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인권과 교권은 어디서 충돌하는가?1)
좋은교사운동 정책연구팀
수업 시간에 떠들다가 걸려나온 학생에게 교사가 체벌을 하려고 하자
“선생님, 체벌은 학생의 인권을 침해하는 거예요.”
“이놈 봐라, 너는 수업 시간에 떠들어서 선생님의 교권을 침해했어!”
이와 비슷한 웃지 못할 상황이 학교 현장에서 종종 일어나고 있다. ‘학생 인권’이나 ‘교권’이 학교 현장에서 많이 말해지고 있지만, 학생과 교사 모두 모두 정확한 개념을 알지도 못한 채 자신에게 유리하게 끌어들여 사용하는 경향이 많다. 그리고 이 두 개념이 충돌하는 지점은 어디이고 이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더욱 무지하다. 과연 학생 인권과 교권은 창과 방패의 관계인가?
이를 밝히기 위해 학생 인권과 교권이 만나 충돌하는 정확한 지점이 어디이고, 이러한 충돌을 해결하는 원칙은 무엇인지 살펴보도록 하자.
표현의 자유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로서 헌법에서도 그 권리를 보장해 주고 있다. 민주시민 양성을 교육의 중요한 목표로 삼고 있는 학교는 마땅히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고 토론과 합리적 의사 결정의 과정에서 자신의 의견을 관철하거나 수정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따라서 학생들의 표현의 자유 및 의사 표명권은 마땅히 보장되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학생회를 통한 학교 사안 관련 의견 개진, 인터넷이나 건의함 등을 통한 익명 또는 실명의 의견 개진이 가능하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사실상 학생회가 죽어 있다. ‘위에서 아래로’ 명령하달식 구조에 익숙해져 있는 많은 학교장들과 교사들은 학생회의 활성화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이와 같은 막힌 구조로 인해 학생들은 학교와 교사에 대해서 답답해한다. 특히 문화·세대·주체 간의 갈등 지점이 해소될 통로가 있어야 하는데 지금의 학교는 그런 통로가 거의 막혀 있다. 학급회의와 학생회가 운영되기 위한 최소한의 시간과 예산이 보장되고 있지 못하다.
이러한 상황은 결과적으로 교권 침해 내지 교사나 학교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학교 방침에 불만이 있거나 분노에 찬 학생들이 인터넷이나 낙서 등의 방식으로 명예훼손을 가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이를 학생들의 도덕성 부족 탓으로만 돌리기 전에, 학생들의 표현의 자유를 차단하고 있고 진정한 의미의 소통 구조가 없는 학교의 모습에 대해서 먼저 고민해야 한다.
하지만 표현의 자유 역시 교육 관련자들의 이익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다른 교육 관련자들의 권리 및 교권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예컨대, 사실의 왜곡을 넘어서 타인의 명예훼손으로 연결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것은 정보통신윤리 및 법적 측면에서 더욱 그러하다. 따라서 특정한 표현이 음란성을 띠거나 명예훼손을 일으켰을 때, 일정 부분의 제약은 필요하다. 미국에서도 학교 당국이 교지 편집에 대해서 관여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판결하였다. 이는 방송반의 영상물 제작 과정에 대한 간섭도 가능함을 뜻한다.
그러나 그 내용이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수준이라면 표현 및 출판의 자유를 적극적으로 보장해 주어야 한다. 또한,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다양한 의견이 분출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하고, 인터넷의 민원은 바로바로 처리하며 대답해 주어야 한다. 학생회가 제 기능을 하도록 함으로써 합법적인 문제제기가 이루어지고 이를 처리할 수 있는 공적·제도적 시스템을 만들어 내는 것이 학생 인권 보장은 물론이고 불필요한 교권 침해를 막는 차원에서도 시급하다.
