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용어로 얘기하자면, 발심을 했다고 하는데, 어쨌거나 수행또는 명상을 한다고 하는데, 그게 어떻게 해야하는지 참으로 쉽지 않은 문제다.

틱낫한스님이 유명하다니까, 그럼 나도 남방불교의 위빠사나를 해 봤다가, 누가 그렇게 걷는다고 뭐가 어떻게 되겠냐고 하면 그러게 안 그대로 그런 것 같았는데 그런 가 보다 하고, 여기 저기 백화점 진열장 구경하는 사람마냥 뭐가 뭔지 모르게 된다.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www.zen.co.kr 에서

질문 : 명상을 하여 실생활속에서 어떤 열매를 맺고 계시는지가 궁금합니다. 명상을 하는 시간이외에 생활속의 여러 경계와 직접 대면하여 일어나는 자기 내면의 온갖 움직임들을 어떻게 대면하시는지 솔직한 답변을 듣고 싶습니다. 명상을 할때는 가라앉는데 조금 지나고 나면 도로 온갖 습관과 자기합리화, 이런 것들에 함몰되어 버리는 제모습을 확인하면서 명상을 꾸준히 하면 생활속에서 이런 경계가 일어나는 것이 완전히 사라지는 날이 오는 것인지 의문이 들어 질문을 올립니다.
 
오지 않는 손님을 막연히 기다리는 것은 아닌지 궁금합니다.  본인이 직접 체험한 내용을 듣고 싶습니다. 마하리쉬니, 니사르가다타니  ...그런 이들이 해놓은 말 그런것들은 나와는 너무나 거리가 먼 이야기 같고 어차피 말이란게 각자 의식으로 받아서 왜곡해 버리는 것 아니겠습니까?  명상의 효과로 가라앉은 느낌속에서 꽤 여러날 지내본적도 있었는데 그것도 얼마 지나지 않으니 도로 원위치 되어 버리더군요.  제가 지니고 있던 문제점들은 하나도 해결되지 않은채 저를 괴롭히는 것을 다시 대면해 보니..허망하기까지 했습니다...  좋은 말씀 기다립니다.




명상을 오래 해 오신 분들께 묻는다고 하셨는데 제가 끼어들어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지금껏 제가 해온 것이 명상인지도 잘 모르고 있는 처지이니 말입니다.   
하지만 수행이랍시고 30년 가까이 헤매왔으니 그동안 제가 겪은 체험으로 조금 위안을 드려도 되지 않을까 싶어 글을 남깁니다. 
말씀하신 내용에 너무나 공감합니다. 질문하신 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수행자들이 겪는 일이고, 저 역시 정확하게 똑같은 절망을 겪었습니다. 그 절망의 무게가 너무나 커서 스승님들께 대들고, 무엇인가에 완전히 속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의심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아는 것이 적어서 제 입장에서 뭐라 말씀드리기는 그렇고, 대신에 제가 그런 문제를 겪고 있을 때 제 스승님께서 제게 해주셨던 말씀을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수행(?) 20년 만에 절망에 몸부림치면서 스승님께 대들듯이 질문했을 때 그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네게는 아무 문제도 없다. 다만 '내게 이러저러한 문제가 있다.'는 그 생각이 문제이다. 그 생각만 제외하면 너는 아무 문제도 없다." 

"깨달음을 얻으면 모든 문제가 일시에 제거된다는 기대감은 완전한 착각이다. 깨달은 사람도 문제를 안고 살아간다. 다만 그 문제가 이차적인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것이 다를 뿐이다. 가령, 분노는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런데 수행자들은 그 문제를 어떻게 다른 식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분노 자체를 문제시하는 것이다. 왜 그러는가? 분노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런데 분노를 문제시함으로써 이차적인 문제가 발생한다. 분노가 일어날 때에는 딱 거기서 멈추어라. 분노가 일어남을 알고, 그 분노를 받아들여라. 그 분노에 대해 명상하거나 주시하려고 하지 마라. 그런 노력들 전부가 억압에 불과한 것이며, 여기서 이차,삼차의 불필요한 문제가 발생한다. 받아들여라.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라. 변화시키려고 하지 마라. 자신을 더 나은 인간으로 개량하려고 하지 마라. 그것이 모든 문제의 씨앗이다." 

제가 물었습니다. 
"분노라는 것이 네가티브한 감정인데,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입니까?" 

스승님이 말했습니다. 

"아니다, 분노는 네가티브도 아니고 포지티브도 아니다. 바다에 일어나는 파도가 네가티브인가 포지티브인가? 파도는 그저 일어났다가 스러지고, 다시 일어났다가 스러질 뿐이다. 그것을 네가티브로 보는 것은 네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을 거부하고 고치려 하기 때문에 네가티브하게 보이는 것이다." 

"어떻게 라고 묻지 마라. '어떻게 받아들입니까?'하는 질문이 논리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사실은 그것이 마음의 장난이고 말장난인 것이다. 내가 '받아들여라.'하고 말하는 그 순간에 그저 받아들여라. 멈추는데 무슨 방법이 필요한가? 잘 달리기 위해서는 방법이 필요하지만 멈추는데 에는 아무 방법이 필요 없다. 그냥 멈추면 된다. 너의 '어떻게?'라는 질문은 달리기의 연장이다. 나는 이 자리에서 요구한다. 멈추어라!" 

"사람들이 생각하는 깨달음은 존재하지 않는다. 강력한 폭발이 일어나서 일시에 부정적인 것들이 초토화되고 평화가 찾아오는 게 아니다. 그런 깨달음은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깨달음이라는 말 대신 '이해'라는 말로 대신한다. 차근차근 이해하여 어느 날 문득 자신이 이해했음을 자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소위 깨달음이라 불리는 것이다. 이것은 가랑비에 옷이 젖는 것과 같다. 자신이 젖어가는 줄도 모르다가 어느 날 문득, 자신이 흠뻑 젖어있음을 알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너무 조급하게 서두른다. 앎은 그렇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계속 실수하고, 망각하고,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면서 나아가는 것이다. 그렇게 차근차근 나아가다 보면 점점 더 실수가 줄어들고 망각하는 횟수가 줄어들 것이다. 시간이 필요하다. 나는 세상의 거의 모든 명상법을 해보았고, 여러 스승들에게 헌신했다. 그리고 어느 날 문득, 내가 전혀 변화하지 않았음을 깨닫고는 절망했다. 모든 것이 주워들은 이야기일 뿐 실제로는 아는 것이 없었다. 스승이 내게 그토록 '멈추어라!'하고 외쳤음에도 나는 계속 줄달음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절망했다. 더 이상 아무 것도 할 게 없었다. 그 후로 나는 정말로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 나는 서서히 '받아들임'의 기술을 터득하고 있었다. 그 전에 내가 한 수행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려는 몸부림이었다. 이제 나는 그런 노력을 포기하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아니, 그렇게 결심한 것이 아니라, 너무나 절망한 나머지 그렇게 받아들이는 것 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었다." 

"그렇게 10년이 흘러갔다. 나는 아무 변화도 바라지 않았음으로 나 자신을 받아들이게 되었고, 서서히 나 자신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 전에 내가 한 모든 것들은 나 자신을 미워하고 뜯어 고치려는 무모한 짓이었다. 이제 나는 내 모습 전부, 심지어 나의 문제들까지 포함하여 나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내가 받아들일 때 문제는 더 이상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나'라는 존재가 세상에 표현되는 방식일 뿐, 문제가 아니었다." 

"그렇게 10년이 흘러가고 어느 날 문득 나는 내가 이해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것을 깨달음이라는 단어로 부르건 뭐라고 부르건 상관없다. 하지만 내게 깨달음이란 순간의 체험이 아니라 '이해'였다." 

