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자유와 관련하여
등록인 최인석 등록일 2009.04.13 | 조회: 111
첨 부

푸네에 살고있는 상카르입니다. 어제 불교관련 카페에 올린 제글을 이곳에도 올립니다. 여러 회원님께 신고식을 겸하는 의미에서.. 
 
아래에 어느분의 글에서 불교에서 대자유를 추구하는 것도 인간의 정신을 속박하는 것이 아니냐는 물음이 있어
여기에 대해서 의견을 말하고저 한다. 우리는 흔히 불교의 목표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곤한다.  
기독교의 목표가 구원이듯이...많은분들은 불교의 목표가 해탈이니 깨달음이니 라고들 대답을 할 것이다.
 
그러나 불교에는 목표가 없다. 만약에 불교에 목표를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사람은 불교를 오해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불교는 이데올로기가 아니다. 불교는 어떠한 종류의 이상도 추구하는 종교가 아니다.    
특히 선불교에서는 모든 이상주의를 철저히 배격한다. 당연히 불교는 대자유도 추구하지 않는 종교다.
따라서 인간의 정신을 속박할 일도 없다.
 
우리는 사회에서 교육을 받으면서 너 자신을 계발하라, 너자신을 바꾸어라, 보다 완벽하게 되도록 노력하라,
라고 끊임없이 세뇌되어 왔다. 일련의 이러한 과정 속에서 형성된 것이 흔히들 말하는 에고(ego,自我)다.
보다 "나아지려는 추구" 라는 환상이야말로 이 에고를 만족시키는 원동력이다.
 
오늘은 비록 이렇지마는 내일은 보다 나아 질 것이다 라는 목표가 에고가 생존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사고방식이 모든종교에서 그대로 받아들여져서 각자 그 종교의 목표와 이상주의가 되어왔다.
그러나 불교는 이러한 기존의 종교에서 말하는 목표와 이상주의를 철저히 배격하는 데에서
출발하는 혁명적인 종교다.
 
붇다는 기존의 종교에서 이러한 핵심을 간파했다. 즉 무엇을 "추구한다는 것"이 인간의 삶을 병들게 한다는
것을 알아 낸 것이다. 그 당시의 힌두교에서 해탈을 추구하는 것도 일종의 돈이나 권력을 추구하는 것과
"추구한다는"면에서는 다를바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추구한다는 것이 인간성의 광기라는 것을 밝혀
내었고 이것이 우리 삶에서의 모든 불행의 근원이라고 본 것이다.
 
제자들이 붇다에게 질문 하기를"우리가 열심히 노력해서 깨달음에 도달하면 우리는 어떤 상태에 있게 됩니까?
해탈(moksha,절대적인 대자유의 상태)하는 것입니까?"라고 물었을때 붇다는 대답하지 않았었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질문인가? 대자유는 그것을 추구하지 않을때 그 상태에 도달하는 것인데 그것을 목표로 삼다니!!!
 
그래서 붇다는 기존의 해탈(대자유)이라는 개념을 버리고 nirvana(열반)라는 새로운 개념을 사용했다.
니르바나란 말 그대로 촛불을 훅 불어서 꺼뜨린다는 뜻으로서 "추구하지 않음" 이라는 뜻이다. 촛불을 꺼서
어두우니 어느것도 찾지 않는다는 뜻인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광기는 그 "추구하지 않음"이라는 니르바나를 하나의 목표로 설정하고 다시 그 니르바나를 추구하기
시작했다.붇다가 고심해서 만들어낸 차별화된 용어를 왜곡해 버린 것이다. 그후 불교가 중국으로 전해지고 선불교가
일어나면서 선사들은 이 니르바나라는 용어도 이제 붇다 당시의 해탈이라는 용어와 같이 오염되었다고 판단해서
무심(無心)이라는 용어를 새로 만들어서 쓰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뜻이 아무것도 추구하지 않는 텅빈마음 이라는 뜻인데 이제 선방에서는 그 무심을 얻기 위해서 노력하는
똑같은 어리석음을 저지르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좌선(坐禪)이라는 단어에 유의 해야한다. 그야말로 우리가 하여야할
전부는 그냥 조용히 앉아 있는 것일뿐이다. 그것으로 완벽하다. 에고는 자신을 둘로 나누어 게임을 벌인다.추구하는자도
나이고 추구하는 대상도 나이다. 추구하는 행위 자체가 나를  이미 분열시켜 버렸는데 어떻게 본래의 내 자신이 될수 있겠는가?
나를 추구한다는 노력 자체가 장애가 될것이다. 
 
왜 우리는 우리의 삶에 목표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삶 자체가 목표라는 것을 왜 우리는 망각하는가?
왜 우리는 내일이라는 제단에 오늘을 희생해야하는가? 지금 이순간에 존재하는 것이야 말로 삶을 놓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을 모르는가?라는 것이 붇다의 깨달음이다. 불교(말그대로 붇다의 가르침)란 지금 이순간에
존재하는 삶의 방식이다. 모든 목표를 추구하는 것이 지금 이순간의 삶을 살아가는데 가장 큰 장애물인 것이다.
나는 안다. 인간의 광기는 또다시 지금 이순간에 존재하기 위하여 목표를 설정하고 노력할 것이라는 것을....
 
인도의 시성 타고르는 호수가 낀 대저택에서 살고 있었다. 그는 호수에 배를 띄우고 선실안에서 독서하는 것이
취미였는데 그날은 아름다운 보름달이 호수에 떠 있었고 호수가의 숲에서는 뻐꾸기가 우는 아름다운 밤이었다.
그가 독서하는 책은 미학(美學,아름다움)에 관한 책이었다. 순간 바람이 불어 선실안의 서재의 촛불이 꺼져 버렸다.
그순간 선실안으로 밀려드는 달빛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그때 타고르는 깨달았다. 내가 아름다움에 관해서 알려고
노력하고 있을때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몰랐다. 그러나 촛불이 꺼지고 아름다움이 무엇인지를 추구하지 않을때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장애물은 바로 촛불이었다.
 
나라는, 에고라는 촛불만 꺼지면 무언가를 추구하는 행동만 멈춘다면 그것은 바로 지금 여기에 있지 않겠는가?
 

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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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라는 옷

공감(共感) 2009. 4. 10. 13:51

김기태선생 www.be1.co.kr 의 성경해석을 보고 성경에 대한 교만한 마음을 버리기로 했다. 내가 모른다고 해야지, 성경이 수준낮은 책이라고 할 일이 아닌 것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성경보다는 도덕경이, 예수의 가르침보다는 붓다의 말씀이 더 와닿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밑의 글은 김어준의 한겨레칼럼이다. 이 부부의 문제는 둘 다 틀리지 않다는데에 있다. 남편은 맞고, 아내도 맞다. 남편은 기독교란 옷이 맞고, 아내는 기독교란 옷이 맞지 않은데, 남편은 맞지 않는 옷을 아내에게 입으라고 하니 해결은 요원하다. 문제는 기독교옷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기독교라는 옷이 반드시 좋다고, 맞을 것이라고, 맞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에게는 옷이 맞지 않는다는 생각은 없고, 그 옷이 맞지 않는 사람들이 글러먹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그들과의 대화는 불가능하다.

다른 모든 조건이 다 들어맞아도, 종교 - 다시 말해 삶과 세계를 보는 관점이 다르면 같은 길을 가기가 어렵다. 더군다나 평생 동지이자 평생 서로간에 스승이 되어야 할 부부의 길이라면 그 길은 더욱 지난한 길이 될 것이다.

물론, 둘 중의 하나가 먼저 도달한다면, 해결이 나겠지. 때로는 그런 인연으로 그 길에 접어들수도 있는 것이고. 그래서, 악처(또는 악부)가 어떨때는 스승이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http://www.hani.co.kr/arti/SERIES/153/348736.html
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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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글은 번역가 손민규의 글이다. 깨달음의 길은 세상의 흐름에 거스르는 길이라 생각하기 쉽다. 나 역시 그래왔고, 여전히 그래 보인다. 그렇다면, 성문4과의 첫번째 단계는 '역류과'라 해야하지 않을까?
하지만, 밑에서 보다시피 그 이름은 역류과가 아닌 '예류과'이다. 삶에 나를 맡기는 것이다. 다만 나는 그것을 지켜볼뿐. 그러니, 세상에 거스르는 것이 아니라 오쇼의 가르침대로 흘러갈 뿐이다. 사실 헤엄치려해도 헤엄칠 수 없는 것이 삶 아닌가?

預流果
예류과 the fruit of entering the stream
[내] 아라한의 지위에 이르는 단계를 나타내는 4과(果) 중의 제1과. 삼계(三界)의 견혹(見惑)을 모두 끊고서 비로소 성자의 흐름에 들어섰다는 뜻. 깨달음으로 향하는 흐름에 갓 합류한 경지. 성자의 대열에 갓 들어선 자로서의 과보. 수도(修道)에 들어선 지위. 이것을 향해 수행하고 있는 과정을 예류향이라고 한다.

 
'평상심이 도'라는 선가의 경구가 있다. 오쇼의 십계명과 그다지 달라 보이지 않는다.




오쇼 십계명
등록인 요잔 등록일 2009.04.10 | 조회: 50
첨 부

오쇼가 아차리야 라즈니쉬(Acharya Rajneesh)로 불리던 초창기에
누군가'십계명'과 같은 계율을 알려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이에 대해 오쇼는 "그것은 참으로 어려운 문제이다. 나는 어떤 종류의 계율에도 반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순전히 재미삼아 말한다면 나의 계명은 이렇다."고 하면서 아래와 같은 십계명을 제시합니다.
 
1. 그대 자신의 내면에서 나오는 음성과 일치하지 않는다면 어느 누구의 명령에도 복종하지 말라.
2. 삶 자체 외에 다른 신은 없다.
3. 진리는 그대 안에 있다. 다른 곳에서 진리를 찾지 말라.
4. 사랑이 기도이다.
5. 무(無)로 돌아가는 것이 진리로 들어가는 문이다. 무 자체가 수단이고 목적이며 궁극의 성취이다.
6. 삶은 지금 여기에 존재한다.
7. 깨어있는 삶을 살아라.
8. 헤엄치지 말고 흘러가라. (흐름을 거슬러 헤엄치지 말고 흐름과 하나가 되어 떠내려가라.) 
9. 매 순간 죽어라. 그것이 매 순간 새롭게 태어나는 길이다.
10. 추구하지 말라. 진리는 여여하게 존재한다. 모든 것을 멈추고 그저 보라.
 
