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과 나

소선재에서 2008. 8. 19. 16:13


丹. 붉을 단 . 그러니까 님 향한 일편丹心의 단이기도 하고, 단전호흡의 단이기도 한 그 단이다. 이 글자가 책 제목을 달고 나온 적이 1980년대 후반이다. 김정택이라는 이로 기억하는데 소설형식으로 도가수련을 한 노인에 대한 이야기가 담긴 책이다. 축지법을 하고 경공술을 펼치는 얘기가 사실감있게 그려져 당시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책이다. 당시 대한민국은 70년대를 지나 부의 축적의 시대에 접어들던 때였다. 굶주림에서 벗어난 사람들은 점점 더 행동반경을 넓히기 시작했는데, 그 중의 하나가 바로 민족주의의 발호였다. 먹고 살만하니 내가 - 아니, 우리가 - 누구인가를 생각해 보게 된 것이다.

이 책은 이런 흐름의 처음에 있던 책이었다. 백두산 동이족의 우수함. 그 부제가 말하는 한민족의 자긍심은 시대의 흐름이기도 하고, 또한 시대의 흐름에 따르는 결과물이기도 했다. 이 책 이후에 서점에는 한민족의 우수성에 대해 역설하는 책들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김일부의 정역도 그렇고, 증산도의 책들도 한 몫했다. 이런 책들의 배경 - 학술적인 가치는 별로 없지만 - 은 동양의 사상인데, 공통점은 동양사상의 원류를 죄다 한민족의 것으로 갖다 붙이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천오백년전에는 한민족이 없었으므로, 그들이 찾은 건 동이족이라는 말이었다. 그때의 동이족이 지금의 한민족이라는 것이다. 결론 또한 천편일률적이어서, 앞으로의 시대는 후천시대가 됐건 용화세상이 됐건 간에, 한민족이 이 세계를 영도하는 민족이 되고 이 세상은 한민족의 지도아래 낙원이 된다는 것이다.

30년가까지 지난 지금까지도 이런 얘기들은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역학쪽에서는 지축이 바로 서는 후천이 이미 도래했다고 하고, 단전호흡을 하는 기업에서는 한민족의 우수성을 근거로 그들의 상품을 팔고 있다. 한국에서 열린 월드컵때 우리는 얼마나 많이 치우천황의 얘기를 들어야만 했는가? 이런 얘기들이 사실이라면 그러면 언제 한민족은 세계의 제일민족이 되는 것인가?

나는 생각해본다. 예언들은 이미 성취됐을수도 있다고. 아시아에서 한국의 인기는 독보적이다. 한국은 일본과 같은 침략자의 이미지도 없다. 베이징올림픽에서 한국은 중국빼고 아시아를 제패했다. 그리고, 말끝마다 들이대는 경제규모 세계 10위의 경제대국. 그게 아니라도 사실 한국보다 더 잘 사는 나라는 없다. 다들 힘들게 살아서 그렇지, 먹고 자고 좋은 옷에 차에 한국만큼 잘 사는 나라 찾기가 쉽지 않다.

메이드 인 코리아보다 좋은 물건 찾아보기 힘든 세상이 된 것이다. 정말 지축이 바로 서고 후천개벽이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그 못살던 한국이 더이상 아시아는 놀 물이 안되고, 이제는 구미와 나란히 서니 말이다. 그런데, 나는 의아하다. 이렇게 한민족이 세계를 영도하는 민족이 되었는데, - 또는 거의 다 되고 있는데, 사람들은 여전히 불만이 가득해 보인다. 한민족이 세계 제일의 민족이 된다는 건, 아마 그 민족의 구성원들에게는 해당이 안 되는 얘기인가 보다. 그렇지 않고서야 세계에서 제일가는 민족이 사는 건 어느 누구보다도 더 힘들다고 하니 말이다.

그렇다면 말인데, 민족이 잘 나가는 것과 내가 잘 사는 것과는 별개 아닌가? 한민족의 우수성이 실현되는 지금, 우리는 새삼 배워야할지 모른다. 아~ 민족과 나는 별개구나. 금메달과 태극기를 보며, 세계를 놀라게 하는 한민족의 우월함을 보며, 우리는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국가나 민족이 잘났다고 내가 잘난게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Posted by 일호 김태경
,

고종석의 칼럼이다. 나는 그동안 궁금했다. 왜 노무현이 이쪽에서나 저쪽에서나 다 욕을 먹는지 말이다. 저쪽에서 욕하는 거야 그러려니 하는데, 이쪽에서도 다들 싫어했다. 고종석은 그걸 두고 '배신'때문이라고 한다. 글쎄, 그가 얘기했듯히 '전면적이지 못한 배신'을 배신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마도 그들은 노무현에게서 다른 무엇인가를 기대했던 모양이다.
그렇다면 그건 '실망'이라고 해야한다. 그게 맞다.
어쨌거나 고종석의 칼럼은 어느정도 나의 궁금증을 해결해줬다. 왜 이쪽에서도 노무현을 싫어하는지 말이다.
나는 2002년 12월 19일 저녁 6시 나는 만세를 부르며 단 하나만 바랬다. 노무현이 제발 조선일보에 타협하지 않기만을 말이다. 내가 기대했던 것은 이것 단 하나. 그리고 노무현은 지금까지 날 실망시키지 않았다.

