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주칼럼] 못다 쓴 유서를 … 쓰자


신문도 텔레비전도 보기 싫었다. 글을 쓸 수도 책을 읽을 수도 없었다. 숨을 쉬기도, 말을 하기도 갑갑했다. 그런 열흘이 지나갔다.

고인이 남긴 유서를 읽고 또 읽었다. 말과 글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길 즐겼고 또 자료로 남기길 원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너무나 짧은 유서를 읽고 또 읽는다. 행간에 혹시 다른 해석이 가능한 무엇인가 있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그렇게도 시시비비를 가리기 좋아했던 대통령이었다. 그래서 대통령 자격이 없다는 딴지에도 숱하게 걸려들었다. 대통령 자리에 앉았다고 해서 갑자기 시시비비 가리기를 멈추고 좋은 게 좋은 거니까 하고 대충 넘어가는 것이야말로 그의 스타일이 아니다. 그런 그가 이다지도 짧은 유서를 남겼다.

신문과 방송이 쏟아내는 말들과 추모영상이 거짓말 같다. 무엇이 미안하다는 말인가. 무엇이 고맙다는 말인가. 무엇으로부터 지켜주지 못했다는 말인가.

일인당 국민소득 6000달러가 넘으면 민주주의 국가가 전체주의 국가로 변질되는 역사적 사례는 없다고 정치학자들과 경제학자들은 단언했다. 오판이다. 그의 퇴임 뒤 나는 “노무현 시대를 거치면서 절대권력의 시대를, 그 강을 건넜다”고 썼다.(2008년 3월5일치 ‘노무현씨 나와 주세요’) 취소한다. 임기를 끝낸 대통령이 봉하마을의 이장쯤으로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나의 바람이었다. 안이한 생각이었다. 대한민국은 국민소득 6000달러가 넘었으면서도 전체주의 국가로 변해가는 역사를 지금 써가고 있다.

박경리 선생이 만년에 쓴 시를 모은 유고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를 읽었다. ‘… 박정희 군사정권 시대/ 우리 식구는 기피인물로 살았고/ 유배지 같은 정릉에서 살았다./ 수수께끼는 우리가 좌익과 우익의 압박을 동시에 받았다는 사실이다./ 인간이 얼마나 추악해질 수 있는가를 뼈가 으스러지게 눈앞에서 봐야 했던 태평양전쟁과 육이오를 겪었지만 그런 세상은 처음이었다./ 악은 강력했고 천하무적이었다/ 역적은 삼족을 멸한다는 옛날 관념에 사로잡힌 친지들도 우리를 뿌리치고 가는 …/’ 바로 그런 시대로 우리는 돌아가고 있다.

봉하마을에서 그가 겪었을 천하무적의 악은 무엇이었을까. 강한 것에 약하고 약한 것에 강한 사람들 마음 밑바닥의 비겁함이었을까. 일거수일투족이 감시되고 전화와 이메일이 도청되었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을까. 촛불시위로 사면초가가 되었던 이명박 대통령이 봉하마을의 그를 언론에 먹잇감으로 내준 것일까. 그가 돌려준 권한을 정권이 바뀌자 제발 우리를 주구로 삼아 주십시오라고 권력에 갖다 바친 검찰일까.

그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우리 사회의 기득권층은 고졸 출신의 대통령을 노골적으로 조롱했다. 대통령직을 물러나 낙향을 하자 이것 또한 질투의 대상이 되었다. 손녀를 태우고 논두렁길을 달리는 그의 평화로운 노년도 눈꼴시어서 보아줄 수 없었다. 이제 그의 자살도 질투를 한다. 먹잇감이 없어졌으니까. 그의 화장과 작은 비석 하나도 질투를 한다. 가진 것이 많아서 자기들이 못하는 짓이니까. 그 정점에 수구 기득권 언론이 있다.

