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 가는 길

 

아침밥,

김치에 된장국 후루룩 먹고서는

길 모퉁이 골목에 나 앉았다

 

분주한 아침이 끝나고

모두들 제자리로 들어간 지금

태양은 중천에 올라

짧아져가는 내 그림자

이젠 너도 이 땅을 떠나려나보다

 

삼십삼년의 무게는 어느 주머니에도 남아 있질 않고

이곳 저곳 뒤적거리던 분주한 나의 손은

이윽고 하늘향한 빈 손바닥에 손금만이 선명하다

 

내가 이곳에서 태어나

자라고, 학교를 다니고

만나고 헤어지고

사랑하고 슬퍼하고

때로는 웃다가

이제는 내가 이 곳을 떠나니

내게 남겨진 것 없는 만큼

너 또한 내게 빚진 것 없으리라

 

허나, 메아리하나 없는 골목길의 끝에서

차마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리는 까닭은

바로 나였던 쓸쓸함을 남겨두는 나의 미안함이니

마지막 눈길로

지난 나의 등을 어루만져줌이라

 

과연, 어느 길이라고 쓸쓸하지 않겠냐마는

 

 

                                                  2004. 12. 16

                                                            一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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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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