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불인

소선재에서 2011. 3. 14. 22:16

일본에 지진해일이 밀려들었다.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바닷물이 밀려드는 모습은 무시무시했다. 엄청난 자연재해에 가족과 친지를 잃은 사람의 슬픔은 그 무엇도 위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삶의 터전이 산산조각난 상실감도 쉽사리 치유되지 않을 것이다.

차라리 사람때문이라면 누군가의 잘못때문이라면 비난하고 책임지라고 할 수도 있겠건만, 무심한 바다는 언제 그랬냐는 듯 그냥 평소의 바다모습일 뿐이다.

천지불인.

도덕경 5장은 天地不仁(천지불인)이라는 말로 시작한다. 천지는 불인하여 만물을 풀강아지처럼 여긴다. 과연 천지는 사랑이 없어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한 순간에 앗아가 버렸다. 사랑이 없지않고서는 도저히 할 수가 없는 행위이다.

여기서 이번 지진을 겪은 경험담을 옮겨본다. 일본에 거주하는 사람이다.

제가 있는 도시는 일본 사이타마현의 와코시로 이번 일본대지진의 직접적 피해를 입었던 센다이에서 3백킬로쯤 원전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후쿠시마쪽하고는 2백5십킬로 쯤 떨어진 곳입니다. 따라서 이번 일본대지진으로 엄청난 피해를 입지는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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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는 더한 일도 있었습니다. 한 부모들은 맞벌이 부모로 방과후에는 학교에서 그아이를 봐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부모가 모두 동경에서 귀가가 불가능해졌습니다. 사람들은 동경에서 피난소로가서 밤을 지새웠다고 하더군요. 학교는 그 아이를 학교에서 재우고 다음날 찾아온 부모에게 인계했다고 합니다. 선생님들도 다 자기개인 사정이 있었을텐데 학교같은 관공서가 당장 자기일을 잘하고 있었습니다. 

일본집은 지진이 나면 가스공급이 저절로 중단되고 엘리베이터도 대개 저절로 운영을 멈춥니다. 그래서 우리도 저녁은 휴대용가스버너로 조리를 해서 먹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중단된 가스공급을 다시 시작시키는 방법을 제가 몰랐다는 겁니다. 그런데 다행히도 묻지도 않았는데 안부를 물으며 찾아와서는 한 일본인 이웃이 와서 그걸 켜주고 갔습니다. 사람들이 여러통로를 통해 서로 안부를 묻고 있었습니다. 일본인 사회에도 오타쿠가 있고 하긴 하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대개 침착하게 대응하고 서로를 돕고 관공서나 가게도 정상을 유지하려고 애쓰고 있었습니다. 미국의 카테리나 태풍때는 폭도로 변한 시민들이 많았다고 들었습니다만 일본에서는 그런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고난은 물론 달가운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또한 견뎌내면 큰 기회가 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물론 이런 자연재해가 반가울것일리는 없으며 그것을 잘 이겨내기는 힘든일이지만 잘 이겨내기만 한다면 그것은 일본사회에 큰 재산으로 남게되고 기회가 될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본도 정쟁이 심하고 사회적 분열과 환멸이 깊어지고 있는 사회입니다. 전세계에서 정부재정적자가 가장 심각한 나라중의 하나이니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젊은 세대의 수는 적고 불황과 미래에 대한 절망이 조금씩 더 깊게 나라를 침투해 들어옵니다. 그럴때 드는 회의는 바로 우리 일본인은 도대체 누구인가 하는 것이죠. 이런 고난의 시기에 남을 위해 헌신하는 일본인들을 보면서 일본인들은 분명 그래 우리가 그렇게 나쁜 사람들은 아니구나 우리 꽤 괜찮은 사람이구나 우리 희망이 있구나 하고 생각하게 될거라고 생각합니다. 

지진이 일어나자 정치인들은 당장 정쟁중단을 선언하고 야당은 총리에게 전적인 협조를 약속했다고 합니다. 원자로 폭팔로 사람들이 두려움에 떠는데 그걸 고치겠다고 찾아가는 엔지니어는 내가 죽어도 원자로 붕괴는 막아내겠다는 메세지를 남겼다고 하더군요. 수백킬로 바깥에 있는 사람들이 두려움에 떠는 현장에 찾아가면서 그렇게 말하는 것이 과장은 아니지요. 문제가 일어나자 당장 음료수회사들은 자판기를 공짜로 개방하고 편의점에서 물을 나눠주는 가게주인도 많았으며 핸드폰회사는 요금을 무료로 했다고 합니다. 방송국도 당장 광고를 중단하고 재난방송에만 주력했습니다. 그 속력을 생각하면 나중에 이돈 어디서 받지, 얼마나 피해가 생길까 따위는 계산하지 않는 빠름입니다. 그런 하나하나가 다 일본의 저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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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www.1-n.co.kr/bbs/board.php?bo_table=board1&wr_id=711

가족과 친지를 잃은 슬픔은 무엇으로도 위로하기 힘들다. 하지만, 살아남은 자에게는 다시  삶이 기다리고 있다. 이런 엄청난 대재앙을 겪고도 삶은 계속 이어지는 것이다. 위의 글을 쓴 이는 글을 이렇게 맺었다.

"일본은 월요일 그러니까 오늘부터 부분적인 단전에 들어간다고 합니다. 핵발전소가 문제가 생겨서 전력공급에 차질이 벌어졌기 때문이지요. 일본은 분명 고통스런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그것을 잘이겨낼것으로 믿습니다."


천지는 불인하여 만물을 풀강아지처럼 여기나, 이 불인이 바로 천지의 사랑이 아닌지. 이번 재해로 고통을 겪는 분들에게 깊은 위로와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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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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