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은 임기내내 지지율이 형편없었다. 임기 중반을 지나서는 겨우 10%를 넘을 정도였다. 노무현은 이쪽에서는 친북좌파로 욕을 먹고, 저쪽에서는 신자유주의자로 욕을 먹었다. 모든게 노무현탓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그리고, 임기를 마친지 1 3개월. 그는 벼랑에서의 투신으로 인생을 마감했다.

그는 우리 사회의 마이너리티의 전범이라 할 만했다. 가난한 집안에 고졸의 학력, 막노동경력과 사병으로서의 현역 복무. 흔하디 흔한 우리네 서민의 삶이다. 사법연수원 시절 동료 연수생들과는 달리 혼자 잠바를 입고 있는 모습은 마이너리티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듯 하다. 그의 마이너리티는 변호사가 되고 나서도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귀족적인 삶을 살 수 있었음에도 그는 인권변호사로서 거리의 민주투사가 되었고, 정의와 원칙을 위해 싸웠다.

그의 소수성은 정치인생에서 더욱 더 두드러진다. 정치인생에서 그는 대부분 소수였고 때로는 혼자이기도 했다. 의도된 바도 있었고, 때로는 세상과의 타협을 거부한 결과이기도 했다. YS 3당합당을 했을때 그는 가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그에게는 YS의 회유마저도 없었다. 그는 YS를 따르지 않았다고 경상도에서 버림받았다. 그 후 그의 입지는 언제나 소수정당이거나, 1야당이었다해도 언제나 소수파였다. 경상도출신이라는 것이 이유였다. 그는 대통령후보가 된 다음에도 마이너리티의 신세를 톡톡히 맛봐야 했다. 지원은 커녕 안팎의 압력에 시달린 것이다. 나중에는 그 정당으로부터 탄핵을 소추받기까지 했다.

대통령이라는 자리에 올라서도 마이너리티의 모습은 사라지지 않았다. 주위환경은 적대적이었고, 귀족언론이나 재벌들은 그를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어느 누구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지지를 잃기 시작했다. 부자들에게서는 자신들의 돈을 뺐아간다고 버림받았고, 서민들에게서는 서민들의 말을 쓴다는 이유로 버림받았다. 진보진영에서는 왼쪽 깜박이를 켜고 오른쪽으로 간다고 욕을 먹었고, 보수진영에서는 좌파가 나라망친다고 욕을 먹었다. 귀족언론과 재벌귀족들은 미천한 출신이 대통령이라는 것을 봐줄 수가 없었다.

그는 대통령이 되어서는 아니 되었던 사람이다. 그와 같은 마이너리티가 대통령이 된 순간 이미 그의 비극은 예정됐던 것이다. 마이너리티는 감히 꿈도 꿀 수 없는 대한민국 제1시민이라는 자리에 올라선 순간, 이 사회의 메인스트림이라 자부하는 파워엘리트들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그를 죽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력해진 그는 다시 또 옛 동지들에게서도 버림받았다. 그리고, 여기에 우리들 모두가 방관자로 팔짱을 끼고 있었다. 여기에 노무현의 죄가 있다면, (유권자, 국민을 포함해서) 그 어느 누구에게도 고개를 수그린채 잘 봐달라, 나도 끼어달라고 한 적이 없는 그 자신감뿐일 것이다.

놀라운 사실은, 우리들 대부분이 사실은 힘도 없고 별로 가진 것도 없는 노무현과 비슷한 마이너리티라는 것이다. 우리들 마이너리티들은 노무현이라는 소수가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면서도, 그것이 우리 자신의 일임을 알지 못한다. 우리가 마이너리티라는 초라한 사실을 받아들이기 싫은 것인지? 아니면 노무현의 그 당당함, 소수의 당당함을 우리가 가지고 있지 못한 비굴함때문인지?

 

2002 12 29일 오후 6시에 감격에 울었던 이가, 2009 5 23일 오전에 비탄에 울며 쓰다.