오쇼는 3,7,9,10번 계명을 강조했습니다.
이 십계명은 그 자신의 말대로 순전히 재미삼아 나열해 놓은 것입니다.
하지만 이 열 가지 항목에 그가 전하고자 한 핵심적인 메시지가 들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아, 제가 이렇게 말하면 안 되는군요.
재미삼아 한 말이 너무 심각해질 수도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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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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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세화칼럼] 보잘것없는 사회
http://www.hani.co.kr/arti/SERIES/114/345587.html

마름이 자유인을 심판하는 것도 보잘것없는 사회의 한 단면이겠다. 지난주 교원소청심사위원회는 학생들에게 일제고사 대신 체험학습을 허락했다는 이유로 파면, 해임된 일곱 교사 중 파면된 세 교사만 해임으로 바꾸는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의 정치적 결정을 내렸다. 국방부는 이명박 정권의 반동적 성격을 스스로 드러낸 불온서적 목록지정에 맞서 헌법소원을 냈던 두 법무관을 파면했다. 분단 이래, 아니 일제 강점기 이래 “나서지 마, 다쳐!”는 난세를 살아남는 요령이면서 사회귀족으로 출세하기 위한 일차적 조건이다.

불의를 보더라도 눈을 질끈 감아라.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고 나아가 출셋길도 열린다. 옳고 그름을 따지지 말고 설령 옳다고 믿더라도 행동에 나서지 마라. 나서 봤자 나만 손해라는 점, 이 땅의 역사는 충분히 가르쳐주었다. 이젠 젊은이들도 이를 체득한 듯 불의에는 아예 분노하지 않으며 불이익에도 더 큰 불이익이 되돌아오지 않는다는 확신이 서야만 분노한다. 서민의 삶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음에도 이명박 정부가 부자 감세의 외길을 갈 때, 대학생들이 한나라당의 대학등록금 반값 공약을 지키라는 당연한 요구에도 나서지 않는 첫째 이유도 “나서 봤자 나만 손해”라는 점에 있을 것이다. 이명박 정권의 반동 시기가 과거 박정희, 전두환 권위주의 독재시절과 다른 점 중 하나는 일상적 고문이 사라졌다는 점이다. 지금도 나섰다간 체포, 구속되고, 파면, 해임되지만, 그래도 고문은 당하지 않는다. 이 중대한 변화가 있음에도 사람들이 행동에 나서지 않는 것은 ‘나서 봤자 나만 손해’라는 주장이 물신 지배와 함께 강력하게 관철되기 때문이리라.

삼성 엑스(X)파일 사건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또 하나의 진실이 있다. 삼성 재벌의 떡값을 받아 챙기는 허접스런 검사일수록 검찰 안에서 삼성이 관리할 필요를 느끼는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는 점이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조직에서 악화들끼리는 유유상종하여 긴밀히 유착하지만 자유인은 외톨이가 되기 쉽다. 검사 이전에 인간으로서 염치가 있어서 떡값을 받지 않는 검사는 삼성이 관리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 자리에 머물거나 그 염치 때문에도 신영철 대법관과 달리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다. 사회 변화는 “아니오!”라고 말할 줄 아는 소수의 사람에게 빚지는 법이며 어느 사회에서나 “아니오!”라고 말하는 사람은 소수이기 마련인데, 한국에서는 그 소수조차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자리에 오르기 어려운 구조인 것이다.

이 보잘것없는 사회에 맞서겠다는 진정한 자유인이 있다면 그에겐 엄청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먼저 이 보잘것없는 사회가 인정하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 사회는 결코 끼어들 기회를 주지 않는다. 그다음, 이 보잘것없는 사회가 인정한 그대의 능력이란 게 당연히 보잘것없다는 점을 인식하고 자기 성숙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끝없는 자기와의 싸움이 될 것이다. 이번에 파면, 해임된 교사와 법무관이 지금까지처럼 앞으로도 그래야 하듯.

반면에, 이 사회가 인정한 능력을 갖고 있기에 언제라도 이 사회에 안주할 수 있다. 그래서 자신과 끊임없이 싸우는 어려운 길을 택하기보다는 그 안에 안주하는 자신을 긍정하려고 이 사회에 대한 시각 또한 비판적이기보다는 긍정하는 쪽으로 기울 수 있다. 이 위태로운 도정에서 진정한 자유인의 의미를 되새김질할 것을 기대할 수밖에 없다. 이 사회가 조건 지운 보잘것없음에서 벗어나기 위해.

홍세화 기획위원hong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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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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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log.ohmynews.com/js1029/197965


음양오행을 과학이랄 수 있는가?
(과학사상 1993. 봄여름호) 

* 이 글은 도올 김용옥선생이 과학사상 1993년 봄여름호에 권두논문으로 쓴 글이다

지난 3월 6일 밤 나는 여의도로 가는 자동차간에서 필립 코노와 재미난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나는 이날 코너와 예술의 전당에서 플룩수스 공연을 했다. 럿커스대학의 교수로 은퇴한 코너(Philip Corner, 1933 ∼)는 백남준을 통해 우리에게 알려진 플룩수스 운동의 대표주자 중의 한 사람이며 현대음악의 특이한 영역을 개척하여 구제적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플룩수스(Fluxus)란 헤라클레이토스의 플럭스(Flux)를 연상해 보면 그 어원적 의미를 확연히 알 수 있듯이, 어떤 고정적 룰을 거부하며 가능한 소리(noise)를 모두 음악의 대상으로 삼으며 또 때로는 디컨스트럭션 그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는 예술운동이다. 이 날 딕 히긴스(Dick Higgins)와 제프리 헨드릭스(Geoffrey Hendricks)의 공연이 있었고 코너와 나는 플룩수스와 오랜 교분은 없지만 내가 최근에 펴낸 책《石濤畵論》속에서 백남준의 예술과 그가 속한 플룩수스의 역사적ㆍ철학적 성격을 논구한 것이 계기가 되어 이들과 인연이 생겼다. 그들이 추구하는 임의성(randomness)은 《周易》에 뿌리를 둔 것이고, 그들의 아나키즘은 老子의 ‘無爲’에서 그 근거를 찾은 것이다.

코너는 나에게 요즈음 자기 유럽친구들이 14음계음악이나 25음계음악이니 하고 컴퓨터로 작곡하고 또 세밀한 음을 합성해 내곤 하는데 다 개지랄 같은 것이라고 했다. 자기는 한국사람들의 5음계음악이 훨씬 더 심플하고 듣기 좋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컨템퍼러리 전위음악에 달통한 그로서는 서양의 전위적 시도를 좋아할 것 같은데 한국의 전통 5음계를 좋다고 말하는 그의 태도는 나에겐 약간 의외였다.

아무 줄이나 팽팽하게 해놓고 두 점을 고정시키고 튕기는 소리에 대하여, 그 반을 잡고 튕기면 항상 정확하게 한 옥타브가 올라간다. 다시 말해서 한 옥타브의 음가란 인간이 인위적으로 정한 것이 아니라 자연의 질서(the Order of Nature)이며, 이 자연의 질서란 제일성(Uniformity)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東이나 西, 古와 今을 가리지 않는다. 예나 지금이나 아프리카에서나 잉글랜드에서나 제주도에서나 모두 이 옥타브라는 음가는 不變의 절대치다.

그런데 음계란 이 옥타브라는 음가를 나누는 방식에 관한 것이다. 이 음가를 다섯으로 나누면 5음계요, 일곱으로 나누면 7음계요, 스물다섯개로 나누면 25음계다. 그러나 음악이란 명백한 또 하나의 전제를 가지고 있으니 그것은 사람의 ‘귀(Ear)’라는 것이다. 귀란 고막(tympanium)과 중이, 내이 등으로 구성된 진동과 증폭과 신경전달장치인데, 이 귀(auditory system)에 의하여 분별가능한 비율의 소리를 인류는 음계로 채택해 왔던 것이다. 그런데 이 제한된 음가를 많이 나누면 나룰수록 정교한 음악이 될 것이 같지만, 사실 5음계음악이라 해서 그 다섯 배가 세밀한 25음계 음악보다 덜 복잡하고 따라서 유치한 음악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아무것도 없다. 인간의 가칭성(audibility)은 분명 생리적 한계가 있는 것이며 5음계로 이루어진 음악이라 할 지라도 무궁하게 복잡한 멜로디나 리듬이 가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하튼 우리의 논의를 쉽게 해본다면, 베토밴의 바이올린 콘체르토나 김소희의 창이나, 그것이 7음계에 기초했건 5음계에 기초했건, 하여튼 음악은 다 같은 음악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동굴 속에서 타악기를 두드렸던 원시인이나, 바로크 궁전에서 정교한 바이올린을 켜는 근세유럽의 악사나, 컴퓨터로 둘러싸인 스튜디오에서 정교한 음악을 만들어 내고 있는 현대음악 작곡가나, 인간의 청각이라는 절대적 한계를 전제로 하고 있고, 또 청각 그 자체의 가청성은 음의 진화를 따라가지 않는 무진화적 그 무엇이기 때문이다.

나는 과학이라는 것을 제대로 공부해 본 적이 없다. 그래서 과학이 무엇인지를 잘 모른다. 더구나 중ㆍ고시절에 수학을 모조리 빵점만 받은 경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지금 아무리 과학공부를 하고 싶어도 과학을 이해할 수 있는 기초가 없다. 그래서 사실 나는 음양오행이 과학이냐 아니냐를 따질 자격이 없다. 과학이 뭔지를 정확히 알아야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기준이 설 수 있을텐데, 나에겐 그 정확한 기준, 즉 ‘과학관’이 부재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런 글을 쓸 수가 없다고 했다. 그런데 나의 장형 김용준이 과학사상이라는 잡지의 편집인이라서 나에게 쓸 수 없는 글을 강요한 것이다. 조르고 졸라 거의 강압적으로 쓰라고 했다. 그래서 쓰고 싶지 않은 글을 억지로 쓴다. 나는 여태까지 쓰고 싶지 않은 글, 남에게 부탁받아 쓰는 글, 써서는 안 되는 글을 써 본 적이 없다. 이 글은 아마 내 인생에서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쓰는 강요된 글, 쓰고 싶지 않은 글이 될 것이다. 하룻밤을 지새우며, 노모가 눈물겨웁게 부탁하시는 조상비문 쓰는 일도 미뤄놓고 억지로 붓을 옮긴다. 독자들에게 미안할 뿐이다.

