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탈사이트 다음에는 세계엔이라는 코너가 있다. 그곳에는 각 나라방이 있어서, 다른 나라에서 살고 있는 한국인들이 글을 올린다. 유학생, 이민간 사람들, 잠시 머무는 사람들 또는 그 나라의 정보를 얻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내가 사는 곳이 호주이니 처음에 호주방에 들어갔는데 점차 다른 나라방도 들어가보게 되었다. 글들을 살펴보니 공간적인 배경은 다를 뿐, 내용은 같다는 것. 삶의 애환은 어디나 다 똑같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람들은 자기가 태어나고 자란 곳을 떠나면, 일단 어려워진다. 그것은 익숙함으로부터의 결별이고 안전함으로부터의 떠남이기 때문에 그렇다. 자기 나라를 떠나보지 않은 사람은 자기 나라의 물가가 비싼 줄 모른다. 그 사람이 물가가 비싸다고 할 때에는 '이전'과 비교해서 그렇다는 것이다. 올랐다는 것을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나라에 가게 되면 자기의 '고국'과 물가를 비교하게 된다. 한비야의 책에 보면, 동남아에서 온 노동자들이 편의점앞에서 과자를 끼니로 때우고 있길래, 집으로 데려가 계란후라이를 한판해줬다는 얘기가 나온다. 물론 자신들의 고국으로 송금을 하느라 돈도 없었겠지만, 그들에게는 '김밥천국'의 3500원짜리 밥이 아주 비싸게 느껴졌을 것이다. 대다수 한국인들은, 한국의 물가가 비싸다고 생각하는 한국인들도 김밥천국의 3500원짜리 밥이 비싸다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외국인과 내국인의 체감물가는 이렇게 다르다.


독일로 시집간 사람은 그곳에서 사는 사람인데도 미용실에 가질 않는다고 한다(밑의 링크). 소위 선진국일 수록 물가가 비싼 탓이다. 박노자는 노르웨이에서 지내는데, 4인가족이 식당에서 밥을 먹으면 한국돈으로 10만원이 넘는다고, 그의 블로그에서 말했다. 노르웨이사람들이나 독일사람들은 자기 나라의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자기 나라의 미용실에서 머리를 깎으며 살 것이다.

http://bbs1.worldn.media.daum.net/gaia/do/country/read?bbsId=N005&articleId=7614
제 이모도 대학생때 독일 유학가서 독일사람이랑 애낳고 사는데 이모는 머리길이가 짧아본적이 없어요;;미용실가기 너무 돈이 마니 들어서 만날 혼자 뒷 머리만 정리해서 항상 머리가 길어요;;; 08.10.09


나역시 지금 석달째 머리를 기르고 있다. 기르는게 아니라 깎지 못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3주에 한번 깎던 머리를 지금은 석달넘게 기르고 있는 것이다. 4년째 살고 있지만, 나는 한번도 미용실에서 머리를 깍은 적이 없다.
물가가 비싼 것이, 선진국이라고 하는 곳에 나와서 사는 사람들에게 현실적으로 닥치는 첫번째 어려움이라면, 두번째 어려움은 '문화충돌'이다. 이것과 관련되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질문이 '인종차별'에 관한 내용이다. 밑의 댓글을 보면, 한국사람들의 '인종차별'에 대한 과민증을 잘 지적하고 있다.

http://bbs1.worldn.media.daum.net/gaia/do/country/read?bbsId=E001&articleId=124
이젠 이런 식의 질문 보기도 싫어진다......질린다 질려...세계엔 어느방을 가도 꼭 이 질문은 올라오네..한국사람들은 왜 이렇게 인종차별에 벌벌 떨까..후
스스로 우리보다 못한 인종을 차별하기때문에 우리보다 더 잘났다고 생각하는 인종들도 우리한테 차별을 할 것이라는 일종의 자격지심이 아닐까요??


