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 a message

소선재에서 2010. 8. 16. 13:44

왠만하면 다른 사람 얘기는 하고 싶지 않지만, 오쇼 라즈니쉬가 기독교와 불교에 대해 한 얘기가 있습니다. 기독교와 불교의 대조적인 모습은 김용옥을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이 얘기했고, 공감이 가는 부분도 많습니다. 오쇼의 말을 기억나는대로 옮겨보겠습니다. 이해의 서라는 책에 있는 얘기입니다.

 기독교는 가난한 이들에게 시혜를 배품으로서 사람들에게 채무의식을 심어준다. 그것이 기독교가 교세를 확장하는 방식이다. 반면에 불교는 위로부터 들어간다. 가난한 사람들이 아니라 이미 그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사람들, 이미 많은 것을 가진 사람들이 불교를 찾는 것이다.
예수와 달리 석가모니는 왕자 출신이었다. 그는 모든 것을 가지고 누렸던 사람이었다. 더이상 그 무엇도 그에게 만족을 주지못할때 그는 출가를 했다.

 뭐, 대충 이런 얘기입니다. 제 기억에 의존해서 많이 부족하군요. 원문의 훌륭한 문장과 뜻을 제가 많이 흠을 낸것 같기도 합니다. 궁금하신 분이 계시면 제가 책에 있는 내용을 그대로 타이핑해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저는 목사님께서 말씀하신 보수적인 기독교-완제품 구원을 바겐세일하는 - 를 없애긴 어렵다고 봅니다. 없어진다면 좋겠지만요. 그럴수도 없지만 만약 보수적인 기독교를 없앤다면 사람들은 분명 그와 유사한 다른 종교를 또 만들어낼 것 입니다. 문제는 보수적인 기독교가 아니라 그에 놀아나는 사람들이지요.

그럼, 또 '계몽'이라는 문제가 나오는데, 전 계몽은 불가능하다고 보는데요. 달라이 라마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Don't be a messenger, Be a message'

아무리 메세지를 전한다고 해도 사람들은 설득도 안 되고 계몽도 안 됩니다. 계몽을 할 수 하는 유일한 길은 자기가 메세지가 되는 것 밖에는 없는데, 자기가 메세지가 되버리면 그때는 더 이상 계몽할 이유가 없어지는게 아닐까 그렇게 짐작하고 있습니다. 계몽할 이유가 없어지는 건 계몽할 대상이 없어지기때문이지요. 자기가 메세지가 되버리면요. '같이 떨어'버리는데 누가 누구를 계몽하고 자시고 할게 없지요.

메세지 얘기를 하니 노무현 얘기가 생각이 납니다. 저는 노무현대통령이 퇴임하고 난 후 사람들의 반응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발가락양말이나 구멍가게에서 담배피는 사진이나 사람들하고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모습에 환호를 보냈는데요.

저는, 아니 원래 그런 양반이었는데 사람들이 왜들 이러지 했었습니다.

제 짐작에, 사람들은 노무현이 대통령으로 있을때 그가 했던 말은 전혀 듣지 않았습니다. 설사 들었다하더라도 그건 대통령의 말이었기때문에 전혀 와닿치 않았고요. 그런데, 퇴임하고 나서 그 분을 보니 '아, 이 양반이 우리들하고 같은 사람이구나'하는 걸 느꼈던 것 같습니다.

노무현은 의도했던 바가 아니었겠지만, messenger에서  message가 되버린 것이지요. 그리고 그것이 결국 그를 죽음에 이르게 했고요. 또 한편 생각하면, 노무현은 메신저가 되는 것을 놓아버림으로써, 비로소 메신저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삶은 참 아이러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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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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