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아침. 오늘은 SBS 라디오의 인터뷰가 공식일정의 시작이다. 사실 내가 갈 일은 아니었는데, 라디오 스튜디오를 구경해보고 싶었다. 그래도 내가 8년을 해 온 일이라 이 곳 스튜디오가 꽤나 궁금했다.

 

신속하고 안전한 운전을 했음에도 출발이 늦어 굳게 닫힌 방송국을 만나야했다. 이미 대표님 일행은 건물안에 있었고, 마이콜님은 전화기너머에서 난처해했다. 언제나 여유만만인 나는 스튜디오 구경을 쉽게 단념하고 담배나 피자하고 있었다. 그런데, 될 사람은 어떻게 해도 된다고, 출근하는 것으로 보이는  방송국직원인 듯한 백인아쟈씨가 우리를 건물안으로 들여보내줬다. 하물며, 리셉션데스크에서는 전화까지 걸어주었다. 전화를 안 받는다면서 출입구 안쪽으로 들어가버리는 아쟈씨.

 

역시 여유만만인 나는 '그럼 로비의 소파에서 기다리지, 뭐'하고 있는데, 그 백인아쟈씨가 다시 나오면서 저기 코리안들이 있다면서 우리를 그 안으로 또 들여보내줬다. 대표님을 비롯해서 익숙한 뒷 모습의 아쟈씨들이 보였다. 원칙을 따지는 오지들에게서 'I can't let you in' 이라는 말을 종종 들었던 나는, 이 뜻밖의 백인아쟈씨덕분에 인터뷰에 동행할 수 있었다.  

 

인터뷰는 약간 뜻밖이었다. 보통 방송인터뷰는 생방송이건 아니건 질문내용이 먼저 통보가 되는 것이 대부분인데, 대표님은 질문내용을 사전에 숙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여러 내용을 즉각 답변했다. 중간에 NG가 없는 20분의 인터뷰였다. 제작진의 입장에서는 이런 인터뷰이가 참 편하다. 편집할 수고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제, 점심식사일정인 하버크루즈.

 

아타몬의 SBS에서 달링하버까지는 멀지 않은 거리. 그러나, 복잡한 씨티진입은 익숙치 않아 네비게이션의 도움을 받았다. 30분에 15불하는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가니, 런치크루즈까지는 10여분 남은 시간. 마이콜님과 비오님의 능숙한 의전에 의해 대표님은 벌써 와 계시고, 우리일행에 이어서 문화원팀이 오시고, 나머지 한 명은 12시가 다 되어서 오셔서, 탑승 준비 완료. 기다리는 시간에 대표님과의 인증샷. 키가 작은 나의 어깨에 손을 올려주시는 주윤발필나는 대표님. (그럼, 나는 장국영이란 말인가?)

 

 

 

 

 

토요일 점심. 대표님 포함 모두 여섯명이서 같이 한 점심식사는 포도주를 화제로 해서, 맥주로 옮겨갔다. 내가 독일 맥주와 소세지에 대해 여쭤보자, 대화는 자연스레 대표님의 독일유학시절로 흘러갔다. 짬뽕을 만들어 먹고, 김치를 직접 담그고...

 

'한국에 돌아가면 김치를 꼭 사먹겠다'고 생각하셨다는 대표님. 동병상련이라 했던가? 김치를 담궈본 자만이 김치를 담그는 고통을 아는 법이다. 정말 나와 닮은 점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다시한번 느꼈다. ^^;;;

 

이병막의 4대강얘기는 두바이운하에 이어서 대표님의 중동여행기로 이어졌다. 대표님은 유쾌하게 말씀을 이어갔고 듣는 사람들도 즐거워했다. 나중에, 즐거웠던 런치크루즈 분위기는 나의 과묵하고 경청하는 자세덕분이었다고 자평을 했더니, 그 자리에 있었던 회원 한분에게 열라 까임을 당했다. -_-;;;;

 

다음 일정은 기자간담회.

