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선재에서'에 해당되는 글 169건

  1. 2009.03.25 마늘냄새
  2. 2009.03.25 부익부 빈익빈
  3. 2009.03.14 마이너리티
  4. 2009.03.14 쇼갈 린포체
  5. 2009.03.11 삶의 다양성
  6. 2009.03.11 10대의 ipod
  7. 2009.03.11 비과학의 과학화
  8. 2009.03.09 수당
  9. 2009.03.09 유품
  10. 2009.03.07 아내의 재발견

마늘냄새

소선재에서 2009. 3. 25. 21:45
A는 아시안이다. 영어는 능숙하지만 그의 모국어는 중국어이다. A는 처음부터 인상이 좋지 않았다. 웃음을 가득 띄고 얘기하지만 왠일인지 기분이 나빠진다. 뭔지 모르게 무시당한다는 느낌이 들어서이다. 학기가 시작되고 그의 강의를 듣기시작하자 그 느낌은 더 커졌다. 아니나 다를까, 나뿐만이 아니었다. 몇몇은 싫어했고 몇몇은 불평을 했다. 희한한 일은 백인학생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해가 바뀌고 새학년이 시작되어도 그 불편한 느낌은 여전하다. 아시안 학생들과 백인학생들을 다르게 대하는 그 표정, 말투, 분위기, 그 미묘한 차이들..

오늘 수업중에 그는 마늘에 대한 얘기를 했다. 마늘 맛에 대한 불쾌함을 말하면서 덧붙여 한국음식, 특히 김치에 대한 혐오감을 숨김없이 드러냈다. 생마늘을 씹어 먹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누가 어떤 냄새를 좋아하고 싫어하고는 그의 자유다. 그럴 수 있다. 따라서 어떤 사람에게서 싫은 냄새가 난다면 그 사람을 싫어할 수도 있다. 바람직한 일은 아니지만, 그럴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그것이 일반화되서 그 사람이 속한 집단 전체로 확장된다면 그것은 반사회적이 되고 위험해진다. 많은 나라들이 인종차별을 포함한 모든 차별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만약, 누가 그에게 '당신이 즐겨 먹는 복초이 냄새가 아주 역겹다'고 말하면 그는 어떤 기분이 될까? 그것 이전에 만약 그가 '한국의 대학교'에서 강의를 했더라면 과연 그런 얘기를 꺼낼 수 있었을까?

기소불욕, 물시어인. 논어에 나오는 말이다. 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은 남에게 시키지 말라는 말이다. 마찬가지로 자기가 당하고 싶지 않은 일은 남에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강한 자에게 약하고 약한 자에게 강한 사람에게는 별로 통할 것 같은 얘기는 아니지만 말이다.













A는 아시안이다. A는 처음부터 인상이 좋지 않았다. 웃음을 가득 띄고 얘기하지만 왠일인지 기분이 나빠진다. 뭔지 모르게 무시당한다는 느낌이 들어서이다. 그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그 느낌은 더 커졌다. 아니나 다를까, 나뿐만이 아니었다. 몇몇은 싫어했고 몇몇은 험담을 했다. 희한한 일은 백인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아시안과 백인을 다르게 대하는 그 표정, 말투, 분위기, 그 미묘한 차이들..

그가 한번은 마늘에 대한 얘기를 했다. 마늘맛에 대한 불쾌함을 말하면서 덧붙여 한국음식, 특히 김치냄새에 대한 혐오감을 숨김없이 드러냈다. 생마늘을 씹어 먹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누가 어떤 냄새를 좋아하고 싫어하고는 그의 자유다. 그럴 수 있다. 따라서 어떤 사람에게서 싫은 냄새가 난다면 그 사람을 싫어할 수도 있다. 바람직한 일은 아니지만, 그럴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그것이 일반화되서 그 사람이 속한 집단 전체로 확장된다면 그것은 반사회적이 되고 위험해진다. 많은 나라들이 인종차별을 포함한 모든 차별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만약, 누가 그에게 '당신이 즐겨 먹는 복초이 냄새가 아주 역겹다'고 말하면 그는 어떤 기분이 될까? 그것 이전에 만약에 그가 '한국의 직장'에서 일을 했더라면 과연 그런 얘기를 꺼낼 수 있었을까?
기소불욕, 물시어인. 논어에 나오는 말이다. 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은 남에게 시키지 말라는 말이다. 마찬가지로 자기가 당하고 싶지 않은 일은 남에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강한 자에게 약하고 약한 자에게 강한 사람에게는 별로 통할 것 같은 얘기는 아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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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람이 확실히 늘었다. 교민매체를 보면 이제 10만을 바라보네 어쩌네 하는데 지나친 말이 아닌듯 하다. 같은 전철 칸에 한국사람이 타고 있지 않은 적이 없다. 아침 출근길이건 한가한 오후건간에 한국사람 한 둘은 반드시 있다. 작년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