*********************** 

제게는 이 말씀이 많은 것을 깨우쳐 주었습니다. 
아직도 계속 실수하고 망각하면서 살지만 그것에 대해 허망함을 느끼지는 않습니다. 
처음부터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 것이지요. 
어떤 것을 문제시 해놓고, 그것을 해결하려고 하면 끝도 없는 투쟁이 일어날 뿐입니다. 
(이것이 마음이 먹고 사는 방식이긴 하지만요)   
참으로 말장난 같습니다만, 이 외에 달리 말할 방도가 없군요.  
모든 것을 편하게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허망함을 느끼시면 그 허망함을 받아들이시고 편하게 대하시는 게 좋습니다. 
같은 문제가 반복되고 달라진 게 하나도 없는 것처럼 보여도 그런 과정을 통하면서 
님은 서서히 나아가고 계시는 중입니다.  
제 경험으로 장담합니다.^^ 
받아들이는 것이 처음에는 대단히 어렵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만 
이것은 우리 마음이 그렇게 습관화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받아들임도 반복해서 노력하다보면 자연스레 몸에 배게 되고, 
그러면 별다른 노력 없이 받아들이게 되는 때가 올 겁니다. 
부디 편해지시기를 빕니다.  

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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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산지역의 온산중학교에서 학부모들에게 보낸 '사랑의 체벌'동의서



여기 선진국이라고 하지만 사실 별로 좋아보일 것도 없다. 아니 한국보다 못하다. 오래된 건물에 낡은 시설, 지저분한 거리 오래된 자동차들. 그런데, 눈에 안 보이는 부분은 얘기가 달라진다.


클래스메이트중에 노암이라는 놈이 있다. 서른넘은 총각에 한국여자가 제일 예쁘다고 하는 유태인이다. 이 놈은 끊임없이 말하고 잠시도 가만히 있질 못한다. 당연히 강의가 소란스러워진다. 대만에서 온 리는 한번은 참지 못하고 조용히 하라고 하기까지 했다. 소용없다.

교수중에 이 노암에게 뭐라고 한 사람은 딱 한명이다. 싱가폴출신의 양. 중국계이다. 이 교수는 예민한건지 누가 떠들면 짜증을 낸다. 그러나, 다른 백인교수들은 자기들도 짜증이 좀 날만한데, 아무도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다.

리는 한번은 학과장에게 수업시간이 너무 소란스럽다고 당신책임이니 노암에게 주의를 줘야 한다고 불평을 했다. - 이렇게 학과장 교수에게 불평하고 요구하는 것도 어째 나로서는 상상이 안 되었던 일이다.

내가 리로부터 전해들은 학과장의 대답은 '내가 주의를 주면 그는 기분이 나빠질 것이다. 나는 그를 기분나쁘게 만들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학과장은 워낙 사람이 좋으니 그렇다고 해도, 다른 교수들도 전혀 뭐라고 하지 않는다. 물론, 교수들도 자기들끼리는 얘기를 하겠지. 누구는 어떻고 지금 학년은 어떻고 등등

너의 일에 상관안 한다는 개인주의. 이 나라에서는 소란스러운 강의분위기도 개인의 문제인 듯 싶다. 교수는 강의를 하면 그만. 학생들은 듣고 싶으면 듣고 말고 싶으면 그만이다. 내 강의 듣기 싫다는데 뭐 어쩌라고? 어쨌거나 그들은 수업료를 내는 학생들이고 나는 내가 가르칠만큼 가르치기만 하면 되니까.

이제 갓 스물넘은 마이클이 50넘은 학과장어깨에 팔꿈치를 올려놓고 기대고 서서 농담을 한다. 학생들은 끊임없이 강의실을 들락 날락거리고 휴대폰도 여기 저기서 쉴새없이 울린다. 강의시간에 도시락 샌드위치 먹는 놈들은 항상 한 두명씩 있다. 교수강의도중에 가방싸고 나가면서 교수한테 굿바이 하고 간다.

하이스쿨도 마찬가지인듯 하다. 수업분위기가 개판인게 제일 힘들다고, 하이스쿨 티쳐인 켄은 내게 말했었다. 반면 선생은 학생들에게 소리만 질러도 잘린다고 켄은 역시 말했다.


서양에서도 체벌은 강했다. 그러다가 어떻게 지금처럼 체벌이 없는 교육이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교육이론의 영향인지 아니면 사회문화의 영향인지 알 수는 없으나 어쨌건 지금 여기서는 선생이 학생들에게 소리만 질러도 잘린다. 체벌? 체벌을 하면 교도소로 가겠지. 부모가 애를 때려도 잡혀들어가는 판에 선생은 무슨....

사랑의 체벌은 없다. 체벌이 사랑이 되려면 붓다정도는 되어야 가능할 것이다. 붓다가 되지 못한 상태라면 그건 폭력이다. 체벌은 학생들을 선생말 듣게 하려고 하는 강제수단이고 육체와 정신에 가해지는 폭력에 불과하다. 이런 폭력으로는 절대 사람을 바꾸지 못한다. 애들을 바꾸고 싶다면 사랑으로 대해야 한다. 사랑으로 대하는 건 어렵고 힘들고 오래 걸리고 쉽게 되지 않으니 선생들이 몽둥이를 드는 것이다. 체벌을 하면 우선 애들이 폭력앞에 수그러들어서 일단 말 듣는 것으로 보이고, 선생은 힘들게 말로 안 해도 되고 금방 효과나고 얼마나 편한 일인가?

하지만 그 어떤 폭력도 사람을 바꾸지 못한다. 일시적으로 말 듣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더군다나 이런 폭력이 학교에서 '사랑의 매'라는 이름으로 자행된다면 그건 더 무섭다. 왜냐하면 그 폭력은 폭력으로 인지되지 않는, 폭력의 탈을 쓰지 않은 폭력이기때문이다. 폭력인데 폭력이 아니라니. 애들은 폭력에 길들여지고 폭력에 무감각해진다. 폭력에 당하면서도 폭력이라 생각하지 못하고, 남들에게 폭력을 가하면서도 이게 폭력이라는 생각을 못 한다. 모두 이것이 '사랑의 매'의 효과다.
 
이런 폭력을 보고 자라고 경험한 사람들의 몇가지 공통점이 있다. 자존감의 결여다. 괜히 주눅이 들어서 어딜가도 당당하지 못하다. 누가 뭐라고 할까봐 미리부터 주눅이 들어있는 것이다. 또 하나는 폭력의 체화다. 상대가 자기보다 약하면 그때부터는 자신이 폭력적으로 된다. 7~80년대에 사랑의 체벌이 당연했던 시대. 그때 국민학교 중고등학교를 다닌 바로 나의 얘기다.

기사를 보니, 불량학생들이 하도 말을 안 들어서 이제부턴 때려서 가르쳐야겠다고 한다. 아직도 '사랑의 체벌'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이런 나라에 어떻게 내 자식을 보낼 수 있을지, 한국에 가고 싶다가도 이런 걸 보면 정이 확 달아난다. 강한자에겐 약하고 약한자에겐 강하고, 폭력에 길들여진 우리들의 초상이다.



http://kr.news.yahoo.com/service/news/shellview.htm?linkid=12&articleid=2008101402350667219&newssetid=82

사진은
http://kr.news.yahoo.com/service/news/shellview.htm?linkid=453&articleid=2008101403104137034&newssetid=1270


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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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community.hani.co.kr/board/view.html?board_id=cm_health2&uid=11

보기 드문 의사다. 이런 의사들이 많지 않은 이유는 대부분의 의사들이 생각을 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돈을 많이 벌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과식과 간식을 하지 말라는 말은 맞지만, 오래 씹거나 물을 많이 마셔라라는 말은 사람나름이다. 특히 물을 자주 많이 마시는 것이 안 좋은 사람도 있다.

