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선재에서'에 해당되는 글 169건

  1. 2009.03.03 전철안에서
  2. 2009.03.03 10대때 해야 할 일
  3. 2009.03.03 20대에 해야 할 일
  4. 2009.03.03 신입생 환영회
  5. 2009.03.03 자전거 두 대
  6. 2009.03.03 담배 반갑
  7. 2009.03.03 자녀교육 지침서
  8. 2009.03.02 주시
  9. 2009.02.28 아쉬움 - 한영애의 문화 한페이지 폐지
  10. 2009.02.28 반작용과 주시

전철안에서

소선재에서 2009. 3. 3. 20:02

뒷자리에 한국남자 둘이 탔다.

"문법은 도통 도움이 안 되요. Spend 다음에 왜 wandering 이 나오는 건지, 도대체...."

"그 동사에는 ing형이 와요. 읽다보면 문법도 알게 되죠. Grammar in use 보세요"
"그것도 해 봤지만, 나는 책보다는 역시 사람하고 얘기하면서 깨우치게 되요. 이젠 스피킹에는 자신이 있는데, 리스닝이 안 되서"

문법을 싫어하는 남자의 목소리는 높고 들떠있고 빠르다. 듣기보다는 말을 한다. 책을 보라고 하는 남자는 가라앉은 목소리에 차분하고 말이 느리다. 상대방의 말에 동조하지 않는 완고함이 있다.

외국어에 왕도가 어디 있겠는가? 스피킹도 어렵고 리스닝도 어렵고 롸이팅도 어렵고 리딩도 다 어렵다. 굳이 따지자면, 리스닝이 있어야 스피킹이 있고 리딩이 있어야 롸이팅이 있다는 것 정도.

그래도 얘기하자면, 하면 는다고 할까? 예전보다는 읽는 속도가 조금 나아졌고, 답답한 마음도 조금은 줄어들었고, 듣는 것도 조금은 나아졌다. 말하는 건 잘 모르겠다. 말할 일이 없으니.

내릴때 한국남자 둘의 얼굴을 봤다. 역시 목소리와 얼굴이 같다. 완고한 목소리는 차분한 모습이었고, 높은 목소리는 지저분하게 꾸민 모습이었다.

영어하나 배우는데도 생김새를 못 벗어난다. 사람들은 알까? 무엇을 하건 자기에게 주어진 모습대로 살아간다는 것을. 나 역시 예외는 아닐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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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에 해야할 일이 여행과 연애라면, 10때 해야할 일은 배우는 일이다. 10대때는 아직 영글지 못한 때이고 모든 것이 유연한 때이다. 이 때는 배움을 위한 때이다.

배움이라고 해서 학교공부를 뜻하는 건 절대 아니다. 수학의 미적분 몰라도 인생 잘 살아가는 데에는 아무 지장없다. 도올 김용옥도 수학 못해서 서울대를 못 갔다. 하버드에서 박사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고 본인이 말했다.

10대때 할 일은 뭐든지 받아들이는 일이다. 아무 책이나 닥치는 대로 읽어라. 어느날 트럼펫음악이 멋있게 느껴지거들랑 트럼펫을 배워라. 기타,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대금, 아쟁.....하다못해 하모니카라도 좋다. 능숙하게 다룰 줄 아는 악기는 평생의 친구가 된다.

운동을 이때 배우면 평생 간다. 수영, 스키같이 기술이 필요한 운동은 이때 배워야 한다. 나이들어서는 배우기가 어렵다. 시간과 노력이 몇십배걸리고 몸에 익지도 않는다.

영화도 많이 봐라. 우선 아무거나 봐라. 책과 마찬가지로 보다 보면 눈이 뜨이게 마련이다. 음악도 많이 들어라. 10대들의 대중음악만 듣지 말고 다양한 음악을 들어라.

학교공부? 그건 그야말로 학교에서 하는 공부다. 교과서를 이해하면 그걸로 끝이다. 나머지 시간에는 세상을 공부해라. 10대때 세상을 공부하는 방법은, 책을 읽는 것이고 음악이나 미술, 스포츠를 배우는 것이다.

그리고, 20대에는 세상을 겪어본다. 여행이 그것이다. 그리고, 사람을 겪는다. 연애가 그것이다. 그것이 10대와 20대에 할 일이다.

