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어얘기를 보고 있자니 남의 얘기가 아니다. 영어잘하는 내 동생은 과연 어떻게 느끼는지? 밑의 링크따라 시리즈를 다 볼 일이다.

http://kr.blog.yahoo.com/doorieclinic/3739

미국에서의 이야기는 아주 간단히 하고 인수위얘기로 넘어갈 요량이었는데 싣니보이가 눈치를 채고 코를 걸었다. 정말 하기 싫은 얘기인데.. 아 띠바. 근데 괜찮다. 나만 그런게 아니라 해외 이민자들의 공통된 아킬레스건, 밝히지 못하는 비밀, 끙끙 앓는 속병이니까.

6. 삼십대 중후반. 미국에 왔다.
온지 일주일정도만에 혼자서 Social Security 사무국에 갈 일이 있었다.

며칠전 신청했던 소셜시큐어리티카드의 넘버가 먼저 필요했기 때문이다. 무뚝뚝하게 생긴 뚱뚱한 흑인여자.. 번호를 미리 알려줄수 있겠냐고 했더니 그 여자가 퉁명스럽게 짧은 영어를 내뱉는데.. 근데 그걸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듣기에는 ‘대리벗?’ 이었다. 대리벗? 대디버드? 아빠새? 이게 무슨 소릴까? 번호를 알려달라는데 왜 아빠새냐고 묻는걸까? 몇번이나 아임쏘리를 반복했지만 그 여자는 여전히 ‘대리벗’이었다. 혹시 래리버드? 이년이 착각을 해서 내 이름이 래리버드냐고 묻는건가? 마이네임이즈.. 대기석에 앉아 기다리던 모든 사람들이 웃으며 쳐다본다. 아 이 띠바뇬.. 미국 공무원들 다 친절하다더니.. 상대방이 못 알아들으면 좀 천천히 또박또박 말해주거나 다른 말로 설명을 해줘야지.. 결국 그 여자가 귀찮고 한심하다는 듯 표정으로 종이에 써준다. 그건 놀랍게도 “Date of Birth” 였다. 단 세단어로 구성된 영어를 난 전혀 못 알아들었다. 놀멘놀멘 여행다닐때의 영어와 현실영어와는 천지차이가 있다는 걸 처절하게 깨달았다.

크게 기가 죽었다. 고주몽에게 물어봤다. ‘넌 얼마나 지나서 귀가 열렸냐?’ 고등학교 졸업하자 마자 미국에 왔던 친구다. ‘종일 햄버거가게에서 일하고 남는 시간 티비보고 했더니 한 육개월쯤 지나니까 귀가 열리더라. 근데 넌 지금 나이가 많으니까 한 이년은 걸릴거다.’ 어린이 대상 교육방송을 보는 게 좋겠다고 한다. 그래서 텔레터비 같은 유아용, 취학이전 어린이용 교육프로그램을 많이 봤다.

영어를 배우러 Adult School에 갔다. 선생 한명이 내게 유아용 그림책을 보여주면서 그걸 설명하랜다. ‘버터플라이 이즈 플라잉..’ 텔레터비에서 보고 들은대로 했다. 오케이.. Beginner Class로 가라고 한다. 그 교실로 갔다. 근데 그 반, 맨 노인네들 투성이었다. 선생이 종이 한장을 주면서 내용을 기입하랜다. 신상정보 같은 것들이었다. 이름 나이 학력 주소.. 그걸 읽어보던 선생이 다시 내게로 온다. 4-year college졸업한 거 맞느냐고 묻는다. 그렇다고 했더니 그렇다면 다른 반으로 가야한다며 날 다른 반으로 보냈다. Intermediate Class였다. 중간반. 그런가 보다 했다.

그러나 잠시 후.. 그제서야 상황을 알아차렸다.
실력으로는 초심자반인데, 꼴에 학력은 높으니 중간반에 넣어준다는 거 아닌가. 
초심자반 교실로 들어서는 날 신기한 듯 쳐다보던 노인네들의 눈을 떠올리며 이를 갈았다.

