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저녁. 오랜만에 학교강의를 그것도 하루종일 들었더니 심신이 피곤했다. 도저히 저녁준비할 마음이 나지 않았다. 일곱시가 다 되어서 식구들을 이끌고 나섰다. 목적지는 리X컴. 타겟은 알탕 또는 육개장.

 

십구시이십분 : 목적지 도착. 분위기가 이상하다. 토요일 저녁이라면 이 식당 뒷마당은 차는 서너대가, 테이블은 가득차고, 고기굽는 연기는 자욱해야하는데, 차는 한 대, 손님은 두어명. 고기굽는 연기는 커녕 냄새도 나질 않았다. 실내테이블로 가는 공간은 아주 깔
끔해졌다. 불안했다. 테이블에는 앞치마를 두른 두명의 아주머니가 앉아 계셨다. 예전의 그 분들이 아니다. 아~ 이런..............

 

십구시삼십분 : 목적지는 스X라로 변경되었다. 타겟은 해장국. 아이들 셋을 내리고 태우는데도 한참이 걸린다.

 

십구시사십분 : 해장국집 만원. 젖먹이 아이를 데리고 들어갈 수가 없다.

 

십구시오십분 : 삼차 목적지는 X간X추. 아내 얼굴은 이미 굳어 있다.

 

이십시이십분 :  자리나는데만 해도 한참이 걸렸다. 아이들과 먹을만한 메뉴가 없다. 메뉴고르기를 포기하고 식당을 나섰다. 말이 없던 아내가 나즈막히 중얼거렸다. '두번다시 밖에서 먹나 봐라' 난 못들은 척 했다.

 

이십시삼십분 : 집에서 출발한지 한시간 삼십분만에, 네번째 식당에서 감자탕을 시키는데 성공했다.

 

이십시사십분 : 아내는 젖 먹이느라 말이 없다. 아이들도 먹느라 말이 없다. 내 머리속은 온갖 것들을 저주하며 짜증내느라 말이 없다.

 

이십일시십분 : 식당을 나섰다. 짜기만 한 음식에 속은 쓰리다. '여보, 미안하오. 영 미안하게 되었소, 까탈부려서' 입속에서 맴돈다.

 

이상 지난 토요일에 있었던 실화입니다. 후기를 말씀드리자면, 집에 돌아와서 씻지도 않고 잤습니다. 시드니와 호주의 모든 것을 저주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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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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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제가 어렸을때 얘기입니다.

 

토목공학과를 다니는 사람에게는

"고속도로커브구간에서 안식각은 어떻게 적용이 되나요?"

 

공예과를 다니는 사람에게는

"그럼 항아리를 만들때는 전기요를 쓰나요? 개스요를 쓰나요?"

 

식품회사에 다니는 사람에게는

"안식향산나트륨은 뭐에 쓰나요?"

 

요렇게 물어보면, 대개 반응은

"아니, 그런걸 어떻게 알아요?"

 

소위 그쪽 업계용어를 어떻게 아냐는 놀라운 반응인데, 저로서는 그 반응이 오히려 놀라웠던 것이,

안식각은 고등학교 기술교과서에 나오는 말이고, 전기요나 개스요도 역시 교과서에,

안식향산나트륨은 모든 빙과류 겉포장지에 어김없이 적혀있는 말이니 그걸 모를 수 있다는 것이 제게는 이상한 일이었던 것입니다.

 

새우깡포장지에는 주요성분 원산지표기 공장이 어디있는지 소비자피해배상의 관련법규나 절차등등이 다 적혀있으니, 안식향산나트륨과 식용색소3호 식용색소5호는 그게 무엇인지는 몰라도 제게는 숟가락 젓가락같이 자연스러운 단어였다 이 말입니다.

 

그런데 '아니, 그런걸 어떻게 알아요?' 라니요. 새우깡뿐만 아니라 양파링봉지에도, 농심뿐만 아니라 롯데 꼬깔콘봉투에도 다 있는 그런 말입니다. 그런데, 그런걸 어떻게 아냐니요?

 

저는 그런 사람인 것이지요. 글자가 있으면 그걸 다 읽습니다. 눈에 들어오는 문자는 다 읽습니다. 그건 그렇게 해야 하는게 아니고 그냥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한때 전자제품 사용설명서가 문고판 책보다 두꺼운 시절이 있었는데, 저는 그 매뉴얼을 다 읽어야 잠을 잤습니다. 글자가 있으면 읽고,  졸릴 때 책을 읽으면 잠이 달아납니다.

