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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양오행을 과학이랄 수 있는가?
(과학사상 1993. 봄여름호) 

* 이 글은 도올 김용옥선생이 과학사상 1993년 봄여름호에 권두논문으로 쓴 글이다

지난 3월 6일 밤 나는 여의도로 가는 자동차간에서 필립 코노와 재미난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나는 이날 코너와 예술의 전당에서 플룩수스 공연을 했다. 럿커스대학의 교수로 은퇴한 코너(Philip Corner, 1933 ∼)는 백남준을 통해 우리에게 알려진 플룩수스 운동의 대표주자 중의 한 사람이며 현대음악의 특이한 영역을 개척하여 구제적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플룩수스(Fluxus)란 헤라클레이토스의 플럭스(Flux)를 연상해 보면 그 어원적 의미를 확연히 알 수 있듯이, 어떤 고정적 룰을 거부하며 가능한 소리(noise)를 모두 음악의 대상으로 삼으며 또 때로는 디컨스트럭션 그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는 예술운동이다. 이 날 딕 히긴스(Dick Higgins)와 제프리 헨드릭스(Geoffrey Hendricks)의 공연이 있었고 코너와 나는 플룩수스와 오랜 교분은 없지만 내가 최근에 펴낸 책《石濤畵論》속에서 백남준의 예술과 그가 속한 플룩수스의 역사적ㆍ철학적 성격을 논구한 것이 계기가 되어 이들과 인연이 생겼다. 그들이 추구하는 임의성(randomness)은 《周易》에 뿌리를 둔 것이고, 그들의 아나키즘은 老子의 ‘無爲’에서 그 근거를 찾은 것이다.

코너는 나에게 요즈음 자기 유럽친구들이 14음계음악이나 25음계음악이니 하고 컴퓨터로 작곡하고 또 세밀한 음을 합성해 내곤 하는데 다 개지랄 같은 것이라고 했다. 자기는 한국사람들의 5음계음악이 훨씬 더 심플하고 듣기 좋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컨템퍼러리 전위음악에 달통한 그로서는 서양의 전위적 시도를 좋아할 것 같은데 한국의 전통 5음계를 좋다고 말하는 그의 태도는 나에겐 약간 의외였다.

아무 줄이나 팽팽하게 해놓고 두 점을 고정시키고 튕기는 소리에 대하여, 그 반을 잡고 튕기면 항상 정확하게 한 옥타브가 올라간다. 다시 말해서 한 옥타브의 음가란 인간이 인위적으로 정한 것이 아니라 자연의 질서(the Order of Nature)이며, 이 자연의 질서란 제일성(Uniformity)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東이나 西, 古와 今을 가리지 않는다. 예나 지금이나 아프리카에서나 잉글랜드에서나 제주도에서나 모두 이 옥타브라는 음가는 不變의 절대치다.

그런데 음계란 이 옥타브라는 음가를 나누는 방식에 관한 것이다. 이 음가를 다섯으로 나누면 5음계요, 일곱으로 나누면 7음계요, 스물다섯개로 나누면 25음계다. 그러나 음악이란 명백한 또 하나의 전제를 가지고 있으니 그것은 사람의 ‘귀(Ear)’라는 것이다. 귀란 고막(tympanium)과 중이, 내이 등으로 구성된 진동과 증폭과 신경전달장치인데, 이 귀(auditory system)에 의하여 분별가능한 비율의 소리를 인류는 음계로 채택해 왔던 것이다. 그런데 이 제한된 음가를 많이 나누면 나룰수록 정교한 음악이 될 것이 같지만, 사실 5음계음악이라 해서 그 다섯 배가 세밀한 25음계 음악보다 덜 복잡하고 따라서 유치한 음악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아무것도 없다. 인간의 가칭성(audibility)은 분명 생리적 한계가 있는 것이며 5음계로 이루어진 음악이라 할 지라도 무궁하게 복잡한 멜로디나 리듬이 가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하튼 우리의 논의를 쉽게 해본다면, 베토밴의 바이올린 콘체르토나 김소희의 창이나, 그것이 7음계에 기초했건 5음계에 기초했건, 하여튼 음악은 다 같은 음악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동굴 속에서 타악기를 두드렸던 원시인이나, 바로크 궁전에서 정교한 바이올린을 켜는 근세유럽의 악사나, 컴퓨터로 둘러싸인 스튜디오에서 정교한 음악을 만들어 내고 있는 현대음악 작곡가나, 인간의 청각이라는 절대적 한계를 전제로 하고 있고, 또 청각 그 자체의 가청성은 음의 진화를 따라가지 않는 무진화적 그 무엇이기 때문이다.

나는 과학이라는 것을 제대로 공부해 본 적이 없다. 그래서 과학이 무엇인지를 잘 모른다. 더구나 중ㆍ고시절에 수학을 모조리 빵점만 받은 경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지금 아무리 과학공부를 하고 싶어도 과학을 이해할 수 있는 기초가 없다. 그래서 사실 나는 음양오행이 과학이냐 아니냐를 따질 자격이 없다. 과학이 뭔지를 정확히 알아야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기준이 설 수 있을텐데, 나에겐 그 정확한 기준, 즉 ‘과학관’이 부재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런 글을 쓸 수가 없다고 했다. 그런데 나의 장형 김용준이 과학사상이라는 잡지의 편집인이라서 나에게 쓸 수 없는 글을 강요한 것이다. 조르고 졸라 거의 강압적으로 쓰라고 했다. 그래서 쓰고 싶지 않은 글을 억지로 쓴다. 나는 여태까지 쓰고 싶지 않은 글, 남에게 부탁받아 쓰는 글, 써서는 안 되는 글을 써 본 적이 없다. 이 글은 아마 내 인생에서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쓰는 강요된 글, 쓰고 싶지 않은 글이 될 것이다. 하룻밤을 지새우며, 노모가 눈물겨웁게 부탁하시는 조상비문 쓰는 일도 미뤄놓고 억지로 붓을 옮긴다. 독자들에게 미안할 뿐이다.

한의과 대학을 다녀보니, 학교 커리큘럼에서 무분별하게 던져지는 강의 내용이 그것을 수강하는 동일한 실체인 나에게 과연 어떻게 해석되어야 할 지를 형량할 수조차 없는 사이에 넘어가 버린다. 화학개론시간이나 생화학시간에는 아톰에 대해서 배우고 주기율표에 대해서 배우고 또 단백질의 3차구조에 대해서 배운다. 그리고 한의학원전시간엔 오행에 대해서 배우고 한방생리나 병리시간엔 오행에 의한 장상(臟象)이론에 관해 배운다. 이 양자를 배우는 시점은 모두 20세기 최종 데케이드며, 또 가장 최신의 후마니타스 교육체제 내에서 현시과학이론으로서 양자를 같이 배우고 있는 것이다. 고등학교만 나온 한의대생들이 비록 커트라인을 300이 넘어다고 하지만 수소니 우라늄 운운하는 100여 개의 원자와 금ㆍ목ㆍ수ㆍ화ㆍ토라 하는 다섯 개의 오행의 문제를 도대체 어떻게 동일한 의과학(Medical Science)이라는 장(field)속에서 받아들이고 해석하고 있는지 나는 알 수가 없다. 아마 그들은 나보다는 갈등을 느끼지 않는 진화된 천재들일 것이다. 호모사피엔스는 네안데르탈인 이후로도 꾸준히 진화하고 있으니깐-.

인류가 우발적인 계기로 언어를 갖게 되었고 , 언어를 갖게 된 이후로는 즉 대뇌피질의 언어중추가 발달된 이후로는 어떠한 개념을 통하여 자기가 살고있는 세계 (Environment=World=Welt)를 해석하지 않으면 안 되는 운명을 지니게 되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나타난 우주는 무지하게 복잡한 것이었다. 복잡(complexity)의 극치는 혼돈(choas)이다. 혼돈이란 ‘언어 이전(pre logicality)’이다. 혼돈 속엔 논리가 있을 수 없고 느낌(Feeling)만 있다.

그런데 이 혼돈을 깨고 나온 것이 언어요. 개념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언어의 발생 이후에도 역시 우주는 매우 복잡하게 나타났다. 나무를 나무라 했어도 나무라는 개념으로 다 규정해 버릴 수 었는 나무의 실상(實相)이 있다. 현상(apperance)은 개념으로 다 정리가 될 수 없었다. 그래서 이 복잡한 것을 단순한 것으로 환원시켜 설명하려는 노력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그들에게 있어선 유일한 방법이었다. 즉 복잡한 것을 단순한 것으로 환원시키는 방법 이외의 딴 방법으로는 자기들이 살고 있는 세계를 설명할 길이 없었던 것이다. 나는 이러한 모든 생각의 방향을 통틀어서 환원주의(Reductionism)라고 부른다.

그러니깐 화학개론시간에 화학선생님이 가르쳐주시는 주기율표 속의 103개의 원자나 한의학 원전시간에 한방선생님이 가르쳐주시는 5개의 행(行)이나 나는 모두 내가 말하는 환원주의의 소산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그래서 나는 한의대 수업 받는 책상머리에 앉아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물론 이런 생각은 내가 워낙 무지하기 때문에 해 본 생각일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를 103개로 환원시켜 설명하는 발상에 과학(science)이라는 말을 서슴치 않고 붙일 수 있다고 한다면, 그와 같은 동일한 논리에 의하여 이 세계를 5개로 환원시켜 설명하는 발상도 서슴치 않고 과학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5음계로 짓든 25음계로 짓든 다 음악은 음악이지 않는가? 그러나 실상 이런 말을 정당화(justification)하는 작업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하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최소한 이 세계를 103개로 환원시켜 설명하는 발상을 뒷받침하고 있는 인식의 구조를 재배하는 논리에 상응되는 논리가 5행에 있어서도 마련되어 있지 않으면 그것은 금방 비과학(pseudo-science)으로 간주되어 버리고 만다. 현대인들은, 그리고 최소한 이 글을 읽는 고명하신 지식인들은 그렇게 훈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5행을 말하는 자들은 매우 설득하기에 이미 불리한 대상을 갖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앞의 문장에서 ‘논리에 상응되는 논리’라 한 구절의 ‘상응성’의 실내용이 과연 무엇인지, 그 정도를 가늠질하기가 매우 어렵다. 한 논리를 구성하는 요소는 신택스나 시맨틱스, 모폴로지, 포놀로지, 그리고 세미오틱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측면이 있을텐데, 단순히 신택스(통사론)만을 가지고 얘기한다면 몰라도 그 이상을 넘어 시맨틱스(의미론) 등등까지 운운케된다면, 즉 그 상응성의 구조가 한 문장을 구성하는 어휘의 의미에까지 미치게 된다면, 사실 이 양자의 과학을 상응시키는 작업은 실제로 블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더 싑게 말하면 103개 아톰의 논리를 구성하는 어휘와 같은 어휘로써 5행을 말해야 과학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상응성(correspondence)이라고 말한다면, 사실 나는 이 글을 써야 할 하등의 이유를 발견치 않는다. 그 이상으로 넘어가 버리면 과학의 문제가 아니라 언어의 권력의 문제가 되어 버릴 것이며, 과학 자체의 정치성의 영역이 되어 버릴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치란 쎈놈이 왕땅이다. 과학적 진리도 쎈놈이 말 많이 하면 진리가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의‘과학’이라고 부르는 인식체계에 적응되어 있는 인식구조를 지닌 다수가 존재하는 세계에선 그 이외의 인식은 비과학으로 되어버릴 수 밖에 없는 것이며, 이 비과학이 어떤 어휘를 구사하든지간에 그것은 과학에 상응하는 어떤 논리로 받아들여질 수가 없을 것이다. 최소한 나는 이 《과학사상》잡지의 독자들은 그런 무지막지한 사람들은 아닐 것이라는 희망 때문에 이 글을 쓴다.


