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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0.07.25 [나의詩] 로그아웃
  3. 2010.06.17 나이키의 패배
  4. 2010.06.11 1966년 제8차 세계 축구선수권대회
  5. 2010.06.10 호주의 냄새
  6. 2010.06.08 기말시험
  7. 2010.06.07 두려움의 반대말
  8. 2010.06.06 세상에 맞춰가는 사람들
  9. 2010.06.01 스웨덴 아가씨
  10. 2010.05.31 영웅의 신화


후천개벽
 



도에 관심있으십니까? 하길래,

어렸을적 서점의 역학코너에 사주팔자 풍수지리 관상 수상옆에 빠지지 않고 있던 책들이 정역이네 개벽이네 하나같이 후천개벽이 어쩌고 저쩌고 지축이 바로 서면 어쩌고 저쩌고 한민족이 세계제일이 어쩌고 저쩌고 어린마음에 지축이 바로 서서 후천개벽이 되면 휴거가 되려나 싶어서 재밌겠다 싶었다가 한편 한민족이 세계제일이 된다 하여도 내가 세계제일이 될 것 같지는 않기도 하다가 그래도 후천개벽을 하면 그래도 나한테 콩고물이라도 떨어지지 않을까 싶어서 어린 마음에도 복잡한 심정으로 그 책들을 뒤적여 본 것이 겨우 이십여년전인데 이십여년이 지나보니

한강의 기적을 넘어 정보통신강국이요 풍족하게 살기로는 세계제일이며 축구도 사강이요 수영도 피겨도 금메달 텔레비 핸드폰은 쓰리스타가 최고에 인터넷도 제일 빠르고 이젠 자동차도 넘버원이라 할 정도니 과연 후천개벽이 되었긴 되었구나 싶기도 하다가 아직도 헐떡이는 사람들을 보면 후천개벽이 뭐 이래 나를 봐도 이게 후천개벽인가 싶어서 이런게 개벽이라면 개뼉다구만도 못하다고 하는 참에

개벽이란 뒤집어짐이니 무엇이 뒤집어짐인가 사람이 곧 하늘이라 남자가 여자되고 여자가 남자되니 그것이 바로 후천개벽이요 지축이 바로 서는 것일지니 아하 그럼 나도 여자되어 모다 품에 보듬어서 지는게 이기는 것임을 너도 살고 나도 살아 우리 모두 같이 사니 이것이 바로 후천개벽 여기서 이미 이루어졌으니 이것이 바로 내가 죽고 다시 사는 너와 나의 후천개벽이로다,

하였습니다

 

                                                                                                2010.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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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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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그아웃
 



로그아웃하였습니다 성공적으로
감사합니다 이용해주셔서

그때
나는
몰랐었다
로그인의 끝에
로그아웃이 있다는 것을


                                                  2010.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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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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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가는 날, 조금 일찍 일어나 TV를 켰다. 먼저 눈에 들어온 건 2:0이란 점수. 혹시 했지만 역시 북한이 0이었다. 그러나 북한팀은 지고 있는 팀이 아니었다. 그들은 당당했으며, 주눅들지 않았고, 자신감에 차있었으며,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 자신감은 어디에서 왔을까? 북한 유니폼의 오른쪽 가슴위에 새겨진 LEGEA라는 글씨를 보면서 그 자신감과 당당함은 최소한 나이키에서 온 것만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나이키가 아니어도 축구를 잘 할수 있다는 것. 북한의 선전을 기원해 본다.

# LEGEA유니폼을 입는 축구국가대표팀 : 알바니아, 보스니아 앤 헤르제고비니아, 몬테네그로, 북한, 짐바브웨 (출처: 위키피디아http://en.wikipedia.org/wiki/Legea)

| 조회 11 | 2010.06.19. 20:28

그러고 보니 호주에 와서는 한국에서는 하지 않았던 일들을 참 많이 하게 됩니다. 월드컵 축구경기를 보게 된것도 그 중의 하나입니다. 오지 풋볼이나 크리켓보다는 훨씬 더 익숙하기도 하고, 또 첫 경기를 재미있게 봐서 계속 관심이 가는 듯 합니다. 북한과 브라질, 그리고 한국과 아르헨티나의 축구경기를 지켜보면서, 많은 걸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북한과 브라질의 경기가 있는 날은 학교에 가는 날이었습니다. 조금 일찍 일어나 TV를 켰습니다. 스코어는 2대0.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브라질이 앞서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북한은 전혀 지고 있는 팀같지 않았습니다. 끝나기 전에는 만회골도 넣더군요. 인상깊었습니다.