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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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 함부로 글 쓸일도 아닌 것 같다. 자주 가는 게시판이 있어서, 댓글을 좀 길게 썼는데, 누가 자기와 너무 비슷하다며, 긴 쪽지를 보내왔다. 자기도 살기가 너무 많다고. 이제 이런 얘기들은 옛날얘기가 되버렸는데, 지금의 자기와 비슷하다며 보낸 쪽지는 섬뜩하게 생각되었다. 써놓고 보니, 내가 좀 오해의 소지가 가게 써 놓은 듯도 하다. 지금의 나를 보는 게 아니라, 고등학교때의 나, 군대때의 나라고 했어야 하는데. 인터넷에서 나를 드러내는 건 조심해야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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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2년쯤 되었나요? 자기가 다니던 미국의 한 대학교에서 사람들을 총으로 쏴 죽이고 자기도 목숨을 끊은 조승희라는 청년이 있습니다. 이후에 보도된 내용을 보면서, 꼭 저를 보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꼭 고등학교때의 저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라고 썼어야 한다!!!) 그때의 저는 별 문제없는 조용한 아이였지만, 머리속에서는 맨날 등교하는 학생들과 선생들을 쏴 죽이는 생각만 하고 있었습니다. 어떤 총이 그러니까, MP5A5와 M60중에 어떤 총이 더 많은 학생들과 선생들을 죽일 수 있는가 하는게 저의 유일한 화두였습니다. ^^ 안타깝게도 한국은 새총말고는 고등학생이 살 수 있는 총이 없어서 제 계획은 불발로 끝났습니다만.
 
몇년전에 전방GP에서인가 한 청년이 여러명 죽인 사건이 있었습니다. 참 또 저를 보는 것 같더군요.(참 또 군대때의 저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라고 썼어야 한다!!!) 그 GP에서는 구타는 없었던 것 같지만, 꼭 구타가 아니라 말로 갈구는 것도 사람 돌아버리게 할 수 있거든요. 절 갈구던 고참, 지금 생각해보면 그 사람도 제가 얼마나 미웠을까 싶지만, 그 고참은 저를 패기도 많이 팼지만, 그 인간이 말하는 걸 듣노라면 참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복받쳐서 이 인간을 정말 죽이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지요. 안타깝게도 저는 공포탄만 휴대가능하던 후방이어서 ^^
 
저는 대학 1학년때 마음의 평화를 얻고 싶어서 성당에 갔었습니다. 교리공부도 열심히 하고 피정도 갔다 오고 어쩌고 저쩌고 하다가 별로 믿기지는 않았지만 어쨌거나 개근한 것도 아깝고 사흗날에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신다고 아멘하고서 새로운 이름도 받았더랬습니다. 그런데 왠걸 새로 태어난지 한달만에 명리학공부를 하게 되었고, 서른쯤 되던때에는 불교책을 보다가 할렐루야하고 불자가 되었고, 같이 명리학 공부하던 후배는 언제부턴가 중이 된다고 하더니, 나중에 제가 스승으로 따르던 분한테 같이 가고 난 다음에는 진짜 중이 되었고, 어쩌다보니 저는 직장도 때려치우고, 길거리오뎅도 안 팔고 치킨배달도 안 되는 곳에 와서 살고 있습니다.
 
명리학공부하면서 느낀 건데, 사람은 지 팔자대로 사는 구나, 저는 어렸을때부터 돈 얼마 벌지 그런 건 별로 관심이 없고(여자는 좀 관심이 있었습니다만 ^^) 이 인간은 왜 이런 인간인가 하는 것이 궁금했었거든요. 사주팔자란게 자세히는 알 수 없어도, 이 사람이 어떻게 생겨먹은 사람이다라는 건 대충 알려주는 게 있어서, 가만 보니 게으른 사람은 게으르니까 게으른 거고, 똑똑한 사람은 똑똑하니까 똑똑한 거지, 지가 똑똑하고 싶어서 또는 게으르고 싶어서 그렇게 된게 아닌 것 같더라구요. (전에 보니 여기 상담게시판에 누가 사주물어보던데, 이제 저는 사주 안 봅니다. ^^)
 
여기 와서 누가 왜 여기 왔냐고 하면, 농반 진반으로 술 못 먹어서 왔다고, 그렇게 술먹기가 고역이었는데, 여기 와서 포도주랑 체리를 같이 먹어보니까 오~ 괜찮네. 이젠 와인도 소주잔으로 한 잔정도는 마실 정도가 되었습니다. 하기사 예전엔 회를 무슨 맛으로 먹남 그랬는데, 이젠 없어서 못 먹지요. 기억에 오쇼가 육식은 아름다운 짓이 아니다라고 한 것 같은데, 회 맛있는데.....쩝~
 
사람들하고 얘기를 하면, 글쎄 '너가 그런 사람이니까 그런거지'라고 얘기를 해주고 싶다가도, 듣는 자는 말하는 자의 얘기를, 말하는 자의 얘기가 아니라, 듣는 자의 얘기로 들으니, 말하는 자의 얘기가 듣는 자에 가서 닿지를 않겠더라고요.
 
