이 가지고 있는 언어는 안정적으로 보였지만, 진보진영이 가지고 있는 언어란 고작해야 ‘쟤들은 안 돼’ 정도였다. 조롱이 팔할이었다.

현실 정치에서 진보진영이 얼마나 그릇된 전략에 따라 움직이고 있느냐가 바로 여기서 드러난다. 안티 담론에 의해 움직이다간 결코 긍정적인 이미지의 틀 안으로 진입할 수 없다. 기껏해야 상대하기 피곤한 사람 취급 밖에 받을 수 없다. 그런데도 진보진영은 도덕의 황폐화를 부르짖고 세상이 당장 망할 것처럼 시일야방성대곡을 목 놓아 불렀다. 유동적인 중간층은 서슬 퍼런 진보진영의 손을 들어주기 힘들어진다. 도무지 안정적인 비전을 제시할 그룹으로 비춰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 보수진영에선 진보진영의 언어를 가져다가 잘 활용했다. 이회창 후보가 “돈이면 다 된다는 생각, 천민자본주의, 이거 안 됩니다”라고 말했을 때, 많은 진보주의자들은 이를 두고 술자리 안주삼아 실컷 비웃었다. 하지만 언어의 힘이란 무섭다. 불안정한 진보주의자보다는 안정적인 보수주의자의 개혁적 언동에 솔깃해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명박 후보도 ‘청년 실업’이나 ‘비정규직 문제’ 같은 진보진영의 화두를 고스란히 가져가 자기 언어로 흡수해버렸다. 진보진영은 그저 바라보기만 할 뿐, 속수무책이었다.

진보진영의 선동가와 계몽주의자들은 스스로 판 무덤 속에 기어들어갔다. 여기서 탈출하고 싶다면 보다 전략적이고 체계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대중에게 꾸준히 진실을 알리고 보수진영의 부조리를 밝힘으로써 마침내 상식이 통하게 될 것이라 낙관하는 자세는 금물이다. 그 진실은 진보진영에게만 들리는 진실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갖고 있는 틀에 의해 판단한다. 이 틀은 그들의 세계관이고 가치관이다. 이 가치관은 주머니 사정과 별개로 작동한다. 상식을 운운하면 반감만 산다. 보수진영의 움직임에 일일이 대응하는 방식으로 무게중심을 가져가다간 결코 집권할 수 없다. 대중이 어떻게 진보의 언어에 관심을 기울일 것인지 연구해야 한다. 그런 관심 안에서 진보의 가치관과 인식의 틀이 보수의 그것 못지않은 안정적 이미지를 가질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진보진영이 입에 문 언어들이 닮고 싶고 갖고 싶고 추구하고 싶은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여기에는 다소간의 패션화 전략도 필요하다. 진보의 언어를 개발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는 한, 한국의 진보진영에 미래는 없다.


허지웅 (GQ 1월호)


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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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 한시대를 산 것은 제겐 축복이었습니다. 사랑했습니다. 고맙습니다.




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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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주칼럼] 못다 쓴 유서를 … 쓰자


신문도 텔레비전도 보기 싫었다. 글을 쓸 수도 책을 읽을 수도 없었다. 숨을 쉬기도, 말을 하기도 갑갑했다. 그런 열흘이 지나갔다.

고인이 남긴 유서를 읽고 또 읽었다. 말과 글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길 즐겼고 또 자료로 남기길 원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너무나 짧은 유서를 읽고 또 읽는다. 행간에 혹시 다른 해석이 가능한 무엇인가 있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그렇게도 시시비비를 가리기 좋아했던 대통령이었다. 그래서 대통령 자격이 없다는 딴지에도 숱하게 걸려들었다. 대통령 자리에 앉았다고 해서 갑자기 시시비비 가리기를 멈추고 좋은 게 좋은 거니까 하고 대충 넘어가는 것이야말로 그의 스타일이 아니다. 그런 그가 이다지도 짧은 유서를 남겼다.

신문과 방송이 쏟아내는 말들과 추모영상이 거짓말 같다. 무엇이 미안하다는 말인가. 무엇이 고맙다는 말인가. 무엇으로부터 지켜주지 못했다는 말인가.