다른 문화를 잘 받아들이기란 굉장히 어렵다. '문화'란 존 홉스테드의 지적처럼 컴퓨터의 'OS' Operating System과 같은 것이다. MS Windows에 길들여진 사람에게 매킨토시의 화면구성과 버튼하나짜리 마우스는 굉장히 불편하다. 그 역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이질적이어서 불편하기까지한 '다른 문화'를 잘 받아들이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그것은 '나'를 객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어야 하고, 그를 바탕으로 상대방도 객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바라보아야 이해가 가능하고, 이해가 가능해야 인정이 가능하고, 인정이 가능해야 존중이 가능해진다. 그렇지 않으면, 밑의 링크처럼 프랑스에 대한 환상을 품고 파리를 갔다가 우울증에 걸려 돌아오는 일이 생긴다. 밑의 링크는 프랑스에 대해 실망을 느낀 사람들의 글이다. 비단 이들만이 아니다. 일본에서는 아줌마들이 명품의 나라 프랑스에 갔다가 쇼크를 하도 심하게 먹어서 관광을 마치고는 우울증에 걸린다는, 다소 과장이 섞인 것 같지만, 그런 말도 들었다.

http://bbs1.worldn.media.daum.net/gaia/do/country/read?bbsId=N004&articleId=7322
http://bbs1.worldn.media.daum.net/gaia/do/country/read?bbsId=N004&articleId=7377


그럼, 외국에 나와서 지내는 사람들에게는 어떠한 태도가 필요할까? 나는 프랑스방에 실린 글과 댓글에서 그 해답을 찾는다. 이 '구름'이라는 분은 긍정적이고 개방적인 사고를 말한다.


http://bbs1.worldn.media.daum.net/gaia/do/country/read?bbsId=N004&articleId=7322

구름
각국의 수도는 다 그렇고 그렇지 않을까요? 노르망디나 부르따뉴 지방쯤에 가서 살아보세요. 영화에서 보고 느낀 감정 그대로 살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곳 역시도 내나라는 아니지요. 긍정적이고 개방적인 사고를 발휘하신다면 빠리에서도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행복은 내 안에 있는 것이지 소수이민자들과 부대끼는 나의 일상에 있지는 않습니다. 08.10.23

좋은 친구들을 만나 보세요. 내가 우선 좋은 사람이 되어 있어야 좋은 친구들도 만날 수 있다는 건 알고 계시겠죠? 참고! 되도록이면 한국인 친구들은 많이 만나지 마세요. 누구는 인맥 만들어보겠다고 유학 왔다는 사람도 있을 지경이니까요. 공부 열심히 하시고... 힘내세요!! 08.10.23



 
그러나, 위에 글에서도 보이듯이 역시 내나라는 아닌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외국에 나가서 사는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이방인일 수밖에 없는 듯 하다. 그렇다면 '이방인으로서의 삶'은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일까? 이방인은 행복할 수 없는 걸까?


다른 문화에서 살아가는 것에 대한 의미를 일깨워주는 글이 '프랑스방'에 있어서 그것을 마지막으로 붙여본다. 문화란 더 낫고 못함의 대상이 아니다. 다른 문화를 접하는 것은 이런 문화의 상대성을 배우는 기회다. 다른 문화가 자신에게 맞지 않고 불편하다고 해서 그것을 곧 열등한 것으로 치부해버리면 끝내 자문화중심주의에서 벗어날 수 없다. 다른 문화는 자신의 모습을 알아가는 거울이다.
 
 
http://bbs1.worldn.media.daum.net/gaia/do/country/read?bbsId=N004&articleId=7392

  • 프랑스에 대해 말할수록 한국의 실체가 드러난다. [70] | 리엘로
    • 번호 7392 | 2008.10.21
    • 조회 1889 | 추천 추천 22

    프랑스방에 들어와 보면 참 안티가 많다. 이런 저런 이유를 달지만 더 말할 필요 없이 근본에 컴플렉스를 깔고 있다. 동남아/아프리카를 차별하는 것과 마찬가지 이유로, 다름이나 차이를 화끈하게 승화시켜 차별로 만들고 승/패로 가르는 그런 것 말이다. '굴욕'시리즈라는 것이 유행해서 정작 본인은 생각도 않는데 자아를 투사해서 '굴욕적'이라고 말하는 (그것도 거의 대부분 '사이즈'문제. 즉 크거나 작거나의 문제이므로 크기에 컴플렉스가 있다는 것) 한국인들의 현실은 참 팍팍하다.

     어느 것을 관찰하는 시선과 인식 수준에서는 그 관찰자의 내면과 깊이, 수준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법이다. 문명의 우열가름을 떠나, 다른 문화권이라는 다른 시스템과 문화적 코드를 이해함으로써 이해가지 않거나 당장 감각적으로 불편하게 느껴지는 일들을 현지인의 관점에서 경험해 볼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진짜 여행의 장점이다. 물론 여행 내내 라면과 김치를 몰래 끓여먹을 수도 있겠고 그걸 나무랄 일은 아니지만 그렇게 안주하기엔 대개 너무 젊지 않은가?

