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대통령으로 뽑지 말았어야 했다.

가끔 일간지 하단 광고에 대통령에 대한 탄원이 실리던 시절이 있었다. 그 내용은 시국의 이슈에서부터 이해가 엇갈리는 개인의 억울함까지 다양했다. 내용을 불문하고 그 주장의 배경에는 대통령이 결심하면 문제가 해결되리라는 생각이 깔려있다.

언젠가부터 이런 광고는 줄어들기 시작했고, 노무현 정부들어서는 이런 신문광고는 자취를 감추었다. 대통령 말이 먹히지도 않는 세상인데, 대통령한테 탄원해 봤자가 된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놓치는 것이 있다.

전제군주시절에도 임금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사회라는 것은 그것이 아무리 봉건적이라해도 사람들간의 관계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한 개인이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 세상일이고 그것이 사회다. 박정희나 전두환같은 폭압의 시대에도, 일제 식민지 시절에도 어느 정도의 회유와 타협은 불가피했다. 북한같은 곳에서도 김정일이 자기 생각대로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하물며, 노무현같은 비주류정권은 말할 것도 없다. 노무현은 퇴임후 입법부를 눈여겨 보아야한다고 말했다. 행정부의 장악은 말 그대로 집행력만 가질 뿐이지, 끌고 나가는 힘은 입법부에 있다는 말이다. 대통령이 결심하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생각은 현실을 보지 못하는 착각과 무지의 산물이다.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고 난 후 지지자들이 떨어져나가기 시작했다. 자신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대통령때문이었다. 많은 이들이 대통령에게 욕을 던지고 비난하기 시작했다. 그럼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자신의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못한 대통령에게 있는가? 아니면 충족될 수 없었던 자신의 기대에 있는가? 노무현은 애시당초 그 기대를 충족시켜줄 수가 없었다. 그것은 현실의 한계이기도 하고, 사람들의 어리석음때문이기도 하다. 그것을 노무현의 배신과 무능이라고 한다면, 애시당초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뽑지 말았어야한다.

그에게 등을 돌렸던 사람들은 처음부터 노무현에게 표를 주지 말았어야 했다. 당신들은 어리석었다. 보수야당인 민주당의 대통령후보였던 이에게 무엇을 기대할 것인가? 국민의 다수가 반동인 나라, 진보신당의 득표율이 겨우 3%인 나라에서, 종부세도입가지고 과세대상이 되지도 않는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죽어라고 반대하는 나라에서 그 무슨 진보정책을 기대할 수 있나. 진보진영은 노무현을 뽑지 말았어야 했다. 전라도사람들도 햇볕정책을 북한 퍼주기로 생각하는 나라, 미국이라면 여전히 구세주로 생각하는 나라에서 대통령에게 모든 것을 뒤집어씌운 당신들은, 노무현의 배신을 말하기 전에 현실을 무시했던 자신의 무지를 반성해야한다. 편한대로 지지해놓고 배신했다고 욕한 자신의 무지를 반성해야 한다.

그가 무능하다고 등을 돌린 사람들도 반성해야 한다. 노무현의 무능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가? 수구언론과의 적대관계? 기존 정치행태를 따르지 않는 민주적, 탈권위적이고 분권지향적인 태도? 집권여당내에서조차도 지지기반이 없는 탈계파정치? 강한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 약한 태도? 안타깝게도 이런 이유는 그가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고 지지했던 이유들이고, 힘이 없던 그가 되어서는 안 될 대통령이 된 이유였다. 당신은 힘없는 대통령에게 힘을 주기는 커녕 무능하다는 이유로 그를 저버렸다. 당신은 그를 뽑지 말았어야 했고, 당신은 당신의 무책임에 반성해야한다.

마지막으로 나 역시 반성한다. 원칙과 정의가 옳다고 그래서 결국은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는 그의 말에 나 역시 그를 지지했다. 나는 어리석었다. 세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나는 그에게 말렸어야했다. 온갖 힘을 다해서 말렸어야했다. 그리고 그가 대통령이 된 것을 기뻐하지 말았어야했다. 그를 통해서 꿈을 꾸지 말았어야 했다. 원칙과 정의가 승리한다는 것이 결국은 허황된 꿈이었음을, 사람들의 하염없는 욕심앞에서 무너진다는 것을 나는 몰랐었다. 나는 어리석었다. 그 앞에 용서를 빈다.

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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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지 못하고 말한다. 부탁한다. 이제 그만해라.