학교성적과 내신, 학원과외와 입시공부는 인생이라는 마라톤에서 10대때 할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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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에 해야 할 일은 여행과 연애다. 공부도 아니고 취직도 아니고 대학진학도 아니고 돈벌이도 아니고 여행과 연애다.

여행은 세상을 알기 위해서 필요하고 연애는 사람을 알기 위해서 필요하다. 세상을 알고 사람을 아는 일, 20대에 하지 않으면 언제 하겠는가? 20대에 반드시 해야할 일은 여행과 연애.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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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학년을 찾아가 신입생환영회에 오라고 전했다. 내 또래 또는 내 밑으로 아저씨 세명이었다. 2년전의 나도 저랬으리라. 낯선 세계에 대한 막연함과 불안.

한 학기만 지나면 알게 될 것이다. 별 것도 아니라는 것을. 그러고 보면 세상도 그럴 것이다. 살고 보면 별 것도 아니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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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차일을 할 때 승우 장난감자동차를 주워 왔다. 돌 지나서부터 지금까지도 타고 있다. 어제는 세발자건거를 동네에서 주웠고, 오늘 아침에는 그보다 큰 자전거를 길 건너편에서 집어 왔다.

한참을 물로 씻어내고, 때가 잔뜩 낀 손잡이는 칫솔로 몇번을 닦았다. 색깔도 분홍색에 아직은 발이 잘 안 닿는데도 승우는 상관하지 않는다.

내가 사준 장난감은? 지난 연말 빅 더블류에서 사준 29달러 짜리 트럭이 유일한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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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반갑

소선재에서 2009. 3. 3. 00:20

집에 오는 길에 담배를 한갑 샀다. 7달러 70센트. 요즘 환율로 따지면 7700원이 넘는 돈이다. 한갑에 20개비. 한 개비에 390원 정도 하는 셈이다.

저녁때 아는 이가 찾아 와 내 담배를 피우고 갔다. 빈손으로 온 그는 내가 타 준 냉커피를 먹고, 내가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빌려갔고, 그리고 내 담배를 피고 갔다.

차마 담배갑을 못 열어보다, 지금 세어보니 12개비가 남았다. 책이야 내일 아침에 와도 되는 것을, 담배가 많이 피고 싶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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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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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빌려온 책 두권 모두 '자녀교육'에 관한 책이다. 예일대법대 학장을 아들로 둔 할머니의 자식 자랑이 하나고, 일본 사람이 쓴 자녀교육 지침서가 나머지 하나다.
전자는 후지다. 자식 자랑이 아닌 것처럼 해놓고 모두 자식 자랑을 해 놓았다.

나는 아내에게 자녀교육의 3가지 지침을 말한 적이 있다.

첫째, 아이는 스스로 크는 것이다. 부모가 키우는게 아니다.
둘째, 아이를 보면서 부모는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
셋째, 아이에게는 사랑을 줘야 한다. 사랑은 부모의 욕심을 채우는 것이 아니다.


일본사람이 쓴 책에는 내가 한 둘째 셋째 이야기가 있었다. 나는 나의 첫번째 육아지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이 얘기를 해 놓은 책은 아직까지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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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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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시

소선재에서 2009. 3. 2. 23:59
지난주 화요일부터 화를 내지 않았다. 두번 화가 나려고 했다. 그 중의 한번은 애기가 나를 방해하려고-물론, 애기입장에서는 아빠를 도와주려고 - 한 때였다.
화가 나려고 할 때 '주시'를 하였다. '주시'는 지난주 화요일부터 시작, 그러니까 나는 일주일째 화를 내지 않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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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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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culture/entertainment/341318.html


아쉬움은 신촌블루스의 노래 제목이기도 합니다. 한영애씨가 그만둔다니 아쉽고, 이런 좋은 프로그램이 없어진다니 애석하기만 합니다.

처음에 제가 한영애의 문화한페이지를 듣게 된 건 퇴근길에서였습니다. 그때가 2002년이었던걸로 기억하는데, 하여튼 초창기였습니다. 방송시간은 오후 4시였죠. 한영애씨의 빼어난 진행실력에 저는 홈페이지에 글을 올렸죠.

담당PD의 엄청난 안목, 이런 진행자를 섭외하는 놀라운 안목에 저는 찬탄을 금치 못했었습니다. 담당PD는 제 기억에 여자분의 이름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프로그램 제목역시도 아주 신선했습니다. 홈페이지같기도 하고, 책 한 페이지같기도 하고.....