 

국민학교때 수업은 재미없고 책상서랍속에 책을 넣고 읽다가 선생한테 뺐기고, 그럼 또 다른 책이 나오고, 또 뺐기고 또 다른 책이 있고. 한 시간에 세번까지 그랬던 기억이 납니다. 어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씨디 플레이어가 두 개가 있습니다. 다음에 나갈 CD를 미리 넣어두어야합니다. 책을 읽다가 씨디를 넣어놓질 않아서 방송사고를 내기도 했습니다.

 

이런 제게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니 책을 읽자는 둥, 일본사람들은 다들 책 읽으면서 출퇴근한다는 둥, 한국사람들의 독서량은 일년에 몇 권에 불과하다는둥, 우리는 책을 읽어야 어쩐다는 둥 하는 얘기는 이해하기 힘든 캠페인이었습니다. 제 귀에는 밥을 먹어야 배가 안 고프다는 얘기와 다를게 없었으니까요. 돈이 없어서 책을 못 사는게 문제지 어떻게 책읽기가 캠페인의 대상이 되는가 말입니다.

 

그랬다가 서른 즈음에 어떤 계기로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이젠 책을 끊자. 책에서 얻을 수 있는 답은 다 얻었다고. 결심이야 결심일뿐이고 도서관엘 좀 덜 다녔다뿐이지 '읽으면서 사는 삶'은 여전했지요. 어쩌면 더 했는지도 모릅니다. 인터넷에는 읽을거리가 널려있으니까요.

 

그랬다가 사십이 된 지금에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책을 읽는게 바로 병통이구나 하는 것을요. 책을 읽는 그 자체는 문제가 아니지만, 책을 통해서는 결코 답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책을 읽는다고 해서 답을 얻는 것도 아니고, 책을 읽지 않는다고 해서 답을 얻지 못하는 것도 아닙니다. 사실 책읽는 사람들은 더 큰 장애물에 가로막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제 아이들이 책읽기를 좋아할런지 싫어할런지 아직은 모릅니다. 싫어하면 싫어하는대로 놔둘 것이고 좋아하면 좋아하는대로 놔둘 것입니다. 책을 안 읽어도 행복한 삶을 사는데는 아무 지장이 없고,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더 바람직하기도 하지요. 책을 좋아한다면 역시 또 내버려둘 겁니다. 고전 몇 개면 평생 두고 읽을만하고, 그리고 책을 읽어봐야 책을 읽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될테니까요.

 

그러니 책을 읽자는 캠페인도 또 읽지 말자는 캠페인도 필요없겠네요. 하려도 해도 되는게 아니니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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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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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안의 삼성

소선재에서 2011. 2. 25. 16:08

냉장고를 바꿨다. 새 냉장고를 산 것이다. 지난 냉장고는 5년된 삼백사십리터짜리 엘쥐제품. 1년도 전이다. 냉장고가 시키지도 않은 정수기기능까지 갖춘 것은. 냉장고안은 언제나 홍수였고 하루에 두 번씩 냉장고 앞에 놓아둔 걸레를 쥐어짜야했다.

그러다가 이사를 하고 곧이어 냉장고로부터 좋은 소식과 안 좋은 소식이 들려왔다.
먼저 좋은 소식. 냉장고가 정수기 기능을 스스로 멈췄다. 더 이상 주방에 홍수는 없다.
다음으로 나쁜 소식. 냉장고가 냉장기능을 멈췄다. 오렌지쥬스는 따뜻했다.

수리기사 아저씨는 이백불정도 얘기하더니, '새거 사시는 것도 괜찮아요'라고 말을 끝냈다.

급한 건 구십리터짜리 삼성냉장고에 집어넣었다. 문 하나짜리 냉장고다. 몇년전 누가 이사가면서 버려온 것을 주워온 것이다. 아내에게 아직도 말 안한 것은 이 냉장고를 청소할때 냉장고뒤에서 죽은 쥐가 있었다는 것이다. 아마도 차고에 넣어두었을때 쥐께서 마지막 자리로 냉장고모터옆을 선택하신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저기 저 푸른기와집에 사시는 쥐님은 어느자리를 택하실까나? 빨리 택하실수록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냉거야 아니 냉장고(둘째딸은 냉장고를 냉거야라고 한다. 은근 중독된다. 냉거야)를 사러 갔다. 아내와 나는 말한 것도 아닌데, 엘쥐냉장고는 처다보지도 않았다. 1년만 따져도 하루에 두번씩이면 삼백예순다섯번을 아내와 나는 걸레를 쥐어짰어야했다는 계산이다. 엘쥐냉장고덕분에 말이다. 아내의 두꺼워진 팔뚝에는 아마 그 탓도 컸으리라.