     

    프랑스란 나라가 어떤 나라인가? 과학, 학문, 예술이 고르게 발달하고 문화적으로도 유럽의 중심(생산이나 유통, 역사, 시장면에서도)이다. 근대 이후엔 세계적으로 최초에 속하는 수많은 창조물(멀리는 영화부터 가까이는 에이즈 치료제까지)을 만들어 낸 곳이고 자유 사상과 근대 인본주의의 본산이다. 한 마디로 프랑스 없이는 근현대의 인류를 설명할 수가 없을 정도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 왔다. 왕과 귀족을 비록 과격하게지만 계급적으로 완전히 제거해버리고 인류 최초로 진정한 의미의 시민혁명을 달성한 나라가 프랑스이다. 문화 소비의 중심지이며 다양한 지방 요리들과 고급요리, 평가에 있어서도 가장 중요한 국가라고 보아야 한다.

     

    이런 근사해 보이는 이력이 아니더라도 한국인들이 좀 생각해 봐야 하는 부분이 있다. 지하철이 꽤 더러운 것은 사실이지만 그건 프랑스 만의 문제가 아니다. 런던도 마찬가지이고 뉴욕도 마찬가지다. 서구의 도시들은 오래되고 낙후된 시설을 많이 가지고 있으며 어느 정도의 슬럼화 현상을 거쳤다. '오래된 도시'라는 것이다. 그것이 그렇게 싫은가?

     

    나는 반대로 명동 뒷골목에 있는 조그만 라면 가게를 생각해 본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몇몇 특정 음식점은 내부를 비좁게 배치해야 훨씬 성공적이라는 것이다. 막걸리는 막사발로 마시고 어딘지 허름한 곳이 더 인기있다. 이렇게 한국인들도 옛날 것에 대한 가치, 향수, (아직은 별로 없는 것 같지만) 철학을 가지고 있다. 프랑스 인들은 이런 경향이 강하다. 지하철은 물론이고 매우 삐그덕대는 집, 좁은 엘리베이터(필자는 처음에 솔직히 알면서도 당황했던)에 깊은 애정을 갖고 있고 필자 역시 현대식 건물에서의 인간관계와 훨씬 다른 '사람 사는 것 같은' 인간관계를 낡고, 후지고, 위아래층 소리가 아주 잘새는 집에서 경험했다. 대체 뭐가 그리 문제란 말인가?

     

    전세계 사람들, 특히 서구인들은 파리의 Pere Lachaise 공동묘지에 가면 다들 성역을 참배하는 듯한 기분으로 다닌다(워낙 아름답긴 하지만). 소리들도 질러대는데 거기에 도어즈의 짐모리슨이 있고, 그 유명한 오스카 와일드가 있고, 쇼팽, 그 밖의 유명인물들이 수없이 묻혀 있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라고 아마 한국인들은 말할지 모른다. 한국인들은 그런 것 보다는 훨씬 현실적(?)인 것들을 사랑한다. 싸이에 찍어서 올릴 예쁜 점심이라거나, '깔끔'하고 '예쁘'고 '유명한' 것들 말이지. 그런데 그것은, 오스카 와일드의 소설이나 시, 비평을 읽고 그 독설에 인생의 무게나 어려움이 다 날아가버리는 것 같은 상쾌함을 느끼고, 그 말로 다할 수 없는 친근감이 생긴 사람이 느끼는 그런 감흥하고 아주 다르다. 그 때부터 파리는 일종의 성지가 된다.

     

    한 마디로, 하루종일 일만 하다가 그냥 가끔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문화를 소비해야 하는 한국인들로서는 이해가 안 가는 구조가 파리라는 도시라는 것이다. 솔직히 뭘 알아야 즐길 것 아닌가? 나폴레옹도 모르는데 저 모자쓴 아저씨가 저 관에 묻히거나 말거나 알게 뭔가? 진씨왕인지 진치왕인지가 돌인형들을 세워놨는데 커서 보기 좋지만(한국인 코드) 별것도 없더라.....

