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철안에서

소선재에서 2009. 3. 3. 20:02

뒷자리에 한국남자 둘이 탔다.

"문법은 도통 도움이 안 되요. Spend 다음에 왜 wandering 이 나오는 건지, 도대체...."

"그 동사에는 ing형이 와요. 읽다보면 문법도 알게 되죠. Grammar in use 보세요"
"그것도 해 봤지만, 나는 책보다는 역시 사람하고 얘기하면서 깨우치게 되요. 이젠 스피킹에는 자신이 있는데, 리스닝이 안 되서"

문법을 싫어하는 남자의 목소리는 높고 들떠있고 빠르다. 듣기보다는 말을 한다. 책을 보라고 하는 남자는 가라앉은 목소리에 차분하고 말이 느리다. 상대방의 말에 동조하지 않는 완고함이 있다.

외국어에 왕도가 어디 있겠는가? 스피킹도 어렵고 리스닝도 어렵고 롸이팅도 어렵고 리딩도 다 어렵다. 굳이 따지자면, 리스닝이 있어야 스피킹이 있고 리딩이 있어야 롸이팅이 있다는 것 정도.

그래도 얘기하자면, 하면 는다고 할까? 예전보다는 읽는 속도가 조금 나아졌고, 답답한 마음도 조금은 줄어들었고, 듣는 것도 조금은 나아졌다. 말하는 건 잘 모르겠다. 말할 일이 없으니.

내릴때 한국남자 둘의 얼굴을 봤다. 역시 목소리와 얼굴이 같다. 완고한 목소리는 차분한 모습이었고, 높은 목소리는 지저분하게 꾸민 모습이었다.

영어하나 배우는데도 생김새를 못 벗어난다. 사람들은 알까? 무엇을 하건 자기에게 주어진 모습대로 살아간다는 것을. 나 역시 예외는 아닐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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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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