누가 화해와 용서를 말하는가. 죽은 권력에 난도질을 하고, 시정잡배로, 길거리 건달로, 그가 사는 흙집을 아방궁으로 묘사하며 모욕했던 언론이 제일 먼저 나서서 화해와 용서를 말한다. 죽음의 본질을 흐리게 하려는 짓이다. 화해를 먼저 청하는 것은 속이 뜨끔한 세력들이다. 그의 죽음에 직간접으로 간여했던 세력들이다. 천하무적의 악이다. 언론법을 빨리 처리하지 않는다고 안면 몰수하고 한나라당과 이명박 대통령을 비난하고 나선 그들이다. 시시비비를 가려서 그가 못다 쓴 유서를 국민의 힘으로 써야 한다. 정말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면.

김선주 언론인


컴퓨터 글씨체의 유언장인 ‘무현 선사의 임종게’  14줄 172자를 첫줄부터 끝줄까지 가만히 읽어 내려봅니다.

http://well.hani.co.kr/board/view.html?board_id=jh_friend1&uid=264966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밖에 없다.

건강이 좋지 않아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 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화장해라.

그리고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

오래된 생각이다

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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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는 세상의 자유를 꿈꾸었던 사람,

낮은 곳을 바라보며 눈물 흘릴 줄 알았던 사람,

상식과 원칙이 통하는 나라를 위해 평생 애쓴 사람,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 노무현

여기 봉하의 뒷산에 고이 잠들다 -안도현(시인)



여기에 천둥처럼 와서 천둥처럼 떠난

한 격정의 사내가 누워 있다.

불타는 혀의 웅변, 강인한 투혼

사나운 발톱의 승냥이떼 속에서

피투성이 상처로 질주하여 마침내 돌파한

위대한 거부의 정신

죽어서도 꺾이지 않는

정복되지 않은 죽음

진정한 민중의 벗, 노무현

당신이 뿌린 씨 기어코 우리가 거둘 터이니

그대 퍼렇게 눈 뜨고 잠들지 마시라 -현기영(소설가)




서버린 수레바퀴

한 바보가 밀고 갔네 -정도상(소설가)



치열하게 살았으나

욕되게 살 수는 없어

허공에 한 생애를 던진

노무현의 영혼을

하늘이여,

당신의 두 팔로 받아 안아주소서 -도종환(시인)


여기

대통령이면서 시민이고자 했고

정치인이면서 정의롭고자 했으며

권력을 잡고도 힘없는 자 편에서

현자였으나 바보로 살아

마침내 삶과 죽음까지 하나가 되도록

온몸으로 그것을 밀고 갔던

한 사람이 있으니

그를 미워하면서 사랑했던 우리는

이제 그를 보내며 영원히 우리 마음에 그를 남긴다. -공지영(소설가)

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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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제가 스승님으로 모시던 분이 있었습니다. 한번은 법회가 끝나고 인사를 드리는데, 인자하게 제 손을 잡으시고는 요즘 스트레스가 아주 많네. 아주 힘든가 보지? 중이 되도 그래. 부처가 되기전에는 다 마찬가지야하셨습니다. 직장생활이 아주 힘들때였는데, 감격스럽더군요. 열심히 수행해서 빨랑 부처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뭉게뭉게 피어올랐습니다.

구도의 길에 들어서기전에 저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훌륭한 성직자들, 그러니까, 훌륭한 스님들이나 가톨릭 사제들은 옆에만 가도 그 분의 인격에 감화가 되어서 마음이 평화로워지고, 그런 분들의 인자함에 내 마음도 절로 고요해지는게 아닐까? ~ 나도 그런 사람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래서 앞에 말한대로 그때 스승님으로 모시던 분이 그렇게 말씀해주실때 무척 감격스러웠고, 소위 말하는 스승님에 대한 신심이 절로 우러나왔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뭐랄까? 꼭 그럴것만도 아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예를 들어서 훌륭한 스승님이라는 분이 있어서 찾아갔는데, 그 분이 저의 힘든 삶을 위로하기는 커녕, ‘웃기지 마라고 힐난한다고 했을 때, 그렇다 해도 그것이 훌륭한 스승님이 아니라고는 말 못한다는 거지요. 잘은 모르지만 그냥 그럴 것 같습니다. 많은 선가의 일화도 그렇고. 그러니까, 꼭 인자하다고해서 자상하다고 해서 저를 잘 위로해준다고 해서 그것이 훌륭한 스승이고 올바른 스승이다라고는 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저는 왜 이명박씨가 대통령이 되었는지 궁금해서 한번 생각해봤습니다. 너 부자되게 해줄께에 많은 사람들이 표를 던진 것, 나도 이명박처럼 부자가 되고 싶다가 깔려있겠지요. 그건 그렇고, 이명박씨의 개인적인 장점이랄까, 재주랄까 그런 건 어떤게 있을까 생각해봤습니다.