한의과 대학을 다녀보니, 학교 커리큘럼에서 무분별하게 던져지는 강의 내용이 그것을 수강하는 동일한 실체인 나에게 과연 어떻게 해석되어야 할 지를 형량할 수조차 없는 사이에 넘어가 버린다. 화학개론시간이나 생화학시간에는 아톰에 대해서 배우고 주기율표에 대해서 배우고 또 단백질의 3차구조에 대해서 배운다. 그리고 한의학원전시간엔 오행에 대해서 배우고 한방생리나 병리시간엔 오행에 의한 장상(臟象)이론에 관해 배운다. 이 양자를 배우는 시점은 모두 20세기 최종 데케이드며, 또 가장 최신의 후마니타스 교육체제 내에서 현시과학이론으로서 양자를 같이 배우고 있는 것이다. 고등학교만 나온 한의대생들이 비록 커트라인을 300이 넘어다고 하지만 수소니 우라늄 운운하는 100여 개의 원자와 금ㆍ목ㆍ수ㆍ화ㆍ토라 하는 다섯 개의 오행의 문제를 도대체 어떻게 동일한 의과학(Medical Science)이라는 장(field)속에서 받아들이고 해석하고 있는지 나는 알 수가 없다. 아마 그들은 나보다는 갈등을 느끼지 않는 진화된 천재들일 것이다. 호모사피엔스는 네안데르탈인 이후로도 꾸준히 진화하고 있으니깐-.

인류가 우발적인 계기로 언어를 갖게 되었고 , 언어를 갖게 된 이후로는 즉 대뇌피질의 언어중추가 발달된 이후로는 어떠한 개념을 통하여 자기가 살고있는 세계 (Environment=World=Welt)를 해석하지 않으면 안 되는 운명을 지니게 되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나타난 우주는 무지하게 복잡한 것이었다. 복잡(complexity)의 극치는 혼돈(choas)이다. 혼돈이란 ‘언어 이전(pre logicality)’이다. 혼돈 속엔 논리가 있을 수 없고 느낌(Feeling)만 있다.

그런데 이 혼돈을 깨고 나온 것이 언어요. 개념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언어의 발생 이후에도 역시 우주는 매우 복잡하게 나타났다. 나무를 나무라 했어도 나무라는 개념으로 다 규정해 버릴 수 었는 나무의 실상(實相)이 있다. 현상(apperance)은 개념으로 다 정리가 될 수 없었다. 그래서 이 복잡한 것을 단순한 것으로 환원시켜 설명하려는 노력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그들에게 있어선 유일한 방법이었다. 즉 복잡한 것을 단순한 것으로 환원시키는 방법 이외의 딴 방법으로는 자기들이 살고 있는 세계를 설명할 길이 없었던 것이다. 나는 이러한 모든 생각의 방향을 통틀어서 환원주의(Reductionism)라고 부른다.

그러니깐 화학개론시간에 화학선생님이 가르쳐주시는 주기율표 속의 103개의 원자나 한의학 원전시간에 한방선생님이 가르쳐주시는 5개의 행(行)이나 나는 모두 내가 말하는 환원주의의 소산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그래서 나는 한의대 수업 받는 책상머리에 앉아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물론 이런 생각은 내가 워낙 무지하기 때문에 해 본 생각일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를 103개로 환원시켜 설명하는 발상에 과학(science)이라는 말을 서슴치 않고 붙일 수 있다고 한다면, 그와 같은 동일한 논리에 의하여 이 세계를 5개로 환원시켜 설명하는 발상도 서슴치 않고 과학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5음계로 짓든 25음계로 짓든 다 음악은 음악이지 않는가? 그러나 실상 이런 말을 정당화(justification)하는 작업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하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최소한 이 세계를 103개로 환원시켜 설명하는 발상을 뒷받침하고 있는 인식의 구조를 재배하는 논리에 상응되는 논리가 5행에 있어서도 마련되어 있지 않으면 그것은 금방 비과학(pseudo-science)으로 간주되어 버리고 만다. 현대인들은, 그리고 최소한 이 글을 읽는 고명하신 지식인들은 그렇게 훈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5행을 말하는 자들은 매우 설득하기에 이미 불리한 대상을 갖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앞의 문장에서 ‘논리에 상응되는 논리’라 한 구절의 ‘상응성’의 실내용이 과연 무엇인지, 그 정도를 가늠질하기가 매우 어렵다. 한 논리를 구성하는 요소는 신택스나 시맨틱스, 모폴로지, 포놀로지, 그리고 세미오틱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측면이 있을텐데, 단순히 신택스(통사론)만을 가지고 얘기한다면 몰라도 그 이상을 넘어 시맨틱스(의미론) 등등까지 운운케된다면, 즉 그 상응성의 구조가 한 문장을 구성하는 어휘의 의미에까지 미치게 된다면, 사실 이 양자의 과학을 상응시키는 작업은 실제로 블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더 싑게 말하면 103개 아톰의 논리를 구성하는 어휘와 같은 어휘로써 5행을 말해야 과학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상응성(correspondence)이라고 말한다면, 사실 나는 이 글을 써야 할 하등의 이유를 발견치 않는다. 그 이상으로 넘어가 버리면 과학의 문제가 아니라 언어의 권력의 문제가 되어 버릴 것이며, 과학 자체의 정치성의 영역이 되어 버릴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치란 쎈놈이 왕땅이다. 과학적 진리도 쎈놈이 말 많이 하면 진리가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의‘과학’이라고 부르는 인식체계에 적응되어 있는 인식구조를 지닌 다수가 존재하는 세계에선 그 이외의 인식은 비과학으로 되어버릴 수 밖에 없는 것이며, 이 비과학이 어떤 어휘를 구사하든지간에 그것은 과학에 상응하는 어떤 논리로 받아들여질 수가 없을 것이다. 최소한 나는 이 《과학사상》잡지의 독자들은 그런 무지막지한 사람들은 아닐 것이라는 희망 때문에 이 글을 쓴다.


그런데 내가 이런 으름짱을 놓기 전에 이미 사계에 정통하고 있는 과학자들이나 과학사가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현대 생화학이나 분자생물학이 말하는 핵산이나 단백의 원자ㆍ분자를 어떻게 한의학이 말하는 5행과 동일한 과학의 디멘젼에 가져다 놓을 수 있는가? 서양에서도 이미 존 달톤(John Dalton, 1766∼1844)이 근대적 원자론(morden atomism)을 확립하기이전에 로마의 루크레티우스(Lucretius)라든가 희랍의 레우키푸스(Leucippus)나 데모크리투스(Democritus)가 철학적으로 원자론을 다 정립해놓았고, 5행이란 기껐해야 그 원자론 이전의 엠페도클레스의 4원소설 단계의 것일 뿐이며, 엠페도클레스의 4행설 이전에는 탈레스의 水1행설까지 올라갈 판이다.
그렇다면 5행이론과 단백의 분자구조를 동일과학의 차원에서 얘기한다는 것은, 동ㆍ서로 얘기할 필요가 없이, 서ㆍ서로 얘기해도 왓슨과 트릭의 혤릭스구조를 엠페도클렉스의 네뿌리(Four Roots)설과 같은 차원의 과학으로 얘기하라는 꼴이 될 것이니 어디 말이나 될 얘긴가? 철학도들의 형이상학적 달변으로는 적당히 구라가 통할지 모르겠으나 우리 과학도들의 입장에선 엠페도클레스의 프레그먼트를 크릭의 연구논문과 같이 취급하라는 것이니 도무지 얘기가 되지 않는다. 이러한 논박은 사실 매우 정당한 것이며 또 매우 상식적인 것이며, 누구든지 이러한 논의에 대하여 정확한 답변을 하지 못한다면 오행의 과학성은 어떠한 방법으로든지 입증될 길이 없을 것이다. 즉 음양오행 운운하는 것은 별종의 과학(a different Kind of science)이 아니라, 전근대적 과학 즉 과학 이전의 지식체계에(pre-scientific knowledge)에 지나지 않을 뿐이라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반론에 적극 찬동한다. 허나 이러한 반론의 주창자들이 얼마나 무식한 자들인가 하는 것을 나는 동시에 알고 있기 때문에 항상 가슴이 갑갑한 것이다.


불란서의 현대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Bachelard, 1884∼1962)는 불의 정신분석 등의 저술을 통해, 그 자신이 화학 물리에 정통한 현대과학의 소양을 지녔으면서도 엠페도클레스의 4원소설적 세계관을 회복하는 길만이 인류를 현대과학의 폭력으로부터 구원하는 길이라고 외쳤다. 허나 나는 지금 치사하게 바슐라르의 엠페도클레스적의 세계관의 정당성 주장을 빌어 간접적으로 오행적 세계관의 정당성을 입증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5행관이 엠페도클레스의 4원소설과는 얼마나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며, 다른 인식론적 기반 위에서 있느냐 하는 것에 관한 것일 따름이다. 엠페도클레스의 4원소설은 바슐라르가 회복되어야 할 것으로 외치고 있는 골동품일 뿐인데, 어떻게 5행은 아직도 당당히 20세기 길거리에서 하나의 과학으로서 외쳐지고 있는가?

다시 말해서 어떻게 해서 엠페도클레스는 후대의 이론에 의해서 부정당하고 무당짓거리 고대사상으로만 남아 있는데 반해, 5행은 20세기에도 동아시아 문명권에서만 아니라 구미 문명권 속에서조차 한의과대학이라고 하는 체제를 유지하는 정도의 지속력을 가질 수 있느냐? 하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허나 우리는 바슐라르를 읽을 때 다음과 같은 그의 착상에 주의를 요할 필요한 있다. 그가 말하려는 것은 현대과학을 버리고 엠페도클레스의 地ㆍ水ㆍ火ㆍ風에로 복귀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火를 일례로 들자면, 우리가 지금 보통 불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것을 생각해 보자! ‘불’은 언어다, 즉 언어적 개념이다. 이 언어는 지칭하는 대상성을 갖는다. 비트겐슈타인은 언어는 사물의 지도같은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 지도의 모습은 우리의 인식이나 관념의 변천에 따라 역사적으로(diachronically) 변한다는 것은 누구든지 아는 것이다. 소쉬르(Ferdinand de Saussure,1857∼1913)는 불행하게도 현대 언어학의 대상으로서 언어의 통시적 구조를 제외시키고 공시적 구조만을 문제삼았지만, 우리의 논의에 있어선 통시적 구조야말로 관심의 대상이 아니 될 수 없다.

사실 우리는 상식적으로 불(fire)이라 하면 밥해먹을 때 태우는 가스불이나 소방서차가 와서 끄는 활활 타는 불, 성냥으로 그어대어 일어나는 불, 그런 불만을 불이라고 외연적으로 지칭하고 있지만 이러한 불에 대한 인식은 이미 불이라는 우리의 언어를 규정하고 있는 세계관의 소산일 뿐이며, 이러한 불의 상식적 규정은 과학적 엄밀성이라는 근대 세계관적 그리고 광물학적 화학적 인식에 의하여 끊임없이 그 외연이 축소되어 온 결과라 아니할 수 없다.