조승희랑 군대얘기는 삼청교육대 얘기듣다 보니 생각이 났고, 성당갔다가 10년만에 불자된 얘기는, 절이 당집하고 비슷하게 여겨지던 시절에 대학생불자가 되신 미래의 오쇼제자가 계셔서, 저도 한번 보태 봤고요. 명리학 얘기는 '니가 사는게 사실은 니가 사는게 아니다'가 혹시 아닐까 싶어서 해 봤고요, 포도주 얘기는 그 미래의 오쇼제자분께서 복분자술 좋아하신다고 한게 생각이 나서 한번 해 봤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얘기는, 어딜 가도 듣는 자가 말하는 자의 얘기를 안 들어주려고 해서, 이곳에서 한번 얘기해보았습니다. 정신없으셨다면 죄송합니다. ^^
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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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애도함
http://www.hani.co.kr/arti/opinion/editorial/356553.html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갑작스런 서거 소식을 접하는 심정은 고통스럽고 비통하다. 산천도 새롭게 옷을 갈아입는 생명의 계절 5월, 그는 그렇게 세상과 홀연히 작별을 고하고 떠났다.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안타까운 소식에 망연자실할 뿐이다. ‘바보 노무현’은 끝까지 바보 노무현이었다. 평생을 극적이고 파란만장하게 살아왔던 그의 삶은 최후의 순간까지도 충격적이었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스스로 삶을 거두어버렸다.

검찰 수사가 시작된 이후 그가 느꼈을 비애와 고통을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명예와 신뢰가 산산조각이 나면서 그가 받았을 치욕과 모욕감에 그는 결국 무너져내린 것이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는 유서 내용은 그가 겪은 심적 고통이 얼마나 컸는지를 보여준다. 그는 죽음으로써 이 모든 것에 답변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이미 고인이 된 그에게 안타깝게 묻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고통스럽더라도 굳이 목숨을 끊는 극단적인 방법밖에 없었느냐’고. 또 ‘이 풍파를 견뎌내고 역사에 더 값진 발자취를 남기겠다는 진정한 용기를 왜 발휘하지 못했느냐’고 말이다. 하지만 그런 질책은 이제 부질없다. 그는 이미 우리 곁을 떠났다.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이라는 말도 남겨진 사람들에게 위안이 되지는 않는다.

그는 누가 뭐래도 우리 사회의 고정관념과 금기에 온몸으로 맞서 싸워온 정치인이었다. 그의 정치역정은 우리 사회의 기득권 구조를 바꿔보려는 끊임없는 싸움의 연속이었다. 때로는 그 과정에서 영광을 맛보기도 했고, 때로는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됐다.

그의 대통령 재임 기간, 국정운영에서 미숙했던 부분도 있고, 시행착오도 적지 않았다. 거침없는 언사로 끊임없이 구설에 시달리기도 했다. 지지층의 기대에 어긋나는 선택으로 많은 사람을 실망시킨 적도 많았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우리 사회의 물줄기를 근본적으로 바꿔보려는 그의 시도와 노력은 아무리 높게 평가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돼버린 지역주의 타파를 비롯해 새로운 정치질서 모색, 지역 균형발전, 남북 화해와 공존 노력 등은 시대정신에 부합된 의미있고 값진 시도들이었다. 또한 역대 어느 대통령도 보여주지 않은 솔직담백하고 소탈한 언행, 국민과의 직접 소통을 추구한 탈권위주의적 모습 등은 영원히 신선한 울림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그는 우리 사회의 비주류였다. 그리고 그의 비극의 원천은 여기에 있었다. 탐탁지 않은 비주류 권력의 출현에 대한 기득권 세력들의 공격은 집요했다. 그 공격은 대통령 재임 기간에도, 퇴임 이후에도 변함이 없었다. 보수세력과 보수언론들은 국민의 손으로 뽑힌 대통령의 권위조차 인정하지 않고 적대적으로 그를 헐뜯고 공격했다. 그를 죽음으로 몰아간 박연차씨 금품수수 의혹 사건에서도 보수언론은 그를 난자해 만신창이로 만들었다. 그의 비참한 죽음은 어느 면에서는 우리 사회 주류의 견고한 성벽을 다시 한번 확인해준 것이기도 하다.