학생의 학습권
학생들에게는 당연히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 이 권리를 위해 교사들이 양질의 수업과 교육과정을 운영해야 한다. 이 권리는 공부를 원하는 학생들이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고 적절한 프로그램을 제공해 주어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교육을 받을 권리에는 선택권도 일부 포함되어 있다. 최근 교육과정에서 학생들의 선택권을 강조하는 것은 학생 인권의 측면에서도 긍정적인 면이 있다.
학생의 학습권 차원에서 생각할 때 입시 위주의 교육 때문에 계발활동 등이 자율학습으로 대체되는 것은 학습권을 침해하는 요소의 일종이다. 또한 현재 많은 일반계 고등학교에서 실시하는 강제 보충수업과 야간자율학습은 학습권을 침해할 요소가 있다. 보충수업과 야간자율학습 자체가 인권을 침해하는 것은 아니다. 학생의 학습을 돕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설하는 것은 학습권의 측면에서 바람직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학생의 선택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자신에게 적합한 교육 프로그램을 자유롭게 선택할 권리가 학생들에게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학교 간 과도한 경쟁 때문에 아침밥도 먹지 못하고 아침 7시 30분에 0교시 보충을 하거나 학원에서 밤 10시 이후에 심화반 등을 진행하는 일은, 학교나 학원 모두 학생들의 건강권과 행복추구권을 침해하고 있는 것이다.
징계권
교권의 중요한 내용으로서 징계권이 보장되고 있다. 예를 들어 수업시간에 지나치게 떠들거나 방해하는 학생은 다른 학생들의 교육받을 권리와 함께 교사의 수업할 권리이자 의무를 침해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교사가 이런 학생들에게 주의나 경고를 주고 일정 부분 제재를 가하는 것은 상당한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 그러나 침해되는 권리에 비해 지나친 체벌을 가하는 경우, 다른 학생의 학습권을 보호하려다가 오히려 또 다른 인권을 침해할 요소가 생기므로 피해의 크기와 제재의 크기를 잘 조절할 필요가 있다. 적정한 징계 처분, 합리적 절차 이행을 통해 부당한 처분이었다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참여연대 하승수 변호사는 자퇴나 전학을 권고하는 것이 교육적으로도 법리적으로도 옳지 않다고 지적한다.
학교의 징계권 자체는 교육권의 측면에서 인정된다. 우리나라 교육법에서 학생은 학칙을 준수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학생의 징계 및 상벌과 관련된 규정이 정당성을 가져야 하는데 현재 그렇지 못한 학교가 많다. 학운위의 심의를 받아야 하는 학칙에서 징계 관련 내용을 선도규정과 상벌규정에 위임하고 있는 학교가 많다. 이 경우 학운위의 심의를 받지 않고 학교장 임의로 선도 및 상벌 규정을 수정·변경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선도 및 상벌 규정에 학생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현행 교칙 자체가 합리적인 의견 수렴 절차 및 정당성을 부여받지 않은 상태에서 교장이나 일부 학생부 교사들이 교칙을 좌지우지하게 된다. 이러한 모습은 상당한 문제의 소지를 안고 있다.
또한, 징계가 이루어질 때 학생과 학부모의 충분한 의견 진술권이 주어져야 하며, 학교장 임의의 처분대로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실제 우리나라 판례에서는 퇴학처분을 받은 학생이 퇴학처분에 필요한 선도위원 2/3 찬성에 미달했는데도 학교장이 퇴학처분을 한 사안에 대해서 위법하다고 판결했다. 미션학교의 의무적 예배 참석에 대한 거부 및 이와 관련된 학교의 지시 불이행, 학교 명예 훼손 등의 이유로 퇴학을 당한 강의석 군 역시 퇴학처분 무효소송에서 승소하였다. 따라서 현행법에서는 학교와 교사의 징계권을 인정하지만, 학교 분위기에 특정 학생이 영향을 미친다는 이유로 조기에 무리한 징계를 내리거나 합리적 절차를 받지 않은 경우 인권 침해는 물론 법적 분쟁에 휘말릴 가능성이 있다.