저는 애청자가 되었고, 그때 코너에 출연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청취자 참여코너였는데, 우면동에 있는 EBS에 가서 제가 쓴 원고로 녹음을 했었지요. 출연료는 잘 기억이 안 나고 하여튼 EBS시계는 받은 기억이 납니다.

3분짜리 일주일치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제가 생각해도 잘 쓴 원고였고, 녹음도 잘 했지요. 릴테잎은 돌아가고 전 NG한번 내지 않았습니다. 아마 조연출이었던 분이 제게 칭찬을 무지막지하게 퍼 부으면서 '혹시 전에도 이런 것 했었냐?'고 묻기까지 했었습니다.

당연하게도 그럴 것이 전 다른 방송국(공중파입니다)의 라디오PD였거든요. 지금은 저도 방송국을 떠났지만, 라디오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연출하고 녹음도 하고, 때로는 스튜디오에 들어가서 마이크앞에도 앉아본 저니까 당연히 잘 할 수밖에요.

물론,라디오PD라고 해서 모두 마이크앞에서 잘 하는 건 아닙니다만, 전 특집같은 프로그램은 진행해본 적도 있으니, 별로 떨 일이 없었지요.

그때 남자분PD에게 사실대로 말 못해서 죄송합니다. ^^

지금 전 방송국을 떠났고, 외국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지금 생각으로는 라디오PD를 다시 할 것 같지는 않지만, 만약 제가 라디오PD를 다시 하게 된다면, MC 섭외 1순위는 한영애씨입니다.

한영애씨! 꼭 기억해주세요. ^^ 당신은 한때 라디오PD였던 제게 제일 빼어난 진행자로 기억되고 있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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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지킴이 북극여우 한영애입니다. 여러분 고맙습니다 작성자 운영자

오늘 방송에서 이야기했던 북극여우의 초이스의 글로

여러분들께 드리는 제 마음의 인사를 대신하고자 합니다. 

내일이면 저는 문화 한페이지를 잠시 떠납니다.
그동안 습관적 으로 방송을 하진 않았는지..
너무 정형화된 틀 속에 저의 사고와 시선을 맞춘 것은 아닌지..
자유롭기 위해 자유에 갇혔던 건 아닌지..이제 돌아보려 합니다.
시간이 지나갈수록 문화 한 페이지와 보낸 8년간의 세월이
더욱 더 또렷하게 머리에, 가슴에 떠오릅니다.
때론 주어진 조건보다 더 많은 열정으로 발로 뛰었던 많은 스텝들,
또 조금은 외진 이곳 우면동까지 한걸음에 달려와 아낌없이 자신들의
지식과 문화의 마음을 나누고 가셨던 많은 패널분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드러내진 않았지만 전국에,외국에 계신 청취자 여러분들의 사랑스런 숨결이 느껴집니다.
우리 정말 열심히 문화 한 페이지 써내려 갔지요?

문화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저는 참 많은 것들을 얻었습니다.
새로운 시선, 새로운 인식, 새로운 세계관이 생겼구요,
자연과 더불어 사람과 사람이 어떻게 아름다운 유기적 연대를 이룰 수
있는지를 조금 알게 됐습니다.
상대를 이해하고 인정하면서 욕심을 조금 놓게 됐구요,
더불어 세상의 하나하나 모든 것은 스스로의 가치를 지니고 아름답게
존재한다는 것을 다시금 새기면서 더 깊은 배려와 겸손을 알게 됐습니다.
물질만능의 시대, 더 구체적으로는 돈이 우선이고, 돈이 모든 기준의
잣대가 되는 이 시대에 문화프로그램은 한 방울의 물로서
사람이 사람으로 존재하기 위한 해법들을 우리에게 보여 주었으며
삶이 힘들어도 조금 쉬어가고 기쁘고 행복하고 스스로 만족하며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삶의 태도를 알려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잘못만 있고 사과는 없는 요즘의 우리 주변을 봅니다.
프로그램 폐지의 이유와 절차에 대해 어떤 소명도 없이
회피로 일관하던 EBS 편성부는 느닷없이 퀄리티가 낮아서 프로그램을 폐지한다고 대국민 발표를 했습니다.
2009년 EBS 사장의 신년사에도 나와있듯이
EBS의 주인인 청취자들,패널들,한문페 스텝들과 프로그램을 만든 피디들, 저 모두를 일방적으로 매도 했습니다.
단 한번의 소통도 없이 그들은 그들 얼굴에 스스로 침을 뱉었습니다.
그들이 문화 프로그램을 들어왔다면 좀 상식있는 사람으로 행동하지 않았을까요?
저는 계약직이 아닙니다. 또 방송은 6개월 단위로 프로그램을 위해 모이고 해체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과정은 중요합니다.
설명도 없고 소통도 없는 일방적인 결정.
예의가 없는 거지요.
잘못된 것인줄 알면서도 반성없이 반복되는 이런 관행들이 이제는
없어지면 좋겠습니다. 솔선수범해서 고쳐 나가야 그들의 다음 세대가
성장하고 더불어 우리도 함께 행복해질 겁니다.
그들은 아직도 사과하지 않고 있습니다.