한 삼년정도 열심히 하면 영어 잘하겠지. 삼년이 지났다. 영어는 여전히 안된다.
삼년이 더 지나면 괜찮아 지겠지. 그래서 삼년이 또 지났다. 근데 여전히 안된다.
그래 또 삼년이 더 지나면 나아지겠지. 삼년이 또 지났다. 하지만 여전히 안된다.
(구체적인 과정과 내용들은 생략한다. 차마 알리기 어렵다.)

물론 지금도 처음처럼 그렇게 안된다는 건 아니다. 먹고사는 일에 관련된 영어는 그런대로 문제없이 하면서 산다. 문제는 자기가 익숙한 영어에서 벗어났을 때 발생한다.

① 재작년 오피스를 이사하면서 인테리어 공사를 할 때의 일이다.

일하는 일꾼들에게 이런저런 작업지시를 해야 했다. “여기에 구멍을 드릴로 요만하게 뚫어서 저쪽에서 온 선을 이리로 뽑아내고 일단 마무리를 한 다음 이것과 연결할 수 있게 준비를 하고, 다시 한쪽 끝을 다시 구멍을 집어넣어 저쪽으로 보내 거기서 다시 똑같이 작업하고, 벽의 마무리는 구멍이 요만한 커버를 사다가 막아야 한다.” 근데 이 얘기가 영어로 그럴듯하게 안되는 것이다. and 와 then이 무지하게 들어가는 짧은 영어.. 스스로 놀랐다. 이런 걸 영어로 이야기하는 게 아직도 문제가 있다니.. 근데 허긴 이런 영어 미국에 와서 처음 해보는 거였다. 한번도 안 해본 거라 당연히 안되는 거였다.

② 작년 씨애틀에 갈 때 중간 기착지 공항에서 점심을 먹게 되었다.

사람의 줄이 짧은 식당을 찾아 섰는데 이름이 생소한 샌드위치 샾이었다. 샌드위치 가게가 원래 주문이 복잡한건 알고있었지만 설마 바쁜 공항내에 있는 곳에서 Custom Order가 있을리는 없을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웬걸 내가 빵 종류부터 선택해야 했다. 어쩐지 줄이 짧더라니.. 그러나 이미 늦었다. 주문하려다 말고 쪽팔리게 다른쪽으로 갈 수는 없다. 빵종류가 뭐뭐 있느냐고 물었더니 점원 년 무지하게 짜증난 얼굴이다. 마지못해 몇가지를 불러준다. 빵 문화권이 아닌 내게는 아무리 종류를 불러줘야 생소하긴 마찬가지. 다행히 귀에 들리는 게 하나 있길래 그걸 골랐다. 이번엔 안에 들어가는 내용물을 고르란다. 예문을 불러달라고 하면 이년 확 신경질 낼거 같다. 얼핏 떠오르는 ‘페스트라미’를 고르자, 연달아 쏘스를 고르란다. 아 띠바 빵 한조까리 먹는게 왜 이리 복잡해.. 실물을 보면서 손가락으로 정했다. 그 담엔 그 유명한 ‘레리쎈토메이로’ 다행히 아는 거라 문제없이 넘어갔다.^^ 그때 바로 뒤에서 주문 차례를 기다리던 아짐이 갑자기 마음을 바꾼다. ‘양이 많아 보인다. 하나만 해서 노나먹자’ 양이 많긴.. 샌드위치 반쪽씩으로 모자라서 옆 피자집에 가서 피자 하나를 더 시켜먹어야 했다.

