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에 관한 몇가지 이야기

 

1.
한국에서 대학을 다닐때 시각장애인이 같은 학년에 있었습니다. 비오는 날이 제일 싫다고 하더군요. 빗소리에 다른 소리들을 들을 수가 없다면서요. 전 빗소리를 좋아하는데 비가 오면 가끔 그 말이 생각납니다.

 

2.
텔레비젼뉴스나 드라마를 볼때, 두가지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소리만 듣고 화면은 보지 않는 경우.
둘째는, 화면만 보고 소리를 듣지 않는 경우.
소리만 듣는 경우는 80%넘게 이해를 할 수 있지만, 화면만 보는 경우는 무슨 사건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귀를 잃을래? 눈을 잃을래? 저라면 둘 다 안 잃을래하겠습니다만.

 


3.
인간의 가청주파수는 다들 아시다시피 이십헤르쯔에서 이만헤르쯔입니다. 말이 그렇다는 것이지, 백헤르쯔아래로 내려가면 듣기가 어렵습니다. 귀가 밝은 사람은 부웅하는 좀 기분나쁜 소리를 들을 수가 있습니다. 만팔천헤르쯔 올라가도 역시 마찬가지고요. 사람의 기준에서야 초음파이지 박쥐에게는 초음파가 아니라 그냥 소리입니다.

 

4.
소리는 전달하는 매개체가 없으면 전파가 안 됩니다. 진공상태에서는 소리가 전달이 안 됩니다. 소리 즉, 음파는 파동현상입니다. 떨리는 것이죠.

 

5.
그런데, 사실은 물질자체가 떨리는 것입니다. 현대과학에서 원자는 중성자 양성자 전자 어쩌고 저쩌고 합니다. 원자의 핵과 핵을 둘러싸고 있는 전자의 거리를 축구장에 비교하면서 원자라는 것이 사실은 거의 빈공간이라고 설명하기도 하고요.
그럼 이 중성자 양성자는 또 뭘로 이루어져있나 하는게 또 과학의 중요한 문제입니다. 제 생각엔 참 쓸데없다 싶은데, 어쨌거나 쿼크나 초끈이론같은 걸로 설명하는 이론이 있나 봅니다.
문외한인 제가 대충 이해하기로는 물질의 근원입자를 특히나 초끈이론은 '떨리는 것'으로 보는 것 같습니다.

 

6.
이런 과학의 설명을 갖다가 '색즉시공'이나 (원자는 비어있는 공간이다), '율려'의 (물질은 떨리는 것이다) 정합성에 대한 증거로 갖다 쓰는데, 그거야 뭐 갖다 쓰는 사람 마음이고요.


7.
하여튼 '소리'를 사랑하는 저로서는 이 세상은 '떨림'이다라는 설명이 맘에 듭니다. 떨림은 필연적으로 '공명'이라는 현상을 수반하는데, 이 공명이야말로 이 세상의 본질이랄까요? 사실 세상의 본질이라는 말 자체가 우스운 말이지만, 하여튼 '같이 떠는 것'에 이 세상의 구원이 있다, 저는 이렇게 봅니다.
'같이 떠는 것'을 나타내는 여러가지 말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 중의 하나가 사랑이지요. 바람이 불면 나무가 흔들리는 것, 무당이 접신할때 부르르 떠는 것, 저는 이것들도 '사랑'이라고 봅니다.
이렇게 말하고 나니 '이 개명천지에 아직도 그런 미신을 믿는 것이냐?'고 하는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리는 듯 합니다. 비가오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장님의 말과는 달리, 이런 말은 제게 아무런 울림도 가져다 주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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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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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시총회갔다온후 밤을 꼬박 새워서 2800자 에세이를 마쳤습니다. 이로써 실질적인 방학에 돌입했습니다. 졸업할때까지는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에 클리닉에 나가야 하지만,  그래도 시험과 숙제의 압박이 없는 홀가분한 마음은 실로 하늘을 나는 것 같습니다.

 방학을 하고보니 무엇보다 '인간답게 살고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학기중에는 내내 머리 한 구석에 박혀있는 숙제, 시험때문에 아이들이 놀아달라고 해도 전적으로 놀아주지 못하고, 또 집안일이며 밥 해먹는 거하며 이런 저런 일들 모두 항상 뒷전이었습니다.