 

언론에 부탁한다. 이제 그만해라. 이제 제발 그만 취재해라.

 

취재해봤자 더이상 나올 기사거리도 없는데, 없는 기사거리 만들어내느라 고생하지 말고 이제 그만해라. 더이상 니들입에서 오르내리는 거 보고 싶지 않다.

 

시골마을에 조문가는 사람들, 그만해라. 눈물이 절로 나는 사람들 빼고는 가지 마라. 사람구경하러 거기까지 가야겠냐? 이제 그만 해라.

 

국민장해야한다고 하는 사람들, 이제 그만해라. 시청앞광장 열어야한다는 사람들, 그만해라. 국민장 정말 반대한다. 영결식 서울에서 왜 하나? 왜? 관습헌법상 서울이 수도라 거기서 해야 하나? 제발 좀 그만해라. 개나소나 어중이떠중이한테 끝까지 놀림감되고 싶지 않다. 명계남이 말한대로 가족장으로 해야한다. 평생 동지들, 친구들, 그리고, 설문조사라도 해서 끝까지 지지했던 사람들, 진정 사랑하고 좋아했던 사람들,  그가 있어서 행복했던 사람들, 그리고 그가 없어서 눈물이 하염없이 나오는 사람들만 참석하는 장례식이 되어야한다. 그리고 국립묘지 가면 안 된다. 독재자들과 죽어서도 옆에 있어야 하는 거 생각만해도 끔찍하다.

 

노사모는 구역질나고, 친노는 꼴보기도 싫은 사람도 입 다물어라. 그 사람들이 그 분에게 그나마 끝까지 힘이 되었던 사람들이다. 그게 싫으면 그 분도 싫어해야 말이 맞다.

 

당신이 떠나고 난 뒤에야 소중함을 알았다며, 이런 저런 헛소리 늘어놓는 인간들, 이제 제발 그만해라. 역겹다. 니들이 언제 지지하기라도 했냐? 그리고 니들이 뭔 생각이라도 있었냐? 나팔들이 나팔부는대로 생각도 없이 그런가 보다 한 무뇌아들. 니들 보다는 차라리 한결같이 비판하는 인간들이 더 낫다.

 

그분에게 실망한 사람들, 난 당신들에게 뭐라고 하는게 아니다. 나도 입장바꿔 생각해본다. 만약에 그 분이 임기중에 조선일보에 머리를 조아렸으면 어땠을까? 하고. 나도 어쩌면 돌아섰을것이다. 그러니, 당신들이 실망하고 돌아선 것도 그럴 수 있다고 본다. 김규항이나 박노자같은 이는 예의를 갖추었을뿐, 이제 와서 딴소리하지는 않더라. 인간에 대한 예의와 단지 돌아가셨다는 이유로 말 바꿔서 칭송하는 그런 헛짓거리와는 다르다. 그러니 진보신당이나 민주노동당이나 니네들도 그냥 가만히 있어라. 아무말 말던가, 아니면 지금까지 하던대로 해라. 민주당 니들은 말할 나위도 없다. 니들은 입이 백개라도 할 말이 없다.

 

당신들이 싫어했으면 싫어한대로, 지지하지 않았으면 지지하지 않았던 대로 지금도 그렇게 하라는 거다. '사람이 담백해야지' 그 분은 여기서 말 다르고 저기서 말 다른 거 아주 싫어하셨다. 이제와서 국부니, 그래도 일국의 대통령이었는데 하는 소리들, 다 쓸데없다. 언제 그 분이 그런거 따진 적 있나? 내가 대통령인데 하는 생각이 없던 분이다. 내가 이 나라의 국부고, 내 밑의 백성들이니 내가 어루만져주겠다는 그런 생각이 없던 분이다. 국민이 대통령이었던 분이다. 그러니, 그동안 싫어했으면 지금도 싫어해라. 괜히 지금와서 꼴값떨지 말고 그냥 무한도전이나 보면서 낄낄거려도 된다.

 

덧붙여 조중동, 너희들도 그만해라. 좋으면 좋은대로 티내도 된다. 괜히 어쩌고 저쩌고 맘에도 없는 애도니, 명복이니 하는 소리 안해도 된다. 말 안해도 안다. 그러니, 맘에 없는 소리하느라 힘들게 살지 마라. 보기도 안쓰럽고 구역질만 나온다.

