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리학과 미신

 

명리학과 미신을 말하기 전에 먼저 그에 대한 정의 또는 합의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명리학에 대한 정의입니다. 명리학이란 사람이 태어난 시간을 근거로 그에 대한 해석을 통해 개인별 특성과 운명을 알아내는 기술 내지는 학문입니다. 사주팔자, 사주추명학이라고도 합니다. 미신은 미혹된 믿음이라는 뜻이니 비합리적인 신념체계를 말한다고 하겠습니다. 이상의 정의를 가지고 제 얘기를 이어나가겠습니다.

 

1. 명리학이란

얘기가 조금 길어지겠지만, 명리학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겠습니다. 명리학은 그 알아내고자 하는 바를 출생일시에 근거를 둡니다. 명리학에서 쓰이는 역법은 현재 널리 통용되는 그레고리력이 아니라, 고대중국에서 비롯된 역법입니다. 갑자 을축계해. 육십갑자로 표현됩니다. 력법은 천체의 움직임이 기준이 됩니다. 태양력은 태양의 움직임이 태음력은 달의 움직임이 기준입니다. 따라서 지금 이 시간이라는 것은, 지금 이 시간의 천체(태양, , 지구)의 위치를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주는 고대중국에서 비롯된 역법으로 표현된 시간입니다. 2009 7 24일 오후 4 20분이라는 것과, 이 시간에 태어난 아이의 사주가 되는 기축년,  신미년, 경오일, 갑신시는 그것이 특정한 시간을 나타낸다는 것에서 본질적인 차이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태어난 시간과 운명은 어떻게 연관이 되어 있다는 것일까요?

 

2. 모든 것은 연관되어 있다.

내가 갈색 치마를 입은 날은 비가 온다는 진술에 대해서 통상 이루어지는 판단은 비합리적, 비논리적, 비과학적이라는 평가입니다. 두개의 사실간에 논리적인 연관성을 찾을 수 없으며, 인과관계가 규명되지 못하며,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못합니다.

사주팔자가 기초하고 있는 세계관은 이와는 다릅니다. 갈색 치마를 입고 싶은 마음과 비가 오는 날씨에 대한 연관성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내가 태어난 시간의 천체의 위치가 나의 운명을 결정한다고도 할 수 있고, 아니면 이미 정해져 있는 나의 운명을, 태어난 시간의 천체의 좌표를 해석하면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비가 오기 전의 대기의 상태가 나에게 영향을 미쳐 무의식적으로 갈색 치마를 선택하게 한다고 할 수 있듯이 말입니다.

여기서 두가지 문제가 파생됩니다. 첫째는 사주는 운명론이라는 것이고, 둘째는 그 운명이 천체의 위치에 의해 결정되었건, 아니면 다른 요인에 의해 결정되었건 어쨌거나 개인의 운명을 태어난 시간으로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3. 사주는 운명론이다.

사주가 일단 운명론을 기초로 하는 한, 운명이 바뀐다는 일체의 얘기는 거짓이 됩니다. 운명을 바꿀 수 있다고 하면 예측할 수 없게 됩니다. 논리적으로 모순입니다. 다시 말해 흉한 것을 피하고 길한 것을 취한다는 피흉취길은 운명론의 존재기반을 무너뜨리는 자가당착입니다. 운이 80% 노력이 20%. 또는 사주가 70% 관상이 20% 성명이 10% 조상 묘가 몇 퍼센트 등등 이런 얘기들은 모두가 말이 안 됩니다. 그런 것 까지도 모두 정해져 있다고 해야 말이 됩니다. 내년에 운이 안 좋으니 부적을 써라. 언제까지 운이 안 좋으니 무엇을 조심해라 등등의 미래예지에 관한 얘기는 모두가 말이 안 됩니다.

 

정말 미래를 알 수 있다면 그 사람에 대한 단정적인 예언만이 가능합니다. 그 사람에게 당신에게 이런 저런 안 좋은 운이 있으니 이렇게 저렇게 피해라라고 해서 그 사람이 흉한 일을 피할 수 있었다면 그것은 애시당초 흉한 일을 겪지 않았을 운명입니다. 그 사람이 철학관에 가서 사주 잘 보는 사람을 만난 덕분에 흉운을 피할 수 있었다 해도 그렇게 해서 흉운을 피했으니 그 사람의 운명은 애초에 액운이 없었다고 봐야 말이 됩니다.

재난과 악운을 피할 수 있다고 한다면 (사실 재난과 액운을 정의하는 것도 어렵습니다만), 절대로 사주팔자로 미래를 얘기할 수가 없게 됩니다.

 

 

4. 사주는 미신인가?

운명이 정해져있다는 사람도, 태어난 시간으로 운명을 알 수 있느냐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생각이 다를 것입니다. 즉 이는 세계관에 대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가능하다는 쪽에서는 나름대로 논리적, 합리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그러니, 사주가 비합리적인 신념체계라고 반박을 한다해도 사주를 믿는사람들은 동의하지 않습니다. 어설픈 부분이 들어 있다 해도 많은 부분은 논리적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니까요. 반면 말도 안 된다고 보는 쪽에서는 미신으로 여길 것입니다.

지금의 패러다임이 바뀐다면 태어난 시간으로 그 사람됨을 안다는 것이 아주 당연하게 생각될지도 모릅니다. 수태가 되는 시간을 정확히 알 수 있게 된다면 그것이 출생시간을 대체해서 운명을 알아내는 근거로 쓰일지도 모릅니다.

사주를 미신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도록 프로그래밍되었고, 사주를 미신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도록 프로그래밍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지금 지배적인 사고방식으로는 사주뿐만 아니라 운명론도 미신으로 여기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만.

 

5. 사주의 효용성

사주팔자에 관한 수 많은 얘기들을 한꺼번에 다 할 수는 없어서, 미신과 관련되는 부분으로만 한정지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사주의 효용성은 운명또는 미래예측과는 동떨어진, 그 사람됨을 알아내는 분야에 국한됩니다.

명리학으로 미래를 예지하는 것은 매우 불완전합니다. 명리학의 한계, 해석하는 이의 편차, 그리고 설령 미래를 예측한다 해도 어느 정도까지 알 수 있는가 등등 그 빈틈이 너무 큽니다.

제 경험상 사주는 그 사람됨을 알아내는데 꽤 효과적입니다. 따라서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물론 명리학을 공부해야만 자신과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문학, 역사, 예술 등 모든 분야는 궁극적으로 자신과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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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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