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서 지낸지도 5년이 넘었습니다. 제가 여기와서 가장 많이 배운 건 바로 요리입니다. 요리학교를 다닌 것도 아니고, 누구에게 배운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일을 한 것도 아니고요,매일 집에서 밥해먹고 살다보니, 5년전보다 제 요리실력은 엄청나게 늘었습니다.

최근에 방학동안 집에서 제가 해 먹은 것만 해도, 사시미용 연어를 사다가 초밥을 만들어 먹었고요, 가쓰오 부시 소스로 일식덮밥 돈부리를 해먹었습니다. 갈비찜은 아저씨 두명을 집에 불렀을때 했고요. 그때는 감자를 손으로 갈아서 감자전도 했네요. 공원에 가서 직화구이해먹으려고 직접 꼬치까지 만들었고요. 아~ 다시마국물을 내서 꼬치오뎅도 해 먹었군요.
최근에는 튀김기도 사서, 마늘소스 프라이드 치킨을 만들었습니다. 삼계탕이나 닭곰탕 먹다가 닭튀김먹으니 좋더군요. 튀김기 없을때도 조그만 냄비에 프라이드 치킨을 했었는데, 그때는 실패였고 대신 돼지고기 탕수육을 해 먹었습니다. 짜장면도 만들어서 애들 멕인적도 있고요, 전에는 김치를 담그기도 했습니다.

문제는, 제가 부엌일을 엄청나게 싫어한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너무 힘들어요. 저녁 6시에 부엌에 들어가서 다시 앞치마를 벗게 되면 밤 9시입니다. 학교다닐때는 도시락까지 싸야하는데 이만 저만 스트레스가 아닙니다. 한국에서 국민학교 중,고등학교때 도시락 지긋지긋했는데, 다시 또 도시락과 함께 하는 인생이라니 화딱지납니다. 부엌에 있으면 다리도 아프고 일은 끊이지 않고 냉장고까지 말썽이어서 청소도 자주 해줘야 합니다. 정말 부엌일은 너무너무 힘듭니다.

이러니, 가정의 평화에도 도움이 안 되지요. 부엌에만 들어가면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요리할때 그릇 집어던지는 건 예사입니다. 식후 설겆이는 대개 아내가 합니다만, 요리할때 나오는 설겆이거리도 보통이 아닙니다. 자취생활할때 주부습진이 걸린 적이 있는데요-그때는 부엌일도 별로 안했는데 말이지요-, 이러다가 또 주부습진이 재발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손목도 아프고요, 담배불에 조금 데는 건 화가 안 나는데, 프라이팬의 기름이 조금만 튀어도 앗 뜨거를 백번도 넘게 합니다. 애들이 부엌근처만 와도 신경질부리기 일쑤이고요.
이러다가 부엌에 내 뼈를 묻게 되는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어딜 놀러가려고 해도 먹을거 준비할 생각하면, 짜증부터 납니다. 그나마 김밥보다는 삼각김밥이 간편하긴 한데, 그것도 안에 들어갈 양념준비하려면 족히 한시간은 넘거든요.
한국에 가서 살고 싶은 이유가, 딱 두개인데, 하나는 등산이고, 하나는 부엌에서 해방되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지낼때는 바깥 식당에서 먹는 거 싫어했는데, 천원짜리 김밥한줄, 삼천오백원짜리 돈까스가 얼마나 큰 축복이었는지 호주에 와서 알게 되었습니다. 세상살이 영원한 것은 없으니 이 순간도 지나가긴 하겠지요. 짜증내지않고 부엌일하는 아내가 존경스럽습니다.

 
2010. 7.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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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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