그의 죽음은 비통하고 비극적이지만, 한편으로는 우리한테 엄중한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까지 이 세상에 외치고 싶었던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단순한 도덕성 상실 의혹에 따른 자괴감의 발로나, 금전 문제에서의 결백 주장만은 아니라고 본다. 오히려 그 해답은 그가 최근 밝힌 심경의 한 일단에서 찾을 수 있다고 여겨진다. 그는 지난달 자신의 홈페이지에 “더 이상 노무현은 여러분이 추구하는 가치의 상징이 될 수 없다” “민주주의, 진보, 정의, 이런 말을 할 자격을 잃어버렸다”고 써놓았다. 그는 자신의 몸을 벼랑 끝으로 내던짐으로써 이런 의미있는 의제와 가치들이 죽는 것을 막고 싶어한 것은 아닐까. 물론 죽은 자는 말이 없다. 하지만 민주주의와 진보, 정의와 같은 가치들이 시대의 광풍에 휩쓸려 소멸되는 것을 막아야 할 당위성만큼은 분명하다. 바보 노무현의 죽음이 결코 바보짓만은 아니게 만드는 길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볼 때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김지석칼럼] ‘바보 노무현’의 죽음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356558.html
대통령은 특별한 사람이다. 권력의 정상에 오르려면 해야 할 것도, 하지 말아야 할 일도 많다. 모든 것을 다 갖췄더라도 때가 맞고 운이 따라주지 않으면 안 된다. 대통령은 하늘이 택한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대통령이 자신들과 아주 다른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통령 역시 인간일 뿐이다. 남이 알아주지 않아 괴로워하고 실패에 눈물을 흘린다.

고뇌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모습을 바로 옆에서 본 적이 있다. 지방선거에서 참패하고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문제로 보수세력으로부터 거세게 공격받던 2006년 8월이었다. 당시 노 대통령은 언론사의 외교안보 담당 논설위원 몇 명을 청와대로 불러 오찬모임을 가졌다. 그는 그때 “남은 기간 동안 개혁을 하기 어렵고 (기존 정책들을) 관리만 할 생각”이라며 “그렇다는 걸 국민에게 선언하는 게 어떤지 생각 중”이라고 했다. “정파적이지 않은 중립적 정책까지 거부당하는 것은 억울하다”고도 했다. 그는 스스로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비판을 감수해야 할지, 아니면 하야 선언까지 포함해 실패를 공식화해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이런 모습은 그의 삶 전체를 관통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는 도전과 좌절의 정치인이다. 도전은 때로 무모했고 좌절은 깊었다. ‘바보 노무현’이라는 별칭은 이를 잘 표현한다. 그는 그러면서도 시대의 과제에 자신의 삶을 일치시키려고 꾸준히 애썼다. 1980년대에는 민주화운동에 온몸을 던졌고, 90년대는 왜곡된 정치풍토를 바꾸려고 노력했으며, 대통령이 된 뒤에는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의제를 적극적으로 관철하려 했다. 그 과정에서 그의 진심보다는 그만의 독특한 스타일이 더 부각돼 논란을 빚은 것은 그에게 큰 불행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가 대통령에서 물러난 뒤에도 ‘노무현 집권기’에 대한 평가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새 집권세력은 그와 관련된 모든 것을 현실에서나 역사에서나 지워버리려 했고, 한때 그와 함께한 정치·사회세력도 그의 그림자가 자신들의 발목을 잡을까봐 거리를 뒀다. 봉하마을에서 이런 모습을 지켜보는 그의 마음은 한없이 착잡했을 것이다.

그는 지난 3월 ‘사람 사는 세상’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이웃과 공동체, 그리고 역사를 위하여, 가치 있는 뭔가를 이루고자 정치에 뛰어든 사람”으로서 “언제 실패의 이야기를 글로 정리해볼 생각”이라고 썼다. “정치가 달라지기 위해서는 정치인들이 먼저 달라져야” 하므로, 자신의 실패 기록을 그 밑거름으로 제공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그렇게 하는 것은 길지 않은 우리나라 헌정사에서 대통령을 지낸 사람으로서 의무이기도 하다.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은 이런 당연한 일마저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밖에 없다.” 이런 유서를 남긴 데는 전직 대통령의 품위 있는 삶은 고사하고 시민으로서 일상적 활동도 하기 어려운 현실에 대한 깊은 좌절감이 작용했다고 봐야 한다. 적어도 그 고통과 좌절감의 상당 부분이 검찰을 비롯한 지금 집권세력에서 비롯했음은 부인할 수 없다.

