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LA에 사시는 분이 쓴 글이지만, 미국LA를 호주시드니로 바꿔도 과히 틀린 것 없으리.


http://kr.blog.yahoo.com/doorieclinic/766

요즈음 들어 충격적인 존비속 살해사건이 이곳 LA지역 한인사회에서 빈발하고 있다. 대부분 아버지가 가족을 살해하고 자기도 같이 자살한 사건들인데, 지난 3월 이후 한달여 사이에 4건이나 발생, 총 10명이 사망했으며 이중 미성년 자녀가 5명 희생됐다.

이런소식을 연달아 들으면서 이거 여간 착잡한 게 아니다.
내가 주변에서 흔히 보던 평범한 한국남자들이 그런 끔찍한 짓을 감행하고 있게 때문이다.

그들은 도대체 왜 이렇게 극단적인 선택을 감행하게 되었을까?
이민사회에 영원히 적응하지 못하는 아버지들의 이런 방황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첫째, 몰락한 지위와 빼앗긴 주도권
아버지라면 꼼짝 못하던 어린 자녀들이 미국식 교육을 받으면서, 남편이라면 꼼짝 못하던 순종적 아내가 미국사회에 젖어 들면서, 한국에서 누리던 가장의 지위는 순식간에 몰락하고 만다. 한국식 가부장제에 익숙하던 한국남자들은 이렇게 리버럴하게 재형성되는 새로운 가정에 적응하기가 근본적으로 어렵다. 미국사회에서 영원한 이방인으로, 영원한 언어장애인으로 밖에서 고생하던 남자들은 집에 돌아와서도 마찬가지이다. 갈수록 가족들과의 관계는 소원해 진다. 점점 혼자만 외톨이가 되어버린다. 한국남자들은 일이 끝나도 쉴 곳이 없다. 게다가 여성도 일을 하는 이민사회에서 야금야금 가정의 주도권을 빼앗기면 여성에 대한 심리적 위축감으로 그 박탈감은 더욱 심해진다.

둘째, 자신감 상실, 강박관념과 불안감
한국과 같은 수준의 사회적 지위를 유지할 수 없는 남성들은 그들이 가졌던 최소한의 자존심과 자신감을 완전히 상실한다. 한국서 소위 잘나가던 직업을 가졌었던 남자들이 미국에 와서 페인트공에 정원사로 일하며 겉으로는 ‘미국에 직업의 귀천이 어딨나’ 하면서도 심리적으로는 심한 박탈감에 고통받는다. 영원히 주류사회에 정착할 수 없을 것 같은 불안감도 더해진다. 남들 말리는데 유난 떨면서 미국까지 왔으니 꼭 성공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은 최소한의 휴식마저 스스로 포기하게 만든다.

셋째, 꽉 막힌 의사소통의 출구, 탈출할 비상구가 없는 고립
사회적 네트워킹의 부족, 영원히 해결되지 않는 언어 장벽 등으로 기인한 심리적 고립감은 상상을 초월한다. 한국남자들의 이민생활은 답답함 그 자체이다. 특히 소주잔 한 잔 기울이며 답답한 속마음을 툭 터놓을 친구조차 찾기가 쉽지 않다. 섬처럼 완전히 고립된 이민사회에서 또 다른 고립감이다. 소통이 단절되고 사회적 관계가 사라진 한국남자들은 사회적 기형아가 되어간다.

넷째, 군중속의 고독감
사회적 단절감을 회복하기 위해 열심히 골프모임, 종교모임, 동문회 등 다양한 경로를 찾아 다니며 표면상 나름대로 소통의 통로를 찾는 듯 보이지만 한국남자들은 늘 공허하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끼리 나이 들어 억지로 형성한 그 모임이란 것에서 애당초 건전하고 즐거운 사회적 관계가 형성될 수 없다. 모임에서 얻는 상대적 박탈감은 또 하나 스트레스 제공원이 된다. 참석하지 않으면 불안하고 참석하면 기분이 더욱 나빠진다. 그러나 도태되는 느낌이 싫어 다음주에도 또 모임에 참석한다.

다섯째, 경제권 상실과 배신감
그런대로 경제 사정이 좋을 때는 부부간의 문제나 가족간의 사소한 문제가 봉합되다가도, 경제사정이 나빠진 때에 한 번 악화를 걷기 시작하면 가족의 붕괴는 걷잡을 수 없이 이뤄진다. 아이들은 엄마와 만 대화를 하려 하고 아버지는 집안에서조차 늘 이방인이며 외톨이다. 돈 못 벌어서 무시당한다는 심리적 열등감과 배신감을 힘의 과시로 위장하려 물리적 폭력을 집안에서 행사하는 잘못을 범하기도 한다. 그러나 물리적 힘의 행사는 곧바로 철창행.. 가족관계는 영원히 끝이다.


미국 속 한국남자들은 이런 고통스런 현실을 피해 매일매일 한국으로의 탈출을 꿈꾼다.
어린 시절, 젊은 시절 꿈이 있고 친구와 가족과 낯익은 풍경들이 있는 고향으로의 귀향을 꿈꾼다.

그러나 현실의 벽은 너무나 높다.
가면 뭘 먹고 사나, 실패하고 돌아온 나를 사람들은 어떻게 볼까, 아이들 학교는 어떻게 하나..
알카트레즈 탈출보다도 어려운 게 현실이다.

그들은 또 다시 매일 좌절한다.

불안감과 강박관념, 탈출구가 전혀 보이지 않는 절망, 자격지심과 열등감, 그리고 참기 어려운 배신감과 고립감 그리고 매일매일 자신을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죽일놈의 좌절.

미국 속 한국남자들은 서서히 정신적 공황상태로 빠진다. 이런 정신적 공황상태에서 어느 날 개인의 실패를 절감하거나 가족들의 배신에 격분하는 순간,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극단적 절망에서 동반자살을 감행하거나, 복수심에 가족을 살해해 버리는 것이다.

미국 속 한국남자들.
씨바 이렇게 산다.

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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