채 스무살이 안 된 A는 한국말이 아주 유창하다. 읽기도 불편하지 않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 보통 교민2세들은 한국말이 서투르게 마련이다. 부모 모두 낯선 나라에서 생업에 종사하느라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지 못해서이다. 한국말을 들을 기회가 없는 아이들은 당연히 말이 서툴고, 읽기는 말할 것도 없다.
 
한국말이 유창한 아이들은 부모들과 많은 시간을 보냈거나 한국드라마를 많이 본 경우이다. 한국드라마도 부모와 같이 보는 것이니 결국 얼마나 부모와 같이 시간을 보냈느냐가 한국말을 잘 하는데 결정적인 요인이 된다.
 
앞서 말한 A는 유복한 환경에서 자란 듯 하다. 자동차도 아우디를 가지고 있고(한국돈으로 한 이천만원정도), 취미로 비행기면허까지 가지고 있다고 하니, 분명 돈 많은 집임에 틀림없다. 부익부 빈익빈은 인문학적인 인프라에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니, 앞으로 한국말 못하는 교포2세 3세들을 보거든, 뿌리없음을 탓할게 아니라, 그들의 신산스러운 삶에 대해 연민을 가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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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리티

소선재에서 2009. 3. 14. 00:50
크리스틴이 같은 성의 파트너와 산다는 얘기를 밑에서 했는데, 학생들을 감독하는 위치에 있는 한 한국여자분도 동성의 파트너와 지낸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 얘기를 들은 느낌은, '그래? 뭐, 그런가 보지'.

나는 술을 못마셔서 탈출을 했는데 그 여자분은 성적 소수자라서 탈출을 한 것일까? 그래 탈출해도 낯선 곳에서는 또 다른 마이너리티의 시련이 있을 터이다. 허나, 그 시련은 결국 그대를 자유롭게 하리니, 마이너리티의 다른 이름은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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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갈 린포체

소선재에서 2009. 3. 14. 00:28
달라이 라마 자서전을 읽고나서 이곳에 있는 티벳트불교를 찾아보기로 마음먹었다. 달라이 라마 자서전은 굉장한 힘이 있었다. 이런 것이 자서전이다 싶었다. 인터넷에서 가까이 있는 주소 몇개를 찾아냈고 수첩에 옮긴게 지난 12월이었다. 그중에는 학교 바로 앞 주소도 있었다.

개학하고 등하교길에 찾아봤으나 눈에 띄지 않다가 며칠 전 편의점건물 3층 유리창에 불상인듯한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2년도 넘게 다닌 길인데 이제서야 눈에 들어오다니. 건물에 간판이 달리지 않는 탓이다. 이후로 한번 찾아가봐야지 했는데 그게 오늘이었다.

문앞에서 브로셔를 챙기고 망설이다 노크를 했다. 문안의 여자는 굉장히 낯익은 얼굴. 이런! 이번에 졸업한 사람이다. 그러니까, 한국식으로 얘기하자면 같은과 선배. 그 여자도 역시 나를 알아봤다. 굉장히 낯이 익다면서 말이다.

조금은 어이없는 우연에 그 여자의 안내를 받아 둘러봤다. 법당도 꽤 컸다. 이곳의 스승인 쇼갈 린포체는 꽤나 유명하다고. 내일 모레 강연이 있다면서 오기를 청한다.

집에 와서 찾아보니 역시 유명한 사람이었다. 쇼갈 린포체가 쓴 The Tibetan book of Living and Dying이라는 책은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티베트의 지혜’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있다(역자는 한림대 철학과 교수). 23개국에 센터가 100군데라고 되어있다.

쇼갈 린포체의 가르침은 당장 내일 모레라는데 참가비가 만만치 않다. 나 혼자 몸을 뺄 수도 없는 일이고. 주중에 두번 저녁시간에 한시간동안 소규모로 Meditation이 있다고 하니 참석하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글쎄,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이 Meditation Center의 이름은 Rigpa이다. 홈페이지에 있기로는

Rigpa is a Tibetan word, which in general means 'intelligence' or 'awareness'. br />

역시! '각성' 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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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다양성

소선재에서 2009. 3. 11. 21:18
크리스틴에게 아이가 있냐고 물어봤더니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계획하고 있냐고 했더니, 아마 영원히 없을 거라면서 자기 파트너는 Female이라고 했다.