 오늘은 인간답게 사는 첫 날.

제가 한 일은 집안 청소. 장도 보고, 둘째 아이 응가한 것도 씻겨줬습니다. 책꽂이와 책상정리도 마쳤습니다. 깨끗해진 책상을 보니 정말 인간답게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녁밥도 인간답게 먹으려고 사시미용 연어를 사서 초밥을 만들어 봤습니다. 주먹밥크기로 초밥을 만들어서 그 위에 와사비와 쌔먼 조각을 올려놓았더니, 맛이 완전 맹탕입니다. 대식가는 미식가가 될 수가 없습니다. 인간답게 먹었다는 것에 만족해야했습니다.

 밥먹고 나서는 인간답게 살려고 제가 저한테 침을 놓았습니다. 마우스클릭질 때문에 오른팔이 아팠는데, 학기중이라 방치해놓았던 참입니다. 침을 놓고서 맘편히 월드컵 경기를 보고 있자니, 이게 바로 인간답게 사는 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하루 종일 '오늘부터 인간답게 살아야겠다'고 떠들었더니, 큰 아이가 한다는 말이, '아빠가 인간을 사러 간다'고 합니다.

인간답게 산다는 말이 어디에서 나왔더라? 아~ 노래가사였습니다. 앞의 가사는 전혀 기억이 나질 않고, 중간부터 기억납니다.

 ~~~~   인간답게 살고 싶다.  아아~ 민주노조 우리의 희망'

 이 노래가 아닐까..........인간답게 사는 첫날 생각난 노래였습니다.

 
2010. 6.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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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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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답은 완전 소용이 없는데요. 그리고 누구나 다 아는 얘기인데요, 그래도 욕먹을 각오하고 말씀드리자면요.

진보신당분들은 먼저 자기 자신을 알아야한다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진보신당분들은 (스스로 생각하기에) 두려움에서 벗어난 명석한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그 보다 더 많은 사람들,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은 두려움 속에 세상을 살아갑니다.

 명석한 사람들은 두려워하는 사람에게 그런 두려움은 바보같은 짓이라고 말합니다. 두려움속에 있는 사람들은 명석한 사람들이 자기들을 바보라고 한다고 듣습니다. 아무리 멍청이라고 할지라도 자기를 멍청이라고 하는 사람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두려움속에 있는 사람들은 명석한 사람들을 싸움닭으로밖에는 보지 않습니다.

명석한 사람들은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위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가르치려 들지만, 두려워하는 사람중 그 누구도 자기들을 가르쳐달라고 한 적 없습니다. 가르쳐달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자기를 가르치려 하는 사람들, 맞고 틀리고를 떠나 재수없는 인간들입니다.

 명석한 사람들은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그들을 위해 이런 가시밭길을 걸어간다. 왜 그들은 우리를 외면하는 것일까? 이걸 알기 위해서는 진보신당분들이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왜 자신들이 지지를 받지 못하는지 내지는 지지를 받을 수 없는 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쥐박이같은 인간들은,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가르치려들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멍청이라고 하지도 않습니다.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다루는지 알고 있습니다.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알고 있으며, 사람들이 싫어하는게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다. 절대로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계몽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계속 그렇게 두렵게 살아가도록 만듭니다. 이것이 야비한 인간들이 하는 요리법입니다. 이것이 한나라당이 절대과반수이상의 국회의석수를 가지고 있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진보신당이 3%의 지지율을 가지고 있는 이유입니다.


진보신당분들이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하는 이상, 여기서 빠져나올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두려움과 명석함은 '돈 후앙의 가르침' 중 '앎의 사람의 되는 과정의 4가지 적 중 첫번째 두번째 단계이자 적입니다)

 
봄산