자신의 경험을 일반화시키는 것. 어디 서양의학뿐만이랴. 중생의 어리석음이 그렇지.
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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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신당의 홈페이지에 있는 정강정책이다. 내가 지금까지 본 정당의 정강정책중에 가장 좋았던 것은 2002년 대통령선거당시 사회당의 것이었다. 대통령후보는 인하대 김영규교수였나? 였던 걸로 기억한다. 내용과 표현 모두 모조리 마음에 들었으나, 나는 '노무현'을 찍었다. 과연 내가 선호하는 정강정책만으로 투표를 할 수 있는 날이 올것인가? 의심스럽다.

현재 시스템하에서는 사회당이나 녹색당같은 같은 군소정당들은 원내에 진출하기가 어렵다. 진보신당은 지난 총선에서 전국적으로 2~3%정도의 고른 득표율을 보였는데 결과는 국회의원 제로다. 역구에서 1등을 하지 않는 이상 이 정도의 정당득표율로는 원내진출이 어렵다는 얘기다. 그래도 3%인데 그렇다면 299명의 국회의원중에 최소한 4~5명은 되어야하는거 아닌가? 3%는 안 쳐준다는 거다. 떼거지들.

생각난김에 딴나라당의 정강정책을 보고 싶은데 접속이 안 된다. 잘 된건지도 모른다. 괜히 봤다가 혈압만 오를 수도 있으니까.



 

진보신당의 정강정책


제정: 2008년 3월 16일 창당대회


기본 정책 비전


1. (궁극 목표) 자본주의와 제국주의, 남성 지배 체제와 생태 파괴 문명을 극복하고, 평등 ‧ 평화 ‧ 생태 ‧ 연대의 새 세상을 건설한다. 이를 위해 삶의 모든 영역으로 민주주의를 확대하고, 소유와 권력, 지식과 권리의 온갖 차별을 철폐한다. 개인의 자유가 타인의 자유와 조화를 이루고 인간의 풍부한 가능성의 실현이 지구 생태계와 조화를 이루는 것이 우리가 건설할 대안 사회의 원칙이자 이상이다.


2. (정치 민주화의 지속과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 대의 민주제 자체를 더욱 민주화하며, 동시에 대의 민주주의를 넘어선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를 꽃 피운다. 국회 ‧ 지방의회 선거에 비례대표성의 원리를 강화한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도입한다. 모든 선출직 공직자에 대해 소환제를 실시하며, 대중이 직접 발의하고 토론하여 결정하는 참여 자치의 영역을 확대한다. 


3. (사회연대 ‧ 평화 ‧ 녹색 국가의 지향과 국가기구의 민주화) 자본국가 ‧ 안보국가 ‧ 토건국가의 역할에 충실한 중앙정부의 구조와 기능을 사회연대국가 ‧ 평화국가 ‧ 녹색국가의 방향으로 바꾼다. 그러자면 국가기구를 철저히 민주화하는 게 우선이다. 국가정보원 등 억압적 국가기구를 폐지하고, 군과 경찰, 검찰, 고위 관료 등 국가기구 전반에 대해 민주적 통제를 강화한다. 반면 복지와 민생, 평화와 안전 영역을 중심으로 국가 기능과 역량을 늘린다.

   

4. (지역 정치를 대중 참여와 자치의 장으로) 기존 민주제를 더욱 심화 ․ 확대하고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첫 출발점은 지역 정치다. 조례, 예산, 발전계획 등의 결정 과정 전반에 주민 참여의 길을 열고, 교육, 안전 등의 영역에서 주민 자치를 획기적으로 강화한다. 또한 지역사회에서 민주주의의 건강한 토대가 될 협동과 연대의 대안 공동체들을 일궈나간다.  


5. (한반도 평화 실현과 진보적 통일) 미국의 제국주의적 지배 전략과 북한의 핵 개발이 한반도 평화 실현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또한 신자유주의의 포로가 된 남한과 낡은 국가사회주의의 틀에 갇힌 북한의 현실이 한반도 민중의 삶을 이중으로 옥죄고 있다. 지금 가장 급한 과제는 핵 폐기와 종전선언, 평화협정을 통해 평화 체제를 수립하는 것이다. 이와 함께 남북 상호 군비 축소를 추진한다. 그리고 남북한 민중 모두의 삶을 개선하고 민족국가의 좁은 틀을 넘어서는 진보적 방향에서 통일을 향해 나아간다


=> 이 부분이 바로 민주노동당의 주사뽕쟁이(움베로토님의 표현임)들에게 학을 뗀 부분으로 보인다. 지금 가장 급한과제는 한반도의 평화정착과 그것을 위한 군축이다. 두말할 것 없잖은가? 지금 휴전선에서 서로 총 겨누고 있고 그 앞엔 크레모아 줄줄이 있고, 더 그 앞엔 지뢰있고, 지금도 바로 '누르고 던지고 쏴라'고 몇십만명이 훈련받고 있는데. 그리고 이젠 민족주의 타령좀 그만하자, 좀. 신물이 넘어온다. 정말로.



6. (진보적 동아시아 공동체와 국제사회를 향하여) 동아시아에 불붙고 있는 호전적 ‧ 국수적 민족주의에 맞서 지역내 각국의 민주 진보 세력과 연대한다.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수단인 일체의 양자간 자유무역협정을 중단하고, 동아시아 여러 나라 사이의 대안적인 경제 ‧ 평화 협력 체제를 향해 나아간다. 또한 국제 사회에서 핵무기 철폐, 기후변화 대응, 재생가능에너지 개발, 남반구 민중 지원 등 녹색 평화 외교에 앞장선다. 

=> 역시 주사뽕쟁이들 민족주의자들과 결별하려는 의지가 보인다.

7. (신자유주의를 극복하는 경제의 민주화) 사적 소유와 시장 경쟁이 지배하는 경제 체제의 결과는 항상 부유한 소수와 가난한 다수 대중 사이의 양극화다. 신자유주의는 그 결정판이다. 그 대안은 경제 활동의 모든 영역에 노동자, 농민, 소비자 등 다수 대중의 민주주의를 확대하는 것뿐이다. 사적 소유 대신 다양한 사회적 소유가, 시장 경쟁 대신 대중의 필요와 참여, 협동과 연대에 따른 사회적 조절이 지배해야 한다. 신자유주의를 극복하려는 우리의 모든 노력은 이 목표를 지향한다. 


8. (재벌 지배 구조의 해체) 재벌 일가 ․ 지주회사 등에 의한 회사제도의 오남용을 규제하기 위해서 출자총액제 등을 유지 ․ 강화한다.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을 엄격히 분리하여 재벌의 금융 지배를 막는다. 또한 경제 민주화를 촉진함으로써 재벌 일가 등에 의해 소유 ․ 지배되는 대기업을 사회적 연대 책임을 다할 수 있는 대안 기업으로 전환한다.


9. (대기업에 맞선 중소기업 보호와 육성) 고용의 막대한 부분을 차지하는 중소기업들은 대기업의 불공정 하도급 관행 때문에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다. 이러한 고통은 고스란히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몫이 된다. 대기업의 횡포에 맞서 하도급 구조를 시급히 개혁하고, 중소기업을 지원할 금융 및 기술 혁신 체계를 구축한다. 또한 협동조합, 노동자 자주관리 기업, 사회적 기업 등 대안적 소유 ‧ 지배 구조를 갖춘 중소기업들을 적극 육성한다.