미쯔비시는 자동차만 만드는지 알았더니 냉장고도 있다. 피셔 뭐시기도 있고 웨스팅하우스도 있고 또 뭣도 있고 뭤도 있는데, 한국에서 삼십년넘게 산 나는 엘쥐가 아니면 쌤성. 대안이 없다.

텔레비젼도 삼성이다. 전에 쓰던 텔레비젼은 TEAC. 나름대로 한국에서도 많이 보던 상표였고 가격도 저렴해서 브라운관 텔레비젼을 샀다. 한 3년쯤 지나니 화면이 온통 슈렉색깔이 되어버렸다. 뒤통수를 몇번 쳐주면 빨간색이 제대로 나왔는데, 나중에는 수백번을 두드려도 반응이 없었다. 결국엔 텔레비젼뒤에 구멍을 뚫고 나무막대기를 쑤셔넣어서 전자빔쏘는 부분을 건드려줘야했다. 이게 텔레비젼을 바꾼 이유는 아니다. 아이들이 없었다면 늙어 죽을때까지 나무막대기로 전자총을 쑤셔주면서 텔레비젼을 봤을 것이다. 아이들 프로그램은 에이비씨투에서 하는데 이 채널은 디지털티브이에서만 볼 수 있다. 그래 엘시디티브이를 사자. 여기서 아내의 강력한 의견. "삼성게 예뻐요"

텔레비젼만은 아니다. 5년된 컴팩 노트북은 접히질 않는다. 모니터는 비가 내리다 못해 글자가 보이질 않는다. 첫째 아이가 책상에서 바닥으로 자유낙하시킨 탓이다. 한국에 갔더니 전자제품이 왜 이리 싼겨? 한국에서 홈쇼핑을 보다가 (이것도 삼성엘씨디티브이였다) 전화기를 들었다. 지금 이 컴퓨터도 한국에서 건너온 삼성 노트북.

에스에이엠에스유엔지. 이 일곱개의 알파벳은 우리 집 구석구석에서 눈에 띈다. 얼마전에 산 레이져프린터도 삼성이다. 삼성거를 사려고 한건 아닌데, 딕 스미스에서 제일 싼 것이 삼성거였다. 108키보드도 삼성. 마우스도 삼성. 노트북가방도 삼성. 아이들 방에 가보니 아이들 책도 삼성출판사(아~ 이건 아닌가?)

호주에서 사는 내가 이런데, 한국에서 사는 사람들은 어떨까? 청소기, 믹서기, 전자렌지, 에어컨, 선풍기, 핸드폰, 전화기, 카메라, 세탁기 하다못해 헤어드라이어에 면도기까지도 삼성이 아닐까 싶다.

나는 왜 호주에서도 삼성제품을 사는가? 익숙해서? 그렇기도 하다. 가격이 싸서? 이 이유도 크다. 그러면 왜 하이얼을 안 사고? 글쎄, 아무래도 삼성이 품질이 낫지 않을까싶기도 하고........

이씨집안의 저열한 행태에 한심해하면서도 나는 삼성을 산다. 나같은 사람때문에 삼성은 망하지 않는 것일까? 그럴지도 모르겠다. 반대로 불매운동으로 삼성이 망할 수 있을까? 만약 삼성이 망한다면 그건 불매운동탓이 아니라 삼성의 탓일것이다. 세상일 알고보면 모두 내 탓 아닌게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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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윤이는 다음달이면 두돌이 된다. 머리도 많이 길었다. 40도를 넘는 여름에 긴 머리는 땀띠의 일등공신이었다. 허나 아름다움을 위해서라면. 승윤이의 긴 머리는 살아 남았다.

두돌이 안 된 아이. 아직도 기저귀를 하고 있으니 아가라고 할 수 밖에. 아가와의 커뮤니케이션은 쉽지 않다. 아직도 울음은 가장 주요한 의사표시이다. 허나 인간이 되어가는 두 돌 아이. 아빠와 엄마로부터 열심히 말을 배운다.