     

    아는 눈에만 보이고, 들을 줄 아는 귀에만 들리는 거다. 클래식음악? 안들어, 재즈? 몰라, 핑크 플로이드? 관심없어, 모로코 타악 밴드? 그게 머야? 레비스트로스? 먹는 거냐? 발자크? 발닦는데 쓰는 건가? 철학? 골치 아퍼, 루브르? 하루면 다 보데? 슈메르? 바빌론? 몰라 역사 관심 없어, 호쿠사이? 왠 일본넘이래? 왜 프랑스엔 스타벅스가 몇 개 없대? 왜 기분나쁘게 흑인하고 아랍인들이 이렇게 잔뜩이래?

     

    이런 사람은 파리 굳이 안 와도 될 것 같다. 프랑스빵에 준하는 맛있는 빵류나 마카롱 같은 것들은 가까운 일본에도 있으니까 거기로 가는 편이 훨씬 싸다. 마초나 군국주의자들, 민족주의자들, 파시스트들도 프랑스 가지 마라. 코드가 안 맞는다.

     

    아, 그리고 프랑스에 남편 따라왔는데 적응 안되시는 분들, 유학왔는데 적응못해 쓸쓸한 유학생들, 타문화에 대해 이해할 준비나 태도도 되지 않았거나 적대감에 너무 막 내뱉는 것 같다.

     

    이런 사람들 아니더라도 프랑스로 여행가거나 살러 가고 싶은 사람은 아주 많다. 굳이 머릿수 채우러 갈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냥 한국 안에서 프랑스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살든지 '악감정'을 가지고 살든지 하는 편이 훨씬 나음을 보장한다. 왜 굳이 숙제하듯 프랑스로 여행가는가? 이것 역시 바로 전형적인 한국 문화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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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ed by 일호 김태경
    ,
    LA에서 살고 있는 분 - 블로그:요팡의 LA별곡-이 소개란에 LA에서 귀양살이하고 있다고 해 놓았다. 나는 무슨 죄를 지어서 호주에서 귀양살이를 하고 있는 것일까?

    우선, 술 못 먹는 죄이다.
    나는 술을 못 먹고 그래서 술을 안 마신다. 군대에서 나는 술 안 먹는다고 맞았다.
    직장다닐때 본부장이 주는 술을 안 먹은 적이 있었다. 한동안 아주 피곤했는데 한참 뒤에야 나는 그 술잔때문이었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모습인데, 자기 술잔에다가 술을 따라주면 받는 사람은 안 먹을 도리가 없다. 왜냐하면 술을 따라준 사람이 기다리고 있기때문이다. 그래, 나는 입에 그 독한 소주를 털어넣었고, 빈 술잔을 본부장에게 돌려 주고는 술을 따랐다. 그리고, 입에 머금고 있던 술을 다른 컵에 뱉었다. 본부장의 얼굴이 순간 변했는데, 왜 그랬는지 그때는 물론 몰랐다.

    두번째, 초과근무 휴일근무를 싫어한 죄이다.
    너무나 싫었다. 몸도 마음도 피곤에 쪄들어갔다. 남들이 다 좋다고 하는 직장이었지만 나는 이 초과근무, 휴일근무때문에 지옥같았다. 출근을 안 하는 날은 일년 365일 중에 40일도 되지 않았다(일년에 공휴일빼고 일요일만 52일이다).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나말고는 없었다. 휴일근무에 대한 개선책을 요구하자 '휴일근무수당'이 나가는데 왠 불만이냐는 반응이었다. 신문에서 보니 중소기업같은 곳에서는 초과수당도 없이 일들 하고 있었다. 이런 문제 해결하는 게 노조지만, 내가 다닌 직장역시 노조는 없었다.

    세번째, 패거리에 끼지 않은 죄이다.
    직장에서 사람들은 쓸데없는 얘기들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었다. 직장 돌아가는 얘기랍시고 하는게, 결국은 누구 흉보는 얘기였고 아니면 무의미한 얘기였다. 하루종일 사무실에서 부대끼면서 퇴근하면 또 술자리에서 부대낀다.
    누구 흉보고 싶지도 않고 별로 출세하고 싶지도 않은 나는 그들에게 애사심이 없는 인간이었을 것이다. 회사를 너무나도 사랑해서, 그들은 그렇게 승진을 꿈꾸고 자리보전을 원했나 보다.