10. (공공부문 사유화 저지와 경영 민주화) 개발주의 시대의 산물인 한국의 공공부문에 많은 문제가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사유화(민영화)가 그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물, 전력, 가스, 교육, 통신 등 기간산업과 공공재, 사회서비스는 공공부문을 통해 공급해야 한다. 공공부문 관료주의와 여타 문제점의 해결책은 사유화가 아니라 경영 민주화다. 물 산업 등 공공부문의 사유화는 반드시 저지한다. 공공부문에 대한 정부 기관의 관료적 통제를 해체하고, 공기업 노동자와 이용자 등이 참여하는 말 그대로 ‘공공’적인 지배 구조를 마련한다.


11. (금융의 사회 통제에서 사회의 금융 통제로) 신자유주의 양극화의 근본 원인인 금융 자본의 과도한 성장과 지배에 족쇄를 채워야 한다. 일단 은행의 추가 사유화를 저지하고, 은행의 소유 및 지배 구조에서 공공성을 강화한다. 금융 감독 기구를 민주화하고 그 권한을 강화하여 금융의 기능이 장기적 산업 발전과 서민 생활 안정이라는 목표에 종속되도록 한다. 사회보장적 성격을 갖는 정부 차원의 공적 금융을 활성화하여 사채 시장을 축소해나간다. 투기 자본의 국제적 이동은 엄격히 규제한다.  


12. (산업 정책의 복원과 미래 산업 육성) 신자유주의로 해체된 국가의 산업 정책 능력을 되살린다. 특히 미래 성장 산업인 친환경 ‧ 재생가능에너지 산업, 고부가가치 부품 및 소재 산업을 집중 육성한다. 지역에 기반을 둔 중소기업들을 공적 기술 혁신의 파트너로 삼아서, 지역사회와 중소기업의 역량을 강화하는 계기로 삼는다. 


13. (소득 재분배에 기여하는 조세-재정 정책) 부유층과 고소득자, 고수익 법인을 중심으로 증세하고 누진 과세를 강화하며 조세 투명성을 높인다. 늘어난 국가 재정은 사회복지 예산으로 투입하여 복지 지출을 대폭 확대한다. 복지 지출을 중심으로 정부 재정 규모를 확대할 뿐만 아니라 재정 구조도 복지 예산 중심으로 전면 개편한다. 이를 통해 소득 양극화를 완화 ‧ 해소한다.  


=> 군축다음으로 맘에 든다.  제발 빨랑 이리되서 국가 해체의  전단계로 갔으면 좋겠다.


14. (모든 정책과 실천에 녹색의 관점을) 생태주의의 문제의식은 결코 환경이라는 특정 부문으로 한정될 수 없다. 삶의 모든 영역에서 전통 좌파의 가치(평등)와 함께 새로운 좌파의 가치(생태, 평화, 연대)를 실현해야 한다. 이에 따라 정치 ‧ 경제 ‧ 사회 각 분야의 정책과 실천에 기후 변화 대응, 에너지 전환, 도시와 농촌의 새로운 만남, 풀뿌리 대안 공동체 육성 등의 문제의식을 녹여낸다.   


15. (토건 국가의 개발 광풍을 넘어 지역 자립형 사회로) 토건 국가의 개발주의가 자연을 파괴하고 훼손해왔다. 새만금은 그 가장 최근 사례 중 하나며, 이제 우리 앞에는 대운하의 광풍이 불어 닥치고 있다. 서민들의 삶의 질 향상과는 거리가 멀며 자연만 짓밟아놓을 뿐인 개발주의의 광풍은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아야 한다. 대신 지역 주민의 삶의 질과 역량을 실제 향상시킬 뿐만 아니라 생태적으로 지속 가능한 지역 자립형 사회를 지향한다. 우선적으로 지역의 복지 설비와 역량을 확충하여 살만한 지역 공동체를 만든다. 


16. (반핵 원칙과 에너지 전환) 핵 발전은 그 엄청난 위험성과 지속 불가능성 때문에 에너지 대안이 될 수 없다. 핵발전소의 추가 건설을 중단하고 단계적으로 폐지한다. 화석에너지 중심 체제의 대안으로 태양열, 풍력 등 재생가능에너지 중심 체제를 구축한다. 더불어 중앙집중형 에너지 수급 체계를 지방분산형 체계로 전환하고 자동차 도로 중심 교통 체계 등을 바꿔 에너지 효율성을 높인다.  


17. (비정규직 문제 해결과 일자리 확대를 위한 연대) 실업 ‧ 불안정 고용의 확대와 노동계급 내 차별과 분열의 확대는 신자유주의의 가장 커다란 해악 중 하나다. 노동계급 연대와 전 사회적 연대를 통해 이러한 차별과 분열을 극복하고 자본의 공세에 맞서야 한다. 임금, 숙련, 일자리, 복지의 연대 전략을 추진하여 비정규직 ‧ 중소기업 ‧ 여성 노동자의 소득 수준을 높이면서 동시에 비정규직 악법과 불안정 고용을 철폐해나간다. 궁극적으로는 노동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하여 안정된 일자리를 새로 만들고 그 일자리를 함께 나눈다.  


18. (노동자를 생산 활동의 주인으로) 노동자의 노동 기본권에는 어떠한 예외도 있을 수 없다. 공무원, 특수 고용직, (청년) 실업자를 포함한 모든 노동자들에게 노동3권을 완전히 보장한다. 이주 노동자 역시 예외가 아니다. 노동조합이 노동자의 삶과 연관된 어떠한 쟁점이든 단체 교섭과 사회적 문제 해결의 의제로 제출할 수 있도록 보장한다. 노동계급의 연대를 강화하며 노동 문제를 사회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초기업 단위의 노동조합 활동과 교섭을 보장하고 장려한다. 노동자가 생산 현장의 주인이 되는 노동자 자주관리를 지향한다.


19. (대안 농업으로 농촌을 복구) 신자유주의의 농업 말살에 맞서 농업과 농촌이 더 이상 파괴되는 것을 막는다. 식량자급률 법제화와 목표소득 직불제, 농지공개념제가 그 주요 수단이다. 나아가 대안 농업을 통해 농업과 농촌을 새로운 모습으로 되살린다. 농업협동조합을 협동조합 본연의 기능에 충실하도록 바꾸고, 친환경 유기 농업 중심으로 전환한다. 안전한 먹거리의 생산과 유통을 매개로 도시와 농촌 사이의 협력 체제를 만든다. 도시와 농촌의 분리를 넘어서는 대안적 생활양식을 발전시켜 농촌에 다시 젊은 생명력을 불어 넣는다.


20. (가부장적 가족 중심주의를 넘어 다양한 가족 구성의 권리 보장) 아직도 온전히 그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가부장제는 가족 내에서 여성, 노인, 어린이를 주체가 아닌 객체로 전락시켜왔다. 또한 소위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는 이성애에 기초한 혼인과 혈연으로 이루어진 가족만을 보호하면서 그 외의 형태로 이루어진 친밀한 관계는 ‘비정상’으로 왜곡하고 있다. 우리는 가족 내에서 소수자일 수밖에 없었던 여성, 노인, 어린이의 권리가 보장될 수 있도록 기존의 가족관련 제도를 적극적으로 개선해나갈 것이다. 또한 ‘정상가족’에게만 한정되어 왔던 사회적 보장을 성소수자, 장애인, 비혼자, 동거가족 등 다양한 소수자의 관점에서 다시 재구성하고자 한다.