일인당 국민소득 6000달러가 넘으면 민주주의 국가가 전체주의 국가로 변질되는 역사적 사례는 없다고 정치학자들과 경제학자들은 단언했다. 오판이다. 그의 퇴임 뒤 나는 “노무현 시대를 거치면서 절대권력의 시대를, 그 강을 건넜다”고 썼다.(2008년 3월5일치 ‘노무현씨 나와 주세요’) 취소한다. 임기를 끝낸 대통령이 봉하마을의 이장쯤으로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나의 바람이었다. 안이한 생각이었다. 대한민국은 국민소득 6000달러가 넘었으면서도 전체주의 국가로 변해가는 역사를 지금 써가고 있다.

박경리 선생이 만년에 쓴 시를 모은 유고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를 읽었다. ‘… 박정희 군사정권 시대/ 우리 식구는 기피인물로 살았고/ 유배지 같은 정릉에서 살았다./ 수수께끼는 우리가 좌익과 우익의 압박을 동시에 받았다는 사실이다./ 인간이 얼마나 추악해질 수 있는가를 뼈가 으스러지게 눈앞에서 봐야 했던 태평양전쟁과 육이오를 겪었지만 그런 세상은 처음이었다./ 악은 강력했고 천하무적이었다/ 역적은 삼족을 멸한다는 옛날 관념에 사로잡힌 친지들도 우리를 뿌리치고 가는 …/’ 바로 그런 시대로 우리는 돌아가고 있다.

봉하마을에서 그가 겪었을 천하무적의 악은 무엇이었을까. 강한 것에 약하고 약한 것에 강한 사람들 마음 밑바닥의 비겁함이었을까. 일거수일투족이 감시되고 전화와 이메일이 도청되었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을까. 촛불시위로 사면초가가 되었던 이명박 대통령이 봉하마을의 그를 언론에 먹잇감으로 내준 것일까. 그가 돌려준 권한을 정권이 바뀌자 제발 우리를 주구로 삼아 주십시오라고 권력에 갖다 바친 검찰일까.

그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우리 사회의 기득권층은 고졸 출신의 대통령을 노골적으로 조롱했다. 대통령직을 물러나 낙향을 하자 이것 또한 질투의 대상이 되었다. 손녀를 태우고 논두렁길을 달리는 그의 평화로운 노년도 눈꼴시어서 보아줄 수 없었다. 이제 그의 자살도 질투를 한다. 먹잇감이 없어졌으니까. 그의 화장과 작은 비석 하나도 질투를 한다. 가진 것이 많아서 자기들이 못하는 짓이니까. 그 정점에 수구 기득권 언론이 있다.

누가 화해와 용서를 말하는가. 죽은 권력에 난도질을 하고, 시정잡배로, 길거리 건달로, 그가 사는 흙집을 아방궁으로 묘사하며 모욕했던 언론이 제일 먼저 나서서 화해와 용서를 말한다. 죽음의 본질을 흐리게 하려는 짓이다. 화해를 먼저 청하는 것은 속이 뜨끔한 세력들이다. 그의 죽음에 직간접으로 간여했던 세력들이다. 천하무적의 악이다. 언론법을 빨리 처리하지 않는다고 안면 몰수하고 한나라당과 이명박 대통령을 비난하고 나선 그들이다. 시시비비를 가려서 그가 못다 쓴 유서를 국민의 힘으로 써야 한다. 정말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면.

김선주 언론인


컴퓨터 글씨체의 유언장인 ‘무현 선사의 임종게’  14줄 172자를 첫줄부터 끝줄까지 가만히 읽어 내려봅니다.

http://well.hani.co.kr/board/view.html?board_id=jh_friend1&uid=264966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밖에 없다.

건강이 좋지 않아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 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화장해라.

그리고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

오래된 생각이다

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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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는 세상의 자유를 꿈꾸었던 사람,

낮은 곳을 바라보며 눈물 흘릴 줄 알았던 사람,

상식과 원칙이 통하는 나라를 위해 평생 애쓴 사람,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 노무현

여기 봉하의 뒷산에 고이 잠들다 -안도현(시인)



여기에 천둥처럼 와서 천둥처럼 떠난

한 격정의 사내가 누워 있다.

