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제가 스승님으로 모시던 분이 있었습니다. 한번은 법회가 끝나고 인사를 드리는데, 인자하게 제 손을 잡으시고는 요즘 스트레스가 아주 많네. 아주 힘든가 보지? 중이 되도 그래. 부처가 되기전에는 다 마찬가지야하셨습니다. 직장생활이 아주 힘들때였는데, 감격스럽더군요. 열심히 수행해서 빨랑 부처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뭉게뭉게 피어올랐습니다.

구도의 길에 들어서기전에 저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훌륭한 성직자들, 그러니까, 훌륭한 스님들이나 가톨릭 사제들은 옆에만 가도 그 분의 인격에 감화가 되어서 마음이 평화로워지고, 그런 분들의 인자함에 내 마음도 절로 고요해지는게 아닐까? ~ 나도 그런 사람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래서 앞에 말한대로 그때 스승님으로 모시던 분이 그렇게 말씀해주실때 무척 감격스러웠고, 소위 말하는 스승님에 대한 신심이 절로 우러나왔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뭐랄까? 꼭 그럴것만도 아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예를 들어서 훌륭한 스승님이라는 분이 있어서 찾아갔는데, 그 분이 저의 힘든 삶을 위로하기는 커녕, ‘웃기지 마라고 힐난한다고 했을 때, 그렇다 해도 그것이 훌륭한 스승님이 아니라고는 말 못한다는 거지요. 잘은 모르지만 그냥 그럴 것 같습니다. 많은 선가의 일화도 그렇고. 그러니까, 꼭 인자하다고해서 자상하다고 해서 저를 잘 위로해준다고 해서 그것이 훌륭한 스승이고 올바른 스승이다라고는 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저는 왜 이명박씨가 대통령이 되었는지 궁금해서 한번 생각해봤습니다. 너 부자되게 해줄께에 많은 사람들이 표를 던진 것, 나도 이명박처럼 부자가 되고 싶다가 깔려있겠지요. 그건 그렇고, 이명박씨의 개인적인 장점이랄까, 재주랄까 그런 건 어떤게 있을까 생각해봤습니다.

이명박씨는 어딜 가나 그 마음 잘 안다이런 얘기를 하더군요. 노점상한테 가서도 내가 노점상 해 봐서 잘 안다데모꾼한테 가서도 내가 옛날에 학생운동해봐서 잘 안다죄수한테 가서도 내가 옛날에 감옥가봐서 잘 안다기업가한테 가서는 물론 내가 기업해 봐서 잘 안다’ ‘밥 굶어봐서 잘 안다’ ‘딸 키워봐서 잘 안다  마사지받아봐서 잘 안다’…..

이런 말들이 거짓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본인은 진짜 그럴 거라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그가 아는 한도내에서만 알 뿐이지요. 그리고, 그렇게 네 마음 안다고 하는 것에는 너와 척지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깔려있는게 아닐까 하고 추측해봅니다. 이런 분은 돈이 더 중요하고 환심을 사는게 중요하지, 너와 내가 생각이 다른 건 그다지 중요한게 아닐 겁니다. 아마 황석영씨도 이명박씨의 이런 다정한 마음에 넘어간게 아닐까 싶네요. 사람들은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좋아하니까요.

반대로 노무현은 이와 다른 것 같습니다. 듣는 사람 마음은 별로 상관하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대로 말해버리죠. 여기가 아파요 했을때, 이명박은

그래요? 많이 아프겠군요. 나도 아파본적이 있어서 잘 압니다. 내가 안 아프게 해드리겠습니다인데,

노무현은 거기가 아픈 이유는 이래 이래서입니다. 그렇게 된데에는 당신이 잘못한 것도 있습니다. 앞으로 안 아프려면 당신은 이렇게 해야합니다. 이런 것들은 당신 탓이고 당신이 해결해야합니다. 누구도 당신을 안 아프게 해 줄수 없습니다이런 식으로 말합니다.

전부터 이명박과 노무현이 비슷하다고 하는 얘기들을 많이 하더군요. 그 얘기들을 들을때마다 아닌데 아닌데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 얘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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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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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왕따의 죽음

똑똑했던 바보가 있었습니다. 시골 출신의 가난뱅이. 욕심도 없고 꾸밀 줄도 모르고 생긴 것은 문둥이같았습니다. 똑똑했던 이 바보는 어느 날 믿을 수 없게도 반장이 되었습니다. 반장이 된 이유는 여기서 말하지 않겠습니다. 단지 이전의 반장을 지지하던 다른 고향의 아이들이 있었고, 그리고 이 바보의 똑똑함과 솔직함, 순수함을 알아본 사람들이 있었다고만 말하겠습니다. 도저히 반장이 될 수 없었던 이 바보는 바람을 업고 반장이 되었습니다.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 바보가 반장이 되자 경악한 학생들이 있었습니다. 힘세고 돈많고 성적좋고 잘생기고 집안좋은 학생들입니다. 많은 아이들이 부러워하는 학생들입니다. 이 학생들은 두려워졌습니다. 이 반장은 똑똑했고, 그대로 놓아두다가는 지금까지 자기들 마음대로 하던 것들을 못하게 될 것 같았습니다. 지금까지 자기들이 떡주무르듯 했던 아이들이 이제는 반장편에 서서 기어오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워졌습니다.

이들은 반장을 왕따시키기로 했습니다. 말끝마다 무시했습니다. 하는 말마다 조롱했습니다. 못생겼다고 놀렸습니다. 뭐든지 간에 못하게 했습니다. 그래놓고 무능력하다고 빈정댔습니다. 반장을 자리에서 끌어내리려고 했습니다. 반장이 반장하기 어렵다고 하자 그것조차도 무능력자로 몰아붙였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반장탓이라고 했습니다. 나팔부는 아이들은 힘있는 아이들의 말을 퍼뜨렸습니다. 힘세고 돈많은 아이들을 선망하던 아이들이 이들의 말을 따랐습니다. 그리고, 힘있는 아이들과 나팔에게 길들여지면서 다른 아이들도 어느새 왕따에 동조하게 되었습니다.