 

신속하고 안전한 운전으로 기자 간담회장소에 도착했으나, 의전을 맡은 마이콜님과 비오님을 따라잡을 수는 없었다. 내가 늦는 바람에 기자간담회가 이미 시작한 후에야 참석자의 명패를 비치했다. 강연회준비를 위해서 간담회에 있을 수는 없었다. 소라비님의 카니발 트렁크에 실려서 타운홀 강연회장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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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풀

 

꽃한송이 피기전에 잡초였단다

나비도 날기전엔 벌레였단다

바다의 깊은 물도 낙수물하나였고

저 웅장한 산마루도 한 줌의 흙이었단다

나는 왜 이렇냐고 묻지를 말어라

너와 나는 바람불면

바람불면 눕는 풀

 

                                                  201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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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쌍의 도

소선재에서 2012. 3. 6. 18:56

나는 서태지의 음악을 좋아하지 않는다. 취향이다. 서태지의 등장이후로 한국의 음악계는 판이 완전히 뒤바뀌어 버렸다. 나에게는 극히 유감스러운 사태였다. 서태지의 등장 이후로 나는 한국의 주류 대중음악에 전혀 호감을 가질 수가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인디쪽에 락밴드 몇이 있었으나 그들의 음악은 찾기도 쉽지 않고 또 쉽게 접하기도 어려웠다.

서태지의 등장 이후에 이십년이 되어서 내게 다가온 '리쌍'의 음악은, 그래서 더욱 반갑고 고마운 일이다. 리쌍의 두 멤버. 길이와 개리는 그 조화가 완벽하다. 길이가 음이라면 개리는 양이다. 텐아시아의 인터뷰에도 나왔듯이 길이는 어두컴컴한 지하실 습기찬 방구석이라면(길이는 지하실에 살았다), 개리는 땡볕에 찌고 추위에 얼음이 어는 옥탑의 단칸방이다(개리는 옥탑방에 살았다). 개리의 랩이 예리한 칼날로 정신을 번쩍 들게 한다면, 길의 목소리는 슬픔으로 분노를 녹여버린다.

길의 세심한 프로듀싱은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다. 그는 버릴 줄을 안다. 몇개의 단순한, 그러나 강력한 선율은 그 강렬함으로 비어있는 공간을 만들어내고 이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의 음악안으로 들어가게 만든다.

또한 리쌍 그들은 자신을 낮추고 자신들을 뒤로 감출줄 안다. 객원으로 참여하는 개성강한 보컬-정인이나 알리의 화려한 보컬-들을 띄어줌으로서 리쌍은 오히려 삼위일체로 부활한다. 대단한 용기이다. 이는 그들이 이 세상을 얼마나 겸손하게 살고 있는지 보여주는 것이다.

고난과 가난의 젊은 날을 거쳐 이제 그들은 아티스트가 되었다. 그들의 미덕은 소외된 자로 살아오면서도 그것을 인정하고 그 긍정의 바탕위에 '무조건 삽질'로 대들었던 것에 있다. 리쌍, 그들의 음악은 세상에 이렇게도 개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정말로 서태지가 뮤지션들을 죽여버린 이후에 내게 처음으로 찾아온 아름다운 뮤지션들이다. 그들의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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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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反面敎師

소선재에서 2012. 2. 19. 13:30

반면교사는 마오가 처음 쓴 말이라 한다. 반면, 타산지석은 그 출처가 시경.

어머니를 보면 평생을 저리 살다 갈 것,이라는 생각이다.

어머니의 삶에 문제는 없는가? 어찌 삶에 문제가 있겠는가? 그 어느 누구의 삶에도 문제는 없다.

다만, 스스로 불화의 씨앗을 자처하니, 타인에게는 고난을 안겨주고, 자신에게는 고통을 초래한다.

이로써 반면교사로 삼으니, 어머니의 삶도 그것으로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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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살면서 많은 갈등은, 왜 나를 몰라주느냐,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닌가, 어머니로부터 비롯된 아내와의 불화를 겪으면서 이런 생각을 해 본다.

내가 억울하게 생각되는 부분은, 왜 나를 인정하지 못하느냐, 나를 왜 몰라 주느냐,이고, 역지사지해보면 그건 아내도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를 돌아보면, 나 역시 아내를 알아주지 않았다,고 할 수 있지 않나 싶다. 아내에게는 아내 나름대로 이런 저런 억울함이 있을 터이고.

나를 알아주길 바라는 것은 연목구어이다. 남이야 남이니까 그렇다 하지만, 가족이라는 사람들이 특히, 부모, 자식, 배우자가 나를 알아주지 못하면 그 서운함은 더욱 상처가 된다.

공자는, '남이 나를 알아주지 못함을 걱정할 게 아니라, 내가 남을 알아보지 못함을 신경쓸 일이다(논어)'하였다.

남은 나를 알아줄 수가 없는 것이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 할 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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