그는 숨지기 직전 경호관에게 “담배가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2006년 청와대 오찬 때도 “끊었던 담배를 최근 새로 피운다”고 했다. 그는 이제 연기처럼 사라졌지만,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마음에는 새삼 시대의 냉혹함에 대한 섬뜩한 느낌이 차오른다. 부디 고향마을에서 편안하게 잠드소서.

김지석 논설위원실장 jkim@hani.co.kr


[사설] 무엇보다 ‘정치 검찰’의 책임이 크다
http://www.hani.co.kr/arti/opinion/editorial/356552.html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을 계기로 검찰에 대한 시민들의 비난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이 전해진 뒤 대검찰청 누리집 게시판 ‘국민의 소리’에는 검찰 수사를 규탄하는 민성이 아우성치고 있다. 너무 많은 사람이 접속해 글을 올리고 읽으려고 하는 바람에 서버가 마비될 지경이다. 이런 현상은, 검찰이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에서 국민적 신뢰를 완전히 잃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죄가 있다면 전직 대통령이 아니라 현직 대통령이라도 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조사하고 밝혀야 한다. 그리고 죄가 확인된다면 그에 합당한 벌을 줘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이고 법치다. 이런 점에서, 노 전 대통령이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에게서 돈을 받고 해외사업 등에 대한 편의를 봐줬다는 혐의(포괄적 뇌물수수)를 두고 검찰이 수사를 한 것 자체를 문제 삼을 생각은 없다.

하지만 검찰은 수사 과정에서 몇 가지 매우 큰 잘못을 저질렀다. 가장 큰 것은 수사를 잘못해서인지 아니면 위쪽의 지시에 따른 건지 모르지만, 수사 방향을 철저하게 ‘노무현 괴롭히기’로 끌고 간 점이다. 적어도 많은 사람에게 그런 인상을 줬다. 노 전 대통령을 지난달 30일 소환수사하고도 한 달 가까이 기소 여부도 결정하지 않고 질질 끈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간 검찰은 전직 대통령 정도의 인물을 수사할 경우엔 수사의 마지막 순서로 불러 조사하고 그 뒤 신속하게 신병처리 방침을 결정해왔다. 그게 관례였고, 예우였다면 예우였다. 하지만 이번엔 전혀 달랐다. 신병처리를 질질 끌며 노 전 대통령의 부인, 아들딸, 사위 등에 대한 수사 강도를 높이며 노 전 대통령을 압박했다. 그 과정에서 피의사실 공표금지 원칙 같은 것은 개의치도 않았고 시시콜콜한 혐의 사실까지 일일중계하듯 까발렸다. 오죽했으면 노 전 대통령이 마지막 길을 가면서 짧게 남긴 유서에서까지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고 절규했겠는가.

또한 검찰은 박연차 사건을 수사하면서 극도로 형평성을 잃은 모습을 보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 일가와 그 주변 사람에겐 샅샅이 이를 잡듯이 뒤져 허물을 들췄거나 들춰내려 했다. 반면 현 정부와 관계 있는 사람이나 자기 식구에게는 한없이 관대하고 느슨한 태도를 보였다. 추부길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이 박연차씨로부터 세무조사 무마 청탁을 받고 이명박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의원에게 전화한 사실을 파악하고도 미리부터 이 의원을 수사대상에서 배제했다. 또 이 대통령의 친구인 천신일 고려대교우회장과 관련해서도 진작부터 매우 구체적인 연루 의혹이 나왔지만 수사를 미루다가 뒤늦게 균형 맞추기 제물로 끌어들인다는 인상을 줬다. 제 식구인 검사들의 경우에는, 불러 조사하는 동시에 ‘돈은 받았지만 업무 관련성이 없어 처벌이 어렵다’는 면죄부를 줬다. 임채진 검찰총장, 홍만표 수사기획관, 이인규 중수부장 등 이번 수사의 핵심인물들은 항간에 일고 있는 정치수사, 편파수사 의혹에 대해 명확하게 설명할 책임이 있다.