한문페는 여러분이 만들고 써내려간 프로그램입니다.
여러분 하나하나가 각자 나 만의 문화정원을 가꾸며
그렇게 8년간의 정성을 들였습니다.
예술문화를 통해 삶의 미적 가치를 추구하고 희망의 에너지를 얻었던
한문페는 문을 닫지만 여러분들은 매일매일의 책장을 펼치고 정원을 거닐며 삶의 여유를 즐기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예의와 배려, 이해와 소통을 통해
나의 얘기를 당당히 할 수 있는 페이지를 가꿔가시길 바랍니다.
그 정원에는 사계절의 노래가 끊임없이 이어지겠지요.
문화 한 페이지는 바로 당신이 계신 그 곳이니까요.
문화는 당신과 나의 이야깁니다.
한문페 여러분 즐거웠습니다.
고맙습니다. 건강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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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호 김태경
,
일호님께
등록인 요잔 등록일 2009.02.20 | 조회: 196
첨 부

조심스럽지만, 제가 이해한 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주시'는 불가능합니다.
다만 '감시'가 일어날 뿐이지요.

우리는 어떤 때에 주시하려고 노력하나요?
행복하고 기쁨에 넘칠 때 '주시'해야겠다는 생각이 일어나나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으면서 행복감을 느낄 때 "이 행복을 주시해야 한다."는 생각이 일어나나요?
우리가 '주시'하려는 생각을 일으킬 때에는 분노나 미움 등 부정적인 감정을 느낄 때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왜 분노와 미움에 대해 '부정적'이라는 수사를 쓰는 것일까요?
무엇을 기준으로 부정적이라는 말인가요?
자기 스스로 구축해 놓은 '자기 이미지'에 부응하지 않기 때문에 부정적이라고 말하는 것이지요.
나는 항상 우아하고 평화로운 사람이어야 하는데, 그런 이상향에 맞지 않으니까
부정적 감정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지요.

사실, 분노와 미움이라는 감정 자체는 부정적이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의 '자기 이미지'를 훼손시키는 감정이기 때문에 부정적으로 느껴지는 것입니다.
내가 구축해 놓은 '자기 이미지'를 기준으로 볼 때 부정적이라는 말이지요.
 
이 '자기 이미지'란 무엇인가요?
"나는 마땅히 이러저러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이상향이지요.
그런데 내가 그 이상향과 딱 부합되는 사람이라면 그런 이상향 자체를 가질 필요가 없지요?
어떤 이상향이 있다는 것은 내가 그 이상향과 어긋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이상향과 어긋나는 사람'이 바로 지금 그대로의 내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이상향을 가진다는 것은 지금의 나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이고,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겠다는 뜻입니다.

이런 의지의 밑바닥에는 자기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 마음이 숨어 있습니다.
'주시'에 대한 생각이 일어나는 것은 그 이상향에 부합되는 인간이 되고 싶다는 뜻이고,
그 밑바닥에는 자기 자신에 대한 부정과 미움이 숨어 있는 것입니다.
자기 스스로를 죄인으로 만들어 놓고 그 죄인을 감시하는 것이지요.
죄수와 간수의 이중역할을 수행하는 겁니다.
이것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주시'의 정체입니다.
그래서 제가 주시가 아닌 '감시'라고 말하는 것이고요.
 