그런데 내가 이런 으름짱을 놓기 전에 이미 사계에 정통하고 있는 과학자들이나 과학사가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현대 생화학이나 분자생물학이 말하는 핵산이나 단백의 원자ㆍ분자를 어떻게 한의학이 말하는 5행과 동일한 과학의 디멘젼에 가져다 놓을 수 있는가? 서양에서도 이미 존 달톤(John Dalton, 1766∼1844)이 근대적 원자론(morden atomism)을 확립하기이전에 로마의 루크레티우스(Lucretius)라든가 희랍의 레우키푸스(Leucippus)나 데모크리투스(Democritus)가 철학적으로 원자론을 다 정립해놓았고, 5행이란 기껐해야 그 원자론 이전의 엠페도클레스의 4원소설 단계의 것일 뿐이며, 엠페도클레스의 4행설 이전에는 탈레스의 水1행설까지 올라갈 판이다.
그렇다면 5행이론과 단백의 분자구조를 동일과학의 차원에서 얘기한다는 것은, 동ㆍ서로 얘기할 필요가 없이, 서ㆍ서로 얘기해도 왓슨과 트릭의 혤릭스구조를 엠페도클렉스의 네뿌리(Four Roots)설과 같은 차원의 과학으로 얘기하라는 꼴이 될 것이니 어디 말이나 될 얘긴가? 철학도들의 형이상학적 달변으로는 적당히 구라가 통할지 모르겠으나 우리 과학도들의 입장에선 엠페도클레스의 프레그먼트를 크릭의 연구논문과 같이 취급하라는 것이니 도무지 얘기가 되지 않는다. 이러한 논박은 사실 매우 정당한 것이며 또 매우 상식적인 것이며, 누구든지 이러한 논의에 대하여 정확한 답변을 하지 못한다면 오행의 과학성은 어떠한 방법으로든지 입증될 길이 없을 것이다. 즉 음양오행 운운하는 것은 별종의 과학(a different Kind of science)이 아니라, 전근대적 과학 즉 과학 이전의 지식체계에(pre-scientific knowledge)에 지나지 않을 뿐이라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반론에 적극 찬동한다. 허나 이러한 반론의 주창자들이 얼마나 무식한 자들인가 하는 것을 나는 동시에 알고 있기 때문에 항상 가슴이 갑갑한 것이다.


불란서의 현대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Bachelard, 1884∼1962)는 불의 정신분석 등의 저술을 통해, 그 자신이 화학 물리에 정통한 현대과학의 소양을 지녔으면서도 엠페도클레스의 4원소설적 세계관을 회복하는 길만이 인류를 현대과학의 폭력으로부터 구원하는 길이라고 외쳤다. 허나 나는 지금 치사하게 바슐라르의 엠페도클레스적의 세계관의 정당성 주장을 빌어 간접적으로 오행적 세계관의 정당성을 입증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5행관이 엠페도클레스의 4원소설과는 얼마나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며, 다른 인식론적 기반 위에서 있느냐 하는 것에 관한 것일 따름이다. 엠페도클레스의 4원소설은 바슐라르가 회복되어야 할 것으로 외치고 있는 골동품일 뿐인데, 어떻게 5행은 아직도 당당히 20세기 길거리에서 하나의 과학으로서 외쳐지고 있는가?

다시 말해서 어떻게 해서 엠페도클레스는 후대의 이론에 의해서 부정당하고 무당짓거리 고대사상으로만 남아 있는데 반해, 5행은 20세기에도 동아시아 문명권에서만 아니라 구미 문명권 속에서조차 한의과대학이라고 하는 체제를 유지하는 정도의 지속력을 가질 수 있느냐? 하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허나 우리는 바슐라르를 읽을 때 다음과 같은 그의 착상에 주의를 요할 필요한 있다. 그가 말하려는 것은 현대과학을 버리고 엠페도클레스의 地ㆍ水ㆍ火ㆍ風에로 복귀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火를 일례로 들자면, 우리가 지금 보통 불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것을 생각해 보자! ‘불’은 언어다, 즉 언어적 개념이다. 이 언어는 지칭하는 대상성을 갖는다. 비트겐슈타인은 언어는 사물의 지도같은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 지도의 모습은 우리의 인식이나 관념의 변천에 따라 역사적으로(diachronically) 변한다는 것은 누구든지 아는 것이다. 소쉬르(Ferdinand de Saussure,1857∼1913)는 불행하게도 현대 언어학의 대상으로서 언어의 통시적 구조를 제외시키고 공시적 구조만을 문제삼았지만, 우리의 논의에 있어선 통시적 구조야말로 관심의 대상이 아니 될 수 없다.

사실 우리는 상식적으로 불(fire)이라 하면 밥해먹을 때 태우는 가스불이나 소방서차가 와서 끄는 활활 타는 불, 성냥으로 그어대어 일어나는 불, 그런 불만을 불이라고 외연적으로 지칭하고 있지만 이러한 불에 대한 인식은 이미 불이라는 우리의 언어를 규정하고 있는 세계관의 소산일 뿐이며, 이러한 불의 상식적 규정은 과학적 엄밀성이라는 근대 세계관적 그리고 광물학적 화학적 인식에 의하여 끊임없이 그 외연이 축소되어 온 결과라 아니할 수 없다.

우리의 언어를 살펴보면, ‘불같은 정열’이라고 할 때 정열로서의 불이라든가, ‘울화가 치민다’라고 할 때의 화라든가, ‘화가 났다’ ‘홧병이 났다’라고 할 때의 화, 그러한 불을 저기 활활 타는 불과 같은 실체로서 파악하는 능력을 어느 시절엔가 상실해 버림으로써 과학이라는 어떤 면허증을 땄을지도 모른다. 허나 고대인들의 언어의 지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는 같은 불이라는 말이라 할지라도 그 외연이나 내연이 모두 다른 것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지도(topology)가 다르다는 것은 지도제작기술이 변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곧 인식의 방법(epistemology)이 다르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 것이다.

저기 벽난로에서 훨훨 타는 불을, 격렬한 산화(oxidation)작용의 표현이라고 한다면, 원자폭탄에 대해 원자로가 있듯이, 우리 몸 속에선 200개가 넘은 다양한 산화환원효소(oxidoreductase)에 의해 다수의 유기물이나 무기물이 산화환원되어 그것에 의하여 필요한 물질을 합성하고, 불필요한 유해한 물질을 대사하고, 또 생활에 필요한 에네르기를 획득하는 작용이 있을 것인데 이러한 작용을 총칭하여 불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ATP가 방출하는 에너지도 불이며, 무리 몸에서 따끈하게 느껴지는 체온도 불이다. 결렬한 자연의 과정을 효소를 이용하여 느리게 만든다고 그것이 불이 아닐 까닭이 없다. 고대인들이 저기 저 하늘에서 훨훨 타고 있는 저 불덩어리인 태양을 불이라 생각했고, 또 그 태양이야말로 神이라고 생각했다면, 하나님은 곧 불일 것이요, 불은 곧 빛이니 하나님은 곧 빛이 될 것이다. 그리고 천지에서 가장 무제약적 에너지를 일방적으로(피드백이 없이) 발출하는 저 태양이랴말로 불이라 한다면, 나의 인체라는 우주(宇宙)에서 에너지의 가장 직접적인 보고인 피를 계속 순환케 만드는, 일순간도 쉼이 없는(잠잘 때도 깨어 있을 때도,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가지 한순간의 쉼도 없는 것으로 촉각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것) 심장을 저기 저 태양과 동일한 것으로 생각하고 불이라 생각한 것도 쉽게 이해가 갈 것이며, 따라서 내가 존재한다고 하는 生命力(Life Force) 그 자체를 불이라 생각할 것은 뻔한 이치다.

그렇기 때문에 몸에서 이 불을 어떻게 다스리느냐? 잘못하면 너무 심하게 활활 타버리고 잘못하면 피직피직 꺼져 버리고 마는 이 불을 어떻게 항상적으로 유지하느냐 하는 것을 의사의 임무로, 인간의 삶의 기본철학으로 생각한 것도 이해가 가는 일이다. 이 불의 균형이 깨져 불이 활활 타는 현상을 감정과 관련시켜 울화가 치민다든가 성화가 났다라고 표현한 것도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뿐만 아니라 내 몸에 불이 있고 그 불이 내 몸의 생명력이라고 한다면 저기 저 산천초목 속에도 생명이 있는 이상 불이 있을 것은 뻔한 이치다. 따라서 고추나 생강을 깨물 때 화끈하게 달아오는 매콤한 맛을 그 생명체의 불이라 생각한 것도 당연한 것이며, 이 불을 내 몸에 집어넣어 내 몸의 불을 어떻게 관리하느냐 하는 것을 생각한 본초학적 발상도 결코 이치가 없는 엉뚱한 짓만은 아니다.


