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됩니다. 너무 늦었습니다"
"아니, 저기 비행기가 아직 있잖아요. 출발 시간도 30분이나 남았는데"

1996년 3월, 오사카 간사이국제공항. 대한항공유니폼을 입은 일본아줌마는 내게 짧은 한국말로 늦었다고만 했다.

고베에서 공항까지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 나는 내내 시계만 들여다 보았다. 전날 선배와 함께 밤을 새고 잠깐 눈을 붙인다는게 이렇게 된 것이다. 간사이공항으로 진입하는 다리를 건널때 저 멀리 탑승게이트옆에 서 있는 대한항공비행기가 보였다

 '다행이다. 아직 출발전이구나'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총알처럼 튀어갔지만, 몰랐다. 출발시간 한시간 전에는 탑승수속을 마쳐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이걸 어쩌나. 아직 30분이나 남았지 않느냐는 나의 항변에 한국인 매니져가 왔고, 다음번 비행기에 자리가 나면 태워주겠다고 했다. 그게 내일이 될 지 언제가 될 지는 모를 일이었지만.

처음나가 본 해외여행. 비행기도 '당일 지정편이외 무효'인 줄로만 알았으니, 표를 안 날리게 된 것만 해도 어디냐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은 많고 공항이나 구경해 볼 셈이었는데, 아침부터 굶어서 배가 말할 수 없이 고팠다. 주머니에는 단돈 50엔(한국돈으로 500원) 뿐. 이걸로는 고베로 갈 수도 없고 오사카로 나갈 수도 없고, 뭘 사먹을 수도 없고. 그냥 공항안에 있을 수 밖에 없다. 신용카드도 없었으니 그야말로 쫄쫄 굶을 수 밖에.

이런 거지신세가 어디 있나 싶었지만, 이때는 몰랐다. 이게 모두 몇 시간 후의 행운을 위해 준비된 서곡이라는 것을. 세시간 뒤 비행기에 자리가 났고, 거지신세에서 벗어난 나는 기쁜 마음으로 비행기에 들어섰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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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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