학생 및 학부모의 수업·교육과정·방법·평가 참여
교사가 교수와 같이 교육과정과 교과서를 무시하고 완전히 새롭게 가르치는 것에 대해서 현행 헌법재판소 판례는 일정 부분 제약을 가하고 있다. 그러나 교육법에서 알 수 있듯 교사의 직위나 전문직적 특성에 따라 수업 내용, 교육과정 편성, 교수 방법, 평가 등의 내용을 선정하는 것은 교사의 특수한 권리이다. 따라서 이러한 교사의 선택권에 대해서 학생이나 학부모가 시비를 걸 수 없다. 다만, 학생과 학부모의 참여와 선택권도 중요하기 때문에 이를 제도적으로 보장해 주고 있다. 학교운영위원회가 바로 그것이다. 학부모나 학생은 교사의 교육과정 편성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항변하는 것이 아니라 학교운영위원회를 통해 직·간접적인 선택권을 행사해야 한다.
체벌
몇년 전 유엔 아동권리위원회(Committee on the Rights of Child)는 한국정부에 ‘학생체벌을 금지할 것’을 권고하였다. 궁극적으로 체벌은 없어져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교사 체벌이 교사의 자기만족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다수의 학생들을 통제함으로써 결과적으로 학습 및 학급 운영에 좋은 영향을 미칠 교육적 의도로 실시된다는 점에서 일정 부분 교육·문화적 맥락이 고려되어야 한다. 일본이나 미국의 상당 주는 체벌을 명시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체벌을 금지하지는 않고 소극적으로 인정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2)
하지만 일부 교사의 감정적 체벌 때문에 학부모가 소송을 제기하고3) 패소하여, 책임자인 지방자치단체가 배상하고 교사 개인에게 구상권을 행사한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체벌은 어느 것보다 인권 침해의 요소를 많이 갖고 있다는 점에서 체벌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학생들을 교육시킬 수 있는 방안에 대해서 고민해야 한다.
두발규제
두발규제는 절대적인 가치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시대적으로 사회적으로 변화되는 상대적인 가치이다. 따라서 두발규제에 대해서 교사들이 절대 가치를 고수할 필요가 전혀 없다. 김은경(2000)은 두발규제의 기원을 군사주의 문화로 규정짓고 있다.
실제로 초등학교에서는 아무런 규제를 하지 않다가 중·고등학교에 들어와서 갑자기 규제를 시작하는 것도 교육적 일관성이 떨어진다. 이것은 현재 교장선생님과 지역사회, 학부모님들이 “학생은 학생다워야 한다”는 신화와 보수적 가치관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학교현장에서의 두발규제는 학생들과 교사 간 상당한 갈등 사안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개선되어야 할 요소이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두발규제의 근거에 대해서 “교칙을 따라야 한다”고 말하는데, 그 교칙의 정당성이 어디에서 오는지 의문이 제기된다. 교칙 개정 과정에서 학생들의 의사가 충분히 반영되지 못했다면, 교사의 논리는 “만들어졌으니깐 따라야 한다”는 옹색한 순환논리에 빠져들게 된다. 따라서 두발규제 이전에 합리적인 교칙 개정이 우선되어야 한다.
특히 손톱 색깔, 시계, 가방, 반지 등에 대한 규제를 이야기할 때, 어떤 점에서 학생 신분에 어긋나는 것인지 학교 측은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교칙들이 진실로 학생들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기성세대의 가치관에 맞지 않아서 유지하려고 하는지 꼼꼼히 따져 보아야 한다. 두발과 복장에 대한 규제가 어느 정도 필요하다면 학생들이 수긍할 수 있는 합리적 절차와 토론과정에서 합의된 교칙을 적용해야 한다.
