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에게 바침

 

고백하오니,

저는 아내를 무서워합니다.

 

허나 사람들은 아내를 무서워하지 않고

아내는 사람들을 무서워합니다

 

또 허나 사람들은 저를 무서워하나

아내는 저가 무섭지가 않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무섭지 않으나

오직 무서운 이는 나의 아내

 

무섭지 않으니 사람의 말은 듣지 않고

두려우니 아내의 말에는 엎드려 따릅니다.

 

신은 나를 사랑하기에 나를 무서워하지 않으며

나는 그 신의 사랑을 믿기에 기꺼이 복종하나니

그것이 내가 받은 신의 십계명입니다

 

사람들은 저를 무서워하나

아내는 저를 무서워하지 않으므로

저는 아내를 무서워 사랑하는 것입니다

 

2009. 8

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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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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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류찬가

 

나는 이십대를 살고 삼십대에 죽지 않아 사십대가 되었다

나의 심장은 아직도 꿈틀거려

배도 나오고

얼굴 주름살도 늘고

몸의 털도 흰색으로 바뀌어 간다

 

문득 거울 속 중년아저씨,

에 드리워진 시간,

을 돌아보니 어쩌나,

그것은 완벽한 삼류인생

어느 무엇 하나 삼류 아닌 것 없어라

 

아 그러나 하늘이시여

나의 인생은 축복이어니

삼류부모

삼류대학

삼류직장

돈없고 찌질한 외톨이의 삶에 충만한 평화

그것은 일류가 되어도 누릴 수 없는 삼류에의 복종이니

나의 삼류인생은 그 자체로 자유이어라

 

하여 머리가 헤지고 죽음이 찾아오는 날

나는 기쁘게 노래부르리

나의 인생에 단 하나 일류가 있다면

그것은 비할 수 없는 삼류인생을

완전한 삼류로 살아낸 것이었다고

 

 

 

2013.  9. 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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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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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싸움

 

 

비가 내리자

솔가지에 서린 붉은 띠가 선명하다

벚꽃의 분분함이 잦기도 전에

난의 자태는 가만히 안겨 오고

국화꽃 향기가 단풍에 절어 푸르른 새벽으로 끝나자

언덕 너머에는 달이 떠오른다

새가 무리를 지어 날아들 때에

나는 아뿔싸 오~똥을 싸고

똥은 식기도 전에 너의 밥이 되니

꽃싸움은 이렇게 스톱

쓰리고에 따따블은

독박으로 풀스톱

 

 

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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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모터스가는 길

 

 

하늘도 울고 차도 운다

끽끽 와이퍼는 적당히 춤을 추고

나는 소리에 발을 맞춰 고고모터스에 왔다

 

기름밥먹는 사장은 아내와 데이트를 나가고

젖내나는 손에 아이를 맡기

기름쩐 손에 자동차를 달랬다

 

기름밥 사장은 신호등에 밀려 돌아오지 않고

폐타이어에 잡초가 빗방울을 받는

차는 이윽고 윤활유를 먹는다

 

윤기나는 윤활유는 끈적이며 엔진 구석구석 원활히 스며들고

보슬비는 이곳에서 담배에 쩌든 나의 폐를 적시니

가만히 그릉대는 경차의 엔진소리에

나의 십년묵은 한숨은 잦아들고

 

오늘 엔진오일을 자동차가 먹기 까지

수없이 거쳐간 손길을 감사의 눈으로 돌아 때에

누구의 기름이 어디서 밥이 되는지 헤아릴 없는

고고모터스와 나와 자동차와 엔진 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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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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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멀리즘이란 단순함을 추구하는 예술 및 문화사조입니다. 절제와 소박함을 내세우는 군자의 기풍과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지요.
바로크풍의 화려하고도 현란한 꾸밈과 장식에서 어딘지 모르게 비루하고 천박한 느낌을 받는다면 미니멀리즘이 그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평소에 군자의 기상과는 멀고도 먼 삶을 살지만 유독 구매 및 소비행위에서는 극도의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한마디로 짠돌이라는 말이지요.

오늘 제가 산 차는 1996년에 만들어진 스즈키 씨에라라는 차종입니다. 배기량 1298cc에 4륜구동 수동차량입니다. 이 차는 지금까지 제가 몰아본 차 중에 미니멀리즘이 가장 완벽하게 구현된 차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있는게 별로 없습니다.
에어콘은 기본으로 없고 파워스티어링도 없으며 왠만한 전자장치는 거의 다 없습니다. 있는 거라곤 운전석과 조수석의자와 안전벨트정도고요, 그리고 음...와이퍼도 있긴 있더군요.

차체는 흰색으로 역시 미니멀리즘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광택이 하나도 안나는게 페인트양도 미니멀하게 들어간 것 같습니다. 아마 수리비를 최소화하려고 그랬겠지요. 미니멀리즘의 대상에는 예외가 없으니까요.

미니멀리즘이 이렇게 완벽하게 구현된 차를 사다니 역시 저는 대단히 뛰어난 안목과 높은 예술적 감각 그리고 절제와 소박함을 몸으로 체득한 군자라 아니 할 수 없겠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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