사실, 인간이 메커니즘이라는 말은 조금만 자신을 관찰해보면 쉽게 수긍이 갑니다.
어떤 인간도 이 메커니즘에서 예외가 아닙니다.
다만 그 메커니즘에서 일어나는 작용을 어떻게 전개해 나가느냐 하는 차이가 있을 뿐이지요.
아래 글에서 우리는 작용에 이어 즉각 반작용을 일으킨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면 작용이 전개되는 방식은 반작용 외에 아무 것도 없는 것일까요?
만일 반작용이 아닌 다른 식의 전개방식이 있다면,
여기서 우리는 어렴풋이나마 주시의 가능성에 대한 희망을 갖게 될 겁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럼 감시가 아닌 주시는 뭐냐?"하고 묻습니다.
우리는 너무 성급한 경향이 있습니다.
감시하려는 노력의 무의미함을 이해하는 게 우선이지요.
아니, 무의미하다는 말은 점잖게 표현한 것이고,
감시가 지나치면 강박관념에 시달리게 되고 인성이 황폐해집니다.
사회적 센스를 잃고 자기 안에 갇혀 버립니다.
그는 '감시받는'대상으로서 자기 자신에게만 몰두하게 되고,
그런 몰두를 통해 '감시자'의 구미에 맞게 행동하려고 노력합니다.
스스로 위선자가 되는 것이지요.
 
이런 해악을 깊이 성찰하고 당장 감시를 그만두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제가 이해한 바로는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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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반님들이 남겨주신 의견입니다 (3개)
일호
2009-02-20
21:00
일호입니다. 답변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되풀이해서 숙독하였습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고 싶다에서 비롯되는 감시. 반작용이 아닌 다른 식의 전개방식. 자기 자신을 사랑하려고 노력하는 것.

범부는 첫번째 화살을 맞은 후에 곧이어 (분노같은) 두번째 화살을 초래하는 반면, 성자는 첫번째 화살로 그친다는 얘기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이후로 저는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화가 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다시 한번 답변 주신데 대해 감사인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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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잔
2009-02-18
14:56
*반공과 저는 오랫동안 알고 지낸 친구 사이이니 아래 글을 읽는 분들은 오해하지 마세요*

재미있게 좀 꼬집어 드릴까요?^^
조건이 있고 반작용이 일어나는 게 아니라 조건에서 작용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이 작용에 대해 반작용이 일어나죠.
조건에서 작용이 일어나는 것은 모든 인간의 메카니즘입니다.
(인간은 메카니즘 이상이 아니라는 유지의 말을 전제할 필요는 없겠죠?)
그런데 이 작용(action)에 따라붙는 반작용(reaction)이 문제를 일으킵니다.
분노를 예로 든다면, 누군가에게 피해를 당하고 화가 나는 것은 메카니즘의 작용입니다.
그런데 보통 사람들은 이 작용에 대해 '참아야 한다'는 반작용을 일으키고,
명상인들은 '의식적으로 주시해야 한다'는 반작용을 일으킵니다.
분노까지는 메카니즘의 속성이므로 문제될 게 없어요.
문제는 이 메카니즘의 작용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것을 개선 또는 변화시키려는 반작용을 일으키는 것이죠.
그러니까 자연스러운 메카니즘의 작용을 '무의식'으로 폄하하게 되고,
이렇게 스스로 폄하한 것을 더 높은 차원으로 끌어올리려고 하는 것이지요.
마음이라는 메카니즘을 폄하하니까 '에고의 잠꼬대'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고,
이렇게 스스로 자학개그를 해놓고 보니 '우아해야 할' 자기 정체성이 상처를 입게 되고
그것이 견디기 힘든 일이 됩니다.
그래서 훼손된 자기 이미지를 회복하기 위해 
뭔가 영적인 차원으로 올라가려는 또 하나의 반작용을 일으키고,
그래서 '에고에서 벗어나야 한다' ,'잠에서 깨어나야 한다'는 무거운 짐을 지게 되는 것입니다.

일호
2009-02-19
13:42
저..요잔님께 질문드려도 될까요?
메카니즘의 작용(예를 들어서 분노)에 대한 반작용에 대해서인데요, 보통 사람들(참아야 한다)과 명상인(주시해야한다)의 반작용으로 말씀해주셔서 제게 좋은 가르침이 되었습니다.

궁금한 점이 있는데 그럼 붓다같은 분들, 유지나 오쇼같은 훌륭한 스승님들 반작용은 어떤 것들이 될런지요?
그 분들에게는 아예 메카니즘의 작용이 적용되지 않는 건가요?(즉, 반작용 자체가 없는 건가요?)
아니면, 보통 사람들의 반작용과 다른 반작용이 있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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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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