    네번째는, 옳고 그른 것을 따진 죄이다.
    대충 대충 좋은게 좋은 거,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너무 깨끗한 물에는 물고기가 못 살듯이, 둥글게 둥글게 세상 맞춰가면서 살아야했는데, 나는 어리석어서 그러질 못했다. 잘 좀 부탁한다고 돈 봉투를 내 책상에 놔두고 가면 나는 끝끝내 돌려주었다. 명절때 좋은 술을 수위실에 맡겨놓았다고 연락이 오면 나는 그 지긋지긋한 술, 아무에게나 줘버렸다.
    한국사회에서 살기 위해서는 모난 돌이 정맞는다는 것을 알아야하는데도, 나는 멍청해서 그걸 몰랐다.
    정부를 욕하는 사람들은 다들 제대로 세금내는 사람들인줄 알았다. 사람들은 세금안내는게 자랑이었고 그러면서 나라 욕을 해댔다.
    노무현이 '이젠 모난 돌이 정맞지 않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연설했을때 나는 정말 그렇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노무현은 모난 돌이 정맞는 게 어떤 건지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나는 옳고 그른 것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인 줄 알았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옳고 그른 것보다 자기에게 이득이 되느냐 아니냐로 따졌다. 그걸 몰랐으니 나는 얼마나 큰 죄를 범한 것인가?

    그런 죄로 나는 호주로 귀양오게 되었다. 귀양살이 4년째.

    Posted by 일호 김태경
    ,

    진보와 보수 (2)

    공감(共感) 2008. 10. 21. 02:33
    김규항의 글은 명확하다. 지금 어디에 우리가 있는지 잘 보여준다. 박노자도 그렇고, 이런 지식인들의 역할에 우리는 우리의 모습을 돌이켜볼 수 있다. 김규항의 글에 내정도가 어찌 감히 대들수 있으리오마는 몇가지 내 생각을 토로해본다.

    1. 촛불에 대해
    난 촛불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촛불은 한국사람들이 아니면 할 수 없다. 뭔 일있으면 와~하고 바람처럼 일어나는 것. 거기에 대중의 이성은 없다. 난 월드컵과 촛불의 본질이 다르지 않다고 본다. 월드컵은 남녀노소 지역 계급 계층을 불문하고 '민족'과 '대한민국'이라는 우상에 빠진 난리였다면, 촛불은 보다 더 제한된 범위의 사람들에게 해당되었을 뿐이지만, 거기에 '이성'이 없었다는 건 월드컵광풍과 같다.
    촛불에 나간 사람들 중 이명박을 찍은 사람들은 촛불에 나갈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다. 촛불에 나간 사람들 중 뉴타운으로 집값오르겠지하고 한나라당찍은 사람들 역시 참가자격이 없는 사람들이다. 스스로의 반성과 성찰이 없었다는 것은 촛불의 의미를 찾을 수 없게 만든다. 하다못해 이명박이 그럴 줄 몰랐다는 그런 반성도 없었다.
    모든 화살은 이명박에게만 쏘아졌다. 대한민국의 커다란 착각 - 모든게 대통령탓이라는 이 봉건주의적 사고는 마찬가지로 대통령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에서 멈춰있다. 그러니, 이 촛불은 대통령의 '결심'으로 광우병쇠고기의 국내반입금지(이것도 눈가리고 아웅하는 것 같지만)가 이루어지자 스스로 꺼져버린 것이다.


    2. 진보에 대해
    -한국에 좌파는 없다
    김규항은 말한다. 구우파(한나라당 수구꼴통)와 신우파(진보개혁세력)이 오른쪽에 자리잡고, 좌파가 제대로 된 진보로서 왼쪽에 자리잡아야한다고. 백번 옳은 말이고 이렇게 되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 신우파와 구우파는 김규항의 말대로 서로의 대립관계가 아직도 이어져 오고 있고, 그 파워는 한국을 반분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아직 좌파가 끼어들 여지가 없는 것이다. 주사파가 잡고 있는 민주노동당이 어디 좌파인가? 한국의 좌파는 진보신당을 지지한 2~3%의 유권자. 현실제도권에서 아무런 의석도 가지고 있지 못한 3%에 불과할 뿐이다.