불타는 혀의 웅변, 강인한 투혼

사나운 발톱의 승냥이떼 속에서

피투성이 상처로 질주하여 마침내 돌파한

위대한 거부의 정신

죽어서도 꺾이지 않는

정복되지 않은 죽음

진정한 민중의 벗, 노무현

당신이 뿌린 씨 기어코 우리가 거둘 터이니

그대 퍼렇게 눈 뜨고 잠들지 마시라 -현기영(소설가)




서버린 수레바퀴

한 바보가 밀고 갔네 -정도상(소설가)



치열하게 살았으나

욕되게 살 수는 없어

허공에 한 생애를 던진

노무현의 영혼을

하늘이여,

당신의 두 팔로 받아 안아주소서 -도종환(시인)


여기

대통령이면서 시민이고자 했고

정치인이면서 정의롭고자 했으며

권력을 잡고도 힘없는 자 편에서

현자였으나 바보로 살아

마침내 삶과 죽음까지 하나가 되도록

온몸으로 그것을 밀고 갔던

한 사람이 있으니

그를 미워하면서 사랑했던 우리는

이제 그를 보내며 영원히 우리 마음에 그를 남긴다. -공지영(소설가)

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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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요 미안해요 일어나요
―고 노무현 대통령 영전에 바침

뛰어내렸어요, 당신은 무거운 권위주의 의자에서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으로

뛰어내렸어요, 당신은 끝도 없는 지역주의 고압선 철탑에서
버티다가 눈물이 되어 버티다가

뛰어내렸어요, 당신은 편 가르고 삿대질하는 냉전주의 창끝에서
깃발로 펄럭이다 찢겨진, 그리하여 끝내 허공으로 남은 사람

고마워요, 노무현
아무런 호칭 없이 노무현이라고 불러도
우리가 바보라고 불러도 기꺼이 바보가 되어줘서 고마워요

아, 그러다가 거꾸로 달리는 미친 민주주의 기관차에서
당신은 뛰어내렸어요, 뛰어내려 으깨진 붉은 꽃잎이 되었어요
꽃잎을 두 손으로 받아주지 못해 미안해요
꽃잎을 두 팔뚝으로 받쳐주지 못해 미안해요
꽃잎을 두 가슴으로 안아주지 못해 미안해요
저 하이에나들이 밤낮으로 물어뜯은 게
한 장의 꽃잎이었다니요!

저 가증스런 낯짝의 거짓 앞에서 슬프다고 말하지 않을래요
저 뻔뻔한 주둥이의 위선 앞에서 억울하다고 땅을 치지 않을래요
저 무자비한 권좌의 폭력의 주먹의 불의 앞에서 소리쳐 울지 않을래요
아아, 부디 편히 가시라는 말, 지금은 하지 않을래요
당신한테 고맙고 미안해서 이 나라 오월의 초록은 저리 푸르잖아요
아무도 당신을 미워하지 않잖아요
아무도 당신을 때리지 않잖아요
당신이 이겼어요, 당신이 마지막 승리자가 되었어요
살아남은 우리는 당신한테 졌어요, 애초부터 이길 수 없었어요

그러니 이제 일어나요, 당신
부서진 뼈를 붙이고 맞추어 당신이 일어나야

우리가 흐트러진 대열을 가다듬고 일어나요
끊어진 핏줄을 한 가닥씩 이어 당신이 일어나야
우리가 꾹꾹 눌러둔 분노를 붙잡고 일어나요
피멍든 살을 쓰다듬으며 당신이 일어나야
우리가 슬픔을 내던지고 두둥실 일어나요
당신이 일어나야 산하가 꿈틀거려요
당신이 일어나야 동해가 출렁거려요
당신이 일어나야 한반도가 일어나요
고마워요, 미안해요, 일어나요,
아아, 노무현 당신!

안도현

* 안도현 시인이 29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노제에서 낭독한 조시입니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57611.html

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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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마지막 편지를 보면 김훈의 '칼의 노래'에 나오는 이순신의 말을 보는 듯 하다.
행간마다마다에 얼음가루같은 눈물이 베어있다. 비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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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밖에 없다.

건강이 좋지 않아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 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화장해라.

그리고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

오래된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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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여, 김규항의 글이다. 무사의 죽음이라... 김규항은 노무현과 길이 다른 사람이나, 인간을 이해하는 것은 그 어느 누구보다 낫다 싶다. 노무현의 마지막 칼을 이해하는 자가 얼마나 되리....