우리의 언어를 살펴보면, ‘불같은 정열’이라고 할 때 정열로서의 불이라든가, ‘울화가 치민다’라고 할 때의 화라든가, ‘화가 났다’ ‘홧병이 났다’라고 할 때의 화, 그러한 불을 저기 활활 타는 불과 같은 실체로서 파악하는 능력을 어느 시절엔가 상실해 버림으로써 과학이라는 어떤 면허증을 땄을지도 모른다. 허나 고대인들의 언어의 지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는 같은 불이라는 말이라 할지라도 그 외연이나 내연이 모두 다른 것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지도(topology)가 다르다는 것은 지도제작기술이 변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곧 인식의 방법(epistemology)이 다르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 것이다.

저기 벽난로에서 훨훨 타는 불을, 격렬한 산화(oxidation)작용의 표현이라고 한다면, 원자폭탄에 대해 원자로가 있듯이, 우리 몸 속에선 200개가 넘은 다양한 산화환원효소(oxidoreductase)에 의해 다수의 유기물이나 무기물이 산화환원되어 그것에 의하여 필요한 물질을 합성하고, 불필요한 유해한 물질을 대사하고, 또 생활에 필요한 에네르기를 획득하는 작용이 있을 것인데 이러한 작용을 총칭하여 불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ATP가 방출하는 에너지도 불이며, 무리 몸에서 따끈하게 느껴지는 체온도 불이다. 결렬한 자연의 과정을 효소를 이용하여 느리게 만든다고 그것이 불이 아닐 까닭이 없다. 고대인들이 저기 저 하늘에서 훨훨 타고 있는 저 불덩어리인 태양을 불이라 생각했고, 또 그 태양이야말로 神이라고 생각했다면, 하나님은 곧 불일 것이요, 불은 곧 빛이니 하나님은 곧 빛이 될 것이다. 그리고 천지에서 가장 무제약적 에너지를 일방적으로(피드백이 없이) 발출하는 저 태양이랴말로 불이라 한다면, 나의 인체라는 우주(宇宙)에서 에너지의 가장 직접적인 보고인 피를 계속 순환케 만드는, 일순간도 쉼이 없는(잠잘 때도 깨어 있을 때도,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가지 한순간의 쉼도 없는 것으로 촉각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것) 심장을 저기 저 태양과 동일한 것으로 생각하고 불이라 생각한 것도 쉽게 이해가 갈 것이며, 따라서 내가 존재한다고 하는 生命力(Life Force) 그 자체를 불이라 생각할 것은 뻔한 이치다.

그렇기 때문에 몸에서 이 불을 어떻게 다스리느냐? 잘못하면 너무 심하게 활활 타버리고 잘못하면 피직피직 꺼져 버리고 마는 이 불을 어떻게 항상적으로 유지하느냐 하는 것을 의사의 임무로, 인간의 삶의 기본철학으로 생각한 것도 이해가 가는 일이다. 이 불의 균형이 깨져 불이 활활 타는 현상을 감정과 관련시켜 울화가 치민다든가 성화가 났다라고 표현한 것도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뿐만 아니라 내 몸에 불이 있고 그 불이 내 몸의 생명력이라고 한다면 저기 저 산천초목 속에도 생명이 있는 이상 불이 있을 것은 뻔한 이치다. 따라서 고추나 생강을 깨물 때 화끈하게 달아오는 매콤한 맛을 그 생명체의 불이라 생각한 것도 당연한 것이며, 이 불을 내 몸에 집어넣어 내 몸의 불을 어떻게 관리하느냐 하는 것을 생각한 본초학적 발상도 결코 이치가 없는 엉뚱한 짓만은 아니다.


엠페도클레스가 말하는 地水火風의 火든 五行의 金木水火土의 火든지를 막론하고 이런 고대 철학적 어휘를 대할 때는, 암암리에 우리가 상식적으로 쓰고 있는 현대적 어휘의 의미론에 입각하여 그 고전을 해석해 버리고 마는 해석학적 상상력의 빈곤(the poverty of hermeneutical imagination)이야말로 바로 과학적 사유의 초보를 좌절시키는 현대 과학도들의 우매성이라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바슐라르가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과학의 역사적 내용이 아니오, 과학의 본질에 관한 것이다. 그가 말하는 과학이란 바로 아니오를 말할 수 있는 철학(philosophy of saying ‘no’)이다.

과학이란 인간과 우주를 포함한 완정(完整)한 진리(total truth)앞에 항상 개방되어 있어야 하는 것이며, 이 완정한 진리는 이성과 감성의 이분을 허용하지 않는다. 과학은 항상 새로운 경험의 토대 위에서 재형성되고 재조직(reformulation)되는 사태를 두려워할 수 없다. 다시 말해서 과학은 이성의 엄밀성 뿐만 아니라 자유로운 상상과 환상의 느낌까지도 수용해야만 하는 것이다.

오늘날 현대과학이 오행적 인식으로 진입하는 데 최대의 난관의 되고 있는, 바로 이러한 개념적 엄밀성이라는 미명 아래 상상력의 빈곤 속으로 함몰되어 있다는 사실인 것이다. 그리고 부분적인 진리의 엄밀성은 확보했을지 몰라도 전체적 진리의 포괄성을 인식하는 데 너무도 인색한 꼴을 보이고 있다.

나는 과학의 궁극적 임무가 상식의 분석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나 종종 나에게 나타나는 과학의 모습은 너무도 명백한 상식의 거부다. 그리고 이러한 상식의 거부가 더 큰 상식을 창출하기 위한 과정적 단계(transitory steps)로서 이해된다면 관용될 수 있는 것이나, 특히 의과학(medical science)의 분야에 있어선 그러한 상식의 거부가 부지불식간에 수많은 사람을 살해하는 처참한 죄악까지도 저지를 수 있다면 그것이 아무리 과학적인 언어를 뒤집어쓰고 있다 해도 그것은 확실히 과학이 아니 것이다.

엠페도클레스의 4원소설, 地水火風에 대해 아리스토텔레스가 엠페도클레스야말로 4원소설을 주장한 최초의 사람이며 그의 4원소설은 알고 보면 4원소설이 아니라 火를 하나로 보고 그에 대립하는 地ㆍ風ㆍ水를 하나로 보는 2원소설이다라고 그의 유명한 ≪형이상학≫에서 언급하고 있기 때문에 엠페도클레스의 독창성을 아무도 의심치 않았다. (Empedocles, then, incontrast with his predecessors, was the first to introduce the dividing of this cause, not positing one source of movement, but different and contrary sources. Again he was the first to speak of four material elements; yet he does not use four, but treats them as two only ; he treats fire by itself, and its opposites - earth, air, and water - as one kind of thing. we may learn this by study of his verses. ≪Metaphisics≫ 985a 31.)

하지만 이 4원소설의 발상은 이미 엠페도클레스이전의 피타고라스학파의 수리 형이상학에 내재하고 있었으며, 특히 피타고라스학파에 속한 의가였던 크로톤의 알크메론(Alcmeaeon of Croton)의 건강론, 즉 寒(cold)ㆍ熱(hot)ㆍ燥(dry)ㆍ濕(wet)이라는 대립적 힘 사이의 균형에 의하여 건강을 설명하는 방식의 문제가 지수화풍과 결합할 때 소위 체질이라는 것이 생겨나며, 이것이 나중에 플라톤과 동시대였던 히포크라테스(Hippocrates, c, 460 BC∼c. 377B.C. )의 체액체질론으로 발전되는 것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사실 앞서 인용한 아리스토텔레스의 구절에서 火 : 地風水 二元의 논리맥락은 엠페도클레스와 헤라클레이토스의 어떤 논리적 연결을 강력히 입증하는 것이지만 하여튼 이 地水火風의 이해방식의 다단함을 보여 주는 것이다.

고대인들의 세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는 넓게 교류되어 있었다. 엠페도클레스의 地水火風에 대해 우리같은 동아시아 문명권의 대선배인 12세기 朱熹(1130∼1200)가 명료한 코멘트를 이미 남기고 있다는 사실은 그리 놀라운 것이 아니다. 주자는 地水火風에서 地水를 땅적인 것으로 보아 인체에 있어서의 魄(P'o)의 문제와 결부시켰다. 魄이란 요즈음 말로 하면 인간의 몸에 있어서의 엔트로피의 증가현상이며, 魂이란 엔트로피의 감소현상이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죽음이란 魂에 대한 魄의 완전한 승리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風火가 먼저 흩어져 버리고 나서 서서히 地水가 흩어지게 되면 평온하다. 허나 地水가 먼저 흩어지게 되면(불시의 사고로 몸이 먼저 상하여 죽는 케이스를 말함) 그것은 액을 불러일으키는 귀신(崇)이 되게 마련인 것이다. 이것은 엠페도클레스의 地水火風에 대한 朱子의 천지코스몰로지적 이해방식이다.

엠페도클레스의 4원소설은 인도의 상키야철학(Samkhya)과 공통된 세계관을 표방한 것이며(그 역사적 先後나 구체적 영향관계를 가리기는 어렵다). 이것은 불교의 四大說(maha-bhuta)을 통하여 중국에 수입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상키야철학이 인도문명에 있어서 아유르베다(Ayurveda)라는 거대한 의학체계를 성립시켰으며 현대사회에 있어서도 완벽한 연속성을 지니는 아유르베다 의과대학이 인도사회에는 의료문화의 중심으로서 자리잡고 있다.(아유르베다 의학도 매우 구체적인 체질론에 입각한 토탈 헬스케어 시스템인데 여기서는 주제가 너무 방만하여지므로 생략한다.)


희랍철학은, 특히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Pro-Socratic Philosophy)은 파르메니데스라는 무당을 하나의 분수령으로 해서 그 이전과 이후로 양분된다. 그 만큼 파르메니데스의 철학은 그 이후 철학자들에게 있어선 극복하지 않으면 아니 될 하나의 충격이었으며, 또 그들의 사유체계에 있어서 고려하지 않으면 아니 될 근원적 실재의 문제를 제기하였다. 파르메니데스는 희랍인들에게 현상과 실재의 차이를 처음으로 인식시켰으며, 감관에 나타난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는 추상적 사유를 출발시켰다. 그에게 있어서 감각적 우주는 환상이었으며, 실재하는 것은 不變 不滅의 영원한 정태로서의 실체였다. 그리고 그의 사유체계 속에서는 허공(empty)조차 인정되지 않았다. 비존재가 존재일 수는 없었다. 우리는 희랍철학의 대세를 결정한, 아니 서양철학이 바로 그의 푸트노트에 불과하다고 화이트헤드가 말했던 플라톤이 바로 헤라이클레이토스의 제자가 아니라 파르메니데스의 제자라는 사실을 확연히 기억해야 한다.

