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선재에서'에 해당되는 글 169건

  1. 2011.02.28 악마로 변신한 토요일 저녁
  2. 2011.02.28 책은 읽지 말라고 있는 것
  3. 2011.02.25 내안의 삼성
  4. 2011.02.24 쑹유니 쑹유니 아빠
  5. 2011.02.23 식탁을 바꾸며
  6. 2011.01.25 네가지 적
  7. 2010.10.17 무뇌에 대하여
  8. 2010.08.16 사과나무 이야기
  9. 2010.08.16 웨스턴 소사이어티의 대학교육
  10. 2010.08.16 호칭에 대하여


토요일 저녁. 오랜만에 학교강의를 그것도 하루종일 들었더니 심신이 피곤했다. 도저히 저녁준비할 마음이 나지 않았다. 일곱시가 다 되어서 식구들을 이끌고 나섰다. 목적지는 리X컴. 타겟은 알탕 또는 육개장.

 

십구시이십분 : 목적지 도착. 분위기가 이상하다. 토요일 저녁이라면 이 식당 뒷마당은 차는 서너대가, 테이블은 가득차고, 고기굽는 연기는 자욱해야하는데, 차는 한 대, 손님은 두어명. 고기굽는 연기는 커녕 냄새도 나질 않았다. 실내테이블로 가는 공간은 아주 깔
끔해졌다. 불안했다. 테이블에는 앞치마를 두른 두명의 아주머니가 앉아 계셨다. 예전의 그 분들이 아니다. 아~ 이런..............

 

십구시삼십분 : 목적지는 스X라로 변경되었다. 타겟은 해장국. 아이들 셋을 내리고 태우는데도 한참이 걸린다.

 

십구시사십분 : 해장국집 만원. 젖먹이 아이를 데리고 들어갈 수가 없다.

 

십구시오십분 : 삼차 목적지는 X간X추. 아내 얼굴은 이미 굳어 있다.

 

이십시이십분 :  자리나는데만 해도 한참이 걸렸다. 아이들과 먹을만한 메뉴가 없다. 메뉴고르기를 포기하고 식당을 나섰다. 말이 없던 아내가 나즈막히 중얼거렸다. '두번다시 밖에서 먹나 봐라' 난 못들은 척 했다.

 

이십시삼십분 : 집에서 출발한지 한시간 삼십분만에, 네번째 식당에서 감자탕을 시키는데 성공했다.

 

이십시사십분 : 아내는 젖 먹이느라 말이 없다. 아이들도 먹느라 말이 없다. 내 머리속은 온갖 것들을 저주하며 짜증내느라 말이 없다.

 

이십일시십분 : 식당을 나섰다. 짜기만 한 음식에 속은 쓰리다. '여보, 미안하오. 영 미안하게 되었소, 까탈부려서' 입속에서 맴돈다.

 

이상 지난 토요일에 있었던 실화입니다. 후기를 말씀드리자면, 집에 돌아와서 씻지도 않고 잤습니다. 시드니와 호주의 모든 것을 저주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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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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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제가 어렸을때 얘기입니다.

 

토목공학과를 다니는 사람에게는

"고속도로커브구간에서 안식각은 어떻게 적용이 되나요?"

 

공예과를 다니는 사람에게는

"그럼 항아리를 만들때는 전기요를 쓰나요? 개스요를 쓰나요?"

 

식품회사에 다니는 사람에게는

"안식향산나트륨은 뭐에 쓰나요?"

 

요렇게 물어보면, 대개 반응은

"아니, 그런걸 어떻게 알아요?"

 

소위 그쪽 업계용어를 어떻게 아냐는 놀라운 반응인데, 저로서는 그 반응이 오히려 놀라웠던 것이,

안식각은 고등학교 기술교과서에 나오는 말이고, 전기요나 개스요도 역시 교과서에,

안식향산나트륨은 모든 빙과류 겉포장지에 어김없이 적혀있는 말이니 그걸 모를 수 있다는 것이 제게는 이상한 일이었던 것입니다.

 

새우깡포장지에는 주요성분 원산지표기 공장이 어디있는지 소비자피해배상의 관련법규나 절차등등이 다 적혀있으니, 안식향산나트륨과 식용색소3호 식용색소5호는 그게 무엇인지는 몰라도 제게는 숟가락 젓가락같이 자연스러운 단어였다 이 말입니다.

 

그런데 '아니, 그런걸 어떻게 알아요?' 라니요. 새우깡뿐만 아니라 양파링봉지에도, 농심뿐만 아니라 롯데 꼬깔콘봉투에도 다 있는 그런 말입니다. 그런데, 그런걸 어떻게 아냐니요?

 

저는 그런 사람인 것이지요. 글자가 있으면 그걸 다 읽습니다. 눈에 들어오는 문자는 다 읽습니다. 그건 그렇게 해야 하는게 아니고 그냥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한때 전자제품 사용설명서가 문고판 책보다 두꺼운 시절이 있었는데, 저는 그 매뉴얼을 다 읽어야 잠을 잤습니다. 글자가 있으면 읽고,  졸릴 때 책을 읽으면 잠이 달아납니다.

 

국민학교때 수업은 재미없고 책상서랍속에 책을 넣고 읽다가 선생한테 뺐기고, 그럼 또 다른 책이 나오고, 또 뺐기고 또 다른 책이 있고. 한 시간에 세번까지 그랬던 기억이 납니다. 어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씨디 플레이어가 두 개가 있습니다. 다음에 나갈 CD를 미리 넣어두어야합니다. 책을 읽다가 씨디를 넣어놓질 않아서 방송사고를 내기도 했습니다.

 

이런 제게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니 책을 읽자는 둥, 일본사람들은 다들 책 읽으면서 출퇴근한다는 둥, 한국사람들의 독서량은 일년에 몇 권에 불과하다는둥, 우리는 책을 읽어야 어쩐다는 둥 하는 얘기는 이해하기 힘든 캠페인이었습니다. 제 귀에는 밥을 먹어야 배가 안 고프다는 얘기와 다를게 없었으니까요. 돈이 없어서 책을 못 사는게 문제지 어떻게 책읽기가 캠페인의 대상이 되는가 말입니다.

 

그랬다가 서른 즈음에 어떤 계기로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이젠 책을 끊자. 책에서 얻을 수 있는 답은 다 얻었다고. 결심이야 결심일뿐이고 도서관엘 좀 덜 다녔다뿐이지 '읽으면서 사는 삶'은 여전했지요. 어쩌면 더 했는지도 모릅니다. 인터넷에는 읽을거리가 널려있으니까요.