[고종석 칼럼/2월 21일] 노무현 생각

며칠 뒤면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를 떠난다.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 그를 지지한 사람이든 반대한 사람이든, 노무현 시대에 점수를 후히 매기는 것 같진 않다. 무엇보다, 지난해 말 대통령선거에서 구여권 후보가 겪은 참담한 패배에는 노무현에 대한 평가가 얼마쯤 반영돼 있었다.

그가 취임하기 직전, 나는 대통령 노무현의 가장 큰 업적은 대통령에 당선된 것일 수도 있다고 쓴 적 있다. 새 대통령의 발걸음에 딴죽을 걸겠다는 악의로 한 말이 아니라, 소수파의 호민관으로서 대한민국 제1시민 자리에 다다른 정치역정을 기린 말이었다.

그를 지지했던 사람들 처지에서 보면 아쉽게도, 노무현은 결국 대통령이 된 것 이상의 업적을 남기지 못한 채 일반 시민으로 돌아올 참이다.

■ 리버럴 진영의 트로이 목마

힘센 사람들을 향한 노 정권의 투항이 되돌릴 수 없는 지점에 이르렀다고 판단된 세 해 전, 나는 어느 글에서 노무현이 트로이목마일지도 모른다고 비아냥거린 적 있다. 복고주의자들이 리버럴리즘 진영을 무너뜨리기 위해 보낸 트로이목마라는 뜻이었다. 나는 그 비아냥거림을 뉘우칠 계기나 기회를 그 뒤에도 얻지 못했다.

노 정권 5년간, 서울 강남을 지역적 이데올로기적 고리로 삼은 재벌-관료 동맹은 그 전보다 더욱 튼튼해졌다. 그리고 이 신성동맹은 곧 출범할 이명박 정권에서 만세동락을 구가할 모양이다.

노무현은 힘센 친구를 새로 얻기 위해 힘없는 친구를 버렸지만,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의 배신이 또렷해진 뒤에도, 그 배신으로 이득을 본 세력은 그의 친구가 돼 주지 않았다.

노 정권 덕분에 재산을 단단히 불린 땅 부자들, 집 부자들, 대자본가들은 5년 내내 노무현을 저주했다. 옛 친구를 버리고서도 새 친구를 얻지 못함으로써, 다시 말해 모두를 적으로 돌림으로써, 노무현은 기이한 방식으로 국민통합에 기여했다.

노무현이 사면초가에 놓인 이유 하나는 그의 배신이 전면적이지 못했다는 데서도 찾을 수 있다. 권력을 시장에 헌납함으로써 노무현은 과감히 경제적 강자 편을 들었으면서도, '민주화세력'이라는 자신의 상징적 기득권은 포기할 뜻이 없었다. 소위 '과거사 정리'라는 것은 역사적 정통성에 대한 이 욕망과 관련 있었을 테다.

그런데 이 '과거사 정리'는 그가 버린 힘없는 사람들에게는 자신들의 삶과 별 관계없는 '정권의 취미'로 보였던 데 비해, 그가 새로 친구로 사귀고자 했던 힘센 사람들에게는 제 존재의 기반을 건드리는 민감한 문제였다.

다섯 해 전 새 대통령을 뽑을 때, 한국 유권자들 마음 속에선 윤리적 욕망이 파닥거렸다. 지난해 말 새 대통령을 뽑을 때, 그들 마음속에 윤리적 욕망이 들어설 자리는 없었다.

이렇게 된 이유 가운데 큰 것이 자신의 행태였음을 노무현은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탈-윤리 대통령 이명박은 윤리 대통령 노무현이 다섯 해 동안 진화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오래도록, 한국 유권자들은 정치적 결정에 윤리가 끼어드는 걸 꺼릴 것이다.

■ 윤리적 출발, 탈-윤리적 종말

공정함을 위해서, 적대적 언론의 반노 선동이 커뮤니케이션을 왜곡해 정권을 고립시켰다는 대통령과 그 주변의 하소연에도 일리가 있었음을 지적해야겠다. 정파 신문들이 판치는 한국 저널리즘 시장에서 노무현에게 호의적인 매체는 드물었다. 그리고 그것은 정권에 대한 여론 악화를 크게 거들었다.

새 대통령 당선자나 인수위의 최근 천둥벌거숭이 행태를 노 대통령이나 그 주변사람들이 벌였다면, 정권이 뒤흔들릴 정도의 십자포화를 언론으로부터 받았을 것이다.