21. (모든 정책과 실천에 여성의 관점을) 여성주의의 문제의식은 단지 여성만의 관심사일 수 없다. 여성의 관점은 정치 ‧ 경제 ‧ 사회 모든 분야의 정책과 실천을 관통하는 가치이자 원칙이어야 한다. 그 출발점은 신자유주의의 최대 희생자인 일하는 여성의 고통을 해결하는 것이다. 여성 노동에 대한 차별을 바로잡으며, 가사노동의 사회적 보상과 사회화를 추진한다. 임신, 출산 등에 대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하며, 여성을 소외시키고 상품화하는 문화적 요소들을 제거해나간다. 또한 여성의 정치 참여를 촉진하고 대표성을 보장하기 위해 할당제를 적극 활용한다. 


22. (도시 빈민과 영세 자영업자의 생존권 보장) 광범한 도시 저소득층이 생존의 위기에 처해 있다. 여기에는 일용직 노동자, 노점상, 상당수의 영세 자영업자, 노인, 장기 실업자 등이 포함된다. 생계형 노점상의 생존권, 세입자의 주거권을 보장하는 게 급선무다. 영세 자영업자의 생계를 위협하는 대형마트를 규제하며, 금융 이용, 상가 계약 등에서 나타나는 각종 부조리를 혁파한다. 또한 저소득층의 4대 보험료를 긴급 지원한다.   


23. (장애인, 성 소수자 등의 차별 철폐) 장애인, 성 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권리 보장은 결코 ‘시혜’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한 사회가 인권을 얼마나 존중하는지 보여주는 보편적 지표다. 따라서 생활의 모든 영역에 걸쳐 소수자 인지적 관점이 살아 숨 쉬어야 한다. 공교육과 공공시설, 직장에서부터 장애인 등 소수자 차별을 철폐하고, 이를 사회 전 영역으로 확대해간다.  


24. (1가구 다주택 소유 해체와 공공주택 확대) 주택 소유의 심각한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해 강력한 자산 재분배 정책을 펼친다. 우선 1가구 다주택 소유를 단계적으로 금지한다. 신규 건설과 공공 매입을 통해 중앙정부나 지자체 소유의 공공주택을 확대한다. 이를 통해 부동산 시장을 축소하고 주택의 상품적 성격을 크게 약화해, 주택을 소유하지 않고도 안정된 주거 생활을 누리게 한다. 공공주택이 확대되기까지 과도기에는 민간 임대주택의 세입자 권리를 철저히 보호한다. 


25. (입시와 학벌 지옥을 넘어 인간과 시민을 위한 교육으로) 학벌 권력, 대학 서열 체제 그리고 입시 경쟁의 결합으로 인해 엄청난 사회적 에너지(사교육비 등)가 낭비되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입시 전쟁을 끝내는 데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 현재의 입시 제도를 폐지하고 대학입학자격고사를 실시한다. 대학 서열 체제는 평준화 체제로 바꾼다. 고등학교와 대학교의 국공립 비중을 높이고, 국공립 대학을 전국적으로 통합한다. 등록금을 낮추면서 대학까지 무상 교육을 확대해간다. 입시 경쟁으로 왜곡된 초중등 교육 내용을 바꾸고, 교육 관료가 아니라 학생 ‧ 교사 ‧ 학부모 ‧ 지역사회가 학교의 주인이 되도록 교육 자치를 확대한다.

   

26. (무상 ‧ 공공 ‧ 예방 의료) 한국의 의료 체계는 이미 사적 의료 자본의 이윤 추구 행위가 지배하고 있다. 그런데도 건강보험제도마저 허물어뜨려서 의료를 완전히 돈벌이로 만들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 건강보험제도를 해체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용납할 수 없다. 오히려 그 보장성을 확대하여 무상의료를 단계적으로 확대한다. 이와 함께 반드시 공공 의료의 비중을 늘려야 한다. 지역별로 거점 공공 병원을 신설하고, 보건소의 기능을 강화한다. 이러한 공공 의료 체계에 주치의 제도를 결합시켜 예방 의료를 획기적으로 강화한다. 


27. (21세기 한국 현실에 맞는 보편적 복지의 실현) 4대 보험과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를 골간으로 하는 한국의 복지제도는 치명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엄청난 규모의 복지 사각지대의 존재다. 복지 개혁의 긴급한 과제는 이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것이다. 우선 저소득층에게 보험료를 지원하는 방안을 강구하면서 동시에 복지제도 전반을 근본적으로 손보아야 한다. 청년 실업과 장기 실업에 대한 대책으로 실업 부조를 도입하고, 기초연금을 보편적 연금으로 확대하면서 그 비중을 높인다. 또한 보육, 간병, 노인요양 등의 복지 서비스를 공공적 방식으로 공급한다. 나아가 모든 시민에게 일정 수준의 소득을 보장하는 기본소득제도를 추진한다.     


28. (문화 사회 건설) 노동시간을 단축하는 만큼 새롭게 확보하는 자유시간은 노동으로부터 자유로울 뿐만 아니라 소비 일변도의 생활로부터도 자유로워야 한다. 자유시간의 확대는 곧 모든 사람이 창조 행위의 주역이 되는 문화 사회의 건설로 이어져야 한다. 그러자면 누구나 문화 예술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문화 민주주의의 정착이 필요하다. 누구나 문화를 생산하고 향유할 권리를 누리도록 보장한다. 공공 도서관 등 지역 주민이 참여할 문화 공간을 확충한다. 한편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강요하는 획일화에 맞서 문화 다양성을 지키고 발전시키는 데 앞장선다.


29. (정보통신이 열어놓은 민주주의의 새로운 가능성 실현)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은 한편으로는 감시사회의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민주주의의 새로운 통로와 공간을 열어놓기도 한다. 이 가능성을 최대한 실현시켜야 한다. 국가와 자본의 감시나 프라이버시 침해를 제도적으로 방지한다. 정보통신 접근의 불평등을 해소하고, 사이버 공공영역의 자율성을 보장한다. 정보통신기술을 이용해 언론 독점을 강화하려는 시도들을 저지한다. 또한 오픈 소스 운동 등을 통해 나타난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공유 개념에 주목하여 지식과 정보의 민주화 ․ 사회화를 추진한다.  


30. (과학기술 개발에 대한 대중의 참여 관리) 과학기술 영역에서도 권력과 자본의 지배는 어김없이 작동하며, 그 후과는 대중의 삶에 엄청난 악영향을 끼친다. 이에 맞서려면 과학기술 개발 과정에 노동자 ‧ 시민이 참여해야 한다. 공익 연구 개발 투자를 확대하고, 과학기술 개발에 대한 민주적 통제 장치를 마련한다.



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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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www.zen.co.kr 에서 퍼온 글이다. 쉽게 접하는 유치한 상담사례같지만 읽어보면 약간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이 질문을 올린 사람은 20대의 어린 남자인듯 한데, 굉장히 현명하다. 질문에 대한 첫번째 두번째 답이 사실 기대이하임에도 질문자는 우선 고맙다는 인사부터 하고 그리고 부연설명을 하고 있다.

그리고, 세번째 네번째의 훌륭한 답변과 그에 대한 질문자의 받아들임은 보는 사람까지도 감동을 느끼게 한다.

이런 좋은 답을 얻을 수 있는 것도 역시 질문자가 현명하였기에 가능한게 아니었나 싶다. 역시 지혜의 힘은 강하다.