이명박씨는 어딜 가나 그 마음 잘 안다이런 얘기를 하더군요. 노점상한테 가서도 내가 노점상 해 봐서 잘 안다데모꾼한테 가서도 내가 옛날에 학생운동해봐서 잘 안다죄수한테 가서도 내가 옛날에 감옥가봐서 잘 안다기업가한테 가서는 물론 내가 기업해 봐서 잘 안다’ ‘밥 굶어봐서 잘 안다’ ‘딸 키워봐서 잘 안다  마사지받아봐서 잘 안다’…..

이런 말들이 거짓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본인은 진짜 그럴 거라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그가 아는 한도내에서만 알 뿐이지요. 그리고, 그렇게 네 마음 안다고 하는 것에는 너와 척지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깔려있는게 아닐까 하고 추측해봅니다. 이런 분은 돈이 더 중요하고 환심을 사는게 중요하지, 너와 내가 생각이 다른 건 그다지 중요한게 아닐 겁니다. 아마 황석영씨도 이명박씨의 이런 다정한 마음에 넘어간게 아닐까 싶네요. 사람들은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좋아하니까요.

반대로 노무현은 이와 다른 것 같습니다. 듣는 사람 마음은 별로 상관하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대로 말해버리죠. 여기가 아파요 했을때, 이명박은

그래요? 많이 아프겠군요. 나도 아파본적이 있어서 잘 압니다. 내가 안 아프게 해드리겠습니다인데,

노무현은 거기가 아픈 이유는 이래 이래서입니다. 그렇게 된데에는 당신이 잘못한 것도 있습니다. 앞으로 안 아프려면 당신은 이렇게 해야합니다. 이런 것들은 당신 탓이고 당신이 해결해야합니다. 누구도 당신을 안 아프게 해 줄수 없습니다이런 식으로 말합니다.

전부터 이명박과 노무현이 비슷하다고 하는 얘기들을 많이 하더군요. 그 얘기들을 들을때마다 아닌데 아닌데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 얘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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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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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왕따의 죽음

똑똑했던 바보가 있었습니다. 시골 출신의 가난뱅이. 욕심도 없고 꾸밀 줄도 모르고 생긴 것은 문둥이같았습니다. 똑똑했던 이 바보는 어느 날 믿을 수 없게도 반장이 되었습니다. 반장이 된 이유는 여기서 말하지 않겠습니다. 단지 이전의 반장을 지지하던 다른 고향의 아이들이 있었고, 그리고 이 바보의 똑똑함과 솔직함, 순수함을 알아본 사람들이 있었다고만 말하겠습니다. 도저히 반장이 될 수 없었던 이 바보는 바람을 업고 반장이 되었습니다.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 바보가 반장이 되자 경악한 학생들이 있었습니다. 힘세고 돈많고 성적좋고 잘생기고 집안좋은 학생들입니다. 많은 아이들이 부러워하는 학생들입니다. 이 학생들은 두려워졌습니다. 이 반장은 똑똑했고, 그대로 놓아두다가는 지금까지 자기들 마음대로 하던 것들을 못하게 될 것 같았습니다. 지금까지 자기들이 떡주무르듯 했던 아이들이 이제는 반장편에 서서 기어오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워졌습니다.