 한국과 아르헨티나의 경기는 북한과 브라질의 경기와는 많이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한국팀은 왠지 모르게 자신감이 없어 보였습니다. 주눅든 것처럼 보였습니다. 반면 북한팀은 2대0으로 지고 있었지만 두려워하는 모습을 볼 수 없었습니다.

 북한팀의 자신감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요? 우물안 개구리의 허풍과 배짱에서 나온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해도 그 자신감은 분명히 빛을 발했습니다. 남한에 Money talks 가 있다면, 북한에는 그것과는 전혀 다른 뭔가가 있는 듯 합니다.

 다른 뭔가를 한 두마디로 요약할 수는 없겠지만, 하여튼 북한의 당당함은 한국의 그것보다는 몇 수 위로 보입니다. 그러기에 아직까지도, 적어도 겉으로는 미국과 맞짱을 뜨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일본이 북한을 두려워하는 이유가 그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힘센 이에게 고개 조아리지 않고 자기 식대로 산다는 자신감이 세계랭킹1위 팀과 맞붙어도 주눅들지 않고 자기들 식대로 축구를 하는 밑바탕이 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민자의 생활, 말설고 사람설은 곳에 와서 살다 보니 왠지 모르게 어깨를 움추르며 살게 됩니다. 북한팀의 경기를 보면서, 아무리 뻥카라해도 당당함만은 갖고 볼 일이다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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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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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제8차 세계 축구선수권대회

 

여자들이 재미없어하는 남자들의 얘기가 하나는 축구고, 또 하나는 군대라. 제일 싫어하는것은 군대에서 축구했던 얘기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런 유머도 이젠 시대에 맞지 않는데, 월드컵광풍앞에서는 여자도 예외가 어떤면에서는 남자들보다 더 하다고 할 수도 있다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싫어하는 것 역시 축구얘기고, 그리고, 또 싫어하는 것이 북한이라는 국가다. 이 북한이라는 국가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봉건왕조의 냄새가 풀풀나는 전체주의국가(내가 제일 혐오하는 전체주의)이기때문이다. 물론, 항일운동이나 정통성시비등 여러모로 남쪽보다 훨씬 더 당당할 수 있지만, 지금까지 북한인민들이 입만 열면, 위대한 수령 김일성과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을 외치는 걸 보면, ‘성은이 망극하옵니다의 현대판 리바이벌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기만 하다. 주체사상에서는 국가를 어찌보는지 모르겠지만, 내 눈에는 대한민국의 국가주의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하여튼, 내가 싫어하는 축구얘기와 북한이 결합된, ‘북한 축구얘기가 어제밤 SBS (Special Broadcasting Service : 이곳 공영방송중 하나) 에서 나왔다. 비록 내가 좋아하지는 않지만, 무엇보다 궁금한 것 또한 북한이다. 내가 제일가보고 싶은 나라가 북한과 평양이고, 제일 만나보고 싶은 사람들 역시 북한사람들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BBC에서 만든 것으로, 1966년도 영국에서 열린 제8차 세계축구선수권대회 (월드컵을 북한인민들은 이렇게 표현했다) 에 출전해서, 4강에 진출할뻔한 북한축구팀의 얘기다1시간 남짓 보는 동안, 저 다큐멘터리를 만든 사람은 이적단체 찬양고무죄, 그리고, 그걸 흥미진진하게 보는 나는 불고지죄로 국가보안법에 걸리지 않을까 싶어 걱정될만큼, 잘 만들어진 다큐멘터리였다.

