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플렉스

소선재에서 2010. 8. 16. 14:02

노무현이 대통령때 , 기자들이 별별 트집을 다 잡았다. 그 중에 하나가 컴플렉스였다.
'너 말 막하던데, 상놈출신이라 그런거지?'
'너 고졸이라 대졸자들한테 컴플렉스있지?'
'너 막말하는거 그거 컴플렉스때문에 그런거지?'

기자놈들이 대통령하고 인터뷰를 하는데, 컴플렉스가 있냐고 하니, 설명해주기 좋아하는 노무현은, 
'저 컴플렉스 없어요. 제가 대통령까지 되었는데 무슨 컴플렉스가 있겠습니까?'

이러는 것도 한 두번이지, 기자들이란 기자는 죄다 와서는 컴플렉스있냐고 컴플렉스아니냐고 하는데, 이 정도면 아무리 성인군자라도 돌아버리기 십상이다.

멀쩡한 사람 미치게 하는 건 사실 간단하다. 모든 사람들이 그 사람한테 한 마디씩.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너 오늘 좀 이상해 보인다'

그 사람 미치는 건 시간문제다.

강준만이 '김대중죽이기'라는 책이 뜨고 나서, '서울대의 나라'인가 하는 책을 냈는데, 이 책은 재미를 못 봤다.

강준만은 서울대 출신이 아니다. 서울대를 없애야한다는 주장은 아무나 할 수 있지만, 현실은 서울대를 나온 사람만이 그 말을 해야한다.

내가 50억을 벌려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삼류대나온 학벌이야 바꿀 수 없는 것이니, 50억 벌고 나서 사람들에게 말하려고 한다.

'제발 돈벌려고 아둥바둥 살지 마세요'

컴플렉스 들먹이는 사람들, 사실 컴플렉스는 지들한테 있는 거다. 알량한 자존심 상처받기 싫은 그 컴플렉스.




50억을 벌려면 최소한 몇 년(혹은 몇 십년, 혹은 성취를 못하고 삶이 끝날지도)이 걸릴텐데, 사람들에게 한 마디 충고를 하기 위해서 그 기간을 쓰겠다니....
그 이유만은 아니겠지요?
10.08.11. 22:40

제 생각에 이 세상에서 저를 잘 아는 사람은 두명입니다.
한명은 한국에 계신 분인데, 제가 스승님으로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중은 아니고요, 지난번에 한국에 갔을때 두번을 뵈었지요.
또 한명은 제 아내입니다.
제 아내는 제가 오십억벌어야 한다는 말을 제일 많이 들은 사람입니다. 제 아내는 제가 50억을 벌려고 하는 이유를 잘 압니다.
제가 50억벌면 재단을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돈벌려에 아둥바둥 살지 말아라'는 얘기를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저를 잘아는 제 아내는 제가 50억 벌거라는 생각을 안 합니다.
전에 어떤 사람이 제 얘기를 듣더니 제 아내를 존경스럽게 보더군요. 어찌 이런 남자랑 사는지 말이죠. ㅋㅋㅋ
10.08.12.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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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젝은 제도로서의 종교를 말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도킨스와 마찬가지이지요. 맑스나 마오가 종교의 독성을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불교도 제도의 폐해로 따지자면 기독교못지 않지요. 혹자는 불교는 기독교와 달리 남을 처들어간 적이 없다고 하는데,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본질은 다를바 없습니다. 호국불교, 이 얼마나 웃긴 개념인가요? 부디스트로서 박노자는 이에 대해 명쾌하게 논파했습니다. 한국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역사를 보면, 불교쪽에서는 최근에서야 나왔습니다. 목사님의 말씀대로 임진왜란에서 일본은 배에다가 '나무묘법연화경'이라는 깃발을 달고 처들어왔습니다.

어떤 종교가 구원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믿음은 두말할 것도 없이 유아적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젝의 불교에 대한 언급은 공감이 갑니다. 하지만, 지젝의 다음과 같은 말은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밖에는 할 수가 없군요.

" 문제는 무념무상이라는 불교의 내적 평화의 원리에 있다. ‘분별적 사고를 중지하고 무의 상태로 돌입하는 것’이 윤리적 판단 자체를 거부하게 만든다는 것이 지젝의 지적이다. 그런 무차별의 종교에서는 진정한 혁명도 사랑도 불가능하다고 지젝은 판단한다. "

 지젝은 '윤리'를 존재가 아닌 '당위'의 차원에서 보고있습니다. 이런 방식은 스스로를 구속하고 종국에는 남도 속박하게 마련입니다.