    -김규항에게 진보는 '좌파'이나 한국인에게 진보는 '신우파'이다
    좌파(김규항같은 이)가 보기에 '구우파'와 '신우파'의 차이는 별반 없을 수도 있지만, 신우파와 구우파의 간격은 스스로에게나 사람들에게나 크게 느껴지는 듯하다. '자본화'라는 그들의 본질은 김규항의 지적대로 아무 차이없고, 드러나는 면에서만 겨우 오십보 백보에 불과하겠지만, 그 오십보차이를 사람들은 본질로 느끼고 있고, 이는 '구우파'와 '신우파' 당사자들 또한 그렇게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 상대적인 차이가 신우파를 '진보'로 만들고, 이 '진보'는 사실 좌파가 아님에도 '좌파'딱지를, 친북이 아님에도'친북'딱지까지 덮어쓰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니 진짜 좌파입장에서는 억울할 만도 하다. 우리가 진정 좌파인데 저런 신자유주의와 세계화를 추구하는 이들을 '좌파'라고 하니 말이다.


    -좌파의 현주소
    사실 한국에서 좌파가 진정한 진보로서 자리잡기란 요원해 보인다. 예전에 군사파시즘과 싸우던 시기, 민주화운동인사들의 주된 레퍼토리는 '우리를 좌경용공분자로 몰지 마라'였다. 그러다가, 90년대들어 소위 '자생적 사회주의자'들이 나타났지만, 여전히 '좌파'라는 딱지는 반체제인사들도 거부하는 그런 불온한 레테르였다.
    지금 심상정, 노회찬같은 이들이 스스로를 '좌파'나 '사회주의자'라고 자칭한다면 그들의 정치생명은 당장 끝나고 말것이다. 아직도 '좌파'와 '사회주의자'들은 한국사회에서 불순분자이기때문이다. 현재 '개혁진보'라 불리는 세력이 끊임없이 '친북좌파'라는 공격을 받고 있고, 일부분 그런 공격도 효과가 있는 듯 보이지만, '신우파'를 지지하는 쪽에는 그런 공격이 먹혀들어가지 않는다. 즉, '반구우파'입장에서는 '신우파'를 '좌파'라고 보지 않고 다만 '진보'라고만 볼 뿐이다. 그러니, '좌파'는 아직도 한국의 절대다수에게 용납이 안 되는 그런 딱지인 것이다.


    -'신우파'가 진보가 되어버린 이유
    신우파가 아직까지도 본질에 어울리지 않게 '진보'가치를 점유하고 있는 이유는 물론 김규항이 말한대로 군사파시즘과 싸우던 유산이 가장 클 것이다. 군사파시즘은 이 사회에 '불합리 부패 부정 비상식 불법'등을 유산으로 남겨 놓았다. 그러니, 이런것에 시달리는 생각있는 사람들에게 '불합리와 부정에 반대'하는 '신우파'는 얼마나 진보적인가? '신우파'에게 신자유주의나 세계화같은 문제가 본질이 되기에는 사실 잘 알지도 못하고 또 그것보다는 '원칙과 정의 상식'이 더 중요한 문제가 된다. 386이라고도 하는 그들에게는 '사회정의 부패권력 불법'같은 문제가 더 와 닿는 것이고 '구우파'가 막강한 지금 아직도 이들 문제는 중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 '구우파'의 복귀
    그러나 어느정도 민주주의가 정착이 되고 난 후, 더 잘 먹고 잘 살고 싶은 사람들은 이런 '신우파'의 문제는 더이상 관심거리가 되지 못했다. 노무현의 과거사정리같은 문제들은 전혀 지지를 받지 못했다. 오히려 '구우파'의 공격거리만 되고 말았다. 절차적 민주화가 어느정도 완성된 지금, 사람들은 더 잘 먹고 더 잘 살기만 바라게 되었고 김규항의 말대로 이는 결국 '구우파'의 반사적 이익으로 나타났다. '구우파'의 재등장은 이제 잘 먹고 잘 살게만 해주면 된다는 사람들의 요구와 그에 따른 '구우파'의 과거에 대한 면죄부에 다름아니다.