 

다큐멘터리는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그때 북한축구팀이 얼마나 커다란 센세이션을 일으켰는지, 북한선수들과 그때의 기억을 간직한 영국사람들, 상대팀 선수들, 그리고 북한인민들의 인터뷰와 풍부한 자료화면을 통해 전달하고 있다. 가슴에 훈장을 주렁주렁 단 초로의 북한선수들은 그때의 순간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첫 경기 소련과의 3:0 , 칠레와의 1:1 무승부, 이어진 막강 이탈리아와의 쇼킹! 1:0 (이탈리아는 이 경기를 끝내고 귀국하면서 썩은 토마토와 계란을 맞았다). 그리고, 8강전에서는, 브라질을 꺽고 올라온 최강 포르투갈에 3:0, 무려 삼대영!!! 으로 앞서다가 5:3으로 역전패하기까지 말이다. 북한인민들의 인터뷰하나하나 모두 인상적이었는데, 그 중에 몇가지를 기억하자면, ‘8강전때 숙소가 교회였는데, (수도사들이 쓰는) 독방이 배정되어서, (독방이 익숙치 않은) 선수들은 다른 선수들과 함께 방을 쓰기도 했고, 예수가 십자가에 박혀서 매달려있는걸 처음 봤는데, 그게 한밤중에도 조명이 비춰지고 있어서, 무섬증도 나고 그랬다’ ‘김일성동지께서 친히 한 두팀이라도 꼭 이기라고 하셨다’ – (그들은 김일성얘기를 하면서 또 울먹였다 -_-;;;; )  등등.

 

화면을 보니, 정말 그때 미들스버그(이 지명이 맞는지 모르겠다)의 영국사람들은 북한의 선전에 엄청난 환호를 보내고 있었다. 가는 곳마다 사인공세에, 인공기를 흔들고, 그때 소년이었던 한 영국남자는 아직도 생생하게 환호의 순간을 기억했고, 보여지는 장면들은, 인공기티셔츠를 입은 소년들, 북한 선수들을 만나보고 싶어하는 영국사람들. 거리에 꽂혀있는 인공기, 시장까지 찾아와서 찬사를 보냈던 일등등.

 

북한축구선수의 인터뷰에도 나왔지만, 그들에게는 영국이 적국이었다. 53년이 종전이니, 1966년으로보면 겨우 13년전의 일. 지금으로 따지자면 김영삼때 서로 목숨걸고 싸웠던 적국에 간 셈인데, 그 곳 영국사람들로부터 이런 환대는 기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이해가 갈만한 것이, 영국사람들 입장에서는 잘 모르는 아시아의 조그만 나라가, 세계의 강호들에게 밀리지 않고 당당하게 싸우는 모습을 보면, 멋있게 느껴지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강팀보다는 약팀을 응원하게 되는게 인지상정이 아닌가 말이다. 게다가, 내가 보기에도 그들은 정말 주눅들지도 않고 잘했다’.

 

당시 경기 모습 중간 중간 오버랩되는 현재의 평양시가지모습과 카드섹션, 매스개임, 그리고  배경으로 쓰인 도라지타령은 제작진의 의도된 과잉이 느껴졌지만, 당시 북한 선수들, 그리고 북한 사람들의 인터뷰에서 그들의 순박함이 잘 드러났다. 역시 입만 열면 수령의 은혜부터 나오긴 했지만, 그때 그들은 가난한 나라, 누가 잘 알아주지도 않는 그런 나라에서 와서, 주눅들지 않고 꿋꿋하게 싸웠고, 그리고 고향사람들에게는 커다란 환희와 감격을 안겨다 줬다.

 

뭐랄까. 연민이랄까. 그래, 잘했다 라는 생각도 들고, 그때 북한사람들-남한보다 잘 살았다고 해도 도 힘들었을텐데, 좋았겠구나 싶기도 하고, 그랬다. 그들도 사람아닌가. 경기장입장할때, 외국선수들보다 목 하나는 작아보이고, 빨간내복같은 유니폼에 얼굴은 감자바위처럼 생긴 그들이 한편으로는 안쓰러워보이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토닥여주고 싶기도 하고 그랬다. 내가 싫어하는 북한축구다큐멘터리를 보면서 말이다.

