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제

소선재에서 2008. 1. 27. 22:42

얼마전에 나와 같은 시기에 이 곳에 온 사람을 만났다. 나보다 2년정도 아래이니 거의 동년배라해도 무방하다. 직장생활에 대해 묻자 그는 말했다.

"처음엔 인종차별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그럴만도 해요"

그는 대한민국사람이라면 최소한 절반은 아는 그런 다국적기업에 다닌다. 그가 영어를 못 해서 느끼는 괴로움을 토로하며 내게 한 말이다 - 여기서 영어를 잘 못한다는 건, 상대방의 말이 무슨 말인지 잘 알아듣지 못하고, 나의 의사표현을 정확하게 제때에 하지 못한다는 것을 말한다 - . 그가 내게 더 이상의 설명을 할 필요는 없었다. 왜냐하면 이건 바로 나 또한 일터에서 똑같이 겪는 상황이기때문이다.

'이것들이 말을 못한다고 사람까지 바보로 아나?'

안타깝게도 대답은 예스이다. 내가 한국어에 얼마나 능숙하고 한국에서 얼마나 잘났는가는 소용이 없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말귀가 안 통하는 사람, 말해줘도 이해도 못하고, 또 무슨 말인지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말을 하는 사람, 즉 '바보'이기 때문이다.

명시적으로 바보라는 말을 듣지는 않지만, 그들의 눈빛에서 그리고 그들이 나를 대하는 표정과 분위기에서 '바보'취급을 받을 때는 기분이 나.쁘.다. 그렇지 않겠냐? 바보취급을 받는데?

그러면, 잘 못 알아들었다고 하라고? 그것도 한 두번이지, 매번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다. 누가 말끝마다 '뭐라고?'를 한다고 해봐라. 한번으로 끝나면 그나마 다행이다. 한번 못 알아들은 말은, 두번세번이 아니라, 다섯번 여섯번정도 '쏘리?'를 해야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된다. '쏘리?'도 한 두번이지.

문제는 '나'만 그런 것 같다는 것이다. 독일에서 유학온 놈은 독일어억양으로 이래저래 끊임없이 떠벌리고, 또 보아하니 이곳 사람들의 말도 거침없이 알아듣는 것 같다. 필리핀출신 아저씨도 발음은 약간 다를지라도, 온갖 슬랭으로 웃음을 선사한다.
 
얼마전에 사고가 있어서 매니저와 전화통화를 한 적이 있다. 사고경위를 설명해야하는데, 도대체 설명하기도 어렵고, 또 매니저는 나보고 뭐라고 하는데, 도대체 무슨 소린지도 모르겠고.

도대체! 도대체, 도대체...............

다른 한 사람은, 나보다 한 5년아래인데, 세대가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좀 더 개인주의적이고(바람직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좀 더 현실지향적인 듯 하다. 오늘 그와 얘기를 하면서는 '영어'에 대한 얘기는 단 한마디도 나오질 않았다. 20대에 유학을 와서 여기서 자리잡은 그들에게서는 '영어'에 대한 불편함, 어려움은 찾아볼 수 없다. 이곳사람을 대상으로 한 비즈니스를 하고, 또 이곳사람들과 직장생활을 하는 그 부부는 '영어'는 그냥 '말'일 뿐이지, 어떠한 걸림돌도 아니고, 아무런 장애도 아니다.

언어로 인한 장벽을 느낄때마다, 나를 지탱해주는 힘이 한웅큼씩 없어져버리는 느낌이다. 마치 '스트리트 파이터'게임에서, 상대방의 기술에 걸려, 에너지가 순식간에 줄어드는 그런 것처럼 말이다. 무엇이 문제일까? 나의 늦은 나이? 또는 나의 무식? 게으름? 비겁? ....?.....?

과연 무엇이 문제일까? 나의 문제는 문제가 무엇인지 알아낼 힘조차 없다는 것이다. 과연, 나의 문제는 해결이 가능한 것인가? 정말 나의 문제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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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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