이것은 노무현 시대를 평가할 뒷날의 역사가가 이 시대 신문들을 사료로 쓰는 데 매우 조심스러워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글까지 포함해서 하는 말이다.

노무현과 노무현 시대에 대한 평가는 앞으로 분명히 나아질 것이다. 그러나 그 때에조차, 노무현이 실패한 대통령이었음은 엄연하다.

<저작권자 ⓒ 한국아이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소선재에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슴을 드러내는 이유?  (0) 2008.09.03
민족과 나  (0) 2008.08.19
[펌]이런 것이 진짜 코메디  (0) 2008.08.12
삶의 끝에 있는 것  (0) 2008.04.26
[펌]욕망의 무한한 힘, 한겨레에서  (0) 2008.04.16
Posted by 일호 김태경
,
빨간색으로 되어있는 부분. 난 정말 웃지 않을 수 없었다. 검사라는 인간이 스스로 법을 어기고 있다고 얘기한다. 정말 코메디야 코메디.


/////////////////////////////////////////////////////////////////////


(서울=연합뉴스) 이한승 기자 = 정부는 12일 광복 63주년과 건국 60년을 맞아 경제살리기를 통한 일자리 창출과 `화합과 동반의 시대'를 열기 위한 34만여명 규모의 특별사면ㆍ복권 조치를 단행했다.

김경한 법무부장관은 "이번 사면은 우리가 겪고 있는 심각한 경제적 어려움을 타개하는데 이바지하기 위해 실시했다"며 "경제인들이 활발하게 투자하고 일자리를 창출하며 해외시장을 개척하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다음은 법무부 차동민 검찰국장과의 일문일답

-- 현대자동차 정몽구 회장의 경우 죄질도 좋지 않고 사회봉사도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사면 대상에 포함된 이유는

▲대기업 사면의 경우 비판의 목소리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국내외적으로 어려운 경제 여건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투자 활성화 해외시장 개척, 일자리 창출이 절실하다는 점을 고려했다. 정 회장의 경우 사회봉사 명령 300시간 가운데 200시간 사회봉사를 했는데 집행률이 3분의 2 이상이 되면 사면 대상자에 포함된다.

--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경우 경제인으로 분류했나 폭력사범으로 분류했나

범행으로 볼 때에는 폭력사범이지만 본인의 지위를 감안해 경제인으로 분류했다.

-- 경제인을 대거 사면한 조치는 화이트 칼라 범죄를 엄정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입장과 어긋나는 것 아닌가

경제 살리기를 명분으로 한 사면은 법치주의와 어긋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사면을 통해 경제살리기에 전력할 수 있도록 한다는데 중요한 의미가 있다.

-- 사면 기준에 추징금 납부 여부도 포함됐나

▲포함됐다. 또한 벌금 납부 여부도 기준이 됐다.

-- 대부분의 기업 총수들이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자유롭게 경제활동 하고 있는데 사면을 한다고 해서 특별히 경제살리기에 기여한다고 말할 수 있나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활동하는 사람의 경우 집행유예 기간이나 집행유예 기간이 경과된 이후에도 제약이 많다. 제약을 풀어주면서 경제활동에 전념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함이다.

-- 배임이나 횡령의 경우 기업 입장에서 치명적인 범죄인데 해당 총수에게 다시 경영권을 맡긴다는 것이 오히려 기업에 해가 될 수도 있지 않나

▲배임의 경우 계열사 증식이나 활성화를 위해 쓰인 경우가 많았고 또한 개인 착복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

-- 정몽구 회장의 경우 아들에게 회사를 물려주기 위해 배임을 했는데 그것도 기업을 위해서 배임을 한 것이라고 판단하나

▲답변하기 곤란하다.

-- 추징금 납부 여부도 고려했다고 했는데 추징금 납부 안된 사람이 포함된 이유는

▲기본적으로 납부한 사람을 사면 대상으로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추징금을 납부하지 않은 사람도 사면 대상에 포함시킨 전례가 있다.


-- 추징금을 납부하지 않은 경우 어떤 기준을 적용했나

▲경제ㆍ국가 발전에 기여한 정도, 피해회복 여부, 건강ㆍ건강. 나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

jesus7864@yna.co.kr

<연합뉴스 긴급속보를 SMS로!> <연합뉴스 "올림픽 포토 매거진">

<실시간 올림픽뉴스는 LGT M-Sports와 함께 **7070+Ez-i>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Posted by 일호 김태경
,

시골의사 박경철의 ‘아름다운 동행’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저자는 외과의사입니다. 한겨레에 들어가보면, 가끔 이 의사의 얘기를 볼 수 있습니다. 재테크전문가라는 타이틀이 있어 내심 무시했는데, 그의 이야기는 심금을 울리는 것이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죽음을 직접 맞닥뜨리는 현장에 있어서인지, 삶과 죽음의 갈림길이 실감나게 다가왔습니다. 그의 인상은 둥글둥글하지만 그의 눈은 아주 매서워 보입니다. 죽음과 삶이 맞닿아있다는 것을 그 눈으로 잘 파악하고 있는 듯 합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내내 두 사람이 떠올랐습니다. 한명은 돌아가신 아버지이고 또 한명은 이제 아장아장 걷고 있는 아들녀석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몸이 마르고 숨이 가쁘게 될 때쯤 칼로 손바닥을 찢기도 했습니다. 생명선의 끝부분이었습니다. 돌아가시기 일주일 전에는 식도에 출혈이 있어서 시술을 받았는데, 그것이 간이 막혀서 피가 식도로 역류된 것이었다는 걸 이 책을 보고 알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간암이었습니다.