 

그랬다가 사십이 된 지금에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책을 읽는게 바로 병통이구나 하는 것을요. 책을 읽는 그 자체는 문제가 아니지만, 책을 통해서는 결코 답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책을 읽는다고 해서 답을 얻는 것도 아니고, 책을 읽지 않는다고 해서 답을 얻지 못하는 것도 아닙니다. 사실 책읽는 사람들은 더 큰 장애물에 가로막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제 아이들이 책읽기를 좋아할런지 싫어할런지 아직은 모릅니다. 싫어하면 싫어하는대로 놔둘 것이고 좋아하면 좋아하는대로 놔둘 것입니다. 책을 안 읽어도 행복한 삶을 사는데는 아무 지장이 없고,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더 바람직하기도 하지요. 책을 좋아한다면 역시 또 내버려둘 겁니다. 고전 몇 개면 평생 두고 읽을만하고, 그리고 책을 읽어봐야 책을 읽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될테니까요.

 

그러니 책을 읽자는 캠페인도 또 읽지 말자는 캠페인도 필요없겠네요. 하려도 해도 되는게 아니니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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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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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안의 삼성

소선재에서 2011. 2. 25. 16:08

냉장고를 바꿨다. 새 냉장고를 산 것이다. 지난 냉장고는 5년된 삼백사십리터짜리 엘쥐제품. 1년도 전이다. 냉장고가 시키지도 않은 정수기기능까지 갖춘 것은. 냉장고안은 언제나 홍수였고 하루에 두 번씩 냉장고 앞에 놓아둔 걸레를 쥐어짜야했다.

그러다가 이사를 하고 곧이어 냉장고로부터 좋은 소식과 안 좋은 소식이 들려왔다.
먼저 좋은 소식. 냉장고가 정수기 기능을 스스로 멈췄다. 더 이상 주방에 홍수는 없다.
다음으로 나쁜 소식. 냉장고가 냉장기능을 멈췄다. 오렌지쥬스는 따뜻했다.

수리기사 아저씨는 이백불정도 얘기하더니, '새거 사시는 것도 괜찮아요'라고 말을 끝냈다.

급한 건 구십리터짜리 삼성냉장고에 집어넣었다. 문 하나짜리 냉장고다. 몇년전 누가 이사가면서 버려온 것을 주워온 것이다. 아내에게 아직도 말 안한 것은 이 냉장고를 청소할때 냉장고뒤에서 죽은 쥐가 있었다는 것이다. 아마도 차고에 넣어두었을때 쥐께서 마지막 자리로 냉장고모터옆을 선택하신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저기 저 푸른기와집에 사시는 쥐님은 어느자리를 택하실까나? 빨리 택하실수록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냉거야 아니 냉장고(둘째딸은 냉장고를 냉거야라고 한다. 은근 중독된다. 냉거야)를 사러 갔다. 아내와 나는 말한 것도 아닌데, 엘쥐냉장고는 처다보지도 않았다. 1년만 따져도 하루에 두번씩이면 삼백예순다섯번을 아내와 나는 걸레를 쥐어짰어야했다는 계산이다. 엘쥐냉장고덕분에 말이다. 아내의 두꺼워진 팔뚝에는 아마 그 탓도 컸으리라.

미쯔비시는 자동차만 만드는지 알았더니 냉장고도 있다. 피셔 뭐시기도 있고 웨스팅하우스도 있고 또 뭣도 있고 뭤도 있는데, 한국에서 삼십년넘게 산 나는 엘쥐가 아니면 쌤성. 대안이 없다.

텔레비젼도 삼성이다. 전에 쓰던 텔레비젼은 TEAC. 나름대로 한국에서도 많이 보던 상표였고 가격도 저렴해서 브라운관 텔레비젼을 샀다. 한 3년쯤 지나니 화면이 온통 슈렉색깔이 되어버렸다. 뒤통수를 몇번 쳐주면 빨간색이 제대로 나왔는데, 나중에는 수백번을 두드려도 반응이 없었다. 결국엔 텔레비젼뒤에 구멍을 뚫고 나무막대기를 쑤셔넣어서 전자빔쏘는 부분을 건드려줘야했다. 이게 텔레비젼을 바꾼 이유는 아니다. 아이들이 없었다면 늙어 죽을때까지 나무막대기로 전자총을 쑤셔주면서 텔레비젼을 봤을 것이다. 아이들 프로그램은 에이비씨투에서 하는데 이 채널은 디지털티브이에서만 볼 수 있다. 그래 엘시디티브이를 사자. 여기서 아내의 강력한 의견. "삼성게 예뻐요"

텔레비젼만은 아니다. 5년된 컴팩 노트북은 접히질 않는다. 모니터는 비가 내리다 못해 글자가 보이질 않는다. 첫째 아이가 책상에서 바닥으로 자유낙하시킨 탓이다. 한국에 갔더니 전자제품이 왜 이리 싼겨? 한국에서 홈쇼핑을 보다가 (이것도 삼성엘씨디티브이였다) 전화기를 들었다. 지금 이 컴퓨터도 한국에서 건너온 삼성 노트북.

에스에이엠에스유엔지. 이 일곱개의 알파벳은 우리 집 구석구석에서 눈에 띈다. 얼마전에 산 레이져프린터도 삼성이다. 삼성거를 사려고 한건 아닌데, 딕 스미스에서 제일 싼 것이 삼성거였다. 108키보드도 삼성. 마우스도 삼성. 노트북가방도 삼성. 아이들 방에 가보니 아이들 책도 삼성출판사(아~ 이건 아닌가?)

호주에서 사는 내가 이런데, 한국에서 사는 사람들은 어떨까? 청소기, 믹서기, 전자렌지, 에어컨, 선풍기, 핸드폰, 전화기, 카메라, 세탁기 하다못해 헤어드라이어에 면도기까지도 삼성이 아닐까 싶다.

나는 왜 호주에서도 삼성제품을 사는가? 익숙해서? 그렇기도 하다. 가격이 싸서? 이 이유도 크다. 그러면 왜 하이얼을 안 사고? 글쎄, 아무래도 삼성이 품질이 낫지 않을까싶기도 하고........

이씨집안의 저열한 행태에 한심해하면서도 나는 삼성을 산다. 나같은 사람때문에 삼성은 망하지 않는 것일까? 그럴지도 모르겠다. 반대로 불매운동으로 삼성이 망할 수 있을까? 만약 삼성이 망한다면 그건 불매운동탓이 아니라 삼성의 탓일것이다. 세상일 알고보면 모두 내 탓 아닌게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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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윤이는 다음달이면 두돌이 된다. 머리도 많이 길었다. 40도를 넘는 여름에 긴 머리는 땀띠의 일등공신이었다. 허나 아름다움을 위해서라면. 승윤이의 긴 머리는 살아 남았다.