사생활권
얼마 전 우리사회의 뜨거운 쟁점이었던 NEIS 문제를 통해 우리가 학생들의 사생활과 정보인권에 얼마나 무관심했는지가 드러나기도 했다. 이 사건을 통해 부모님의 직업, 결석 사유 등이 생활기록부에서 빠지게 된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한편, 학생들의 일기 검사가 사생활 침해에 해당된다는 국가인권위의 권고를 생각할 때, 우리의 교육 일상 중 사생활을 보호하지 못하는 영역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많은 것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가정방문을 포함한 가정환경조사서 등의 기입을 통해 교육과 관련된 학생의 신상 정보를 수집하는 것은 교육적·행정적 필요조건이다. 생활기록부 작성을 위해 학교장이 필요한 정보를 수집할 수 있도록 관계법에 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인권 침해 요소가 있는 각종 기록부의 내용과 행정 문서의 내용 조정에 대해서는 충분한 검토가 필요하다. 행정 목적상 혹은 교육 목적상 정보 수집이 필요하다고 해도 학생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모두 조사하겠다는 생각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불필요한 정보를 지나치게 자세히 기입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검토해 보아야 한다. 생활지도상 친구들을 통해서 특정 학생의 정보를 얻고자 하는 것도 주의해야 한다. 오해를 살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인 정보는 가급적 본인에게 얻는 것이 바람직하다.
졸업앨범 뒤의 학생신상정보, 성적표를 교실에 붙이는 행위, 몇 점 이하의 학생들을 공개적으로 불러서 혼내는 행위, 학생의 개인 신상이 적혀있는 교무수첩 등을 교실에 방치하는 행위, 교문지도를 하면서 학생의 가방과 옷을 검사하는 행위 등은 사생활 침해의 소지가 있다. 소지품 검사는 교사의 육감이 아닌 학생 상당수의 이익이 침해당하는 등 소지품 검사를 해야 할 분명한 이유가 있을 때에 하는 것이 좋다. 학생 징계 시 학생 성명과 징계 사유, 징계 종류를 함께 명시하여 공고하는 것 역시 사생활의 침해 가능성이 존재한다. 교육적 필요가 있다면 학생의 이름을 익명으로 처리하고 공고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장학금이나 상장 수여처럼 학생 개인에게 이익을 주기 위해 외부 기관에 일부 신상 기록을 공유하는 것은 사생활의 침해에 해당되지 않는다. 한편, 흡연·음주, 지나친 신체적 접촉에 이은 이성 관계, 타인에 대한 위해 행위 등은 사생활의 보호 영역에 해당되지 않는다. 이러한 영역은 교사가 행정적·교육적 지도를 적극적으로 실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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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 내용은 아래의 문헌을 참고하여 작성하였음을 밝혀둡니다.
하승수·김진(1999), 교사의 권리 학생의 인권, 사계절
김은경(2000), 체벌불가피론과 학생 인권, 사회문화 제11집
이수광(2000), 학생 인권신장방안연구, 강원대 박사학위 논문
신현직(2003), 교육법과 교육기본권, 청년사
권재원(2004), 청소년 문화 활동 저해요인으로서의 학원문제와 그 원인에 대한 연구, 시민교육연구
고정자(2003), 마이노리티(학생)인권에 대한 연구, 동아대 생활과학연구소 논문집 249-261
2)초중등교육법 제18조 1항은 "학교의 장은 교육상 필요한 때에는 법령 및 학칙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학생을 징계하거나 기타의 방법을 지도할 수 있다"로 명시되어 체벌을 간접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교육법 시행령 제31조 7항에서 "학교의 장은 학생 지도록 할 때에 교육상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학생에게 신체적 고통을 가하지 않는 훈육, 훈계 등의 방법으로 하여야 한다"고 규정되었다
3)체벌로 인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첫째 교사가 개인의 감정을 억제했는가? 둘째 신체의 어느곳에 체벌을 가했는가? 셋째 체벌로 인한 상처는 어느 정도인가? 넷째 체벌을 가하는 방법이 인격적 교육적이었는가? 등이 판단의 근거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