엠페도클레스가 말하는 地水火風의 火든 五行의 金木水火土의 火든지를 막론하고 이런 고대 철학적 어휘를 대할 때는, 암암리에 우리가 상식적으로 쓰고 있는 현대적 어휘의 의미론에 입각하여 그 고전을 해석해 버리고 마는 해석학적 상상력의 빈곤(the poverty of hermeneutical imagination)이야말로 바로 과학적 사유의 초보를 좌절시키는 현대 과학도들의 우매성이라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바슐라르가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과학의 역사적 내용이 아니오, 과학의 본질에 관한 것이다. 그가 말하는 과학이란 바로 아니오를 말할 수 있는 철학(philosophy of saying ‘no’)이다.

과학이란 인간과 우주를 포함한 완정(完整)한 진리(total truth)앞에 항상 개방되어 있어야 하는 것이며, 이 완정한 진리는 이성과 감성의 이분을 허용하지 않는다. 과학은 항상 새로운 경험의 토대 위에서 재형성되고 재조직(reformulation)되는 사태를 두려워할 수 없다. 다시 말해서 과학은 이성의 엄밀성 뿐만 아니라 자유로운 상상과 환상의 느낌까지도 수용해야만 하는 것이다.

오늘날 현대과학이 오행적 인식으로 진입하는 데 최대의 난관의 되고 있는, 바로 이러한 개념적 엄밀성이라는 미명 아래 상상력의 빈곤 속으로 함몰되어 있다는 사실인 것이다. 그리고 부분적인 진리의 엄밀성은 확보했을지 몰라도 전체적 진리의 포괄성을 인식하는 데 너무도 인색한 꼴을 보이고 있다.

나는 과학의 궁극적 임무가 상식의 분석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나 종종 나에게 나타나는 과학의 모습은 너무도 명백한 상식의 거부다. 그리고 이러한 상식의 거부가 더 큰 상식을 창출하기 위한 과정적 단계(transitory steps)로서 이해된다면 관용될 수 있는 것이나, 특히 의과학(medical science)의 분야에 있어선 그러한 상식의 거부가 부지불식간에 수많은 사람을 살해하는 처참한 죄악까지도 저지를 수 있다면 그것이 아무리 과학적인 언어를 뒤집어쓰고 있다 해도 그것은 확실히 과학이 아니 것이다.

엠페도클레스의 4원소설, 地水火風에 대해 아리스토텔레스가 엠페도클레스야말로 4원소설을 주장한 최초의 사람이며 그의 4원소설은 알고 보면 4원소설이 아니라 火를 하나로 보고 그에 대립하는 地ㆍ風ㆍ水를 하나로 보는 2원소설이다라고 그의 유명한 ≪형이상학≫에서 언급하고 있기 때문에 엠페도클레스의 독창성을 아무도 의심치 않았다. (Empedocles, then, incontrast with his predecessors, was the first to introduce the dividing of this cause, not positing one source of movement, but different and contrary sources. Again he was the first to speak of four material elements; yet he does not use four, but treats them as two only ; he treats fire by itself, and its opposites - earth, air, and water - as one kind of thing. we may learn this by study of his verses. ≪Metaphisics≫ 985a 31.)

하지만 이 4원소설의 발상은 이미 엠페도클레스이전의 피타고라스학파의 수리 형이상학에 내재하고 있었으며, 특히 피타고라스학파에 속한 의가였던 크로톤의 알크메론(Alcmeaeon of Croton)의 건강론, 즉 寒(cold)ㆍ熱(hot)ㆍ燥(dry)ㆍ濕(wet)이라는 대립적 힘 사이의 균형에 의하여 건강을 설명하는 방식의 문제가 지수화풍과 결합할 때 소위 체질이라는 것이 생겨나며, 이것이 나중에 플라톤과 동시대였던 히포크라테스(Hippocrates, c, 460 BC∼c. 377B.C. )의 체액체질론으로 발전되는 것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사실 앞서 인용한 아리스토텔레스의 구절에서 火 : 地風水 二元의 논리맥락은 엠페도클레스와 헤라클레이토스의 어떤 논리적 연결을 강력히 입증하는 것이지만 하여튼 이 地水火風의 이해방식의 다단함을 보여 주는 것이다.

고대인들의 세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는 넓게 교류되어 있었다. 엠페도클레스의 地水火風에 대해 우리같은 동아시아 문명권의 대선배인 12세기 朱熹(1130∼1200)가 명료한 코멘트를 이미 남기고 있다는 사실은 그리 놀라운 것이 아니다. 주자는 地水火風에서 地水를 땅적인 것으로 보아 인체에 있어서의 魄(P'o)의 문제와 결부시켰다. 魄이란 요즈음 말로 하면 인간의 몸에 있어서의 엔트로피의 증가현상이며, 魂이란 엔트로피의 감소현상이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죽음이란 魂에 대한 魄의 완전한 승리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風火가 먼저 흩어져 버리고 나서 서서히 地水가 흩어지게 되면 평온하다. 허나 地水가 먼저 흩어지게 되면(불시의 사고로 몸이 먼저 상하여 죽는 케이스를 말함) 그것은 액을 불러일으키는 귀신(崇)이 되게 마련인 것이다. 이것은 엠페도클레스의 地水火風에 대한 朱子의 천지코스몰로지적 이해방식이다.

엠페도클레스의 4원소설은 인도의 상키야철학(Samkhya)과 공통된 세계관을 표방한 것이며(그 역사적 先後나 구체적 영향관계를 가리기는 어렵다). 이것은 불교의 四大說(maha-bhuta)을 통하여 중국에 수입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상키야철학이 인도문명에 있어서 아유르베다(Ayurveda)라는 거대한 의학체계를 성립시켰으며 현대사회에 있어서도 완벽한 연속성을 지니는 아유르베다 의과대학이 인도사회에는 의료문화의 중심으로서 자리잡고 있다.(아유르베다 의학도 매우 구체적인 체질론에 입각한 토탈 헬스케어 시스템인데 여기서는 주제가 너무 방만하여지므로 생략한다.)


희랍철학은, 특히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Pro-Socratic Philosophy)은 파르메니데스라는 무당을 하나의 분수령으로 해서 그 이전과 이후로 양분된다. 그 만큼 파르메니데스의 철학은 그 이후 철학자들에게 있어선 극복하지 않으면 아니 될 하나의 충격이었으며, 또 그들의 사유체계에 있어서 고려하지 않으면 아니 될 근원적 실재의 문제를 제기하였다. 파르메니데스는 희랍인들에게 현상과 실재의 차이를 처음으로 인식시켰으며, 감관에 나타난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는 추상적 사유를 출발시켰다. 그에게 있어서 감각적 우주는 환상이었으며, 실재하는 것은 不變 不滅의 영원한 정태로서의 실체였다. 그리고 그의 사유체계 속에서는 허공(empty)조차 인정되지 않았다. 비존재가 존재일 수는 없었다. 우리는 희랍철학의 대세를 결정한, 아니 서양철학이 바로 그의 푸트노트에 불과하다고 화이트헤드가 말했던 플라톤이 바로 헤라이클레이토스의 제자가 아니라 파르메니데스의 제자라는 사실을 확연히 기억해야 한다.

파르메니데스의 핵심은 不變과 不滅이었고 이러한 영원의 철학은 바로 그가 거스리(W.K. Guthrie, A History of Greek Philisophy, Ⅱ/11 ff)나 엘리아데(Mircea Eliade, Zalmoxis. pp. 38∼42)가 파르메니데스의 정체가 바로 지중해 연안의 무당문화 속에서 료해되어야 한다는 것을 명백히 지적한 사실에서부터 이해해 들어가야 할 것이다. 남부 이태리에서 태어나 성장한 파르메니데스는 우리가 주변에서 보는 무당과 같이 땅의 세계를 벗어나 저곳에서 자유로운 영매적 여행을 아닐 수 있는 영혼의 소유자였던 것이다. 파르메니데스와 헤라이클레이토스는 동시대임이 분명하나 서로의 생몰연대를 정확히 규정하기는 어렵다. 허나 두 사람을 비교하여 여러 측면에서 고찰컨데 헤라클레이토스는 파르메니데스 이전 철학자로 간주됨이 분명하다. (Philosphically Heraclitus must be regarded as pre- Parmeenidean. Guthrie, ibid, Ⅱ/1.)

파르메니데스 저작 속에서는 헤라클레이토스의 사상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으나 헤라클레이토스의 단편 속에서는 파르메니데스의 그림자도 없다, 이 에베소의 철학자의 핵심은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변화와 생성의 철학이며, 투쟁의 철학이다. 흔히 얘기되는 ‘판타레이’라든가 ‘불’의 상징성만으로도 헤라클레이토스의 철학은 충분히 대변될 수 있다. 그리고 탈레스의 水論으로부터 헤라이클레이토스의 火論에 이르기까지 여러 환원주의는 자연철학(natural philosophy)이라는 하나의 공통된 현상주의를 깔고 있었다.

나는 헤라클레이토스의 로고스관도 후대의 희랍철학적 발상에 윤색되어 그것을 변화에 대한 불변자로 간주하는 해석방법을 거부한다. 헤라클레이토스의 로고스는 기껏해야 라오쯔(老子)가 말하는 ‘道’ 이상의 것은 아니며, 그것은 ‘불의 길’이지 불을 지배하는 초월적 불변자가 아니다. 파르메니데스철학의 불변주의는 결국 헤라이클레이토스의 변화철학에 대한 반동이며 그것은 다시 빼낼 수 없었던 불변의 쐐기였으며 이로써 인류사상사에 있어서 동과 서가 확연히 분립되는 결정적 계기가 마련되었던 것이다.

헤라클레이토스와 엠페도클레스 양자를 파르메니데스를 중심으로 그 이전과 이후를 대변하는 사상가로 본다면 엠페도클레스의 철학적 과제는 바로 파르메니데스의 불변의 쐐기를 계승하면서도 어떻게 헤라클레이토스가 표방한 상식적 생성의 시공계를 허상이 아닌 실상으로서 살려낼 수 있는가하는 문제의식으로 집약될 것이다. 따라서 엠페도클레스의 철학적 해결방식은 파르메니데스의 불멸성은 받아들이되 그의 존재론적 일원론을 버리고 다원론의 길을 택하는 방식이었다.