두돌이 안 된 아이. 아직도 기저귀를 하고 있으니 아가라고 할 수 밖에. 아가와의 커뮤니케이션은 쉽지 않다. 아직도 울음은 가장 주요한 의사표시이다. 허나 인간이 되어가는 두 돌 아이. 아빠와 엄마로부터 열심히 말을 배운다.

"쑹유니 쑹유니 쩜쩌"
"건포도 저기 있네. 갖다 먹어"

"쑹유니 쑹유니 쩡거야"
"밖에 비오잖아. 자전거는 내일 타자"

"쑹유니 쑹유니 냉꺼야"
"승윤아~ 냉장고 문 열어두면 안 되지"

"쑹유니 쑹유니 찌리이"
"씨리얼 다 먹었어. 없어"

"쑹유니 오또삐이"
"아니. 따라해봐. 오. 토. 바. 이."
"오또삐이"
-_-;;;;

내가 웃자 두살 위의 오빠가 옆에서 거든다.
"아니. 오! 토! 바! 이! 오토바이라고 해야지. 오빠 따라해봐 오!토!바!이!"
만 네살 오빠는 아직 유아의 발음이 섞여있으나 제법 정확한 발음이다. 기억이나 할까? 저도 동생만할때는 트럭을 '어럭'이라고 했다는 것을.
얼른 얼른 더 커라. 쩜쩌가 건포도가 되고 쩡거야가 자전거가 되는 날을 아빠는 학수고대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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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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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을 바꿨다. 식탁을 새로 산 것이다. 하이 글로스라고 하더니 정말로 반짝거렸다. 식탁의 브랜드는 환타스틱. 환타스틱가구는 품질은 모르겠으나 가격만큼은 환타스틱하다. 어쩌면 환타스틱이라는 이름에는 품질도 가격만큼 환타스틱하고 싶다는 창업자의 소망이 깃들어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거나 환타스틱 가구점에서 산 이 식탁은 정말로 환타스틱했다. 오후에 넘어가는 해가 식탁에 반사되어 정말로 눈이 부셨던 것이다. 거울에 버금가는 그 식탁에 비친 해를 보느라 하마터면 눈이 멀 뻔했다. 환타스틱하다 못해 블라인드가 될 뻔하다니.

이 식탁이 환타스틱하다고 해서 덩달아 엘레강스할거라 생각하면 그건 큰 오산이다. 물건을 보면 그 주인을 아는 법이다. 심플하고 단아한 나는 엘레강스한 스타일은 아니니까.

한편 이제 우리집의 식탁 자리를 물려주게 된  구 식탁을 보니, 정말 이거야 원. (IKEA라고 쓰고 나는 이거야라고 읽는다) 6년전 시드니에 처음 와서 이거야(IKEA) 가구점에서 산 식탁이다. 가격도 기억이 난다. 이 자리에서 공개하지는 않겠다. 그건 나의 최소한의 자존심이다. 다만 이거야(IKEA) 가구점에서 제일 쌌다는 것만 일러둔다.

이제 식탁이라는 이름을 넘겨주고 하나의 널빤지 신세로 전락하게 된 이거야 식탁에는 지난 6년간 나와 나의 가족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환타스틱 식탁과 같은 흰색이지만 도저히 같은 색깔이라고는 할 수 없는 그런 상황이다. 곳곳에 칠은 벗겨지고, 그 중에는 내가 밥상을 차릴때 우당탕 던진 그릇때문에 생긴 생채기가 절반이고, 밥먹으면서 함부로 젓가락과 숟가락을 부린 흔적이 나머지 반이다. 삼분의 일 지점에 커다랗게 배겨진 시꺼먼 자국은 살던 집을 아무개에게 보름간 빌려준 흔적이다. 계약서에 냄비받침을 써야한다고 명시해놓았건만 아무 신문지나 깔았던 듯 하다. 눌어붙은 종이는 아무리 벗겨내도 지워지지 않았다.

모서리에는 아이들 머리가 깨지지 않도록 포장비닐을 대었다. 지금은 너덜너덜해졌다. 아이들은 또한 식탁다리에도 세심하게 크레파스칠을 해 놓았다. 생각해보니 이 식탁은 신혼부부의 밥상으로 시작해서 한 애기가 처음으로 이유식을 먹은 식탁이었고, 나중에는 개구장이들의 다이빙점프대까지 되었다. 뿐이랴 필요에 따라 책상과 작업대도 되었다.

그런 식탁이 이젠 널빤지가 되어 더 이상 식탁으로 불리질 못하고 나의 손에서 떠나가게 되었다. 살다보면 만남이 있고 헤어짐이 있고 오는 것이 있으면 가는 것이 있는 법이다. 그러고 보면 나의 눈을 멀게 할 뻔한 지금 이 거실 한구석의 환타스틱한 식탁도 더 이상 환타스틱하지 않게 되는 때가 올 것이다. 그러면 지금 이거야 식탁이 널빤지가 되었듯 환타스틱 식탁도 또 하나의 널빤지가 되어가겠지. 그때까지 환타스틱하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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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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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지 적

소선재에서 2011. 1. 25. 20:16



카를로스 카스타네다의 '돈 후앙의 가르침중에서'


1962년 4월 8일 토요일


지금까지 둘이서 대화를 해 나오는 가운데 돈 후앙은 “앎의 사람(知人)”이라는 말을 자주 썼고 또 그 말을 좋아했다. 하지만 그 말이 뜻하는 바를 설명해 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것에 대해 설명을 부탁했다.


“앎의 사람(知人)은 모든 고난을 마다 않고 진실되게 배워 나가는 사람을 뜻한다.”

그가 말했다.


“성급히 굴지도 않고 그렇다고 꾸물대지도 않으면서 힘과 지혜의 비밀을 끝까지 하나하나 풀어나가는 사람이 곧 앎의 사람(知人)이다.”

“누구나 앎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까?”

“아니다. 아무나 가능한 건 아니다.”

“그렇다면 앎의 사람이 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합니까?”

“먼저 자신에게 있는 네 가지 타고 난 적에 도전해서 이겨야 한다.”

“그 네 가지 적들만 물리치면 앎의 사람이 됩니까?”

“그렇다. 누구든지 그 네 가지 적들을 물리칠 능력만 있으면 자신을 앎의 사람이라 여겨도 좋다.”

“그렇다면 이 세상 누구라 해도 그 적들만 물리치면 앎의 사람이 될 수 있단 말인가요?”

“그렇다. 그 적들을 물리친 사람이면 누구든지 앎의 사람이 된다.”

“하지만 그 적들과 싸우기 전에 꼭 필요한 요구 조건 같은 것은 없습니까?”

“없다. 누구든지 앎의 사람이 되기 위해 시도할 수는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불과 몇 명만이 성공한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앎의 사람이 되기 위해 배워 나가는 도중에 마주치는 그 적들은 절대 만만치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적들에 굴복하고 만다.”

