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품

소선재에서 2009. 3. 9. 17:46
일요일엔 강민호와 그의 아내가 왔다. 저녁을 차려줬다. 감자전,된장국,쇠고기볶음,국수가 내가 준비한 메뉴였다.

강민호는 간단히 한다면서 전까지 부치느냐며 인사치레를 하는데, 사실 전이란게 어려운 것도 아니고 손이 많이 가는 것도 아니다. 된장국역시 배추시래기만 넣은 거라 간단한 것이었다. 

자기가 할 줄 모르면 일단 어려운 것이다. 그러니 어려운 것은 사실 어려운 게 아니라 낯설고 어색한 것이다.

그 간단한 요리를 강민호는 맛있다는 말과 함께 남기지 않고 먹었다. 일주일의 6일을 파스타와 토스트로 지낸다니, 반가움까지 더해서 맛이 배가되었을 것이다.

그 둘은 서른도 넘고 결혼도 훨씬 빠르나 아직 어리게만 보인다. 젊게 사는 사람들이서, 또 아직 아이가 없어서일 수도 있다.

내친김에 동생도 불렀다. 같은 메뉴에 다만 쇠고기볶음이 돼지고기볶음으로 바뀌었다. 아버지가 쓰던 필립스 면도기가 묵혀있던 차라 동생에게 줬다.

이십몇년만 있으면 나도 아버지가 면도기를 남기고 떠난 나이가 된다.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면 그리 긴 시간도 아니다. 동생에게 면도기를 건네주며 아버지것이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동생도 굳이 묻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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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부디스트도 아니고 따라서 불교에 대해서도 전혀 모른다. 또한 라즈니쉬니 도덕경이니 하는 것들도 전혀 알지 못한다.

그런데, 아내는 나보다 훨씬 더 '지금 여기'에 머물고 있는 사람이었다. 아내의 말로는 그것이 첫째가 태어나면서부터 현재 순간에 머물게 되는 트레이닝이 되었다는데. 지금 여기 이 순간에서 오직 할 뿐. 수많은 선사와 스승들의 가르침대로 아내는 이미 지금 이 순간에 전적으로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고보니 아내는 어느때부터 아무리 내가 짜증을 내도 화를 내지 않았으며, 무엇을 하고 싶거나 갖고 싶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나를 보며 안타까웠다는 아내. 그런데도 아내는 내게 잔소리는 커녕 한번도 가르치려하지 않았다. 오히려 어리석은 내가 아내를 깨우친답시고 들들 볶았었지.

나는 몰랐다. 아내가 나의 스승이 될 만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나는 말로만 떠들었으나 행동하지 못했고 아내는 말없이 이미 그렇게 살아오고 있었다.

아~ 아내의 위대함이여. 옆에 이런 스승을 두고 나는 어디서 찾아 헤맸던가 말이다. 전생에 아내는 나의 도반이 아니었을까 싶다. 나보다 더 뛰어났던 아내는, 나를 긍휼히 여겨 이번 생에 나를 도와주려 나와 결혼한게 아닐까?

진정 아내는 나의 스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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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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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철안에서

소선재에서 2009. 3. 3. 20:02

뒷자리에 한국남자 둘이 탔다.

"문법은 도통 도움이 안 되요. Spend 다음에 왜 wandering 이 나오는 건지, 도대체...."

"그 동사에는 ing형이 와요. 읽다보면 문법도 알게 되죠. Grammar in use 보세요"
"그것도 해 봤지만, 나는 책보다는 역시 사람하고 얘기하면서 깨우치게 되요. 이젠 스피킹에는 자신이 있는데, 리스닝이 안 되서"

문법을 싫어하는 남자의 목소리는 높고 들떠있고 빠르다. 듣기보다는 말을 한다. 책을 보라고 하는 남자는 가라앉은 목소리에 차분하고 말이 느리다. 상대방의 말에 동조하지 않는 완고함이 있다.

외국어에 왕도가 어디 있겠는가? 스피킹도 어렵고 리스닝도 어렵고 롸이팅도 어렵고 리딩도 다 어렵다. 굳이 따지자면, 리스닝이 있어야 스피킹이 있고 리딩이 있어야 롸이팅이 있다는 것 정도.

그래도 얘기하자면, 하면 는다고 할까? 예전보다는 읽는 속도가 조금 나아졌고, 답답한 마음도 조금은 줄어들었고, 듣는 것도 조금은 나아졌다. 말하는 건 잘 모르겠다. 말할 일이 없으니.

내릴때 한국남자 둘의 얼굴을 봤다. 역시 목소리와 얼굴이 같다. 완고한 목소리는 차분한 모습이었고, 높은 목소리는 지저분하게 꾸민 모습이었다.

영어하나 배우는데도 생김새를 못 벗어난다. 사람들은 알까? 무엇을 하건 자기에게 주어진 모습대로 살아간다는 것을. 나 역시 예외는 아닐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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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에 해야할 일이 여행과 연애라면, 10때 해야할 일은 배우는 일이다. 10대때는 아직 영글지 못한 때이고 모든 것이 유연한 때이다. 이 때는 배움을 위한 때이다.

배움이라고 해서 학교공부를 뜻하는 건 절대 아니다. 수학의 미적분 몰라도 인생 잘 살아가는 데에는 아무 지장없다. 도올 김용옥도 수학 못해서 서울대를 못 갔다. 하버드에서 박사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고 본인이 말했다.

10대때 할 일은 뭐든지 받아들이는 일이다. 아무 책이나 닥치는 대로 읽어라. 어느날 트럼펫음악이 멋있게 느껴지거들랑 트럼펫을 배워라. 기타,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대금, 아쟁.....하다못해 하모니카라도 좋다. 능숙하게 다룰 줄 아는 악기는 평생의 친구가 된다.

운동을 이때 배우면 평생 간다. 수영, 스키같이 기술이 필요한 운동은 이때 배워야 한다. 나이들어서는 배우기가 어렵다. 시간과 노력이 몇십배걸리고 몸에 익지도 않는다.

영화도 많이 봐라. 우선 아무거나 봐라. 책과 마찬가지로 보다 보면 눈이 뜨이게 마련이다. 음악도 많이 들어라. 10대들의 대중음악만 듣지 말고 다양한 음악을 들어라.

학교공부? 그건 그야말로 학교에서 하는 공부다. 교과서를 이해하면 그걸로 끝이다. 나머지 시간에는 세상을 공부해라. 10대때 세상을 공부하는 방법은, 책을 읽는 것이고 음악이나 미술, 스포츠를 배우는 것이다.

그리고, 20대에는 세상을 겪어본다. 여행이 그것이다. 그리고, 사람을 겪는다. 연애가 그것이다. 그것이 10대와 20대에 할 일이다.

학교성적과 내신, 학원과외와 입시공부는 인생이라는 마라톤에서 10대때 할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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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에 해야 할 일은 여행과 연애다. 공부도 아니고 취직도 아니고 대학진학도 아니고 돈벌이도 아니고 여행과 연애다.

여행은 세상을 알기 위해서 필요하고 연애는 사람을 알기 위해서 필요하다. 세상을 알고 사람을 아는 일, 20대에 하지 않으면 언제 하겠는가? 20대에 반드시 해야할 일은 여행과 연애.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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