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현동 주공아파트 오백오동에 서서

오래된 것이 아름답다
남모르는 빛 한줌씩 켜켜이 쌓여있는 까닭이다
그래 그 험한 것에서 살아남은 애닯음이 있기 때문이다.

오래된 것이 가여웁다
낡고 빛바랜 퇴적속에 감출 수 없는 애잔함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 그 갸날픈 서러움에 눈물이 젖어있기 때문이다. 

이 오랜 것들은 사랑이다
살아있는 한 축복이고 사랑을 하는 한 살아숨쉬는 까닭이다
모든 버려진 것을 품에 안고서  그러므로 낡아가는 것은 언제나 새로웁다

오래된 것이 아름답다
세상이 나를
내가 세상을 사랑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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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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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않는 벚꽃

벚꽃이 필 때 만났던 당신
붉은 꽃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네
푸르른 그대의 아름다움이 꽃의 색을 바래게 했었네

머리에 서리가 내리고
벚나무에 핀 꽃이 황홀했던 날
돌아보니 당신은 언제나 벚꽃이었네

벚꽃이 분분한 4월에도
그리고 벚꽃이 사라진 나머지 계절에도
벚꽃은 언제나 내 곁에 있었다네

벚꽃필 때 태어나
지지않는 벚꽃이 된 당신,
당신은 나의 아내
사랑하는 나의 아내 최인선

2024.4.4. 
인선의 50번째 생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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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향

 

나는 참 많이도 걸어왔네

 

이 길을 걸으며

언제 저 길을 가보려나

멀고도 아득한 길

 

어린 구름 젊은 바람 늙고도 높은 바위를 품고서

나는 지금껏 걸어왔네

 

저 길을 향해 애써 걸어온 이 길

많은 낮과 밤을 지낸 후에야

나는 배웠네

이 길이 바로 그 때의 그 길임을

이 길이 바로 내가 가야할 길이었음을

 

해는 져도 달그림자 눈부셔

길은 사라지고 걸음만 남은 나의 길

 

다만 나는 걷고 있다네

 

어디에도 머무르지 않으니

아무데도 떠나지 않는다네

 

아무데도 떠나지 않으니

어디에도 머무르지 않는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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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거들랑

 

내가 죽거들랑 슬퍼 말아라

나는 한 세상 잘 살았으니

 

내가 죽거들랑 아쉬워 말아라

나는 이 세상을 사랑했고

이런 나를 너희는 사랑했으니

 

하늘이 보매 내가 필요했던지라

나는 땅위에서 낳였고

또 하늘이 보매 수고를 다했음이라

이제 다시 땅으로 돌아가리니

나고 죽는 것 보다 더 큰 사랑이 어디에 있으랴

 

하니, 내가 죽거들랑 노래를 불러다오

당신의 사랑은 가없었다고

하여 당신은

내게서

숨쉬고

있다고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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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의 나침반

 

자유주의를 민족주의가 이겨먹고

민족주의는 사회주의가 이겨먹고

사회주의는 공산주의가 이겨먹고

공산주의는 무정부주의가 이겨먹고

무정부주의는 다시 자본주의가 이겨먹으니

 

나는 여기서 만세삼창을 합니다

자유주의부터 자본주의까지 만세

그 모든 주의와 이즘과 전쟁과 파괴에 대하여 할렐루야

 

돌기만 돌 뿐 어디든 가리키지 않는 나침반

그 가리킴없는 가리킴이여 아멘

그 멈추지않는 멈춤이여 나무아미타불

 

눈뜬 자는 목을 놓으리라

그러므로 세상의 모든 주의여 안녕

똥이 있는 한 밥 또한 끊이지 않으리니

옴 샨티 샨티

세상의 모든 주의여 이즘이여

권세와 영광이 만세토록 영원하소서

 

 

20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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