말하자면, 오만한 사람들이고 자기에 대한 성찰이 없는 거군요. 사람이 모두 생각이 다른 법인데, 자신들의 신념만 고집하며 그 길로만 가자 하더군요.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배려를 모르고 연대를 거부하는 것이 과연 진보의 길일까요? 이 분들의 문제점은 한 길만 고집함으로써 스스로 자유로움을 잃은 데 있는 것 같습니다. 스스로가 구속되고 자유롭지 못한데, 그리고 그 자유롭지 않음이 보이는 데, 누가 그 길을 같이 가고 싶어 할까요? 자신과 다르면 틀렸다 말하고 다른 이의 의견에 귀기울이지 않을 뿐더러 그 자체를 못 견뎌하는 게 현재의 집권세력과 닮은 점인 것 같습니다.
두려움을 모르는 명석함은 결국 세상과 사람에 대한 판단을 제대로 못하게 만드는, 그들 자신을 옭아매는 덫인 셈입니다. '헛똑똑이'가 되어버린거지요. 음..여기까지 댓글 달다가 해답을 찾았어요. 결국 관건은 그 경직성에 있는 거군요. 그들이 멍청이라고 부르는 사람들 조차도 다양성이 이 세상을 유지하고 번성하게 하는 것이고, 자유로움이 좋은 것이라는 걸 직관적으로 압니다. 사람들은 그 자유롭지 못하게 될 구속을 본능적으로 내다보고 거부하고 있는 셈입니다. 자유로움이 없으면 두려움 또한 그대로 남게 되겠지요. 자신들에게 이로운 변화가 생기는 게 아니잖아요.
사실상 '두려움없는 명석한 사람들'이 생각하는 '두려워하고 있는 멍청이들'은 멍청한게 아닌 겁니다. 그래서 노무현이 얘기했듯 개체로서의 인간은 변하지 않지만, 그 개체가 모인 집단으로서의 인류는 늘 진보해 왔던 겁니다.
유레카! 동기부여를 해 주신 덕분에 좋은 공부했습니다. thank you!^^
10.06.11.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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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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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 읽지 못한 소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정확한 기억은 아닙니다)

 '곳간에 양식은 충분하고, 지붕도 다 고쳐두었습니다. 장작도 다 마련되어 있고, 가축들도 우리에 잘 가둬놓았습니다. 그러니, 신이시여, 비를 내리려면 내리소서'

 길거리의 수행자의 버전은 이와 다릅니다.

 '잃어버릴 가축도 없고, 고쳐야 할 집도 없고, 보관해야할 양식도 하나 없습니다. 가진게 없으니 아무 걱정이 없습니다. 그러니, 신이시여 비를 내리려면 내리소서'

 하도 오래전에 본 것이라, 그리고 끝까지 읽지도 않은 책이라서, 정확한 기억은 나지 않습니다. 나중에 법구경을 보다가 '길거리 수행자의 버전'이 법구경에서 온 것을 알고 저으기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2.

한국의 60년대, 70년대 이야기입니다. 대다수 집에서 한겨울에 따뜻한 물을 쓰기위해서는 일일이 물을 데워야했습니다. 세숫대야나 들통에 물을 데웠습니다. 바가지로 퍼서 썼습니다. 수도꼭지를 틀면 바로 온수가 나온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웠습니다. 그 시절 누군가는 집안에서 따뜻한 물로 씻으면 정말 행복하겠다라는 생각을 했답니다. 나이가 들고, 일년내내 집안 화장실에서는 온수가 나오고, 이제 자동차도 굴리고 사는데도 그 사람은 행복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을 인터넷 어디에선가 봤습니다. 그 사람만의 이야기는 아닐 거라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3.

‘불환과이환불균(不患寡而患不均)’. 적게 가진 것을 걱정하기보다 고르지 못한 것을 걱정하라.

논어에 나오는 말입니다. 문제는 가진게 적어서가 아닙니다. 온수가 나오는 수도꼭지만 있으면 행복할 거라 생각했지만, 이젠 어느 누구에게도 행복을 가져다 주지 못합니다. 한국에 사는 사람들은 이제 골프를 하며 행복을 느낍니다. 아니 행복을 느낀다고 생각합니다. 남들이 못하는 골프를 나는 하기때문입니다.
논어의 구절을 보면서 2500년전이나 지금이나 사람의 마음은 별로 변한게 없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4.

지금 가진 것에 만족하고, 미래에 희망을 품고 살아가라는 말을 볼때마다, 이런 개소리가 어디 있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사기라고 생각했습니다. 최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샘터지나 좋은 생각같은 곳에서 이런 얘기들을 볼 때마다 가진 자들이 없는 자들에게 뒤집어씌우는 거짓 주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것보다는 아예 모든 것을 다 버리는 것이 자유를 향한 길이라고, 그리고 모든 걸 버릴때만이 모든것에 대한 완전한 소유가 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옛날 얘기입니다. ㅋㅋㅋ

 5.