얼마전 한국사람들 모임에서 일이다. 40대가 훨씬 넘는 여자분이 벌점초과로 정지가 됐다고 했다. 그럴 경우 벌점을 다른 사람(대개 남편이나 친지)에게 넘겨서 정지까지는 가지 않게 마련인데, 내가 바보같은 말을 하고 말았다.

"남편분에게 넘기시지요"

그 여자분은 아무 말도 안 했으나, 얼굴은 이미 '남편이 없다'는 대답을 하고 있었다.

나 자신 스스로 삶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있다고 생각했으면서도, 실제로의 나는 한가지 삶의 모습만 보고 받아들이고 있었나 보다.

앞으로는 누구든지 동성파트너를 갖고 있을 수도, 아니면 아예 파트너가 없을 수도 있다고 생각할 일이다. 덧붙여 자식여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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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의 ipod

소선재에서 2009. 3. 11. 20:58
전철을 타면 대개의 젊은 친구들은 귀에 이어폰을 꽂고 있다. 워크맨에서 아이포드로 바뀌었을 뿐, 음악을 듣는다는 행위자체는 바뀐게 없다. 10대의 나이가 한참 감수성이 예민한 때라 음악을 즐긴다고 해도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달리 생각해보면 10대는 아직 커가는 때이다. 음양으로 얘기하자면, 바깥으로 나타나는 모습은 양(陽)적으로 나타나 웃음도 많고 발산하는 기운도 크지만, 그 체(體)가 되는 몸은 음(陰)적이라 모든 것이 유연해서 그만큼 떨림과 진동에 잘 반응이 되는 때라고 할 수 있다. 음악이 주는 떨림에 몸과 마음모두 잘 공명되는 상태가 10대인 것이다.

그러니 10대는 음악을 듣고 다니는 것이다. 이것을 감수성이 예민하다고 하면 더 할말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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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을 혐오하는 의사들(내과의사 한정호 같은 이 http://blog.hani.co.kr/medicine)은 '한의학'이 검증불가능한 미신으로 치부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의학은 서양의학의 관점에서 검증이 불가능하다. 즉, 서양의학에서 보자면 '과학'이 아니다. 그렇다면 한정호같은 이들이 죽기살기로 반대하는 이런 비과학적인 '한의학'은 없어져야 하는가? 즉, '과학'이 아닌 것은 '의술'로서 존재하면 안 되는가? 하는 문제가 남는다.

이 문제에 대한 정답은 과학자나 의사나 한의사가 아니라 사회 구성원에게 달렸다. 사람들이 '과학'만이 의술이 되어야 한다면 당연히 비과학인 '한의학'은 없어질 것이고, 비과학인 '침술'과 '한약'의 효용성을 인정한다면 한의학과 침술은 여전히 이용될 것이다.

민주주주의 사회에서 '과학'만이 의술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면, 마찬가지로 '비과학'도 의술이 될 수 있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의술의 목적은 과학과 비과학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질병과 고통의 감소, 건강의 회복과 유지에 있기 때문이다.

이 기준에 의하자면, (아무리 한정호같은 이들이 '한의학'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어도) 현재 한의학과 침술은 대중의 지지를 획득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역사, 전통, 관습, 제도, 법률, 사회구성원의 합의 모든 면에서 그렇다. 서구사회에서도 서서히 대중의 지지를 넓혀가고 있다고 보여진다. 한정호같은 이들은 이런 것들이 못마땅하고 그래서 열심히 한의학을 비난하는 것이겠지만, 사람들사이에 스스로 느끼는 '실질적인 임상효과'가 존재하는 한 한의학은 '비과학'이라는 이유로 배척되지 않을 것이다.

한마디 더해서, 앞으로 전망해보자면, 과학이 발전할 수록 '한의학'의 입지는 더욱 더 공고해질 것이다. 지금의 과학수준으로는 검증 불가능한 것이 앞으로 과학이 발전할 수록 검증가능한 영역으로 넘어올 것이고, 따라서 지금은 검증불가능한 한의학의 '비과학성'이 과학의 발전에 따라 '과학성'을 획득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정호같은 이들은 자기 무덤을 파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그나마 다행인 것은 과학의 발전이라는 것이 그리 빠르지는 않을 거라는 것 정도일 뿐.