달라이 라마는 스스로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달라이 라마에 대한 비판도 많고 비난도 있지만, 저는 스스로가 행복하다고 하는 그의 말이 스스로를 속이는 말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불행한채로 행복하다'라는 말을 지젝에게 들려주면 무슨 개소리냐고 하겠지요. 붓다의 제자가 된지 10년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점점 불교와 멀어지고 있습니다. 확실히 '거리'는 중요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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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밑에 종교에 대한 얘기중에 STERN님께서 해독의 ''자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마오도 언급하셨는데요. 말씀을 보니 여러가지가 생각이 납니다.

저는 마오에 대해서도 모릅니다. 서경석목사인가 초창기에 경실련활동했다가 지금은 자기마음대로 사시는 같은데, 분이 젊었을때 마오이스트였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잘은 모르지만 지금도 네팔같은 나라는 마오이스트들과 내전중인 같고요.

제가 마오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은, '컴플렉스'. 제게는 절대로 없는 그런 능력. 사람을 휘어잡고 추종자들을 부리고 천자가 되어 대륙을 지배하고 더군다나 수많은 여자들까지 첩으로 재미보는 그런 능력말입니다. 말로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고 하면서 컴플렉스라고 하니 사실은 저도 그런 욕망이 있나 봅니다.

하여튼, 달라이 라마 자서전에 보면 20 시절 달라이 라마가 마오를 만난 얘기가 나옵니다. 베이징에 체류할때 달라이 라마는 공산주의에 대해서 상당히 호감을 느낍니다. 공산주의 사상의 많은 부분들이 불교의 사상과 매치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달라이 라마는 마오의 카리스마, 사람을 다루는 능력에 감탄하기도 하지만, 결국엔 마오의 '불교에 대한 평가-인민의 독이라는' 대해 크게 실망하고 분노합니다.

정치지향을 체크해보는 싸이트에서 설문결과를 보면, 유명인사들의 정치성향이 4분면의 그래프에 나타납니다. 달라이 라마는 자유주의와 전체주의가 위치한 엑스축의 아래쪽(자유주의), 좌파와 우파의 와이축에서는 왼편에 위치합니다. 비록 마오에게는 실망하고 분노했지만, 어쨌거나 젊은 시절의 이런 경험이 지금 달라이 라마의 정치성향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하는 짐작을 봅니다.

시드니에서 만난 사람중에 제가 보고 배우는 점이 많은 사람이 있는데, 저보다 아래입니다. 제가 한번은 얘기하기를,

'인민해방군이 티벳의 라싸로 처들어갈때, 진짜로 티벳의 억압받는 인민들을 해방시켜준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신정일치의 사회에서 귀족계급인 불교승려들에게 착취당하는 인민들을 억압과 착취에서 구해준다고 말이다'

'아마, 모택동은 그런 생각을 했을 겁니다'

공감이 가더군요.

말이 나온 김에 달라이 라마 얘기를 해야겠습니다. 자서전은 달라이 라마가 직접 같습니다. 구술을 받아 작가가 같지는 않았습니다. 서문에 보면 (티벳어가 아닌) 영어로 썼다고 합니다. (당연히)번역서를 봤습니다.

인상적인 얘기가 가지가 있는데요,

하나는 어렸을때 포탈라궁에서 생활하던 얘기입니다. 제일 기억에 남는 사람들을 언급하면서 중의 한명은 자기에게 밥을 주던 사람이라고 하더군요. 설명을 덧붙이기를 ' 이유는 없는데 아마도 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것과 같은 관계여서 기억에 남는 같다' 했습니다.

역시 주는 사람이 성속을 떠나 장땡입니다. 아무리 아이들이 애완견을 예뻐한다고 해도 개의 입장에서 주인님은 밥주는 사람이지요. 한국의 가정에서는 사람은 대개 가정주부고요. 아이들이 엄마를 찾는 것도 아빠품보다 포근한 것도 있겠지만 무래도 먹을 주는 사람인 것도 이유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도 50억을 벌면 사람들에게 밥을 사주면서 말을 겁니다.