아들은 지금 이 세상에서 누구보다도 제일 예쁩니다. 지금까지 봤던 어떤 여자보다도 더 예쁩니다. 지금까지 봤던 어떤 그림, 풍경, 사진 그 무엇보다도 예쁩니다. 아들이 먼저 죽느니, 내가 먼저 죽는게 낫겠다 싶습니다. 이 책에 자식을 먼저 떠나 보낸 사람들의 얘기를 보면서 든 생각입니다. 자식보다 더 한 집착도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부처님이 출가 직전 아들의 출생소식에 ‘라훌라’(장애물)라고 하신 것도 어렴풋이나마 짐작이 됩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한달 전에 같이 산에서 일주일을 지낸 적이 있습니다. 그때 집에서 눈에 띄던 책을 가지고 갔었는데, 거기서 옮겨놓은 것입니다. 오늘 오랜만에 다시 찾아봤습니다. 의지할 곳은 붓다의 가르침이라는 생각입니다. 나무 아미타불.

//////////////////////////////////////////////////////////////////////////////////

절간이야기.22

어느 신도님 부음을 받고 문상을 가니 때마침 늙은 염장이가 염습(殮襲)을 하고 있었는데 그 염습하는 모양이 얼마나 지극한지 마치 어진 의원이 환자를 진맥하듯 시신(屍身) 어느 한 부분도 소홀함이 없었고, 염을 다 마치고는 마지막 포옹이라도 하고 싶다는 눈길을 주고도 모자라 시취(屍臭)까지 맡아보고서야 관뚜껑을 닫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오늘 아침 한솥밥을 먹은 가족이라도 죽으면 시체라 하고 시체라는 말만 들어도 섬찍지근 소름이 끼쳐 곁에 가기를 싫어하는데 생전에 일면식도 없는 생면부지의 타인, 그것도 다 늙고 병들어 죽어 시충(屍蟲)까지 나오는 시신을 그렇게 정성을 다하는 염장이는 처음 보았기에 이제 상제와 복인들에게 인사를 하고 돌아가는 염장이에게 한마디 말을 건네 보았습니다.
 
"처사님은 염을 하신지 몇 해나 되셨는지요?"
"그러시면 많은 사람의 염을 하신 것 같으신테 다른 사람의 염도 오늘처럼 정성을 다 하십니까?"
"별 말씀을 다 하시니... 산사람을 구별이 있지만서도 시신은 남녀노소 쇠붙이같을 것이 없니더. 내 소시에는 돈 땜에 이 짓을 했지만서도 이 짓도 한 해에 몇백 명 하다보니 남모를 정이 들었다 할까유. 정이....... 사람들은 시신을 무섭다고 하지만 나는 외려 산사람이 무섭지 시신을 대하면 내 가족 같기도 하고 어떤 때는 내 자신의 시신을 보는 듯해서......"
 
 이쯤에서 실없는 소리 그만하고 갈 길을 그만 가야겠다는 표정이더니, "내 기왕 말씀이 나온 길이니 시님에게 한 말씀 물어봅시더. 이 짓도 하다보니 시님들도 많이 만나게 되는데, 어떤 시님은 사람 육신을 피고름에 담은 가죽 푸대니, 가죽 주머니니, 욕망 덩어리라 이것을 버렸으니 물에 잠긴 달그림자처럼 영가(靈駕)는 걸림이 없어 좋겠다고 하시기도 하고, 어떤 시님은 허깨비같은 빈 몸이 곧 법신(法身)이라 했던가유? 그렇게 하고, 또 어떤 시님은 왕생극락을 기원하며 염불만 하시는 시님도 있고.... 아무튼 시님들 법문도 각각인데 그것은 그만 두시고요. 참말로 사람이 죽으면 극락지옥이 있니꺼?"
 