엠페도클레스가 4원소라고 했을 때 원소라는 말은 희랍어로 ‘뿌리’라는 말이다. 이 뿌리라는 말은 곧 나타난 현상에 대해 그 뿌리로서의 불멸ㆍ불변의 궁극적 실재라는 뜻이다. 이 궁극적 실재는 다원적이기 때문에 이 다원적 실재의 이합집산의 다양한 방식에 의하여, 그리고 그 양적 비례관계에 의하여 다양한 현상이 실존하게 된다고 본 것이다. 피타고라스적인 水論이 첨가된 것이다. 뼈는 地둘, 水둘, 火넷으로 구성된다. 이러한 사유의 맥락속에선 실재로 변화를 상정할 필요가 없다. 변화는 불변의 실재의 이합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므로 유일한 실재는 이 四根(four root-substances)이다.

이렇게 해서 현상자체의 관심보다는 현상을 이루는 영원한 요소에 관심이 옮겨간 것이다. 이러한 불변의 요소성은 결국 다원론의 불철저성을 극복하기 위하여 일원론으로 심화될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궁극적 실재의 질적 차이를 인정할 필요가 없는 동질적 요소성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이 동질적 불변의 요소성이 바로 레우키푸스나 데모크리투스의 원자론으로 표현될 것이라는 것은 사계의 관심있는 학인들은 다 아는 일이다.


자아! 내가 여기서 말하려고 하는 것은 희랍철학사의 강론이 아니다. 단지 서양철학이나 과학의 뿌리로서의 희랍의 四根說이나 原子論이 모두 파르메니데스의 不變의 철학의 소산이라는 것이며, 바로 이 때문에 그것이 근대적 아토미즘으로 비약되면서 포기될 수밖에 없는 운명에 놓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서양의 4원소설은 어떠한 경우에도 동양의 오행설과 애초부터 같이 비교될 수 없는 것이며 근원적으로 인식론적 틀을 달리하고 있다. 따라서 그러한 원자론적 틀이 근세에 와서 어떠한 양태로 새로운 언어를 구축했다 할지라도 그러한 언어를 구축했다 할지라도 그러한 언어를 지배하는 인식의 틀은 파르메니데스나 엠페도클레스의 연속선상에 서 있는 것이며 이러한 인식론적 틀에서는 영원히 오행론의 정체는 드러날 길이 없다는 것을 명기해 두려 한다.

나는 지면의 제약으로라는 말을 매우 싫어하기 때문에 명백한 제약을 지니고 있는 이런 잡지글을 쓰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이제부터 오행과 음양을 얘기해야 할텐데 이미 말할 수 있는 지면이 사라져 버렸다. 단지 축약된 암시와 묵시만으로 이 글을 마칠 수 밖엔 없다.


五行論이 오늘날까지도 서양의 식자와 우리 나라의 과학도들에게 곡해되거나 이해가 되지 않고 있는 이유는 바로 五行의 行이 희랍의 四根說에서 오늘날의 DNA 논의에 이르기까지 그 연구의 틀을 지배하고 있는 ‘불변의 요소성’을 의미하는 것이 전혀 아니라는 사실이 일차적으로 정확하게 감지되고 있질 않기 때문이다.

金木水火土란 원소가 아니며, 요소도 아니다.
五行의 行이란 문자그대로 ‘감(going)’이다.

오행의 출발은 오늘의 高文子學이나 古文獻學, 그리고 考古學의 최신 연구성과에 비추어 이야기하자면 바람의 신앙에서 출발된 것으로 사료된다. 물론 희랍어 신약성서에도 바람을 성령이나 영적인 신성과 동일시하는 용례가 있다. 고대인들에게 있어선 바람이란 물리적 기류현상이 아닌 자연의 영적 힘을 의미했고 그것은 신적 존재의 현현(manifestatioa of divine Power)이었다. 그리고 古代중국의 河北 농경문화에 있어선 바람이라는 신적 존재의 성격이, 즉 바람의 溫ㆍ 署ㆍ凉ㆍ冷ㆍ乾ㆍ濕이 농작물(생명의 근원)의 發芽ㆍ生長ㆍ守護ㆍ貯藏과 유기적 관련을 맺고 있었다.

바람은 실상 존재(Being)가 아니다. 바람은 동적 상태며, 그것은 현현이며, 또 그 자체는 가시적인 것이 아니다. 바람에 있어서 가장 쉽게 감지되는 것은 방위였다. 東風ㆍ西風ㆍ南風ㆍ北風등, 이 바람의 방위는 생성의 단계를 규정했다. 東風이 불 때는 모든 생물이 발아하고 봄이 온다. 南風이 불 때는 무덥고, 西風이 불 떄는 선선하고 가을이 오고 北風이 불면 추위가 닥친다. 이러한 바람에 제사 지내는 社稷의 社壇을 中央土로 하여 東木, 南火, 西金, 北水의 五行이 성립해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 바람의 성격에 따라 東=靑, 南=赤, 西=白, 北=黑, 中央=黃의 五色이 결정된 것이다. 이 五色이야말로 五方神의 상징이였으며 이것이 후대에 五行사상으로 발전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五行사상의 발전은, 그러니까 체계적 코스몰로지로서의 五行의 개념은 결코 全國末期를 상회하지 않는다.


그런데 엠페도클레스로부터 히포크라테스를 거쳐 갈레노스(Galenos,A.D,129∼c.199)에 이르러 완성된 희랍의 4원소설은 체액론(humor theory)에 기초한 인체론만을 잉태시켰으며, 장기론은 해부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베살리우스(Vesalius,1514∼1565)이후에나 등장하게 된다.

하지만 五行사상은 이미 기원전 세기, 그러니까 前漢代에는 확고한 장상론을 확립하게 되며, 그것은 또 기의 흐름이라고 하는 五行的 장상론과 무관치 않은 經絡체계(Meridian System)를 잉태시키기에 이른다. 경락도 기의 오감이며 그것은 바로 行인 것이다. 그런데 이 行이 서양의 요소론과 전혀 성격을 달리하는 것은 우선 ‘불변적 존재성’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며, 그 존재에 앞서 相生ㆍ相克이라고 하는 어떤 관계성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존재가 먼저 실체적으로 있고 나서 그 실체들 사이의 관계가 生ㆍ克으로 규정된다는 뜻이 아니라, 生ㆍ克이라는 관계에 의하여 그 실체성 그 자체가 규정되고 확인될 뿐이라는 것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水生木이라는 관계가 중요한 것이며 이 관계를 도외시한 水와 木이라는 실체의 존재성은 전혀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水生木에 있어서의 水와 木은 水生木의 관계를 규정하는 기능적 허상일 수도 있다. 역사적으로도 五行論의 출발은 相生ㆍ相克의 관계로 나타났던 것이며, 불ㆍ쇠ㆍ나무ㆍ물ㆍ흙이라고 하는 환원주의적 요소적 실체성은 전혀 부각된 바가 없다. 다시 말해서 金木水火土는 기능적 언어적 개념일 뿐이며, 그것이 쇠ㆍ나무ㆍ물ㆍ불ㆍ흙이라고 하는 구체적 물질의 불변적 요소로서의 실체(elementary substances)가 아니라는 것이 인지되어야 한다.


이 金木水火土 五行論의 가장 기발한 착상은 金=肺, 木=肝, 水=腎, 火=心, 土=脾라고 하는 장상으로 그 과학성을 표출했다는 데 있다. 내가 여기서 계속 장기(organ)라는 말을 쓰지 않고 장상(organ symbol)이라는 말을 쓰는 것은 오행에 배속된 肺脾肝腎心의 장기가 우리가 생각하는 시스템상의 장기가 아니라, 金氣, 土氣, 木氣, 水氣, 火氣라고 하는 어떤 氣의 양태의 상징으로서의 전제일 뿐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장상은 장기로서의 단독기능을 중요시하는 것이 아니라 相生相克의 관계로써 형성시키는 氣의 필드를 그 장기의 실체에 선행시킨다는 사실이다.

나는 여기까지 오행에 대해서는 조금 언질을 주었으나 불행히도 본 논문에서는 음양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할 수가 없었다. 음양과 오행은 근본적으로 성격을 달리하는 것이며 역사적으로 성립된 단계도 다르고 계통도 다르다. 이 복잡한 전문적 문제를 (반드시 문헌학적 토대 위에서 논의되어야 한다) 여기 다 논술할 수가 없다. 단지 음양은 보다 인식의 원리에 관계된 것이고, 오행은 보다 대상의 원리에 관계된 것이라는 명제만을 암시적으로 남겨 두고자 한다.

외견상 엠페도클레스의 四根說과 중국고대의 五行說이 비슷해 보인다해서 兩者가 동차원에서 비교될 수는 없다. 따라서 오행설을 막연한 서양과학사의 잣대에 의하여 전근대니 전과학이니 하는 말을 함부로 뇌까릴 수도 없다. 중국고문명의 심도는 도저히 희랍인의 단순한 사유방식으로는 헤아리기 힘든 깊이가 있으며, 그것은 애초부터 뿌리나 요소가 아닌 行이었기 때문에 복잡한 관계양상을 띠었고 또 자신의 한계를 극복해 나갈 수 있는 무한한 상징성을 지녔기 때문에 어떠한 과학의 충격에도 살아 남을 수 있는 매크로-바이올로지컬한 성격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한의학을 매크로바이올로지로 규정한 것은 나의 발상을 효시로 하는 것이다. 1991년 2월 6일 대한미생물학회에서 발표.) 허나 바로 이러한 거시성과 융통성 때문에 상황성은 획득할 수 있을지 몰라도 반복가능한 엄밀성과 보편성의 측면에서 매우 믿음이 부족한 하나의 통찰(insight)로만 남아 있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자아! 이제 최초의 우리의 질문으로 돌아가자!
음양오행은 아직은 과학이 아니다. 허나 인류의 축적된 지혜를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에 의해 음양오행의 과학성은 이제부터 엄밀한 논리에 의하여 차곡차곡 입증되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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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掌篇)·2

조선총독부가 있을 때
청계천변 10전 균일 상밥집 문턱엔
거지소녀가 거지장님 어버이를
이끌고 와 서 있었다
주인 영감이 소리를 질렀으나
태연하였다
어린 소녀는 어버이의 생일이라고
10전짜리 두 개를 보였다

김종삼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320154.html#opinion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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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가 받은 ‘어머니로부터의 유산’은 무엇일까. 마야는 독서와 사람에 대한 사랑을 꼽았다. “어머니는 세상 곳곳에서 다양한 삶과 사랑을 경험하셨다. 모든 사람은 똑같다고 늘 강조하셨다. 책을 가까이하셨고 우리에게도 엄청난 양의 책을 읽게 하셨다. 특히 언어를 사랑했다. 오빠가 영감을 불어넣는 연설을 하는 것도 어머니 영향인 것 같다.”