성문제가 고민입니다
익명       2008.10.07   조회 : 330


익명게시판이라 용기를 내어 써봅니다.
여친을 사귄지 일년 반 정도 되었습니다.
서로 사랑하고 결혼까지 생각할 나이지만 성문제가 심각합니다.
여친은 섹스를 기피합니다.
일년 반 사귀면서 섹스는 딱 두번이었고
그것도 제가 구걸하고 여친이 인심쓰다시피해서 관계를 가졌습니다.
관계 후에 굴욕적인 기분이 들더군요...ㅠㅠ
저는 여친을 사랑하고 여친도 저를 사랑한다고 하지만
섹스문제로 서로가 지친 상태입니다.
저는 사랑하는 사람사이에 섹스는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여친이 그걸 거부하고 저를 수준낮은 인간으로 보는 눈치여서 많이 괴롭습니다.
서로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둘의 관계가 비정상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상태로 결혼까지 하면 정말 괴로울 것 같습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여친의 마음을 돌려서 슬기롭게 해결하는 방법이 없을까요?
좋은 말씀 부탁드리며 미리 감사인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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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반님들이 남겨주신 의견입니다 (10개)
  ♡도반 2008.10.07 01:43     
ㅎㅎㅎ~ 죄송합니다만, 행복한 고민을 하시는 님이 (진심으로) 정말 부럽습니다.
솔찍 저같으면 헤픈 여자보다는 이렇게 몸을 아끼는 여성에게 더 끌릴 것 같은데요.

하지만 정상적으로 건강한 님의 성적 욕구불만도 충분히 이해합니다. 
여친도 성적의욕이 충분히 있을텐데 다만 그 통로 길을 못 찾으신 것 같네요.

쉽게 얻어지는 건 그 가치를 못 느끼는 것 아시잖아요. 
그러니 이걸로 스트레스 받지 마시고...이 얼마나 좋은 스릴입니까? 
서로 결혼까지 생각하고 계신다니, 평안한 장소에서 자연스럽게 분위기를 잘 리드해 보십시요. 

서로 상처받지 않는 선에서 좋은 관계가 지속되길 기원합니다~

(아~ 이런 연애 시절의 젊음이 너무 부럽다~ ㅎㅎㅎ~)

  ♡도반 2008.10.07 09:00     
주도권을 여친에게 잡혔군요.
남자가 정이 약해서 쉽게 여자에 마음이 동하는 상태라 보여집니다.
원래 정이 강하면 겉으로는 여자를 밝히는 것 같아도 마음의 중심은 자기안에 있기 마련입니다.
그런 남자에겐 여자가 때가 되었다 싶을때 스스로 몸을 허락하기 마련입니다.
여자친구를 존중한다면 그녀가 허락할때까지 기다릴 줄 아는 마음을 기르시기 바랍니다.
그것을 못참는것은 님께서 느끼는 바대로 비참한 일입니다.
가정의 주도권은 남자가 잡아야 남여모두 사회적으로 행복할 수 있습니다.
남자가 우위에 있어야한다는 것이 아니라 평등한 입장에서 남자가 리드할 수 있는 
상태가 좋다는 것이지요.
그러기 위해서도 정을 강하게 단련하시어 마음이 쉽게 흔들리지 않도록 하십시오.
결국 결혼한 후일지라도 지금의 여친에게 마음이 동했던 것처럼 
다른 여자에게 마음이 동하여 바람을 피우게 되는 것입니다.
여친은 그 부분을 동물적으로 감지하고 있는 것이지요.

행복한 결혼을 위해서 자기 수양을 게을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도반 2008.10.07 13:27     
질문한 사람입니다.
위에 두분 조언에 감사드립니다.
상황을 좀더 설명드리자면....아, 이거 되게 쑥스럽네요....
제가 색을 밝히는 편도 아니고 건강한 20대말의 남자로 보통의 성적욕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여친은....뭐랄까?....성에 대한 태도가 굉장히 차갑습니다. 
정신적인 사랑만이 진짜고 육체적인 건 불결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이게 보통 연애관계처럼 밀고 당기고 그런 거라면 저도 좋겠는데요,
그런 게 아니고 도가 좀 지나칩니다. 그냥 싹 무시하고 뭉개버리니...
자존심 상하는 게 한두번이 아닙니다.
뭐랄까?....그런 거 있잖아요. 
여친이 너무 고상하게 굴어서 제가 괜히 질낮은 인간으로 추락하는 기분...
이게 은근히 짜증나는 일입니다. 
쳇, 그래, 나는 저질이다. 너는 화장실도 안 가고 이슬만 먹고 사냐? 
그런 마음이 드는 거죠.   
그러니까 저도 말이 똑바로 안나오고 자꾸 비꼬게 되고요,
그럴수록 여친은 저를 더 수준낮은 인간으로 보는 것 같고...
친구들이 여친이랑 며칠씩 휴가도 같이 가고 그러는 거 보면 부러운 생각만 듭니다.
제 여친한테는 씨알도 안 먹히는 소리거든요.
데이트해도 밤 열시 전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귀가하고요
뽀뽀라도 한번 할라치면 엄청 기회를 노리고 눈치봐가면서 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열 번도 안 되네요...ㅠㅠ
얘기를 나눠보면 둘이 마음은 정말 사랑하는 것 같은데 왜 자꾸 이런 식으로 관계가 틀어지는지 모르겠습니다. 
뭔가 실마리를 찾아야 하는데 답답하기만 하네요.  

  ♡도반 2008.10.07 14:46     
젊은 남성의 님의 마음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또한 딸을 키우는 아빠로서 여친의 마음도 충분히 이해하구요.  

그런데...여기서 잠깐 멈춰서 (숨도 세번 정도 깊게 들이내키시고)
이런 점들을 생각해 보십이요.  

[1] 앞으로 님도 결혼을 하면 딸을 낳을 수도 있는 데, 
그 보석같은 따님의 이런 상황의 (성)교육을 어떻게 하실 것 같습니까?
(답을 요구하는 게 아니라 여친의 마음도 이해하실 수 있게 
님의 생각이 약간은 열리게 자극이 되기만 바랄뿐입니다.)

[2] 혼전에는 주로 장점만 느꼈던 사랑스런 연인이
결혼 후에 한 이불속에서 생활하면서 서서히 신비감은 사라지고
단점이 더 많이 보이는 게 많은 결혼생활의 현실입니다. 

그래서 행복한 결혼생활을 누리시려면...
지금같은 고민도 상대방의 마음을 내가 원하는 조건에 맞춰 바꾸려기 전에 
님께서 먼저 절충한 관계를 유지하려는 마음의 훈련을 하셔야 할겁니다. 
그게 바로 화목한 가정의 뿌리거든요. 

[3] 인간의 모든 근심 걱정은 욕망에 씨앗을 두고 있답니다. 
그리고 그런 욕망이 자신은 물론 주위 사람들 까지 힘들 게 만들게 되구요.  

물론 결혼을 앞둔 남녀가 서로의 동의하에 건강한 성생활을 하는 데 굳이 
나무랄 일은 아닌 것 같지만, 현재 여친께서는 성관계에 마음을 100%
열지 못하고 있는데, 강요하는 것은 매우 이기적인 판단이라고 볼 수 있기에
원만한 관계를 위해 님의 욕망을 조절하는 편이 현명할 것 같습니다.  

...

마지막으로...농담같지만, 자주 샅샅이 정복하는 산은 흥미를 잃기가 쉬워요~
솔직히 결혼후엔 아마 이런 고민보다 체력을 쌓으셔야 감당(?)하실 
걱정을 하셔야 할겁니다. ㅎㅎㅎ~

대장부가 한마음 내셔서 조바심 놓으시고!!! 
진정하게 사랑하는 여친이 긴장되지 않게 잘 배려해서
앞으로 꼭 결혼 성사되길 기원합니다. 

