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6년 제8차 세계 축구선수권대회

 

여자들이 재미없어하는 남자들의 얘기가 하나는 축구고, 또 하나는 군대라. 제일 싫어하는것은 군대에서 축구했던 얘기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런 유머도 이젠 시대에 맞지 않는데, 월드컵광풍앞에서는 여자도 예외가 어떤면에서는 남자들보다 더 하다고 할 수도 있다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싫어하는 것 역시 축구얘기고, 그리고, 또 싫어하는 것이 북한이라는 국가다. 이 북한이라는 국가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봉건왕조의 냄새가 풀풀나는 전체주의국가(내가 제일 혐오하는 전체주의)이기때문이다. 물론, 항일운동이나 정통성시비등 여러모로 남쪽보다 훨씬 더 당당할 수 있지만, 지금까지 북한인민들이 입만 열면, 위대한 수령 김일성과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을 외치는 걸 보면, ‘성은이 망극하옵니다의 현대판 리바이벌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기만 하다. 주체사상에서는 국가를 어찌보는지 모르겠지만, 내 눈에는 대한민국의 국가주의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하여튼, 내가 싫어하는 축구얘기와 북한이 결합된, ‘북한 축구얘기가 어제밤 SBS (Special Broadcasting Service : 이곳 공영방송중 하나) 에서 나왔다. 비록 내가 좋아하지는 않지만, 무엇보다 궁금한 것 또한 북한이다. 내가 제일가보고 싶은 나라가 북한과 평양이고, 제일 만나보고 싶은 사람들 역시 북한사람들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BBC에서 만든 것으로, 1966년도 영국에서 열린 제8차 세계축구선수권대회 (월드컵을 북한인민들은 이렇게 표현했다) 에 출전해서, 4강에 진출할뻔한 북한축구팀의 얘기다1시간 남짓 보는 동안, 저 다큐멘터리를 만든 사람은 이적단체 찬양고무죄, 그리고, 그걸 흥미진진하게 보는 나는 불고지죄로 국가보안법에 걸리지 않을까 싶어 걱정될만큼, 잘 만들어진 다큐멘터리였다.

 

다큐멘터리는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그때 북한축구팀이 얼마나 커다란 센세이션을 일으켰는지, 북한선수들과 그때의 기억을 간직한 영국사람들, 상대팀 선수들, 그리고 북한인민들의 인터뷰와 풍부한 자료화면을 통해 전달하고 있다. 가슴에 훈장을 주렁주렁 단 초로의 북한선수들은 그때의 순간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첫 경기 소련과의 3:0 , 칠레와의 1:1 무승부, 이어진 막강 이탈리아와의 쇼킹! 1:0 (이탈리아는 이 경기를 끝내고 귀국하면서 썩은 토마토와 계란을 맞았다). 그리고, 8강전에서는, 브라질을 꺽고 올라온 최강 포르투갈에 3:0, 무려 삼대영!!! 으로 앞서다가 5:3으로 역전패하기까지 말이다. 북한인민들의 인터뷰하나하나 모두 인상적이었는데, 그 중에 몇가지를 기억하자면, ‘8강전때 숙소가 교회였는데, (수도사들이 쓰는) 독방이 배정되어서, (독방이 익숙치 않은) 선수들은 다른 선수들과 함께 방을 쓰기도 했고, 예수가 십자가에 박혀서 매달려있는걸 처음 봤는데, 그게 한밤중에도 조명이 비춰지고 있어서, 무섬증도 나고 그랬다’ ‘김일성동지께서 친히 한 두팀이라도 꼭 이기라고 하셨다’ – (그들은 김일성얘기를 하면서 또 울먹였다 -_-;;;; )  등등.

 

화면을 보니, 정말 그때 미들스버그(이 지명이 맞는지 모르겠다)의 영국사람들은 북한의 선전에 엄청난 환호를 보내고 있었다. 가는 곳마다 사인공세에, 인공기를 흔들고, 그때 소년이었던 한 영국남자는 아직도 생생하게 환호의 순간을 기억했고, 보여지는 장면들은, 인공기티셔츠를 입은 소년들, 북한 선수들을 만나보고 싶어하는 영국사람들. 거리에 꽂혀있는 인공기, 시장까지 찾아와서 찬사를 보냈던 일등등.

