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트럴가는 길

소선재에서 2007. 11. 28. 18:40


센트럴에서 학교가는 길은 지하보도가 길게 이어져있다. 느린 걸음으로는 한 5분, 종종 걸음으로도 한 3분은 걸리는 길이다. 매일 아침 학교가고 그리고 집에 오는 길에 다니는 이 길은, 매일 같으면서도 매일 다르다.

그 지하보도를 걸어가며, 마치 '스모크'에서 가게 주인(영화속 배우는 하비 키이텔이었다)이 매일 아침 같은 시각 가게앞 풍경을 사진으로 남겨놓는 것처럼, 나는 이 곳의 사진을 찍어놓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집에 있는 디지털카메라가 애기차지라 당분간 내 차례가 되긴 어렵겠지만, 나는 매일 아침 같으면서도 다른 센트럴 지하보도의 사진을 찍어 보고 싶다.

바삐 걸어가는 사람들, 출근하는 사람들, 학교에 가는 학생들, 카트를 밀고 가는 노숙자, 구걸하는 거지, 신문 또는 광고지를 나눠주는 사람들, 사람들의 동전을 바라며 기타를 둘러메고 노래하는 사람들(특히 그 중에 나는 수요일 아침의 흑인아저씨가 제일 좋다), 판토마임을 하는 사람도 단골이고, 장님으로 보이는 여자가 무반주로 노래를 부를 때도 있다. 아침에는 손금을 봐주는 할머니가 입구에 있고, 중간쯤에는 여호와의 증인을 전도하는 할머니가 있다. 꼬맹이로는 중국계, 한 여덟살쯤 되었나, 키보드를 놓고 피아노곡을 치기도 했고, 중국계로 보이는 할아버지는 해금같은 악기를 연주하기도 하고, 또 다른 중국계 할아버지는 어설픈 인형놀이를 하기도 한다.

한번은 저녁 시간에 젊은 백인 커플 둘이 남자는 기타로 반주를 하고, 여자는 바이올린을 켜고 있었는데, 귀에 익은 그 멜로디는 U2의 With or Without You였다. 현악기의 합주가 너무나 멋들어져, 걸음을 계속하면서도 내 귀는 그들의 연주를 쫓고 있었다. 내게 만약 50센트의 여유가 있었더라도, 그들의 음악을 더 듣고 왔을 것이다(아쉽게도 그들은 두번 다시 볼 수 없었다).

수요일 아침마다 바삐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만면에 웃음을 띠고 노래를 전해주는 흑인아저씨. 그가 바닥에 펼쳐놓은 기타케이스에는 동전이 가득하다. 매번 그냥 지나치기가 미안해, 눈웃음으로 대신해볼까도 싶었는데, 역시 50센트의 여유가 부담스러웠다.

센트럴 가는 길, 아직 내게는 50센트의 여유가 없는 길이기도 하다.


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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