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부당한 노동행위가 있다. 사장이 직원들을 혹사시킨다. 휴일도 없고 임금도 제대로 주지 않는다. 엉뚱한 물건 파는 일까지 떠 넘긴다. 그리고 목표량을 채우지 못하면 자진해서 사표를 쓴다는 내용이 근로계약서에 있다. 이런 내용을 바깥에는 발설하지 않겠다는 각서는 덤이다. 사회적 약자인 노동자는 거절할 수가 없다.

여기에 대응하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모든 직원들이 합심해서 부당한 요구를 거절하는 것이다. 이것이 가능하도록 헌법에 노동3권이 보장되어 있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일부는 사장편으로 돌아선다. 사장이 회유했기 때문이다. 너는 승진시켜주겠다고. 너는 월급을 올려주겠다고. 또 일부가 사장편으로 돌아선다. 사장이 협박했기 때문이다. 너 해고시키겠다고. 마저 나머지가 사장에게 항복한다. 세상은 원래 그런거라고.

모두의 행복을 위해서는 노조의 승리가, 그리고 노조의 승리를 위해서는 모두의 합심이 필요하다. 승진? 필요없다. 해고? 할테면 해라. 유혹에 굴하지 않고 협박에 흔들리지 않으며 폭력에는 연대로 맞선다면 도대체 노조가 승리하지 않을 이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그렇다면, 외부의 적은 더이상 적이 될 수가 없다. 그러고 보니, 외부의 적은 내 안의 약점, 내 안에 적이 있으므로 해서 비로소 적이 되는 것이었다.

김규항은 말한다(한겨레의 칼럼). '세상이 변혁되려면 사회 구조도 변혁되어야 하고 나도 변혁되어야 한다.' 따라서, '적은 둘이라는 것, 적은 내 밖에만 있는 게 아니라 내 안에도 있다는 것을 정직하게 인정하고, 내 밖의 적과 싸우면서 동시에 내 안의 적과' 싸워야 한다고 말이다. 매체에서 이렇게 스스로에 대한 성찰을 말하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김규항이 빛나는 지점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내 안의 적과 내 밖의 적을 동시에 싸울 수는 없어 보인다. 왜냐하면 내 밖의 적은 내 안에 있는 적이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내안의 적이 없어지면 내 밖의 적도 없어진다는 것을, 이것을 모르고 사람들은 오늘도 자기 자신이 적인지 모른체 또 다른 자기 자신과 싸우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참된 영성가라면 바깥의 적보다 먼저 자신의 적과 만나야 할 것이다. 죽이던지 아니면 죽던지간에. 이것이 영성의 시대, 진정한 혁명가의 길이 아닐까.




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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