이들은 반장을 왕따시키기로 했습니다. 말끝마다 무시했습니다. 하는 말마다 조롱했습니다. 못생겼다고 놀렸습니다. 뭐든지 간에 못하게 했습니다. 그래놓고 무능력하다고 빈정댔습니다. 반장을 자리에서 끌어내리려고 했습니다. 반장이 반장하기 어렵다고 하자 그것조차도 무능력자로 몰아붙였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반장탓이라고 했습니다. 나팔부는 아이들은 힘있는 아이들의 말을 퍼뜨렸습니다. 힘세고 돈많은 아이들을 선망하던 아이들이 이들의 말을 따랐습니다. 그리고, 힘있는 아이들과 나팔에게 길들여지면서 다른 아이들도 어느새 왕따에 동조하게 되었습니다.

반대로 반장에게 실망한 이들도 있었습니다. 이 아이들은 힘세고 돈많다는 이유로 자기들 마음대로 해대는 아이들을 못마땅하게 보는 학생들이었습니다. 똑똑한 이 아이들은 반장이 좀 더 화끈하게 못하는게 불만이었습니다. 이들도 반장을 욕하기 시작했습니다. 많진 않았지만 이 아이들은 목소리가 컸습니다. 물론 여전히 반장을 좋아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소수였습니다. 돈도 없고 힘도 없는 이 아이들은 반장이 왕따당하면서 같이 욕을 먹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반장은 왕따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반장은 똑똑했지만 바보였습니다. 그래서 타협할 줄도 모르고, 굽힐 줄도 모르고 더군다나 계산할 줄도 몰랐습니다. 반장은 투명하게 한다며 자기에게 주어진 힘도 놓아버렸습니다. 사실 있었다 해도 쓸 수도 없었습니다. 반장은 완전히 왕따가 되었고, 임기가 끝나고 반장에서 물러났습니다.

새로 반장이 된 아이는 힘세고 돈많은 아이들편이었습니다. 이 반장은 세상에 타협할 줄 아는 아이였고 돈도 많은 아이였습니다. 힘세고 돈많은 아이들에게 길들여진 학생들은 부자로 만들어주겠다는 말에 새로운 반장에게 표를 몰아줬습니다.

반장이 바뀌고 나자, 힘세고 돈많고 잘생기고 집안좋은 아이들은 왕따가 되버린 전임 반장을 더욱 더 궁지에 몰아넣었습니다. 혹시라도 다시 또 나설까봐, 그래서 자기들 마음대로 하는데 방해될까봐 완전히 싹수를 잘라버리고 싶었던 것입니다. 왕따가 되버린 반장은 책이나 읽으며 살고 싶었지만, 자기를 완전히 매장시켜버리려는 움직임에 숨을 쉴 수 없게 되었습니다.

왕따가 된 것도 힘든데, 올가미가 걸려오자 더욱 더 힘들어졌습니다. 이대로 있다가는 완전히 매장되고 자기의 삶은 아무 의미가 없게 되버릴 것 같았습니다. 반장은 자기가 살 수 있는 길을 찾았습니다. 그것은 자기가 죽는 것이었습니다. 자기 몸을 죽임으로서 인을 이루고자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창문밖으로 뛰어내렸습니다.

왕따가 되어버린 전임 반장이 죽자, 학생들은 크게 놀랐습니다. 많은 학생들은 혹시 자기가 죽인 게 아닌가 하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힘들지는 몰랐습니다. 그냥 반장이니까, 남들이 욕하길래 그냥 나도 따라한건데 그렇게 죽어버리다니. 다들 따돌리길래 나도 그런건데, 미안해졌습니다. 그러고보니 전임반장이 나한테 잘못한 것도 별로 없습니다. 괜히 모르고 그랬나 싶습니다. 왕따의 죽음을 겪고 보니, 미안한 생각이 더해지고 내가 잘못한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힘세고 돈많은 학생들도 조금 놀랐습니다. 미안할 건 없지만 혹시나 다른 학생들이 기어오르는 계기가 되지나 않을까 신경이 쓰입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조금 살살할 걸 그랬나싶기도 하지만, 어차피 조금만 지나면 괜찮아질겁니다. 나팔도 전부 우리 편인데다가, 아이들도 모두들 자기처럼 되고 싶어합니다. 지금 미안해하고 슬퍼하는 아이들도 조금 있으면 다시 또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당분간만 조금 몸 사리면 됩니다.

