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다시피 한국의 문화에서는 이름의 직접적인 사용이 매우 꺼려집니다. 대신 사회적관계를 나타내는 호칭이 주로 사용됩니다. 우선 두가지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번째는 이름 그 자체에 대한 터부가 그것이고 둘째는 개인의 정체성이 집단내의 관계에 의해 규정되는 집단주의 문화의 특성이 그것일 것입니다. '자'나 '호'같이 이름대신 쓰여지는 호칭이 사라진 현대에서는, 더욱이 사회적인 직책이나 또는 가족간에 쓰여지는 호칭이 그 자리를 대신합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사회적인 타이틀을 호칭으로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 좋게 보지는 않습니다. 그것에 동반된 권위주의나 허영심같은 것들이 탐탁치않기 때문입니다. 박사님, 교수님, 피디님, 기자님, 변호사님, 원장님 등등이 그것입니다. 제 생각엔 이름뒤에 '씨'자나 '님'자를 붙여서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호칭을 하는 것이 평등한 인간관계라는 측면에서는 바람직하다고 생각됩니다만, 저 혼자만의 생각일 뿐입니다. 사회속에서 살고 있는 저로서는 저 혼자 내키는대로 남을 부를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이름뒤에 '씨'자를 붙여서 호칭하는 것은 지금 이 시점에서는 하대의 의미가 강합니다. 거의 '해라'체와 같이 쓰여지는 느낌입니다. 그러니 싸우자고 하는 때가 아닌 다음에야 함부로 연장자에게 사용할 수는 없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름을 사용하는 것 자체가 이미 '하대'하는 의미가 크니까요. 그렇다면 연장자 우대문화가 강한 한국의 문화에서 연소자는 연장자에게 어떤 호칭을 써야할까요? 김규항은 '선생님'이라는 말을 대답으로 내놓았습니다. 선생님에는 먼저 태어난 이라는 뜻이 있고, 또 다른 누군가는 항상 나의 스승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저 역시 적절한 호칭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소한 사회적 직책이나 신분을 표시하는 호칭보다는 덜 구역질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 지낼때 누가 먼저 태어났냐를 두고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을 보고 한심한 인간들이라고 비웃었습니다. 통성명하고 바로 나이따져서 형님 동생하는 것 역시 이질적이기만 했습니다. 이곳에 와서보니 저보다 20년이 지난 후에 태어난 한국계 2세들도 생년을 기준으로 나이를 따져서 형,동생,언니,오빠 하고 있더군요. 제가 어디가서 바로 '형님'하고 부르거나, 또 '동생'하면서 하대하지는 못해도 (저는 스무살이 안 된 배준군같은 경우에도 반말이 잘 안나옵니다), 학교에서 만난 한국계 사람이 저보고 형님하면 저는 '네'하고 대답합니다.

'영수엄마라는 호칭이 아닌 나의 이름을 돌려다오' 말이야 맞는 말입니다만, 이름을 꺼리는 한국사회에서 과연 얼마만큼의 시간이 필요할지는 여전히 의문입니다. 전태민님께서는 선생님이라는 호칭이, 사모님이라는 호칭이, 원장님이라는 호칭이 무거운 갑옷마냥 거북하게 느끼시는 것 같습니다. 최소한 구역질나는 권위주의나 허영심은 아닌 듯하여 반가운 일이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상대의 호칭을 무시하는 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호칭이 듣기에 거북하시다고, 그것이 무시로 이어져서는 소통을 거부하는 것 밖에는 되지 않는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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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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