 

마지막으로, 한나라당, 견찰, 독재자 딸 다 포함해서, MB정부에 말하는데, 니들 하고 싶은대로 해도 된다. 아무 탈 없다. 니들도 그렇고 니들 대장도 겁많은 거 아는데, 겁낼 필요 없다. 이 사람들 단지 며칠 지나면, 다시 또 지들 집값 오르나 안 오르나 걱정할 것이고, 지들 자식 1등시킬 생각만 할 것이며, 어떻게 하면 돈 많이 벌어서 자기 한 몸, 자기 자식 잘 살 수 있나 이런 생각으로만 살 사람들이다. 그래서 니들이 지금까지 잘 사는 것이다. 그러니, 촛불같은 거 겁낼 필요없다. 니들 꼴리는 대로 하고 니들 마음대로 하고 싶은대로 하며 살아라.

 

오늘 학교에 갔다가 유튜브로 동영상을 봤다. 파란 눈, 검은 피부 아이들 속에서 손수건이 젖도록 소리죽여 울었다. 슬픔에 잠기면 더 이상 분노할 힘도 없다. 그냥 무서울 뿐이다. 그러니 제발 그만 좀 해라. 제발 좀 그만 해라.

 

 

노무현 전 대통령을 보내며 / 도종환
날은 흐리고 바람도 없는데 찔레꽃 하얀 잎이 소리 없이 지는 오월입니다. 부엉이 바위를 향해 걸어 올라가던 산길에도 찔레꽃은 지고 있었을까요? 야생의 들찔레같이 살다 간 당신을 생각하니 나도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고 싶어집니다.

당신은 비록 이 나라의 대통령이었지만 철저한 비주류였습니다. 가난해서 상고를 졸업했던 비주류. 죽어라 공부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믿고 고시에 합격했지만 거기서도 역시 주류는 아니었습니다. 이 나라에는 최루탄 터지는 거리에서 목이 터져라 함성을 지르고 재야로 살아도 거기 역시 주류가 있고 비주류가 있습니다. 야당 국회의원을 해도 주류가 있고 비주류가 있으며, 대통령을 해도 비주류 대통령이 있는 나라에서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그런 당신이 대통령이 되어 지방군수 출신을 행자부 장관에 임명하고 여성에게 법무부 장관이나 총리를 맡기는 걸 보면서 이 나라 주류들은 속이 많이 상했을 겁니다. 그 자체가 재벌 권력이며 자기가 권력으로 존재하는 것 자체가 존재의 이유인 주류 신문과 맞짱을 뜨려 하는 모습이 가소로웠을 겁니다. 서울만이 아니라 지방도 균형 있게 발전시켜야 한다고 했을 때 중심에 있는 이들은 마땅치 않았을 겁니다. 부자들이 세금을 더 내야 한다고 말하는 걸 보고는 반드시 내쫓지 않으면 안 된다고 확신하였을 겁니다. 틈만 나면 지역중심 정치구조를 혁파하겠다고 하고, 청렴하게 살겠다고 하는 걸 보며 세상을 몰라도 한참 모른다고 비웃었을 겁니다.

속물에 의한, 속물을 위한, 속물의 정치, 스노보크라시가 정치의 본질이라는 걸 현 정권은 얼마나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습니까? 그게 정치이고 그래서 권력을 잡으려고 하는 게 아니냐고 지금 얼마나 리얼하게 보여주고 있습니까? 그런 권력을 당신은 권력기관에 하나씩 돌려주었습니다. 사람들은 그걸 보고 참 바보 같다고 했습니다.

당신은 사회를 민주화하는 일에는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지만, 경제를 민주화하는 일에는 능력이 부족하여 자유화의 길로 가게 내버려 두면서 현실 정치의 한계를 절감하였을 겁니다. 현실적인 면에서는 그것이 우리 전체의 한계라는 걸 받아들이기보다는 당신에 대한 실망스러움이 더 컸습니다. 현실 정치와 일정한 거리를 둔 자리에 서 있는 나는 관전평이나 하고 편하게 욕이나 하면서 몇 년을 보냈습니다.

전직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고 간 사회는 분명히 이성적인 사회가 아닙니다. 그러나 주류의 존재의 이유는 합리적이거나 이성적인 사회,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드는 것 이런 따위가 아닙니다. 그건 정치를 모르는 순진한 비주류들이나 하는 소리입니다. 주류들이 당혹스러워하는 것은 당신이 더 철저히 놀림거리가 되지 않고 눈앞에서 순식간에 사라진 것입니다. 당신을 죽이면 주류 정치인이 다 죽는다는 경험을 탄핵사건 때 한 적이 있어서 잠시 눈치를 보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다 여론의 흐름을 천천히 다른 곳으로 돌리기 시작할 것이고 당신의 모습을 지워버리려고 할 것입니다.