“그것들은 대체 어떤 적들입니까. 돈 후앙?”


그는 적들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길 거부했다. 단지 내가 그 주제에 대해 배우려면 아직 멀었다고만 말했다.

나는 그 화제를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나도 앎의 사람이 될 가능성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누구도 그것에 대해선 확실히 말할 수 없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나는 가부간의 어떤 조짐이라도 알고 있으면 말해 달라고 고집을 부렸다.

그는 그것이 순전히 내가 그 네 가지 적들과 싸워 이기느냐 아니면 무릎을 꿇느냐 하는 데에 달려 있으며 싸움의 결말이 어떻게 될지는 누구도 예언한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나는 다시 그가 갖고 있는 마법이나 예언 능력을 이용해 그 싸움의 결말을 미리 알 수는 없느냐고 물었다. 그는 어떤 수단으로도 그 결과는 알 수 없다고 단호히 말했다. 왜냐하면 앎의 사람이 되는 일은 일시적인 일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내가 그 점에 대해 좀 더 설명을 부탁하자 그는 말했다.

“앎의 사람이 되는 것은 영원한 일이 아니다. 실제로는 누구도 앎의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그 네 가지 타고난 적들을 물리치고 나서 잠깐 동안만 앎의 사람이 된다고 할 수 있다.”

“그 네 가지 적이 무엇인지 꼭 좀 말씀해 주십시오, 돈 후앙.”

그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나는 다시 고집을 부렸지만 그는 화제를 바꾸어 다른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1962년 4월 15일 일요일

떠날 준비를 마치자 나는 다시 한번 그 네 가지 적들에 대한 질문을 해보기로 결심했다. 나는 이번에 떠나면 오랫동안 다시 오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그가 말해 주는 것을 받아 적어가서 떠나 있는 동안 나 혼자서 그 얘기들을 생각해 보는 것도 좋지 않겠느냐고 설득했다.

그는 잠시 망설이더니 드디어 얘기를 시작했다.


“처음으로 배움을 시작할 때는 누구나 목적의식이 뚜렷하지 않다. 몇 가지 목적이 있다 해도 결점 투성이고 의지도 굳지 않다. 그는 배움의 고초에 대해선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실현될 수 없는 보상들만을 꿈꾸고 있기 십상이다.

그는 천천히 배워 나가기 시작한다. 처음에 조금씩 조금씩, 그러다 큰 덩어리에 부딪힌다. 그때 그의 생각은 쉽게 분열을 일으킨다. 그가 배우는 것은 애초에 그가 머리 속으로 그리고 상상했던 것과는 딴판이다. 따라서 그는 겁을 먹기 시작한다. 배움이란 누구한테나 전혀 상상 밖의 것이다. 배움의 모든 단계들이 다 새롭기만 하다. 그러니 자연히 두려움이 산처럼 쌓여 옴짝달싹 못하게 만든다. 큰 싸움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그는 마음 속에 있는 첫 번째 적과 마주치게 된다. 바로 두려움이다! 이 두려움이야말로 무시무시한 적이다. 뿌리칠래야 뿌리칠 수도 없고 싸워 이기기도 힘이 든다. 모퉁이를 돌 때마다 그 놈이 눈을 번뜩이며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두려움에 겁을 집어먹고 달아났다면 그것으로 문이 닫히고 만다.”


“겁을 먹고 도망가는 사람은 어떻게 됩니까?”

“다른 것은 둘째 치고 그런 사람은 절대 배울 수가 없다. 그는 절대 앎의 사람이 될 수 없다. 아마도 그는 약한 자를 못살게 구는 인물이나 아니면 악의는 없지만 겁에 질린 위인으로 전락해 버릴 것이다. 어쨌든 그는 패배자가 된 것이며, 첫 번째 적으로 말미암아 자신이 바라던 것에 종지부를 찍는 것이다.”

“두려움을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대답은 아주 간단하다. 달아나지 말아야 한다. 달아나지 말고 그 두려움에 도전해서 다음 단계, 그 다음 단계로 배움을 계속해야 한다. 두려움이 아무리 크게 밀려와도 멈추어선 안된다. 이것은 규칙이다! 그러다 보면 드디어 첫 번째 적이 물러가는 순간이 찾아올 것이다. 그때 비로소 자신감이 생기고 의지가 더욱 강해진다. 그때는 배움이 더 이상 두려운 일이 아니다. 이 기쁜 순간이 찾아왔을 때 비로소 자기가 첫 번째 적을 물리쳤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러한 순간이 한꺼번에 찾아옵니까, 아니면 서서히 찾아옵니까?

“서서히 찾아온다. 하지만 두려움은 일단 물러가기 시작하면 순식간에 사라진다.”

“하지만 또 새로운 상황이 닥치면 다시 두려워지지 않을까요, 돈 후앙?”

“그렇지 않다. 일단 두려움을 정복하고 나면 평생동안 그것으로부터 해방이 된다. 왜냐하면 두려움 대신 명석한 정신이 두려움을 없애 준다. 이 때가 되면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이고, 그 원하는 것들을 어떤 방법으로 성취해야 할지를 분명히 알게 된다. 따라서 새로운 단계의 배움을 스스로 기대하게 되고, 매사를 분명하게 이해한다. 그는 어느 것 하나도 비밀에 싸여 있지 않다는 것을 느낀다.


이렇게 해서 그는 두 번째 적과 만나게 된다. 바로 명석함이다! 명석한 정신은 얻기도 힘들고 일단 얻기만 하면 두려움을 물리쳐주긴 하지만 동시에 마음의 눈을 멀게 한다.

명석함 때문에 그는 자기 자신을 전혀 의심하지 않는 것이다.

그는 모든 것을 분명히 바라볼 수 있기에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할 자신감을 얻는다. 분명하기 때문에 그는 용기도 생기고 어떤 장애물에도 멈추지 않는다. 하지만 이 모든 일은 하나의 오류에 지나지 않는다. 아직 불완전한 상태에 불과하다.

만일 스스로에게 확신을 불어 넣는 이 명석한 정신에 자신을 송두리째 내맡긴다면 결국 두 번째 적에 굴복하는 셈이 되며, 거기서 배움이 중단되고 만다. 그는 인내를 갖고 참고 기다려야 할 때에 가서 마구 돌진해 들어갈 것이며, 돌진해 들어가야만 할 때에 마냥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그는 자꾸만 발을 헛디뎌 마침내 더 이상 배움을 지속해 나갈 수 없는 결말에 이를 것이다.”


“거기서 패배한 사람은 어떻게 됩니까, 돈 후앙? 그는 죽게 됩니까?”