전임반장에게 비판을 했던 아이들도 놀랐습니다. 다른 반장과는 달리 착한 아이였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자기도 왕따를 시키긴 했지만, 별로 잘못했다는 생각은 없습니다. 착한 아이가 죽었다고 해서 내 말이 틀린 건 아니기 때문입니다.

왕따를 좋아했던 아이들은 충격에 빠졌습니다. 너무나 슬퍼졌고, 화가 났습니다. 그를 사랑했고, 그가 있어서 행복했기에 그를 지켜주지못해서 미안해졌습니다. 한편으로는 분노에 어쩔 줄을 모르게 되었습니다.

얘기는 여기서 끝납니다. 어떻게 이어질지는 모릅니다. 많은 이들이 바보였던 왕따의 삶을 선택한다면, 그 왕따는 더 이상 왕따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조차도 제 욕심일지 모릅니다. 바보였던 왕따의 죽음은 잊혀질 것입니다.

당신은 이 아이들 중 누구입니까? 나는 그 왕따였던 아이를 아주 좋아한 아이였습니다. 그렇게 살기가 쉽지 않은 세상에서 바보처럼 왕따의 삶을 살아간 그 아이를 아주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나도 그 아이처럼 살리라, 그 아이를 보면서 다짐했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가 죽었습니다. 겁많은 나는 두려워집니다. 아무래도 바보였던 왕따처럼 살지 못할 것 같습니다.

 

 


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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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요 미안해요 일어나요
―고 노무현 대통령 영전에 바침

뛰어내렸어요, 당신은 무거운 권위주의 의자에서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으로

뛰어내렸어요, 당신은 끝도 없는 지역주의 고압선 철탑에서
버티다가 눈물이 되어 버티다가

뛰어내렸어요, 당신은 편 가르고 삿대질하는 냉전주의 창끝에서
깃발로 펄럭이다 찢겨진, 그리하여 끝내 허공으로 남은 사람

고마워요, 노무현
아무런 호칭 없이 노무현이라고 불러도
우리가 바보라고 불러도 기꺼이 바보가 되어줘서 고마워요

아, 그러다가 거꾸로 달리는 미친 민주주의 기관차에서
당신은 뛰어내렸어요, 뛰어내려 으깨진 붉은 꽃잎이 되었어요
꽃잎을 두 손으로 받아주지 못해 미안해요
꽃잎을 두 팔뚝으로 받쳐주지 못해 미안해요
꽃잎을 두 가슴으로 안아주지 못해 미안해요
저 하이에나들이 밤낮으로 물어뜯은 게
한 장의 꽃잎이었다니요!

저 가증스런 낯짝의 거짓 앞에서 슬프다고 말하지 않을래요
저 뻔뻔한 주둥이의 위선 앞에서 억울하다고 땅을 치지 않을래요
저 무자비한 권좌의 폭력의 주먹의 불의 앞에서 소리쳐 울지 않을래요
아아, 부디 편히 가시라는 말, 지금은 하지 않을래요
당신한테 고맙고 미안해서 이 나라 오월의 초록은 저리 푸르잖아요
아무도 당신을 미워하지 않잖아요
아무도 당신을 때리지 않잖아요
당신이 이겼어요, 당신이 마지막 승리자가 되었어요
살아남은 우리는 당신한테 졌어요, 애초부터 이길 수 없었어요

그러니 이제 일어나요, 당신
부서진 뼈를 붙이고 맞추어 당신이 일어나야

우리가 흐트러진 대열을 가다듬고 일어나요
끊어진 핏줄을 한 가닥씩 이어 당신이 일어나야
우리가 꾹꾹 눌러둔 분노를 붙잡고 일어나요
피멍든 살을 쓰다듬으며 당신이 일어나야
우리가 슬픔을 내던지고 두둥실 일어나요
당신이 일어나야 산하가 꿈틀거려요
당신이 일어나야 동해가 출렁거려요
당신이 일어나야 한반도가 일어나요
고마워요, 미안해요, 일어나요,
아아, 노무현 당신!

안도현

* 안도현 시인이 29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노제에서 낭독한 조시입니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57611.html

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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