미국대통령의 이름은 이제 오바마가 됐다. 난 오바마의 어머니를 생각해본다.

그 여자는 피부가 우유빛처럼 하얀 미국의 백인여자다. 어린나이에 대학에서 만난 남자와 결혼한다. 그 남자는 아프리카 케냐에서 온 남자다. 케냐의 남자와 이혼한 후 다시 재혼한 남자는 인도네시아 남자다. 이 남자와는 딸을 낳았다.

1세계에 사는 이 여자는 두번 결혼을 했는데, 모두 둘 다 3세계의 남자였다. 이 여자가 흑인남자와 사이에서 낳은 아들은 나중에 미국의 대통령이 되었다.

말하자면, 충주에 사는 한 여자가 있는데, 이 여자가 한번은 방글라데시에서 온 남자와 결혼을 해서 아들을 낳고, 이 남자와 이혼한 후 다시 모잠비크출신의 남자와 재혼을 해서 딸을 낳았다고 할까?

오바마가 대단한게 아니라 오바마의 엄마가 대단한 여자라는 생각이다. (오바마도 똑똑해 보이지만 오바마의 생부도 굉장히 인텔리젼트해보인다. 오바마의 엄마는 흑인남자를 사랑한게 아니라 인텔리젼트한 남자를 사랑했던 듯)











[단독] 여동생 "오바마 순한 얼굴 뒤에는 지독한 승부욕 감춰져 있어"
[세계일보] 2008년 11월 05일(수) 오후 08:09   가| 이메일| 프린트
“오빠(버락 오바마)는 많은 미국인이 이젠 국가가 자신의 소리를 듣고 있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미국 최초 흑인 대통령이라는 새 역사를 쓴 민주당 오바마 당선자의 이부(異父) 여동생 마야 소에토로 응(38·사진). 그는 “존 매케인은 할 수 없고 오바마는 할 수 있는 게 뭐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하와이 라피에트라 고등학교 교사인 마야와의 만남은 지난 4월15일 하와이대학에서 이뤄졌다. 한국언론재단과 미 동서센터(EWC)의 언론교류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이뤄진 이 인터뷰는 당시 대선에 미칠 영향 등을 우려해 비보도 전제로 성사됐으나, 4일 오바마가 당선됨에 따라 공개한다.

마야는 오바마의 어머니 스탠리 앤 던햄(1995년 사망)과 인도네시아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마야는 1976년 오빠가 하와이의 외할머니 매들린 던햄(3일 사망)의 슬하에 들어갈 때까지 같이 지냈고, 이후 1년에 한두 번씩 만나며 우애를 다졌다.

마야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 오바마는 ‘가장’이었다. “내가 9살 때 엄마가 두 번째 이혼을 하면서 오빠는 가족의 중심에선 남자였다. 나를 키운 건 엄마지만 나를 가르친 건 오빠였다. 책과 음악, 자원봉사 등에 대해 많은 얘기를 해줬다. 아빠가 할 일을 오빠가 대신했다.”

사람들이 모르는 오바마의 비밀을 하나 알려달라고 했다. 마야는 순해 보이는 오바마 얼굴 이면엔 지독한 승부욕이 감춰져 있다고 귀띔했다.

오바마가 받은 ‘어머니로부터의 유산’은 무엇일까. 마야는 독서와 사람에 대한 사랑을 꼽았다. “어머니는 세상 곳곳에서 다양한 삶과 사랑을 경험하셨다. 모든 사람은 똑같다고 늘 강조하셨다. 책을 가까이하셨고 우리에게도 엄청난 양의 책을 읽게 하셨다. 특히 언어를 사랑했다. 오빠가 영감을 불어넣는 연설을 하는 것도 어머니 영향인 것 같다.”

마야는 민주당 경선 초반까지 오바마의 유세를 지원했다. 유세 지역에 며칠 먼저 도착해 분위기를 띄우는 게 역할이었다. 하지만 한마디 말 실수가 치명타가 될 수 있는 경선 중반부터 활동을 거의 접었다.

잠시나마 미 대선에 참여한 소감을 물었다. “네거티브 공세가 가장 힘들었다. 비난을 위한 비난이 난무했다. 오빠와 아버지가 무슬림 광신도라는 둥 왜곡된 악성 루머들이 인터넷에 쏟아져 순식간에 확대·재생산됐다. 오빠가 이를 미리 경고해 줬지만, 막상 직접 대하니 당황스러웠다”고 마야는 회상했다.

마야는 그동안 유세 연설을 많이 한 듯했다. 목소리는 힘이 넘쳤고, 눈에는 자신감이 가득했다. 어떤 질문에도 막힘이 없었다.

호놀룰루(하와이)=안석호 기자 soko@segye.com
미국인의 마음 어떻게 사로잡았나? '몽상가' 오바마가 보여준 '공감'의 힘
[오마이뉴스] 2008년 11월 05일(수) 오후 02:07   가| 이메일| 프린트
[오마이뉴스 오마이뉴스 기자]
제44대 미국 대통령 당선자 버락 오바마
ⓒ 버락오바마닷컴



[키워드 #1] 몽상가


오바마가 이겼다. 예상된 승리였지만 놀라운 것은 놀라운 것이다. 흑인이 미국 대통령이 되었다는 것도 놀랍지만 내게는 오바마 같은 '몽상가(dreamer)'가 '세상에서 가장 힘센 자'라는 미국 대통령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이 더욱 놀랍다.


오바마는 몽상가다. 나의 평가가 아니라 오바마를 누구보다 잘 안다는 이복 여동생 마야(어머니가 인도네시아 남자와 재혼해 낳은 여동생)가 내린 평가다. 마야의 말로는 자기네 식구들은 전부 몽상가란다. 현실을 보고 실속을 차리는 사람들이 아니라 평생 손해만 보고 살 사람들이란 뜻이다.


[키워드 #2] 거지


오바마의 의붓아버지 롤로 소에토로, 어머니 스탠리 앤 던햄, 동복 동생 마야 소에토로-응, 버락 오바마(왼쪽부터).
ⓒ 버락오바마

 
예닐곱 살 무렵 오바마는 인도네시아에서 살았다. 거지가 많았다. 어머니 앤은 거지만 보면 돈을 쥐여주었다. 이런 어머니를 보고 의붓아버지는 오바마에게 충고했다.


"여자들은 저렇게 어리석단다. 생각해 보렴. 네 호주머니에 돈이 얼마 정도 있니? 그리고 세상에 거지들은 몇 명이나 될 것 같니? 남자는 강해야 한단다. 강하지 않으면 힘센 자가 네 재산을 빼앗고 네 여자를 빼앗고 말 거야."


그러고는 오바마에게 권투연습을 시켰다. 동정심 때문에 손해만 보고 사는 몽상가 어머니와 지독하게 현실적인 의붓아버지. 정반대의 세계관이 충돌한다. 오바마는 어느 쪽에 더 가까울까? 정답은 어머니다.


그로부터 15년 정도 지났을 무렵 오바마는 콜롬비아 대학을 졸업한 뒤 시카고에서 흑인 빈민운동을 하고 있었다. 동료 운동가 마이크 크루글릭의 전언. 오바마와 함께 커피숍에서 나오는데 젊은 거지 한 명이 오바마에게 다가와 구걸했다. 오바마는 어떻게 했을까?


"제 생각에 당신은 구걸보다 더 나은 걸 할 수 있어요. 당신 스스로 뭔가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면 당신은 당신 자신에 대해 훨씬 좋은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그러면 제 기분도 좋아질 것 같군요."


20대 중반의 오바마는 어머니보다 한 술 더 뜬다. 어머니는 돈만 주는데 오바마는 더 근본적으로 거지의 처지를 개선하려고 달려든다. 주먹이 날아올지도 모르고 다른 봉변을 당할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키워드 #3] 공감





어머니 앤이나, 오바마나 다른 사람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처럼 느끼는 공감(sympathy)의 능력이 두드러진다. 그냥 내 생각이 아니라 오바마의 생각이다.


"공감은 내 윤리관의 핵심이다. … 내가 지닌 대부분의 가치기준과 마찬가지로 공감이라는 가치도 어머니로부터 배웠다."


오바마는 비슷한 얘기를 수도 없이 많이 했다. 지난 8월 민주당 전당대회가 열렸던 덴버의 스타디움. 8만의 청중들이 주인공 오바마의 등장을 기다리고 있다. 전광판에선 오바마의 일생을 담은 동영상이 흘러나온다. 10분짜리 이 동영상에서 윤리관이나 철학 비슷한 얘기는 딱 하나 나온다. 바로 공감이다. 오바마의 내레이션이다.


"어머니가 정말 화내는 경우는 하나였습니다. 어머니가 잔인한 것을 봤을 때입니다. 누군가 괴롭힘을 받을 때, 누군가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입니다. 제가 그런 짓을 하는 걸 보시면 정말 불같이 화를 내셨습니다. 어머니는 제게 이렇게 말씀하곤 하셨습니다. '네가 그 사람의 입장이라면, 네 기분이 어떻겠니?' 이 간단한 생각을 어려서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 생각은 언제나 저와 함께 했습니다."


비슷한 말이 동영상이 끝나갈 무렵 다시 한 번 나온다.


"어머니께서 항상 하셨던 말씀이 떠오릅니다. '다른 사람 입장이라면 기분이 어떻겠니?'"(Imagine what it’s like in somebody else’s shoes )


이것이 오바마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비결이다. 흑인 오바마가 맨주먹으로 세계 최강자에 오른 비결이다. 사람들이 느끼는 아픔을 정확하게 짚어내고, 그러면서도 사람들의 상처를 보이지 않게 감싸는 공감 능력은 오바마의 주특기인 연설에서 찬란한 빛을 발한다. 이런 연설은 청중들의 마음 속에 화살처럼 날아가 꽂힌다. 오바마를 슈퍼스타로 만들어준 2004년 전당대회 연설의 한 대목.





"시카고 남부 흑인 빈민가에 글을 못 읽는 아이가 있다면 비록 제 아이가 아니더라도 저한테는 중요한 일입니다. 어떤 어르신이 약값을 낼까 집세를 낼까 고민하고 있다면 비록 그분들이 제 할아버지 할머니가 아니라도 제 인생은 가난해집니다. 어떤 아랍계 미국인 가족이 변호사의 도움을 받지 못하거나 정당한 법 절차를 적용 받지 못한다면 그건 제 자유가 위협받는 겁니다. '나는 내 형제를 지키고 내 누이를 지키는 자라' 이 나라를 움직이는 것 이런 기본적인 믿음입니다."