“아니다. 죽지는 않는다. 다만 더 이상 앎의 사람이 되려는 시도를 못하게 될 뿐이다. 앎의 사람이 되는 대신 그는 어릿광대나 떠돌아 다니는 싸움꾼으로 전락해 버릴 것이다. 하지만 그가 그토록 값비싼 대가를 지불한 정신이 또 다시 어리석음이나 두려움으로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살아있는 한 그는 여전히 명석한 정신을 갖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더 이상 무엇을 배우거나 갈망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것에 패배 당하지 않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두려움에 대해서 했던 것과 똑같이 해야 한다. 자신의 명석한 정신에 도전해서 그 명석한 정신을 오로지 보는 데에만 이용하고 새 배움의 단계로 나아가기 전에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고 깊이 심사숙고해야 한다. 그러면 자신의 명석함이 오히려 눈의 티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해할 순간이 찾아올 것이다.

이 상태가 바로 두 번째 적을 물리친 상태다. 이 위치에 서면 어떤 것도 그를 해칠 수가 없다. 하나의 오류나 눈의 티로서가 아니라 그는 진정한 힘을 지니게 된다.


이 단계에 도달하면 그는 자신이 오랫동안 추구해온 힘이 드디어 자기 것이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것이다. 그는 그 힘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그의 협력자는 그의 명령에 따르고, 그가 원하는 것이 곧 법칙이 된다. 그는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을 꿰뚫어 본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 그는 힘이라는 세 번째 적과 만나게 된다.

힘은 다른 적들 가운데서도 가장 강력하다. 따라서 당연히 거기에 굴복하기도 가장 쉽다. 어쨌든 그는 힘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누구도 그에게 대항할 수 없다. 그는 명령을 내리며 일부러 위험한 상황에 뛰어들어 주위 모두를 자기에게 복종하게 만든다. 그는 이미 대가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단계에 있는 사람은 세 번째 적이 곁에 다가왔다는 사실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러다 돌연 눈치도 못 챈 사이에 싸움에 지고 만다. 이 세 번째 적은 그를 잔인하고 변덕많은 인간으로 바꿔 버린다.”


“그렇게 되면 그는 자신의 힘을 잃게 됩니까?”

“아니다. 명석함이나 힘은 잃지 않고 그대로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무엇을 기준으로 그를 앎의 사람과 구별할 수 있습니까?”

“힘과의 싸움에서 진 사람은 끝내 힘을 이용하는 방법을 알지 못한 채 눈을 감는다. 그러니 힘은 오히려 그의 운명에 짐 지워진 무거움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한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는 명령을 내리지 못하며, 언제 어떻게 힘을 이용해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어떤 싸움이든지 일단 지고 나면 그것으로 영원한 패배가 됩니까?”

“물론 그것으로 끝장이다. 어떤 적에게든지 일단 패배하고 나면 더 이상 아무 소용이 없다.”

“이를테면 힘과의 싸움에서 진 사람이 자기 실수를 알고 방향을 바꿀 수는 없습니까?”

“불가능하다. 일단 굴복하고 나면 그것으로 끝이다.”

“하지만 일시적인 힘에 눈이 멀었다가 다음 순간 정신을 차릴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것은 아직 싸움이 계속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그가 여전히 앎의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뜻이다. 더 이상 노력하지 않을 때 자신을 포기할 때 사람은 패배하게 된다.”

“그렇다면 돈 후앙, 몇 년 동안 두려움에 자신을 내맡기고 있다가 마침내 그것을 극복하는 일도 가능합니까?”

“말은 쉽지만 실제로는 불가능하다. 일단 두려움에 굴복하고 나면 다시는 그것을 정복하기가 힘들다. 왜냐하면 배우는 것을 겁내고 더 이상 시도하려 들지 않을 것이니까. 하지만 두려움 속에서도 몇 년 동안 굴하지 않고 계속 배우려고 시도한다면 마침내 두려움을 정복하고 말 것이다. 그 상태는 자신을 두려움에 내맡긴 상태가 아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이 세 번째 적을 물리칠 수 있습니까? 돈 후앙?”

“앞에서와 마찬가지로 자진해서 힘에 도전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자신이 갖고 있는 힘이 실제로는 절대 자기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항상 자기 자신을 단속하고 자기가 터득한 모든 사실을 조심스럽고 신중히 다루어야 한다. 자신을 단속하지 못하는 명석함과 힘이 하나의 오류보다 더 나쁘다는 사실을 깨우치기만 하면 스스로 자기 속의 모든 것을 점검하는 단계에 이를 것이다. 이때 비로소 언제 어떻게 자신의 힘을 이용해야 할지를 알게 된다. 이 상태가 바로 세 번째 적을 물리친 상태다.


이리하여 그는 배움의 마지막 여행에 접어든다. 그리고 전혀 사전 경고도 없이 마지막 네 번째 적과 부딪히게 된다. 바로 늙음이라는 적이다! 이 적은 인정사정이 없다. 누구도 완벽히 이 적을 물리칠 수 없다. 다만 계속해서 싸워 나갈 수만 있을 뿐이다.

이 단계에선 두려움도, 서두는 명석함도 찾아볼 수 없으며, 자신의 모든 힘을 잘 통제하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휴식을 취하고 싶은 끝없는 욕망이 일어나는 단계이기도 하다. 만일 이 욕망에 굴복해 쓰러져 눕거나 모든 걸 깨끗이 잊으려 한다면, 만일 피곤하다는 구실로 자신을 잊는다면 그는 결국 마지막 마당에서 패배하고 말 것이며, 그의 적은 그를 연약한 늙은이로 전락시키고 말 것이다. 그만 휴식하고 싶은 욕망 때문에 그는 모든 명석함과 지혜를 몽땅 공중에 날려 버릴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피곤함을 씻어내고 삶을 끝까지 철저히 산다면 그는 비로소 앎의 사람이라 불리워질 수 있다. 마지막 적, 늙음이라는 그 무적의 적과 싸워 이기는 순간 그는 앎의 사람이 된다. 그 순간 속엔 명석한 정신과 힘과 지혜가 다 녹아들어가 있는 것이다.”


카를로스 카스타네다: 페루 출신의 문화인류학자·작가. 멕시코 야키 인디언 주술사의 신비한 비밀에 관한 시리즈를 출간하여 미국 뉴에이지운동의 기수가 되었다. 1968년 《돈 후앙의 가르침》은  당시 베트남전쟁에 환멸을 느끼는 미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얻으면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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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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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뇌에 대하여

소선재에서 2010. 10. 17. 22:33

무뇌에 대하여

 

김뭐시기라고, 엠비씨에 아나운서인지 기자인지 하는 분이 있는데요, 그 분이 트위터를 하는데, 누가 '무뇌'라고 했답니다. 이 분은 법적대응을 강구한다고 하던데요. 제가 보기엔 그 분 무뇌맞던데, 아버지를 아버지라 하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하지 못하면....이러다가 전국민이 가출하는 게 아닐까....