파르메니데스의 핵심은 不變과 不滅이었고 이러한 영원의 철학은 바로 그가 거스리(W.K. Guthrie, A History of Greek Philisophy, Ⅱ/11 ff)나 엘리아데(Mircea Eliade, Zalmoxis. pp. 38∼42)가 파르메니데스의 정체가 바로 지중해 연안의 무당문화 속에서 료해되어야 한다는 것을 명백히 지적한 사실에서부터 이해해 들어가야 할 것이다. 남부 이태리에서 태어나 성장한 파르메니데스는 우리가 주변에서 보는 무당과 같이 땅의 세계를 벗어나 저곳에서 자유로운 영매적 여행을 아닐 수 있는 영혼의 소유자였던 것이다. 파르메니데스와 헤라이클레이토스는 동시대임이 분명하나 서로의 생몰연대를 정확히 규정하기는 어렵다. 허나 두 사람을 비교하여 여러 측면에서 고찰컨데 헤라클레이토스는 파르메니데스 이전 철학자로 간주됨이 분명하다. (Philosphically Heraclitus must be regarded as pre- Parmeenidean. Guthrie, ibid, Ⅱ/1.)

파르메니데스 저작 속에서는 헤라클레이토스의 사상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으나 헤라클레이토스의 단편 속에서는 파르메니데스의 그림자도 없다, 이 에베소의 철학자의 핵심은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변화와 생성의 철학이며, 투쟁의 철학이다. 흔히 얘기되는 ‘판타레이’라든가 ‘불’의 상징성만으로도 헤라클레이토스의 철학은 충분히 대변될 수 있다. 그리고 탈레스의 水論으로부터 헤라이클레이토스의 火論에 이르기까지 여러 환원주의는 자연철학(natural philosophy)이라는 하나의 공통된 현상주의를 깔고 있었다.

나는 헤라클레이토스의 로고스관도 후대의 희랍철학적 발상에 윤색되어 그것을 변화에 대한 불변자로 간주하는 해석방법을 거부한다. 헤라클레이토스의 로고스는 기껏해야 라오쯔(老子)가 말하는 ‘道’ 이상의 것은 아니며, 그것은 ‘불의 길’이지 불을 지배하는 초월적 불변자가 아니다. 파르메니데스철학의 불변주의는 결국 헤라이클레이토스의 변화철학에 대한 반동이며 그것은 다시 빼낼 수 없었던 불변의 쐐기였으며 이로써 인류사상사에 있어서 동과 서가 확연히 분립되는 결정적 계기가 마련되었던 것이다.

헤라클레이토스와 엠페도클레스 양자를 파르메니데스를 중심으로 그 이전과 이후를 대변하는 사상가로 본다면 엠페도클레스의 철학적 과제는 바로 파르메니데스의 불변의 쐐기를 계승하면서도 어떻게 헤라클레이토스가 표방한 상식적 생성의 시공계를 허상이 아닌 실상으로서 살려낼 수 있는가하는 문제의식으로 집약될 것이다. 따라서 엠페도클레스의 철학적 해결방식은 파르메니데스의 불멸성은 받아들이되 그의 존재론적 일원론을 버리고 다원론의 길을 택하는 방식이었다.

엠페도클레스가 4원소라고 했을 때 원소라는 말은 희랍어로 ‘뿌리’라는 말이다. 이 뿌리라는 말은 곧 나타난 현상에 대해 그 뿌리로서의 불멸ㆍ불변의 궁극적 실재라는 뜻이다. 이 궁극적 실재는 다원적이기 때문에 이 다원적 실재의 이합집산의 다양한 방식에 의하여, 그리고 그 양적 비례관계에 의하여 다양한 현상이 실존하게 된다고 본 것이다. 피타고라스적인 水論이 첨가된 것이다. 뼈는 地둘, 水둘, 火넷으로 구성된다. 이러한 사유의 맥락속에선 실재로 변화를 상정할 필요가 없다. 변화는 불변의 실재의 이합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므로 유일한 실재는 이 四根(four root-substances)이다.

이렇게 해서 현상자체의 관심보다는 현상을 이루는 영원한 요소에 관심이 옮겨간 것이다. 이러한 불변의 요소성은 결국 다원론의 불철저성을 극복하기 위하여 일원론으로 심화될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궁극적 실재의 질적 차이를 인정할 필요가 없는 동질적 요소성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이 동질적 불변의 요소성이 바로 레우키푸스나 데모크리투스의 원자론으로 표현될 것이라는 것은 사계의 관심있는 학인들은 다 아는 일이다.


자아! 내가 여기서 말하려고 하는 것은 희랍철학사의 강론이 아니다. 단지 서양철학이나 과학의 뿌리로서의 희랍의 四根說이나 原子論이 모두 파르메니데스의 不變의 철학의 소산이라는 것이며, 바로 이 때문에 그것이 근대적 아토미즘으로 비약되면서 포기될 수밖에 없는 운명에 놓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서양의 4원소설은 어떠한 경우에도 동양의 오행설과 애초부터 같이 비교될 수 없는 것이며 근원적으로 인식론적 틀을 달리하고 있다. 따라서 그러한 원자론적 틀이 근세에 와서 어떠한 양태로 새로운 언어를 구축했다 할지라도 그러한 언어를 구축했다 할지라도 그러한 언어를 지배하는 인식의 틀은 파르메니데스나 엠페도클레스의 연속선상에 서 있는 것이며 이러한 인식론적 틀에서는 영원히 오행론의 정체는 드러날 길이 없다는 것을 명기해 두려 한다.

나는 지면의 제약으로라는 말을 매우 싫어하기 때문에 명백한 제약을 지니고 있는 이런 잡지글을 쓰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이제부터 오행과 음양을 얘기해야 할텐데 이미 말할 수 있는 지면이 사라져 버렸다. 단지 축약된 암시와 묵시만으로 이 글을 마칠 수 밖엔 없다.


五行論이 오늘날까지도 서양의 식자와 우리 나라의 과학도들에게 곡해되거나 이해가 되지 않고 있는 이유는 바로 五行의 行이 희랍의 四根說에서 오늘날의 DNA 논의에 이르기까지 그 연구의 틀을 지배하고 있는 ‘불변의 요소성’을 의미하는 것이 전혀 아니라는 사실이 일차적으로 정확하게 감지되고 있질 않기 때문이다.

金木水火土란 원소가 아니며, 요소도 아니다.
五行의 行이란 문자그대로 ‘감(going)’이다.

오행의 출발은 오늘의 高文子學이나 古文獻學, 그리고 考古學의 최신 연구성과에 비추어 이야기하자면 바람의 신앙에서 출발된 것으로 사료된다. 물론 희랍어 신약성서에도 바람을 성령이나 영적인 신성과 동일시하는 용례가 있다. 고대인들에게 있어선 바람이란 물리적 기류현상이 아닌 자연의 영적 힘을 의미했고 그것은 신적 존재의 현현(manifestatioa of divine Power)이었다. 그리고 古代중국의 河北 농경문화에 있어선 바람이라는 신적 존재의 성격이, 즉 바람의 溫ㆍ 署ㆍ凉ㆍ冷ㆍ乾ㆍ濕이 농작물(생명의 근원)의 發芽ㆍ生長ㆍ守護ㆍ貯藏과 유기적 관련을 맺고 있었다.

바람은 실상 존재(Being)가 아니다. 바람은 동적 상태며, 그것은 현현이며, 또 그 자체는 가시적인 것이 아니다. 바람에 있어서 가장 쉽게 감지되는 것은 방위였다. 東風ㆍ西風ㆍ南風ㆍ北風등, 이 바람의 방위는 생성의 단계를 규정했다. 東風이 불 때는 모든 생물이 발아하고 봄이 온다. 南風이 불 때는 무덥고, 西風이 불 떄는 선선하고 가을이 오고 北風이 불면 추위가 닥친다. 이러한 바람에 제사 지내는 社稷의 社壇을 中央土로 하여 東木, 南火, 西金, 北水의 五行이 성립해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 바람의 성격에 따라 東=靑, 南=赤, 西=白, 北=黑, 中央=黃의 五色이 결정된 것이다. 이 五色이야말로 五方神의 상징이였으며 이것이 후대에 五行사상으로 발전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五行사상의 발전은, 그러니까 체계적 코스몰로지로서의 五行의 개념은 결코 全國末期를 상회하지 않는다.


그런데 엠페도클레스로부터 히포크라테스를 거쳐 갈레노스(Galenos,A.D,129∼c.199)에 이르러 완성된 희랍의 4원소설은 체액론(humor theory)에 기초한 인체론만을 잉태시켰으며, 장기론은 해부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베살리우스(Vesalius,1514∼1565)이후에나 등장하게 된다.

하지만 五行사상은 이미 기원전 세기, 그러니까 前漢代에는 확고한 장상론을 확립하게 되며, 그것은 또 기의 흐름이라고 하는 五行的 장상론과 무관치 않은 經絡체계(Meridian System)를 잉태시키기에 이른다. 경락도 기의 오감이며 그것은 바로 行인 것이다. 그런데 이 行이 서양의 요소론과 전혀 성격을 달리하는 것은 우선 ‘불변적 존재성’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며, 그 존재에 앞서 相生ㆍ相克이라고 하는 어떤 관계성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존재가 먼저 실체적으로 있고 나서 그 실체들 사이의 관계가 生ㆍ克으로 규정된다는 뜻이 아니라, 生ㆍ克이라는 관계에 의하여 그 실체성 그 자체가 규정되고 확인될 뿐이라는 것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水生木이라는 관계가 중요한 것이며 이 관계를 도외시한 水와 木이라는 실체의 존재성은 전혀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水生木에 있어서의 水와 木은 水生木의 관계를 규정하는 기능적 허상일 수도 있다. 역사적으로도 五行論의 출발은 相生ㆍ相克의 관계로 나타났던 것이며, 불ㆍ쇠ㆍ나무ㆍ물ㆍ흙이라고 하는 환원주의적 요소적 실체성은 전혀 부각된 바가 없다. 다시 말해서 金木水火土는 기능적 언어적 개념일 뿐이며, 그것이 쇠ㆍ나무ㆍ물ㆍ불ㆍ흙이라고 하는 구체적 물질의 불변적 요소로서의 실체(elementary substances)가 아니라는 것이 인지되어야 한다.


이 金木水火土 五行論의 가장 기발한 착상은 金=肺, 木=肝, 水=腎, 火=心, 土=脾라고 하는 장상으로 그 과학성을 표출했다는 데 있다. 내가 여기서 계속 장기(organ)라는 말을 쓰지 않고 장상(organ symbol)이라는 말을 쓰는 것은 오행에 배속된 肺脾肝腎心의 장기가 우리가 생각하는 시스템상의 장기가 아니라, 金氣, 土氣, 木氣, 水氣, 火氣라고 하는 어떤 氣의 양태의 상징으로서의 전제일 뿐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장상은 장기로서의 단독기능을 중요시하는 것이 아니라 相生相克의 관계로써 형성시키는 氣의 필드를 그 장기의 실체에 선행시킨다는 사실이다.