  ♡도반 2008.10.08 09:30     
저는 딸을 키우고 있는 엄마로서 말씀드리고 싶네요.  님의 여친이 육체관계를 거부한다고 할때 님께서 여친은 고상하고 자신은 저열한 존재로 취급받는 다는 느낌을 받는다 하셨는데 그러한 느낌이 왜 일어나는가 자신을 살펴보신다면 님의 여친과의 관계가 조금은 편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인간의 심리라는것이 일단 자기중심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자긴의 생각, 주관에 방해되고 반대된다 싶은 대상을 대하면 자기중심적으로 합리화하기 위하여 모든 생각과 심리작용이 일어나는 것이지요. 나는 나의 욕망을 충족시키고자 관계를 원하는데 그걸 거부하는 너는 그렇게 고상하냐  그런 느낌이 일어나는 것을 지켜보면 그속에는 무시당했다는 데 대한 자존심이 올라온 것임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 자기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다면 상대방을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대상으로 보기보다 상대방의 생각과 느낌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게 됩니다. 먼저 자신의 마음을 살펴야 상대의 생각과 느낌까지 존중할 수 있게 된다는 말이지요. 

 여자의 입장에서는 현재 아무리 자유분방한 여성이라 해도 결혼전이라는 상태에서 성관계를 자유롭고 편하게 상대해줄 수 있는 여성은 그리 많지 않으리라 봅니다.  대한민국의 정상적인 가정에서 딸들에게 시키고 있는 교육적인 영향도 만만치 않지요. 여친이 관계에 응해주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심정적인 부담을 안겨준 것입니다.  그런 부담과  남자친구의 요구를 들어주어야 할것인가 말것인가로 갈등하는 심리적 부담과  이런 것들이 합쳐져서 님의 여친의 마음은 조금 복잡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것 같네요. 님의 여친이 정말 결벽증이 있을 정도로 플라토닉 러브에만 집착하는 유형이라면 처음의 요구에도 절대 응해주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지극히 정상적인 보통의 여성인데 님의 여친을 그렇게 느끼게 만드는 것은 님의 내면에서 꿈틀거리는 님의 욕망에서 상대를 바라보기에 그러한 느낌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신의 문제를 먼저 바라보는 것이 문제를 명상적으로 해결하고자 다가가는 기본입니다.  상대의 문제는 아주 잘 보이고 잘 느껴집니다.  그런데 그것의 대부분은 자신의 욕망이나 자신의 자존심이 창조해낸것입니다. 그러니 실제로는 있지도 않은 것이지요. 이런 것을 이해하고 상대를 대할 수 있다면 어떻게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상대에게 자신에게 맞춰달라고 하는 요구를 할 수 있을까요?

남성들의 욕구는 자존심과 하나로 뭉쳐있으니 자신의 욕망을 거부당하면 자존심이 올라오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이렇게 자신을 이해하는 쪽으로 다가가신다면 앞으로의 결혼생활에서도 남자와 여자의 성적차이점을 이해하고 조화로운 생활을 해나갈 바탕이 될꺼라고 생각됩니다. 

한번 허락했으니 두번은 어떠랴  이건 정말 상대를 성적도구로밖에 보지 않는 처사입니다.  님과의 관계를 허락한것도 님께 대한 신뢰가 컸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고 허락한 것에 대한 역작용으로 그만큼 불안도 함께 하고 있을 수 밖에 없는 법이지요. 이런 복잡한 여심을 님께서 이십대의 나이에 이해하시기에는 무리일 것입니다.  그리고 남성들의 속성상 한번 맛을 보면(?)  더 참기가 힘들꺼라는 것도 이해합니다.  그래서 그런 고민도 하시는 것이지요.  이렇게 일어나는 모든 것들을 님의 공부꺼리로 삼으시길 바라면서  딸키우는 엄마로서 여친 아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행복한 데이트하시길 ....힘들지만 님께서 여친을 아끼려고 혼자 무지하게 노력한다는 것은 여친이 말로 표현안해도 너무나 잘 알것입니다. 그 답례는 결혼이후에  남편에 대한 존경과 감사로 나타날 것입니다... 신뢰받을 수 있는 남자가 되시길 바랍니다. 

  ♡도반 2008.10.08 10:58     
너무 여성입장에서 쓰여졌습니다만 님은 지극히 정상적인 남자입니다. 
그리고 남자가 원래 좀 어리석습니다. 
현명한 여자는 남자의 그런 측면을 내면적으로 컨트롤 할 수 있어야 하는데 
남자의 욕구를 두려워하는 나머지 지나친 자기방어를 하게되어 문제가 일어나는 것이죠. 
여자의 기량은 "받아들임"입니다. 자기가 선택한 남자를 좋은 점만 받아들이고
자기에게 불리하고 더러운 부분은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여성으로써 아직 미숙한 것입니다.
그러니 서로의 미숙함이 만들어내는 젊은날의 통과의례라 보시면 될것같습니다. 
현명한 해결을 원하신다면 상대가 변하길 바라기보다는 자기가 변하는 것이겠지요. 

님의 건투를 빕니다. 

  ♡도반 2008.10.08 19:58     
질문 올린 사람입니다.
답변주신 글들을 몇 차례 차근차근 읽어보았습니다.
너무나 소중하고 지혜로운 조언들을 주셔서 뭐라고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코끝이 찡한 감동이 밀려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말씀을 되풀이해서 읽는 중에 제 자신을 돌이켜 보게 되었습니다.
제가 너무 자기 욕망만 중시하는 이기적인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고상한 체 하는 것처럼 보였던 그녀의 모습도 실제로는 그만큼 자기 관리를 잘 하고
저를 향한 사랑의 마음이 깊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방금 통화해서 여친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녀를 한층 더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의 갈등이 봄눈 녹듯이 사라지는 느낌입니다.
모두 여러 선배님 덕분입니다.
정말 정말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더 깊이 사랑하겠습니다.

  ♡도반 2008.10.08 23:26     
단숨에 단물을 다 빼먹어 버리면 긴장감과 신비로움을 잃어 버리게 되니
여친께서 이 점은 리드를 잘하신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대장부 님께서도 정말 잘 생각하셨습니다. 
이렇게 마음 한번 바꿔 생각하면 괴로움의 원인도 없어지는 걸 느끼셨으니
이번 고민으로 정말 큰 지혜를 깨달으셨고, 앞으로 행복한 가정이 꼭 이뤄지길 바랍니다. 

  ♡도반 2008.10.09 04:13     
질문 올리신 분께서 이십대의 나이시지만 무척 현명하고 지혜롭게 문제를 대하고 해결하고자 노력하는 분이라고 생각됩니다. 

본인 스스로 이기적인 사람이었음을 아셨다고 하셨는데  그렇다고 자책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생각됩니다.  이세상에 이기적이지 않은 사람은 하나도 없을테니까요.  모든 인간에게 욕망이란 문제는 해당되는 문제 아니겠습니까?  남성여성 가리고 구분할 문제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 욕망의 뿌리는 결국 살고자 하고 살아남고자 하는 본능에서 비롯되어지는 것이니까요.

욕망이 일어난다고  스스로를 탓할 이유가 없지요. 그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그 욕망을 두려워하지말고 대하는 것이 현명한 길이라고 생각됩니다.  남성의 성적욕구라는 것은 강하게 겉으로 드러나기에  강하게 느껴지는 것이지 사실  인간의 내면에 관심을 가지고  관찰하는 사람이라면  자기안에서  무수하게 일어나는 온갖 욕망이라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아주 사소한 일에서까지  얼마나  강한 이기심과,  시기 질투, 욕심, 이런 것들에 얽혀 있는가를 확인할 수 있지요.

욕망자체가 더럽고  거부해버리고 피해야 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뿐이라고 생각됩니다.  욕망이 더럽다고 생각한다면 인간존재 자체를 더럽다고 생각하는 거나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이런 것은  출가하여  수도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도 똑같이 느끼고 있을 문제라고 생각됩니다.  어떤 횅위를 하지 않으면  성스럽고  행위를 하면 더럽고  이런 고정관념자체가 말이 안되는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섹스를 하지 않는다 하여 욕망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런 경우엔 다른 쪽으로  더욱 강하게 표출되는 욕망의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지요.  성욕이라는 것은 인간의 무수한 욕망중의  한 일부일 뿐인 것입니다.   