지금의 저는, 현재가 미래에 저당잡히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은 어디에도 없다는 것, 이것이 제가 머리속으로 아는 것입니다. 잘 되지는 않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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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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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에 아는 분이 결혼에 대한 얘기를 메일로 해오셔서 거기에 대한 답을 메일로 보냈습니다. 제가 쓴 부분만 여기에 옮겨봅니다.

 ////////////////////////////////////////////////////////////////////////////////////////////////

 결혼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연구를 하고 관찰을 하고 학위도 받고 그러겠지요. 깊게 생각해보지 않아서 잘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결혼이라는 제도가 갖는 보수성은 충분히 인지할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사회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결혼을 기반으로한 가정이 필수적인 만큼, 결혼이라는 제도의 유지를 위해서,아니면 최소한  결혼이라는 제도의 붕괴를 막기위해서 보수주의자들은 많은 노력을 기울이겠지요. 동성간의 결혼을 반대하는 것이 그 한 예입니다.

 호주는 잘 모르겠고요, 한국을 보면, 우습게도 이런 보수주의자들의 결혼생활은 많은 경우, 일부일처제에 충실한 결혼생활과는 거리가 먼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남자들, 씨를 뿌리는 본능이라는 핑계로 자신에게는 관대하고, 여자에게는 가혹한 기준을 들이댑니다. 

 현재의 결혼이라는 제도도 역시 제도인만큼 생주이멸의 과정에서 예외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제가 죽기전까지는 지금과 같은 제도로서의 결혼은 계속 유지되겠지요. 하지만, 몇백년이 지나면 결혼이라는 제도도 역시 다른 모습으로 바뀌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때쯤이면 지금 현재의 국가나 민족이라는 개념도 바뀌거나 아마 사라질 것이고요.

 그렇긴해도, 남자와 여자의 만남이라는 것은 인류가 존속하는 한 없어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나는 남자만큼 여자의 관심을 끄는 존재를 보지 못하였다. 나는 여자만큼 남자의 관심을 끄는 존재를 보지 못하였다' 붓다의 말씀입니다. 말씀하신대로 결혼이라는 제도가, 부처님의 뜻에 반하는 제도라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제대로 읽지는 못했지만, 엥겔스의 '가족, 사유재산 그리고 국가의 기원'은 일부일처제로 묶이는 결혼이 사유재산, 그러니까 소유라는 것과 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네것과 내것의 구별이 없는 유토피아를 꿈꾸는 이들에게는 어쩌면 집단혼이 인류가 도달할 수 있는 최고수준의 결혼제도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인류의 시작도 집단혼이었고 마지막도 집단혼이라면 순환의 고리에 걸맞는 완벽한 수미쌍관이 되겠군요.

 그렇다고 제가 결혼이라는 제도를 부정적으로 보지는 않습니다. 속박의 의미가 강하긴 하지만, 이런 속박이야말로 자유를 향한 길잡이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자유는 무엇을 벗어난 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아직까지 몸으로는 알지 못해도, 머리속으로는 어렴풋이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만약에 결혼을 안 했으면 지금보다 훨씬 더 무지몽매한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결혼하고나서 알게 된 사실이지요.결혼생활이야말로 선방에서 가부좌틀고 앉아있는것보다 훨씬 더 큰 공부가 되었다는 생각입니다.

 물론 착하고 지혜로운 아내에게 많이 배운 것도 있지만, 설사 악처라 하더라도, 그 배움이 더 크면 컸지 적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악처하고 살고 싶은 생각은 꿈에도 없습니다. 훌륭한 아내를 만났는데도 이렇게 때로는 삐걱거리니 말이지요. ^^

 ///////////////////////////////////////////////////////////////////////////////////////////////////

 결론에 가서는 아내자랑이 되어버렸네요. 아내자랑은 팔불출인데, ㅋㅋㅋ 하지만, 자세히 보면 훌륭한 아내를 만났는데도 이렇다면 역시 나는 못난 놈이다라는 자기고백도 됩니다. 아내자랑을 한게 아니라 제가 못났다는 소리를 해 놓은 것이니 너무 욕하지는 말아 주세요. ^^

 2010. 7.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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