흔히 듣는 질문이요 신도들 앞에서도 곧잘 해왔던 질문을 받았지만 이 무구한 염장이 물음 앞에는 그만 은산철벽을 만난듯 동서불명(東西不明)이 되고 말았는데, 염장이는 오히려 공연한 말을 했다는 듯
 
"염을 하다보면 말씀인데유. 이 시신의 혼백은 극락을 갔겠다 저 혼백은 지옥에 갔겠다 이런 느낌이 들 때도 더러 있어 그냥 해본 소리니더. 이것도 넋빠진 소리입니더만 분명한 것은 처음 보는 시신이지만 그 시신을 대하면 이 사람은 청검하게 살다가 마 살았겠다 이 노인은 후덕하게 또는 남 못할 짓만 골라서 하다가 이 시신은 고생만 하다가 또는 누명같은 것을 못 벗고.... 그 뭐라하지유? 느낌이랄까유? 그, 그 사람이 살아온 흔적같은 것이 시신에 남아 있거든요?"
 
하고는 더 말을 하지 않을 듯 딸막딸막하더니, 당신의 그 노기(老氣)로 상대가 더 듣고 싶어하는 마음을 읽었음인지.
 
"극락을 갔겠다는 느낌이 드는 시신은 대강대강해도 맘에 걸리지 않지만 그렇지 않은 죄가 많아 보이는 시신을 대하면 자신이 죄를 지은 것처럼 눈시울이 뜨뜻해지니더. 정이니더, 옛사람 말씀에 사람은 죽을때에는 그 말이 선해지고 새도 죽을 때는 그 울음이 애처롭다 했다니더. 죽을 때는 누구나 다 선해지니더.  ...........  이렇게 갈 것을 그렇게 살았나? 하고 한번 물어보면 영감님 억천년이나 살 것 같아서, 가족들 기쁘게 해주고 싶어서 한번 잘살아 보고 싶어서 그랬니더. 너무 사람울리시면 내 화를 내고 울화통 터져 눈 못 감고 갑니더. 이런 대답을 들으니 아무리 인정머리없는 염쟁이지만 정이 안 들겠니까? 그 돌쟁이도 먹 놓고 징 먹일때는 자기의 혼을 넣고... 땜장이도 그렇다 하는데 오늘 아침 숨을 같이 쉬고 했던 사람이 마지막 가는데유........... 아무런들 이 짓도 정이 없으면 못해 먹을 것인데 그렇듯 시신과 정을 나누다가 보면 어느 사이 그 시신 언저리에 남아 있던 삶의 때라 할까유? 뭐 그런 것이 걷히고 비로소 내 마음도 편안해지거든요. 결국은 내 마음 편안할려고 하는 짓이면서도 남 눈에는 시신을 위하는 것이 풍기니 나도 아직........"
 
하고는, 잠시 나를 이윽히 바라보더니
"시님도 다 아시는 일을 말했니더. 나도 어릴 때 뒷절 노시님이 중될 팔자라했는데 시님들 말씀과 같이 업(業)이라는 것이 남아 있어서...... 이제 나도 갈 일만 남은 시신입니더."
 
이렇게 말끝을 흐리는 것이었습니다.
 
조오현 스님의 연작시 [절간이야기.22]
 출처 : 화두와 실천. 1996 봄 제2호 P 172~173



Posted by 일호 김태경
,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281965.html

내가 전에 어머니한테 말한 적 있었는데, 자기 집값 오르길 바란다.

그런데, 그게 진짜 오른게 되려면, 다른 곳의 집값이 오르지말고, 자기 집값만 올라야한다.

그리고, 그 이익이 실현되려면, 집을 팔아야 한다. 그 집에 계속 살고 있는 한 집값이 오르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

결국, 집값이 오르는 걸 좋아하는 인간들은 다 투기꾼이라고 보면 되겠다.

왜 아니냐?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282212.html
[김형태칼럼] 북한산에 입장료를
김형태칼럼
한겨레
» 김형태 변호사
전세계 국립공원 중에서 단위면적당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북한산국립공원이다. 연 500여만명, 제대로 집계하기도 쉽지 않단다. 공원쪽에 따르면 2007년 4월29일 오전 10시에서 11시까지 한 시간동안 도봉주능선에만 8231명이 매달렸다. 정비석은 ‘산정무한’이란 수필에서 금강산 비로봉의 아낙네 살결보다 흰 자작나무 바다며 마애태자 무덤의 쓸쓸함을 노래했지만 한가했던 옛 시절의 사치일 뿐. 이제 도봉주능선에서 보이는 건 끝없는 사람들의 행렬이다.

몇 해전 삼지연을 거쳐 백두산에 올랐다. 천지를 노랗게 물들이며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른 낙엽송, 침엽수들. 끝없이 이어지는 원시림과 맑은 계곡물 … 사람은 그림자도 없었다. 돌아오면서 걱정이 들었다. 통일이 되면 이런 장엄한 풍광도 끝이겠지. 그런데 요즈음 인터넷 사이트에 가보니 벌써 ‘산악인을 위한 백두산 완전종주’를 내건 관광상품들이 수두룩하다. 지난 겨울 북한산 눈속을 내려오는데 덩치 큰 청년들이 쇠이빨 많이 달린 아이젠으로 바위를 콱콱 찍으며 지나쳤다. 좀 살살 다닐 수 없을까. 도봉산 포대능선의 바위들을 자세히 보면 겨우내 아이젠에 시달려 상처투성이다. 그들은 백두대간 종주가 얼마나 멋진지를 열심히 이야기했다. 백두대간도 이제 앞날이 뻔해 보인다.