시골로 내려와 농사짓고 동네 뒷산 지키는 환경운동 하면서 평범하게 살고 싶은 꿈을 이루지 못하고 여기서 당신의 생이 끝나고 만 것이 가슴 아픕니다. 이 나라 역사가 잘못되었다면 그것은 주류가 이끌어 왔기 때문입니다. 이 나라 역사에 그래도 덜 부끄러운 기록들이 있다면 그것은 비주류가 목숨을 걸고 저항하며 만들어낸 순간들이 있어서입니다. 당신이 떠난 뒤에도 당신이 추구하고자 했던 가치는 여전히 남아 다른 바보들이 그걸 실현하고자 또 매달리게 될 것입니다.

바보 같은 당신, 당신이 부엉이 바위 근처 어디에서 밤이면 부엉이처럼 눈을 뜨고 어두운 세상을 지켜보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요, 주류들이 모여 있는 국가원수 묘역으로 가지 말고 봉하마을 뒷산에 머무시기 바랍니다. 그게 당신에게 더 어울립니다. 작은 묘비 하나로 있는 게 더 보기 좋습니다. 더러운 땅은 더러운 이들에게 맡기고 영면하시길 바랍니다.

도종환/시인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57067.html

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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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모시] 무사의 죽음*


 

여기 무사의 슬픈 독백이 있다.

 

나의 말은 칼이었다.

나의 칼은 정의였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칼이었다.

나의 칼은 원칙이었고 나답게 살고자 하는 칼이었다.

나의 칼은 모든 억압과 구속, 간섭을 거부하는 자유였으며

너와 내가 다르지 않은 평등이었다.

이 모든 나의 칼은 눈물이었으며 그 눈물은 사람사는 세상이 되게 하는 비료였다.

 

허나 나의 칼은 세상을 다듬을 수 없었다

보이는 것은 나의 칼이 깎는 사과가 아니라 칼 끝의 뾰족함뿐이었다.

나의 칼로 깎는 사과는 아무도 원하지 않았고

더 이상 사과를 깎게 될 수 없었을때

나의 칼은 외로워 눈물을 흘렸다.

 

나는 위로하였다.

너는 결코 녹슬지 않는다고

그리고 나는 칼집이 되어 나의 칼을 받아 주었다.

 

하여 이제 그 칼은 영원히 잠드노니

그것은 무사의 운명.

 

녹슬 수 없는 칼과

더이상 흐르지 않는 그의 눈물

 

 

대한민국의 제16대 대통령이자 나의 유일한 대통령인 노무현을 추모하며

2009. 5. 25. 一虎

 






1. *
제목은 이곳(김규항의 글)에서 따왔다.

2. 다른 곳에서 이미 말한 바, 그의 유서는 소설 칼의 노래에 나오는 이순신의 말 같았다.

3. 비슷한 맥락의 얘기가 이곳에도 있다.




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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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은 임기내내 지지율이 형편없었다. 임기 종반즈음에는 겨우 10%를 넘을 정도였다. 노무현은 이쪽에서는 친북좌파로 욕을 먹고, 저쪽에서는 신자유주의자로 욕을 먹었다. 모든게 노무현탓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그리고, 임기를 마친지 1 3개월. 그는 벼랑에서의 투신으로 인생을 마감했다. 나는 이 노무현 최후의 지지자 10%가 어쩌면 이 시대 진정한 소수자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우리 사회의 마이너리티의 전범이라 할 만했다. 가난한 집안에 고졸의 학력, 막노동경력과 사병으로서의 현역 복무. 흔하디 흔한 우리네 서민의 삶이다. 사법연수원 시절 동료 연수생들과는 달리 혼자 잠바를 입고 있는 모습은 마이너리티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듯 하다. 그의 마이너리티는 변호사가 되고 나서도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귀족적인 삶을 살 수 있었음에도 그는 인권변호사로서 거리의 민주투사가 되었고, 정의와 원칙을 위해 싸웠다.