반대로 반장에게 실망한 이들도 있었습니다. 이 아이들은 힘세고 돈많다는 이유로 자기들 마음대로 해대는 아이들을 못마땅하게 보는 학생들이었습니다. 똑똑한 이 아이들은 반장이 좀 더 화끈하게 못하는게 불만이었습니다. 이들도 반장을 욕하기 시작했습니다. 많진 않았지만 이 아이들은 목소리가 컸습니다. 물론 여전히 반장을 좋아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소수였습니다. 돈도 없고 힘도 없는 이 아이들은 반장이 왕따당하면서 같이 욕을 먹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반장은 왕따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반장은 똑똑했지만 바보였습니다. 그래서 타협할 줄도 모르고, 굽힐 줄도 모르고 더군다나 계산할 줄도 몰랐습니다. 반장은 투명하게 한다며 자기에게 주어진 힘도 놓아버렸습니다. 사실 있었다 해도 쓸 수도 없었습니다. 반장은 완전히 왕따가 되었고, 임기가 끝나고 반장에서 물러났습니다.

새로 반장이 된 아이는 힘세고 돈많은 아이들편이었습니다. 이 반장은 세상에 타협할 줄 아는 아이였고 돈도 많은 아이였습니다. 힘세고 돈많은 아이들에게 길들여진 학생들은 부자로 만들어주겠다는 말에 새로운 반장에게 표를 몰아줬습니다.

반장이 바뀌고 나자, 힘세고 돈많고 잘생기고 집안좋은 아이들은 왕따가 되버린 전임 반장을 더욱 더 궁지에 몰아넣었습니다. 혹시라도 다시 또 나설까봐, 그래서 자기들 마음대로 하는데 방해될까봐 완전히 싹수를 잘라버리고 싶었던 것입니다. 왕따가 되버린 반장은 책이나 읽으며 살고 싶었지만, 자기를 완전히 매장시켜버리려는 움직임에 숨을 쉴 수 없게 되었습니다.

왕따가 된 것도 힘든데, 올가미가 걸려오자 더욱 더 힘들어졌습니다. 이대로 있다가는 완전히 매장되고 자기의 삶은 아무 의미가 없게 되버릴 것 같았습니다. 반장은 자기가 살 수 있는 길을 찾았습니다. 그것은 자기가 죽는 것이었습니다. 자기 몸을 죽임으로서 인을 이루고자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창문밖으로 뛰어내렸습니다.

왕따가 되어버린 전임 반장이 죽자, 학생들은 크게 놀랐습니다. 많은 학생들은 혹시 자기가 죽인 게 아닌가 하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힘들지는 몰랐습니다. 그냥 반장이니까, 남들이 욕하길래 그냥 나도 따라한건데 그렇게 죽어버리다니. 다들 따돌리길래 나도 그런건데, 미안해졌습니다. 그러고보니 전임반장이 나한테 잘못한 것도 별로 없습니다. 괜히 모르고 그랬나 싶습니다. 왕따의 죽음을 겪고 보니, 미안한 생각이 더해지고 내가 잘못한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힘세고 돈많은 학생들도 조금 놀랐습니다. 미안할 건 없지만 혹시나 다른 학생들이 기어오르는 계기가 되지나 않을까 신경이 쓰입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조금 살살할 걸 그랬나싶기도 하지만, 어차피 조금만 지나면 괜찮아질겁니다. 나팔도 전부 우리 편인데다가, 아이들도 모두들 자기처럼 되고 싶어합니다. 지금 미안해하고 슬퍼하는 아이들도 조금 있으면 다시 또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당분간만 조금 몸 사리면 됩니다.

전임반장에게 비판을 했던 아이들도 놀랐습니다. 다른 반장과는 달리 착한 아이였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자기도 왕따를 시키긴 했지만, 별로 잘못했다는 생각은 없습니다. 착한 아이가 죽었다고 해서 내 말이 틀린 건 아니기 때문입니다.

왕따를 좋아했던 아이들은 충격에 빠졌습니다. 너무나 슬퍼졌고, 화가 났습니다. 그를 사랑했고, 그가 있어서 행복했기에 그를 지켜주지못해서 미안해졌습니다. 한편으로는 분노에 어쩔 줄을 모르게 되었습니다.

얘기는 여기서 끝납니다. 어떻게 이어질지는 모릅니다. 많은 이들이 바보였던 왕따의 삶을 선택한다면, 그 왕따는 더 이상 왕따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조차도 제 욕심일지 모릅니다. 바보였던 왕따의 죽음은 잊혀질 것입니다.

당신은 이 아이들 중 누구입니까? 나는 그 왕따였던 아이를 아주 좋아한 아이였습니다. 그렇게 살기가 쉽지 않은 세상에서 바보처럼 왕따의 삶을 살아간 그 아이를 아주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나도 그 아이처럼 살리라, 그 아이를 보면서 다짐했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가 죽었습니다. 겁많은 나는 두려워집니다. 아무래도 바보였던 왕따처럼 살지 못할 것 같습니다.

 

 


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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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대통령으로 뽑지 말았어야 했다.

가끔 일간지 하단 광고에 대통령에 대한 탄원이 실리던 시절이 있었다. 그 내용은 시국의 이슈에서부터 이해가 엇갈리는 개인의 억울함까지 다양했다. 내용을 불문하고 그 주장의 배경에는 대통령이 결심하면 문제가 해결되리라는 생각이 깔려있다.

언젠가부터 이런 광고는 줄어들기 시작했고, 노무현 정부들어서는 이런 신문광고는 자취를 감추었다. 대통령 말이 먹히지도 않는 세상인데, 대통령한테 탄원해 봤자가 된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놓치는 것이 있다.

