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는 말한다. 열가구 정도의 작은 마을에도 반드시 나처럼 충직하고 신의를 중시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만큼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십실지읍 필유충신 여구자언 불여구지호학야 (十室之邑 必有忠信 如丘者焉 不如丘之好學也)

 

논어 공야장편에 나오는 말이다.  나만큼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어찌 보면 아주 단순한 말이다. 나만큼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없다니. 이 말은 공자는 공부하기를 좋아했다는 말로 이해될 뿐이고, 공자가 얼마나호학하는 사람이었는지에 대한 근거로 인용될 뿐이다.

 

그러나, 나는 이 말을 조금 달리 생각해본다. 나는 이 말을 배우기를 좋....로 해석하기 보다는배우기에 보다 더 초점을 둬서 생각해 보기로 했다. 나의 얘기는 이렇다.

 

'배운다'의 반대말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일단가르친다로 상정해보자. 물론, 남을 가르친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배우는 것이기도 하다. 가르침이라는 행위를 통해 나의무지를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르친다는 것은 배운다의 다른 말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여기서는 좁은 의미의 가르친다, , 나의 앎을 다른 이에게 전수하는 행위에만 초점을 맞춰 보기로 하자.

 

배운다의 반대말로가르친다를 상정하고, 여기에 부정의 부정은 긍정이라는 공식을 대입해보면, ‘배운다 '가르치지 않는다' 내지는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가 된다.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라는 것이 곧바로배운다가 되지는 않지만, ‘배운다에는가르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 포함이 된다. 배우는 것은 모르는 사람의 행위이고, 모르는 사람은 가르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것을 위에 인용한 공자의 말에 대입해 보자.

 

나만큼 가르치려 하지 않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가 된다.

 

나는 여기서 우리의 삶을 본다. 우리는 평생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면서 산다. 남편은 아내를, 아내는 남편을, 부모는 자식을, 자식은 부모를, 상사는 부하를, 부하는 상사를, 나는 남을, 남은 나를, 우리는 끊임없이 남을 가르치고 가르치려 하고 가르쳐주고 싶어하면서 산다. 우리는 왜 그렇게도 가르치려 하는 것일까?

 

나는, 공자는 가르치려 하지 않는 사람이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공자는 당시 매우 유명한 스승이었다. 25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영향력이 막강한 선생이다. 그가 이렇게 힘있는 스승이 된 것은 그가 누구보다 ‘가르치려 하지 않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남을 가르치려 하지 않았기때문에 뛰어난 스승이 되었고, 남을 가르치려 하기 보다 자기의 무지에 대해 배우려고만 했기 때문에 시간을 뛰어넘는 스승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나만큼 가르치려 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라는 공자의 말에서, 나는, 남을 가르치려고 하는 자는 결코 남을 가르칠 수 없다는 것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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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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