 

다큐멘터리 마지막에 자막이 나오기를, 그때 남한에서는 어쩌구 저쩌구 했다는데, 너무 빨리 지나가버려(아니면 내 독해실력이 형편없어서) 해석이 안 됐다. 아마, 한국에서 루머가 돌았다는 얘기같았는데, 그때 남북한이 서로 못잡아먹어 안달인때니, 그럴만도 했겠다 싶다. 하나 더 덧붙이자면, 이번 세계축구선수권대회에 한국이 토고라는 아프리카나라와 맞붙는다는데, 나는 토고가 이겼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1966년도 제8차 세계축구선수권대회에서 북한이 8강에 오른 것처럼, 토고가 한국도 이기고, 계속 이겨서 16 8강에 오르면 토고사람들이 얼마나 기뻐하겠나? 축구에 관심없는 미국이 4강에 드는 것보다, 토고가 16 8강되는 것이, 인류의 행복에 더 큰 효용이 될 것은 누가 봐도 자명하지 않은가? 세계의 평화와 인류의 행복을 위해 노심초사하는 시베리아 호랑이 살리기 세계기금은 토고의 선전을 기원하는 바이다.

 

 

후기. 어제 미드와이프 로빈을 만났는데, 대뜸 하는 말이, 일요일에 코리아 월드컵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봤냐면서, 영국사람들과 코리아 (북한을 일컬음)선수들의 우정이 너무라도 아름다웠다고 한다. 잘 만들어진 다큐멘터리는 나같이 '축구'와 '북한'을 싫어하는 사람의 마음도 움직이게 하는 법이다. 로빈은 역시, 말끝에 우리에게 어디출신인지 물었다. '노쓰코리아? 사우스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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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의 냄새

소선재에서 2010. 6. 10. 19:48

코가 있는 곳이면 어느 곳에나 냄새가 있기 마련이다. 설령 냄새가 없어도 그것조차 냄새다. 호주의 냄새는,

1. 공항에서의 냄새

잊을 수 없다. 이방인에게는 이것이 바로 호주의 첫 냄새다. 묘사하자면, 호주대륙의 자연과 사람들의 호흡이 섞여서 벤틸레이션 덕트에 걸러진 냄새다. 강하진 않으나 결코 없다고는 할 수 없는 그 냄새.

2. 보라의 그 방향제

공항에 마중나온 동생의 차엔 바닐라향의 방향제가 있었다. 도착한 후 반년넘게 동생 차를 신세지면서 시드니의 가는 곳마다 그 방향제냄새가 나를 압도했다. 차가 없으면 시장에도가질 못하니, 그 바닐라향은 시드니 어디서나 무소부재하였다.

3. 향수와 노린내

처음 실았던 유닛 1층의 한국 아줌마. 여기 와서 처음에 양놈들 노린내때문에 아주 힘들었다고 했다. 지난 몇 년간 몇 명 있었다. 노린내 심한 백인. 나도 그들에게 마늘냄새가 날까? 싸구려거나 비싸거나 짙은 향수는 질색이나, 어쩌면 노린내보다는 마늘냄새보다는 나을 지도.

호주의 냄새는 약해져만 간다. 내가 그만큼 여기서 살았기때문이다. 한국의 냄새는 어떻게 되었을까? 숨 못쉴 정도만은 아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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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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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말시험

소선재에서 2010. 6. 8. 20:00

기말시험을 보다. 햇수로 4년째. 익숙해진 듯 하다.
4년은 확실히 짧은 시간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학교를 다니며 4년을 보냈다.

학교다니는 인생이 편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머리속에 여유는 없다.
학업에 매여있다는 말이 맞는 말이다.
하기사 세상일이 안 그런일이 어디있겠는가?
돈을 벌게 되면 생업에 매이게 될 것이다.

금년에 졸업하면............

당분간은 학교와는 안녕이다.

어떤 일이 다가올지는 아직 모른다.
그것이 바로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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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사람들 사주봐주던때였다.

'자좀심이 세군요'
'안 그런 사람 있나요?'

'돈을 많이 벌고 싶어하시네요'
'안 그런 사람 있나요?'

'간섭받기 싫어하셔요'
'안 그런 사람 있나요?'

'학교다니실때 힘드셨겠어요?'
'안 그런 사람 있나요?'

'여행다니시는 거 좋아하실 것 같은데요'
'안 그런 사람 있나요?'
..............

많은 사람들은 '안 그런 사람 있나요?'라는 대답으로
나의 우수한 사주해석을 별것 아닌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사람들은 자기가 보는대로 세상을 본다.
그리고, 그 세상은 다른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일거라 생각한다.