전제군주시절에도 임금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사회라는 것은 그것이 아무리 봉건적이라해도 사람들간의 관계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한 개인이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 세상일이고 그것이 사회다. 박정희나 전두환같은 폭압의 시대에도, 일제 식민지 시절에도 어느 정도의 회유와 타협은 불가피했다. 북한같은 곳에서도 김정일이 자기 생각대로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하물며, 노무현같은 비주류정권은 말할 것도 없다. 노무현은 퇴임후 입법부를 눈여겨 보아야한다고 말했다. 행정부의 장악은 말 그대로 집행력만 가질 뿐이지, 끌고 나가는 힘은 입법부에 있다는 말이다. 대통령이 결심하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생각은 현실을 보지 못하는 착각과 무지의 산물이다.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고 난 후 지지자들이 떨어져나가기 시작했다. 자신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대통령때문이었다. 많은 이들이 대통령에게 욕을 던지고 비난하기 시작했다. 그럼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자신의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못한 대통령에게 있는가? 아니면 충족될 수 없었던 자신의 기대에 있는가? 노무현은 애시당초 그 기대를 충족시켜줄 수가 없었다. 그것은 현실의 한계이기도 하고, 사람들의 어리석음때문이기도 하다. 그것을 노무현의 배신과 무능이라고 한다면, 애시당초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뽑지 말았어야한다.

그에게 등을 돌렸던 사람들은 처음부터 노무현에게 표를 주지 말았어야 했다. 당신들은 어리석었다. 보수야당인 민주당의 대통령후보였던 이에게 무엇을 기대할 것인가? 국민의 다수가 반동인 나라, 진보신당의 득표율이 겨우 3%인 나라에서, 종부세도입가지고 과세대상이 되지도 않는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죽어라고 반대하는 나라에서 그 무슨 진보정책을 기대할 수 있나. 진보진영은 노무현을 뽑지 말았어야 했다. 전라도사람들도 햇볕정책을 북한 퍼주기로 생각하는 나라, 미국이라면 여전히 구세주로 생각하는 나라에서 대통령에게 모든 것을 뒤집어씌운 당신들은, 노무현의 배신을 말하기 전에 현실을 무시했던 자신의 무지를 반성해야한다. 편한대로 지지해놓고 배신했다고 욕한 자신의 무지를 반성해야 한다.

그가 무능하다고 등을 돌린 사람들도 반성해야 한다. 노무현의 무능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가? 수구언론과의 적대관계? 기존 정치행태를 따르지 않는 민주적, 탈권위적이고 분권지향적인 태도? 집권여당내에서조차도 지지기반이 없는 탈계파정치? 강한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 약한 태도? 안타깝게도 이런 이유는 그가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고 지지했던 이유들이고, 힘이 없던 그가 되어서는 안 될 대통령이 된 이유였다. 당신은 힘없는 대통령에게 힘을 주기는 커녕 무능하다는 이유로 그를 저버렸다. 당신은 그를 뽑지 말았어야 했고, 당신은 당신의 무책임에 반성해야한다.

마지막으로 나 역시 반성한다. 원칙과 정의가 옳다고 그래서 결국은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는 그의 말에 나 역시 그를 지지했다. 나는 어리석었다. 세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나는 그에게 말렸어야했다. 온갖 힘을 다해서 말렸어야했다. 그리고 그가 대통령이 된 것을 기뻐하지 말았어야했다. 그를 통해서 꿈을 꾸지 말았어야 했다. 원칙과 정의가 승리한다는 것이 결국은 허황된 꿈이었음을, 사람들의 하염없는 욕심앞에서 무너진다는 것을 나는 몰랐었다. 나는 어리석었다. 그 앞에 용서를 빈다.

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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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지 못하고 말한다. 부탁한다. 이제 그만해라.

 

언론에 부탁한다. 이제 그만해라. 이제 제발 그만 취재해라.

 

취재해봤자 더이상 나올 기사거리도 없는데, 없는 기사거리 만들어내느라 고생하지 말고 이제 그만해라. 더이상 니들입에서 오르내리는 거 보고 싶지 않다.

 

시골마을에 조문가는 사람들, 그만해라. 눈물이 절로 나는 사람들 빼고는 가지 마라. 사람구경하러 거기까지 가야겠냐? 이제 그만 해라.

 

국민장해야한다고 하는 사람들, 이제 그만해라. 시청앞광장 열어야한다는 사람들, 그만해라. 국민장 정말 반대한다. 영결식 서울에서 왜 하나? 왜? 관습헌법상 서울이 수도라 거기서 해야 하나? 제발 좀 그만해라. 개나소나 어중이떠중이한테 끝까지 놀림감되고 싶지 않다. 명계남이 말한대로 가족장으로 해야한다. 평생 동지들, 친구들, 그리고, 설문조사라도 해서 끝까지 지지했던 사람들, 진정 사랑하고 좋아했던 사람들,  그가 있어서 행복했던 사람들, 그리고 그가 없어서 눈물이 하염없이 나오는 사람들만 참석하는 장례식이 되어야한다. 그리고 국립묘지 가면 안 된다. 독재자들과 죽어서도 옆에 있어야 하는 거 생각만해도 끔찍하다.

 

노사모는 구역질나고, 친노는 꼴보기도 싫은 사람도 입 다물어라. 그 사람들이 그 분에게 그나마 끝까지 힘이 되었던 사람들이다. 그게 싫으면 그 분도 싫어해야 말이 맞다.

 

당신이 떠나고 난 뒤에야 소중함을 알았다며, 이런 저런 헛소리 늘어놓는 인간들, 이제 제발 그만해라. 역겹다. 니들이 언제 지지하기라도 했냐? 그리고 니들이 뭔 생각이라도 있었냐? 나팔들이 나팔부는대로 생각도 없이 그런가 보다 한 무뇌아들. 니들 보다는 차라리 한결같이 비판하는 인간들이 더 낫다.

 

그분에게 실망한 사람들, 난 당신들에게 뭐라고 하는게 아니다. 나도 입장바꿔 생각해본다. 만약에 그 분이 임기중에 조선일보에 머리를 조아렸으면 어땠을까? 하고. 나도 어쩌면 돌아섰을것이다. 그러니, 당신들이 실망하고 돌아선 것도 그럴 수 있다고 본다. 김규항이나 박노자같은 이는 예의를 갖추었을뿐, 이제 와서 딴소리하지는 않더라. 인간에 대한 예의와 단지 돌아가셨다는 이유로 말 바꿔서 칭송하는 그런 헛짓거리와는 다르다. 그러니 진보신당이나 민주노동당이나 니네들도 그냥 가만히 있어라. 아무말 말던가, 아니면 지금까지 하던대로 해라. 민주당 니들은 말할 나위도 없다. 니들은 입이 백개라도 할 말이 없다.