 

제가 사는 꼴을 돌아 보면, 밥먹고 응가하고 왔다갔다하고 애들 보고, 별로 금수와 다를 게 없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만, 그래도 인간이 금수와 다른 점이 조금이라도 있다 하면, 그건 '성찰'하는게 아니겠습니까?

 

누가 저한테 '무뇌'라고 한다면 기분좋은 소리는 아니지요. 그렇다고 무슨 명예훼손이나 법적대응을 강구할 건 아닌데요. 우선은 그럴 돈도 없고요. 그리고, 뭣보다 저를 '무뇌'로 보는 건 그 사람 자유니까요. 그 사람은 나를 무뇌아로 볼 수도 있는 거지요. 그렇다고 내가 무뇌아냐면 그건 또 아닌거구요. 그 사람 기준이 내 기준이 되란 법은 없으니까요.

 

그 분은그 무뇌아라는 지적에 심히 열받았나 본데, 그건 본인도 무뇌아라는 사실을 알고 있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왜 그 있잖습니까? 자신이 약점으로 생각되는 부분을 찔리면 그게 참 비수가 되잖아요. 제일 감추고 싶은데 그걸 들켜버렸으니. 그러니, 본인도 본인이 무뇌라는 사실을 알고 또 그런 자신이 싫었을 겁니다. 그러니 법적대응 운운했겠지요. 그런데, 만약에, 본인이 무뇌아라는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일 수' 있다면 반응이 좀 달랐을 것 같습니다.

 

'그러게요, 제가 무뇌아일수도 있겠지요. 한번 제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또는 앞으로 더 발전하는 계기로 삼겠습니다'

 

이렇게 나온다면 무뇌아로 공격한 사람이 깨깽하는 건데요. 그러고보면 문제는 무뇌냐 아니냐가 아니라, 무뇌임을 받아들이냐 아니냐인 것 같네요.

 

여기까지 쓰고 나서, 제 경우를 또 한참 생각해보았습니다.

 

누가 나를 두고 비방을 했다. 좀 열받기는 하는데, 뭐 내가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네요. 그 사람이 나를 씹고 다녀도 어쩔 수 없고요. 그렇다고 그 사람 입맛대로 내가 살아 줄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 사람이 나때문에 열받았다면 내게 그런 구석이 있어서 그랬을 거고요, 안 그럴 수 있는 일이면 다음부터는 안 그러면 되는 거고, 잘 안 되면 또 잘 안 되는대로 살아야지 워쩌겄습니까? 그러니, 김XX씨 너무 열받지 마소. 무뇌여도 당신 이미 잘 살고 있으니까.

 

저작권고지: 김XX의 무뇌에 대해서는 아내의 지도가 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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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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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에 옮겨놓은 글(사과나무 이야기)에 대한 어느 과학신봉자의 반응을 보고 항생제에 대한 글을 썼다. 이 과학신봉자의 댓글은 이것(파란 글씨).

사과나무의 병이라면 박테리아나 바이러스에 의해서 생기겠지요. 충이라면 사과를 먹고 사는 벌레일테구요. 사과의 입장에서는 박테리아, 바이러스, 벌레가 모두 비슷할겁니다. 박테리아, 바이러스, 벌레가 모두 자연의 일부로 사과에 의존해서 사는 점에서 말입니다. 농약을 안쓰면 박테리아, 바이러스, 벌레도 함께 튼튼해지지 않을까요? 적어도 사과를 맛있게 먹을 정도로는 튼튼해지지 않을까 싶은데..

여기에 대한 나의 댓글은,

이 글의 논리대로라면,
농약을 안 써야 박테리아, 바이러스, 벌레가 약해지지요.
농약을 쓰면 박테리아, 바이러스, 벌레가 강해지고요.


그리고, 답답한 마음에 항생제에 대한 글을 썼다.

밑의 글은 그 다음 이야기.



1.
펌글의 제목이 '수행없이 깨달음은 자랄 수 없다'입니다. 저 역시 이런 생각으로 30대를 보냈습니다. 제게는 '수행없이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가 보다 더 정확하겠습니다만.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스스로 수행자라는 아이덴티티를 굉장히 자랑스러워했고 뿌듯해했습니다. 한마디로 제가 잘났다고 살았지요. 

지금은, '수행의 목적은 수행이 필요없다는 것을 알기 위함에 있다' 라고 생각합니다. 깨달음이라는 것은 더 이상 수행이 필요없는 단계 내지는 그런 상태인데, 그렇다면 수행의 목적은 수행이 불필요한 상태가 되기 위한 것이 됩니다. 그렇다면 수행의 존재의의가 사라집니다. 수행이 불필요한 상태가 되기 위해서 수행을 해야한다니, 그렇다면 수행할 필요가 없는 상태가 되기 위해서 꼭 수행을 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제가 수행자라는 아이덴티티를 벗어던진 이유입니다. 사실, 저 혼자만의 생각은 아니고요, 여러 사람들, 소위, 깨달았다는 사람들의 가르침 덕분입니다. 

2.
깨달음과 수행이라는 말은 사람들마다 다 다른 관념을 가지고 있을 터이니, 저의 해석은 그냥 저의 해석일 뿐입니다.  마찬가지로 일본의 사과나무 얘기도 다양한 해석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 봤지? 뭐든지 자연스러운게 좋은거야, 쓸데없이 인간이 개입해봤자 좋을 게 없다고
- 환경주의자, 자연보호론자, 게으름뱅이들 

# 봤지? 강해져야 살아남는 거야, 힘든 환경속에서 사과나무가 더 튼튼해지는 걸 보라고
 - 경쟁주의자들. 적자생존론자, 싸움꾼

# 농약없이 키운 사과 봤어? 남들과는 뭐가 달라도 달라야 해. 그래야 돈이 되지.
 -  시장주의자, 욕심꾸러기들

# 태풍을 이겨낸 사과나무 봤어? 고난과 역경, 시련이야말로 사람을 더 키우는 자양분이야.
 - 심각한 사람들, 매조키스트

# 지금이야 괜찮다 해도, 지난 10년간 왜 그 고생을 사서 하나? 그냥 남들하는만큼만 하면 됐지.
 - 대세추종자들, 겁장이들.

 # 저런다고 안 될걸. 병충해가 한번 돌면 순식간에 망할텐데.
- 과학신봉자, 소심한 사람들 

# 무농약이라니 몸에 좋겠네. 이거 먹고 오래살아야겠다.
- 정력추종자, 건강허약자, 단세포, 무뇌아

=========================================================================
그렇다. 씨는 기름진 땅에 떨어져야 한다. 기름진 땅에 떨어져야 씨는 잘 자라날 수가 있다. 얼마 전 TV에서 '농약 한 방울, 비료 한 주먹' 없이 사과를 키우는 일본의 기무라 아키노리라는 농부에 대해 방영을 했다. 그는 농약 알레르기 때문에 고생하는 아내를 위해 농약을 쓰지 않고 사과를 재배해 보자는 결심을 했다. 그의 결심을 듣고 주변 이웃들은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그를 '아오모리의 돈키호테'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었다. 10년이나 노력했지만 사과는 한 개도 열리지 않았다. 농약과 비료에 길든 사과나무의 야성은 좀처럼 돌아오지 않았다. 수입이 없어서 밑바닥 생활을 했고 생계를 위해 나이트클럽 호객꾼으로 나서기도 했다. 폭력배에게 맞아 치아가 두세 개만 남고 모두 빠졌다. 목숨을 끊을 생각으로 산에 올랐다.