작년초 국립공원 입장료를 폐지한 뒤 산들이 몸살을 앓고 있다. 길들이 수없이 새로 생기고 오솔길은 4차선 신작로가 되었다. 2001년에서 2005년 사이 대략 연간 1800만명 안팎이던 전국 25개 국립공원 입장객 수가 최근들어 2400만명 가까이로 늘었다. 북한산은 50%가량 늘었다는 말도 있다. 국회공청회 기록등을 보면 입장료 폐지는 다분히 정치논리에 의해 결정된 것 같다. 환경부등 폐지론자들은 이런 근거를 댔다. ‘국가는 국민들의 환경권과 여가권을 보장할 의무가 있다. 인공시설이 아닌 자연환경에는 수익자 부담원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폐지의 근거로 든 ‘국민을 위하여’는 말 자체로는 멋지다. 그런데 말만 멋지다. 전라도 해남 뻘속 낙지가 어디 사람에게 먹히려고 이 세상에 났다던가. 온갖 길짐승이며 날짐승, 물고기를 칼로 자르고 삶고 튀겨먹으면서 ‘최고예요’, 엄지손가락을 세우는 텔레비전 화면을 보고 있노라면 무섭다. 그리고 어디 저 포대능선 바위가 내 아이젠에 찍히고 부서져 내리려고 저 하늘 중턱에 걸려 있단겐가. 백운대며 만장봉 그리고 그 계곡을 빨갛게 물들이는 진달래 무더기는 ‘국립’, 국가나 국민이 만든 게 아니다. 우리는 그저 바위며 진달래 눈치보면서, 미안해하면서 흔적없이 다녀올 일이다.

환경에는 수익자부담의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잘못되었다. 산에 오르는 ‘국민’들의 여가권을 보장해주기 위해 관리, 보전에 드는 비용을 받지 않으면 그 돈은 세금에서 나간다. 결국 산에 가지 않는 국민들도 산의 관리비용을 부담하라는 것이니 형평에 어긋난다. 산을 있는 모습 그대로 지키려면 적정수준의 입장료를 받아 입산객 숫자를 통제하는 길 밖에 없어 보인다. 요즈음은 평일에도 등산복차림의 중년남자들이 길거리에서 많이 보인다. 간간히 젊은이도 있다. 자본주의 경쟁과 효율에 밀려난 이들에게 산은 고마운 안식처요 소일거리다. 그들에게 입장료를 내라는 게 가혹하긴 하다.

그래도 그 아들·딸들도 도봉산 소롯한 오솔길에 피어오른 노랑제비꽃을 보게 하려면 입장료는 어쩔수 없다. 만경대 바위와 계곡물, 진달래와 산벚을 향해 ‘국민’의 권리를 주장하지 말라. 그런데 ‘완전종주’가 시작된 저 백두산은 또 어찌하나.

김형태 변호사

Posted by 일호 김태경
,



 

지역도서관에 갔다. 혹시 못본 한국영화가 들어왔나 싶어 봤더니, ‘토요상설국악공연이라는 동영상CD가 있었다. 그렇다. 국립국악원의 그 공연이었다.


1994
년에 나는 말년병장이었다. 감옥과 같은 군대생활이니, 읽을 거리도 없었다. 샘터지, 국방일보, 육군지 아니면 전투교범같은 것들. 그것들이라도 아쉬운 마음에 꼼꼼히 봤는데, 육군지에 장병들의 교양을 증진시킬 목적으로 국악에 대한 기사가 났다. 국립국악원의 학예사가 기고한 글이었다. 그 기사로 최소한 한 사병의 교양과 상식은 증진이 되었다. 나는 그 연재가 끝나기 전에 제대를 했고, 민간인이 된 나는 국립국악원으로 편지를 보냈다. 마저 교양과 상식이 증대되고 싶다고.

 

친절한 학예사는 답장과 함께, ‘토요상설공연에 대한 안내까지 보내줬다. 제대후 어디 갈데도 없고 만날 사람도 없던 나는 사당역에서 버스를 내려서 국립국악원까지 걸어갔다. 남부순환도로는 차들의 도로였다. 늦가을 토요일 저녁. 인적없는, 차만이 가득한 길을 걸어가 나는 공연을 봤다. 청중은 대부분, 중고생들. 숙제인지 그들은 학교에 낼 티켓이 필요했다. 나는 티켓을 제출해야할 의무가 없었으므로 그들에게 선선히 내어주었다.