 

당신들이 싫어했으면 싫어한대로, 지지하지 않았으면 지지하지 않았던 대로 지금도 그렇게 하라는 거다. '사람이 담백해야지' 그 분은 여기서 말 다르고 저기서 말 다른 거 아주 싫어하셨다. 이제와서 국부니, 그래도 일국의 대통령이었는데 하는 소리들, 다 쓸데없다. 언제 그 분이 그런거 따진 적 있나? 내가 대통령인데 하는 생각이 없던 분이다. 내가 이 나라의 국부고, 내 밑의 백성들이니 내가 어루만져주겠다는 그런 생각이 없던 분이다. 국민이 대통령이었던 분이다. 그러니, 그동안 싫어했으면 지금도 싫어해라. 괜히 지금와서 꼴값떨지 말고 그냥 무한도전이나 보면서 낄낄거려도 된다.

 

덧붙여 조중동, 너희들도 그만해라. 좋으면 좋은대로 티내도 된다. 괜히 어쩌고 저쩌고 맘에도 없는 애도니, 명복이니 하는 소리 안해도 된다. 말 안해도 안다. 그러니, 맘에 없는 소리하느라 힘들게 살지 마라. 보기도 안쓰럽고 구역질만 나온다.

 

마지막으로, 한나라당, 견찰, 독재자 딸 다 포함해서, MB정부에 말하는데, 니들 하고 싶은대로 해도 된다. 아무 탈 없다. 니들도 그렇고 니들 대장도 겁많은 거 아는데, 겁낼 필요 없다. 이 사람들 단지 며칠 지나면, 다시 또 지들 집값 오르나 안 오르나 걱정할 것이고, 지들 자식 1등시킬 생각만 할 것이며, 어떻게 하면 돈 많이 벌어서 자기 한 몸, 자기 자식 잘 살 수 있나 이런 생각으로만 살 사람들이다. 그래서 니들이 지금까지 잘 사는 것이다. 그러니, 촛불같은 거 겁낼 필요없다. 니들 꼴리는 대로 하고 니들 마음대로 하고 싶은대로 하며 살아라.

 

오늘 학교에 갔다가 유튜브로 동영상을 봤다. 파란 눈, 검은 피부 아이들 속에서 손수건이 젖도록 소리죽여 울었다. 슬픔에 잠기면 더 이상 분노할 힘도 없다. 그냥 무서울 뿐이다. 그러니 제발 그만 좀 해라. 제발 좀 그만 해라.

 

 

노무현 전 대통령을 보내며 / 도종환
날은 흐리고 바람도 없는데 찔레꽃 하얀 잎이 소리 없이 지는 오월입니다. 부엉이 바위를 향해 걸어 올라가던 산길에도 찔레꽃은 지고 있었을까요? 야생의 들찔레같이 살다 간 당신을 생각하니 나도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고 싶어집니다.

당신은 비록 이 나라의 대통령이었지만 철저한 비주류였습니다. 가난해서 상고를 졸업했던 비주류. 죽어라 공부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믿고 고시에 합격했지만 거기서도 역시 주류는 아니었습니다. 이 나라에는 최루탄 터지는 거리에서 목이 터져라 함성을 지르고 재야로 살아도 거기 역시 주류가 있고 비주류가 있습니다. 야당 국회의원을 해도 주류가 있고 비주류가 있으며, 대통령을 해도 비주류 대통령이 있는 나라에서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그런 당신이 대통령이 되어 지방군수 출신을 행자부 장관에 임명하고 여성에게 법무부 장관이나 총리를 맡기는 걸 보면서 이 나라 주류들은 속이 많이 상했을 겁니다. 그 자체가 재벌 권력이며 자기가 권력으로 존재하는 것 자체가 존재의 이유인 주류 신문과 맞짱을 뜨려 하는 모습이 가소로웠을 겁니다. 서울만이 아니라 지방도 균형 있게 발전시켜야 한다고 했을 때 중심에 있는 이들은 마땅치 않았을 겁니다. 부자들이 세금을 더 내야 한다고 말하는 걸 보고는 반드시 내쫓지 않으면 안 된다고 확신하였을 겁니다. 틈만 나면 지역중심 정치구조를 혁파하겠다고 하고, 청렴하게 살겠다고 하는 걸 보며 세상을 몰라도 한참 모른다고 비웃었을 겁니다.

속물에 의한, 속물을 위한, 속물의 정치, 스노보크라시가 정치의 본질이라는 걸 현 정권은 얼마나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습니까? 그게 정치이고 그래서 권력을 잡으려고 하는 게 아니냐고 지금 얼마나 리얼하게 보여주고 있습니까? 그런 권력을 당신은 권력기관에 하나씩 돌려주었습니다. 사람들은 그걸 보고 참 바보 같다고 했습니다.

당신은 사회를 민주화하는 일에는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지만, 경제를 민주화하는 일에는 능력이 부족하여 자유화의 길로 가게 내버려 두면서 현실 정치의 한계를 절감하였을 겁니다. 현실적인 면에서는 그것이 우리 전체의 한계라는 걸 받아들이기보다는 당신에 대한 실망스러움이 더 컸습니다. 현실 정치와 일정한 거리를 둔 자리에 서 있는 나는 관전평이나 하고 편하게 욕이나 하면서 몇 년을 보냈습니다.

전직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고 간 사회는 분명히 이성적인 사회가 아닙니다. 그러나 주류의 존재의 이유는 합리적이거나 이성적인 사회,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드는 것 이런 따위가 아닙니다. 그건 정치를 모르는 순진한 비주류들이나 하는 소리입니다. 주류들이 당혹스러워하는 것은 당신이 더 철저히 놀림거리가 되지 않고 눈앞에서 순식간에 사라진 것입니다. 당신을 죽이면 주류 정치인이 다 죽는다는 경험을 탄핵사건 때 한 적이 있어서 잠시 눈치를 보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다 여론의 흐름을 천천히 다른 곳으로 돌리기 시작할 것이고 당신의 모습을 지워버리려고 할 것입니다.