' 벌려고 아둥바둥 살지 마세요'

50억을 벌면 재단을 만들고, 밥주는 사업을 해야겠습니다. 언제나 밥과 반찬이 있는 식당. 하루 24시간 년중무휴로 문을 열어놓고 먹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와서 밥먹고 가는 식당말입니다.

물론 세상에 공짜는 없으니 식당을 이용하는 사람은 양식에 서명을 해야합니다.

' 벌려고 아둥바둥 살지 않겠습니다'

몇년 몇월 며칠 아무개 누구 서명 찌지직.

사업이 되어서 추종자가 몇명 생기면 종교도 하나 만들어야겠습니다. 교시는 '밥내천'으로 하고요. 언제나 밥과 국이 강처럼 흐르는 말입니다. 그러면 종교도 장사, 웁쓰~ 장사가 아니고 교세가 확장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제가 종교의 창시자로서 역사에 남는 사람이 된다면, 후세의 누군가는 이렇게 기록하겠지요.

"밥내천교의 창시자 일호는 이민생활에서 하도 배가 고파서 밥주는 곳이면 어디나 쫓아다녔다. 그가 밥내천교를 창시한 배경에는다른 사람 세배는 먹어야 배가 차는 그의 위대한 밥통과 호주에서제대로 먹고 지낸 처절한 경험이 바탕이 되었다. 밥내천교의 두번째 교시인 '일체의 도시락에 반대한다' 그의 호주생활이 원인이 것이다. "

쓰고 보니 전혀 역사에 남고 싶지가 않군요. 어쨌거나 이번주 토요일에 먹을 떡국 미리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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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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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선재에서 2010. 8. 16. 13:44

왠만하면 다른 사람 얘기는 하고 싶지 않지만, 오쇼 라즈니쉬가 기독교와 불교에 대해 한 얘기가 있습니다. 기독교와 불교의 대조적인 모습은 김용옥을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이 얘기했고, 공감이 가는 부분도 많습니다. 오쇼의 말을 기억나는대로 옮겨보겠습니다. 이해의 서라는 책에 있는 얘기입니다.

 기독교는 가난한 이들에게 시혜를 배품으로서 사람들에게 채무의식을 심어준다. 그것이 기독교가 교세를 확장하는 방식이다. 반면에 불교는 위로부터 들어간다. 가난한 사람들이 아니라 이미 그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사람들, 이미 많은 것을 가진 사람들이 불교를 찾는 것이다.
예수와 달리 석가모니는 왕자 출신이었다. 그는 모든 것을 가지고 누렸던 사람이었다. 더이상 그 무엇도 그에게 만족을 주지못할때 그는 출가를 했다.

 뭐, 대충 이런 얘기입니다. 제 기억에 의존해서 많이 부족하군요. 원문의 훌륭한 문장과 뜻을 제가 많이 흠을 낸것 같기도 합니다. 궁금하신 분이 계시면 제가 책에 있는 내용을 그대로 타이핑해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저는 목사님께서 말씀하신 보수적인 기독교-완제품 구원을 바겐세일하는 - 를 없애긴 어렵다고 봅니다. 없어진다면 좋겠지만요. 그럴수도 없지만 만약 보수적인 기독교를 없앤다면 사람들은 분명 그와 유사한 다른 종교를 또 만들어낼 것 입니다. 문제는 보수적인 기독교가 아니라 그에 놀아나는 사람들이지요.

그럼, 또 '계몽'이라는 문제가 나오는데, 전 계몽은 불가능하다고 보는데요. 달라이 라마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Don't be a messenger, Be a message'

아무리 메세지를 전한다고 해도 사람들은 설득도 안 되고 계몽도 안 됩니다. 계몽을 할 수 하는 유일한 길은 자기가 메세지가 되는 것 밖에는 없는데, 자기가 메세지가 되버리면 그때는 더 이상 계몽할 이유가 없어지는게 아닐까 그렇게 짐작하고 있습니다. 계몽할 이유가 없어지는 건 계몽할 대상이 없어지기때문이지요. 자기가 메세지가 되버리면요. '같이 떨어'버리는데 누가 누구를 계몽하고 자시고 할게 없지요.

메세지 얘기를 하니 노무현 얘기가 생각이 납니다. 저는 노무현대통령이 퇴임하고 난 후 사람들의 반응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발가락양말이나 구멍가게에서 담배피는 사진이나 사람들하고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모습에 환호를 보냈는데요.

저는, 아니 원래 그런 양반이었는데 사람들이 왜들 이러지 했었습니다.