나는 여기까지 오행에 대해서는 조금 언질을 주었으나 불행히도 본 논문에서는 음양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할 수가 없었다. 음양과 오행은 근본적으로 성격을 달리하는 것이며 역사적으로 성립된 단계도 다르고 계통도 다르다. 이 복잡한 전문적 문제를 (반드시 문헌학적 토대 위에서 논의되어야 한다) 여기 다 논술할 수가 없다. 단지 음양은 보다 인식의 원리에 관계된 것이고, 오행은 보다 대상의 원리에 관계된 것이라는 명제만을 암시적으로 남겨 두고자 한다.

외견상 엠페도클레스의 四根說과 중국고대의 五行說이 비슷해 보인다해서 兩者가 동차원에서 비교될 수는 없다. 따라서 오행설을 막연한 서양과학사의 잣대에 의하여 전근대니 전과학이니 하는 말을 함부로 뇌까릴 수도 없다. 중국고문명의 심도는 도저히 희랍인의 단순한 사유방식으로는 헤아리기 힘든 깊이가 있으며, 그것은 애초부터 뿌리나 요소가 아닌 行이었기 때문에 복잡한 관계양상을 띠었고 또 자신의 한계를 극복해 나갈 수 있는 무한한 상징성을 지녔기 때문에 어떠한 과학의 충격에도 살아 남을 수 있는 매크로-바이올로지컬한 성격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한의학을 매크로바이올로지로 규정한 것은 나의 발상을 효시로 하는 것이다. 1991년 2월 6일 대한미생물학회에서 발표.) 허나 바로 이러한 거시성과 융통성 때문에 상황성은 획득할 수 있을지 몰라도 반복가능한 엄밀성과 보편성의 측면에서 매우 믿음이 부족한 하나의 통찰(insight)로만 남아 있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자아! 이제 최초의 우리의 질문으로 돌아가자!
음양오행은 아직은 과학이 아니다. 허나 인류의 축적된 지혜를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에 의해 음양오행의 과학성은 이제부터 엄밀한 논리에 의하여 차곡차곡 입증되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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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掌篇)·2

조선총독부가 있을 때
청계천변 10전 균일 상밥집 문턱엔
거지소녀가 거지장님 어버이를
이끌고 와 서 있었다
주인 영감이 소리를 질렀으나
태연하였다
어린 소녀는 어버이의 생일이라고
10전짜리 두 개를 보였다

김종삼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320154.html#opinion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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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스님의 말이다. 이런 얘기를 볼때, 나는 생각한다.
과연 나는 틀리지 않다라고.

http://well.hani.co.kr/board/view.html?uid=253003&cline=1&board_id=jh_s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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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탈사이트 다음에는 세계엔이라는 코너가 있다. 그곳에는 각 나라방이 있어서, 다른 나라에서 살고 있는 한국인들이 글을 올린다. 유학생, 이민간 사람들, 잠시 머무는 사람들 또는 그 나라의 정보를 얻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내가 사는 곳이 호주이니 처음에 호주방에 들어갔는데 점차 다른 나라방도 들어가보게 되었다. 글들을 살펴보니 공간적인 배경은 다를 뿐, 내용은 같다는 것. 삶의 애환은 어디나 다 똑같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람들은 자기가 태어나고 자란 곳을 떠나면, 일단 어려워진다. 그것은 익숙함으로부터의 결별이고 안전함으로부터의 떠남이기 때문에 그렇다. 자기 나라를 떠나보지 않은 사람은 자기 나라의 물가가 비싼 줄 모른다. 그 사람이 물가가 비싸다고 할 때에는 '이전'과 비교해서 그렇다는 것이다. 올랐다는 것을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나라에 가게 되면 자기의 '고국'과 물가를 비교하게 된다. 한비야의 책에 보면, 동남아에서 온 노동자들이 편의점앞에서 과자를 끼니로 때우고 있길래, 집으로 데려가 계란후라이를 한판해줬다는 얘기가 나온다. 물론 자신들의 고국으로 송금을 하느라 돈도 없었겠지만, 그들에게는 '김밥천국'의 3500원짜리 밥이 아주 비싸게 느껴졌을 것이다. 대다수 한국인들은, 한국의 물가가 비싸다고 생각하는 한국인들도 김밥천국의 3500원짜리 밥이 비싸다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외국인과 내국인의 체감물가는 이렇게 다르다.


독일로 시집간 사람은 그곳에서 사는 사람인데도 미용실에 가질 않는다고 한다(밑의 링크). 소위 선진국일 수록 물가가 비싼 탓이다. 박노자는 노르웨이에서 지내는데, 4인가족이 식당에서 밥을 먹으면 한국돈으로 10만원이 넘는다고, 그의 블로그에서 말했다. 노르웨이사람들이나 독일사람들은 자기 나라의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자기 나라의 미용실에서 머리를 깎으며 살 것이다.

http://bbs1.worldn.media.daum.net/gaia/do/country/read?bbsId=N005&articleId=7614
제 이모도 대학생때 독일 유학가서 독일사람이랑 애낳고 사는데 이모는 머리길이가 짧아본적이 없어요;;미용실가기 너무 돈이 마니 들어서 만날 혼자 뒷 머리만 정리해서 항상 머리가 길어요;;; 08.10.09


나역시 지금 석달째 머리를 기르고 있다. 기르는게 아니라 깎지 못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3주에 한번 깎던 머리를 지금은 석달넘게 기르고 있는 것이다. 4년째 살고 있지만, 나는 한번도 미용실에서 머리를 깍은 적이 없다.
물가가 비싼 것이, 선진국이라고 하는 곳에 나와서 사는 사람들에게 현실적으로 닥치는 첫번째 어려움이라면, 두번째 어려움은 '문화충돌'이다. 이것과 관련되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질문이 '인종차별'에 관한 내용이다. 밑의 댓글을 보면, 한국사람들의 '인종차별'에 대한 과민증을 잘 지적하고 있다.

http://bbs1.worldn.media.daum.net/gaia/do/country/read?bbsId=E001&articleId=124
이젠 이런 식의 질문 보기도 싫어진다......질린다 질려...세계엔 어느방을 가도 꼭 이 질문은 올라오네..한국사람들은 왜 이렇게 인종차별에 벌벌 떨까..후
스스로 우리보다 못한 인종을 차별하기때문에 우리보다 더 잘났다고 생각하는 인종들도 우리한테 차별을 할 것이라는 일종의 자격지심이 아닐까요??


다른 문화를 잘 받아들이기란 굉장히 어렵다. '문화'란 존 홉스테드의 지적처럼 컴퓨터의 'OS' Operating System과 같은 것이다. MS Windows에 길들여진 사람에게 매킨토시의 화면구성과 버튼하나짜리 마우스는 굉장히 불편하다. 그 역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이질적이어서 불편하기까지한 '다른 문화'를 잘 받아들이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그것은 '나'를 객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어야 하고, 그를 바탕으로 상대방도 객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바라보아야 이해가 가능하고, 이해가 가능해야 인정이 가능하고, 인정이 가능해야 존중이 가능해진다. 그렇지 않으면, 밑의 링크처럼 프랑스에 대한 환상을 품고 파리를 갔다가 우울증에 걸려 돌아오는 일이 생긴다. 밑의 링크는 프랑스에 대해 실망을 느낀 사람들의 글이다. 비단 이들만이 아니다. 일본에서는 아줌마들이 명품의 나라 프랑스에 갔다가 쇼크를 하도 심하게 먹어서 관광을 마치고는 우울증에 걸린다는, 다소 과장이 섞인 것 같지만, 그런 말도 들었다.

http://bbs1.worldn.media.daum.net/gaia/do/country/read?bbsId=N004&articleId=7322
http://bbs1.worldn.media.daum.net/gaia/do/country/read?bbsId=N004&articleId=7377


그럼, 외국에 나와서 지내는 사람들에게는 어떠한 태도가 필요할까? 나는 프랑스방에 실린 글과 댓글에서 그 해답을 찾는다. 이 '구름'이라는 분은 긍정적이고 개방적인 사고를 말한다.


http://bbs1.worldn.media.daum.net/gaia/do/country/read?bbsId=N004&articleId=7322

구름
각국의 수도는 다 그렇고 그렇지 않을까요? 노르망디나 부르따뉴 지방쯤에 가서 살아보세요. 영화에서 보고 느낀 감정 그대로 살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곳 역시도 내나라는 아니지요. 긍정적이고 개방적인 사고를 발휘하신다면 빠리에서도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행복은 내 안에 있는 것이지 소수이민자들과 부대끼는 나의 일상에 있지는 않습니다. 08.10.23

좋은 친구들을 만나 보세요. 내가 우선 좋은 사람이 되어 있어야 좋은 친구들도 만날 수 있다는 건 알고 계시겠죠? 참고! 되도록이면 한국인 친구들은 많이 만나지 마세요. 누구는 인맥 만들어보겠다고 유학 왔다는 사람도 있을 지경이니까요. 공부 열심히 하시고... 힘내세요!! 08.10.23



 
그러나, 위에 글에서도 보이듯이 역시 내나라는 아닌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외국에 나가서 사는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이방인일 수밖에 없는 듯 하다. 그렇다면 '이방인으로서의 삶'은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일까? 이방인은 행복할 수 없는 걸까?


다른 문화에서 살아가는 것에 대한 의미를 일깨워주는 글이 '프랑스방'에 있어서 그것을 마지막으로 붙여본다. 문화란 더 낫고 못함의 대상이 아니다. 다른 문화를 접하는 것은 이런 문화의 상대성을 배우는 기회다. 다른 문화가 자신에게 맞지 않고 불편하다고 해서 그것을 곧 열등한 것으로 치부해버리면 끝내 자문화중심주의에서 벗어날 수 없다. 다른 문화는 자신의 모습을 알아가는 거울이다.
 
 
http://bbs1.worldn.media.daum.net/gaia/do/country/read?bbsId=N004&articleId=7392

  • 프랑스에 대해 말할수록 한국의 실체가 드러난다. [70] | 리엘로
    • 번호 7392 | 2008.10.21
    • 조회 1889 | 추천 추천 22

    프랑스방에 들어와 보면 참 안티가 많다. 이런 저런 이유를 달지만 더 말할 필요 없이 근본에 컴플렉스를 깔고 있다. 동남아/아프리카를 차별하는 것과 마찬가지 이유로, 다름이나 차이를 화끈하게 승화시켜 차별로 만들고 승/패로 가르는 그런 것 말이다. '굴욕'시리즈라는 것이 유행해서 정작 본인은 생각도 않는데 자아를 투사해서 '굴욕적'이라고 말하는 (그것도 거의 대부분 '사이즈'문제. 즉 크거나 작거나의 문제이므로 크기에 컴플렉스가 있다는 것) 한국인들의 현실은 참 팍팍하다.