 

공연은 때로 지루했지만, -국악이 대개, 정악은 더 그렇지만- 아주 만족스러웠다. 특히나 대금과 해금의 소리는 가슴깊이 저며왔다. 가난하고 쓸쓸한 청춘에게 훌륭한 친구가 되어주었다. 어느새 10년도 훨씬 전의 일이나, 지금도 선명한 기억은 사물놀이 앉은반의 공연이었다. 서서하는 건 선반이고 앉아서 하는 건 앉은 반이다. 학교운동장에서 학생들이 어설프게 두들기던 꽹과리 장구 북이 아니었다. 10여분 남짓한 시간은 폭풍과도 같았다. 원시적인 타악기로 사람을 몰아가더니, 나중에는 온 몸의 피가 거꾸로 도는 듯 하고, 심장이 쿵쾅쿵쾅 밖으로 튀어 나올 것만 같았다. 끝나고 나오는데 관중석에는 배낭여행객으로 보이는 금발머리의 푸른 눈들이 많았다.

 

한동안 다닌 기억은 나는데, 어쩌다 멀어지게 되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입장료가 올라서였는지, 아니면 학교다니느라, 아니면 그 차들 가득한 남부순환도로를 걷기 싫었는지, 아니면 혼자 가서 혼자 앉아서 혼자 구경하고 혼자 돌아오는 것이 싫었는지. 만나면 헤어지는 법이니까.

 

그러다가, ‘토요상설국악공연을 오늘 도서관에서 만난 것이다. 씨디롬은 모두 4종류였다. 민요와 사물놀이, 그리고 해금 연주가 들어있는 것을 골랐다. 그다지 만족스럽지는 않다. 국악은 어떤 녹음과 재생장치로도 현장을 되살려주지 않는다. 그것은 국악자체가 그러하기 때문이다. 국악은 그 곳에 모인 사람들끼리 연주자와 청중이 같이 연주하고 같이 듣는 음악이다. 악기가 그러하며 노래 또한 그러하다. 그러니, 아무리 기술이 발전한다고 해도 그 녹음과 재생이 완벽할 수는 없다. 아쉽게도 사물놀이는 더욱 실망스러웠다. 반가움 컸기에 더 실망스러웠던 것일까? 하지만, 오랜만에 동창을 만난 것처럼, ‘토요상설공연은 나를 그때의 그곳으로 보내주었다. 공연이 끝나고 보니, 이곳은 그때의 거기가 아니었다.

'소선재에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삶의 끝에 있는 것  (0) 2008.04.26
[펌]욕망의 무한한 힘, 한겨레에서  (0) 2008.04.16
마음에 내리는 비행기  (0) 2008.04.12
라면을 먹는 이에게 축복을  (0) 2008.04.12
만약에 한국에 있었다면  (0) 2008.03.27
Posted by 일호 김태경
,

산이 없는 이 곳, 사방이 지평선이다. 도심을 빼면, 5층건물도 드물다. 이곳 12층에 서면 비행기의 이착륙이 손에 잡힌다. 공항은 도심과 가깝다. 소음. 때문에 비행기는 그 길을 자주 바꾼다. 나누면 줄어드는 법이다.

 

오늘은 비행기가 북쪽에서 온다. 새벽에 내린 비가 개고, 구름은 하늘 뒤로 물러간다. 푸른 하늘, 부시다 못해 시린 하늘이 도시로 다가오고, 비행기는 그 하늘을 난다.

 

오른쪽 하늘 멀리 작은 점이 점점 커진다. 날개가 보이고, 동체와 꼬리날개가 드러난다. 그 덩치가 커지는가 싶더니, 바퀴도 내려와 있다. 햇빛을 받은 색깔은 은빛회색이다. 고요히 비행기는 고도를 낮춘다. 지난 밤의 고단한 비행을 마치고 이제 대지의 품으로 내려간다. 밤하늘과 별빛은 푸른 하늘과 구름이 되었다.

 

비행기는 교회첨탐과 공장의 굴뚝을 지나, 점점 더 커져간다. 커져가는 만큼 느려진다. 그리고는 마친내 가만히 땅에 안긴다. 살포시 내려앉은 비행기는 이제 시야에서 멀어져간다. 공항의 건물들 사이로 멀이 작아지는 수직꼬리날개만이 이제 비행기가 내렸음을, 간 밤의 비행의 끝났음을 말해준다.

 

나는 생각한다. 저 비행기에는 누가 타고 있을까? 비행기에서 내려 이 낯선나라에 들어오는 그들에게 과연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외로움을 두고 내릴 수 있다면 그들의 비행은 좀 더 수월했을텐데. 하지만 우리의 숙명은 그럴 수 없나니, 언젠가 다시 돌아간다 해도 외로움을 두고 떠날 수는 없다. 비행기는 외로움을 내려주지 않기에. 오직 외로운 자만이 비행기를 탈 수 있기에.