    - 좌파가 진짜 진보가 되는 길
    '자본화'의 속성상 '신우파'도 역시 자본의 마름이 될 것인가? 김규항은 지난 10년정권을 보면 신우파건 구우파건 그 나물에 그 밥이라고 보았다. 확실히 아니라고 하긴 어렵다. 유럽의 경우를 봐도 그렇다. '신우파'는 자본의 마름역할밖에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럼, 좌파가 진정 세력의 왼쪽반을 점하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

    첫번째 경우는 먼저 '구우파'의 쇠퇴로 인한 좌파의 확대다. 구우파가 없어져서 신우파가 오른쪽 본래자리를 되찾아가면 그제서야 진짜 '좌파'가 진보개혁세력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좌파와 신우파의 연합전선이 있을 수 있다.
    지금 좌파가 '신우파'를 공격하게 되면 그것은 '좌파'가 커지는 게 아니라 '구우파'가 더 커지게 된다. 이 메커니즘은 지난 대선과 총선 한나라당의 리턴으로 확인됐다고 본다. 아직까지 신우파의 힘이 약하기때문에, 노무현의 몰락과 더불어 좌파도 같이 몰락하게 된 것이다. 좌파가 커지려면 오히려 신우파를 지지하는 전략도 필요할 수 있겠다 - 물론 해외파병이나 세계화에 무턱대고 지지할 수는 없지만 -

    두번째 경우는 '신우파'가 몰락하고, '구우파'가 우파가 되고 '좌파'가 진보가 되는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아마 이렇게 되기 전에 파시즘을 겪게 될 것이다. 좌파가 성숙하기 위해서는 '좌우'를 떠나 상식이 통하고 말이 통하는 인간들이 있어야하는데, 현재 한국의 '구우파'를 보면 전혀 말이 안 통하는 무리들이니 파시즘밖에는 길이 없는 듯 보인다. 좌파가 그 틈에 크게 된다면 파시즘과의 내전으로 갈지도 모를 일이다.

    - 쉽지 않은 진짜 진보의 길
    진짜 좌파라면 사람들에게 욕심의 충족을 보장할 수는 없다. 오히려 욕심의 충족이 족쇄가 됨을 설득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사람들은 모두가 다 자기 아파트값이 뛰릴 바라고, 자기 자식들이 1등을 하길 바란다. 서울대를 정점으로 한 서열화는 좌파가 집권하지 않는 한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상고출신 대통령이 100명이 나와도 서울대를 없앨 수가 없는 것이 현재의 한국이다.
    그러니, 진짜 좌파는 쉽지 않다. 사람들에게 욕심을 좀 버리라고 해야하기때문이다. 당신혼자 잘 살려고 해도 그게 안 되는 것이라고 얘기해야하기 때문이다. 이런 얘기들이 사람들에게 먹힐 수 있을까? 어리석은 사람들은 우선 나는 잘 먹고 잘 살기를 바란다. 이러니 한나라당이 이러고 이명박이 지금 저럴 수 있는 것이다. 자본의 노예는 사실 스스로 자초한 것이다. 이것을 일깨우고 이것을 깨나가는 것이 좌파이고, 진짜 진보의 길이다. 쉽지 않은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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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ed by 일호 김태경
    ,

    엄청나게 웃기지만 웃을 수만도 없는 또 한 편의 블랙코메디가 탄생했다.

    서울시, 배우자 생일에 `칼 퇴근' 조례 추진 (클릭하면 기사원본)


    지난번
    코메디 의 배경은 한 회사사장 장모의 장례식장이었는데 이번 코메디의 배경은 서울시청이 되겠다. 요약하자면, 배우자생일에는 퇴근시간에 맞춰 퇴근하도록해서 배우자들끼리 오붓한 시간을 보내도록 하겠다는 것인데, 이렇게 오붓한 부부생활까지 신경써주니 정말 대한민국이 얼마나 선진국에 가까운지 하늘을 우러러 기가 막힌다.

    이에 네티즌들의 반응은 일부
    '아니 퇴근시간에 퇴근하는것도 법으로 따로 정해야되고 ㅋㅋ 더 멋진건 퇴근시간에 퇴근한다니까 국민들이 나서서 욕해주고. 졸라 멋져 진짜 우리나라에서 기업하기 진짜 좋겠어. 나서서 빨리 퇴근하는 사람들 욕해주니 11시고 12시고 맘껏 일도 시켜먹고 하여튼 볍진들이니 뽑아놓은 것들 하는짓도 볍진짓이지 ㅋㅋㅋ '
    라며 한심해하는 반응이 있고,  또 다른 일부는
    '이런 나쁜놈들아...너희가 배우자 생일에 칼퇴근 할 시간에 국민들은 배우자는 물론 부모님 생신에도 야근까지 하면서 먹고산다... ' 면서 역시 남 잘 되는 꼴 - 그 잘되는 꼴이라는 것이 배우자생일에 쉬는 것도 아니고 단지 배우자생일날 퇴근시간에 퇴근하는 것인데도 - 을 못 보는 반응을 나타내고 있다.