③ 첫 방문환자와 오래도록 얘기해야 하는 Intake가 지겨워서 그걸 다른 직원에게 맡겼다. 그러길 몇 달.. 그가 자리를 비우게 되어 할 수 없이 내가 다시 해야만 했다. 근데 이게 웬일인가.. 앵무새처럼 술술 하던, 판에 박힌 말들이었는데 갑자기 뻐걱거리며 잘 안되는 것이다. 부서진 영어가 사정없이 튀어나온다. 머리속에 꾹 박혀 있었다고 생각했던 건데도 안 쓰니까 단 몇달 만에 술술 새어 나가버린 것이었다.

④ 보험회사의 직원 놈 하나가 우리 케이스에 대해 사사건건 말도 안되는 시비를 건다. 우리랑 관련된 사무실에 여기저기 공문을 보내고 지랄이다. 혹시나하고 관련 법조문을 꼼꼼히 조사했는데 그놈의 주장은 전혀 사실무근이다. 아니 사실무근이 아니라 오히려 틀렸다. 근데도 중간에 끼인 변호사라는 작자들이 그놈의 요설에 넘어가 그놈의 말에 동조하기까지 한다. 환장할 지경이다. 법을 한다는 변호사넘이 보험회사 직원 나부랭이의 억지에 넘어가다니.. 근데 난 이걸 그들에게 설명할 재간이 없다. 이게 날 더 미치게 만든다. 한국말로 한다면 단 5분 안에 양측을 설득, 굴복시킬 자신이 있다. 근데 영어로 해야 한다면.. 솔직히 시작할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다행히 한 변호사가 끝까지 법정다툼을 해줘서 모든게 그 보험회사 시키의 억지라는 걸 밝혀냈다. 그렇지만 그렇게 법정 다툼이 있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이미 우리의 reputation은 커다란 손실을 입고 말았다. 한동안 그 새끼때문에 분을 삭이며 일을 처리하느라 무척 마음고생이 심했다. 그 마음고생의 상당부분은.. 영어를 못한다는 자괴감이었다.


미국에서 살면 영어가 저절로 된다?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다.

피나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영어는 결코 안된다. 아니 피나게 노력해봐야 영어는 안된다. 뇌에 기록이 잘 되지 않는 나이의 사람들 얘기다. 자기가 꿈꾸던 수준의 영어는 결국 꿈으로 끝난다. 그저 겨우겨우 ‘먹고 사는 영어’만 할 뿐이다. 근데 이 먹고사는 생존영어라는 게 굉장히 제한적이다. 자기의 일터에서 일어나는 상황에 대해서만 써먹는 영어다. 따라서 거기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갑자기 반벙어리가 된다. 또 더 무서운 것은 아무리 먹고사는 영어가 능숙했다 하더라도 잠시만 멀리하면 곧 바로 먼나라 말이 되어버린다. 이민자치고 영어에 한 없는 사람 없다. 그 넘지 못할 까마득한 벽에 가슴을 짓눌리며 산다. 일년 365일을 그렇게 영어에 짓눌리며 산다.

외국으로 이민을 떠나는 연령층이 30대중반 이후가 다수라고 볼때 이들 늦은 이민자들의 직업은 거의 정해져 있다. 끊임없이 영어를 연마하고 공부해야 먹고 살 수 있는 직업은 이들 이민자들에게는 애당초 무리다. 후다닥 현장영어만 습득하면 사는 데 지장이 없는 그런 직업에 종사할 수밖에 없다. 모든게 다 영어때문이다.

그래도 초기엔 참 열심히들 한다. Adult School에 열심히 다니고, 일부러 적극적으로 미국인들과 대화할 기회도 만들어 보려고 노력한다. 그러면 어느 순간부터 미국인들의 말이 조금씩 귀에 들어오고 내 의견을 떠듬떠듬 말할 수 있게 된다. 아 그렇구나 이렇게 열심히 하면 되는구나. 근데 거기가 끝이다. 아무리 해도 그 이상 발전이 없다. 해도 해도 맨날 그 자리이다. 열개가 새로 들어가서 열한개가 빠져나가지 않으면 다행일 정도다. 물론 하루 24시간 영어에만 매달린다면 그건 모르겠다. 그러나 그렇게 팔자좋은 사람은 없다. 당장 먹고 살아야 하는 현실에 치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영어를 금새 익힌 자식들을 선생삼아 집에서 좀 노력해보고 싶지만 이것들은 부모에게 염장만 지른다. 내 누구땜에 이 고생을 하는데 저 싸가지 없는 것이.. 저게 자식이야 웬수야?