어리석은 형과 아내와 자식들이 연루된 일로
복수를 노리던 오랜 정적들이 그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의 후원자들이 그를 팔았고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던 신문들은 역사적 책임이라도 질세라
“국민의 가슴에 못을 박았다”며 발을 뺐다.
절박한 상황 속에서 가장 신중했어야 할 측근들은
“생계형 범죄”니 “순수한 정치 보복” 따위 모자란 말로
그를 더욱 궁지로 몰아갔다.
노란 손수건을 든 모든 사람들은 단지 감정적이었으며
결국 그를 도울 아무 것도 남지 않았다.
절대 고독 속에서 그는 마지막 칼을 빼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모든 비루한 것들을 단번에 베어내고
“자연의 한 조각”으로 돌아갔다.
무사의 죽음이었다.
사람들아,
입에 발린 칭송도 싸구려 추억담도 잠시 접고
깊고 정중한 침묵으로 그 죽음에 예를 갖추자.






 

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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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애도함
http://www.hani.co.kr/arti/opinion/editorial/356553.html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갑작스런 서거 소식을 접하는 심정은 고통스럽고 비통하다. 산천도 새롭게 옷을 갈아입는 생명의 계절 5월, 그는 그렇게 세상과 홀연히 작별을 고하고 떠났다.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안타까운 소식에 망연자실할 뿐이다. ‘바보 노무현’은 끝까지 바보 노무현이었다. 평생을 극적이고 파란만장하게 살아왔던 그의 삶은 최후의 순간까지도 충격적이었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스스로 삶을 거두어버렸다.

검찰 수사가 시작된 이후 그가 느꼈을 비애와 고통을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명예와 신뢰가 산산조각이 나면서 그가 받았을 치욕과 모욕감에 그는 결국 무너져내린 것이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는 유서 내용은 그가 겪은 심적 고통이 얼마나 컸는지를 보여준다. 그는 죽음으로써 이 모든 것에 답변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이미 고인이 된 그에게 안타깝게 묻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고통스럽더라도 굳이 목숨을 끊는 극단적인 방법밖에 없었느냐’고. 또 ‘이 풍파를 견뎌내고 역사에 더 값진 발자취를 남기겠다는 진정한 용기를 왜 발휘하지 못했느냐’고 말이다. 하지만 그런 질책은 이제 부질없다. 그는 이미 우리 곁을 떠났다.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이라는 말도 남겨진 사람들에게 위안이 되지는 않는다.

그는 누가 뭐래도 우리 사회의 고정관념과 금기에 온몸으로 맞서 싸워온 정치인이었다. 그의 정치역정은 우리 사회의 기득권 구조를 바꿔보려는 끊임없는 싸움의 연속이었다. 때로는 그 과정에서 영광을 맛보기도 했고, 때로는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됐다.

그의 대통령 재임 기간, 국정운영에서 미숙했던 부분도 있고, 시행착오도 적지 않았다. 거침없는 언사로 끊임없이 구설에 시달리기도 했다. 지지층의 기대에 어긋나는 선택으로 많은 사람을 실망시킨 적도 많았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우리 사회의 물줄기를 근본적으로 바꿔보려는 그의 시도와 노력은 아무리 높게 평가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돼버린 지역주의 타파를 비롯해 새로운 정치질서 모색, 지역 균형발전, 남북 화해와 공존 노력 등은 시대정신에 부합된 의미있고 값진 시도들이었다. 또한 역대 어느 대통령도 보여주지 않은 솔직담백하고 소탈한 언행, 국민과의 직접 소통을 추구한 탈권위주의적 모습 등은 영원히 신선한 울림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그는 우리 사회의 비주류였다. 그리고 그의 비극의 원천은 여기에 있었다. 탐탁지 않은 비주류 권력의 출현에 대한 기득권 세력들의 공격은 집요했다. 그 공격은 대통령 재임 기간에도, 퇴임 이후에도 변함이 없었다. 보수세력과 보수언론들은 국민의 손으로 뽑힌 대통령의 권위조차 인정하지 않고 적대적으로 그를 헐뜯고 공격했다. 그를 죽음으로 몰아간 박연차씨 금품수수 의혹 사건에서도 보수언론은 그를 난자해 만신창이로 만들었다. 그의 비참한 죽음은 어느 면에서는 우리 사회 주류의 견고한 성벽을 다시 한번 확인해준 것이기도 하다.