Posted by 일호 김태경
,



요즘 라면을 많이 먹는다. 하루 걸러 하나씩. 배가 고파서다. 도시락으로 충분치 않을 때면 가방속의 라면을 먹는다. 물론, 사먹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돈이 든다. 꽤나 비싸다. 이 곳의 음식은 결코 충분하지 않다. 나같은 대식가는 3인분이 필요할 것이다. 게다가 음식이라야 빵 맥도널드 또는 샌드위치같은-,  파스타. 가격도 비싸고 자주 먹을 만한 음식이 아니다. 물론 밥도 있다. 볶음밥, 스시롤로 불리는 김밥도 있다. 하지만 역시 비싸다. 양은 말할 수 없이 적다.

 

희한한 건, 내가 먹고 싶은 것이 비싸게 느껴질 때, 나는 돈이 더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안 든다는 것이다. 내가 돈이 많아서 이것 저것 다 사먹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아니라, 음식값이 싸서 내가 사먹을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자기중심적인가? 내가 이 세상의 기준이라는? 아니다. 나는 안다. 여건과 환경을 내게 맞출 수는 없다. 그래서 나의 선택은 라면이 된다. 고량진미를 위한 돈보다다는 차리리 라면을 택하는 것이다. 가방속의 봉지라면. 스프를 뿌려 우드득 씹어먹는 생라면.

 

배가 고파 라면을 먹는 이들에게 축복이 있을지니. 굶주린 위장과 텅 빈 지갑은 가난한 마음의 표상이므로.

Posted by 일호 김태경
,

만약에 내가 이곳에 오지 않았더라면 나와 아내는 어떤 삶을 살고 있었을까?

나는 여전히 스트레스를 받으며 직장생활을 했을 것이고,

아내 역시 결혼 전 다녔던 회사에 계속 다녔을 것이다.

그리고, 아내와 나는 아마 아파트에서 부모님과는 따로 떨어져 살았을 것이다.

나는 아마 차를 샀겠지?

아버지는, 내가 이곳에 오지 않았더라도 돌아가셨을 것이다.

등산은 계속 다녔을 것이다.

지리산도 가고 금강산도 가고 아마 백두산은 못 갔을 것이다.

한국은 휴가내기가 어렵고, 그 휴가도 며칠 되지도 않는다.

아마 한번쯤을 해외여행을 했을 수도 있겠다.

중국? 아니면, 일본에 짧게.

만약에, 한국에 있었다면 나는 행복했을까?

글쎄, 아마 그러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여기는 행복한가?

글쎄. 대답하기 어려운 문제이다.

행복은 어디에 있느냐가 아니라,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린 것.

알고는 있지만, 하기는 어려운 것.

그것이 삶이고, 그것이 인생이다.

'소선재에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음에 내리는 비행기  (0) 2008.04.12
라면을 먹는 이에게 축복을  (0) 2008.04.12
이민자들은 새로운 사회에 동화될 수 없다  (0) 2008.03.27
결국은 '욕심'이다  (0) 2008.03.27
좌익분자 달라이 라마  (0) 2008.03.25
Posted by 일호 김태경
,


며칠전에 정치성향테스트를 한번 해봤다. 질문중의 하나가 유난히 기억에 남았다.

질문은 "이민자들은 새로운 사회에 동화될 수 없다"였다.

나는 이 질문에 '동의'한다고 했다. 이 질문에 대한 정답(그러니까, 진보로서)은 아무래도 '아니다'가 아닐까 싶다. 내가 만약 20대에 이곳에 와서 20대에 이 질문을 접했다면, 아마 '아니다'라고 했을지 모른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서 보수화되는 것일까?

집으로 오는 길의 전철은 대개 만원이다. 이곳 생활 3년이 넘어서, 나는 사람들의 옷차림만으로 대개 그들의 출신지역을 짐작한다. 이곳 토박이들, 중국, 한국 출신, 또는 중동지방, 인도. 그들은 모두 외모이전에 옷차림부터 차이가 난다.

이곳 토박이들의 옷차림은 대개 호주다운 분위기가 난다. 넥타이에 셔츠도 아주 formal 하다기보다는 좀 날라가는 분위기가 나고, 거기다 낡은 배낭이 어깨에 걸려있다. 젊은 친구들은 대개 낡은 티셔츠 낡은 바지, 그것도 엉덩이가 드러나는 힙합스타일의 반바지에, 내가 제일 싫어하는 쪼리. 여자들은 아주 시원한 상의에 브래지어끈은 언제나 드러나있고, 짧은 치마 바지에 역시 쪼리.

그들이 이민올때 가지고 온 옷들을 입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이곳에서 옷을 사입어도 그들이 입던 스타일의 옷을 고수해서일까? 그들의 식성처럼, 그들의 옷차림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소선재에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라면을 먹는 이에게 축복을  (0) 2008.04.12
만약에 한국에 있었다면  (0) 2008.03.27
결국은 '욕심'이다  (0) 2008.03.27
좌익분자 달라이 라마  (0) 2008.03.25
한창기와 샘이깊은 물  (0) 2008.03.22
Posted by 일호 김태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