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나라에 쓴 글이다.  명상나라(http://zen.co.kr) 를 운영하는 번역가 손민규님의 글에 대해 댓글차원으로 올린 글이다. 본문에 내가 우러러본다고 한 이는 김대근씨. 나보다 스피리츄얼레벨이 훨씬 더 높은 이다. 본인 입으로는 제로라고 하지만. 크크크.

개인과 군중
http://www.zen.co.kr/zen/bbs.php?table=maOsho&query=view&uid=82&p=1 
먼저 몸에서 시작하라
http://www.zen.co.kr/zen/bbs.php?table=maOsho&query=view&uid=83&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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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과 개체성. 이 두 단어가 지난 며칠동안 머리에서 떠나질 않는군요. 그래서 한번 얘기를 하긴 해야겠는데, 어디서 어떻게 얘기를 해야 할지, 잘 될까 모르겠습니다.
 
외국생활로 인해 얻게 되는 가르침이 있습니다. 내가 어떤 기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지 알게 해 주는 것입니다. 깨끗함과 더러움, 예의바름과 불친절, 옳고 그름. 아름다움과 추함등등등...... 기존에 내가 가지고 있던 기준들이 다른 나라 다른 문화에서는 어떻게 달라지는지 몸으로 겪게 되지요.
 
이 기준이라는게 이전에는 별 자각없이 '나의 기준'으로 생각했지만, 외국에 살면서 외국사람들의 '기준'과 충돌을 겪다 보면, 이 기준이라는 게 사실은 내가 선택하고 만든게 아니라 나에게 주입되고 프로그래밍된 것이라는 걸 알게 됩니다. 
 
제가 우러러보는 몇살 어린 친구가 있습니다. 이곳에서 알게 되었지요. 이런 말을 하더군요.
 
'내가 한국인이라는 것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 본 적이 있다. 한국인이라고 규정되는 것에 대해 하나씩 해체를 했더니, 결국 내게 남은 건 내가 한국말을 쓴다는 것, 몇가지 취향, 그리고 예전의 기억뿐이었다'
 
거의 대부분의 한국사람들은 거주국가의 국적을 취득해도 여전히 한국인이라고 생각을 하지요.
 
정체성과 개체성에 관한 글에서, 개체성은 아마 '붓다후드' '불성' 이런 걸 말한 건가 하는 생각이, 전 잘 모르지만 하여튼 그런 쪽으로 이해를 했습니다. 아~ 진아라는 말도 있군요.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라도 자기가 겪어 온 사회, 문화, 언어속에서 살고 있을테니, 정체성과 완전히 무관한 사람들 또한 없을 것입니다.
 
시계를 흔들면서 나는 Indian이라고 하거나 게걸스럽게 음식을 먹거나, 뭐 붓다나 예수라도 그러지 않았겠습니까? 맛있는 건 맛 있는 거고, 맛 없는 건 맛 없었을테였으니까요.
 
지금까지 보고 듣기로는 백인들은 떡을 아주 안 좋아합니다. 입에 달라붙는 느낌을 참 싫어한다네요. 가만, 춘천의 소양강다리 건너서 순두부집 참 맛있었는데요. 그 정도되는 식당 여기서 하면 진짜 대박날텐데. 쩝~ 
확대


* 시계를 흔들면서 나는 fucking indian 이라고 한 이는 아마도 유지 크리슈나무르티로 기억한다. 그리고 게걸스럽게 먹는 이는 끼란 바바. 물론 둘 다 손민규님의 글에서 인용한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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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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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비라는 것

소선재에서 2010. 4. 21. 00:01

아이가 아팠다. 고열이 심했다. 며칠지나 귀까지 아파했다. 특별히 해 줄 게 없었다. 귀나 손을 따는 건 엄두를 못냈다. 양약도 거부를 하는 판에, 약을 해서 먹일 수도 없었다.

고열은 여전한테 구토와 설사까지 했다. 항생제 탓이었다. 아목시실린은 더 먹일 수가 없었다.
응급실에서 중이염이라는 말을 듣고 박트림과 이부프로펜을 먹였다.

아프다고 하는 아이를 보는 것은 내가 아픈 것보다 더 큰 고통이다. 안타까운 마음에 아무것도 못하니 덩달아 폐인이 따로 없다. 애비라는 본능은 이성으로 제어가 안 되고 걱정은 더 큰 걱정에 불안과 두려움까지.