그의 죽음은 비통하고 비극적이지만, 한편으로는 우리한테 엄중한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까지 이 세상에 외치고 싶었던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단순한 도덕성 상실 의혹에 따른 자괴감의 발로나, 금전 문제에서의 결백 주장만은 아니라고 본다. 오히려 그 해답은 그가 최근 밝힌 심경의 한 일단에서 찾을 수 있다고 여겨진다. 그는 지난달 자신의 홈페이지에 “더 이상 노무현은 여러분이 추구하는 가치의 상징이 될 수 없다” “민주주의, 진보, 정의, 이런 말을 할 자격을 잃어버렸다”고 써놓았다. 그는 자신의 몸을 벼랑 끝으로 내던짐으로써 이런 의미있는 의제와 가치들이 죽는 것을 막고 싶어한 것은 아닐까. 물론 죽은 자는 말이 없다. 하지만 민주주의와 진보, 정의와 같은 가치들이 시대의 광풍에 휩쓸려 소멸되는 것을 막아야 할 당위성만큼은 분명하다. 바보 노무현의 죽음이 결코 바보짓만은 아니게 만드는 길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볼 때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김지석칼럼] ‘바보 노무현’의 죽음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356558.html
대통령은 특별한 사람이다. 권력의 정상에 오르려면 해야 할 것도, 하지 말아야 할 일도 많다. 모든 것을 다 갖췄더라도 때가 맞고 운이 따라주지 않으면 안 된다. 대통령은 하늘이 택한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대통령이 자신들과 아주 다른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통령 역시 인간일 뿐이다. 남이 알아주지 않아 괴로워하고 실패에 눈물을 흘린다.

고뇌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모습을 바로 옆에서 본 적이 있다. 지방선거에서 참패하고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문제로 보수세력으로부터 거세게 공격받던 2006년 8월이었다. 당시 노 대통령은 언론사의 외교안보 담당 논설위원 몇 명을 청와대로 불러 오찬모임을 가졌다. 그는 그때 “남은 기간 동안 개혁을 하기 어렵고 (기존 정책들을) 관리만 할 생각”이라며 “그렇다는 걸 국민에게 선언하는 게 어떤지 생각 중”이라고 했다. “정파적이지 않은 중립적 정책까지 거부당하는 것은 억울하다”고도 했다. 그는 스스로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비판을 감수해야 할지, 아니면 하야 선언까지 포함해 실패를 공식화해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이런 모습은 그의 삶 전체를 관통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는 도전과 좌절의 정치인이다. 도전은 때로 무모했고 좌절은 깊었다. ‘바보 노무현’이라는 별칭은 이를 잘 표현한다. 그는 그러면서도 시대의 과제에 자신의 삶을 일치시키려고 꾸준히 애썼다. 1980년대에는 민주화운동에 온몸을 던졌고, 90년대는 왜곡된 정치풍토를 바꾸려고 노력했으며, 대통령이 된 뒤에는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의제를 적극적으로 관철하려 했다. 그 과정에서 그의 진심보다는 그만의 독특한 스타일이 더 부각돼 논란을 빚은 것은 그에게 큰 불행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가 대통령에서 물러난 뒤에도 ‘노무현 집권기’에 대한 평가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새 집권세력은 그와 관련된 모든 것을 현실에서나 역사에서나 지워버리려 했고, 한때 그와 함께한 정치·사회세력도 그의 그림자가 자신들의 발목을 잡을까봐 거리를 뒀다. 봉하마을에서 이런 모습을 지켜보는 그의 마음은 한없이 착잡했을 것이다.

그는 지난 3월 ‘사람 사는 세상’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이웃과 공동체, 그리고 역사를 위하여, 가치 있는 뭔가를 이루고자 정치에 뛰어든 사람”으로서 “언제 실패의 이야기를 글로 정리해볼 생각”이라고 썼다. “정치가 달라지기 위해서는 정치인들이 먼저 달라져야” 하므로, 자신의 실패 기록을 그 밑거름으로 제공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그렇게 하는 것은 길지 않은 우리나라 헌정사에서 대통령을 지낸 사람으로서 의무이기도 하다.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은 이런 당연한 일마저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밖에 없다.” 이런 유서를 남긴 데는 전직 대통령의 품위 있는 삶은 고사하고 시민으로서 일상적 활동도 하기 어려운 현실에 대한 깊은 좌절감이 작용했다고 봐야 한다. 적어도 그 고통과 좌절감의 상당 부분이 검찰을 비롯한 지금 집권세력에서 비롯했음은 부인할 수 없다.

