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에서 살고 있는 분 - 블로그:요팡의 LA별곡-이 소개란에 LA에서 귀양살이하고 있다고 해 놓았다. 나는 무슨 죄를 지어서 호주에서 귀양살이를 하고 있는 것일까?

우선, 술 못 먹는 죄이다.
나는 술을 못 먹고 그래서 술을 안 마신다. 군대에서 나는 술 안 먹는다고 맞았다.
직장다닐때 본부장이 주는 술을 안 먹은 적이 있었다. 한동안 아주 피곤했는데 한참 뒤에야 나는 그 술잔때문이었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모습인데, 자기 술잔에다가 술을 따라주면 받는 사람은 안 먹을 도리가 없다. 왜냐하면 술을 따라준 사람이 기다리고 있기때문이다. 그래, 나는 입에 그 독한 소주를 털어넣었고, 빈 술잔을 본부장에게 돌려 주고는 술을 따랐다. 그리고, 입에 머금고 있던 술을 다른 컵에 뱉었다. 본부장의 얼굴이 순간 변했는데, 왜 그랬는지 그때는 물론 몰랐다.

두번째, 초과근무 휴일근무를 싫어한 죄이다.
너무나 싫었다. 몸도 마음도 피곤에 쪄들어갔다. 남들이 다 좋다고 하는 직장이었지만 나는 이 초과근무, 휴일근무때문에 지옥같았다. 출근을 안 하는 날은 일년 365일 중에 40일도 되지 않았다(일년에 공휴일빼고 일요일만 52일이다).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나말고는 없었다. 휴일근무에 대한 개선책을 요구하자 '휴일근무수당'이 나가는데 왠 불만이냐는 반응이었다. 신문에서 보니 중소기업같은 곳에서는 초과수당도 없이 일들 하고 있었다. 이런 문제 해결하는 게 노조지만, 내가 다닌 직장역시 노조는 없었다.

세번째, 패거리에 끼지 않은 죄이다.
직장에서 사람들은 쓸데없는 얘기들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었다. 직장 돌아가는 얘기랍시고 하는게, 결국은 누구 흉보는 얘기였고 아니면 무의미한 얘기였다. 하루종일 사무실에서 부대끼면서 퇴근하면 또 술자리에서 부대낀다.
누구 흉보고 싶지도 않고 별로 출세하고 싶지도 않은 나는 그들에게 애사심이 없는 인간이었을 것이다. 회사를 너무나도 사랑해서, 그들은 그렇게 승진을 꿈꾸고 자리보전을 원했나 보다.

네번째는, 옳고 그른 것을 따진 죄이다.
대충 대충 좋은게 좋은 거,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너무 깨끗한 물에는 물고기가 못 살듯이, 둥글게 둥글게 세상 맞춰가면서 살아야했는데, 나는 어리석어서 그러질 못했다. 잘 좀 부탁한다고 돈 봉투를 내 책상에 놔두고 가면 나는 끝끝내 돌려주었다. 명절때 좋은 술을 수위실에 맡겨놓았다고 연락이 오면 나는 그 지긋지긋한 술, 아무에게나 줘버렸다.
한국사회에서 살기 위해서는 모난 돌이 정맞는다는 것을 알아야하는데도, 나는 멍청해서 그걸 몰랐다.
정부를 욕하는 사람들은 다들 제대로 세금내는 사람들인줄 알았다. 사람들은 세금안내는게 자랑이었고 그러면서 나라 욕을 해댔다.
노무현이 '이젠 모난 돌이 정맞지 않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연설했을때 나는 정말 그렇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노무현은 모난 돌이 정맞는 게 어떤 건지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나는 옳고 그른 것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인 줄 알았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옳고 그른 것보다 자기에게 이득이 되느냐 아니냐로 따졌다. 그걸 몰랐으니 나는 얼마나 큰 죄를 범한 것인가?

그런 죄로 나는 호주로 귀양오게 되었다. 귀양살이 4년째.

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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