다행히 녀석의 열과 통증은 잦아들었다. 약때문같지는 않다. 애시당초 일주일은 앓았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크려면 아파야 하는 것은 알겠으나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 것, 애비가 된 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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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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歸 家 



나는 밤 늦은 전철
구석진 뒷 자리에 앉아
보이지 않는 창밖을 바라보다가


내가 이 밤늦은 전철
구석진 뒷 자리에 앉아
보이지 않는 창 밖을 바라보기까지


나는 얼마나 많은
사람과 사람과
말과 말과
시간을 시간을
거쳐 왔는가
돌아 볼 때에


문득
창 밖은 밝아지고


나에게 다가온 것들은
내게 다가올 것들


밤늦은 전철
구석진 뒷 자리에 앉아
다시 또
어두운 창 밖을 바라볼때까지


                                                  2014. 3 
                                                          

 

 

 

 



 

歸 家 



나는 밤 늦은 전철
구석진 뒷 자리에 앉아
보이지 않는 창밖을 바라보다가


내가 이 밤늦은 전철
구석진 뒷 자리에 앉아
보이지 않는 창 밖을 바라보기까지


나는 얼마나 많은
사람과 사람과
말과 말과
시간을 시간을
거쳐 왔는가
돌아 볼 때에


문득
창 밖은 밝아지고


나에게 다가온 것들은
내게 다가올 것들


삶은 여행


밤늦은 전철
구석진 뒷 자리에 앉아
다시 또
어두운 창 밖을 바라볼때까지


                                                  2010. 3 
                                                          

 

 

 

 

 

 

 

歸 家 



나는 밤 늦은 전철
구석진 뒷 자리에 앉아
보이지 않는 창밖을 바라보다가


내가 이 밤늦은 전철
구석진 뒷 자리에 앉아
보이지 않는 창 밖을 바라보기까지


나는 얼마나 많은
사람과 사람과
말과 말과
시간을 시간을
거쳐 왔는가
돌아 볼 때에


문득
창 밖은 밝아지고


나에게 다가온 것은
내게 다가올 것들


삶은 돌아 가난한 자리를 맴도는 제자리 여행


밤늦은 전철
구석진 뒷 자리에 앉아
다시 또
어두운 창 밖을 바라볼때까지


                                                  2010. 3 

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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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밥不二  2

 

 

그때 나는 바라나시
갠지스 강가에 앉아 있었다
 
황혼은 붉은 빛이 성스러웠고
연기는 석양을 뚫고 동쪽으로 흩어져 갔다
 
어슴프레 저쪽 강가에서
허이얀
분수를 뿜어 올리며
돌고래.
한 마리가 서서히
뿌우
미끄러져 내게 다가왔다
 
그것은 못다 탄
시체.
차마 재가 되지 못한 창자는
부풀어 올라
푸쉭
이제 물고기의 밥이 되어줄
마지막 소신공양을 하고 있었다
 
나는 릭샤를 타고 돌아와
십루피를 내고
난 한조각과 김이 나는 짜이 한잔을 먹었다
 
황혼이 물러간 저녁
배가 고파
나는 허기졌으므로 

 

                                                  2009. 12. 23 
                                                            一虎

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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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과 현실

소선재에서 2009. 7. 25. 22:23
(이) “영화가 뭘 할 수 있느냐는 질문을 수없이 하지만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아직도 내가 그 질문을 하고 있다는 것에 안도하고 있다. 내가 제일 두려워하는 것은 그 질문을 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타성에 젖어 질문하는 것처럼 속이고 있을 때, 그때가 바로 내가 영화를 그만두어야 할 때다. 요즘엔 그런 질문을 가진 영화를 찾아보기 어렵다. 그것이 영화 산업이 점점 죽어가는 이유다. 더 많은 관객, 더 많은 돈을 위해 현실을 잊어버리게 하는 영화를 만드는데, 그게 오히려 영화라는 매체를 무력하게 만들고 있다. 근래 한국에서도 탈시공의 영화들이 많다. 가짜 현실을 자꾸 영화 속에 반영한다. 관객에게 강력한 진통제 같은 독약을 주입하고 있다. 점점 더 강한 것을 써야 하는.”
- 벨기에 토이 감독, 이창동을 만나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movie/367315.html 중에서
 
 
영화감독 이창동의 말입니다. '영화'를 '명상'으로 바꾸어 보았습니다.
현실을 잊어버리게 하는 '명상'을 하는데, 그게 오히려 '명상'을 무력하게 만들고 있다.
 
명상은 가짜 현실이 아니라 진짜 현실을 보도록 해 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가짜 현실에서 도망치지 않고 진짜 현실속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흥행은? 가짜를 진짜로 원하는 사람에게는 흥행이 안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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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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