시골로 내려와 농사짓고 동네 뒷산 지키는 환경운동 하면서 평범하게 살고 싶은 꿈을 이루지 못하고 여기서 당신의 생이 끝나고 만 것이 가슴 아픕니다. 이 나라 역사가 잘못되었다면 그것은 주류가 이끌어 왔기 때문입니다. 이 나라 역사에 그래도 덜 부끄러운 기록들이 있다면 그것은 비주류가 목숨을 걸고 저항하며 만들어낸 순간들이 있어서입니다. 당신이 떠난 뒤에도 당신이 추구하고자 했던 가치는 여전히 남아 다른 바보들이 그걸 실현하고자 또 매달리게 될 것입니다.

바보 같은 당신, 당신이 부엉이 바위 근처 어디에서 밤이면 부엉이처럼 눈을 뜨고 어두운 세상을 지켜보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요, 주류들이 모여 있는 국가원수 묘역으로 가지 말고 봉하마을 뒷산에 머무시기 바랍니다. 그게 당신에게 더 어울립니다. 작은 묘비 하나로 있는 게 더 보기 좋습니다. 더러운 땅은 더러운 이들에게 맡기고 영면하시길 바랍니다.

도종환/시인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57067.html

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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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은 임기내내 지지율이 형편없었다. 임기 종반즈음에는 겨우 10%를 넘을 정도였다. 노무현은 이쪽에서는 친북좌파로 욕을 먹고, 저쪽에서는 신자유주의자로 욕을 먹었다. 모든게 노무현탓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그리고, 임기를 마친지 1 3개월. 그는 벼랑에서의 투신으로 인생을 마감했다. 나는 이 노무현 최후의 지지자 10%가 어쩌면 이 시대 진정한 소수자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우리 사회의 마이너리티의 전범이라 할 만했다. 가난한 집안에 고졸의 학력, 막노동경력과 사병으로서의 현역 복무. 흔하디 흔한 우리네 서민의 삶이다. 사법연수원 시절 동료 연수생들과는 달리 혼자 잠바를 입고 있는 모습은 마이너리티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듯 하다. 그의 마이너리티는 변호사가 되고 나서도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귀족적인 삶을 살 수 있었음에도 그는 인권변호사로서 거리의 민주투사가 되었고, 정의와 원칙을 위해 싸웠다.

그의 소수성은 정치인생에서 더욱 더 두드러진다. 정치인생에서 그는 대부분 소수파였고 때로는 혼자이기도 했다. 의도된 바도 있었고, 때로는 세상과의 타협을 거부한 결과이기도 했다. YS 3당합당을 했을때 그는 가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그에게는 YS의 회유마저도 없었다. 그는 YS를 따르지 않았다고 경상도에서 버림받았다. 그 후 그의 입지는 언제나 소수정당이거나, 1야당이었다해도 언제나 힘없는 소수였다. 경상도출신이라는 것이 이유였다. 그는 대통령후보가 된 다음에도 마이너리티의 신세를 톡톡히 맛봐야 했다. 지원은 커녕 안팎의 압력에 시달린 것이다. 나중에는 그 정당으로부터 탄핵을 소추받기까지 했다.

대통령이라는 자리에 올라서도 마이너리티의 모습은 사라지지 않았다. 소수파정권에게 주위환경은 적대적이었고, 귀족언론이나 재벌들은 그를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어느 누구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지지를 잃기 시작했다. 부자들에게서는 자신들의 돈을 뺐아간다고 버림받았고, 서민들에게서는 서민들의 말을 쓴다는 이유로 버림받았다. 진보진영에서는 왼쪽 깜박이를 켜고 오른쪽으로 간다고 욕을 먹었고, 보수진영에서는 좌파가 나라망친다고 욕을 먹었다. 귀족언론과 재벌귀족들은 미천한 출신이 대통령이라는 것을 봐줄 수가 없었다.

그는 대통령이 되어서는 아니 되었던 사람이다. 그와 같은 마이너리티가 대통령이 된 순간 이미 그의 비극은 예정됐던 것이다. 마이너리티는 감히 꿈도 꿀 수 없는 대한민국 제1시민*이라는 자리에 올라선 순간, 이 사회의 메인스트림이라 자부하는 파워엘리트들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그를 죽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력해진 그는 다시 또 옛 동지들에게서도 버림받았다. 그리고, 여기에 우리들 모두가 방관자로 팔짱을 끼고 있었다.

놀라운 사실은, 우리들 대부분이 사실은 힘도 없고 별로 가진 것도 없는 노무현과 비슷한 마이너리티라는 것이다. 우리들 마이너리티들은 노무현이라는 소수가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면서도, 그것이 우리 자신의 일임을 알지 못한다. 우리가 마이너리티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싫어서였을까? 아니면 노무현의 그 당당함 - 소수자임에도 언제나 당당하고 강한자에게도 굽힘이 없었던 노무현의 당당함 - 을 가지지 못한 우리들의 비굴함때문이었을까? 노무현 최후의 지지자 10%는 어쩌면 이런 마이너리티의 당당함을 사랑하고 이해한 진정한 마이너리티가 아니었을까.




2002
12 29일 오후 6시에 감격에 울었던 노무현 최후의 지지자가, 동지를 잃은 하루 뒤 비탄에 울며 쓰다.


* 고종석의 표현이다.
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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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은 임기내내 지지율이 형편없었다. 임기 중반을 지나서는 겨우 10%를 넘을 정도였다. 노무현은 이쪽에서는 친북좌파로 욕을 먹고, 저쪽에서는 신자유주의자로 욕을 먹었다. 모든게 노무현탓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그리고, 임기를 마친지 1 3개월. 그는 벼랑에서의 투신으로 인생을 마감했다.

그는 우리 사회의 마이너리티의 전범이라 할 만했다. 가난한 집안에 고졸의 학력, 막노동경력과 사병으로서의 현역 복무. 흔하디 흔한 우리네 서민의 삶이다. 사법연수원 시절 동료 연수생들과는 달리 혼자 잠바를 입고 있는 모습은 마이너리티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듯 하다. 그의 마이너리티는 변호사가 되고 나서도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귀족적인 삶을 살 수 있었음에도 그는 인권변호사로서 거리의 민주투사가 되었고, 정의와 원칙을 위해 싸웠다.

