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을 바꿨다. 식탁을 새로 산 것이다. 하이 글로스라고 하더니 정말로 반짝거렸다. 식탁의 브랜드는 환타스틱. 환타스틱가구는 품질은 모르겠으나 가격만큼은 환타스틱하다. 어쩌면 환타스틱이라는 이름에는 품질도 가격만큼 환타스틱하고 싶다는 창업자의 소망이 깃들어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거나 환타스틱 가구점에서 산 이 식탁은 정말로 환타스틱했다. 오후에 넘어가는 해가 식탁에 반사되어 정말로 눈이 부셨던 것이다. 거울에 버금가는 그 식탁에 비친 해를 보느라 하마터면 눈이 멀 뻔했다. 환타스틱하다 못해 블라인드가 될 뻔하다니.

이 식탁이 환타스틱하다고 해서 덩달아 엘레강스할거라 생각하면 그건 큰 오산이다. 물건을 보면 그 주인을 아는 법이다. 심플하고 단아한 나는 엘레강스한 스타일은 아니니까.

한편 이제 우리집의 식탁 자리를 물려주게 된  구 식탁을 보니, 정말 이거야 원. (IKEA라고 쓰고 나는 이거야라고 읽는다) 6년전 시드니에 처음 와서 이거야(IKEA) 가구점에서 산 식탁이다. 가격도 기억이 난다. 이 자리에서 공개하지는 않겠다. 그건 나의 최소한의 자존심이다. 다만 이거야(IKEA) 가구점에서 제일 쌌다는 것만 일러둔다.

이제 식탁이라는 이름을 넘겨주고 하나의 널빤지 신세로 전락하게 된 이거야 식탁에는 지난 6년간 나와 나의 가족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환타스틱 식탁과 같은 흰색이지만 도저히 같은 색깔이라고는 할 수 없는 그런 상황이다. 곳곳에 칠은 벗겨지고, 그 중에는 내가 밥상을 차릴때 우당탕 던진 그릇때문에 생긴 생채기가 절반이고, 밥먹으면서 함부로 젓가락과 숟가락을 부린 흔적이 나머지 반이다. 삼분의 일 지점에 커다랗게 배겨진 시꺼먼 자국은 살던 집을 아무개에게 보름간 빌려준 흔적이다. 계약서에 냄비받침을 써야한다고 명시해놓았건만 아무 신문지나 깔았던 듯 하다. 눌어붙은 종이는 아무리 벗겨내도 지워지지 않았다.

모서리에는 아이들 머리가 깨지지 않도록 포장비닐을 대었다. 지금은 너덜너덜해졌다. 아이들은 또한 식탁다리에도 세심하게 크레파스칠을 해 놓았다. 생각해보니 이 식탁은 신혼부부의 밥상으로 시작해서 한 애기가 처음으로 이유식을 먹은 식탁이었고, 나중에는 개구장이들의 다이빙점프대까지 되었다. 뿐이랴 필요에 따라 책상과 작업대도 되었다.

그런 식탁이 이젠 널빤지가 되어 더 이상 식탁으로 불리질 못하고 나의 손에서 떠나가게 되었다. 살다보면 만남이 있고 헤어짐이 있고 오는 것이 있으면 가는 것이 있는 법이다. 그러고 보면 나의 눈을 멀게 할 뻔한 지금 이 거실 한구석의 환타스틱한 식탁도 더 이상 환타스틱하지 않게 되는 때가 올 것이다. 그러면 지금 이거야 식탁이 널빤지가 되었듯 환타스틱 식탁도 또 하나의 널빤지가 되어가겠지. 그때까지 환타스틱하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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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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