 

북한축구선수의 인터뷰에도 나왔지만, 그들에게는 영국이 적국이었다. 53년이 종전이니, 1966년으로보면 겨우 13년전의 일. 지금으로 따지자면 김영삼때 서로 목숨걸고 싸웠던 적국에 간 셈인데, 그 곳 영국사람들로부터 이런 환대는 기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이해가 갈만한 것이, 영국사람들 입장에서는 잘 모르는 아시아의 조그만 나라가, 세계의 강호들에게 밀리지 않고 당당하게 싸우는 모습을 보면, 멋있게 느껴지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강팀보다는 약팀을 응원하게 되는게 인지상정이 아닌가 말이다. 게다가, 내가 보기에도 그들은 정말 주눅들지도 않고 잘했다’.

 

당시 경기 모습 중간 중간 오버랩되는 현재의 평양시가지모습과 카드섹션, 매스개임, 그리고  배경으로 쓰인 도라지타령은 제작진의 의도된 과잉이 느껴졌지만, 당시 북한 선수들, 그리고 북한 사람들의 인터뷰에서 그들의 순박함이 잘 드러났다. 역시 입만 열면 수령의 은혜부터 나오긴 했지만, 그때 그들은 가난한 나라, 누가 잘 알아주지도 않는 그런 나라에서 와서, 주눅들지 않고 꿋꿋하게 싸웠고, 그리고 고향사람들에게는 커다란 환희와 감격을 안겨다 줬다.

 

뭐랄까. 연민이랄까. 그래, 잘했다 라는 생각도 들고, 그때 북한사람들-남한보다 잘 살았다고 해도 도 힘들었을텐데, 좋았겠구나 싶기도 하고, 그랬다. 그들도 사람아닌가. 경기장입장할때, 외국선수들보다 목 하나는 작아보이고, 빨간내복같은 유니폼에 얼굴은 감자바위처럼 생긴 그들이 한편으로는 안쓰러워보이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토닥여주고 싶기도 하고 그랬다. 내가 싫어하는 북한축구다큐멘터리를 보면서 말이다.

 

다큐멘터리 마지막에 자막이 나오기를, 그때 남한에서는 어쩌구 저쩌구 했다는데, 너무 빨리 지나가버려(아니면 내 독해실력이 형편없어서) 해석이 안 됐다. 아마, 한국에서 루머가 돌았다는 얘기같았는데, 그때 남북한이 서로 못잡아먹어 안달인때니, 그럴만도 했겠다 싶다. 하나 더 덧붙이자면, 이번 세계축구선수권대회에 한국이 토고라는 아프리카나라와 맞붙는다는데, 나는 토고가 이겼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1966년도 제8차 세계축구선수권대회에서 북한이 8강에 오른 것처럼, 토고가 한국도 이기고, 계속 이겨서 16 8강에 오르면 토고사람들이 얼마나 기뻐하겠나? 축구에 관심없는 미국이 4강에 드는 것보다, 토고가 16 8강되는 것이, 인류의 행복에 더 큰 효용이 될 것은 누가 봐도 자명하지 않은가? 세계의 평화와 인류의 행복을 위해 노심초사하는 시베리아 호랑이 살리기 세계기금은 토고의 선전을 기원하는 바이다.

 

 

후기. 어제 미드와이프 로빈을 만났는데, 대뜸 하는 말이, 일요일에 코리아 월드컵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봤냐면서, 영국사람들과 코리아 (북한을 일컬음)선수들의 우정이 너무라도 아름다웠다고 한다. 잘 만들어진 다큐멘터리는 나같이 '축구'와 '북한'을 싫어하는 사람의 마음도 움직이게 하는 법이다. 로빈은 역시, 말끝에 우리에게 어디출신인지 물었다. '노쓰코리아? 사우스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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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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