이무렵 현장에서 먹고 사는 영어가 그런대로 해결되는 정도가 될때 사람들은 갈림길에 선다. 영어공부에 더 노력해 볼 것이냐 아니면 그냥 먹고 사는 데에만 매진할 것이냐. (물론 영어가 발전해야 사업이 유지되는 경우는 예외가 되겠다.) 대부분의 이민자들은 여기에서 영어에의 노력을 거둔다. 아니 노력을 거둔다기보다는 ‘해도해도 안되는 영어를 그냥 포기한다’고 하는 게 맞다. 자기 사업 운영하는 데 지장 없고, 청구서에 문제가 있을 때 전화해서 그걸 해결하고, 쇼핑을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되고, 어쩌다하는 여행에서 크게 불편하지 않게 다닐 정도가 되면 영어공부에 더 이상 목을 매달리고 싶지 않다. 너무 지겹기 때문이다. 해도 해도 안되는 영어, 더 이상 집착하지 않는다. 고급 영어가 꼭 필요하면 영어를 잘하는 사람을 고용해 쓰면 된다. 게다가 자식들이 자라 어려운 영어를 해결해주기 시작하면 이민자는 더더욱 영어공부와 담을 쌓게 된다.


한국에서 가족이나 친지가 올 때. 이민자들이 가장 두려워 하는 게 바로 이거다. 한국에서 누가 오는거^^ 처음 만나자마자 다짜고짜 ‘너 영어 해봐’ 하는 사람들이 실제로 많다고 한다. 미국에서 살고 있으니 당연히 유창하게 영어를 하는 줄 알고. 나도 그런줄 알았다. 미국가서 살다보면 영어는 저절로 되는 줄 알았었다. 그러나 이민자의 99%는 당장 외국 식당에 들어가서 친지들이 먹고 싶어하는 음식을 찾아서 대신 주문해 주는 것도 힘들다. 식당이나 음식에 관한 영어는 별로 해보지도 들어보지도 않았다. 영어와 문화가 딸려 그 간단해 보이는 것도 은근히 버거운 것이 현실이다. 같이 여행이라도 하게 되면 문제는 시리즈로 터진다.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모든 것을 돌봐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하던 영어도 점점 더 안된다.

영어가 젤 안되는 때는 어떤 상황에서일까? 네이티브 백인과 대화할 때? 아니다. 영어가 가장 안 될때는 바로 한국사람이 주변에 있을 때이다. 저 사람은 내가 영어를 꽤 잘할 것으로 믿고 있다. 근데 난 아니다. 발음을 하더라도 좀 더 굴려야지, 말을 하더라도 좀 빠르게 해야지, 나 영어 못하는 거 눈치못채게.. 이러다 보면 영어는 더 안된다. 내딴엔 멋지게 말했지만 듣던 상대방이 말똥말똥 쳐다보면서 ‘아임쏘리?’하기 십상이다. 같이 있는 한국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화끈화끈거린다.


영어가 큰 바다라면 이민자들은 바닷가 귀퉁이 손바닥만한 얕은 물웅덩이에서만 평생을 찰싹대다 마무리한다. 주민회의에 나가 열띤 토론을 한다거나, 커뮤니티의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사람? 전혀 없다. 이들에게 영어는 악몽이며 지옥이며 가슴에 응어리 진 천추의 한이다.

이런 이민자들에게 한국에서의 소식이 들렸다.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누구나 간단한 영어회화는 가능할 수 있게 만들어 주겠다.”


영어 이야기 1
영어 이야기 1.5
영어 이야기 2
영어 이야기 4


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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