    어쨌거나, 서울시의회에서 조례가 통과되면 서울시청 총무과에서는 다음과 같은 공문을 하달할 것으로 예측된다.



    # 전임서울시장 이명박을 본받아 매일 24시간일하고 일주일에 7일 근무하자 #
    발신 : 서울시장
    수신 : 서울시청 및 산하기관 (자치구청 제외)
    참조 : 과장급 이상 모든 부서장
    제목 : '후생복지에 관한 조례'개정에 따른 업무 지시

    1. 공무원 여러분들 수고 많으삼

    2. 최근 서울시의회에서 공무원 여러분들의 후생복지에 관한 조례를 개정하여, 배우자의 생일이 되는 날에는 해당직원은 정시퇴근해야하므로

    (1) 각급 부서장들은 소속 직원의 배우자 생일을 파악하여 일일업무보고시 확인, 해당 공무원의 해당일 초과근무신청과 수당지급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며,

    (2) 배우자의 생일이 토일공휴일인 경우 역시 해당일 휴일근무수당신청과 수당지급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며,

    (3) 일부 직원의 경우 배우자의 생일이 토일공휴일임에도 평일로 신고할 우려가 있으므로, 배우자의 생일은 주민등록번호 앞자리를 기준으로 하여, 이를 위해 전 직원의 주민등록등본을 제출토록 한다.

    다. '해당일 정시퇴근해 배우자와 함께 영화 등을 즐기며 오붓한 시간을 즐겼다'는 확인난에 서명 날인할 수 있도록 일지를 작성, 각 부서별로 비치하도록 한다.

    라. 배우자의 생일이 아닌 날에 정시퇴근하는 직원의 경우 인사고과및 근무 평점에 최하점을 주도록 한다. 끝.


    어떤 또라이가 이런 생각을 했는지. 지딴에는 착한 일 한다고 했겠지? 정말 해외토픽감이다. 미쳐 돌아가는 한국에서나 가능한 일이지. 기가 막혀 웃다가 속이 쓰리다, 정말.

    Posted by 일호 김태경
    ,
    내 자리를 찾아 앉는데, 창가쪽 옆자리에 한국여자애가 앉아 있는게 아닌가. 방금 막 배추를 추수하고 온 여자애같았다. 단발머리, 튼튼한 몸매에 순덕이같은 얼굴. 그럼 안 예뻐야 할텐데 이상하게 예뻤다.

    "한국분이세요?"

    멀뚱 멀뚱~ 눈을 똥그랗게 표정이라니.
     
    "Are you a Japanese?"

    이어진 나의 물음에 비로소 순덕이는 말문을 열었다.

    "American"

    순덕이의 이름은 웬디. 일본계 미국인. 일본에서 1년동안 영어교사를 하다가 LA에 있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일본계 미국인이면 좀 일본인같은 구석이 있어야 할텐데, 웬디의 생김새는 영락없는 한국의 시골처녀같았다. 나이는 한 살 아래. 웬디는 배가 안 고프다며 기내식을 전부 내게 주었다. 배가 부르다는 게 뭐냐는 나의 물음에 웬디는 말했다.

    "I am full"

    나는 " 아이 엠 풀"을 따라하며 웬디의 기내식까지 다 먹었다.

    처음 나가 본 해외여행에 나는 외국애들을 만나면 주려고 영어로 된 명함을 만들어서 가지고 나갔었다. 학교주소 전공과목, 학교이메일주소에 뒷면에는 '카운셀러'라는 말까지 집어넣었다. 웬디와 나눈 대화중에는 'Genecide'라는 말이 기억난다. 왜 그 말이 나왔는지는 모른다. 내가 그 단어를 기억해내려 애쓰자 웬디가 알려줬다. 나는 웬디에게 명함을 주고 웬디는 내게 집주소를 적어줬다. 김포공항에 도착해서 웬디는 LA로 가는 비행기를 탔고 나는 집으로 왔다. 오사카에서 김포공항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웬디와 같이여서 더 그랬는지도 모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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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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