     어느 것을 관찰하는 시선과 인식 수준에서는 그 관찰자의 내면과 깊이, 수준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법이다. 문명의 우열가름을 떠나, 다른 문화권이라는 다른 시스템과 문화적 코드를 이해함으로써 이해가지 않거나 당장 감각적으로 불편하게 느껴지는 일들을 현지인의 관점에서 경험해 볼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진짜 여행의 장점이다. 물론 여행 내내 라면과 김치를 몰래 끓여먹을 수도 있겠고 그걸 나무랄 일은 아니지만 그렇게 안주하기엔 대개 너무 젊지 않은가?

     

    프랑스란 나라가 어떤 나라인가? 과학, 학문, 예술이 고르게 발달하고 문화적으로도 유럽의 중심(생산이나 유통, 역사, 시장면에서도)이다. 근대 이후엔 세계적으로 최초에 속하는 수많은 창조물(멀리는 영화부터 가까이는 에이즈 치료제까지)을 만들어 낸 곳이고 자유 사상과 근대 인본주의의 본산이다. 한 마디로 프랑스 없이는 근현대의 인류를 설명할 수가 없을 정도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 왔다. 왕과 귀족을 비록 과격하게지만 계급적으로 완전히 제거해버리고 인류 최초로 진정한 의미의 시민혁명을 달성한 나라가 프랑스이다. 문화 소비의 중심지이며 다양한 지방 요리들과 고급요리, 평가에 있어서도 가장 중요한 국가라고 보아야 한다.

     

    이런 근사해 보이는 이력이 아니더라도 한국인들이 좀 생각해 봐야 하는 부분이 있다. 지하철이 꽤 더러운 것은 사실이지만 그건 프랑스 만의 문제가 아니다. 런던도 마찬가지이고 뉴욕도 마찬가지다. 서구의 도시들은 오래되고 낙후된 시설을 많이 가지고 있으며 어느 정도의 슬럼화 현상을 거쳤다. '오래된 도시'라는 것이다. 그것이 그렇게 싫은가?

     

    나는 반대로 명동 뒷골목에 있는 조그만 라면 가게를 생각해 본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몇몇 특정 음식점은 내부를 비좁게 배치해야 훨씬 성공적이라는 것이다. 막걸리는 막사발로 마시고 어딘지 허름한 곳이 더 인기있다. 이렇게 한국인들도 옛날 것에 대한 가치, 향수, (아직은 별로 없는 것 같지만) 철학을 가지고 있다. 프랑스 인들은 이런 경향이 강하다. 지하철은 물론이고 매우 삐그덕대는 집, 좁은 엘리베이터(필자는 처음에 솔직히 알면서도 당황했던)에 깊은 애정을 갖고 있고 필자 역시 현대식 건물에서의 인간관계와 훨씬 다른 '사람 사는 것 같은' 인간관계를 낡고, 후지고, 위아래층 소리가 아주 잘새는 집에서 경험했다. 대체 뭐가 그리 문제란 말인가?

     

    전세계 사람들, 특히 서구인들은 파리의 Pere Lachaise 공동묘지에 가면 다들 성역을 참배하는 듯한 기분으로 다닌다(워낙 아름답긴 하지만). 소리들도 질러대는데 거기에 도어즈의 짐모리슨이 있고, 그 유명한 오스카 와일드가 있고, 쇼팽, 그 밖의 유명인물들이 수없이 묻혀 있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라고 아마 한국인들은 말할지 모른다. 한국인들은 그런 것 보다는 훨씬 현실적(?)인 것들을 사랑한다. 싸이에 찍어서 올릴 예쁜 점심이라거나, '깔끔'하고 '예쁘'고 '유명한' 것들 말이지. 그런데 그것은, 오스카 와일드의 소설이나 시, 비평을 읽고 그 독설에 인생의 무게나 어려움이 다 날아가버리는 것 같은 상쾌함을 느끼고, 그 말로 다할 수 없는 친근감이 생긴 사람이 느끼는 그런 감흥하고 아주 다르다. 그 때부터 파리는 일종의 성지가 된다.

     

    한 마디로, 하루종일 일만 하다가 그냥 가끔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문화를 소비해야 하는 한국인들로서는 이해가 안 가는 구조가 파리라는 도시라는 것이다. 솔직히 뭘 알아야 즐길 것 아닌가? 나폴레옹도 모르는데 저 모자쓴 아저씨가 저 관에 묻히거나 말거나 알게 뭔가? 진씨왕인지 진치왕인지가 돌인형들을 세워놨는데 커서 보기 좋지만(한국인 코드) 별것도 없더라.....

     

    아는 눈에만 보이고, 들을 줄 아는 귀에만 들리는 거다. 클래식음악? 안들어, 재즈? 몰라, 핑크 플로이드? 관심없어, 모로코 타악 밴드? 그게 머야? 레비스트로스? 먹는 거냐? 발자크? 발닦는데 쓰는 건가? 철학? 골치 아퍼, 루브르? 하루면 다 보데? 슈메르? 바빌론? 몰라 역사 관심 없어, 호쿠사이? 왠 일본넘이래? 왜 프랑스엔 스타벅스가 몇 개 없대? 왜 기분나쁘게 흑인하고 아랍인들이 이렇게 잔뜩이래?

     

    이런 사람은 파리 굳이 안 와도 될 것 같다. 프랑스빵에 준하는 맛있는 빵류나 마카롱 같은 것들은 가까운 일본에도 있으니까 거기로 가는 편이 훨씬 싸다. 마초나 군국주의자들, 민족주의자들, 파시스트들도 프랑스 가지 마라. 코드가 안 맞는다.

     

    아, 그리고 프랑스에 남편 따라왔는데 적응 안되시는 분들, 유학왔는데 적응못해 쓸쓸한 유학생들, 타문화에 대해 이해할 준비나 태도도 되지 않았거나 적대감에 너무 막 내뱉는 것 같다.

     

    이런 사람들 아니더라도 프랑스로 여행가거나 살러 가고 싶은 사람은 아주 많다. 굳이 머릿수 채우러 갈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냥 한국 안에서 프랑스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살든지 '악감정'을 가지고 살든지 하는 편이 훨씬 나음을 보장한다. 왜 굳이 숙제하듯 프랑스로 여행가는가? 이것 역시 바로 전형적인 한국 문화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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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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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보와 보수 (2)

    공감(共感) 2008. 10. 21. 02:33
    김규항의 글은 명확하다. 지금 어디에 우리가 있는지 잘 보여준다. 박노자도 그렇고, 이런 지식인들의 역할에 우리는 우리의 모습을 돌이켜볼 수 있다. 김규항의 글에 내정도가 어찌 감히 대들수 있으리오마는 몇가지 내 생각을 토로해본다.

    1. 촛불에 대해
    난 촛불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촛불은 한국사람들이 아니면 할 수 없다. 뭔 일있으면 와~하고 바람처럼 일어나는 것. 거기에 대중의 이성은 없다. 난 월드컵과 촛불의 본질이 다르지 않다고 본다. 월드컵은 남녀노소 지역 계급 계층을 불문하고 '민족'과 '대한민국'이라는 우상에 빠진 난리였다면, 촛불은 보다 더 제한된 범위의 사람들에게 해당되었을 뿐이지만, 거기에 '이성'이 없었다는 건 월드컵광풍과 같다.
    촛불에 나간 사람들 중 이명박을 찍은 사람들은 촛불에 나갈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다. 촛불에 나간 사람들 중 뉴타운으로 집값오르겠지하고 한나라당찍은 사람들 역시 참가자격이 없는 사람들이다. 스스로의 반성과 성찰이 없었다는 것은 촛불의 의미를 찾을 수 없게 만든다. 하다못해 이명박이 그럴 줄 몰랐다는 그런 반성도 없었다.
    모든 화살은 이명박에게만 쏘아졌다. 대한민국의 커다란 착각 - 모든게 대통령탓이라는 이 봉건주의적 사고는 마찬가지로 대통령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에서 멈춰있다. 그러니, 이 촛불은 대통령의 '결심'으로 광우병쇠고기의 국내반입금지(이것도 눈가리고 아웅하는 것 같지만)가 이루어지자 스스로 꺼져버린 것이다.


    2. 진보에 대해
    -한국에 좌파는 없다
    김규항은 말한다. 구우파(한나라당 수구꼴통)와 신우파(진보개혁세력)이 오른쪽에 자리잡고, 좌파가 제대로 된 진보로서 왼쪽에 자리잡아야한다고. 백번 옳은 말이고 이렇게 되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 신우파와 구우파는 김규항의 말대로 서로의 대립관계가 아직도 이어져 오고 있고, 그 파워는 한국을 반분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아직 좌파가 끼어들 여지가 없는 것이다. 주사파가 잡고 있는 민주노동당이 어디 좌파인가? 한국의 좌파는 진보신당을 지지한 2~3%의 유권자. 현실제도권에서 아무런 의석도 가지고 있지 못한 3%에 불과할 뿐이다.

    -김규항에게 진보는 '좌파'이나 한국인에게 진보는 '신우파'이다
    좌파(김규항같은 이)가 보기에 '구우파'와 '신우파'의 차이는 별반 없을 수도 있지만, 신우파와 구우파의 간격은 스스로에게나 사람들에게나 크게 느껴지는 듯하다. '자본화'라는 그들의 본질은 김규항의 지적대로 아무 차이없고, 드러나는 면에서만 겨우 오십보 백보에 불과하겠지만, 그 오십보차이를 사람들은 본질로 느끼고 있고, 이는 '구우파'와 '신우파' 당사자들 또한 그렇게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 상대적인 차이가 신우파를 '진보'로 만들고, 이 '진보'는 사실 좌파가 아님에도 '좌파'딱지를, 친북이 아님에도'친북'딱지까지 덮어쓰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니 진짜 좌파입장에서는 억울할 만도 하다. 우리가 진정 좌파인데 저런 신자유주의와 세계화를 추구하는 이들을 '좌파'라고 하니 말이다.