산에서 우연히 탐스러운 열매를 맺는 도토리를 보았고 섬광 같은 깨달음을 얻었다. 비밀은 흙에 있었다. 그 이후 그는 과수원에 잡초도 뽑지 않고 관리도 하지 않으며 방치해 두었다. 흙이 본래의 생명력을 회복할 때까지 기다렸다. 비료나 농약을 수십 년간 뿌려 왔던 땅은 딱딱해져서 잡초조차 뿌리를 내릴 수 없다.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면 흙도 기름지게 된다. 

무농약 자연 농법을 시작한 지 10년만에 결국 탁구공만한 사과 두 개를 얻게 되었고 다시 4년 후에 많은 사과들이 열리기 시작했다. 그의 농법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아오모리현에 상륙한 태풍 때문이었다. 주변 과수원의 90%의 사과가 떨어졌지만 기무라의 사과는 80%가 멀쩡했다. 아무도 모르는 새에 사과나무가 땅속 20m까지 뿌리를 내렸고 가지와 나무가 굵고 단단했기 때문이다. 그의 사과는 병충해에 강해졌고 스스로 치유하는 자연 치유력도 생기게 되었으며 썩지도 않았다. 단지 수분이 증발하며 자연스럽게 자연으로 돌아갔다. 사과의 맛과 질이 화학 농법을 하는 사과들보다 훨씬 좋아진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문제는 토양이다. 깨달음의 씨가 자라기 위해서는 토양의 질이 좋고 풍성해야 한다. 그대에게 깨달음이 일어난다고 해도 그 깨달음이 무럭무럭 자라나기 위해서는 '그대'라는 토양이 깨달음이 자랄 수 있을 만큼 풍성해야 한다. 그대의 내면의 밭은 화약 비료나 농약 같은 유해 성분에 길들어져 있다. 그대 자신을 돌아보라. 그대는 무엇에 의존하여 살아 왔는가? 그대가 의존해서 살아왔던 모든 것들이 바로 그대 자신을 말해 준다. 그대는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수많은 것들에 의존하고 집착해서 살아간다. 자본주의 사회는 돈이 그대에게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해 준다는 마약을 팔고 있다. 아니면 화폐 가치를 보장해 줄 수 있는 다른 사회적인 능력이나 명예, 성적인 매력도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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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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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대학을 4년다니고, 여기서는 대학교를 4년째 다니고 있습니다. 마지막 학기인데, 지난 시간보다 더 힘들게 느껴집니다. 이제 거의 끝났다는 생각이 들다보니, 전부다 꼴도 보기 싫고 지긋지긋하다는 생각만 듭니다. 이러다가 정말 마지막 학기에서 낙제를 하지나 않을까 싶습니다.

 얼마전부터 여기서 경험한 대학교육을 한번 정리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호주의 대학교를 서구사회의 대학교의 전형으로 간주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어쨌거나 서구문화에 속하는 것에는 이견이 없을 것입니다.

 1. 실용주의적인 학풍
미국의 대학교 학제와 다르다고 들었습니다. 영국의 학제와 같다고 하는데요. 처음 1학년 1학기를 시작할때, Lecture 와 Tutorial로 나뉘어 있는 것이 아주 특이하게 느껴졌습니다. 교과과정은 실습을 중시합니다. 현장 경험을 중시하는 분위기는 실용적인 학풍이 반영된 듯 합니다. 실습을 중시하는 건 확실히 유용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리 머리속으로 달달 외우고 있어도 직접 손으로 한번 해 보는 것과는 차이가 크니까요.

하지만, 이것도 단점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토론이 권장되는 분위기이기는 한데, 학생들이 뭘 알아야 토론을 하지요. 예습 복습을 하던 아니면 기초지식이 있던, 일단 뭘 조금은 알고 나서 말을 해도 해야 하는데, 아는 것도 든게 없는 학생들을 놓고 토론식으로 수업을 하니 시간낭비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2. 자율적인 학풍
좋게 말하면, 창의적이고 자율적인 학풍이지만, 실재로는 알아서 하라는 겁니다. 가르쳐주는 건 별로 없는데, 알아서 해야하는 건 많습니다. 과장해서 말하자면, 교수가 알려주는 건 참고도서목록뿐입니다. 학생들이 알아서 에세이도 써야하고 발표도 준비해야하고 시험도 보고 해야합니다. 근데, 뭘 알아야 하지요? 아무것도 모르면서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이 들때가 많습니다.

3. 다면적인 평가
시험의 비중은 상대적으로 작고, 여러가지 과제나 발표등의 평가항목도 큽니다. 나쁘다고는 할 수 없는데, 저같이 시험에 익숙한 사람은 그냥 벼락치기해서 시험보는게 더 편하니 이것도 꽤나 힘들었습니다. 저같이 끄적거리는 거 좋아하는 사람도 짜증나는데, 다른 학생들도 꽤나 스트레스받는 것 같습니다.

4. 과학과 기독교 기반의 교육
제가 공부하는 분야가 Faculty of Science에 속합니다만, 이건 호주로 보자면 외래학문이라, 사실은 과학에 들어가는 학문이 아닙니다. 한국에서도 제가 공부하는 분야를 '미신'으로 보는 사람이 아주 아주 많지요. 그런데, 제가 놀랐던 건, 호주에서 이 분야를 공부하고 연구하고 가르치고 하는 것이 많은 부분 Science화 시켜서 접근을 하더군요.  그러니까, 서구문화에서는 이 분야의 학문을 들여올때 나름대로 자신들의 인식틀에서 재해석하는 과정을 거친다는 겁니다. 서로 다른 두 문화의 접촉과 변화라는 과정에서 이해할 수도 있고요. 꼭 문화적인 접근이 아니더라도, 사람이 한번 인식의 틀이 형성된 다음에는 새로운 대상을 해석할때 기존의 해석틀을 작동시킬 수 밖에 없다 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저는 스스로 저를 생각할때, 매우 합리적이고 논리적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이런 문화적인 차이를 접할때면 아주 짜증이 많이 났습니다. 지금도 더하면 더하지 결코 덜하지 않고요.