///////////////////////////////////////////////////////////////////////////////////

thorax라는 이름(아마 의사인듯)의 댓글이 있는데, 음미해볼만 하다. 그릇된 부분을 지적해본다. 빨간색이 나의 말.

http://blog.hani.co.kr/medicine/19510
thorax 2008/12/08 02:03
어떤 한의사분에게 제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진단이 똑같은 환자들을 가급적 많이 모아서 (50명 이상이면 좋습니다.) 두가지 치료를 해 본 다음에 그 두가지 치료의 결과를 가지고 분석하면 치료법의 우위를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이렇게 답을 했습니다.
환자들의 질환은 전부 다 다르기 때문에 똑같은 환자들을 수십명씩 모은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양의들은 간단한 진단법으로 환자를 분류하지만 한의사들은 환자의 체질이나 기타 굉장히 많은 요소들로 판단해야 하기 때문에 똑같은 환자란 있을 수 없고 따라서 똑같은 환자에 대한 무작위적 실험으로 비교하는 것이 안된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한 말 자체는 거짓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차이가 있는 환자군으로 비교실험을 하면 그것은 신뢰성이 없어지니까요.

그런데 만약 그러한 말이 맞다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집니다.
과학적 경험론이란 과거에 있었던 사건이 모든 조건이 똑같다면 미래에도 똑같이 일어날 것이라는 바탕하에 존재합니다.

(우선, 한의학에는 과학적 경험론이 적용되지 않는다. 첫째, 과거와 미래는 같을 수가 없다. 시간과 공간 환경 모두 변수가 된다. 둘째, 따라서 모든 조건이 똑같다는 전제가 성립할 수 없다. 이것이 한의학의 배경이 되는 세계관이다)

어떤 한의사가 어떤 환자를 치료할 때에 사용했던 방법이 잘 들었다고 하여도 그 치료법을 똑같이 사용하면 다시 또 잘 들을런지 알 수가 없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즉 세상의 모든 환자는 전부 다 "생전 처음보는 새로운 질환을 가진 환자"라는 이야기입니다. 단 한번도 똑같은 질환은 다시 생기지 않는다는 이야기죠.

(한의학에서의 '질환'은 서양의학의 그것과 개념이 다르다. 서양의학에서는 '생전 처음보는 새로운 질환'이라고 해야겠지만, 한의학에서는 그런 개념이 있을 수가 없다. 즉 '새로운 질환'이라는 게 없다. 단지, 같은 환자가 없는 것이다. 질환이 같은 환자도 그 기전이 다를 수가 있고, 그 기전이 같아도 발현하는 질환이 다를 수가 있다. '생전처음보는 새로운 질환'은 한의학에는 가능하지가 않다)

세상의 모든 질환이 전부 다 새로운 질환이라면 후배들에게 질환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방법을 전수하는 것은 불가능 할 것입니다. 후배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전부 다 가르쳐 줘도 그 경험은 쓸모가 없습니다. 왜? 그 경험과 똑같은 환자는 다시는 나타나지 않을테니까요.

(그렇지 않다. 발병기전에 따라 분류를 하게 된다. 이 발병기전이 사람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며 따라서 질환에 차이가 있게 된다. 따라서 같은 환자가 없는 것이지, 그렇다고 무슨 새로운 발병기전이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발병기전과 그에 따른 진단은 당연히 전수가 가능하다)

한의사는 이렇듯 자신의 관념속에 있는 원리와 자신이 인지하고 사용가능한 방법으로 진단하고 치료하는 것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합니다. 환자의 진짜 문제는 여러가지 복잡한 요인들이 얽혀있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완전한 진단이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치료자가 인지하는 문제점이라는 것이 있고 어떤 문제점을 인지했으면그것에 적합한 대처방안이라는 것은 통계적인 방법으로 얼마든지 검증가능합니다.

그런데 한의사들은 진단과 치료에 자신이 인지할 수 없는 영역의 것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우주의 조화나 음과 양의 기운을 본인은 인지하지 못하고 사용할 수도 없으면서 그것이 환자의 질환에 영향을 미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면서 그러한 인지하지 못하는 요인들이 있기 때문에 과학적인 검증이 안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맞는 다른 검증법도 가능합니다. 어떤 환자가 왔을 때에 한의사가 먼저 진단하고 처방을 내린 다음 무작위로 2명중 1명은 의사가 진단 및 치료를 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나서 장기적인 치료성적을 비교해 보면 되죠.

