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면 고등학교때부터였던 것 같다. 교회나가는 급우들을 난 놀려댔었다. 대학때도 그랬다. 같은 과 학우들이 기독교계통의 동아리에 나가는 것을 난 내심 조롱했었다.

사회에 나가서도 그랬다. 어딜가나 교회다니는 신자들은 있었고, 종교얘기가 나오면 빠지지 않고 몇시간씩 설전을 벌였다. 이상하게 난 기독교신자와 논쟁에 휘말리는 일이 잦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그럴수록 기독교에 대한 미움은 커져만 갔다.

교회에 가보기도 했다. 양재동의 온누리교회였다. 밴드의 반주에 맞춰 이어지는 찬송과 기도, 찬양. 국민학교때 다녔던 침례교회의 예배와도 대학때 다녔던 성당의 미사와도 달랐다. 아주 달랐다. 사람들은 눈을 감고 손을 들고 씨씨엠을 불렀고 눈물을 흘리는 이도 있었다. 누가 먼저인지는 모르겠으나 시드니 힐송처치의 예배와 매우 흡사했다.

내가 한때 스승으로 모셨던 이는 이를 두고 '이성을 억누르고 감성을 고조시키는 것으로 무당의 접신행위와 다를게 없다'고 하였다. 그때의 나는 이 말을 듣고 반가웠다. 그 분의 전생은 수보리존자라고 믿을 때였다.

어디서 주워들은 것을 나는 내 말처럼 옮기기도 하였다. 신약은 진리이나, 구약은 아니라고. 양심상 막연히 옮길 수는 없으니 4복음서를 읽었다. 어디서 또 본 건 있어서 요한복음은 두어번 더 읽었다. 그래도 여전히 기독교는 싫었다.

그러다 어느때부터 나는 기독교를 싫어하는 것을 멈추었다. 내가 별반 기독교신자들과 다를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로 말하자면 태어난 시간만 알면, 보지도 못한 사람의 사람됨을 안다는 사람이니, 저 쪽에서 보자면 무당의 접신행위보다 더 한 미신을 '믿는' 사람이다. 영혼이나 전생이나 대상이야 다르지만 믿는다는 것은 같다. 가슴을 벅차게하는 노래소리에 성령의 충만함을 느끼는 것이나, 조용한 자리에 가부좌를 하고 마음의 평화를 구하는 것이나 그다지 다를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군다나 내가 성경에 대해 알지도 못하면서 이러쿵 저러쿵 말한 것은 더할 나위없는 나의 오만함이었다.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같은 책을 예전에 보았다면 이런 좋은 책이 있다니, 쌍수를 들어 환영했겠지만 지금보자면 내가 고등학교때 급우를 놀렸던 얘기 그 이상도 아니다. 그렇다고 내가 기독교신자가 됐다거나 된다는 얘기는 아니다. 내가 나를 보건데 난 죽을때까지 교회를 나가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내 딸이, 사주를 보면, 아무래도 셋째딸이 교회를 나갈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지금의 나로서는 흔쾌히는 아니어도 막지는 않을 것 같다. 아마 그 날 내가 좀 배가 부르다면 '좋아, 잘 다녀봐라' 할테고, 만약 배가 좀 고플때라면 '좋아, 하지만 절대로 나한테 전도하면 안 된다' 이럴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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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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