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자리를 찾아 앉는데, 창가쪽 옆자리에 한국여자애가 앉아 있는게 아닌가. 방금 막 배추를 추수하고 온 여자애같았다. 단발머리, 튼튼한 몸매에 순덕이같은 얼굴. 그럼 안 예뻐야 할텐데 이상하게 예뻤다.

"한국분이세요?"

멀뚱 멀뚱~ 눈을 똥그랗게 표정이라니.
 
"Are you a Japanese?"

이어진 나의 물음에 비로소 순덕이는 말문을 열었다.

"American"

순덕이의 이름은 웬디. 일본계 미국인. 일본에서 1년동안 영어교사를 하다가 LA에 있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일본계 미국인이면 좀 일본인같은 구석이 있어야 할텐데, 웬디의 생김새는 영락없는 한국의 시골처녀같았다. 나이는 한 살 아래. 웬디는 배가 안 고프다며 기내식을 전부 내게 주었다. 배가 부르다는 게 뭐냐는 나의 물음에 웬디는 말했다.

"I am full"

나는 " 아이 엠 풀"을 따라하며 웬디의 기내식까지 다 먹었다.

처음 나가 본 해외여행에 나는 외국애들을 만나면 주려고 영어로 된 명함을 만들어서 가지고 나갔었다. 학교주소 전공과목, 학교이메일주소에 뒷면에는 '카운셀러'라는 말까지 집어넣었다. 웬디와 나눈 대화중에는 'Genecide'라는 말이 기억난다. 왜 그 말이 나왔는지는 모른다. 내가 그 단어를 기억해내려 애쓰자 웬디가 알려줬다. 나는 웬디에게 명함을 주고 웬디는 내게 집주소를 적어줬다. 김포공항에 도착해서 웬디는 LA로 가는 비행기를 탔고 나는 집으로 왔다. 오사카에서 김포공항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웬디와 같이여서 더 그랬는지도 모른다.


계속.....



'소선재에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귀양살이의 죄목  (0) 2008.10.24
지랄나라의 지랄 2탄  (0) 2008.10.20
12년전의 이야기 - 비행기를 놓치다  (0) 2008.10.18
진보와 보수  (0) 2008.10.16
공지영을 말한다  (0) 2008.10.16
Posted by 일호 김태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