세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
세상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 숫자만큼 존재한다는 것을 사람들은 모른다.

무지는 두려움을 낳고, 두려움은 폭력을 낳는다.
쥐 한마리가 노무현을 죽인 것도 두려움때문이었다.
그러나, 노무현이 뭘 어쨌다고?
그 두려움은 본인이 만들어낸 마야일 뿐이다.
어디 가카뿐이겠는가?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감출게 없다.
솔직하지 않으면 그는 겁장이에 사기꾼이다.
붓다와 예수는 아마도 솔직한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두려움의 반대말은 솔직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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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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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처사집에 초대를 받아갔다.
이곳에서 형님으로 부르는 유일한 사람이다.
딱 맞아서가 아니라, - 그런 사람이면 형님이라고 부르지도 않겠지만 -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라 형님이라는 호칭이 적당할 것 같아 그리 부른다.
술을 마시고 취해가는 사람들과 있는 것은 그다지 재미있는 일은 아니다.

나처럼 세상을 거슬러 사는 사람이 있고,
세상에 맞춰서 굴종과 타협으로 사는 사람이 있다.
도라는 것이 세상의 흐름에 거슬리지 않는 것이라 한다면,
후자가 보다 더 도에 가깝다고 할 수도 있겠으나,
그들이 쫓는 욕망을 생각해보면
그것 역시도 세상에 거슬러 사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외롭고 힘들고, 그리고 그 무게에 버둥거리며 산다.
누구 탓이겠는가?
누가 말해준다고 알 수도 없는 일이고, 세상은 그런 사람들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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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호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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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이 시작했는데도 아직 들어가지 않고 있었다. 두번째 담배에 불을 붙인 후였다. 백인 아가씨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무언가를 부탁한다. 쏘리를 하고 난 다음에야 담배 하나를 얻으려 한다는 걸 알았다.

주기 싫었다. 전에도 거절한 적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너무나도 공손하고 정중한 부탁. 거절이 어려웠다. 담배갑으로 가는 손은 느리고 느렸지만 결국 여자의 손에 담배가 건네졌다. 라이터도 건네주어야했다. 이렇게 된 것, 해브 어 싯 히어.

스웨덴데에서 온 유학생이다. 영화감독 라쎄 할쓰트롬을 좋아한다고 말해주었다. 스웨덴 아가씨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의 말에 웃은 건지, 담배연기에 웃은 건지는 모르겠다.

내 담배는 불이 꺼졌고, 좀 전에 나의 것이었던 스웨덴 아가씨의 담배는 반이 남았다. 아프면 침맞으러 오라하고 일어섰다. 땡큐 쏘 머치가 내 뒤를 따라왔다.

담배는 그것도 오랜만일 경우는 혼자일때 더욱 더 단맛이 난다. 그냥 일어설 걸 괜히 앉으라했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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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의 신화

소선재에서 2010. 5. 31. 16:44

조지프 켐벨이라는 신화학자의 이름을 어디에서 알게 되었는지 잘 모르겠다. 어쩌면 이윤기를 통해서였을지도 모르겠다. 밑에 쓴 조지프 캠벨의 이야기도 어디에서 본 것인지 모르겠다. 책이었을 수도, 아니면 누구의 칼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신화에는 공통되는 서사가 있다. 영웅의 신화가 그것이다. 영웅은 불우한 환경에서 시련과 고난을 겪으며 성장한다. 그리고 온갖 시련과 고난을 극복해내고 마침내 영웅의 자리에 오른다. (시련과 고난의 극복에는 예를 들자면, 괴물을 물리친다던지 전쟁에서 이긴다던지 그런 것) 영웅은 전설을 만들고 귀환한다. 영웅을 기다렸던 사람들은 순간 환호하나, 곧이어 그 영웅을 죽여버린다. 그리고 또 다른 영웅을 기다린다'

 예수도 사람들이 죽여버렸다. 나는 기독교인이 아니니 예수가 이렇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하지만, 최소한 노무현은 여기에 들어맞는다는 생각이다. 노무현은 뛰어내렸으나 죽은 이들 가운데 부활하여 신화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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