그의 소수성은 정치인생에서 더욱 더 두드러진다. 정치인생에서 그는 대부분 소수파였고 때로는 혼자이기도 했다. 의도된 바도 있었고, 때로는 세상과의 타협을 거부한 결과이기도 했다. YS 3당합당을 했을때 그는 가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그에게는 YS의 회유마저도 없었다. 그는 YS를 따르지 않았다고 경상도에서 버림받았다. 그 후 그의 입지는 언제나 소수정당이거나, 1야당이었다해도 언제나 힘없는 소수였다. 경상도출신이라는 것이 이유였다. 그는 대통령후보가 된 다음에도 마이너리티의 신세를 톡톡히 맛봐야 했다. 지원은 커녕 안팎의 압력에 시달린 것이다. 나중에는 그 정당으로부터 탄핵을 소추받기까지 했다.

대통령이라는 자리에 올라서도 마이너리티의 모습은 사라지지 않았다. 소수파정권에게 주위환경은 적대적이었고, 귀족언론이나 재벌들은 그를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어느 누구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지지를 잃기 시작했다. 부자들에게서는 자신들의 돈을 뺐아간다고 버림받았고, 서민들에게서는 서민들의 말을 쓴다는 이유로 버림받았다. 진보진영에서는 왼쪽 깜박이를 켜고 오른쪽으로 간다고 욕을 먹었고, 보수진영에서는 좌파가 나라망친다고 욕을 먹었다. 귀족언론과 재벌귀족들은 미천한 출신이 대통령이라는 것을 봐줄 수가 없었다.

그는 대통령이 되어서는 아니 되었던 사람이다. 그와 같은 마이너리티가 대통령이 된 순간 이미 그의 비극은 예정됐던 것이다. 마이너리티는 감히 꿈도 꿀 수 없는 대한민국 제1시민*이라는 자리에 올라선 순간, 이 사회의 메인스트림이라 자부하는 파워엘리트들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그를 죽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력해진 그는 다시 또 옛 동지들에게서도 버림받았다. 그리고, 여기에 우리들 모두가 방관자로 팔짱을 끼고 있었다.

놀라운 사실은, 우리들 대부분이 사실은 힘도 없고 별로 가진 것도 없는 노무현과 비슷한 마이너리티라는 것이다. 우리들 마이너리티들은 노무현이라는 소수가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면서도, 그것이 우리 자신의 일임을 알지 못한다. 우리가 마이너리티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싫어서였을까? 아니면 노무현의 그 당당함 - 소수자임에도 언제나 당당하고 강한자에게도 굽힘이 없었던 노무현의 당당함 - 을 가지지 못한 우리들의 비굴함때문이었을까? 노무현 최후의 지지자 10%는 어쩌면 이런 마이너리티의 당당함을 사랑하고 이해한 진정한 마이너리티가 아니었을까.




2002
12 29일 오후 6시에 감격에 울었던 노무현 최후의 지지자가, 동지를 잃은 하루 뒤 비탄에 울며 쓰다.


* 고종석의 표현이다.
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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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마지막 편지를 보면 김훈의 '칼의 노래'에 나오는 이순신의 말을 보는 듯 하다.
행간마다마다에 얼음가루같은 눈물이 베어있다. 비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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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밖에 없다.

건강이 좋지 않아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 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화장해라.

그리고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

오래된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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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여, 김규항의 글이다. 무사의 죽음이라... 김규항은 노무현과 길이 다른 사람이나, 인간을 이해하는 것은 그 어느 누구보다 낫다 싶다. 노무현의 마지막 칼을 이해하는 자가 얼마나 되리....



어리석은 형과 아내와 자식들이 연루된 일로
복수를 노리던 오랜 정적들이 그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의 후원자들이 그를 팔았고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던 신문들은 역사적 책임이라도 질세라
“국민의 가슴에 못을 박았다”며 발을 뺐다.
절박한 상황 속에서 가장 신중했어야 할 측근들은
“생계형 범죄”니 “순수한 정치 보복” 따위 모자란 말로
그를 더욱 궁지로 몰아갔다.
노란 손수건을 든 모든 사람들은 단지 감정적이었으며
결국 그를 도울 아무 것도 남지 않았다.
절대 고독 속에서 그는 마지막 칼을 빼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모든 비루한 것들을 단번에 베어내고
“자연의 한 조각”으로 돌아갔다.
무사의 죽음이었다.
사람들아,
입에 발린 칭송도 싸구려 추억담도 잠시 접고
깊고 정중한 침묵으로 그 죽음에 예를 갖추자.






 

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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