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와 보수 (2)

공감(共感) 2008. 10. 21. 02:33
김규항의 글은 명확하다. 지금 어디에 우리가 있는지 잘 보여준다. 박노자도 그렇고, 이런 지식인들의 역할에 우리는 우리의 모습을 돌이켜볼 수 있다. 김규항의 글에 내정도가 어찌 감히 대들수 있으리오마는 몇가지 내 생각을 토로해본다.

1. 촛불에 대해
난 촛불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촛불은 한국사람들이 아니면 할 수 없다. 뭔 일있으면 와~하고 바람처럼 일어나는 것. 거기에 대중의 이성은 없다. 난 월드컵과 촛불의 본질이 다르지 않다고 본다. 월드컵은 남녀노소 지역 계급 계층을 불문하고 '민족'과 '대한민국'이라는 우상에 빠진 난리였다면, 촛불은 보다 더 제한된 범위의 사람들에게 해당되었을 뿐이지만, 거기에 '이성'이 없었다는 건 월드컵광풍과 같다.
촛불에 나간 사람들 중 이명박을 찍은 사람들은 촛불에 나갈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다. 촛불에 나간 사람들 중 뉴타운으로 집값오르겠지하고 한나라당찍은 사람들 역시 참가자격이 없는 사람들이다. 스스로의 반성과 성찰이 없었다는 것은 촛불의 의미를 찾을 수 없게 만든다. 하다못해 이명박이 그럴 줄 몰랐다는 그런 반성도 없었다.
모든 화살은 이명박에게만 쏘아졌다. 대한민국의 커다란 착각 - 모든게 대통령탓이라는 이 봉건주의적 사고는 마찬가지로 대통령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에서 멈춰있다. 그러니, 이 촛불은 대통령의 '결심'으로 광우병쇠고기의 국내반입금지(이것도 눈가리고 아웅하는 것 같지만)가 이루어지자 스스로 꺼져버린 것이다.


2. 진보에 대해
-한국에 좌파는 없다
김규항은 말한다. 구우파(한나라당 수구꼴통)와 신우파(진보개혁세력)이 오른쪽에 자리잡고, 좌파가 제대로 된 진보로서 왼쪽에 자리잡아야한다고. 백번 옳은 말이고 이렇게 되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 신우파와 구우파는 김규항의 말대로 서로의 대립관계가 아직도 이어져 오고 있고, 그 파워는 한국을 반분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아직 좌파가 끼어들 여지가 없는 것이다. 주사파가 잡고 있는 민주노동당이 어디 좌파인가? 한국의 좌파는 진보신당을 지지한 2~3%의 유권자. 현실제도권에서 아무런 의석도 가지고 있지 못한 3%에 불과할 뿐이다.

-김규항에게 진보는 '좌파'이나 한국인에게 진보는 '신우파'이다
좌파(김규항같은 이)가 보기에 '구우파'와 '신우파'의 차이는 별반 없을 수도 있지만, 신우파와 구우파의 간격은 스스로에게나 사람들에게나 크게 느껴지는 듯하다. '자본화'라는 그들의 본질은 김규항의 지적대로 아무 차이없고, 드러나는 면에서만 겨우 오십보 백보에 불과하겠지만, 그 오십보차이를 사람들은 본질로 느끼고 있고, 이는 '구우파'와 '신우파' 당사자들 또한 그렇게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 상대적인 차이가 신우파를 '진보'로 만들고, 이 '진보'는 사실 좌파가 아님에도 '좌파'딱지를, 친북이 아님에도'친북'딱지까지 덮어쓰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니 진짜 좌파입장에서는 억울할 만도 하다. 우리가 진정 좌파인데 저런 신자유주의와 세계화를 추구하는 이들을 '좌파'라고 하니 말이다.


-좌파의 현주소
사실 한국에서 좌파가 진정한 진보로서 자리잡기란 요원해 보인다. 예전에 군사파시즘과 싸우던 시기, 민주화운동인사들의 주된 레퍼토리는 '우리를 좌경용공분자로 몰지 마라'였다. 그러다가, 90년대들어 소위 '자생적 사회주의자'들이 나타났지만, 여전히 '좌파'라는 딱지는 반체제인사들도 거부하는 그런 불온한 레테르였다.
지금 심상정, 노회찬같은 이들이 스스로를 '좌파'나 '사회주의자'라고 자칭한다면 그들의 정치생명은 당장 끝나고 말것이다. 아직도 '좌파'와 '사회주의자'들은 한국사회에서 불순분자이기때문이다. 현재 '개혁진보'라 불리는 세력이 끊임없이 '친북좌파'라는 공격을 받고 있고, 일부분 그런 공격도 효과가 있는 듯 보이지만, '신우파'를 지지하는 쪽에는 그런 공격이 먹혀들어가지 않는다. 즉, '반구우파'입장에서는 '신우파'를 '좌파'라고 보지 않고 다만 '진보'라고만 볼 뿐이다. 그러니, '좌파'는 아직도 한국의 절대다수에게 용납이 안 되는 그런 딱지인 것이다.