믿기 어렵다면 유튜브에 들어가 보라. 오바마 연설 동영상이 널려 있으니 들어 보라. 오바마 영어는 그리 어렵지 않다. 그리고 청중들이 언제 박수를 치는지 보라. 오바마의 이야기가 청중들 자신들의 이야기로 바뀌는 순간 박수가 터져 나온다.


오바마는 청중들이 느끼는 감정의 동선을 귀신 같이 따라간다. 그것이 공감의 힘이다. 평생 손해만 보고 살 것 같은, 순진해 빠진 몽상가를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올려놓은 비밀의 한 축이 바로 공감이다. 몽상가의 예민한 공감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 마음을 얻은 자가 세상을 얻는다.


[키워드 #4] 변화


지난 3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학교 샬럿 캠퍼스에서 유세중인 버락 오바마 민주당 대선후보가 자신을 길러 준 외할머니의 별세 소식을 전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 EPA=연합뉴스


오바마는 이런 연설을 가지고 '변화'를 이야기 한다. 새삼스러운 슬로건은 아니다. 사실 '변화'는 진보주의자라면 누구라도 할 수 있는 말이다. 문제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변화'에 저항한다는 것이다. 꼭 보수주의자가 아니라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오바마의 변화'에 열광하는 건 이유가 있다. 오바마는 변화에 공감을 섞는다. 오바마의 변화는 그냥 변화가 아니다. 거의 항상 '우리(We)'가 붙어 있다. '나의 변화'가 아니다.


오바마가 연설하는 단상에는 항상 이런 슬로건이 붙어 있다. '우리가 믿을 수 있는 변화(CHANGE WE CAN BELIEVE IN)', '우리가 필요한 변화(CHANGE WE NEED)' ….


내가 진보주의자라고는 할 수 없지만 오늘날 대한민국 진보의 일패도지한 상황은 진보를 위해서나, 보수를 위해서나 좋을 게 없다.


대한민국 진보진영이 미국의 새로운 진보 오바마로부터 배울 것이 있다면 '공감'이 아닐까 생각한다. '공감'이야말로 진보의 핵심가치라 할 만하기 때문이다.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Posted by 일호 김태경
,

법륜스님의 말이다. 이런 얘기를 볼때, 나는 생각한다.
과연 나는 틀리지 않다라고.

http://well.hani.co.kr/board/view.html?uid=253003&cline=1&board_id=jh_s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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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호 김태경
,

http://agora.media.daum.net/petition/view?id=61981

웃음밖에 안 나온다. 그런데, 이걸 서명청원을 받는다는데 이건 형사사건 아닌가? 친권자는 고소를 해야 할 걸로 본다. 중앙일보기사에서 보면 학교측은 인터넷에 올려진 글은 사실과 다르다고 하는데, 그 근거가 30대가 아니라 27대를 때렸다는 것이다.

참, 이걸 어떻게 웃어야 할지? 초등학교2학년이면 아직도 애기인데. 내 애를 이렇게 때렸으면 난 정말 못 참지.

네이버에서 교사체벌의 법적 근거를 찾아보았다. 현재 판례는 교사의 체벌을 폭력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어떤 개넘이나 개뇬이 내 자식에게 교육한답시고 폭력을 행사하면 나는 어떻게 대처해야할까?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었다는 근거를 들어야 하는군. 참, 후지다.



///////////////////////////////////////////////////////
다음은 네이버에서 찾아본 내용

법률의 근거는..
초·중등교육법
제18조 (학생의 징계) ①학교의 장은 교육상 필요한 때에는 법령 및 학칙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학생을 징계하거나 기타의 방법으로 지도할 수 있다. 다만, 의무교육과정에 있는 학생을 퇴학시킬 수 없다.

초·중등교육법시행령
제31조 (학생의 징계 등) ①법 제18조제1항 본문의 규정에 의하여 학교의 장은 교육상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학생에 대하여 다음 각호의 1의 징계를 할 수 있다.
1. 학교내의 봉사
2. 사회봉사
3. 특별교육이수
4. 퇴학처분

⑦학교의 장은 법 제18조제1항 본문의 규정에 의한 지도를 하는 때에는 교육상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학생에게 신체적 고통을 가하지 아니하는 훈육ㆍ훈계등의 방법으로 행하여야 한다.


불가피한 경우라는 것이 참 애매하죠. 교사는 학교장의 권한을 위임받은 것이라고 할수 있겠죠. 아니면 대리한다고 생각할수도 있고..  판례는 교사의 체벌을 폭행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허용의 범위는 법률로 정해 놓은 것은 없습니다. 다만 법률에 위배되지 않는 범위에서 학칙으로 체벌의 정도를 정하는 것은 가능하겠죠.


체벌에 대한 정당행위 : 훈계의 목적으로 한 체벌 -> 위법성 조각사유로 처벌 불가능

정당행위로 인정받을 수 없는 사례 : 화풀이하는 식으로 학생을 때리거나 욕하는것. 부끄럽지않게 지도할 수 있는데도 낯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공개적으로 때리거나 욕하는 행위. 위험한 물건으로 때리거나 부상의 위험이 있는 부위를 때리는 경우. 견디기 힘든 모욕감을 준 행위. 이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네요.


체벌은 합법인가?
출력하기
송대헌·교권전문가
일단 체벌과 관련된 규정을 살펴보면 초중등교육법 제20조에 ‘교사는 법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학생을 교육한다’고 되어 있고, 같은 법 제18조 1항에는 ‘학교의 장은 교육상 필요한 때에는 법령 및 학칙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학생을 징계하거나 기타의 방법으로 지도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우선 목적에서 ‘교육상 필요’성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학생에 대한 징계나 지도’는 일반 사회의 ‘응징’이나 ‘보복’ 또는 ‘일벌백계’ 등의 수단이 아니라 ‘교육상 필요’에서 행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 수단 역시 ‘교육상 필요’의 목적에 부합되는 것이어야 합니다.

‘징계 또는 기타의 방법’에 대하여, 초중등교육법 제31조 7항에 ‘학교의 장은 법 제18조 제1항 본문의 규정에 의한 지도를 하는 때에는 교육상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학생에게 신체적 고통을 가하지 아니하는 훈육·훈계 등의 방법으로 행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위 제31조 7항은 원칙적으로 체벌을 가하지 않도록 하는 규정으로 해석됩니다. 다만, ‘교육상 불가피한 경우’라는 예외조항을 둠으로써, 제한적인 조건 속에서의 체벌을 허용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여기서 법조항의 문맥상으로 보면 ‘법령과 학칙이 정하는 바에 따라’서 하도록 되어 있으므로, 체벌을 하게 될 경우에는 학칙에 체벌관련 규정이 있어야 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학생에 대한 징계나 지도는 초중등교육법 등의 법령과 학교의 규칙에 그 근거가 마련되어 있어야 합니다. 만일 체벌을 한다면 학칙 안에 또는 학칙의 하위규정으로 체벌과 관련된 기준과 방법 등을 정하는 규정이 있어야 하는 것이지요

한편 일본에서는 법령으로 체벌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부끄러운 일입니다.


http://100.idoo.net/wiki/%EC%B2%B4%EB%B2%8C

http://www.goodteacher.org/technote2/read.cgi?board=ZINE_journal&command=window&x_number=1126148392&ssha=1&r_search=%ED%95%98%EB%8A%94%EA%B0%80&nnew=1
날짜: 200509
코너명: 특집2 분석
학생 인권과 교권은 어디서 충돌하는가?1)  

좋은교사운동 정책연구팀

수업 시간에 떠들다가 걸려나온 학생에게 교사가 체벌을 하려고 하자
“선생님, 체벌은 학생의 인권을 침해하는 거예요.”
“이놈 봐라, 너는 수업 시간에 떠들어서 선생님의 교권을 침해했어!”
이와 비슷한 웃지 못할 상황이 학교 현장에서 종종 일어나고 있다. ‘학생 인권’이나 ‘교권’이 학교 현장에서 많이 말해지고 있지만, 학생과 교사 모두 모두 정확한 개념을 알지도 못한 채 자신에게 유리하게 끌어들여 사용하는 경향이 많다. 그리고 이 두 개념이 충돌하는 지점은 어디이고 이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더욱 무지하다. 과연 학생 인권과 교권은 창과 방패의 관계인가?
이를 밝히기 위해 학생 인권과 교권이 만나 충돌하는 정확한 지점이 어디이고, 이러한 충돌을 해결하는 원칙은 무엇인지 살펴보도록 하자.


표현의 자유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로서 헌법에서도 그 권리를 보장해 주고 있다. 민주시민 양성을 교육의 중요한 목표로 삼고 있는 학교는 마땅히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고 토론과 합리적 의사 결정의 과정에서 자신의 의견을 관철하거나 수정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따라서 학생들의 표현의 자유 및 의사 표명권은 마땅히 보장되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학생회를 통한 학교 사안 관련 의견 개진, 인터넷이나 건의함 등을 통한 익명 또는 실명의 의견 개진이 가능하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사실상 학생회가 죽어 있다. ‘위에서 아래로’ 명령하달식 구조에 익숙해져 있는 많은 학교장들과 교사들은 학생회의 활성화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이와 같은 막힌 구조로 인해 학생들은 학교와 교사에 대해서 답답해한다. 특히 문화·세대·주체 간의 갈등 지점이 해소될 통로가 있어야 하는데 지금의 학교는 그런 통로가 거의 막혀 있다. 학급회의와 학생회가 운영되기 위한 최소한의 시간과 예산이 보장되고 있지 못하다.

이러한 상황은 결과적으로 교권 침해 내지 교사나 학교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학교 방침에 불만이 있거나 분노에 찬 학생들이 인터넷이나 낙서 등의 방식으로 명예훼손을 가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이를 학생들의 도덕성 부족 탓으로만 돌리기 전에, 학생들의 표현의 자유를 차단하고 있고 진정한 의미의 소통 구조가 없는 학교의 모습에 대해서 먼저 고민해야 한다.