이번 수사의 시작은 지난해 7월 청장 연임을 노리는 한상률 전 국세청장의 태광실업 특별세무조사와 그 결과의 청와대 보고였다고 한다. 검찰은 이를 토대로 올 3월부터 노 전 대통령을 겨냥한 수사에 본격 착수했다. 수사 전개로 볼 때 노 전 대통령을 탐탁지 않게 생각해온 청와대 핵심의 의중이 반영됐다고밖에 볼 수 없는 것이다. 정치검찰도 문제이지만 이참에 검찰을 정권의 하수인처럼 부리려는 권력자의 생각도 바뀌어야 한다.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356557.html
[시론] 정치 검찰의 질주가 낳은 비극 / 정상호

노무현 전 대통령의 투신으로 온 사회가 참담한 충격에 빠져 있다. 나 자신이 참으로 부끄럽고 안타깝다. 돌이켜보면 노 전 대통령의 원칙을 중시하는 강직한 성품상 끝없는 모멸감을 안겨주었던 검찰의 보복성 수사에 죽음으로 저항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을 예견할 수 있었건만 그저 손 놓고 방관하기만 하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은 형식적으로는 자살이지만 그 이면에는 애초부터 편파성과 보복수사 시비를 낳은 현 정부와 검찰의 정치적 공모가 깔려 있다. 왜냐하면 대통령 스스로가 본인과 가족은 물론 사돈에 팔촌까지, 일개 행정관에서 장차관까지 과거 수년간의 행적을 샅샅이 조사하였던 무소불위의 살아있는 권력에 맞서 저항할 수 있는 합법적 수단을 찾기 어려웠을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양식 있는 많은 이들이 검찰과 경찰의 법치를 앞세운 편파적·억압적 조처들을 보면서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정치적 파국을 낳을 불행한 사건이 터질지 모른다는 우려감을 갖고 정국을 지켜보고 있었다. 화물노동자 대량 구속, 용산 철거민 사태, 합법적 시위와 평화적 기자회견조차 허용하지 않는 위헌적 탄압 조처, 사법부의 독립성을 훼손한 신영철 대법관 파동, 마스크 사용조차 불법으로 처벌하는 반민주적 법률 제정, ‘피디 수첩’ 제작진에 대한 언론탄압 등 공안기관의 권력남용 사례는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요컨대 정치검찰의 문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은 물론 평범한 보통사람들의 삶 속에까지 짙은 공포와 암운을 던져주고 있다. 무명의 정치학자에 불과한 필자 자신도 향후 임용과 승진, 연구비 지원, 사생활 추적 등에 대한 권력의 냉혹한 보복을 예감하면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우리에게는 정치인 노무현에 대한 지지 여부를 떠나 고인의 뜻을 받들어 사회적 분열을 최소화하고, 나아가 통합적 사회발전을 이루어야 하는 시대적 과제가 엄연히 주어져 있다. 이를 위해서는 첫째, 정치적 반대파인 보수주의자들의 신중한 처신이 요구된다. 노무현 대통령의 퇴임 이후 조·중·동을 비롯한 보수세력들은 ‘노씨’ 운운하며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를 깡그리 묵살하여왔다. 제발 이번의 비극적 사태를 ‘대통령 개인의 격정적 성정의 우발적 충동’으로 조롱하거나 모멸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것은 전직 대통령의 예우를 떠나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니기 때문이다.

둘째는 정치권과 시민사회가 다시는 정치보복의 악순환을 없애기 위하여 정치검찰의 통제받지 않는 질주를 멈추는 데 함께 나서야 한다. 특히 전직 법무부 장관이었던 천정배 의원과 강금실 변호사를 비롯한 정치인들의 각성과 분발이 필요하다. 실명을 거론하는 까닭은 두 사람은 검찰 개혁을 총괄하였던 참여정부의 사법부 수장으로서 이번 사태에 일말의 정치적·도의적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어떤 형태로든 자신이 몸담았던 조직의 비이성적·반민주적 작태에 대하여 선두에서 싸울 책무가 있다. 그리하여 더이상 대통령과 전임 정부에 대한 역사적 평가에 앞서, 사법부를 앞세운 법적 단죄가 반복되는 불행한 정치사를 종식시켜야 한다.

그렇지만 지금 이 순간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루 형용하기 어려울 정도의 비통과 충격에 빠져 있을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가족과 친인척들, 그를 누구보다도 사랑하였던 정치적 지지자들에 대한 세심한 배려와 관심이다. 삶도 죽음도 너무나 극적이었던 그리고 누구보다 인간적이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명복을 진심으로 빈다.