-'신우파'가 진보가 되어버린 이유
신우파가 아직까지도 본질에 어울리지 않게 '진보'가치를 점유하고 있는 이유는 물론 김규항이 말한대로 군사파시즘과 싸우던 유산이 가장 클 것이다. 군사파시즘은 이 사회에 '불합리 부패 부정 비상식 불법'등을 유산으로 남겨 놓았다. 그러니, 이런것에 시달리는 생각있는 사람들에게 '불합리와 부정에 반대'하는 '신우파'는 얼마나 진보적인가? '신우파'에게 신자유주의나 세계화같은 문제가 본질이 되기에는 사실 잘 알지도 못하고 또 그것보다는 '원칙과 정의 상식'이 더 중요한 문제가 된다. 386이라고도 하는 그들에게는 '사회정의 부패권력 불법'같은 문제가 더 와 닿는 것이고 '구우파'가 막강한 지금 아직도 이들 문제는 중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 '구우파'의 복귀
그러나 어느정도 민주주의가 정착이 되고 난 후, 더 잘 먹고 잘 살고 싶은 사람들은 이런 '신우파'의 문제는 더이상 관심거리가 되지 못했다. 노무현의 과거사정리같은 문제들은 전혀 지지를 받지 못했다. 오히려 '구우파'의 공격거리만 되고 말았다. 절차적 민주화가 어느정도 완성된 지금, 사람들은 더 잘 먹고 더 잘 살기만 바라게 되었고 김규항의 말대로 이는 결국 '구우파'의 반사적 이익으로 나타났다. '구우파'의 재등장은 이제 잘 먹고 잘 살게만 해주면 된다는 사람들의 요구와 그에 따른 '구우파'의 과거에 대한 면죄부에 다름아니다.


- 좌파가 진짜 진보가 되는 길
'자본화'의 속성상 '신우파'도 역시 자본의 마름이 될 것인가? 김규항은 지난 10년정권을 보면 신우파건 구우파건 그 나물에 그 밥이라고 보았다. 확실히 아니라고 하긴 어렵다. 유럽의 경우를 봐도 그렇다. '신우파'는 자본의 마름역할밖에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럼, 좌파가 진정 세력의 왼쪽반을 점하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

첫번째 경우는 먼저 '구우파'의 쇠퇴로 인한 좌파의 확대다. 구우파가 없어져서 신우파가 오른쪽 본래자리를 되찾아가면 그제서야 진짜 '좌파'가 진보개혁세력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좌파와 신우파의 연합전선이 있을 수 있다.
지금 좌파가 '신우파'를 공격하게 되면 그것은 '좌파'가 커지는 게 아니라 '구우파'가 더 커지게 된다. 이 메커니즘은 지난 대선과 총선 한나라당의 리턴으로 확인됐다고 본다. 아직까지 신우파의 힘이 약하기때문에, 노무현의 몰락과 더불어 좌파도 같이 몰락하게 된 것이다. 좌파가 커지려면 오히려 신우파를 지지하는 전략도 필요할 수 있겠다 - 물론 해외파병이나 세계화에 무턱대고 지지할 수는 없지만 -

두번째 경우는 '신우파'가 몰락하고, '구우파'가 우파가 되고 '좌파'가 진보가 되는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아마 이렇게 되기 전에 파시즘을 겪게 될 것이다. 좌파가 성숙하기 위해서는 '좌우'를 떠나 상식이 통하고 말이 통하는 인간들이 있어야하는데, 현재 한국의 '구우파'를 보면 전혀 말이 안 통하는 무리들이니 파시즘밖에는 길이 없는 듯 보인다. 좌파가 그 틈에 크게 된다면 파시즘과의 내전으로 갈지도 모를 일이다.

- 쉽지 않은 진짜 진보의 길
진짜 좌파라면 사람들에게 욕심의 충족을 보장할 수는 없다. 오히려 욕심의 충족이 족쇄가 됨을 설득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사람들은 모두가 다 자기 아파트값이 뛰릴 바라고, 자기 자식들이 1등을 하길 바란다. 서울대를 정점으로 한 서열화는 좌파가 집권하지 않는 한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상고출신 대통령이 100명이 나와도 서울대를 없앨 수가 없는 것이 현재의 한국이다.
그러니, 진짜 좌파는 쉽지 않다. 사람들에게 욕심을 좀 버리라고 해야하기때문이다. 당신혼자 잘 살려고 해도 그게 안 되는 것이라고 얘기해야하기 때문이다. 이런 얘기들이 사람들에게 먹힐 수 있을까? 어리석은 사람들은 우선 나는 잘 먹고 잘 살기를 바란다. 이러니 한나라당이 이러고 이명박이 지금 저럴 수 있는 것이다. 자본의 노예는 사실 스스로 자초한 것이다. 이것을 일깨우고 이것을 깨나가는 것이 좌파이고, 진짜 진보의 길이다. 쉽지 않은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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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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