하지만 표현의 자유 역시 교육 관련자들의 이익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다른 교육 관련자들의 권리 및 교권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예컨대, 사실의 왜곡을 넘어서 타인의 명예훼손으로 연결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것은 정보통신윤리 및 법적 측면에서 더욱 그러하다. 따라서 특정한 표현이 음란성을 띠거나 명예훼손을 일으켰을 때, 일정 부분의 제약은 필요하다. 미국에서도 학교 당국이 교지 편집에 대해서 관여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판결하였다. 이는 방송반의 영상물 제작 과정에 대한 간섭도 가능함을 뜻한다.

그러나 그 내용이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수준이라면 표현 및 출판의 자유를 적극적으로 보장해 주어야 한다. 또한,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다양한 의견이 분출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하고, 인터넷의 민원은 바로바로 처리하며 대답해 주어야 한다. 학생회가 제 기능을 하도록 함으로써 합법적인 문제제기가 이루어지고 이를 처리할 수 있는 공적·제도적 시스템을 만들어 내는 것이 학생 인권 보장은 물론이고 불필요한 교권 침해를 막는 차원에서도 시급하다.


학생의 학습권

학생들에게는 당연히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 이 권리를 위해 교사들이 양질의 수업과 교육과정을 운영해야 한다. 이 권리는 공부를 원하는 학생들이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고 적절한 프로그램을 제공해 주어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교육을 받을 권리에는 선택권도 일부 포함되어 있다. 최근 교육과정에서 학생들의 선택권을 강조하는 것은 학생 인권의 측면에서도 긍정적인 면이 있다.

학생의 학습권 차원에서 생각할 때 입시 위주의 교육 때문에 계발활동 등이 자율학습으로 대체되는 것은 학습권을 침해하는 요소의 일종이다. 또한 현재 많은 일반계 고등학교에서 실시하는 강제 보충수업과 야간자율학습은 학습권을 침해할 요소가 있다. 보충수업과 야간자율학습 자체가 인권을 침해하는 것은 아니다. 학생의 학습을 돕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설하는 것은 학습권의 측면에서 바람직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학생의 선택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자신에게 적합한 교육 프로그램을 자유롭게 선택할 권리가 학생들에게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학교 간 과도한 경쟁 때문에 아침밥도 먹지 못하고 아침 7시 30분에 0교시 보충을 하거나 학원에서 밤 10시 이후에 심화반 등을 진행하는 일은, 학교나 학원 모두 학생들의 건강권과 행복추구권을 침해하고 있는 것이다.


징계권

교권의 중요한 내용으로서 징계권이 보장되고 있다. 예를 들어 수업시간에 지나치게 떠들거나 방해하는 학생은 다른 학생들의 교육받을 권리와 함께 교사의 수업할 권리이자 의무를 침해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교사가 이런 학생들에게 주의나 경고를 주고 일정 부분 제재를 가하는 것은 상당한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 그러나 침해되는 권리에 비해 지나친 체벌을 가하는 경우, 다른 학생의 학습권을 보호하려다가 오히려 또 다른 인권을 침해할 요소가 생기므로 피해의 크기와 제재의 크기를 잘 조절할 필요가 있다. 적정한 징계 처분, 합리적 절차 이행을 통해 부당한 처분이었다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참여연대 하승수 변호사는 자퇴나 전학을 권고하는 것이 교육적으로도 법리적으로도 옳지 않다고 지적한다.

학교의 징계권 자체는 교육권의 측면에서 인정된다. 우리나라 교육법에서 학생은 학칙을 준수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학생의 징계 및 상벌과 관련된 규정이 정당성을 가져야 하는데 현재 그렇지 못한 학교가 많다. 학운위의 심의를 받아야 하는 학칙에서 징계 관련 내용을 선도규정과 상벌규정에 위임하고 있는 학교가 많다. 이 경우 학운위의 심의를 받지 않고 학교장 임의로 선도 및 상벌 규정을 수정·변경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선도 및 상벌 규정에 학생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현행 교칙 자체가 합리적인 의견 수렴 절차 및 정당성을 부여받지 않은 상태에서 교장이나 일부 학생부 교사들이 교칙을 좌지우지하게 된다. 이러한 모습은 상당한 문제의 소지를 안고 있다.
또한, 징계가 이루어질 때 학생과 학부모의 충분한 의견 진술권이 주어져야 하며, 학교장 임의의 처분대로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실제 우리나라 판례에서는 퇴학처분을 받은 학생이 퇴학처분에 필요한 선도위원 2/3 찬성에 미달했는데도 학교장이 퇴학처분을 한 사안에 대해서 위법하다고 판결했다. 미션학교의 의무적 예배 참석에 대한 거부 및 이와 관련된 학교의 지시 불이행, 학교 명예 훼손 등의 이유로 퇴학을 당한 강의석 군 역시 퇴학처분 무효소송에서 승소하였다. 따라서 현행법에서는 학교와 교사의 징계권을 인정하지만, 학교 분위기에 특정 학생이 영향을 미친다는 이유로 조기에 무리한 징계를 내리거나 합리적 절차를 받지 않은 경우 인권 침해는 물론 법적 분쟁에 휘말릴 가능성이 있다.


학생 및 학부모의 수업·교육과정·방법·평가 참여

교사가 교수와 같이 교육과정과 교과서를 무시하고 완전히 새롭게 가르치는 것에 대해서 현행 헌법재판소 판례는 일정 부분 제약을 가하고 있다. 그러나 교육법에서 알 수 있듯 교사의 직위나 전문직적 특성에 따라 수업 내용, 교육과정 편성, 교수 방법, 평가 등의 내용을 선정하는 것은 교사의 특수한 권리이다. 따라서 이러한 교사의 선택권에 대해서 학생이나 학부모가 시비를 걸 수 없다. 다만, 학생과 학부모의 참여와 선택권도 중요하기 때문에 이를 제도적으로 보장해 주고 있다. 학교운영위원회가 바로 그것이다. 학부모나 학생은 교사의 교육과정 편성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항변하는 것이 아니라 학교운영위원회를 통해 직·간접적인 선택권을 행사해야 한다.


체벌

몇년 전 유엔 아동권리위원회(Committee on the Rights of Child)는 한국정부에 ‘학생체벌을 금지할 것’을 권고하였다. 궁극적으로 체벌은 없어져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교사 체벌이 교사의 자기만족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다수의 학생들을 통제함으로써 결과적으로 학습 및 학급 운영에 좋은 영향을 미칠 교육적 의도로 실시된다는 점에서 일정 부분 교육·문화적 맥락이 고려되어야 한다. 일본이나 미국의 상당 주는 체벌을 명시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체벌을 금지하지는 않고 소극적으로 인정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2)

하지만 일부 교사의 감정적 체벌 때문에 학부모가 소송을 제기하고3) 패소하여, 책임자인 지방자치단체가 배상하고 교사 개인에게 구상권을 행사한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체벌은 어느 것보다 인권 침해의 요소를 많이 갖고 있다는 점에서 체벌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학생들을 교육시킬 수 있는 방안에 대해서 고민해야 한다.

두발규제

두발규제는 절대적인 가치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시대적으로 사회적으로 변화되는 상대적인 가치이다. 따라서 두발규제에 대해서 교사들이 절대 가치를 고수할 필요가 전혀 없다. 김은경(2000)은 두발규제의 기원을 군사주의 문화로 규정짓고 있다.

실제로 초등학교에서는 아무런 규제를 하지 않다가 중·고등학교에 들어와서 갑자기 규제를 시작하는 것도 교육적 일관성이 떨어진다. 이것은 현재 교장선생님과 지역사회, 학부모님들이 “학생은 학생다워야 한다”는 신화와 보수적 가치관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학교현장에서의 두발규제는 학생들과 교사 간 상당한 갈등 사안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개선되어야 할 요소이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두발규제의 근거에 대해서 “교칙을 따라야 한다”고 말하는데, 그 교칙의 정당성이 어디에서 오는지 의문이 제기된다. 교칙 개정 과정에서 학생들의 의사가 충분히 반영되지 못했다면, 교사의 논리는 “만들어졌으니깐 따라야 한다”는 옹색한 순환논리에 빠져들게 된다. 따라서 두발규제 이전에 합리적인 교칙 개정이 우선되어야 한다.

특히 손톱 색깔, 시계, 가방, 반지 등에 대한 규제를 이야기할 때, 어떤 점에서 학생 신분에 어긋나는 것인지 학교 측은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교칙들이 진실로 학생들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기성세대의 가치관에 맞지 않아서 유지하려고 하는지 꼼꼼히 따져 보아야 한다. 두발과 복장에 대한 규제가 어느 정도 필요하다면 학생들이 수긍할 수 있는 합리적 절차와 토론과정에서 합의된 교칙을 적용해야 한다.


사생활권

얼마 전 우리사회의 뜨거운 쟁점이었던 NEIS 문제를 통해 우리가 학생들의 사생활과 정보인권에 얼마나 무관심했는지가 드러나기도 했다. 이 사건을 통해 부모님의 직업, 결석 사유 등이 생활기록부에서 빠지게 된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한편, 학생들의 일기 검사가 사생활 침해에 해당된다는 국가인권위의 권고를 생각할 때, 우리의 교육 일상 중 사생활을 보호하지 못하는 영역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많은 것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가정방문을 포함한 가정환경조사서 등의 기입을 통해 교육과 관련된 학생의 신상 정보를 수집하는 것은 교육적·행정적 필요조건이다. 생활기록부 작성을 위해 학교장이 필요한 정보를 수집할 수 있도록 관계법에 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인권 침해 요소가 있는 각종 기록부의 내용과 행정 문서의 내용 조정에 대해서는 충분한 검토가 필요하다. 행정 목적상 혹은 교육 목적상 정보 수집이 필요하다고 해도 학생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모두 조사하겠다는 생각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불필요한 정보를 지나치게 자세히 기입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검토해 보아야 한다. 생활지도상 친구들을 통해서 특정 학생의 정보를 얻고자 하는 것도 주의해야 한다. 오해를 살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인 정보는 가급적 본인에게 얻는 것이 바람직하다.