    -좌파의 현주소
    사실 한국에서 좌파가 진정한 진보로서 자리잡기란 요원해 보인다. 예전에 군사파시즘과 싸우던 시기, 민주화운동인사들의 주된 레퍼토리는 '우리를 좌경용공분자로 몰지 마라'였다. 그러다가, 90년대들어 소위 '자생적 사회주의자'들이 나타났지만, 여전히 '좌파'라는 딱지는 반체제인사들도 거부하는 그런 불온한 레테르였다.
    지금 심상정, 노회찬같은 이들이 스스로를 '좌파'나 '사회주의자'라고 자칭한다면 그들의 정치생명은 당장 끝나고 말것이다. 아직도 '좌파'와 '사회주의자'들은 한국사회에서 불순분자이기때문이다. 현재 '개혁진보'라 불리는 세력이 끊임없이 '친북좌파'라는 공격을 받고 있고, 일부분 그런 공격도 효과가 있는 듯 보이지만, '신우파'를 지지하는 쪽에는 그런 공격이 먹혀들어가지 않는다. 즉, '반구우파'입장에서는 '신우파'를 '좌파'라고 보지 않고 다만 '진보'라고만 볼 뿐이다. 그러니, '좌파'는 아직도 한국의 절대다수에게 용납이 안 되는 그런 딱지인 것이다.


    -'신우파'가 진보가 되어버린 이유
    신우파가 아직까지도 본질에 어울리지 않게 '진보'가치를 점유하고 있는 이유는 물론 김규항이 말한대로 군사파시즘과 싸우던 유산이 가장 클 것이다. 군사파시즘은 이 사회에 '불합리 부패 부정 비상식 불법'등을 유산으로 남겨 놓았다. 그러니, 이런것에 시달리는 생각있는 사람들에게 '불합리와 부정에 반대'하는 '신우파'는 얼마나 진보적인가? '신우파'에게 신자유주의나 세계화같은 문제가 본질이 되기에는 사실 잘 알지도 못하고 또 그것보다는 '원칙과 정의 상식'이 더 중요한 문제가 된다. 386이라고도 하는 그들에게는 '사회정의 부패권력 불법'같은 문제가 더 와 닿는 것이고 '구우파'가 막강한 지금 아직도 이들 문제는 중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 '구우파'의 복귀
    그러나 어느정도 민주주의가 정착이 되고 난 후, 더 잘 먹고 잘 살고 싶은 사람들은 이런 '신우파'의 문제는 더이상 관심거리가 되지 못했다. 노무현의 과거사정리같은 문제들은 전혀 지지를 받지 못했다. 오히려 '구우파'의 공격거리만 되고 말았다. 절차적 민주화가 어느정도 완성된 지금, 사람들은 더 잘 먹고 더 잘 살기만 바라게 되었고 김규항의 말대로 이는 결국 '구우파'의 반사적 이익으로 나타났다. '구우파'의 재등장은 이제 잘 먹고 잘 살게만 해주면 된다는 사람들의 요구와 그에 따른 '구우파'의 과거에 대한 면죄부에 다름아니다.


    - 좌파가 진짜 진보가 되는 길
    '자본화'의 속성상 '신우파'도 역시 자본의 마름이 될 것인가? 김규항은 지난 10년정권을 보면 신우파건 구우파건 그 나물에 그 밥이라고 보았다. 확실히 아니라고 하긴 어렵다. 유럽의 경우를 봐도 그렇다. '신우파'는 자본의 마름역할밖에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럼, 좌파가 진정 세력의 왼쪽반을 점하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

    첫번째 경우는 먼저 '구우파'의 쇠퇴로 인한 좌파의 확대다. 구우파가 없어져서 신우파가 오른쪽 본래자리를 되찾아가면 그제서야 진짜 '좌파'가 진보개혁세력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좌파와 신우파의 연합전선이 있을 수 있다.
    지금 좌파가 '신우파'를 공격하게 되면 그것은 '좌파'가 커지는 게 아니라 '구우파'가 더 커지게 된다. 이 메커니즘은 지난 대선과 총선 한나라당의 리턴으로 확인됐다고 본다. 아직까지 신우파의 힘이 약하기때문에, 노무현의 몰락과 더불어 좌파도 같이 몰락하게 된 것이다. 좌파가 커지려면 오히려 신우파를 지지하는 전략도 필요할 수 있겠다 - 물론 해외파병이나 세계화에 무턱대고 지지할 수는 없지만 -

    두번째 경우는 '신우파'가 몰락하고, '구우파'가 우파가 되고 '좌파'가 진보가 되는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아마 이렇게 되기 전에 파시즘을 겪게 될 것이다. 좌파가 성숙하기 위해서는 '좌우'를 떠나 상식이 통하고 말이 통하는 인간들이 있어야하는데, 현재 한국의 '구우파'를 보면 전혀 말이 안 통하는 무리들이니 파시즘밖에는 길이 없는 듯 보인다. 좌파가 그 틈에 크게 된다면 파시즘과의 내전으로 갈지도 모를 일이다.

    - 쉽지 않은 진짜 진보의 길
    진짜 좌파라면 사람들에게 욕심의 충족을 보장할 수는 없다. 오히려 욕심의 충족이 족쇄가 됨을 설득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사람들은 모두가 다 자기 아파트값이 뛰릴 바라고, 자기 자식들이 1등을 하길 바란다. 서울대를 정점으로 한 서열화는 좌파가 집권하지 않는 한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상고출신 대통령이 100명이 나와도 서울대를 없앨 수가 없는 것이 현재의 한국이다.
    그러니, 진짜 좌파는 쉽지 않다. 사람들에게 욕심을 좀 버리라고 해야하기때문이다. 당신혼자 잘 살려고 해도 그게 안 되는 것이라고 얘기해야하기 때문이다. 이런 얘기들이 사람들에게 먹힐 수 있을까? 어리석은 사람들은 우선 나는 잘 먹고 잘 살기를 바란다. 이러니 한나라당이 이러고 이명박이 지금 저럴 수 있는 것이다. 자본의 노예는 사실 스스로 자초한 것이다. 이것을 일깨우고 이것을 깨나가는 것이 좌파이고, 진짜 진보의 길이다. 쉽지 않은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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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ed by 일호 김태경
    ,

    강운구의 사진

    공감(共感) 2008. 10. 17. 14:29
    강운구의 사진이다. 강운구의 사진은 90년대 초반 샘이깊은물에서 보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강운구의 이름은 잊혀지지 않는 이름이 되었다. 그도 이젠 나이가 많이 들었다. 20년가까운 세월이 흐른 것이다. 사람이 깊어질 수록 예술또한 깊어진다. 음악이 그렇고, 그림이 그렇고 사진도 그렇다. 깊어질 수록 대중에게서는 멀어진다. 당연하고 어쩔 수 없는 일이다.
     




    = 이하 곽윤섭기자(한겨레)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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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천, 2007, 셀레늄 착색하여 영구 보존 처리된 젤라틴 실버 프린트 ⓒ 강운구

     

    강운구 사진전-'저녁에'

     

    한국을 대표하는 다큐멘터리 사진가 강운구의 사진이 더 깊어지고 있다. 처음 전시장을 둘러봤을 땐 낯선 느낌까지 들 정도였는데 한 번을 더 살펴보고 작가와 대화를 나누면서 많은 부분이 해소되긴 했지만 첫 충격을 완전히 지울 수는 없었다. 한미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사진전 ‘저녁에’는 모두 114점의 사진이 걸려있다. 2001년 개인전 ‘마을 삼부작’이후 7년만이다. 부지런하기 짝이 없는 그의 활동에 비하면 발표가 너무 뜸하다는 생각이 들만도 한다. 그만큼 전시의 내용이 충실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는 이번 전시에 걸 사진을 직접 인화했다. 마음에 드는 사진이 나올 때까지 여러차례 깐깐하게 작업을 반복했다고 한다. 전시장의 동선과 사진 배치도 본인이 직접 했다. 크게 인화한 것도 있고 작은 것도 있는데 그는 이렇게 말했다.

     

    “줄여서 이야기해도 최소 2~3년씩 노력한 작업들인데 한 작품 당 30초도 안보고 지나가버리면 너무 허무할 것 같았다. 크다고 무조건 좋은 것도 아니고 작다고 가치가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작게 붙인 사진은 멀리서는 못보니 한 발 더 가까이 와서 정성껏 관람해달라는 작가의 주문이 들어있는 것이다.”

     

    사진은 연속사진, 그림자, 흙과 땅 세 가지 파트로 나눠 전시되고 있다. ‘그림자’ 에선 작가의 그림자나 반영이 들어있는 사진이 일곱 장 있다. 다큐멘터리사진에선 좀처럼 볼 수 없는 일이다. “예전엔 프레임에 내 그림자가 있으면 실수라고 생각하고 빼려고 노력했다. 그랬는데 이번엔 일부러 넣었다. 해가 머리위에 있을 땐 안보이더니 저녁이 되니까 그림자가 길게 늘어지는 게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세상을 기록하기 위해 바깥으로만 돌아다니다가 이제 슬슬 내면을 돌보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다. 전에 없이 사람이 들어있지 않은 풍경사진도 많아졌는데 사진 안하는 친구들이 “사진 많이 예뻐졌다. 편해졌다”라고 했다는 이야길 전하며 아이같이 수줍은 미소를 보였다.

     

    ‘저녁에’는 전시작 대부분이 늦은 오후 혹은 저녁에 찍은 것이라는 직접적 의미와 함께 어느덧 작가의 인생이 저녁에 도달했다는 뜻도 있다고 작가 본인이 주장했다. 하지만 그런 외형적인 면보다는 작가의 사진세계가 더 깊어졌다는 뉘앙스가 가장 강하다. 곱게 갈아놓은 밭이나 논 위에 농부의 발자국을 담은 사진 또한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예전엔 들에서 일하는 모습을 직접 표현했었는데 어느 순간 발자국만으로도 농부의 땀을 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이다.

     

    사진을 공부하는 생활사진가들을 위한 조언을 부탁했다.

     

    “정말 좋아하는 대상을 찍어라. 유행하는 스타일이나 사진선생의 주문을 따라하지 말고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대상을 찍어야 한다. 그게 없다면 그만 두는 것이 좋다”

     

    사진의 변형이나 해체, 합성을 이용한 현대사진의 트렌드에 대해 의견을 물었다.

     

    “그런 사진들이 예술이 아니라고 할 수가 없다. 그 분들의 길을 존중한다. 다만 나의 길과 그분들의 길이 만날 일은 없겠다”

     

    한미미술관은 지하철 8호선 몽촌토성역 2번출구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다. 전시는 12월 6일까지 열리며 11월 8일에 작가와의 만남이 예정되어있다.

     

    곽윤섭 한겨레 사진전문기자 kwak10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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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읍, 2007, 셀레늄 착색하여 영구 보존 처리된 젤라틴 실버 프린트 ⓒ 강운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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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해, 2007, 셀레늄 착색하여 영구 보존 처리된 젤라틴 실버 프린트  ⓒ 강운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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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창, 2008, 셀레늄 착색하여 영구 보존 처리된 젤라틴 실버 프린트 ⓒ 강운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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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제, 2008, 셀레늄 착색하여 영구 보존 처리된 젤라틴 실버 프린트 ⓒ 강운구

     


    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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