예를 들어, '건조하다'라는 진술을 놓고 보자면, 동양쪽의 어떤 텍스트를 보아도, 이것에 대한 정의가 없습니다. 건조한 건 건조한 것이니까요. 그런데, 이쪽에서는 이에 대한 오퍼레이셔널 데퍼니션 Operational definition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 개념에 대한 소위 객관적인 합의가  없으면 그 다음얘기를 할 수 없는 것이거든요.

하지만, 동양에서는 이렇지 않습니다. 이것은 건조하다라는 지극히 주관적인 인식하에서 논지의 전개가 이어집니다. 이것이 건조한 것인지 아닌지에 대한 합의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건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것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이것은 건조하다'에 이어서 전개되는 논지는 매우 매우 합리적이고 논리적입니다. 동양에서는 단지 '건조하다'에 대한 소위 객관적인 정의가 부재할 뿐입니다.

'묽다'라는 것도, 실험실의 데이터분석결과를 놓고, 정해진 수치를 넘느냐 안 넘느냐로 결정합니다. 동양에서는 그렇지가 않지요. 흐리고 묽으면 묽은 거고, 두껍고 진하면 진한거고요. 제가 보기에는 하등 쓸데없는 '건조하다'에 대한 operational definition에 목매달고 있는 걸 보면 정말 짜증이 안날래야 안 날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기독교적인 세계관이 바탕에 깔려있음을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강의에 들어오는 Lecturer들은 나름대로 박사학위도 받고 어쩌고 저쩌고 하는 인간들인데, 그들 말에 깔려있는 일직선의 역사관, 유일신관, 성취지향적인 세계관들을 보면 정말 기독교가 모든 문화의 기저에 자리잡고 있구나 하는 것을 느낍니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호주의 대학교에서 학교를 다니니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합니다만, 정말 누구말대로 성질뼏쳐서 못 다니겠다는 생각이 한 두번이 아닙니다.

5. 참고- 동양의 재래식 교육
한림대학교 부설 태동고전연구소라는 곳이 있습니다. 별칭으로 지곡서당이라고 불립니다. 청명 임창순선생이 만든 것이지요. 이곳에 들어가면 1학년때 사서를 그냥 외웁니다. 말하기를 논어를 강한다고 합니다. 그냥 무식하게 외우는 것이지요. 무슨 봉건적인 교육방식이냐 하겠지만, 알고보면 그렇지가 않습니다. 박노자도 말한 바와 같이, 인문학이나 언어는 무작정 외우는 것도 좋은 교육방법입니다.

영어를 잘 하고 싶은 사람들은 소설 책 한권 무작정 외워보세요. 사실은 영어가 어려운게 아니라, 영어소설책 한권 외우는게 어려운 것입니다. 그리고 외우는 것은 외우는 것으로만 끝나지 않습니다. 그것이 자양분이 되어서 줄기가 되고 꽃을 피우지요. 청출어람청어람이 됩니다. 민족주의자들이 전통을 고수하는 것도 우습기 짝이 없습니다만, 근대주의자들이 전통을 무시하는 것도 결코 덜하지는 않습니다.

지금 학교다니기가 싫어서 더욱 더 안 좋게만 생각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만, 하여튼 호주의 대학교 짜증 이빠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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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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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다시피 한국의 문화에서는 이름의 직접적인 사용이 매우 꺼려집니다. 대신 사회적관계를 나타내는 호칭이 주로 사용됩니다. 우선 두가지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번째는 이름 그 자체에 대한 터부가 그것이고 둘째는 개인의 정체성이 집단내의 관계에 의해 규정되는 집단주의 문화의 특성이 그것일 것입니다. '자'나 '호'같이 이름대신 쓰여지는 호칭이 사라진 현대에서는, 더욱이 사회적인 직책이나 또는 가족간에 쓰여지는 호칭이 그 자리를 대신합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사회적인 타이틀을 호칭으로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 좋게 보지는 않습니다. 그것에 동반된 권위주의나 허영심같은 것들이 탐탁치않기 때문입니다. 박사님, 교수님, 피디님, 기자님, 변호사님, 원장님 등등이 그것입니다. 제 생각엔 이름뒤에 '씨'자나 '님'자를 붙여서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호칭을 하는 것이 평등한 인간관계라는 측면에서는 바람직하다고 생각됩니다만, 저 혼자만의 생각일 뿐입니다. 사회속에서 살고 있는 저로서는 저 혼자 내키는대로 남을 부를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이름뒤에 '씨'자를 붙여서 호칭하는 것은 지금 이 시점에서는 하대의 의미가 강합니다. 거의 '해라'체와 같이 쓰여지는 느낌입니다. 그러니 싸우자고 하는 때가 아닌 다음에야 함부로 연장자에게 사용할 수는 없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름을 사용하는 것 자체가 이미 '하대'하는 의미가 크니까요. 그렇다면 연장자 우대문화가 강한 한국의 문화에서 연소자는 연장자에게 어떤 호칭을 써야할까요? 김규항은 '선생님'이라는 말을 대답으로 내놓았습니다. 선생님에는 먼저 태어난 이라는 뜻이 있고, 또 다른 누군가는 항상 나의 스승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저 역시 적절한 호칭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소한 사회적 직책이나 신분을 표시하는 호칭보다는 덜 구역질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 지낼때 누가 먼저 태어났냐를 두고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을 보고 한심한 인간들이라고 비웃었습니다. 통성명하고 바로 나이따져서 형님 동생하는 것 역시 이질적이기만 했습니다. 이곳에 와서보니 저보다 20년이 지난 후에 태어난 한국계 2세들도 생년을 기준으로 나이를 따져서 형,동생,언니,오빠 하고 있더군요. 제가 어디가서 바로 '형님'하고 부르거나, 또 '동생'하면서 하대하지는 못해도 (저는 스무살이 안 된 배준군같은 경우에도 반말이 잘 안나옵니다), 학교에서 만난 한국계 사람이 저보고 형님하면 저는 '네'하고 대답합니다.

'영수엄마라는 호칭이 아닌 나의 이름을 돌려다오' 말이야 맞는 말입니다만, 이름을 꺼리는 한국사회에서 과연 얼마만큼의 시간이 필요할지는 여전히 의문입니다. 전태민님께서는 선생님이라는 호칭이, 사모님이라는 호칭이, 원장님이라는 호칭이 무거운 갑옷마냥 거북하게 느끼시는 것 같습니다. 최소한 구역질나는 권위주의나 허영심은 아닌 듯하여 반가운 일이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상대의 호칭을 무시하는 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호칭이 듣기에 거북하시다고, 그것이 무시로 이어져서는 소통을 거부하는 것 밖에는 되지 않는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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