졸업앨범 뒤의 학생신상정보, 성적표를 교실에 붙이는 행위, 몇 점 이하의 학생들을 공개적으로 불러서 혼내는 행위, 학생의 개인 신상이 적혀있는 교무수첩 등을 교실에 방치하는 행위, 교문지도를 하면서 학생의 가방과 옷을 검사하는 행위 등은 사생활 침해의 소지가 있다. 소지품 검사는 교사의 육감이 아닌 학생 상당수의 이익이 침해당하는 등 소지품 검사를 해야 할 분명한 이유가 있을 때에 하는 것이 좋다. 학생 징계 시 학생 성명과 징계 사유, 징계 종류를 함께 명시하여 공고하는 것 역시 사생활의 침해 가능성이 존재한다. 교육적 필요가 있다면 학생의 이름을 익명으로 처리하고 공고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장학금이나 상장 수여처럼 학생 개인에게 이익을 주기 위해 외부 기관에 일부 신상 기록을 공유하는 것은 사생활의 침해에 해당되지 않는다. 한편, 흡연·음주, 지나친 신체적 접촉에 이은 이성 관계, 타인에 대한 위해 행위 등은 사생활의 보호 영역에 해당되지 않는다. 이러한 영역은 교사가 행정적·교육적 지도를 적극적으로 실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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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 내용은 아래의 문헌을 참고하여 작성하였음을 밝혀둡니다.
하승수·김진(1999), 교사의 권리 학생의 인권, 사계절
김은경(2000), 체벌불가피론과 학생 인권, 사회문화 제11집
이수광(2000), 학생 인권신장방안연구, 강원대 박사학위 논문
신현직(2003), 교육법과 교육기본권, 청년사
권재원(2004), 청소년 문화 활동 저해요인으로서의 학원문제와 그 원인에 대한 연구, 시민교육연구
고정자(2003), 마이노리티(학생)인권에 대한 연구, 동아대 생활과학연구소 논문집 249-261

2)초중등교육법 제18조 1항은 "학교의 장은 교육상 필요한 때에는 법령 및 학칙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학생을 징계하거나 기타의 방법을 지도할 수 있다"로 명시되어 체벌을 간접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교육법 시행령 제31조 7항에서 "학교의 장은 학생 지도록 할 때에 교육상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학생에게 신체적 고통을 가하지 않는 훈육, 훈계 등의 방법으로 하여야 한다"고 규정되었다

3)체벌로 인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첫째 교사가 개인의 감정을 억제했는가? 둘째 신체의 어느곳에 체벌을 가했는가? 셋째 체벌로 인한 상처는 어느 정도인가? 넷째 체벌을 가하는 방법이 인격적 교육적이었는가? 등이 판단의 근거가 된다.



http://goodteacher.org/technote2/read.cgi?board=ZINE_journal&y_number=1791&nnew=2


날짜: 200509
코너명: 특집5 기고2
교사 스스로 세밀하고 진실된 변화를 만들어가자  

최근 들어 인권단체라든지 국가인권위원회 등에서 그간 아무 문제없이 해오던 교육적 행위들의 일상적 관행에 대해 인권침해 요소를 지적하면서 교사들의 불만과 위기감이 늘어나고 있다. 학교의 복잡한 교육적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상태에서 ‘인권’이라는 가치만을 기계적으로 대입하는 것은 문제가 있으며, 나아가 교권을 침해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학교 내에서 교사가 학생들에게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는 것도 아니다. 교권을 자율·재량권이라고 볼 때, 그것이 점점 작아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지금도 아이들이 교사의 말을 잘 듣지 않는데, 여기에 인권을 확장했을 때 그야말로 학교가 무너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교사들의 내면에 자리잡고 있다. 나름대로 열심히 가르치려고 했는데, 학부모로부터 항의 전화 한두 번 받고 나면 “열정적으로 가르치다가 문제가 생기느니 대충 가르치자! 그래봐야 누가 손해냐”하는 오기도 발동하기도 한다. 교권이 땅에 떨어졌다는 교사들의 탄식이 결코 과장된 이야기만은 아니다.
그러나 학생들의 불만도 만만치 않다. 학교라고 하는 공간에서 여전히 숨을 쉴 수 없다는 것이다. “아침 7시 30분까지 등교하느라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거의 스포츠 머리를 고수하는 학교도 많다. 조금만 늦으면 아침부터 교문 앞에서 벌을 받아야 한다. 일부 교사들은 욕설을 퍼부으며 감정적으로 우리를 때리기도 한다. 보충수업과 야간자율학습의 선택권은 없다. 오로지 전원 다 할 뿐이다.”


학생 인권과 교권, 어디까지 왔나?

그렇다면 교권은 무엇인가? 쉽게 말해 교사의 자율권을 의미한다. 교직의 전문직 특성에 의해 헌법 제 31조 4항에도 교육의 자주성과 정치적 중립성 보장의 원칙과 함께 교육의 전문성 보장을 명시하고 있다. 교권은 교사의 활동이 자유롭고 창의적으로 수행되어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교사의 자율성을 행사하는 데 학부모가 간섭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여기에 국가주의와 관료주의에 따라 획일화된 지시 및 통제가 교육 일상 및 제도 가운데 빈번히 내려지고 있다.

한편, 학생 인권의 핵심은 자유권, 복지권, 사회적 지위권으로 볼 수 있다1). 학생 인권의 구체적인 내용은 유엔 아동권리 협약을 통해 표출되고 있다. 1989년 11월 20일 유엔 총회는 ‘유엔 아동권리 협약(Convention on the Rights of the child:CRC)를 채택하였다. 유엔 아동권리 협약은 전문과 52개 조항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협약에서는 아동의 교육받을 권리, 생명권, 신체의 자유, 표현의 자유, 사상·양심·종교의 자유, 결사·평화적 집회의 자유, 사생활의 비밀 보호, 정보접근권, 휴식권, 특별보호조처를 받을 권리 등의 인권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유엔 아동권리 협약은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지니고 있지만 사실상 법 규범으로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에 대해서 하승수 변호사는 첫째, 우리의 법에 이 내용을 구체적으로 담아낼 세부적인 규율을 작업하지 않아서이고, 둘째 ‘학생’이라는 개념의 모호성, 이중성에 의해 부당한 대우와 원칙 없는 간섭의 개입 소지를 낳고 있다고 주장했다2) 한편, 이 협약이 우리나라의 사회적 문화적 특성에 맞는 ‘학생’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설득력을 얻는다(이수광, 2000).


학생 인권과 교권에 대한 법리적 판단의 변화

먼저 학생 인권과 교권에 대한 사회적·법리적 관점이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 살펴보는 것은 우리에게 많은 교육적 시사점을 줄 것이다. 교권을 옹호하는 논리는 재학계약설, 친권이양론설, 특별권력관계론, 자유재량권론 등이다. 이들 이론들은 학교의 교육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어느 정도 학생 인권 침해는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재학계약설은 학생이 입학을 하면서 학교의 교칙과 내규를 따라야 함을 내포하는 것이고, 친권이양론은 체벌을 포함한 많은 교육 권한을 학부모가 교사에게 넘겼다는 것이다. 자유재량권론은 공무원들이 행정처분을 하면서 일정 부분 재량권이 주어지듯 체벌을 포함한 교육적 행위는 일종의 재량행위로서 법적 판단의 사안으로 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교권을 강력하게 뒷받침한 이론이 특별권력관계론이었다. 특별권력관계론은 군대에 들어간 군인이 일정 부분 기본권 제약을 받듯, 학생들 역시 일정 부분 기본권에 제한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학교장과 교사에게는 상당한 재량이 인정되고, 학생들에게는 권리 이전에 의무가 요구된다.

이와 같은 법 논리는 교권의 강력한 원천이 되었다. 실제로 1980년대 이전의 판결을 보면 이와 같은 논리들이 각종 판결에 반영되었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1978년 한 판례를 보면 한 고등학교 교사가 방공훈련에 불참한 학생의 뺨을 때려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에 대해서 폭행치사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시하였다. 1979년 대법원 판례는 수차례 교사에게 체벌을 당한 여중생이 신경증을 앓아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내었는데, 법원은 체벌과 정신질환과의 인과관계가 불분명하고 체벌의 결과 발생을 전혀 예견하지 못한 채 체벌을 행했으므로 위법성 기각 사유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이러한 판례를 볼 때, 1990년대 이전까지 ‘교권’은 ‘학생 인권’보다 사회적으로 법률적으로 우선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특별권력관계론 등은 상당한 이론적 공격을 받고 있다. 학교가 군대처럼 특별권력관계에 속해야 할 이유가 없고, 법률도 아닌 교칙에 따른 학생 기본권 침해는 안 된다는 것이다. 1991년도 대법원은 “교육적 재량에 의한 징계처분이라고 해도 위법사유가 있는 경우 취소할 수 있다”고 판시하고 있다. 따라서 특별권력관계론은 현재 상당히 힘을 잃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인권침해의 논란의 중심에 있는 체벌문제의 경우, 1990년대 이후 법률적으로 체벌의 정당성 범위를 매우 한정짓고 있으며 상해 등의 과실 책임을 종종 교사에게 묻고 있다.


인권에 대한 민감한 촉수를 가지고

교사의 권위나 권력 행사는 학생들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교권이 행사될 때 학생과 상호 작용하는 공간일 수밖에 없는 학교 공간에서 교권과 인권의 충돌은 자주 일어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두 가지를 대립적 관점으로 보아서는 문제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교권과 인권의 명확한 범주가 서로에게 확인된다면 불필요한 충돌을 줄일 수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는 어디까지가 교권이고 어디까지가 학생 인권의 문제인지가 불분명하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교권은 국가와 학부모로부터 위임받은 권리라는 점이다.

결국 교권은 절대적인 권한이 아니라 법적 권한과 전문직적 속성에 터해 부여받은 권리라는 점과 국가·학부모·학생들과 연동된다는 점에서 일정 부분 한계가 있다. 인권의 핵심적 가치는 결국 헌법적 가치로 구현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교사들에게 위기만은 아니다. 오히려 합리적이고 합법적인 테두리 아래 교육이 이루어지면서 보다 분명한 교권을 정립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사들이 먼저 인권에 대한 민감한 촉수를 가지고 우리의 교육 일상을 재검토하면서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외부 인권단체 때문에 마지못해 우리의 관행을 바꾸는 식이 아닌, 교사 스스로의 세밀한 검토와 이에 따른 변화가 진실된 교육적 공간으로서의 학교를 만들어내고 교권을 더욱 세련되게 확립시켜 줄 것이기 때문이다.

김성천 | 안양 충훈고에서 사회를 가르치다가 휴직을 하고 좋은교사운동 정책실장과 깨미동 부대표로 상근 하고 있다. 교육부 교육발전협의회 전문위원, 성균관대 교육연구소 연구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 skc22@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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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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