그의 소수성은 정치인생에서 더욱 더 두드러진다. 정치인생에서 그는 대부분 소수였고 때로는 혼자이기도 했다. 의도된 바도 있었고, 때로는 세상과의 타협을 거부한 결과이기도 했다. YS 3당합당을 했을때 그는 가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그에게는 YS의 회유마저도 없었다. 그는 YS를 따르지 않았다고 경상도에서 버림받았다. 그 후 그의 입지는 언제나 소수정당이거나, 1야당이었다해도 언제나 소수파였다. 경상도출신이라는 것이 이유였다. 그는 대통령후보가 된 다음에도 마이너리티의 신세를 톡톡히 맛봐야 했다. 지원은 커녕 안팎의 압력에 시달린 것이다. 나중에는 그 정당으로부터 탄핵을 소추받기까지 했다.

대통령이라는 자리에 올라서도 마이너리티의 모습은 사라지지 않았다. 주위환경은 적대적이었고, 귀족언론이나 재벌들은 그를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어느 누구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지지를 잃기 시작했다. 부자들에게서는 자신들의 돈을 뺐아간다고 버림받았고, 서민들에게서는 서민들의 말을 쓴다는 이유로 버림받았다. 진보진영에서는 왼쪽 깜박이를 켜고 오른쪽으로 간다고 욕을 먹었고, 보수진영에서는 좌파가 나라망친다고 욕을 먹었다. 귀족언론과 재벌귀족들은 미천한 출신이 대통령이라는 것을 봐줄 수가 없었다.

그는 대통령이 되어서는 아니 되었던 사람이다. 그와 같은 마이너리티가 대통령이 된 순간 이미 그의 비극은 예정됐던 것이다. 마이너리티는 감히 꿈도 꿀 수 없는 대한민국 제1시민이라는 자리에 올라선 순간, 이 사회의 메인스트림이라 자부하는 파워엘리트들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그를 죽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력해진 그는 다시 또 옛 동지들에게서도 버림받았다. 그리고, 여기에 우리들 모두가 방관자로 팔짱을 끼고 있었다. 여기에 노무현의 죄가 있다면, (유권자, 국민을 포함해서) 그 어느 누구에게도 고개를 수그린채 잘 봐달라, 나도 끼어달라고 한 적이 없는 그 자신감뿐일 것이다.

놀라운 사실은, 우리들 대부분이 사실은 힘도 없고 별로 가진 것도 없는 노무현과 비슷한 마이너리티라는 것이다. 우리들 마이너리티들은 노무현이라는 소수가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면서도, 그것이 우리 자신의 일임을 알지 못한다. 우리가 마이너리티라는 초라한 사실을 받아들이기 싫은 것인지? 아니면 노무현의 그 당당함, 소수의 당당함을 우리가 가지고 있지 못한 비굴함때문인지?

 

2002 12 29일 오후 6시에 감격에 울었던 이가, 2009 5 23일 오전에 비탄에 울며 쓰다.


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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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 함부로 글 쓸일도 아닌 것 같다. 자주 가는 게시판이 있어서, 댓글을 좀 길게 썼는데, 누가 자기와 너무 비슷하다며, 긴 쪽지를 보내왔다. 자기도 살기가 너무 많다고. 이제 이런 얘기들은 옛날얘기가 되버렸는데, 지금의 자기와 비슷하다며 보낸 쪽지는 섬뜩하게 생각되었다. 써놓고 보니, 내가 좀 오해의 소지가 가게 써 놓은 듯도 하다. 지금의 나를 보는 게 아니라, 고등학교때의 나, 군대때의 나라고 했어야 하는데. 인터넷에서 나를 드러내는 건 조심해야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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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2년쯤 되었나요? 자기가 다니던 미국의 한 대학교에서 사람들을 총으로 쏴 죽이고 자기도 목숨을 끊은 조승희라는 청년이 있습니다. 이후에 보도된 내용을 보면서, 꼭 저를 보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꼭 고등학교때의 저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라고 썼어야 한다!!!) 그때의 저는 별 문제없는 조용한 아이였지만, 머리속에서는 맨날 등교하는 학생들과 선생들을 쏴 죽이는 생각만 하고 있었습니다. 어떤 총이 그러니까, MP5A5와 M60중에 어떤 총이 더 많은 학생들과 선생들을 죽일 수 있는가 하는게 저의 유일한 화두였습니다. ^^ 안타깝게도 한국은 새총말고는 고등학생이 살 수 있는 총이 없어서 제 계획은 불발로 끝났습니다만.
 
몇년전에 전방GP에서인가 한 청년이 여러명 죽인 사건이 있었습니다. 참 또 저를 보는 것 같더군요.(참 또 군대때의 저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라고 썼어야 한다!!!) 그 GP에서는 구타는 없었던 것 같지만, 꼭 구타가 아니라 말로 갈구는 것도 사람 돌아버리게 할 수 있거든요. 절 갈구던 고참, 지금 생각해보면 그 사람도 제가 얼마나 미웠을까 싶지만, 그 고참은 저를 패기도 많이 팼지만, 그 인간이 말하는 걸 듣노라면 참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복받쳐서 이 인간을 정말 죽이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지요. 안타깝게도 저는 공포탄만 휴대가능하던 후방이어서 ^^
 
저는 대학 1학년때 마음의 평화를 얻고 싶어서 성당에 갔었습니다. 교리공부도 열심히 하고 피정도 갔다 오고 어쩌고 저쩌고 하다가 별로 믿기지는 않았지만 어쨌거나 개근한 것도 아깝고 사흗날에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신다고 아멘하고서 새로운 이름도 받았더랬습니다. 그런데 왠걸 새로 태어난지 한달만에 명리학공부를 하게 되었고, 서른쯤 되던때에는 불교책을 보다가 할렐루야하고 불자가 되었고, 같이 명리학 공부하던 후배는 언제부턴가 중이 된다고 하더니, 나중에 제가 스승으로 따르던 분한테 같이 가고 난 다음에는 진짜 중이 되었고, 어쩌다보니 저는 직장도 때려치우고, 길거리오뎅도 안 팔고 치킨배달도 안 되는 곳에 와서 살고 있습니다.
 
