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안의 삼성

소선재에서 2011. 2. 25. 16:08

냉장고를 바꿨다. 새 냉장고를 산 것이다. 지난 냉장고는 5년된 삼백사십리터짜리 엘쥐제품. 1년도 전이다. 냉장고가 시키지도 않은 정수기기능까지 갖춘 것은. 냉장고안은 언제나 홍수였고 하루에 두 번씩 냉장고 앞에 놓아둔 걸레를 쥐어짜야했다.

그러다가 이사를 하고 곧이어 냉장고로부터 좋은 소식과 안 좋은 소식이 들려왔다.
먼저 좋은 소식. 냉장고가 정수기 기능을 스스로 멈췄다. 더 이상 주방에 홍수는 없다.
다음으로 나쁜 소식. 냉장고가 냉장기능을 멈췄다. 오렌지쥬스는 따뜻했다.

수리기사 아저씨는 이백불정도 얘기하더니, '새거 사시는 것도 괜찮아요'라고 말을 끝냈다.

급한 건 구십리터짜리 삼성냉장고에 집어넣었다. 문 하나짜리 냉장고다. 몇년전 누가 이사가면서 버려온 것을 주워온 것이다. 아내에게 아직도 말 안한 것은 이 냉장고를 청소할때 냉장고뒤에서 죽은 쥐가 있었다는 것이다. 아마도 차고에 넣어두었을때 쥐께서 마지막 자리로 냉장고모터옆을 선택하신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저기 저 푸른기와집에 사시는 쥐님은 어느자리를 택하실까나? 빨리 택하실수록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냉거야 아니 냉장고(둘째딸은 냉장고를 냉거야라고 한다. 은근 중독된다. 냉거야)를 사러 갔다. 아내와 나는 말한 것도 아닌데, 엘쥐냉장고는 처다보지도 않았다. 1년만 따져도 하루에 두번씩이면 삼백예순다섯번을 아내와 나는 걸레를 쥐어짰어야했다는 계산이다. 엘쥐냉장고덕분에 말이다. 아내의 두꺼워진 팔뚝에는 아마 그 탓도 컸으리라.

미쯔비시는 자동차만 만드는지 알았더니 냉장고도 있다. 피셔 뭐시기도 있고 웨스팅하우스도 있고 또 뭣도 있고 뭤도 있는데, 한국에서 삼십년넘게 산 나는 엘쥐가 아니면 쌤성. 대안이 없다.

텔레비젼도 삼성이다. 전에 쓰던 텔레비젼은 TEAC. 나름대로 한국에서도 많이 보던 상표였고 가격도 저렴해서 브라운관 텔레비젼을 샀다. 한 3년쯤 지나니 화면이 온통 슈렉색깔이 되어버렸다. 뒤통수를 몇번 쳐주면 빨간색이 제대로 나왔는데, 나중에는 수백번을 두드려도 반응이 없었다. 결국엔 텔레비젼뒤에 구멍을 뚫고 나무막대기를 쑤셔넣어서 전자빔쏘는 부분을 건드려줘야했다. 이게 텔레비젼을 바꾼 이유는 아니다. 아이들이 없었다면 늙어 죽을때까지 나무막대기로 전자총을 쑤셔주면서 텔레비젼을 봤을 것이다. 아이들 프로그램은 에이비씨투에서 하는데 이 채널은 디지털티브이에서만 볼 수 있다. 그래 엘시디티브이를 사자. 여기서 아내의 강력한 의견. "삼성게 예뻐요"

텔레비젼만은 아니다. 5년된 컴팩 노트북은 접히질 않는다. 모니터는 비가 내리다 못해 글자가 보이질 않는다. 첫째 아이가 책상에서 바닥으로 자유낙하시킨 탓이다. 한국에 갔더니 전자제품이 왜 이리 싼겨? 한국에서 홈쇼핑을 보다가 (이것도 삼성엘씨디티브이였다) 전화기를 들었다. 지금 이 컴퓨터도 한국에서 건너온 삼성 노트북.

에스에이엠에스유엔지. 이 일곱개의 알파벳은 우리 집 구석구석에서 눈에 띈다. 얼마전에 산 레이져프린터도 삼성이다. 삼성거를 사려고 한건 아닌데, 딕 스미스에서 제일 싼 것이 삼성거였다. 108키보드도 삼성. 마우스도 삼성. 노트북가방도 삼성. 아이들 방에 가보니 아이들 책도 삼성출판사(아~ 이건 아닌가?)

호주에서 사는 내가 이런데, 한국에서 사는 사람들은 어떨까? 청소기, 믹서기, 전자렌지, 에어컨, 선풍기, 핸드폰, 전화기, 카메라, 세탁기 하다못해 헤어드라이어에 면도기까지도 삼성이 아닐까 싶다.

나는 왜 호주에서도 삼성제품을 사는가? 익숙해서? 그렇기도 하다. 가격이 싸서? 이 이유도 크다. 그러면 왜 하이얼을 안 사고? 글쎄, 아무래도 삼성이 품질이 낫지 않을까싶기도 하고........

이씨집안의 저열한 행태에 한심해하면서도 나는 삼성을 산다. 나같은 사람때문에 삼성은 망하지 않는 것일까? 그럴지도 모르겠다. 반대로 불매운동으로 삼성이 망할 수 있을까? 만약 삼성이 망한다면 그건 불매운동탓이 아니라 삼성의 탓일것이다. 세상일 알고보면 모두 내 탓 아닌게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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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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