그는 숨지기 직전 경호관에게 “담배가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2006년 청와대 오찬 때도 “끊었던 담배를 최근 새로 피운다”고 했다. 그는 이제 연기처럼 사라졌지만,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마음에는 새삼 시대의 냉혹함에 대한 섬뜩한 느낌이 차오른다. 부디 고향마을에서 편안하게 잠드소서.

김지석 논설위원실장 jkim@hani.co.kr


[사설] 무엇보다 ‘정치 검찰’의 책임이 크다
http://www.hani.co.kr/arti/opinion/editorial/356552.html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을 계기로 검찰에 대한 시민들의 비난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이 전해진 뒤 대검찰청 누리집 게시판 ‘국민의 소리’에는 검찰 수사를 규탄하는 민성이 아우성치고 있다. 너무 많은 사람이 접속해 글을 올리고 읽으려고 하는 바람에 서버가 마비될 지경이다. 이런 현상은, 검찰이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에서 국민적 신뢰를 완전히 잃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죄가 있다면 전직 대통령이 아니라 현직 대통령이라도 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조사하고 밝혀야 한다. 그리고 죄가 확인된다면 그에 합당한 벌을 줘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이고 법치다. 이런 점에서, 노 전 대통령이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에게서 돈을 받고 해외사업 등에 대한 편의를 봐줬다는 혐의(포괄적 뇌물수수)를 두고 검찰이 수사를 한 것 자체를 문제 삼을 생각은 없다.

하지만 검찰은 수사 과정에서 몇 가지 매우 큰 잘못을 저질렀다. 가장 큰 것은 수사를 잘못해서인지 아니면 위쪽의 지시에 따른 건지 모르지만, 수사 방향을 철저하게 ‘노무현 괴롭히기’로 끌고 간 점이다. 적어도 많은 사람에게 그런 인상을 줬다. 노 전 대통령을 지난달 30일 소환수사하고도 한 달 가까이 기소 여부도 결정하지 않고 질질 끈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간 검찰은 전직 대통령 정도의 인물을 수사할 경우엔 수사의 마지막 순서로 불러 조사하고 그 뒤 신속하게 신병처리 방침을 결정해왔다. 그게 관례였고, 예우였다면 예우였다. 하지만 이번엔 전혀 달랐다. 신병처리를 질질 끌며 노 전 대통령의 부인, 아들딸, 사위 등에 대한 수사 강도를 높이며 노 전 대통령을 압박했다. 그 과정에서 피의사실 공표금지 원칙 같은 것은 개의치도 않았고 시시콜콜한 혐의 사실까지 일일중계하듯 까발렸다. 오죽했으면 노 전 대통령이 마지막 길을 가면서 짧게 남긴 유서에서까지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고 절규했겠는가.

또한 검찰은 박연차 사건을 수사하면서 극도로 형평성을 잃은 모습을 보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 일가와 그 주변 사람에겐 샅샅이 이를 잡듯이 뒤져 허물을 들췄거나 들춰내려 했다. 반면 현 정부와 관계 있는 사람이나 자기 식구에게는 한없이 관대하고 느슨한 태도를 보였다. 추부길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이 박연차씨로부터 세무조사 무마 청탁을 받고 이명박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의원에게 전화한 사실을 파악하고도 미리부터 이 의원을 수사대상에서 배제했다. 또 이 대통령의 친구인 천신일 고려대교우회장과 관련해서도 진작부터 매우 구체적인 연루 의혹이 나왔지만 수사를 미루다가 뒤늦게 균형 맞추기 제물로 끌어들인다는 인상을 줬다. 제 식구인 검사들의 경우에는, 불러 조사하는 동시에 ‘돈은 받았지만 업무 관련성이 없어 처벌이 어렵다’는 면죄부를 줬다. 임채진 검찰총장, 홍만표 수사기획관, 이인규 중수부장 등 이번 수사의 핵심인물들은 항간에 일고 있는 정치수사, 편파수사 의혹에 대해 명확하게 설명할 책임이 있다.