명리학공부하면서 느낀 건데, 사람은 지 팔자대로 사는 구나, 저는 어렸을때부터 돈 얼마 벌지 그런 건 별로 관심이 없고(여자는 좀 관심이 있었습니다만 ^^) 이 인간은 왜 이런 인간인가 하는 것이 궁금했었거든요. 사주팔자란게 자세히는 알 수 없어도, 이 사람이 어떻게 생겨먹은 사람이다라는 건 대충 알려주는 게 있어서, 가만 보니 게으른 사람은 게으르니까 게으른 거고, 똑똑한 사람은 똑똑하니까 똑똑한 거지, 지가 똑똑하고 싶어서 또는 게으르고 싶어서 그렇게 된게 아닌 것 같더라구요. (전에 보니 여기 상담게시판에 누가 사주물어보던데, 이제 저는 사주 안 봅니다. ^^)
 
여기 와서 누가 왜 여기 왔냐고 하면, 농반 진반으로 술 못 먹어서 왔다고, 그렇게 술먹기가 고역이었는데, 여기 와서 포도주랑 체리를 같이 먹어보니까 오~ 괜찮네. 이젠 와인도 소주잔으로 한 잔정도는 마실 정도가 되었습니다. 하기사 예전엔 회를 무슨 맛으로 먹남 그랬는데, 이젠 없어서 못 먹지요. 기억에 오쇼가 육식은 아름다운 짓이 아니다라고 한 것 같은데, 회 맛있는데.....쩝~
 
사람들하고 얘기를 하면, 글쎄 '너가 그런 사람이니까 그런거지'라고 얘기를 해주고 싶다가도, 듣는 자는 말하는 자의 얘기를, 말하는 자의 얘기가 아니라, 듣는 자의 얘기로 들으니, 말하는 자의 얘기가 듣는 자에 가서 닿지를 않겠더라고요.
 
조승희랑 군대얘기는 삼청교육대 얘기듣다 보니 생각이 났고, 성당갔다가 10년만에 불자된 얘기는, 절이 당집하고 비슷하게 여겨지던 시절에 대학생불자가 되신 미래의 오쇼제자가 계셔서, 저도 한번 보태 봤고요. 명리학 얘기는 '니가 사는게 사실은 니가 사는게 아니다'가 혹시 아닐까 싶어서 해 봤고요, 포도주 얘기는 그 미래의 오쇼제자분께서 복분자술 좋아하신다고 한게 생각이 나서 한번 해 봤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얘기는, 어딜 가도 듣는 자가 말하는 자의 얘기를 안 들어주려고 해서, 이곳에서 한번 얘기해보았습니다. 정신없으셨다면 죄송합니다. ^^
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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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부당한 노동행위가 있다. 사장이 직원들을 혹사시킨다. 휴일도 없고 임금도 제대로 주지 않는다. 엉뚱한 물건 파는 일까지 떠 넘긴다. 그리고 목표량을 채우지 못하면 자진해서 사표를 쓴다는 내용이 근로계약서에 있다. 이런 내용을 바깥에는 발설하지 않겠다는 각서는 덤이다. 사회적 약자인 노동자는 거절할 수가 없다.

여기에 대응하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모든 직원들이 합심해서 부당한 요구를 거절하는 것이다. 이것이 가능하도록 헌법에 노동3권이 보장되어 있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일부는 사장편으로 돌아선다. 사장이 회유했기 때문이다. 너는 승진시켜주겠다고. 너는 월급을 올려주겠다고. 또 일부가 사장편으로 돌아선다. 사장이 협박했기 때문이다. 너 해고시키겠다고. 마저 나머지가 사장에게 항복한다. 세상은 원래 그런거라고.

모두의 행복을 위해서는 노조의 승리가, 그리고 노조의 승리를 위해서는 모두의 합심이 필요하다. 승진? 필요없다. 해고? 할테면 해라. 유혹에 굴하지 않고 협박에 흔들리지 않으며 폭력에는 연대로 맞선다면 도대체 노조가 승리하지 않을 이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그렇다면, 외부의 적은 더이상 적이 될 수가 없다. 그러고 보니, 외부의 적은 내 안의 약점, 내 안에 적이 있으므로 해서 비로소 적이 되는 것이었다.

김규항은 말한다(한겨레의 칼럼). '세상이 변혁되려면 사회 구조도 변혁되어야 하고 나도 변혁되어야 한다.' 따라서, '적은 둘이라는 것, 적은 내 밖에만 있는 게 아니라 내 안에도 있다는 것을 정직하게 인정하고, 내 밖의 적과 싸우면서 동시에 내 안의 적과' 싸워야 한다고 말이다. 매체에서 이렇게 스스로에 대한 성찰을 말하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김규항이 빛나는 지점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내 안의 적과 내 밖의 적을 동시에 싸울 수는 없어 보인다. 왜냐하면 내 밖의 적은 내 안에 있는 적이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내안의 적이 없어지면 내 밖의 적도 없어진다는 것을, 이것을 모르고 사람들은 오늘도 자기 자신이 적인지 모른체 또 다른 자기 자신과 싸우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참된 영성가라면 바깥의 적보다 먼저 자신의 적과 만나야 할 것이다. 죽이던지 아니면 죽던지간에. 이것이 영성의 시대, 진정한 혁명가의 길이 아닐까.




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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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책은 명확히 보인다. 세금을 많이 걷어야 한다. 확대된 세수로 정부지출을 늘려야한다. 정부지출은 공공기관 일자리 창출과 복지에 해당되어야함은 물론이다. 그래서 자영업자 비중을 줄여야한다.
그리고, 제발 일 좀 덜해라. 도대체 얼마나 더 잘살겠다고. 한번 세상바깥으로 나가봐라. 한국사람들 사는 건 세계최고다.
수치는 말한다. 한국은 잘 산다고. 하지만, 피곤하게 산다고.