(그럴 수 있다면 좋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원칙적으로 얘기하자면 치료자(한의사)가 인지하는 문제점은 치료자마다 다르고, 그에 따른 대처방안도 제각각이다. 설령 한의사들간에 최대공약수가 있다 해도 그것이 그에 적합한 대처방안이라는 전제가 불가능하다. 그리고, 한의학이라는 것이 '조건'을 전제할 수가 없는 학문이라, 검증이라는 말 자체가 스스로의 존재근거를 뒤집는 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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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당

소선재에서 2009. 3. 9. 18:21

이번 방학때 며칠 일한것 빼고는 일을 안 한지 1년이 넘었다. 이렇게 일을 안 하고도 살 수 있는건 수당덕분이다. 처음엔 애 하나 있다고 이렇게 많이 받아도 되나 싶더니, 이젠 당연하게만 느껴진다.

더해서, 한국에 이런 수당이 전혀 없다는 걸 생각하면 어찌 그럴 수 있나 하는 생각까지 든다. 사람마음이란......

한국에 가고 싶다는 생각은 여전하다. 그리운 것은 단 하나, 한국의 산이다. 그러나 돈벌이없이 한국에 사는 건 난감하겠다는 생각이다. 이렇게 수당하나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나의 돈벌이로 식구들이 먹고 살아야할텐데 말이다.

아무리 한국의 산에 가고 싶어도 한국에서의 돈벌이 - 그게 취직이건, 다른 쏘스건간에 - 가 잡히기 전에는 갈 수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뒤집어 얘기하자면 한국에 가기 전에 한국에서의 돈벌이가 정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아직도 2년가까이 남은 얘기니, 불필요한 번뇌이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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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품

소선재에서 2009. 3. 9. 17:46
일요일엔 강민호와 그의 아내가 왔다. 저녁을 차려줬다. 감자전,된장국,쇠고기볶음,국수가 내가 준비한 메뉴였다.

강민호는 간단히 한다면서 전까지 부치느냐며 인사치레를 하는데, 사실 전이란게 어려운 것도 아니고 손이 많이 가는 것도 아니다. 된장국역시 배추시래기만 넣은 거라 간단한 것이었다. 

자기가 할 줄 모르면 일단 어려운 것이다. 그러니 어려운 것은 사실 어려운 게 아니라 낯설고 어색한 것이다.

그 간단한 요리를 강민호는 맛있다는 말과 함께 남기지 않고 먹었다. 일주일의 6일을 파스타와 토스트로 지낸다니, 반가움까지 더해서 맛이 배가되었을 것이다.

그 둘은 서른도 넘고 결혼도 훨씬 빠르나 아직 어리게만 보인다. 젊게 사는 사람들이서, 또 아직 아이가 없어서일 수도 있다.

내친김에 동생도 불렀다. 같은 메뉴에 다만 쇠고기볶음이 돼지고기볶음으로 바뀌었다. 아버지가 쓰던 필립스 면도기가 묵혀있던 차라 동생에게 줬다.

이십몇년만 있으면 나도 아버지가 면도기를 남기고 떠난 나이가 된다.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면 그리 긴 시간도 아니다. 동생에게 면도기를 건네주며 아버지것이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동생도 굳이 묻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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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부디스트도 아니고 따라서 불교에 대해서도 전혀 모른다. 또한 라즈니쉬니 도덕경이니 하는 것들도 전혀 알지 못한다.

그런데, 아내는 나보다 훨씬 더 '지금 여기'에 머물고 있는 사람이었다. 아내의 말로는 그것이 첫째가 태어나면서부터 현재 순간에 머물게 되는 트레이닝이 되었다는데. 지금 여기 이 순간에서 오직 할 뿐. 수많은 선사와 스승들의 가르침대로 아내는 이미 지금 이 순간에 전적으로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고보니 아내는 어느때부터 아무리 내가 짜증을 내도 화를 내지 않았으며, 무엇을 하고 싶거나 갖고 싶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나를 보며 안타까웠다는 아내. 그런데도 아내는 내게 잔소리는 커녕 한번도 가르치려하지 않았다. 오히려 어리석은 내가 아내를 깨우친답시고 들들 볶았었지.

나는 몰랐다. 아내가 나의 스승이 될 만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나는 말로만 떠들었으나 행동하지 못했고 아내는 말없이 이미 그렇게 살아오고 있었다.

아~ 아내의 위대함이여. 옆에 이런 스승을 두고 나는 어디서 찾아 헤맸던가 말이다. 전생에 아내는 나의 도반이 아니었을까 싶다. 나보다 더 뛰어났던 아내는, 나를 긍휼히 여겨 이번 생에 나를 도와주려 나와 결혼한게 아닐까?

진정 아내는 나의 스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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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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