"쑹유니 쑹유니 쩜쩌"
"건포도 저기 있네. 갖다 먹어"

"쑹유니 쑹유니 쩡거야"
"밖에 비오잖아. 자전거는 내일 타자"

"쑹유니 쑹유니 냉꺼야"
"승윤아~ 냉장고 문 열어두면 안 되지"

"쑹유니 쑹유니 찌리이"
"씨리얼 다 먹었어. 없어"

"쑹유니 오또삐이"
"아니. 따라해봐. 오. 토. 바. 이."
"오또삐이"
-_-;;;;

내가 웃자 두살 위의 오빠가 옆에서 거든다.
"아니. 오! 토! 바! 이! 오토바이라고 해야지. 오빠 따라해봐 오!토!바!이!"
만 네살 오빠는 아직 유아의 발음이 섞여있으나 제법 정확한 발음이다. 기억이나 할까? 저도 동생만할때는 트럭을 '어럭'이라고 했다는 것을.
얼른 얼른 더 커라. 쩜쩌가 건포도가 되고 쩡거야가 자전거가 되는 날을 아빠는 학수고대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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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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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을 바꿨다. 식탁을 새로 산 것이다. 하이 글로스라고 하더니 정말로 반짝거렸다. 식탁의 브랜드는 환타스틱. 환타스틱가구는 품질은 모르겠으나 가격만큼은 환타스틱하다. 어쩌면 환타스틱이라는 이름에는 품질도 가격만큼 환타스틱하고 싶다는 창업자의 소망이 깃들어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거나 환타스틱 가구점에서 산 이 식탁은 정말로 환타스틱했다. 오후에 넘어가는 해가 식탁에 반사되어 정말로 눈이 부셨던 것이다. 거울에 버금가는 그 식탁에 비친 해를 보느라 하마터면 눈이 멀 뻔했다. 환타스틱하다 못해 블라인드가 될 뻔하다니.

이 식탁이 환타스틱하다고 해서 덩달아 엘레강스할거라 생각하면 그건 큰 오산이다. 물건을 보면 그 주인을 아는 법이다. 심플하고 단아한 나는 엘레강스한 스타일은 아니니까.

한편 이제 우리집의 식탁 자리를 물려주게 된  구 식탁을 보니, 정말 이거야 원. (IKEA라고 쓰고 나는 이거야라고 읽는다) 6년전 시드니에 처음 와서 이거야(IKEA) 가구점에서 산 식탁이다. 가격도 기억이 난다. 이 자리에서 공개하지는 않겠다. 그건 나의 최소한의 자존심이다. 다만 이거야(IKEA) 가구점에서 제일 쌌다는 것만 일러둔다.

이제 식탁이라는 이름을 넘겨주고 하나의 널빤지 신세로 전락하게 된 이거야 식탁에는 지난 6년간 나와 나의 가족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환타스틱 식탁과 같은 흰색이지만 도저히 같은 색깔이라고는 할 수 없는 그런 상황이다. 곳곳에 칠은 벗겨지고, 그 중에는 내가 밥상을 차릴때 우당탕 던진 그릇때문에 생긴 생채기가 절반이고, 밥먹으면서 함부로 젓가락과 숟가락을 부린 흔적이 나머지 반이다. 삼분의 일 지점에 커다랗게 배겨진 시꺼먼 자국은 살던 집을 아무개에게 보름간 빌려준 흔적이다. 계약서에 냄비받침을 써야한다고 명시해놓았건만 아무 신문지나 깔았던 듯 하다. 눌어붙은 종이는 아무리 벗겨내도 지워지지 않았다.

모서리에는 아이들 머리가 깨지지 않도록 포장비닐을 대었다. 지금은 너덜너덜해졌다. 아이들은 또한 식탁다리에도 세심하게 크레파스칠을 해 놓았다. 생각해보니 이 식탁은 신혼부부의 밥상으로 시작해서 한 애기가 처음으로 이유식을 먹은 식탁이었고, 나중에는 개구장이들의 다이빙점프대까지 되었다. 뿐이랴 필요에 따라 책상과 작업대도 되었다.

그런 식탁이 이젠 널빤지가 되어 더 이상 식탁으로 불리질 못하고 나의 손에서 떠나가게 되었다. 살다보면 만남이 있고 헤어짐이 있고 오는 것이 있으면 가는 것이 있는 법이다. 그러고 보면 나의 눈을 멀게 할 뻔한 지금 이 거실 한구석의 환타스틱한 식탁도 더 이상 환타스틱하지 않게 되는 때가 올 것이다. 그러면 지금 이거야 식탁이 널빤지가 되었듯 환타스틱 식탁도 또 하나의 널빤지가 되어가겠지. 그때까지 환타스틱하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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