노동시간 OECD 최고 ‘2009 통계연보’ 공개… 여성 자살률 30개 회원국 평균의 2배경향신문 | 오관철기자 | 입력 2009.04.06 18:53
 우리나라 노동자들의 근로시간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 회원국 가운데 가장 긴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의 자살률은 OECD 평균보다 2배 이상 높고, 민간부문의 교육기관에 대한 지출도 OECD 평균의 3.6배에 달했다. 빈곤율도 OECD 평균보다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OECD가 6일 발표한 '2009년 OECD 통계연보'(Fact Book)에 따르면 2007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노동자들의 연간 근로시간은 2316시간으로 OECD 평균(1768시간)보다 1.3배가량 길어 여전히 최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2006년 기준으로도 우리나라 노동자들의 근로시간은 2354시간으로 1위였다.

우리나라의 여성 자살률은 인구 10만명당 11.1명으로 OECD 평균(5.4명)보다 2.1배 높았다. 남성 자살률도 인구 10만명당 28.1명으로 OECD 평균(19.0명)보다 높았다. 국내 자영업자 비중은 2007년 현재 31.8%로 전년(32.8%)보다 다소 낮아졌으나, 여전히 OECD 평균(16.1%)보다 2배 가까이 높았다.

삶의 질과 환경 관련 지표를 보면 우리나라의 보건의료비 지출, 문화여가비 지출 비중은 하위권에 속했고, 자동차 사고건수·이산화탄소(CO2) 배출량·물 소비량은 상대적으로 높은 편에 속했다.

보건의료비 지출은 2007년 기준 국내총생산(GDP) 대비 6.4%로 OECD 평균(9.0%·2006년 기준)에 못 미쳤고, 자동차 사고건수도 100만명당 127명으로 OECD 평균(90명)보다 많았다.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476만t(2007년)으로 OECD 평균(429만1000t·2006년)보다 많았다.

교육기관에 대한 지출액은 GDP 대비 7.2%로 OECD 평균(5.8%)보다 높았고, 민간부문의 교육기관에 대한 지출액은 GDP의 2.9%로 OECD 평균(0.8%)의 3.6배였다. 그러나 높은 교육열 때문에 OECD의 ㅋ학력평가 결과 우리나라 학생들의 학력 수준은 최상위권에 속했다.

우리나라의 지니계수는 2006년 현재 0.31로 OECD 평균 수준이었다. 빈부격차와 계층간 소득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는 0과 1 사이의 값을 가지며, 1에 가까울수록 소득 불평등 정도가 심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우리나라의 빈곤율은 0.15로 OECD 평균(0.11)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우리나라의 GDP 대비 총조세수입은 2007년 현재 28.7%로 OECD 평균(35.9%)에 못 미쳤으며, 근로자 1인당 세부담도 노동비용 대비 19.6%로 OECD 평균(37.7%)의 절반 수준이었다.

< 오관철기자 okc@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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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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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요잔님께서도 언급하신 적이 있지만 EBS에서 한의학강의를 해서 유명해진 한의사분이 계십니다. 저도 그 방송을 몇번 본 기억이 있습니다. 한번은 그 분이 방송에서 하시던 예불문 한 구절을 듣고서 참 듣기 좋다는 생각에 예불문을 구해서 외웠던 적도 있습니다.

2년쯤전에 그 분의 강의를 한달여동안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분의 강의를 듣는 사람들은 거의 다 침술이나 한약처방을 공부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 분은 강의에서 한의학얘기도 하지만 다른 얘기도 참 많이 하시던군요.

본인 스스로, 입적하신 조계종스님의 제자라고 하고, 수강생들에게 지두 크리슈나무르티에 대해서 조사하고 별의 교단 해체선언을 써오라는 숙제를 내 주시더군요. 그 밖에도 불교를 포함해서 이런 저런 얘기들을 많이 하셨습니다. 사실, 제게는 그다지 새로울 게 없는 내용이었습니다만, 종교적인 배경이 다른 수강생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었습니다. 그 분의 카리스마가 워낙 대단해서 그런지 다들 고분고분하게 죽비소리에 잘 따라 하는 분위기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런데, 그 분의 가르침중에 다른 건 잘 모르겠고, 한가지 굉장히 인상적이 내용이 있었습니다. 지금까지도 강한 여운이 남아 있는데요. 바로 '돈 후앙의 가르침'입니다. 그 분은 연세가 있으셔서 그런지, 예전에 널리 알려졌던 내용들 - 말하자면, 제 세대에서는 달라이 라마가 지두 크리슈나무르티보다 더 유명한 것 처럼요- 을 많이 알고 계셨습니다. 그 분이 어떤 책의 한 페이지를 복사해서 나눠주시고 조사해 보라고 숙제를 내 주셨는데, 그 책이 바로 '돈 후앙의 가르침'이었고, 나눠준 내용은 '네가지 적들'에 관한 부분이었습니다.

네 가지 적들은, 첫번째가 두려움, 두번째가 명석함, 세번째가 힘이고, 각각 그 적들은 그 전단계의 적들을 물리친 결과가 됩니다. 그러니까, 두려움을 물리치면 명석함이 찾아오고 그 명석함이 다시 또 적이 되어서 그 명석함을 물리쳐야 힘이 찾아온다는 것이지요.

정확히 잘 이해는 못했지만, 하여튼 제가 그 부분을 읽었을때 저는 첫번째 적인 두려움을 물리친 '명석함'의 단계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저의 착각일 수도 있지만요). 그렇다면, 제게는 두번째 적 즉 명석함이 적이라는 것이지요.

그것이 2년전입니다. 지금은, 여전히 잘 알지는 못 하겠지만 두번째 적인 명석함을 물리친, 아니 물리치기 시작한 단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렇다면 힘이 찾아와야 하는데 그런 건 잘 모르겠고 (얼마전부터 제게 힘이 있거나 말거나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여튼 명석함이라는 적이 슬슬 물러가고 있는 단계가 아닌가 하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된 데에는 이곳(명상나라)에서 얻은 가르침이 아주 큰 역할을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사실, 이런 얘기 올리는 거 많이 창피한 일이지만, 그래도 용기를 내서 올려봅니다. 제가 엇나가고 있다고 생각되시거들랑 심하게 나무라지는 마시고, 너그럽게 타일러주시기 바랍니다. 전 잘 모르기도 하고 힘도 전혀 없는 사람이니까요. 정말로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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