이번 수사의 시작은 지난해 7월 청장 연임을 노리는 한상률 전 국세청장의 태광실업 특별세무조사와 그 결과의 청와대 보고였다고 한다. 검찰은 이를 토대로 올 3월부터 노 전 대통령을 겨냥한 수사에 본격 착수했다. 수사 전개로 볼 때 노 전 대통령을 탐탁지 않게 생각해온 청와대 핵심의 의중이 반영됐다고밖에 볼 수 없는 것이다. 정치검찰도 문제이지만 이참에 검찰을 정권의 하수인처럼 부리려는 권력자의 생각도 바뀌어야 한다.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356557.html
[시론] 정치 검찰의 질주가 낳은 비극 / 정상호

노무현 전 대통령의 투신으로 온 사회가 참담한 충격에 빠져 있다. 나 자신이 참으로 부끄럽고 안타깝다. 돌이켜보면 노 전 대통령의 원칙을 중시하는 강직한 성품상 끝없는 모멸감을 안겨주었던 검찰의 보복성 수사에 죽음으로 저항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을 예견할 수 있었건만 그저 손 놓고 방관하기만 하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은 형식적으로는 자살이지만 그 이면에는 애초부터 편파성과 보복수사 시비를 낳은 현 정부와 검찰의 정치적 공모가 깔려 있다. 왜냐하면 대통령 스스로가 본인과 가족은 물론 사돈에 팔촌까지, 일개 행정관에서 장차관까지 과거 수년간의 행적을 샅샅이 조사하였던 무소불위의 살아있는 권력에 맞서 저항할 수 있는 합법적 수단을 찾기 어려웠을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양식 있는 많은 이들이 검찰과 경찰의 법치를 앞세운 편파적·억압적 조처들을 보면서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정치적 파국을 낳을 불행한 사건이 터질지 모른다는 우려감을 갖고 정국을 지켜보고 있었다. 화물노동자 대량 구속, 용산 철거민 사태, 합법적 시위와 평화적 기자회견조차 허용하지 않는 위헌적 탄압 조처, 사법부의 독립성을 훼손한 신영철 대법관 파동, 마스크 사용조차 불법으로 처벌하는 반민주적 법률 제정, ‘피디 수첩’ 제작진에 대한 언론탄압 등 공안기관의 권력남용 사례는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요컨대 정치검찰의 문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은 물론 평범한 보통사람들의 삶 속에까지 짙은 공포와 암운을 던져주고 있다. 무명의 정치학자에 불과한 필자 자신도 향후 임용과 승진, 연구비 지원, 사생활 추적 등에 대한 권력의 냉혹한 보복을 예감하면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우리에게는 정치인 노무현에 대한 지지 여부를 떠나 고인의 뜻을 받들어 사회적 분열을 최소화하고, 나아가 통합적 사회발전을 이루어야 하는 시대적 과제가 엄연히 주어져 있다. 이를 위해서는 첫째, 정치적 반대파인 보수주의자들의 신중한 처신이 요구된다. 노무현 대통령의 퇴임 이후 조·중·동을 비롯한 보수세력들은 ‘노씨’ 운운하며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를 깡그리 묵살하여왔다. 제발 이번의 비극적 사태를 ‘대통령 개인의 격정적 성정의 우발적 충동’으로 조롱하거나 모멸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것은 전직 대통령의 예우를 떠나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니기 때문이다.

둘째는 정치권과 시민사회가 다시는 정치보복의 악순환을 없애기 위하여 정치검찰의 통제받지 않는 질주를 멈추는 데 함께 나서야 한다. 특히 전직 법무부 장관이었던 천정배 의원과 강금실 변호사를 비롯한 정치인들의 각성과 분발이 필요하다. 실명을 거론하는 까닭은 두 사람은 검찰 개혁을 총괄하였던 참여정부의 사법부 수장으로서 이번 사태에 일말의 정치적·도의적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어떤 형태로든 자신이 몸담았던 조직의 비이성적·반민주적 작태에 대하여 선두에서 싸울 책무가 있다. 그리하여 더이상 대통령과 전임 정부에 대한 역사적 평가에 앞서, 사법부를 앞세운 법적 단죄가 반복되는 불행한 정치사를 종식시켜야 한다.

그렇지만 지금 이 순간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루 형용하기 어려울 정도의 비통과 충격에 빠져 있을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가족과 친인척들, 그를 누구보다도 사랑하였던 정치적 지지자들에 대한 세심한 배려와 관심이다. 삶도 죽음도 너무나 극적이었던 그리고 누구보다 인간적이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명복을 진심으로 빈다.

정상호 한양대 제3섹터연구소, 연구교수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5656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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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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