정상호 한양대 제3섹터연구소, 연구교수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5656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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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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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부당한 노동행위가 있다. 사장이 직원들을 혹사시킨다. 휴일도 없고 임금도 제대로 주지 않는다. 엉뚱한 물건 파는 일까지 떠 넘긴다. 그리고 목표량을 채우지 못하면 자진해서 사표를 쓴다는 내용이 근로계약서에 있다. 이런 내용을 바깥에는 발설하지 않겠다는 각서는 덤이다. 사회적 약자인 노동자는 거절할 수가 없다.

여기에 대응하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모든 직원들이 합심해서 부당한 요구를 거절하는 것이다. 이것이 가능하도록 헌법에 노동3권이 보장되어 있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일부는 사장편으로 돌아선다. 사장이 회유했기 때문이다. 너는 승진시켜주겠다고. 너는 월급을 올려주겠다고. 또 일부가 사장편으로 돌아선다. 사장이 협박했기 때문이다. 너 해고시키겠다고. 마저 나머지가 사장에게 항복한다. 세상은 원래 그런거라고.

모두의 행복을 위해서는 노조의 승리가, 그리고 노조의 승리를 위해서는 모두의 합심이 필요하다. 승진? 필요없다. 해고? 할테면 해라. 유혹에 굴하지 않고 협박에 흔들리지 않으며 폭력에는 연대로 맞선다면 도대체 노조가 승리하지 않을 이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그렇다면, 외부의 적은 더이상 적이 될 수가 없다. 그러고 보니, 외부의 적은 내 안의 약점, 내 안에 적이 있으므로 해서 비로소 적이 되는 것이었다.

김규항은 말한다(한겨레의 칼럼). '세상이 변혁되려면 사회 구조도 변혁되어야 하고 나도 변혁되어야 한다.' 따라서, '적은 둘이라는 것, 적은 내 밖에만 있는 게 아니라 내 안에도 있다는 것을 정직하게 인정하고, 내 밖의 적과 싸우면서 동시에 내 안의 적과' 싸워야 한다고 말이다. 매체에서 이렇게 스스로에 대한 성찰을 말하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김규항이 빛나는 지점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내 안의 적과 내 밖의 적을 동시에 싸울 수는 없어 보인다. 왜냐하면 내 밖의 적은 내 안에 있는 적이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내안의 적이 없어지면 내 밖의 적도 없어진다는 것을, 이것을 모르고 사람들은 오늘도 자기 자신이 적인지 모른체 또 다른 자기 자신과 싸우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참된 영성가라면 바깥의 적보다 먼저 자신의 적과 만나야 할 것이다. 죽이던지 아니면 죽던지간에. 이것이 영성의 시대, 진정한 혁명가의 길이 아닐까.




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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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자유와 관련하여
등록인 최인석 등록일 2009.04.13 | 조회: 111
첨 부

푸네에 살고있는 상카르입니다. 어제 불교관련 카페에 올린 제글을 이곳에도 올립니다. 여러 회원님께 신고식을 겸하는 의미에서.. 
 
아래에 어느분의 글에서 불교에서 대자유를 추구하는 것도 인간의 정신을 속박하는 것이 아니냐는 물음이 있어
여기에 대해서 의견을 말하고저 한다. 우리는 흔히 불교의 목표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곤한다.  
기독교의 목표가 구원이듯이...많은분들은 불교의 목표가 해탈이니 깨달음이니 라고들 대답을 할 것이다.
 
그러나 불교에는 목표가 없다. 만약에 불교에 목표를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사람은 불교를 오해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불교는 이데올로기가 아니다. 불교는 어떠한 종류의 이상도 추구하는 종교가 아니다.    
특히 선불교에서는 모든 이상주의를 철저히 배격한다. 당연히 불교는 대자유도 추구하지 않는 종교다.
따라서 인간의 정신을 속박할 일도 없다.
 
우리는 사회에서 교육을 받으면서 너 자신을 계발하라, 너자신을 바꾸어라, 보다 완벽하게 되도록 노력하라,
라고 끊임없이 세뇌되어 왔다. 일련의 이러한 과정 속에서 형성된 것이 흔히들 말하는 에고(ego,自我)다.
보다 "나아지려는 추구" 라는 환상이야말로 이 에고를 만족시키는 원동력이다.
 
오늘은 비록 이렇지마는 내일은 보다 나아 질 것이다 라는 목표가 에고가 생존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사고방식이 모든종교에서 그대로 받아들여져서 각자 그 종교의 목표와 이상주의가 되어왔다.
그러나 불교는 이러한 기존의 종교에서 말하는 목표와 이상주의를 철저히 배격하는 데에서
출발하는 혁명적인 종교다.
 