이렇게 자신의 욕망을 편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면 자신을 억압하고 자책하는 부담에서는 놓여나게 됩니다.  그것만 해도 엄청난 부담을 더는 일이 됩니다. 

저의 경험상  여성의 심리에 대하여 이해하지 못하여 겪은 고통이 많습니다.  결혼생활의 가장 큰 문제가  부부간 대화의 부재입니다.  남자와 여자의 말하는 방법과 표현방법은 정말 너무나 다릅니다.  이걸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이  서로  자기문제만 주장하다보면 결국 입을 다물게 되고  이혼까지 가게 되는 경우가 너무나 많지요.   
질문하신 분께  두권의 책을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저도 도움을 많이 받았답니다.  <금성에서 온 여자, 화성에서 온 남자>  <여자는 절대 말하지 못하고 남자는 절대 알 수 없는 것>  이 두권인데  저자는 같습니다.  출판사가 기억나지 않는데 제목만 알면 쉽게 구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자신의 욕망을 편하게  대하고  그리고  여친의 여성적인 심리와 속성을 이해하고 다가가고자 노력하는 것 ,  이  두가지가  질문하신 님께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질문하신 분 덕분에  저도 좋은 글 많이 읽을 수 있어서 감사드립니다.... 




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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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답은 www.zen.co.kr 의 게시판에서 옮겨온 것이다. 이 웹싸이트는 번역가(이자 명상가)인 손민규의 웹싸이트이다.
밑의 질문과 답변은 아마도 최근에 일어난 유명배우(최진실)의 자살을 염두에 둔 것같다.

그 문답의 내용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이건 철학의 가장 기초적인 문제 '운명론'과 '자유의지론'에 대한 질문이다. 대답의 수준이 높다. 아마도 손민규의 답변이 아닐런지.

추가. 즉 결국 우리가 - 일반 사람이 - 생각하고 상정하고 있는 '자유의지'란 결국 자유의지가 아니라는 얘기다 (일반적으로 말해지는 자유의지는 조건에 의존하는, 즉  연기법에 따르는 실체가 없는 것이라고 'What the Buddha Taught'는 설명한다).

이걸 사람들이 알아야할 텐데. 이해하기 어렵고 또 설명하기 어렵고 무엇보다 깨닫기 어려운 문제다.











자살도 운명인가요?
익명       2008.10.11   조회 : 50


 
라마나 마하리쉬는 수저드는것까지 미리 정해진 운명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럼 자살도 운명이란 말인가요?
 
자유의지에 따른 선택이 아니란 말인가요?
 
물론 일반적으로 운명과 마하리쉬가 말하는 운명이 좀 다르겠지만...
 
반면에 니사르가다타는 운명이란 없고 다만 모든것은 단지 우연에 의해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입장으로 말했습니다
 
즉 실체가 없는 꿈같은 일이 이세상의 일이란 것이죠
 
결론은 같은데 과정이 다른거죠..



도반님들이 남겨주신 의견입니다 (1개)
  ♡도반 2008.10.12 14:22     
자유의지라고 하는 것은 오직 "무시"할 수 있는 자유입니다.
운명의 무게에 휘둘려 지치고 힘들어 자살하겠다고 하는 것은
자유가아니라 속박입니다.

마치 개에게 밥먹으려고 할때마다 전기쇼크를 가하게되면 
전기쇼크가 가해지지 않을때조차 밥을 먹으려하지 않게됩니다만
그 개의 입장에서는 밥먹지 않는 것을 자기가 선택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선택의 자유입니까? 먼저 속박당하고 그것을 자기합리화 한 것일 뿐입니다.
개에게는 인간만큼 "무시"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나타남은 우연에의해 나타납니다만 시간이란 요소를 인정하는 한
그것은 운명(필연)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 무엇이 아무것도 없던 지구에 인간이라고 하는 복잡한 지적인 생명체를 
만들어낼 것이라고 미리 프로그램한 것은 아닌 것입니다.
그것은 "우연"입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 인간이 나타나기까지의 과정은 그것이 
어떻게 되었든 합당한 인과관계를 가지게끔 되어진 "필연"인 것입니다.

니사르가다타는 전체의 관점에서 나타남이 우연임을 말한 것이고
라마나마하리쉬는 부분의 관점에서 나타남의 필연성을 말한 것입니다.
그 둘은 같은 이야기입니다.

자살이 올바른 자유의지로 인한 선택이 되기위해서는
충분히 자기의 운명의 책임을 행복하고 조화롭게 완수한 이후에 
마치 열심히 일한 사람이 집에돌아와 이제 그만 잠을 자려는 평온한 마음에서 
선택하는 것입니다.

"배신당해서"라던가 "재산을 사기당해서"라던가 하는 얼핏 당연해보이는 자살동기조차도
결국은 자기의 욕심때문에 뭔가에 집착해서 생긴 "속박"일 뿐입니다.
그것을 자유의지로 미화하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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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재의연품




어디에 수해가 나서
그러니까 홍수가 나서
TV는 언제나처럼 호들갑을 떨고 있는데 화면에


한 촌로가
외양간도 비닐하우스도 떠나보낸 한 할아버지가
물빠진 분홍색 체크무늬 츄리닝을 입고서
연신 고개를 조아립니다


참 이렇게 좋은 옷 보내주셔서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그 색바란 츄리닝은
나이키도 아니고 프로스펙스도 아닌데


좋은 츄리닝도 못 알아보는
그 할아버지가 미워져
나는 가슴이 욱신거렸습니다



 

                                                  2008. 8. 17 
                                                          一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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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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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양동詩人의 위대한 탄생

 

 

나는 조그마한 지방 라디오 방송국에서
그야말로 PD선생님 또는 감독님을 했었는데
어느날 사표를 내버렸다


사람들은 죽을 사냐고 물었고
나는 점잖게 물리치는 사양하는 사라 했다


사표를 내니 나는 가야할 곳이 없어
집에 있었고
그리고 나는 시를 썼다


아주 가끔 날 찾는 이들이 내게 명함을 달라했다
명함은 사표와 함께 사라지는 법


나는 말해주었다
여기는 별양동 나는 시인이라고



                                                   2008. 8. 11 
                                                          一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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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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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山

 

 

아니 다시 내려올 것을
뭐하러 올라가누
도대체 거기에 뭐가 있다고


그들은 알까?
산 위에는 없는 것이 있다는 것을


산위에는 물도 없고 밥도 없고
집도 없고 바람불어 추워도
그걸 막을 옷도 없고


오직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음


해서 산에 가면
그 부족을 익혀
결국에는 가득
채워지게 된다는 것을


그들은 알까?
산에는 없다는 것이
있다는 것을


 

                                                  2008. 8. 17 
                                                          一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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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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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상(母子像)

 

 

두살배기 아가는

엄마에게 첫차입니다.

행여 다칠까 어디 아플까

첫 차를 타고서도 눈을 감지 못합니다

 

아가에게 엄마는 언제나 종점입니다

아프거나 배고프거나 무섭거나

또는 심심하거나 그제서야

 

엄마가 막차를 타고 떠나는 날

개구장이도 심상치 않았는지

울면서 매달립니다

 

두팔이 갸느랗게 목에 감겨옵니다

조그맣고 따스한 몸

엄마는 그렇게 종점이 됩니다

 

 

 

                                                  2008. 8. 17 
                                                          一虎

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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