제 짐작에, 사람들은 노무현이 대통령으로 있을때 그가 했던 말은 전혀 듣지 않았습니다. 설사 들었다하더라도 그건 대통령의 말이었기때문에 전혀 와닿치 않았고요. 그런데, 퇴임하고 나서 그 분을 보니 '아, 이 양반이 우리들하고 같은 사람이구나'하는 걸 느꼈던 것 같습니다.

노무현은 의도했던 바가 아니었겠지만, messenger에서  message가 되버린 것이지요. 그리고 그것이 결국 그를 죽음에 이르게 했고요. 또 한편 생각하면, 노무현은 메신저가 되는 것을 놓아버림으로써, 비로소 메신저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삶은 참 아이러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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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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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교민신문을 보는데, 어느 교민분의 칼럼이 있더군요.

어제 염화미소님이 하셨던 말씀, '음악'과 '소리'가, 제가 답글로 달았던 '공명'과 '초끈이론'이라는 말도 그 칼럼안에 있었습니다. 지난 5년넘게 초끈이론에 대해 듣지도 말하지도 않았는데, 어제 이런 얘기를 하고 오늘은 또 신문에서 이런 얘기를 보게 되네요.

소재야 굉장히 비슷했지만 내용은 아주 달랐습니다. 초끈이론에 대해서 말씀을 하시더니 끝에는 기독교의 세계관을 피력하시더군요.

저는 어떤 세계관을 가질지 어떤 종교를 가질지는 전적으로 개인의 자유라고 봅니다. 저는 그것이 개인의 자발적인 선택이 아니라, 이런 과정 역시도 프로그래밍이라고 봅니다만, 하여튼 다른 누구가 강제하거나 뭐라 하거나 할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제가 오늘 그 초끈이론을 언급한 신앙고백에 대해서 무슨 반대가 있을 수 없지요. 하지만, 유감스러운 점이 없는 건 아닙니다. 저는 과학의 발견 내지는 업적을 가지고 자기 종교를 정당화하는 것을 보면 참 우습다는 생각이 듭니다.

 고려대학교 물리학과에 양형진교수라는 사람이 있는데 가끔 메이져신문에 기명칼럼을 냅니다. 불자로서 화엄경에 묘사된 세계가 지금 현대물리학이 보는 우주와 얼마나 흡사한지 말입니다.

 오늘 본 칼럼은 마지막에 갑자기 하나님에 대한 찬양으로 나가서 뜬금없다 싶었지만, 설사 말이 되는 논리적인 글이었다 할지라도 공감이 가기 어려웠을 겁니다.  

왜 불교나 기독교나 그렇게 과학의 성과를 가져다가 인용해야하는 것일까요? 답은 자명합니다. 자기 종교가 맞다는 것을, 자기 종교가 옳다는 것을, 자기종교가 합리적이라는 것을, 자기 종교가 더 뛰어나다는 것을 말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의 이면에는 지금 이 시대가 과학이 그 어떤 종교보다 더 큰 힘을 가지고 있는 이 시대의 제일 막강한 종교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종교가 힘이 셌던 옛날에는 과학을 억눌렀다는 것은 그다지 중요한게 아닐 것입니다.

 왜 그렇게 힘센 누군가를 빌어와야 하는 겁니까? 그냥 자기 존재 그대로 존재증명을 하면 안 되는 겁니까? 도대체 이런 폭력을 언제까지 지켜봐야 하는지 짜증이 나다못해 우울해집니다. 꼭 힘센 누군가에 알랑방구를 끼고 살랑거리면서 자기들이 더 힘세다고 자랑하는 것 같아 유치하게만 느껴집니다.

과학이 인류의 어리석음을 타파한데 지대한 공헌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과학이 구원이 될 수 없음도 주지의 사실입니다. 사람들은 행복하지 않고, 더 자유로운 것도 아닙니다. 물질문명이 발달한 곳일수록 불교는 더욱 더 인기를 끌것입니다.

물론 지금까지 워낙 무지몽매함에 치우쳐왔으니 더 많은 과학이 필요하다는 주장에도 일리는 있습니다만, 그렇다 하더라도 치우친 것의 좌표만 달라졌다 뿐이지 본질은 똑같을 뿐입니다.

과학역시도 앞으로 몇백년 후에는 다른 모습으로 바뀌겠지만 하여튼 제가 죽을때까지는 이런 모습을 볼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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