붇다는 기존의 종교에서 이러한 핵심을 간파했다. 즉 무엇을 "추구한다는 것"이 인간의 삶을 병들게 한다는
것을 알아 낸 것이다. 그 당시의 힌두교에서 해탈을 추구하는 것도 일종의 돈이나 권력을 추구하는 것과
"추구한다는"면에서는 다를바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추구한다는 것이 인간성의 광기라는 것을 밝혀
내었고 이것이 우리 삶에서의 모든 불행의 근원이라고 본 것이다.
 
제자들이 붇다에게 질문 하기를"우리가 열심히 노력해서 깨달음에 도달하면 우리는 어떤 상태에 있게 됩니까?
해탈(moksha,절대적인 대자유의 상태)하는 것입니까?"라고 물었을때 붇다는 대답하지 않았었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질문인가? 대자유는 그것을 추구하지 않을때 그 상태에 도달하는 것인데 그것을 목표로 삼다니!!!
 
그래서 붇다는 기존의 해탈(대자유)이라는 개념을 버리고 nirvana(열반)라는 새로운 개념을 사용했다.
니르바나란 말 그대로 촛불을 훅 불어서 꺼뜨린다는 뜻으로서 "추구하지 않음" 이라는 뜻이다. 촛불을 꺼서
어두우니 어느것도 찾지 않는다는 뜻인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광기는 그 "추구하지 않음"이라는 니르바나를 하나의 목표로 설정하고 다시 그 니르바나를 추구하기
시작했다.붇다가 고심해서 만들어낸 차별화된 용어를 왜곡해 버린 것이다. 그후 불교가 중국으로 전해지고 선불교가
일어나면서 선사들은 이 니르바나라는 용어도 이제 붇다 당시의 해탈이라는 용어와 같이 오염되었다고 판단해서
무심(無心)이라는 용어를 새로 만들어서 쓰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뜻이 아무것도 추구하지 않는 텅빈마음 이라는 뜻인데 이제 선방에서는 그 무심을 얻기 위해서 노력하는
똑같은 어리석음을 저지르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좌선(坐禪)이라는 단어에 유의 해야한다. 그야말로 우리가 하여야할
전부는 그냥 조용히 앉아 있는 것일뿐이다. 그것으로 완벽하다. 에고는 자신을 둘로 나누어 게임을 벌인다.추구하는자도
나이고 추구하는 대상도 나이다. 추구하는 행위 자체가 나를  이미 분열시켜 버렸는데 어떻게 본래의 내 자신이 될수 있겠는가?
나를 추구한다는 노력 자체가 장애가 될것이다. 
 
왜 우리는 우리의 삶에 목표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삶 자체가 목표라는 것을 왜 우리는 망각하는가?
왜 우리는 내일이라는 제단에 오늘을 희생해야하는가? 지금 이순간에 존재하는 것이야 말로 삶을 놓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을 모르는가?라는 것이 붇다의 깨달음이다. 불교(말그대로 붇다의 가르침)란 지금 이순간에
존재하는 삶의 방식이다. 모든 목표를 추구하는 것이 지금 이순간의 삶을 살아가는데 가장 큰 장애물인 것이다.
나는 안다. 인간의 광기는 또다시 지금 이순간에 존재하기 위하여 목표를 설정하고 노력할 것이라는 것을....
 
인도의 시성 타고르는 호수가 낀 대저택에서 살고 있었다. 그는 호수에 배를 띄우고 선실안에서 독서하는 것이
취미였는데 그날은 아름다운 보름달이 호수에 떠 있었고 호수가의 숲에서는 뻐꾸기가 우는 아름다운 밤이었다.
그가 독서하는 책은 미학(美學,아름다움)에 관한 책이었다. 순간 바람이 불어 선실안의 서재의 촛불이 꺼져 버렸다.
그순간 선실안으로 밀려드는 달빛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그때 타고르는 깨달았다. 내가 아름다움에 관해서 알려고
노력하고 있을때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몰랐다. 그러나 촛불이 꺼지고 아름다움이 무엇인지를 추구하지 않을때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장애물은 바로 촛불이었다.
 
나라는, 에고라는 촛불만 꺼지면 무언가를 추구하는 행동만 멈춘다면 그것은 바로 지금 여기에 있지 않겠는가?
 

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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